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당시 제2롯데월드 건설과 관련하여 군이 활주로 각도를 바꿨던 일,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가치인 국방을 위해 제2롯데월드의 인허가를 취소하거나 아니면 높이를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야 마땅한 일이었는데요, 이명박 대통령의 '비즈니스 프렌들리'한 불도저식 밀어붙이기 때문에 어이없게도 군이 사기업인 제2롯데월드를 위해 군용 활주로 각도를 바꿔 큰 논란이 일었죠.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또한 어이없는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국군의 차세대 전차인 K2 흑표 전차 논란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터키에도 수출된 차세대 국산 전차 K2 흑표, 정작 국내 도입품은 부실 엔진


군 복무를 경험한 분은 다들 아시겠지만, 전투장비의 노후화가 정말 심각합니다. 이 때문에 육군은 반세기 가까이 사용해온 노후 전차를 대체하고 유사시 강력한 기동력을 바탕으로 적을 막아낼 비장의 카드로 기동군단을 준비해왔다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데요, 이 기동군단의 핵심이 바로 K2 흑표 전차입니다.


출처 – 유튜브


화력, 기동력, 생존성 등 다양한 조건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K2 흑표 전차는 지난 2007년 시제품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2008년 이 기술을 형제 국가인 터키에 수출했습니다. 흑표의 기술이 사용된 터키의 알타이 전차는 2012년부터 실전에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K2 흑표 전차를 개발한 우리나라는 논란만 일 뿐 언제쯤 양산이 가능한지조차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자동차의 엔진에 해당하는 K2 흑표 전차의 파워팩 때문이었죠.


‘부실 심장’ 달고 나오는 K2 흑표전차...적 앞에선?(나우뉴스)


원래 K2 흑표에는 이미 K1 전차에 사용되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전차에 사용되고 있는 독일제 파워팩이 장착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두산그룹이 파워팩을 국산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업 참여를 요구하자 마치 제2롯데월드 건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이를 승인합니다. 모든 문제의 발단이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출처 - 뉴데일리


두산그룹은 방산사업의 이익에 눈이 멀어 기술력이 없음에도 K2 흑표 파워팩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흑표 전차 양산은 계속 미뤄졌고, 중소기업 협력업체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거나 도산해버렸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파워팩을 개발하라고 정부가 지원한 국고 보조금 가운데 70억 원을 횡령해 자사의 굴삭기 개발에 사용했다는 내부 고발이 국민권익위에 접수되었습니다. 이때 사용된 유류비까지 알뜰하게 K2 흑표 파워팩 개발 중 쓴 것으로 조작했습니다.

 

엔진 제작을 맡은 두산인프라코어는 2009년에도 해군고속정 납품비리와 국책연구비 횡령 등으로 80억 원을 빼돌렸다가 계열사 사장이 구속되는 등 8명이 처벌받은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조금만 신중히 관리했다면 흑표 파워팩 개발에 지원된 국고의 횡령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겠지요. 


출처 - MBC


이처럼 시간을 끌며 협력업체를 도외시하고 국고 횡령 의혹까지 받은 두산이 파워팩을 제대로 만들 수 있었을 리 만무합니다. 테스트 결과 엔진은 수시로 과열되었고 기어 변경이 안 되거나 엔진 실린더가 깨지는 등 중대 결함만 100여 곳이 넘으며 이는 지금까지 보완되지도 못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된 건 가속 성능이었습니다. 애초 합동참모본부에서 요구한 조건은 시속 0에서 32킬로미터까지 8초 이내에 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무게를 최대한 줄이고 평지에서 달려도 두산의 파워팩은 8.7초 이하로는 도저히 내려가질 않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0년대에 등장한 독일이나 프랑스의 전차가 같은 이 조건을 6초 남짓으로 통과하는 것과 비교하면 터무니없는 결과인 셈이지요. 미국의 대표적 전차인 M1A1 에이브럼스 전차의 경우 K2 흑표 전차보다 10톤이나 차체가 무거운데도 7.2초 만에 시속 32킬로미터에 도달합니다.

 

엄청난 국고를 쏟아부어 40년 전 기술만 못 한 전차를 만들고 있다는 논란이 성능 시험 결과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터키의 예에서 봤다시피 애당초 정해져 있던 독일제 엔진만 탑재하면 지금이라도 실전 배치가 가능한 K2 흑표 전차를 이 지경에 빠트린 원인은 무엇일까요?



두산에 굴복한 육군?

성능이 기준 미달이라 기준을 낮추겠다고?


수많은 결함과 국고 횡령 의혹, 결정적으로 기준 미달의 성능 등을 보면 정부가 계약을 파기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계약을 파기하기는커녕 방위사업청은 애초에 합동참모본부가 요구한 가속 기준치인 8초를 10초로 바꿀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에 합참은 수정을 반대하다 결국 두산과 방위사업청의 요구대로 야전교범 해석을 변경하는 꼼수를 부려 이를 9초로 바꾸고 말았습니다. 국방 따윈 아랑곳없이 이윤에 눈이 먼 기업과 이에 결탁한 방산 마피아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제2롯데월드 허가 당시 활주로를 억지로 변경해주던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을 위해 헌법 해석을 변경한 것처럼 야전교범 해석 변경이라는 눈 뜨고 보기 힘든 꼼수까지 동원해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갉아먹는 결정을 박근혜 정부 스스로 내렸습니다. 군사 독재자의 딸이라면 하다못해 국방력만이라도 제대로 챙겨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돈과 연관되어 얽힌 관계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이 밖에도 전자장비 시스템 충돌 문제 때문에 핵심 방어 장비를 개발하고도 장착하지 못하는 등 차세대 무기 관련 각종 비리와 문제점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출처 - 동아일보


방산업체의 기술 국산화, 명분도 좋고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K2 흑표 전차는 군사용으로 유사시 극한의 상황과 마주하며 1분 1초를 다퉈 국민의 생명을 지켜내야 하는 전투장비입니다. 아주 작은 차이라도 성능이 제1의 척도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일의 결정을 일개 기업과 그에 결탁한 세력의 이익을 위해 내버려두는 이 나라의 국방 관계자와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대체 무엇 하는 사람들인지 분통이 터집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달 19일 제84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 회의에서 K2 차기 전차의 2차 양산계획을 확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K2 전차 1차 양산분 100대는 독일제 파워팩 덕분에 빠른 기동이 가능하지만, 2차 양산 물량은 국산파워팩이 장착되어 초기 작전 요구 성능에 부합하지 않는 전차가 되는 셈입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K2 전차 ROC변경으로 오는 성능 변화보다 더 큰 문제는 국가적 사업에서 일관성 없는 나쁜 선례를 남겼다는 것"이라며 "국내기술 수준을 감안하지 않은 무리한 발주가 원인"이라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제2롯데월드 활주로 변경으로 소음공해 시달려,

K2 흑표 전차는 앞으로 어떤 참사가 기다리고 있을지...


최근 서울 송파구에 들어선 제2롯데월드가 저층 몰을 개방하고 123층의 초고층 빌딩 공사에 돌입하면서 군용기들이 본격적으로 항로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문에 송파구 일대 주택가가 소음공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제2롯데월드 때문에 항로를 바꿨는데, 이 때문에 부득이 저공비행을 하게 되어 안 그래도 큰 군용기 소음이 서울 주택가 한복판을 덮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송파구 의회 차원에서 소음에 대한 공식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하니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일개 기업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이명박 정부 시절 억지로 바꾼 활주로 각도 때문에 정권이 바뀐 지금 송파구 주민들로서는 공공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군 본연의 영역인 차세대 전차의 성능 미달을 지금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한민국의 안보와 관련하여 어떤 참사가 발생할지 예견하기 어렵습니다. 

 

K2 흑표 전차를 몰게 될 당사자는 누군가의 자식 혹은 누군가의 손자요, 누군가의 조카 혹은 누군가의 오빠겠지요. 제2롯데월드처럼 싱크홀이라는 뜻밖의 재난까지 발생한 마당에, 그리고 최근 개장한 제2롯데월드 아쿠아리움 수족관 균열 누수와 같은 안전문제가 반복되고 있음을 볼 때 흑표 전차의 부실한 성능이 대한민국의 건아들을 어떠한 위험으로 내몰게 될지 모골이 송연합니다.

 

지금까지 방위산업과 연관된 각종 비리 의혹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세월호 사고 당시 기동할 수 없었던 통영함을 기억하십니까? 애초 통영함은 수중 무인탐사기(ROV)를 비롯한 첨단 음파탐지기와 사이드 스캔 소나(Side Scan Sonar) 등을 탑재하고 최대 수중 3000미터까지 탐색해 탐색 능력이 대폭 향상되었고, 잠수요원이 수심 90미터에서 구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갖춘 수상구조함으로 고장으로 기동이 불가능하거나 세월호같이 침몰된 배나 함정을 탐색, 인양, 예인,해상화재진압등 다양한 구조활동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2013년 10월에 인도되었어야 할 통영함이 아직도 조선소에서 잠자고 있는 이유도 바로 방산비리 때문입니다. 1600억 원에 육박하는 엄청난 사업이 이 정도로 허술하게 진행될 수 있었는지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총알을 막아내지 못하는 방탄복부터 1만 원짜리 USB를 95만 원에 사들인 군납 비리까지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플 지경입니다.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수법으로 전투기 정비대금 240억여 원을 빼돌린 공군 방위산업체 박모 대표가 최근 구속되었습니다. 감사원이 2010년 링스 헬기 추락 후 공중전투장비의 유지·보수 강화를 위한 감사 중 박씨를 적발해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한 바 있는데요, 검찰 수사 직전 달아나 2년 8개월 넘게 도망을 다니다 사건을 넘겨받은 합수단의 추적으로 지난 8일 체포된 것입니다.

 

박 대표는 2006년 11월부터 2011년 12월까지 공군 전투기의 부품을 산 것처럼 허위로 서류를 꾸며 공군 군수사령부와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정비대금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 대표는 KF-16 등 전투기 부품 3만여 개를 새로 산 것처럼 허위 세금계산서 만들어 정비대금 70억여 원을 부풀려 받아 챙기는 한편 KF-16 전투기 주요 부품인 다운컨버터(주파수 변환기)의 수입 제한 규정을 피하려 다운컨버터 폐자재를 수출하고 다시 수입하는 방식으로 170억여 원어치의 수입신고필증을 받아냈습니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서 부품의 기술 검사를 맡았던 공군 군수사령부 검사관에게 5000만 원을 건넨 혐의도 받고 있다고 합니다. 다. 합수단은 박씨가 따로 챙긴 정비대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다른 공군 관계자에게도 뇌물을 건넨 것으로 보고 추적 중이라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방산비리.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방산비리를 뿌리 뽑겠다는 박근혜 정부는 국방부의 댓글 조작에 힘입어 정권을 창출했죠. 그런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전부터 국방부가 사실상 전작권 환수 준비를 중단했다는 사실이 최근에 언론 보도를 통해 확인되었죠. 이에 따라 박근혜 당시 후보와 이명박 정부의 사전 교감 속에 공약을 거짓으로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자주국방의 의지조차 없는 정권이 어떻게 국방 기술을 국산화하고, 방산비리를 척결하겠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세월호 사건 당시 사라진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의 망령'이 지금도 대한민국을 떠돌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합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파토의 호모 사이언티피쿠스》 출간 기념 무료 북콘서트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인기 팟캐스트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와 공개 토크쇼 <과학같은 소리하네>, 그리고 최근 새로 시작한 팟캐스트 <과학책이 있는 저녁>으로 과학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는 저자(파토 원종우)를 만날 수 있는 자리입니다. 현대과학, 인문학, SF를 통섭하는 재미있는 강연을 선사함은 물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알라딘 이용자분은 행사 이벤트 페이지에 신청이 가능하고 우선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참석 인원에 여유가 있으니 별도 신청 없이 북콘서트 당일 벙커1으로 편하게 오셔도 괜찮습니다. 선착순 200명 입장입니다. ^^


일요일 저녁 <개그콘서트>가 시청자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면 요즘 금, 토 저녁은 드라마 <미생>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습니다. 케이블 드라마라는 핸디캡을 훌쩍 뛰어넘은 만듦새와 막장 요소나 사랑 타령 없는 현실감 있는 전개가 큰 장점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원작인 웹툰 <미생>부터 드라마 <미생>을 관통하는 가장 큰 장점은 직장에서 노동자가 겪는 고뇌와 일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배우들임에도 캐릭터에 딱 맞는 훌륭한 연기를 선보여 드라마 <미생>을 보며 시청자가 공감하게 하는 한편 배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될 정도입니다.

 

특히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 한석율 등 사회 초년생이 자신의 처지에서 겪는 직장과 일의 의미는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직장 생활을 좀 오래하신 분들이라면 이들의 실수를 보며 옛날 자신의 모습을 반추하기도 하고 흐뭇한 미소를 보내기도 하실 겁니다. 때로는 아, 저거 진짜 위험한데... 저러면 안되는데... 싶은 부분도 있을 줄 압니다. 

 

오늘은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들이 직장에서 겪은 일들을 어떻게 하면 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지 저희가 출간한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내용과 연관 지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시말서, 장백기처럼 쓰다간 큰코다친다


자타공인의 엘리트로서 사수인 강 대리에게 인정받고 주인공인 장그래처럼 주목받으며 일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고민이 많은 장백기. 완벽주의적인 모습과 달리 지난 에피소드에서는 술을 마시고 지각해서 동기인 한석율에게 대출을 부탁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는 법. 장백기는 사수인 강 대리에게 걸려 혼쭐이 납니다. 지각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철강팀 상사는 장백기에게 시말서를 써오라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여기서 잠깐. 드라마 <미생>뿐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심심찮게 대면하는 문서가 바로 시말서입니다. 시말서는 말 그대로 일의 시작(始)과 끝(末)을 적은 글(書)입니다.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쓰는 경위서와 같은 개념인데, 직장에선 일반적으로 반성문의 의미가 강합니다. 사실 시말서의 범위는 무척 넓습니다.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지각 같은 소소한 일에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가 하면, 규정위반 등 경고장이 나갈 수도 있는 일임에도 시말서를 쓰라고 할 수도 있고, 중징계감인 일을 봐주는 차원에서 시말서로 갈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말서 처분 자체는 쓰는 사람에게 큰 불이익이 없습니다. 주의나 경고 같은 처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말서 쓰는 일 자체를 우습게 봤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우선 시말서가 누적되면 인사고과가 나빠집니다. 당연히 승진에도 불리합니다. 또한 시말서가 누적되면 징계수위가 높아질 가능성도 그만큼 커집니다.


시말서는 형사사건으로 치자면 일종의 자백이자 진술서에 해당합니다. 크든 작든 어떤 사실을 자신이 저질렀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행위인 것이죠. 언론 기사나 뉴스에서 보신 적이 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자백 한 번 잘못했다거나 진술서 한 번 잘못 썼다가 모든 죄를 옴팡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억울한 일이 시말서 한 번 잘못 썼다가 직장생활에서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앞서 말씀드린 바처럼 시말서는 그 범위가 굉장히 넓기 때문에 자신이 어떤 이유에서 시말서를 쓰는 것인지 분명히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자기 잘못 이상으로 처벌받을 빌미를 남기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큰 사건에 연루되어 쓰는 시말서라면 표현에 따라 법적 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시말서를 잘 쓸 수 있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의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우선 회사가 원하는 시말서는 '확실하게'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않을 것을 단단히 약속하는 시말서입니다. 경위가 복잡하거나 당사자가 구체적인 내용을 부인할 수도 있는 일인 경우 회사는 시말서를 사실관계에 대한 '증거'로 활용하고자 하기 때문에 되도록 자세하게 경위를 적고 구체적인 내용을 시인하는 시말서를 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원하는 대로 적었다가 나중에 큰 곤란을 겪을 수 있고, 너무 방어적으로만 썼다가 회사에 밉보이거나 반성의 기미가 없다며 더 무거운 징계 처분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


먼저 잘못한 일에 비해 시말서 정도로 끝나는 게 다행이다 싶은 상황인 경우 그 잘못이 시말서를 썼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말서를 신중하게 아주 잘 써야 합니다. 남들이 이해해줄 만한 불가피한 사정이나 있을 수 있는 실수에 대해 강조하는 편이 좋습니다. 물론 구체적인 경위를 쓰도록 하되 명백한 사실을 중심으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는 부분은 어느 정도 자신의 입장에서 정리하는 게 좋습니다. 단, 시말서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비록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쩌다 보니 이런 일들이 생겼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성실하게 역량을 발휘하는 믿음직한 직원으로 인정받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같은 미사여구로 마무리해줘야 합니다. 무조건 사실을 부인하거나 잘못이 없다고 주장하는 게 능사는 아닙니다. 좀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잘못한 게 전혀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결과적으로 죄송하다’라는 표현 정도는 넣어주는 편이 좋습니다. (…)


어떤 경우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데 시말서를 쓰라고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시말서 작성을 거부할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일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에 시말서를 제출하되 ‘이런저런 사유로 이 문제는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분명히 표현해야 합니다. 물론 무작정 잘못을 부인하는 자세보다는 자세한 사실관계를 적고 근거를 대면서 설명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불쾌한 감정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나 강한 어조보다는 객관적인 표현과 겸손한 어조를 유지하는 게 좋습니다. 역시 마지막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과적으로 심려를 끼쳐 드리게 되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는 표현으로 마무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억울한 상황에서도 다른 이들을 배려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고, 이런 점은 향후에 징계와 관련한 법적 분쟁이 생길 때에도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232~234쪽

36. 시말서를 쓰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중에서

 

드라마 미생의 장백기처럼 단순 지각으로 시말서를 쓰는 경우라면 간결히 반성문 성격으로 쓰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책에 나온 표현과 어조를 숙지하여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적어도 자기 잘못이 아닌 일로 나중에 억울한 상황이 벌어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직장내 성희롱 대처,

안영이 같은 상황에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사실을 직접 표현하라


자원팀 마 부장은 남자 직원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여자 직원들에게는 성희롱 조의 언어폭력을 일삼아 직장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합니다. 마 부장의 눈에는 여자인 주제에 우수한 안영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보고하러 오면 분내 난다, 하이힐 시끄럽다, 시집이나 가겠냐 등등 여성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내뱉곤 합니다. 지난 에피소드에서 마 부장은 경쟁사인 삼정의 팀장과 안영이가 마치 사귀기라도 했던 것처럼 성희롱 조의 말을 꺼냅니다. 이때 안영이는 정색하고 “업무와 상관없는 말씀이십니다”라고 대답하고 나가죠.


출처 – TVN 드라마 <미생>



직장 내 성희롱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여성의 입장에서 직접 맞닥뜨릴 경우 대처하기가 어려운 문제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성추행하는 위계에 의한 성추행이 부쩍 뉴스에 나고 있습니다. 신체 접촉과 같은 무거운 성추행이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가벼운 성희롱의 경우에도 현명하게 대처하려면 어떻게 하는 편이 좋을까요?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 설명서》 저자는 이렇게 조언합니다.


가벼운 성희롱이더라도 불쾌감이 느껴졌다면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웃으면서 "왜 이러세요~ 이러지 마세요~" 한다거나 정색하면서 "성희롱으로 고발할 거예요!" 하는 방식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웃으면서 대꾸하면 가해자들이 피해자가 불쾌해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좋으면서 그런다'고 생각하며 점점 더 심한 성희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정색하며 대응할 때는 직장 안에서 이런저런 불리한 상황에 처해질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따라서 웃거나 정색하지 않고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의사를 전달하되 고발하겠다는 말을 하거나 잘못했다는 것을 직접 지적하면 가해자가 매우 불쾌하게 여기고 불이익을 주려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런 행동을 당하니 기분이 언짢다'라고 자신의 감정만 전달하는 편이 가장 좋습니다.


피해자 입장에서 지속되는 성희롱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거나 가해자에 대한 조치 등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이라면, 기록을 남기고 회사 내 고총처리기구나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좋습니다. 이와 함께 가해자에게는 이메일이나 내용증명을 보내는 편이 좋습니다. 사업주가 가해자이거나 회사 내에서 적정한 처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일단은 법적 조치보다는 회사 내에서 원만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방법을 먼저 찾는 편이 좋습니다. 법적 분쟁 형태로 넘어가게 되면 이제는 '가해자'를 상대로 하는 싸움이 아니라 '회사'가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을 문제 삼는 모양새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회사가 가해자를 보호하려 들고 오히려 피해자를 상대로 적극적인 대응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고용노동부나 인권위원회에 진정 고발을 접수하거나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249~350쪽

54. 회사에서 성희롱을 당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웹툰 미생의 뒷이야기,

회사가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지 않으려고 한다면?


[특별5부작] 미생 – 사석 :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27410


드라마 <미생>의 시작과 함께 원작인 웹툰 <미생>도 특별 5부작이 연재되었습니다. 현재 완결된 이 에피소드는 오 차장의 대리 시절 뒷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요. 본편에서 등장했던 검은 넥타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오 차장의 직속 상사가 과로로 사망했는데 회사는 산업재해 처리를 꺼립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대표적인 과로사회인 한국이지만 그로 인한 폐해는 오롯이 개인이 지고 있습니다. 일에만 매달리다 보면 가족은커녕 자기 몸조차 돌보지 못하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산업재해를 당한 것도 억울한데, 산재는 신청과 증명 모두 노동자가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노동 관련 법 개정에 신경을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산재 신청은 근로자가 하는 것이고 업무상 재해 사실을 주장하고 입증하는 것도 근로자가 해야 합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신청한 내용에 대해 '조사'를 하기는 하지만 보험급여를 지급하는 입장이고 예산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산재 인정이 되도록 발 벗고 나서서 조사하거나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는 증거를 찾아주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근로자 주장에 허위 사실은 없는지, 입증이 부족하거나 객관적이지 못한 건 아닌지를 확인하는 데 더 적극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재해를 당한 근로자는 스스로 입증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1~422쪽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산재를 증명하려면 정황이나 자료가 충분히 필요한데 의학적 입증뿐 아니라 실제 업무와의 연관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회사가 보유한 자료가 필요합니다. 고로 산재는 회사의 협조 없이 규명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어지간해서는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거나 경영상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하거나 재해 근로자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등의 사유로 비협조적이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건설업 같은 경우 재해율이 공사 입찰을 받는 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산재 승인이 나지 않게끔 조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동료에게 압력을 가해 진술서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재의 경우 처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산재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 입증이 불명확한 상황인 데다 회사 역시 비협조적인 상태라면 전문가를 찾아 방법을 논의하는 편이 좋습니다. 덜컥 접수부터 해버리는 것보다는 충분히 입증 자료를 준비한 후 접수하는 것이 좋습니다. 처음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할 때 충분한 입증을 통해 주장하지 않으면 승인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또한 최초 신청 단계에서 허술한 준비로 승인을 받지 못하면 이후 불복을 제기할 때 결과를 바꾸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산재 신청은 처음부터 충실한 준비를 거쳐 신중하게 제기해야 합니다.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423

69. 회사에서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에서

 

어떻게 해야 산재로 인정되는지, 업무상 질병에 대한 구체적인 인정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등의 세부 사항은 《현명한 직장 생활을 위한 노동법 사용설명서》  부록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 다음 웹툰 미생


웹툰 <미생> 특별편에서 과로로 죽은 오 차장의 직속 상사는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대신 회사는 위로금이란 명목으로 산재 보상금을 털어버렸죠. 지급하는 금액이 같더라도 회사 차원에서는 산재로 인정되는 것보다는 위로금을 주는 쪽이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목과 마찬가지로 '미생'인 우리의 절대다수는 어딘가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자신과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자의 권리를 명시한 노동법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그리고 뭉치면 더 커집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에게 필요한 것은 이 두 가지 아닐까요?

 

 

정규직 집단해고 OECD 34개국 중 4번째로 쉽다

 

지난 12월 4일자 《한겨레》에 우리나라 정규직의 실태를 다룬 기사가 났습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며 고용 유연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몰이를 하고 있는 이때에 아주 적절한 기사를 기획해서 낸 것이죠.

 

기사 내용에 따르면 법과 제도상으로 우리나라의 정규직에 대한 정리해고는 쉬운 편에 속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에 용역을 맡겨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노동시장 지표 비교연구〉 보고서(2013년)를 보면 정규직 집단해고는 34개국 중 4번째로 쉬운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법에서 보장된 정리해고뿐 아니라 명예퇴직, 권고사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해고를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올해 4월 케이티(KT)는 지난해 적자를 이유로 8300명을 명예퇴직시킨 바 있습니다.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모두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나 정부의 무관심 속에서 있으나 마나 한 조항이라는 게 노동계의 평가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상황에서 드라마 <미생>, 영화 <카트>에서 극명하게 다뤄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입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노사정위)는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제4차 전체회의를 열고 노동시장 이중구조,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파트너십 구축 등에 대한 14개 세부 과제를 확정·발표했습니다.

 

세부 과제를 살펴보면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 해결을 위한 과제로 △원하청,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동반성장 방안 △비정규 고용 규제 및 차별 시정 제도 개선 △노동이동성, 고용·임금·근무방식 등 노동시장 활성화 방안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또한 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등에 대해서는 △통상임금 제도 개선 방안 △실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법제도 정비 △정년연장 연착륙을 위한 임금제도 등 개선 방안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노사정 파트너십 구축과 관련해 △노사정위는 향후 노동기본권 사각지대 해소 △비조직부문 대표성 강화 △중앙·지역·업종별 사회적 대화 활성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노사정위는 이번에 확정한 세부 과제를 바탕으로 19일까지 큰 틀에서 노사정 기본 합의안을 내겠다고 했습니다. 2015년에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위해 주요 현안들에 대해 한꺼번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노사정 합의를 이루어내겠다는 의도입니다. 이에 노사정위가 1월 19일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노동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기본방향 합의 문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하니 어떤 변화가 있을지 유의해서 살펴야 하겠습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알뜰살뜰 적금을 들어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감생심입니다. 워낙 저금리 시대라 이젠 적금을 들어도 예전 같은 이율을 바랄 수 없습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수십억을 예금해놓고 이자나 받아먹으며 사는 부자가 월급쟁이들의 꿈 중 하나였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자율이 너무 낮아 예금을 할 경우 오히려 은행에 보관료를 내는 꼴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은행에 꼬박꼬박 월급을 저축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은행보다 안전한 보관처는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마저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 1억 2000만 원이 농협 통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라일보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은커녕 인터넷뱅킹도 가입한 적이 없어


여러분 중 대부분이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에 걸렸거나 인터넷뱅킹을 해킹당하는 등 피해자 쪽에서 뭔가 잘못했겠거니 하고 생각하셨을 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출처 - YTN


19년 전 충남 삽교 농협에서 통장을 만든 50대 이씨는 지난 7월 돈을 찾으러 은행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억 2000만 원이 들어 있어야 할 통장의 잔액이 0원도 아니라 마이너스 500만 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재산을 털린 것도 모자라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대출까지 받은 상황에 처한 겁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한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에 걸린 적도 없고, 은행 보안카드를 잃어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씨는 애초에 인터넷뱅킹조차 가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용한 거라곤 농협에서 제공하는 텔레뱅킹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씨의 전 재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알고 보니 원인은 중국 쪽의 해킹이었습니다. 대포 통장을 통해 3일에 걸쳐 41번에 나눠 피해자의 계좌에서 1억 2000만 원을 빼내고 거기에다 500만 원의 마이너스 대출까지 해간 겁니다.



출처 - SBS


아무튼 바로 농협과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농협이 사기에 대비해 손해보험에 들어있다는 말을 믿고 3개월을 기다렸습니다. 사고 처리에 2~3개월이 걸린다고요. 그런데 3개월이 지나 농협은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의 과실은 아니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없으므로, 은행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전례가 없어 피해액을 전혀 보상해줄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한술 더 떠 농협은 피해자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빼간 마이너스 대출에 대한 이자까지 독촉했습니다.


피해자로서는 황당한 상황에 기가 막혔을 겁니다. 농협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 입장에서 농협이 돈을 잃어버린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사고 처리를 해주겠거니 믿고 기다렸으나 사과는커녕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친 셈이니까요. 이씨가 모은 돈은 새 보금자리의 중도금을 치를 용도였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이씨는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뻔뻔하고 비열한 농협, 법도 무시하고 보안책임은 나 몰라라


중국의 해킹도 좌시해선 안 될 일이지만, 사람들은 더 분노하게 했던 건 뻔뻔하고 비열한 농협의 처신입니다. 피해자가 신고했을 때는 마치 손해보험으로 다 보장해줄 것처럼 얘기하다가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의 무과실이 드러났음에도 보상은커녕 이자마저 내놓으라니 말문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는 종결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농협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피해자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출처 - SBS


하지만 이는 명백한 농협 측의 불법행위입니다. 2006년 4월 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 의하면 피해자의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은행이 보상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한 보안에 의한 해킹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5년 6월 외환은행의 5000만 원 해킹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도 외환은행 측은 과실이 아니라며 피해자의 돈을 보상할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모든 언론과 여론의 엄청난 비난이 외환은행 측에 집중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제정된 것이 전자금융거래법입니다.

 

전자금융거래법에 의하면 원인이 없고 과실이 없는 사건의 경우 일단 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지게끔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말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돈을 맡은 쪽이 지킬 방책을 세워야지 맡긴 쪽이 대책을 마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요. 돈을 맡긴 쪽에 과실이 없다면 응당 돈을 맡은 쪽이 사고의 책임을 지는 건 지극히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농협이 뻔뻔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억울하면 피해자가 소송을 하라는 겁니다. 으름장을 놓고 버티면 피해자는 알아서 나가떨어지던가 혹은 배상을 하게 되더라도 배상 규모를 줄이거나 배상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믿고 맡긴 돈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소송을 하려면 추가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빚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 법이 미비해서 이런 은행의 비열한 행태를 막을 방법이 현재로써는 없다고 하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출처 - JTBC


애초에 농협은 돈을 맡은 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보안의 의무에 나태했습니다. 농협에서 1억 2000만 원이 사라진 사건이 공론화되자 비슷한 시기에 50여 명이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이들은 스마트폰에 해킹코드를 심는 이른바 파밍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결제원에서 중국발 해킹 IP에 대한 경고를 무려 100여 번이나 각 은행에 보내며 이 IP를 차단하거나 관찰하라고 했음에도 농협은 이를 귓등으로 흘린 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1억 2000만 원의 피해를 본 이씨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 뱅킹에 가입조차 한 적이 없으니까요. 이씨 사건으로 볼 때 농협의 시스템 자체가 해킹된 것은 아닌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가 앞으로 더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농협은 정부에서 보안 강화 조치의 일환으로 지시한 이상금융거래 탐지시스템(FDS) 구축에도 나태했습니다. 혹시 신용카드로 처음 해외 결제를 해보신 분이라면 한밤중에라도 전화를 받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본인이 결제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 때문입니다. 평소 이용자의 결제 유형과 너무 다르거나 이상 행동을 하면 일단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고 거래를 중단하는 시스템이 바로 FDS입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이씨의 경우 3일에 걸쳐 대포통장으로 41번의 인출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10번 이상의 인출이 있었다는 건데요. 일반인의 경우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달아 하루에 10번이 넘는 거래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41번의 인출을 통해 통장을 전부 비우는 일도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겠지요. 만일 FDS 시스템이 농협에 구축되어 있었다면 이번 사건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농협은 정부가 지시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이 시스템 구축을 구축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농협의 행태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은행으로서 최소한의 보안 책임도 지지 않고, 고객의 잘못이 없음이 입증된 사건에서조차 법적으로 정해진 피해보상을 미루며 버티고 있으니까요.



징벌적 배상제와 제도 정비로 고객의 억울함 없게 해야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농협의 나태한 보안의식과 무책임함 그리고 법률적 제도적 미비함이 맞물려 일어난 금융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금융사고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데, 이제는 이러한 책임을 은행이 우선 지도록 해야 합니다.



출처 - 아주경제


일본에서는 전화 사기를 당해 고객이 자기 정보를 유출하는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이를 가벼운 잘못으로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중대 과실로 보고 보상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초에 사기를 친 쪽이 잘못이지 당한 쪽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경우 우선 사고로 피해를 본 금액을 10일 안에 고객에게 되돌려주고 45일간 은행이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고객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그에 해당하는 돈을 회수하고 무과실이 입증되면 그대로 수사를 종결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농협처럼 뻔뻔하게 법적으로 정해진 피해보상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기업의 행태를 막는 방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0일 안에 고객에게 일단 피해액을 전부 보상하지 않으면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매기겠다고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죠.


스미싱까지 포함해 27만 건의 사고, 피해액 총 1조 6000억 원. 이것이 우리나라 금융사기의 민낯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은 5억이면 도입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을 돈 아깝다고 미루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농협 사건 경우 보안의식이 투철한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예금자들의 인출이 속출하는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대체 이 나라와 기업, 기관들은 언제까지 피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려고 하는 걸까요. 은행은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입니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농협 계좌에서 주인도 모르게 억대의 돈이 인출된 사건과 관련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진상파악을 위해 오늘 전체회의를 열고 긴급 현안보고를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회의에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회장, 김주하 NH 농협은행장 등이 출석하며 여야 의원들은 이들을 상대로 불명의 예금 인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 방지 대책을 추궁할 예정이라고 하니 피해자를 구제함은 물론 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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