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MBC에서 <개천에서 용 찾기>라는 제목으로 짧은 다큐멘터리를 방영했습니다.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우리 부모님 세대는 가난의 대물림을 끊으려고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공부시켰습니다. 그 시절 가난하게 살기 싫다던 청춘들이 공부 혹은 사업으로 자수성가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라며 본보기로 삼고, 그들처럼 성공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20세기를 지나 어느새 21세기에 접어들었습니다. 보릿고개를 걱정하던 한국은 OECD 회원국이 되었고, 얼마 전에는 G20 의장국이 될 정도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지금도 가난이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너무 변해버린 걸까요? 이제는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무한경쟁'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을 다시금 들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났다는데...

1950년대 이전에 한국은 어수선한 해방정국을 맞이합니다. 사회는 좌와 우로 나뉘어 대립했으며, 깊게 팬 이념 갈등으로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마저 경험합니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전국은 초토화되었습니다. 기간시설이 모두 파괴되었으며 전쟁고아와 과부가 넘쳐났습니다.

한국전쟁으로 큰 시련을 겪은 한국은 1960~1970년대를 거치며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수출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으로 외화를 벌어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급성장에 따른 폐해도 뒤따랐습니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는 풍토가 조성되고,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독재정권은 폭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며 공포를 조장했습니다.

부모의 희생, 1960~70년대 어려운 시절, 가난,개천에서 용난다

어려운 시절,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희생으로 용이 나오는 일은 적지 않았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학업에 힘을 쏟아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과 사업에 뛰어들어 자수성가하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1974년 사법시험을 통과하여 변호사가 되었다가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이 된 고 노무현 대통령도 그중에 한 사람이죠.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 개천에서 용난다, 서울대 수석합격

1980년대 학업 신화. 여러움 속에서 공부에 매진함으로 영광을 누린 사람들의 미담이 뉴스에 곧잘 소개되곤 했다.


이후 1980년대에도 신화는 이어집니다. 학생들은 사법고시생의 합격수기, 명문대 입학수기(특히 서울대)를 읽고 희망을 키웠습니다. 그 때문인지 사법고시 합격자 발표일이나 대학입시 합격자 발표일이면 뉴스에선 '개천에서 용이 된' 사람들을 찾아 보도하곤 했습니다. 과외를 받지 않고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서울대에 수석 합격했다는 신화가 해마다 이어졌지요.

신화의 파괴, 개천에선 사라진 용 전설

시간은 흘러 21세기가 되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 G20 의장국으로 행사를 치를 정도로 한국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경제 대국이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이죠. 세계는 한류에 열광하고,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한국을 배운다는 명목으로 많은 산업 연수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언제부턴가 경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잘 포착한 방송사는 너도나도 경쟁 구도의 프로그램을 양산하며 인기를 구가합니다.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프로젝트 런어웨이> <나는 가수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사람들은 치열한 경쟁을 즐깁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까닭은 과거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신화가 사회 속에서 그 의미를 잃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비주류 경제학자인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들의 성장 신화 속에 숨겨진 은밀한 역사를 분석하고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책을 저술합니다. 선진국들이 현재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강요하는 정책과 제도가 과거 자신들의 경제 발전 과정에서 채택했던 정책이나 제도와는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지, 따라서 후진국들에 대한 그들의 '설교'가 얼마나 위선적인 경우가 잦은지를 보여줍니다. 

국가 간의 상황만 그런 게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서 먼저 상류 사회로 올라간 이들은 뒤따르는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습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진 이유에는 동일한 출발점이 사라져버린 사회적 배경이 깔려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나기 힘든 사회, 불평등한 사회구조

개천에서 용 나는 신화가 사라졌다. 출발선이 달라진 사회구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과외를 받지 않고 자력으로 명문대에 합격하는 '학력 신화'가 깨진 원인은, 소위 스카이(SKY)라고 부르는 대학 입학생들의 대부분이 부모의 재력을 바탕으로 공부한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라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같은 출발선에서 공부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선행 교육을 받고 출발하는 부잣집 아이와 과외는 고사하고 밥걱정을 해야 하는 학생 사이에 경제적 간격이 너무나 커져 버렸습니다. 
 
동일한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바람직한 경쟁은 발전을 이끌 수 있지만, 엄청난 차이를 시작점으로 하는 불평등한 경쟁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하며 희망 없는 사회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는 곧 발전과는 거리가 먼, 사회적 정체와 양극화를 촉발합니다.

개천에서 다시 용이 나게 하려면

예전처럼 빈번하진 않지만 아주 드물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을 볼 수 있습니다. 예전보다 사회적 경쟁은 더 심해지고 출발점마저 완벽히 달라진 사회에서 여전히 '용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라서 그런 일을 해낸 걸까요? 찬찬히 살펴보면 그들이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 찾기> 다큐멘터리는 돈이 없어서 친구 집을 전전하며 학교를 다녀야 했던 어떤 학생의 상황을 전합니다. 그 학생은 선생님의 도움으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주거가 안정되자 학생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서울의 명문대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에서 우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출발선이 확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애초에 출발선에서 뒤처졌던 학생들이 그나마 다른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으로 옮겨올 수 있었던 것이죠.

주변의 도움, 사회적기업, 도움을 받아 용이 된 학생들

주변에서 도움을 받아 보통 학생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노력하여 '용'이 된 학생들.


생각비행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동력으로 '사회적기업'에 주목해왔습니다. 지난번에 소개해 드렸던 '대안공간'이나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에서 소개한 일본의 대표적인 사회적기업 프로젝트인 '토키와장'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싶습니다. 상업성에 연연하지 않고, 신인작가에게 갤러리와 작업공간을 무상으로 빌려주어 기성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대안공간. 신인 만화작가들을 위해 작업 및 주거 공간을 빌려주고, 그들의 활동을 코치해주고 출판계와 다리를 놓아주는 토키와장 프로젝트. 이 두 사례는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뒤처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정상적인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발판으로서 훌륭한 역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시골의사' 박경철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적 기회를 공정하게 만들어야 교육이 바뀐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지 않은 채, 경쟁만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쟁구도 속에서 교육받은 학생들은 사회에 나와 또다시 경쟁하고, '공정한 기회'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못합니다. 배려 없이, 경쟁만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 하는 사회에선 비극이 끊이지 않는 법입니다. 얼마 전에 일어난 카이스트 연쇄 자살 사태는 과도한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비극적인 결말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다시 '개천에서 용이 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모두의 출발점을 똑같게 해주면 됩니다. 예전처럼 모두 가난해지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자는 얘기도 아닙니다. 있는 사람이 먼저 십시일반하는 마음으로 약자를 돕고 배려하는 문화를 형성하자는 의도입니다. 정부가 먼저 그런 역할을 주도하고, 민간에선 사회적기업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습니다. 

사회에 경쟁이 사라지긴 어렵더라도 몸과 마음을 피폐하게 하는 무지막지한 경쟁이 아니라 각자가 갖춘 능력을 공평한 잣대로 잴 수 있도록 사회적 바탕을 재조절하자는 얘기입니다.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돌아보며 함께 가는 길을 모색하자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신화의 모델을 만드는 일은 결국 우리의 몫이 아닐까요?




2010년 11월 11일. 누군가에게는 G20, 누군가에게는 빼빼로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농업인의 날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차게 일어서 직립하라는 뜻을 담은 지체장애인의 날.

일반적으로 빼빼로데이로 널리 알려진 이날,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강철 같은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던 여성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솔로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_^;;;;;;;;

'철의 여인'이라고 하면 '강한 의지를 품은 여성'에게 붙이는 별명이지만, 여성 국가원수를 비롯해 어떤 권력의 정점에 올라간 여성들을 지칭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인디라 간디

우선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인디라 간디가 있습니다.

이름에 간디가 들어가지만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입니다. 자와할랄 네루라고 하면 《세계사 편력이란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 책은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하다가 여섯 번째로 투옥당했을 때 딸이 서구 편협한 역사관에 갇힐까 염려해 보낸 편지에서 비롯되었죠. 인디라 간디는 아버지에게서 그 편지를 받아보며 역사의식을 키운 《세계사 편력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을 수호했지만, 자국 내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여 6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는 무자비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암살 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도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의 여인이라고 할 만하지요.



낙천적 독립투사 - 골다 메이어

두번째 철의 여인은 인디라 간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입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정치인 중 한 명이며,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에는 수류탄을 속옷에 숨겨 가지고 다니며 국경을 넘는 임무도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성격은 낙천적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살해 당하자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 그 테러 관련자들을 조건없이 모조리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후에 중동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책임 논란이 일며 결국 5년만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스라엘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불관용과 비타협의 시대를 무력으로 돌파한 철의 여인이지요.


가장 널리 알려진 철의 여인 - 마거릿 대처

세 번째 철의 여인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입니다.

과감하게 시장주의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경제 정책은 훗날 경제 호황을 가져온 밑바탕이 되었다고 인정받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영국병을 근본부터 고친 게 아니라 '대처리즘'이라고 이름 붙은 진통제를 놓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 탓으로 노동자들은 진압당했으며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그 시절 대처리즘의 극우성을 통렬히 꼬집었다고 하네요. '철의 여인'이란 별명도 그런 반공주의 때문에 소련에 의해 붙여졌다는 듯.

음, 분명히 이분들 역시 철의 여인들이지만 좀 아쉽군요. 정치란 권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둡고 위압적인 면이 조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밑에서부터 싸워 이겨낸 여성은 없을까요?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미 여성참정권 운동의 어머니 - 수전 앤서니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872년의 11월. 미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에 로체스터의 한 투표소에 여인들이 몰려듭니다. 여성도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항의하는 시위였죠. 시위대의 맨 앞에 많은 여성을 이끌고 온 수전 앤서니가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여성의 몸으로 투표하겠다는 건 명백한 불법행위. 수전은 재판에 회부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수전은 그 벌금의 납부를 거부하고 더더욱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요.

기소된 후 수전은 미국 전역을 돌며 <여성도 사람입니까?>라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이 연설은 영어권의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는군요.

수전은 여성참정권운동 이전에도 금주, 노예제 폐지 등 사회개혁운동 전반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만, 결국 살아생전에는 미합중국 최고재판소로부터 여성투표의 합법성을 거부당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이런 노력은 사후에 결실을 보아 1920년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수정헌법 19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며 '수전 앤서니 수정헌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강철 같은 의지를 품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 대표적인 여성은 없을까요? 골리앗과 싸워 이겨낸 다윗처럼 말입니다.


석유재벌 록펠러와 싸워 이긴 여성 저널리스트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바로 그런 여성이 존재합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여성 저널리스트로서 미국의 진보시대에 유력한 지도자이자 언론인이었죠.

당시 미국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곳은 존 D.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한 회사였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은 동일산업 부문에서 자본의 결합을 축(軸)으로 한 독점적 기업결합. 즉 경쟁자를 없애려고 같은 업종의 기업을 합병하여 독점하는 방식인 '트러스트'와 각종 획책과 로비를 더해 미국 정유업계의 공룡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반독점법이 부활하게 되고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섭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오랜 탐사 끝에 《매클루어 매거진의 연재 기사를 통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비열한 수법들을 낱낱이 폭로합니다. 날 선 비판을 담은 기사는 훗날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합니다.  탐사보도폭로라는 언론의 무기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도 바로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아이다 타벨의 폭로기사를 근거로 소송이 진행되고, 1911년 연방대법원은 석유재벌이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수십 개의 작은 회사로 해체하라고 판결합니다. 루스벨트가 대기업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부활시킨 반독점법이 이제는 독점재벌을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연방정부가 이렇게 각종 트러스트를 규제할 수 있도록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었습니다. 정말 현실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참조 포스트 : 미국의 반(反)독점법에 대해 아시나요?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폭로기사를 정리한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는 《뉴욕 타임스에서 선정한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100개의 보도 가운데 5번째로 꼽혔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워터게이트 사건을 포함해 수없이 많은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보도 중 5번째로 꼽힌 보도를 살아생전에 해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력에 존경으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늦가을,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강철같은 의지와 행동력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낸 철의 여인들의 삶을 되돌아 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_^
©Marvel Enterprises/Universal Pictures. All rights reserved

깊이를 알 수 없는 연기파 배우 에드워드 노튼이 주인공인 브루스 배너(헐크 역)를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The Incredible Hulk>. 영화에서 군대는 헐크를 저지하기 위해 음향 대포를 쏘는 신병기를 투입합니다. 헐크도 처음에는 신병기에 고전합니다. 하지만 분노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헐크 앞에 결국 신병기도 한낱 고철이 되어 버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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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 헐크>에서 헐크가 싸우는 상대는 어보미네이션Abomination. 모든 걸 힘으로 밀어붙이는 호전적 군인이 되기로 자처한 괴물입니다. 원형인 '어보미네이트Abominate'는 '증오하다, 혐오하다'란 뜻입니다. 그러니 분노한 거인과 증오로 똘똘 뭉친 괴물이 격돌하는 셈입니다. 그들의 싸움에 도시는 남아나질 않지요.

원래 헐크는 나약한 과학자 브루스 배너입니다. 그는 실험 중 실수로 감마선에 노출된 이후로부터 분노를 통제할 수 없게 되면 믿을 수 없는 괴력을 내는 거인 헐크로 변신합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는 가만있는데 먼저 화를 내진 않습니다. 헐크의 잠재력을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 힘을 이용하려는 군인정부가 집요하게 괴롭히며 뒤쫓기 때문에 참다 참다 분노가 폭발하는 거죠.

사실 헐크는 유명한 히어로 무비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등과 세계관을 공유하는 마블 코믹스의 만화를 원작으로 합니다. 헐크로 변신하기 전 브루스 배너는 가장 빈민층에 속하는 나약하고 불쌍한 캐릭터입니다. 하지만 일단 분노하고 나면 재벌인 아이언맨이 떼로 덤벼들어도 막지 못할 만큼 괴력을 발휘합니다. 이른바 빈자의 분노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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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고막 터지는 '음향 대포' 사용키로 - G20 시위대 해산 위해 '고무탄' 사용도 허가
(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67725, 뷰스앤뉴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경찰은 시위대 해산을 목적으로 고막이 터질 수도 있는 음향 대포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고무탄을 사용하겠다고 합니다.

대화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기에 앞서 시민을 상대로 이런 무기까지 사용하려는 경찰을 보며 과연 어디까지 시민의 분노를 시험할 셈인가 싶었어요. 시민 한 명 한 명은 나약해서 도망 다니기 바쁘지만, 일단 한번 분노하면 헐크 같은 괴력을 낸다는 걸 이미 청와대 뒷산에 서서 확인한 바 있을 텐데, 또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하다니 참 안타깝습니다.

정말 친서민적인 대화를 할 의지가 있다면 시민의 어려움과 불만을 먼저 들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서울 한복판에서 헐크를 찍는 일은 없겠죠.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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