영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넘으며 〈터미네이터〉 신작을 누르고 2주 연속 예매 순위 1위를 기록했습니다. 7일이 지난 현재 141만여 명의 관객이 들었죠. 동명의 원작 소설 역시 120만 부 넘게 판매됐습니다. 80쇄를 넘어 곧 100쇄를 찍은 도서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1982년에 태어나 2019년의 오늘을 살아가는 여성 김지영이 삶에 겪는 차별과 불평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 아닌가 합니다. 책과 영화를 둘러싼 논란 역시 많았지만 그만큼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라는 뜻이겠죠.


출처 - 영화진흥위원회


생각비행은 〈82년생 김지영〉 영화를 둘러싼 논쟁을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 82년생 김지영 영화화로 더 선명해진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 : https://ideas0419.com/877) 1년 전 영화화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마치 미래에서 영화를 보고 오기라도 한 듯 영화 사이트마다 평점테러를 날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개봉을 앞두고 이런 움직임은 극에 달했습니다. 개봉도 하기 전에 일부 남성들을 중심으로 각 영화 사이트에 가장 낮은 점수를 주는 이른바 평점테러가 발생했고, 이에 반발한 일부 여성들이 만점을 주는 바람에 영화가 화제가 되는 한편 큰 혼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한 영화 평점 사이트에서는 〈82년생 김지영〉이 개봉도 되기 전에 최저점과 최고점밖에 없는 별점 분포가 유출되어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개봉한 뒤 직접 영화를 본 관객들만 매길 수 있는 평점은 대부분 좋은 별점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82년생 김지영〉이 얼마나 작품 외적인 편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달려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왓챠

출처 – 네이버 영화


《82년생 김지영》 책이 수많은 여성의 공감을 받으며 미투운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페미니즘 이슈를 견인하는 하나의 사회문화적 아이콘이 되었기 때문인지 인터넷이나 SNS에서 심각한 악플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레드벨벳이나 소녀시대 등 인기 연예인 중에 책을 감명 깊게 봤다는 사람이 있으면 쫓아다니며 댓글테러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똑같이 인상 깊게 봤다는 글을 올린 방탄소년단의 RM에게는 다른 여성 연예인들에 비해 악플이 현저하게 적었습니다. 이것만 봐도 페미니즘 이슈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악플과 평점 테러를 하며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82년생 김지영〉 영화 개봉 전부터 똑같이 하고 다닌 것만 봐도 그들이 《82년생 김지영》을 읽거나 보지도 않은 이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쉬운 매체인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내용상 굉장히 온건한 편에 속합니다. 21세기 사회에서 이 정도 메시지조차 받아들이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가겠다는 얘긴지 의아할 정도로 말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차별과 혐오가 참으로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지점입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82년생 김지영〉을 둘러싼 이슈는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해프닝이 아니었나 합니다.


출처 - 뉴시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나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벡델 테스트'라는 걸 들어보셨을 겁니다. 미국 여성 만화가인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지표인데, 작품 내에서 균형적 성별 묘사를 위한 최소한의 요소가 영화에 반영돼 있는지를 보는 데 중점을 두는 방식입니다.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등장하고, 그 여성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여성 캐릭터의 대화 주제가 남성 캐릭터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간단한 조건인데, 의외로 이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는 영화가 많지 않았습니다.


출처 - 카이스트


우리나라 영화 연구에서도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같은 사람이 왜 더 많이 나올 수 없었는지를 알 수 있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지난 14일 카이스트 이병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국내외 영화를 막론하고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슬픔, 공포, 놀람 등 수동적인 감정은 여성 배역에 더 표현되어 있는 반면, 분노, 싫음 등 능동적인 감정 표현은 남성 배역에 더 몰려 있다는 겁니다. 여성이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남성의 절반 수준인 55.7%인데 비해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무려 123.9%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영화 전체에 대한 시간적 점유도에서도 여성은 남성보다 56% 낮았습니다. 여성이 영화에 등장하는 시간이 남성의 절반도 채 안 된다는 거죠. 평균 연령은 79.1% 정도로 여성이 더 어리게 나왔습니다. 남녀 역할이 고정되어 있고 여전히 영화계 전체가 거의 절대적으로 남성 위주로 이뤄져 있다는 결과입니다. 이병주 교수는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 잠재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며 영화 내 남녀 캐릭터 묘사를 더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 SBS


원작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중국 최대 규모 온라인 서점 당당에서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초판 4만 부가 금새 동나 2만 5000부를 증쇄해 이미 6만 5000부 판매고를 넘겼죠. 이보다 먼저 나온 일본어판 역시 14만 부를 돌파한 상황입니다. 이처럼 페미니즘은 전 세계적으로 더는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입니다. 더 피하려 하지 말고 우리 곁에 있는 여성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해보시면 어떨까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다음뷰, 믹시, 블로그 코리아, 올블로그, 올포스트, 레뷰 그리고 알라딘 창작블로그. 이 이름이 무엇인지 전부 알고 계신 분이라면 아마 블로그를 하신 지 10년은 되신 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른바 메타 블로그들로 SNS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전, 블로그 콘텐츠가 집합하는 사이트였습니다. 일종의 블로그 허브라고나 할까요. 이런 서비스를 통해 많은 이웃 블로거와 독자들이 유입되곤 했습니다.


출처 – 다음 뷰 블로그


페이스북의 '좋아요' 이전에 손가락 추천 버튼의 대명사가 이런 메타 블로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메타 블로그의 기능을 사실상 SNS의 공유하기 기능이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메타 블로그들은 거의 다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그와 함께 블로그가 가졌던 콘텐츠 파워와 소통의 힘이 급격하게 SNS로 이동하게 되었죠. 서두에 언급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타 블로그 서비스 중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알라딘 창작블로그가 지난 2018년 4월 10일 서비스를 종료했습니다.


출처 – 알라딘 창작블로그


인터넷 서점으로 유명한 알라딘에서 운영하던 메타 블로그 서비스인 창작블로그는 이름 그대로 책과 문화를 중심으로 한 블로거들이 주로 쓰던 메타 블로그 서비스였습니다. 이름 때문인지 블로거들 사이에서는 책을 좋아하거나 순수하게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만 콘텐츠를 발행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오해도 받으면서 심리적인 허들이 좀 높은 편이었다고 하죠. 실제로는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2010년 알라딘이 창작 블로그를 열며 세운 모토는 프로 작가부터 아마추어 작가, 이제 글쓰기를 시작한 블로거까지 누구든 환영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출처 – 알라딘 창작블로그


여느 메타 블로그와 다르게 콘텐츠의 허브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었기 때문에 책과 문화를 좋아하시는 블로거들은 좀 귀찮더라도 알라딘 창작블로그 위젯을 꼭 끼워넣으셨을 겁니다. 요즘처럼 좋아요 버튼, 공유하기 버튼 하나만 누르면 해결되는 SNS 세상과는 달리 자신이 쓰는 연재물 관리에 들어가 일일이 추천 버튼 코드를 복사해서 붙여넣어야 하는 수고로움이 뒤따랐지만 말이죠.




알라딘 창작블로그 서비스가 론칭한 2010년에 블로그를 시작한 생각비행도 콘텐츠를 발행할 때마다 창작블로그 위젯을 달았습니다. 생각비행이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마지막으로 발행한 콘텐츠는 서비스 종료일 아침에 발행한 ‘개정된 근로기준법으로 워라밸 찾을 수 있을까?’가 되었습니다. 4월 10일에는 서비스가 종료되어 추천 버튼이 활성화되지는 않더라도 위젯의 모양새는 유지되고 있었으나 하루가 지난 오늘부터는 그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습니다. 


출처 – 알라딘 창작블로그


사실상 국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메타 블로그인 창작블로그가 서비스를 종료하는 걸 보니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다고 실감하게 됩니다. 진즉 SNS로 갈아탄 분이 대다수겠으나 아직 많은 정보가 블로그에 남아 있고, 길고 심층적인 정보들은 블로그에 기대는 면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메타 블로그의 기능을 SNS가 대신하며 블로그 콘텐츠들이 유통되긴 할 겁니다. 그러다 어쩌면 메타 블로그가 없어졌듯이 블로그라는 형태의 서비스가 종료되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지만, 사람들은 서비스 형태가 바뀌더라도 콘텐츠를 만들어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는 계속 드러낼 것입니다. 생각비행도 블로그 이후에 어떤 형태가 되든지 간에 독자 여러분께 뜻깊은 콘텐츠로 계속 찾아뵙겠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9년간 수많은 독자와 교류할 수 있게 해준 알라딘 창작블로그에 고마운 마음과 아쉬운 마음을 담아 마지막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 알라딘 창작블로그! 그동안 고마웠어!

4월 1일, 올해도 어김없이 만우절이 돌아왔습니다. 만우절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엇갈립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인 듯합니다. 대략 3월 25일~4월 2일 사이에 춘분이 있어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여겨져 왔고, 현재의 양력인 그레고리력을 받아들이기 전 사람들은 4월 1일을 새해로 기념했다고 하지요. 그런데 1564년 샤를 9세가 새해 첫날을 4월 1일에서 1월 1일로 변경하게 됩니다. 이 소식을 미처 접하지 못했거나 종교적 이유로 반발했던 사람들은 4월 1일을 새해로 여겨 축제를 벌였다가 조롱을 당했는데요, 바로 여기서 만우절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오늘날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가벼운 장난이나 농담 등을 서로에게 주고받는 즐거운 날로 자리매김했죠.


출처 - 중앙일보


학창 시절 만우절이 되면 선생님 몰래 반을 바꾸거나 교복을 바꿔입거나 칠판 지우개를 문 위에 끼워놓는 장난을 한번쯤 쳐보셨을 겁니다. 이런 전통의 연장 선상에서 과거 PC통신이나 유명 웹사이트들은 만우절이 되면 서로의 메인 페이지를 바꿔 거는 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어리둥절함과 즐거움을 선사했죠. 2006년 만우절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 웃긴대학에서는 사이버 수사대가 야동 다운로드 건을 조사하러 왔다는 팝업을 띄웠습니다. 이 때문에 순진한 이용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자기 컴퓨터 하드의 야동들을 삭제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죠.


출처 - 블리자드


해외 기업들은 만우절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적극 활용합니다. 스타크래프트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게임회사 블리자드는 매년 만우절 장난으로 사람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2014년에는 판타지 게임인 디아블로3에 신규 직업으로 붓과 회초리를 무기로 휘두르는 선비 캐릭터를 신규로 내기로 했다는 장난을 쳐 한국 게이머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출처 – 구글 지도 유튜브


구글 역시 만우절을 정성스레 준비하기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2008년에는 구글 사투리 번역기를 선보였고 2012년에는 구글 지도에서 모험이라는 탭을 클릭하면 용사가 되어 모험을 할 수 있는 게임까지 만들었습니다. 뭐니뭐니해도 압권은 2014년 만우절 구글 지도에 포켓몬스터와 컬래보하여 구글 맵 포켓몬 챌린지를 시작한다고 밝힌 겁니다. 만우절 장난이라고만 보기엔 꽤나 그럴듯한 모양새라 화제가 됐습니다. 그런데 1년 후인 2015년 세계적인 현상을 일으킨 증강현실 게임의 이정표 '포켓몬GO!'가 실제로 발표되어 만우절 장난이 현실로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출처 – ANDA TV 유튜브


올해는 어떤 만우절이 우리를 즐겁게 해줄까요? 지난 4년여간 국민을 기만하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온 우리를 즐겁게 해줄 깜찍한 장난이 많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만우절이라고 소방서나 경찰서, 114콜센터 등에 장난전화를 하는 건 범죄행위입니다. 최대 200만 원의 벌금을 낼 수 있으니 이런 장난은 하지 마세요. 또한 올해는 조기대선 기간이라 가짜뉴스를 함부로 올리거나 대선 후보에 대한 농담도 잘못하면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만우절 장난은 어디까지나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즐겨야 합니다. 앞으로는 5월마다 대선이 있으니 만우절에 정치인 놀리는 재미가 줄어든다고 아쉬워할 분도 많이 계시겠군요. 박근혜 구속 결정으로 이제야 마음을 놓은 분도 많이 계실 텐데요, 그간의 긴장을 풀고 유쾌한 웃음으로 삶의 활력을 되찾으시길 빕니다. 즐거운 만우절 보내세요!

 

새로 개봉한 영화 〈컨택트〉가 영화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불만은 아닙니다. 휴고상, 네뷸러상 등 SF 계의 내로라하는 상을 휩쓴 작가 테드 창이 쓴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를 원작으로 삼아 감독인 드니 빌뇌브가 대중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훌륭히 각색해 영상화했으니까요. <컨택트>는 외계인만 등장하면 부수고 터뜨리기 바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언어'와 '소통'에 관한 지적 유희에 가까운 좋은 영화입니다. 작품성을 인정받아 이미 올해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어 있죠.


출처 - 유튜브


논란이 된 건 영화 제목이었습니다. 원제인 'Arrival'을 뜬금없이 '컨택트'로 바꿨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영화 마지막 하얀 화면에 나오는 제목은 'Arrival'인데 자막에는 '컨택트'라고 뜹니다. 보고 있자니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조디 포스터가 주연으로 나온 SF 걸작 영화 〈콘택트(Contact)〉를 의식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정작 영화 배급사 관계자는 그 영화와 제목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는 유체이탈 화법 같은 소릴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각 나라 배급사의 판단에 따라 제목이 달라지긴 했습니다. 중국은 '降臨(강림)', 일본은 'メッセージ(메시지)', 포르투갈은 'O Primeiro Encontro(첫 만남)', 폴란드는 'Nowy początek(새 시작)'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이 영화 제목이 논란이 된 까닭은 우리나라 배급사의 안이하고 이상한 이름 짓기 때문일 겁니다. 

 

원제와 연관 없는, 게다가 기존 걸작에 대한 존중의 의미도 담기지 않은, 생판 다른 영어로 굳이 바꿔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관객에게 다가가는 제목을 원했다면 영어가 아닌 신선한 한국어 제목을 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컨택트〉처럼 영어 원제를 뜬금없이 다른 영어 제목으로 옮기는 영화도 많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외화 제목은 원제를 그냥 한국어로 바꿔버린 제목일 겁니다. 컨택트'처럼 인기 소설이 원작인 영화 '월드워Z'도 그렇습니다. 원작인 ‘세계대전Z’가 한국에 번역된 소설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도 배급사는 굳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곧 개봉할 마틴 스코세이지의 종교 영화 〈사일런스〉는 어떻습니까? 엔도 슈사쿠의 유명한 소설 〈침묵〉을 그냥 영어 그대로 읽어버리는 안이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영어가 한국어보다 세련되어 보인다는 얄팍한 장삿속이 드러나는 것 같아 이런 유의 영화 제목을 볼 때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계피'보다 '시나몬'이 더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물론 모든 배급사가 이처럼 영화 제목을 짓는 건 아닙니다. 좋은 한국어 제목을 짓기 위해 노력하는 곳도 분명히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사상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은 원작이 〈Frozen〉이었죠. 역시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Gone Girl〉은 한국어 번역본 제목대로 〈나를 찾아줘〉로 개봉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원작의 제목보다 훨씬 좋은 번역 제목도 즐비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사랑과 영혼'이 있습니다. 원제는 ‘Ghost’였습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독립영화계의 최대 축제인 선댄스 영화제라는 이름의 모체가 된 '내일을 향해 쏴라'가 있겠네요. 극 중 로버트 레드포드가 분한 선댄스 키드의 이름에서 따온 건데, 영화 원제는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였습니다. 그냥 두 주인공 이름을 나열했을 뿐인 제목을 '내일을 향해 쏴라’로 멋지게 지어낸 것이죠.



앞으로 영화 배급사들이 제목에 대해 고민을 좀 더 해주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한국어 제목으로 깔끔히 번역하면 좋겠고, 안 된다면 최소한 원제를 그대로 옮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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