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큰오빠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방은 전세인가, 사글세인가? 방세는 한 달에 얼마인가?”


신경숙 작가의 1995년 작품 《외딴방》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신경숙 작가는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 번역판이 출간 직후 매진되는 등 외국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올해는 《외딴방》의 영문판으로 미국 시장을 다시 한 번 두드릴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전세 대란'과 맞물려 앞서 소개한 작품 속 대화가 문득 생각났습니다. '전세'를 영어로는 어떻게 번역할까요? 사글세는요?


 

출처 - 한국일보


전세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현실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주택임대 제도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방대한 인터넷 백과사전 사이트인 위키피디아 항목에 '전세'를 영문으로 'Jeonse', 일본어로 'チョンセ'라고 우리말 발음 그대로 표기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뿐 아니라 한국을 무대로 한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에 쓰인 "네가 여기 전세 냈느냐?"는 표현도 한국 문화에 익숙한 외국인이 아니라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외국인들은 전세가 한국 고유의 전통문화와 같은 개념으로 막연히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실상 우리에겐 현실이고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중요한 경제지표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전세'가 서민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혹독한 현실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미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뛰어넘었을 정도로 주택 시장의 혼란이 심각합니다. 이러한 때에 과연 '전세'라는 개념이 어떤 유래를 거쳐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오늘은 이런 궁금증을 한번 풀어보겠습니다.



관습으로 유지되다 일제강점기에 법적으로 확립


전세는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관습상의 부동산, 특히 건물 대차 제도로서 그 기원이 명확하지는 않다고 하는군요. 학계에서는 논밭을 담보로 돈을 융통하던 조선 시대 전당(典當)제도가 전세제도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전당제도가 가옥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죠.


그러다 전세를 법적인 제도로 인정하기 시작한 때는 일제강점기부터라고 합니다. 광복 후 미 군정이 들어선 1949년에 그간 관습으로 성행하던 전세권이 민법제정으로 물권으로 인정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군정 법률 자문관이던 찰스 로빈기어(C. Lobingier)가 한국민법전초안(韓國民法典草案)에서 전세제도를 서구의 모기지(mortgage)와 유사한 제도로 인식해 이를 법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관습조사보고서. 대구광역시립중앙도서관 소장 / 출처 - 경향신문


2015년 3월 4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조선시대에도 '전세난민' 있었다>라는 기사를 보니 전세에 관한 가장 빠른 공식 자료는 1910년 조선총독부가 만든 <관습조사보고서>라고 합니다. 이 보고서는 전세란 조선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가옥 임대차 방법이며, 차주가 가옥 가격의 반액 내지 7~8할을 소유자에게 기탁하면 별도의 차임을 지불하지 않고 반환 시 기탁금을 돌려받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후 도시로 이동하는 농촌 인구와 이주 일본인이 급증하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주택 수요가 늘어나 전세가 확대되었습니다. 광복 이전까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경기도 일대에서 주로 전세가 사용되었다고 하는군요. 일제강점기에 전세 기간은 도시에서 보통 1년, 수요가 많은 서울은 100일 정도로 지금과 비교하면 무척 짧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전세제도가 유지된 이유


"굳이 집을 사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어요. 전세라는 좋은 제도가 있는데...(웃음) 근데 전세값도 많이 오르고, 살면서 고장 나는 게 있으면 주인에게 고쳐달라고 해야 하고…. 전세 만기일이 되면 자꾸 집을 보러 오시는데 그때마다 집을 비워드려야 하니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아 집을 사게 됐죠."


2011년 1월《우먼센스》 인터뷰 기사에서 대표적인 한류 스타로 등극한 배우 배용준조차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전세는 세입자에게 유리한 측면이 많은 주택임대 제도입니다. 별도의 월세 지출 없이 애초 지급한 전세금은 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고스란히 돌려받게 되니까요.

 

집주인으로서는 별도의 이자 부담 없이 목돈을 쥐긴 하지만 계약 기간이 끝나면 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됩니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은 세입자와 집주인 양쪽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해 혼란에 빠지곤 합니다. 세입자 입장에선 대체 뭘 믿고 몇천, 몇억에 달하는 큰돈을 집주인에게 맡기는지 의아해하고, 집주인 입장에선 집값보다 낮은 전세금만 받고 별도의 월세를 받지 않는 채 집의 전권을 세입자에게 내어주는 전세제도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우리 사회에 좀 적응한 외국인이라면 전세를 십분 활용하는 편입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전세제도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땅과 집에 집착하는 한국인의 특성과 고도성장기가 겹쳤기 때문일 겁니다. 도시로 유입되는 인구가 늘고, 특히 수도권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택 수요는 해마다 계속 늘어났습니다.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은행 금리도 높은 수준이 유지되는, 보통은 동시에 일어나지 않는 상황이 계속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집주인 입장에서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 분명하니 당장 팔기보다는 임대하면서 가격이 더 뛰길 기다리는 편이 이득이었고, 은행 이자도 높으니 전세금 같은 목돈을 예치해두면 평균적으로 월세보다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한없이 계속될 리는 없죠. '전세 대란'이 최근 들어 대두한 사회적 문제인 듯 보이지만 사실 사실 고도성장기에도 전세 대란은 줄곧 있었습니다.

 

적정선을 훨씬 뛰어넘은 높은 전세가격 상승은 주택가격을 올리는 강력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을 이사철에 접어들면서 오르기 시작한 전세가격은 물건이 달리면서 더욱 뛰어 서울 잠실지역주택공사 아파트 7.5평형의 경우 전세 가격이 550만~600만원으로 주택가격 660만~700만원의 85%선까지 올랐다.

 

언뜻보면 마치 최근의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이는 무려 33년 전인 1982년 10월 4일자 《경향신문》 기사의 내용입니다. 역세권 건물주들이 전세를 사글세로 돌리고 월세를 올리는 등 집 가진 자의 힘 행사와 집 없는 자가 설움을 겪는 사황은 수십 년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 보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전세,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로 초저금리 시대에 돌입한 우리나라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 있어 전세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선 집값이 하락하니 목돈인 전세금으로 다른 건물을 매입하기 꺼려지는 측면이 있고, 금리가 바닥을 치다보니 전세금에 의한 이자보다는 안정적인 월세를 챙리려고 합니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 예상되니 당장 집을 사기보다는 원금을 보존할 수 있는 전세를 더 찾게 됩니다. 한마디로 전세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완전히 역전되어 지금 같은 전세 대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빚어지는 겁니다. 

 

출처 - 경향신문

 

특히 올 3월 들어 서울 아파트 전세값은 사상 최대 폭으로 폭등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세 대란에 시달리던 서민들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집을 구매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파트를 포기하고 급등한 전세값으로 살 수 있는 연립 다세대, 단독 주택 매입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군요.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활성화라는 자화자찬과 달리 서민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집을 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집을 가진 쪽이나 집을 구하는 쪽이나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극에 달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인구가 줄고 있으니 집값이 예전처럼 오르기를 기대하기 어렵고, 금리 역시 오르기를 기대하기란 사실상 어렵습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특유의 전세 방식은 자연스레 월세 방식으로 바뀌게 될 전망입니다. 이런 혼란기를 타개하기 위한 전세 대책과 더욱 근본적인 부동산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실상 박근혜 정부는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미래 세대들은 현재의 전세 대란을 어떤 역사적 사실로 마주하게 될까요? 《외딴방》을 읽을 미국 독자들처럼 전세라는 제도를 낯선 제도로 이해하게 될 시절이 멀지 않았습니다.


지난 25일 세종시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이후 27일 경기도 화성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또 발생해 사회적 충격을 안겼습니다.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 주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2007년 4월 16일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 대학교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 그리고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했던 《샤를리 에브도》 총기난사 테러에 이르기까지 총기난사 테러는 외국에서나 벌어지는 참사로 생각해왔기에 국내에서 연이어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우리나라는 미국 등 서구권과 달리 민간인이 총기를 접할 기회가 거의 없고, 이에 대한 법률도 엄격한 편이라 여태껏 총기 사고는 군대 내에서 일어나거나 탈영병에 의해 자행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2012년 서산 총기난사 사건과 이번 세종시 편의점 총기난사 사건, 경기도 화성의 총기난사 사건까지 민간에서 발생하는 사례가 잦아져 사회적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출처 – 경인일보



서산, 세종시, 화성 모두 엽총 난사


2012년 충남 서산 농공단지 한 공장에서 일어난 총기 난사 사건으로 공장 직원 중 1명이 숨지고 2명이 중태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범인은 그 공장에서 일한 적이 있는 성 모 씨였는데요. 당시 쉬고 있던 공장 직원 6명에게 50발을 난사하고 차량으로 도주하며 추격하던 경찰한테도 총격을 가했다고 합니다. 범인은 경찰에 잡히기 직전 음독해서 자살했는데 차량 안에서 258발이나 되는 총탄이 발견되어 자칫 더 큰 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가 범행에 쓴 총은 수렵용으로 산 엽총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15년 2월 25일에 발생한 세종시 편의점 총기 난사 사건으로는 3명이 숨졌습니다. 범인 강 모 씨는 편의점 주인의 전 동거남이었는데요, 1년 6개월 전 헤어지면서 편의점 투자 지분을 놓고 갈등이 심각했다고 합니다. 돈 문제와 원한 관계가 얽힌 겁니다. 이 때문에 범인은 편의점 앞에 있던 동거녀의 아버지와 오빠 등 가족 3명을 쏘아 죽이고 편의점에 불을 지르고 달아나 근처 강변에서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가 범행에 쓴 총 역시 수렵용으로 산 엽총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지난 27일 오전 경기도 화성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 역시 돈이 문제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70대 전 모 씨는 평소 형에게 돈을 달라고 자주 행패를 부렸다고 합니다. 그는 결국 형과 형수를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총소리를 들은 숨진 전 씨의 며느리가 2층에서 탈출해 112에 신고를 했으나 전 모 씨는 현장에 도착한 남양파출소 이강석 소장과 이 모 순경에게 들어오지 말라며 경고사격을 했습니다. 하지만 전 씨를 설득하러 집 안으로 들어가려던 이강석 소장은 전 씨가 쏜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 역시 사냥용 엽총이 사용되었습니다. 


총기 단속해도 사용 시에는 현실적으로 막기 힘들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 비하면 총기 소유 자체에 대한 제재나 관리가 엄격한 편이고, 제조부터 판매까지 규제가 잘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의 총포, 도검, 화약류 등의 단속법은 총포를 권총, 소총부터 금속 탄알과 가스 등으로 쏠 수 있는 장약 총포, 공기총은 물론 총 포신, 기관부 등 부품까지 광범위하게 포함시켜, 직접 쏠 수 없는 총의 부품이라 할지라도 총 전체와 마찬가지로 제조, 판매, 소지의 경우 국가의 허가를 받게끔 규정하고 있습니다. 

 

총기류를 부품 상태로 수입하거나 무허가로 제조하는 업소를 규제하려는 의도입니다. 또한 총포는 제조, 판매, 수출입 등 모든 과정에서 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제조소나 판매소도 경찰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며 판매소 위치나 구조, 시설, 심지어는 판매하는 총포 화약류의 종류를 바꿀 때에도 허가가 필요합니다. 수출입은 건마다 경찰청장의 허가가 있어야 하고 공공의 안전 유지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시 허가가 난 업체라도 수출입을 금지할 수 있습니다. 소지자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소지할 수 없게 되어 있어 사실상 법령과 규제 면에서 보자면 총포 관련된 장사는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어 보일 정도로 강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그럼에도 민간 영역에서 총기 사건, 사고와 밀반입 사건은 꾸준히 발생했습니다. 압수되는 불법 총기류 수도 과거보다 늘었습니다. 2014년 7월까지만 해도 3정의 실제 총기를 포함해 132정의 불법 총기류가 적발되는 등 밀반입 시도마저 계속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제는 총기류의 부실한 관리와 실제 사용 목적과 달리 사용되는 일을 규제하기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2012년 서산 총기난사 사건, 지난 2월에 발생한 세종시 총기난사 사건과 경기도 화성 총기난사 사건에 사용된 엽총은 모두 수렵용으로 등록된 것이었으나 범행에 사용되었죠. 현재 일반인이 구입해 경찰서에 보관했다가 수렵용으로 허가받아 꺼내 쓸 수 있는 엽총의 경우 3만 8000정 이상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수렵 기간에는 포획승인증, 수렵면허증 등이 있으면 총기를 쉽게 사용할 수 있어 늘 문제의 여지는 잠재해 있습니다. 이번 세종시 총기난사 사건의 범인인 강 모 씨도 공주 신관지구대에서 포획승인증과 수렵면허증을 제시하고 총을 찾아간 것으로 파악되었죠. 이처럼 수렵용으로 총을 사용하겠다고 받아간 다음 이를 사람을 죽이는 등의 범죄용으로 활용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현재로는 전무합니다. 이 때문에 수렵 기간에 총을 내준 뒤 실시간 연락 체계를 구축하는 등 수시로 총기류를 점검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방지책 마련이 줄곧 제기된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수렵 활동과 총기 소지 자체를 막지 않는 한, 수많은 총기 사용자의 동선을 일일이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민간의 총기를 통제한다고 해도 총기 난사 학살로 유명한 1982년 우범곤 사건같이 경찰관이 무기고에 있는 총기와 수류탄을 탈취할 경우 속수무책입니다. 우리나라는 성인 남성 대부분이 군 복무 경험이 있어 총기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런 총기 사건이 확대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로운 나라였다면 이미 망해도 백번은 망했을 거란 말이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만은 아닙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최근 일어난 민간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재산 관련 분쟁으로 국한하여 의미를 축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으로 분노가 많이 쌓여 있기에 다른 범죄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의 분노를 낮추는 일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책은 우리나라를 '분노사회'로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서산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공장 직원들에게 집단따돌림을 받았던 용의자의 울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추정이 있습니다. 또한 세종시 총기난사 사건과 화성의 총기난사 사건은 돈 문제와 원한 관계가 겹쳐진 문제였습니다. 작년에 22사단 지역에서 발생한 GOP 총기난사 사건을 포함해 군대 내 총기, 수류탄 사건도 따지고 보면 따돌림과 학대 등이 원인이 되어 내재한 울분을 이기지 못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총기 범죄가 드문 우리나라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자 살상력이 강한 수렵용 총기 관리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총기 규제 정책 자체는 엄격하다곤 하나 총기류 관리를 허술하게 방치하는 일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세종시 사건에서 드러났듯 경찰이 엽총 1정만 반출하도록 한 규정을 어기고 두 정을 내준 일도 있었으니까요.

 

화성 총기난사 사건의 경우 전 씨가 16~26일 사이에 12차례나 총의 입출고를 반복했으나 경찰은 아무런 의심 없이 총기를 반출해주었습니다. 70대 노령의 총기 소지자가 연휴를 제외한 7일 동안 6차례나 총을 출고했음에도 이에 대해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않았다고 하니 관리의 허술함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합니다.

 

또한 현행 법령은 화약 사용 분량을 규제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초과한 실탄을 사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총을 반출하면서 경찰이 실탄은 확인하지만 엽총탄의 경우 문제 삼지 않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그리고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화성 총기난사 사건 대응 과정에서 해당 지역 파출소장이 방탄복을 착용하지 않고 범인을 설득하다가 순직한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총기 사건에 필수적인 방탄복이 대간첩 작전이나 대테러 장비로 분류되어 있어 경찰에 지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에 한국총포협회 관계자는 실탄 종류에 따른 관리 규정을 강화하고 총기류의 추적이 가능하게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총기 소지자가 수렵장으로 향하는지 아니면 다른 곳으로 향하는지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촉해야 한다는 얘깁니다. 또한 폭력 성향으로 범죄 경력이 있는 이들이 총기를 소지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등 총기 소지 허가제를 더욱 엄격하게 운용하고 수렵 해제 기간에 총기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일 것입니다.

 

아울러 지난 28일 《한겨레》 신문 기사에서 표창원범죄과학연구소 소장인 표창원 씨가 화성 총기난사 사건에 대해 "가족 구성원 사이의 갈등이 심해지고 갈등 조정자가 없어지면서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한 내용에 귀를 기울여야 할 이유도 있습니다. 우리 사회 전반의 분노를 낮추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과 사회적인 안전망을 구축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데 정부와 지자체가 함께 노력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간통죄가 62년 만에 폐지되었습니다. 지난 2월 26일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간통죄를 위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국가가 법률로 간통을 처벌하는 일이 국민의 기본권인 성적 자기 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형법 241조인 간통죄 관련 조항은 즉시 효력을 잃었습니다. 이 때문에 위헌 결정 직후 콘돔 제조 회사의 주가가 치솟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사회 일각에선 가족 해체와 성적 문란 등을 걱정하기도 합니다. 간통죄에 대해 우리 사회는 시대별로 어떻게 인식했는지 그 궤적을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간통죄, 4번의 합헌 1번의 위헌


1953년에 제정된 간통죄는 형법 241조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간통한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법 조항입니다. 간통한 상대인 제3자도 같은 처벌을 받는다고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정해져 있어 꽤 엄중한 처벌인 셈이었죠. 한마디로 결혼했으면서 바람을 피운 자와 그 상대는 걸리기만 하면 국가가 나서서 감옥에 처넣겠다는 거였죠. 성적인 문제에 매우 엄격한 한국 사회다운 법률이었으며 처음에는 나름대로 순기능도 있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만 해도 대부분의 바람은 남자가 피우는 것이었고 돈이나 권력이 있으면 첩 한둘쯤은 거느리는 게 당연하다고까지 생각했으니, 그 당시에는 간통죄가 그나마 여성을 보호하고 가족제도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간통죄는 금방 악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간통죄 사례는 가족 유지나 여성 보호 기능보다 흥신소와 변호사 검찰 등의 주 수입원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심지어는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불법 흥신소를 소개해주는 식으로 간통죄 적발이 일종의 기업화되는 촌극까지 벌어졌습니다. 또한 역으로 간통죄를 빌미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괴롭히는 사례마저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와 함께 성적으로 개방되는 사회 분위기와 맞물려 간통죄는 개인의 권리를 국가가 침해하는 행위라는 인식이 대두하기 시작합니다. 변화된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고 악용되고 있으며 간통죄가 있다고 해서 간통이 실질적으로 줄어들지 않으니 그 법적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로 말미암아 1990년대 들어 간통죄가 위헌이라는 신청이 줄곧 제기되었습니다. 1990년 첫 헌법재판소 판정은 6 대 3으로 합헌 결정이었습니다. 합헌 다수 의견은 성도덕과 혼인제도, 가족생활, 부부 간 성적 성실의무 등을 위해 간통죄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때도 사회 상황과 국민 인식이 변화해 간통죄의 규범력이 약해졌음을 부정하지는 않았습니다. 위헌 소수 의견은 벌금형 없이 징역형만 둔 것은 지나친 처벌이며 사생활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판단이었습니다.


1993년 두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1990년 합헌 판정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변경할 사정이 없다고 본 겁니다.


2001년 세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8 대 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합헌 판정을 했습니다. 다만 합헌 다수 의견도 이 이후에는 간통죄 폐지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였고 개인의 내밀한 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건 부적절하며 협박이나 위자료 받기의 수단으로 간통죄가 악용되는 사례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형벌적 억지 기능마저 유명무실해져 가정이나 여성 보호에 대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회적 인식이 작용했습니다. 위헌 소수 의견은 간통은 윤리적 비난의 대상이지 국가가 개입해 형벌로 다스릴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2008년 네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은 처음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보다 많아졌습니다. 합헌 4, 헌법불합치 1, 위헌 4로 말이죠. 합헌, 위헌 의견 모두 이전 입장을 되풀이했지만 점점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가는 만큼 헌법재판관들의 의견 비율 또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2015년 다섯 번째 헌법재판소 판정에서 간통죄는 2 대 7로 위헌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로써 드디어 국가가 개인의 성 생활을 법으로 처벌하는 간통죄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프랑스는 224년 전 간통죄 폐지, 한국은 1992년부터 폐지 시도


간통죄는 성 문제에 엄격한 유교권과 이슬람권 등 극소수 국가에만 남아 있는 처벌 규정이었습니다. 이에 우리나라 법무부는 1992년 형법개정안에서 간통죄를 삭제해 세계 추세에 따라가려 했으나 실제 개정 때는 삭제안이 반영되지 못해 존속되었죠.

출처 - 연합뉴스


프랑스는 프랑스대혁명 때인 1791년에 간통죄가 폐지되었습니다. 한때 되살아났던 간통죄는 1975년 형법 개정 시 완전 폐지됩니다.


독일은 6개월 이하 징역에 처하는 간통죄가 있었으나 1969년 형법 개정에서 이를 삭제했습니다.


덴마크 1930년, 스웨덴 1937년, 노르웨이 1972년 등 세계적으로 간통죄는 폐지되고 있었습니다. 우간다 헌법재판소도 2007년 부인만 처벌하도록 한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죠.


같은 유교권 국가인 일본은 1947년에 간통죄를 폐지했으며, 중국 역시 협박을 동원해 현역 군인의 부인과 간통한 경우를 제외하고 단순 간통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폐지되었으니 이제 대만 정도만 간통죄를 인정하는 셈입니다.


간통죄 위헌에 따른 후속 조처 뒤따라야


간통죄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남에 따라 그동안 간통죄로 기소되었거나 사법처리된 이들에 대한 소급 적용 여부가 중요해졌습니다. 일단 간통죄로 처벌받았던 사람 모두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개정된 헌재법에 따라 합헌 결정 다음 날부터 소급 실효가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2008년 10월 31일부터 행해진 간통 행위는 죄가 되지 않으며 이미 처벌받은 사람은 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 수감되었거나 실형을 산 이들은 형사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은 5466명으로 예상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 합헌 결정 이후로 간통죄 실형 선고를 받은 사례가 거의 없고 구속 기소된 사람은 22명에 불과해 형사보상 대상은 아무리 많아야 수백 명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는군요. 

 

판결이 나와봐야 정확히 알 수 있겠으나 형사보상금은 구금 기간을 기준으로 하루당 많으면 20만 원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혹자의 걱정처럼 이번 간통죄 위헌 결정으로 갑자기 대한민국 사회가 성적으로 문란해지거나 국가 재정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거나 세상이 뒤집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합헌 결정이 있었던 2008년 10월 30일까지 간통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이들은 재심 청구 대상에 해당 되지 않으므로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될 수는 있습니다.

출처 - JTBC


간통죄 존치 입장이든 폐지 입장이든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간통죄가 폐지되어도 불륜은 죄가 됩니다. 간통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불륜을 장려하거나 바람 핀 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간통죄는 사라지더라도 일부일처제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히 혼인 상대에 대한 순결과 성실의 의무는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840조는 이혼 청구가 가능한 이유 중 하나로 배우자의 부정한 행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만일 간통을 하면 감옥에 가둔다고 해서 혼인 상대에 대한 순결과 성실의 의무를 지키고, 감옥에 안 가둔다고 해서 의무를 저버린다면 그 사회의 결혼제도는 의미를 상실한 게 아닐까요? 예전부터 간통죄의 문제점은 바람 핀 사람을 국가 권력이 잡아서 가뒀다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바람 핀 행위 자체는 간통죄가 폐지된다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위이며 민사소송 등을 통해 위자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법령 정비가 되지 않았지만 간통죄가 없어지면 민사소송을 통해 불륜을 저지른 당사자가 배우자에게 지급해야 할 위자료나 손해 배상액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간통죄가 없어져도 처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죠.

출처 - 경남신문


문제는 이런 법령 정비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는 이혼에 대해 바람 핀 책임자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는 유책주의(有責主義)를 택하고 있는데 간통죄가 폐지되면 자연스럽게 파탄주의(破綻主義)로 흐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파탄주의 원칙에 의하면 불륜을 저지를 정도면 이미 혼인관계는 파탄났다고 보고 누구든 이혼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지껏 유책주의를 택해 법이 나서서 최대한 결혼을 유지하게 만들려고 했지만 이제는 결혼관계가 파탄난 것 같으면 갈라설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지게 될 겁니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이미 그렇지요. 하지만 여기서 하나의 문제는 바람 핀 당사자가 재산을 빼돌린 뒤 이혼을 청구하는 적반하장의 사례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를 보완할 법적 조처가 필요합니다.

 

이제 간통죄 대신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혼인 파탄의 책임을 물어야 되는 만큼 손해배상액과 위자료 같은 금전적인 책임을 더 무겁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정말로 사회 윤리에 관심이 있다면 이에 대한 입법부터 서둘러 애먼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의 미래, 차라리 붕괴해버리고 새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청년이 다수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KBS) : http://news.kbs.co.kr/news/NewsList.do?SEARCH_MENU_CODE=0849&



KBS 박종훈의 대담한 경제에서 청년들의 충격적인 현 상황이 인용되었습니다. 지난 9일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이 주최한 '한국인은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란 토론회에서 20~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바라는 미래상이 무엇이냐'라는 설문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라고 응답한 청년은 23퍼센트에 불과한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이라고 답한 청년은 두 배에 가까운 42퍼센트나 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한들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니 모조리 붕괴해버리고 새로 시작하는 것 외에는 답이 안 보인다는 인식이 청년 대다수의 저변에 깔렸습니다. 살인적인 스펙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도 여태까지는 경쟁을 견뎌내기만 하면 언젠가 좋은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지만, 현실이 전혀 그렇지 못하기에 이제는 모든 걸 놓아버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이투데이


앞선 설문 결과를 두고 60대 이상의 기성세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분들은 고도성장기에 열심히 하기만 하면 적어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을 살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 이 땅의 청년들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성공회대 대학원 김연아 박사의 논문인 <비정규직의 직업이동 연구>에도 나왔듯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자녀가 자라서 또한 비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대물림되는 비정규직


부모가 비정규직이면 자녀도 비정규직일 가능성은 무려 77.78퍼센트, 정규직일 가능성은 21.6퍼센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정규직의 사정이 그리 나은 편도 아닙니다. 논문을 보면 부모가 정규직이어도 자녀가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67.8퍼센트, 정규직일 가능성은 27.4퍼센트였습니다. 이를 보면 한국 사회가 지위 이동의 기회가 균등하지 않고, 빈곤의 세습 구조가 이미 굳어졌이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부모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지금 같은 경제구조에서는 자녀가 정규직이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는 얘깁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지금과 같은 정책하에서 가면 갈수록 더 안 좋아질 겁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청년들의 고용 불안정성을 해소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하는데, 이명박근혜 정권의 기조는 한결같이 반대로 가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다면 2년 비정규직을 4년 비정규직으로 연장해주겠다는 이른바 '장그래법' 따위의 말을 내뱉을 리는 만무하니까요.

출처 - 경향신문


지금 세상에선 기성세대가 흔히 청년에게 요구하는 노력과 야망, 진취성 등을 갖춰야 한다는 현실 인식이야말로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가 되고 맙니다. 청년들의 비관적인 인식이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들은 사회 구조가 차라리 모조리 붕괴된 이후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아쉬운 위로일 뿐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나마 일본의 상황과 비교하면 우리 청년들은 새 출발에 대한 인식이라도 남아 있어 불행 중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포기하면 편해, 일본의 사토리 세대


고도성장기 때부터 이런 말이 있었죠. 일본의 현재는 한국의 10년 후다. 실제로 고령화 문제뿐 아니라 청년 문제에 있어서도 한국은 일본을 뒤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일본 청년들을 대표하는 말은 '사토리 세대'입니다.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는 그들은 고령화 위주의 정책 때문에 사회안전망에서도 소외되었고, 잃어버린 20년으로 인한 경기 불황 때문에 비정규 계약직으로 내몰려 철저한 빈곤층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경제력이 없다 보니 아무것도 탐내지 않는, 자신의 욕망마저 거세해버린 일종의 득도 상태에 내몰려 있습니다. 

 

일본 청년 세대의 연봉은 15년 새 4000만 원대에서 3000만 원대로 대폭 줄었으나 청년의 생활 만족도는 오히려 50퍼센트에서 70퍼센트로 올랐다고 합니다. 버블 경기 때 모두가 욕망에 가득 차 있을 때는 아무리 벌어도 공허하더니 이젠 사회, 경제 등 현실적인 문제로 욕망을 거세할 수밖에 없게 되니 오히려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는 기형적인 심리 상태에 다다른 겁니다.

출처 - JTBC


이렇다 보니 오히려 비상이 걸린 쪽은 정부와 기업입니다. 고령화로 점점 줄어드는 인구 구조, 청년층의 경제력 상실 같은 이유 때문이죠. 당장 일본 자동차 내수 산업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돈이 없는 청년들은 자동차를 사지도 않을 뿐더러 자동차를 몰고 싶다는 욕망마저 희박합니다. 실제로 20대 운전자 비중이 10여 년 새 반토막이 났습니다. 최근에는 운전면허조차 따지 않으려 해서 자동차 기업들이 운전면허를 따기를 권하는 캠페인성 광고까지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만혼을 넘어 일본 청년들이 연애와 결혼 자체에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비정규 계약직을 전전하다 보니 돈이 없어서 이성을 못 만나고,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혼자만의 소소한 즐거움에 천착해 초식남 수준을 넘어 절식남이 되었습니다. 실제 일본은 50세가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인구 비율이 30년 전에는 단 2.6퍼센트였으나 현재는 무려 20.1퍼센트로 8배가 증가했습니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결과이지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청년 세대의 암울한 현실 앞에서 일본 경제는 물론이고 나라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현재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6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 대비 64퍼센트 수준까지 떨어졌습니다. 신규 취업 청년 5명 중 1명은 1년 이하 단기 계약직이며, 이렇게 비정규직으로 시작한 청년 중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청년은 고작 11퍼센트에 불과합니다. 한국도 일본처럼 청년을 죽여서 기업을 먹여 살리는 구조로 가고 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청년층에 과감히 투자하고 그들을 구제할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합니다. 지난번 세계 금융위기로 위기에 봉착했던 그리스와 아이슬란드의 흥망성쇠를 보면 답은 자명합니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는 세계 금융위기 이전 저금리 시대에 무작정 돈을 끌어와 묻지마 투자로 단기적인 호황을 누렸으나 2008년 금융위기가 도래하자 순식간에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리스는 우리나라가 흔히 그랬듯 은행과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세금 재정을 모조리 끌어모아 퍼부었고 국민들의 복지를 절반 수준으로 삭감했습니다. 특히 청년층의 육아와 교육 예산은 최우선 삭감 대상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청년층은 졸지에 복지도 줄고 은행과 대기업의 빚마저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처지로 몰락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입니다. 그리스는 –3.3퍼센트의 최악의 경기침체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현재 유로존 탈퇴라는 도박을 걸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나라 경제가 피폐해졌습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아이슬란드도 처음에는 부실 대기업과 은행을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 투입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국민들은 집에서 가지고 나온 냄비와 솥을 두드리며 시위를 벌였습니다. 부실 대기업과 은행은 자기들의 탐욕으로 묻지마 투기를 하다 그렇게 된 것이니 그들 스스로 책임지도록 그냥 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책임함을 국민의 세금으로 갚아준다면 이는 미래 세대인 청년들을 죽이는 일이고 나아가 나라를 죽이는 일이라고요. 정부는 IMF 원조를 못 받을 수 있다며 국민을 협박했지만 국민들은 청년 세대의 미래를 빚더미로 몰아넣느니 차라리 그편이 더 낫다고 했습니다.

 

결국 성난 민심에 총리가 물러나고 부실 은행과 대기업, 연루된 정치가 등 90여 명이 금융위기의 책임을 물어 기소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경제위기에 오히려 청년과 복지를 대폭 확대합니다. 이로써 사회보장 지출이 금융위기 전보다 36퍼센트나 늘어났습니다. 예산은 법인세와 부유세로 충당했습니다. 이렇게 강화된 사회안전망 덕분에 아이슬란드 청년들은 직업훈련과 재취업의 기회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고, 그 활력이 아이슬란드 경제 자체를 일으키는 기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현재 아이슬란드는 유럽 평균을 뛰어넘는 3.5퍼센트라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는 반면 실업률은 절반인 4.9퍼센트로 저조합니다.


그리스와 아이슬란드는 똑같은 위기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기업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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