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이변은 없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은 압승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대패했습니다. 작은 당들은 희비가 엇갈렸죠. 이번 6.13 지방선거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투표율인 60.2%로 23년 만에 60%를 돌파했습니다. 선관위는 투표율 상승 요인을 촛불시위에서부터 이어진 국민의 높은 정치 참여 의식과 결기에서 찾는 한편 투표 편의성을 개선한 사전투표 제도가 높은 투표율을 견인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6.13 지방선거로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역 구도를 깨뜨리며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이 되었습니다. 수도권과 호남은 물론 대구, 경북을 제외하면 보수 성향이 강해 민주당 후보가 단 한 번도 승리한 적 없는 부산, 울산 시장과 경남 지사에 당선자를 냈습니다. 이른바 안보 벨트라는 포천, 양구 등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약진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도 처음으로 민주당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판문점에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북미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평화의 기대감이 뿌리 깊은 지역 정서를 덮은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화를 자초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고 개헌과 남북미 평화 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될까 말까 했을 텐데, 홍준표 대표를 필두로 막말 공세를 하며 평화 무드를 폄훼하기까지 한 결과 자유한국당을 지지했을 법한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대구, 경북이 그나마 자유한국당의 심장을 뛰게 할 제세동기 역할을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지금으로서는 패배 정도가 아니라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수감된 박근혜는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를 거부했고 이명박은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거소 투표를 했다곤 하지만 이제는 이들에게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힘도 영향력도 남아 있질 않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또 다른 보수 야당인 바른미래당도 초토화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으나 압도적인 차이로 2등도 아닌 3등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바른미래당 후보들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대표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안철수는 정계 은퇴의 갈림길에서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 기초단체 5곳을 건졌으니 그나마 선전한 편이지만 원래 목표였던 8곳에는 미달한 셈입니다. 원인은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은 기초단체장을 내지는 못했지만 정의당 출신의 첫 서울시 의원이 나왔습니다. 서울, 경기 정당 득표에서는 10%대의 개가를 올렸죠.


출처 - 연합뉴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관전 포인트로 말씀드렸던 녹색당은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냈습니다. '페미니스트 시장'이란 슬로건을 내건 신지예 후보는 정의당 후보를 앞지르며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했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수십 차례 벽보가 훼손되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셈입니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오늘 낙선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페미니스트 정치의 시작점은 제로가 아니라 1.7%이기 때문"이라며 "2018년 지방선거는 페미니즘 정치의 용감한 첫걸음이다.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다. 뜨거운 연대의 정신이 차별을 무너뜨릴 것이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MBC와의 인터뷰에서는 "우리 사회가 성 평등하게 더 평등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한 것 같아 기쁩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출처 - 페이스북

 

한국 YMCA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주최한 '만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모의투표' 결과 신지예 후보는 접전 끝에 박원순 후보를 누르고 1위로 당선되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모의투표는 선거권 하향조정 운동의 일환으로, 만 19세 미만 청소년 4만 5765명이 참가했습니다. 사전투표 기간이었던 6월 8~9일 양일간 11개 지역 전국 14개 지역소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고 하죠. 진짜 투표를 할 나이를 앞둔 청소년 4만 5000여 명 사이에서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1위를 한 결과를 보면, 녹색당이 걸어온 길과 페미니즘이라는 시대 정신이 대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편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가 된 원희룡 당선인과 민주당 문대림 후보의 뒤를 이어 득표율 3.53%로 3위를 한 녹색당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의 약진 또한 두드러진 성과였습니다. 고 후보는 "녹색당과 고은영은 선거를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제주도에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는 건강한 정치세력으로 남겠다"며 "제주녹색당과 고은영은 민주당이 장악한 도의회와 다시금 도정을 장악한 원희룡 도정을 감시하고 견제하겠다. 투명하고 소통하는 도의회와 도정을 만들기 위해 비록 원외 정당이지만 녹색당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출처 – MBC 유튜브


올해도 유권자의 한 표가 후보의 당락을 바꾸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드루킹 사건 등으로 유명세를 치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는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와 경남지사 선거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접전을 펼쳤습니다. 출구조사 결과는 김경수 후보의 압승으로 예측됐는데 실제 개표에서는 자정이 될 때까지 김태호 후보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몇몇 방송사에서는 김태호 후보에게 당선이 확실하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자정을 넘기고 개표율이 절반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김경수 후보가 역전하면서 경남지사로 최종 당선되었죠.

출처 - 다음


한편 이보다 더한 접전을 벌인 후보도 있었습니다.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른 평창 군수 선거였습니다. 개표율이 90%에 이르도록 자유한국당의 심재국 후보가 미세한 차로 앞서 나갔으나 개표가 완료되자 불과 24표 차로 더불어민주당의 한왕기 후보가 평창군수로 당선된 겁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고의 접전이 벌어진 지역이었죠.


출처 - 네이버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드루킹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자와 각종 스캔들에 시달렸던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자도 이제 자신들을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역대급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도 자만은 금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이지 더불어민주당 자체의 호감도로 승리한 선거가 아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만하다 민생을 살피지 못하면 다음 총선 때는 과거 열린우리당 꼴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구태의연한 수구와는 결별할 시간이며 평화를 위한 진보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으로 안보장사가 먹히지 않았고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협치보다 타 정당의 발목 잡기로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민심이 표출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은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요 민심의 발로입니다. 이제는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선택이 사표가 되지 않고 의석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연령을 낮추고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구제 개편이 시급하다는 소수정당들의 공통된 호소에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동시 투표가 최종적으로 무산되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뿐 아니라 안철수, 홍준표 등 모든 대선 후보가 자신의 가장 큰 공약으로 내세웠던 개헌이 말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4일 청와대 주재 국무회의에서 국민투표법이 원래 기간 안에 결정되지 않아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가 무산되고 말았다며, 이번 지방선거 때 개헌을 하겠다고 국민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며 매우 유감스럽고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동시 실시 무산에 대한 내용은 문재인 대통령의 SNS에도 정리된 형태로 올라왔습니다.


출처 – 문재인 트위터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 실시가 무산된 이유는 국회의 방치 때문입니다. 6.13 지방선거와 개헌 동시투표 준비를 위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한 시한인 4월 23일까지 국민투표법 개정안 처리가 되었어야 합니다. 2014년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현행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치를 수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절대 개헌저지선을 확보한 자유한국당이 반대 입장이고 두루킹 사건으로 여야 대치가 심화되면서 국회는 사실상 혼수 상태에 빠졌습니다. 이 때문에 1987년 이후 31년 만에 개헌을 이룰 호기를 놓친 셈이 되었죠.


출처 -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드물게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국민의 뜻을 모아 대통령이 발의한 헌법개정안을 국회가 심의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대선 당시 각 당의 대선 후보였고 지금은 당의 지도부인 사람들이 앞다퉈서 개헌을 약속했다가 이제 와 없던 일처럼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게다가 법을 만들 의무와 권리가 있는 국회가 위헌 판결을 받은 국민투표법을 3년이 넘도록 방치하고 있다는 것도 상식 밖의 일입니다.


출처 - 문화일보


당의 입장에 따라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대해 불만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수정 사항을 가지고 토론을 하던가 국회안을 자체적으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그게 상식적인 국회의 모습이겠죠.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이번 국회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논의하여 국민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의무라면 국민이 개헌안에 접근할 기회조차 막은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 아닐까요? 자유한국당이 그렇게도 두둔하는 대기업 지도부가 자기 할 일을 방치하고 다른 일을 일삼는다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한중일 개헌 삼국지 – 어떤 나라 꿈꾸나? : http://ideas0419.com/820


생각비행에서 이미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 대통령 개헌안은 헌법 전문부터 많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6월 항쟁으로 이뤄진 개헌 이후 30년 동안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국민만을 주체로 한 기본권 조항은 외국인 200만 명 시대에 뒤처졌다는 지적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성평등과 환경, 안전 등등 다양한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성인이 되어 성인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30년 전 청소년의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꼴입니다. 특히 이번 개헌안은 박근혜를 탄핵하고 촛불혁명이 내포한 정치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큰 시기였는데 적절한 기회를 이렇게 흘려보내고 맙니다.


출처 - 연합뉴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3당은 개헌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야3당은 공동 입장문을 통해 "촛불 혁명을 완성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시작된 개헌 기회가 거대 양당의 정쟁에 가로막혀 좌초 위기에 처했다"며 "이른 시일 내에 국회 주도의 개헌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국회에서의 개헌 논의가 다시 논의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합니다. 야권에서는 9월 개헌론을 이야기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설이 나오는 가운데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 모두 조기 전당대회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아 정상적 개헌 논의가 이어지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죠.

 

자유한국당이 그간 국회를 공회전시킨 이유는 뻔합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6월 지방선거, 그후 총선까지 지금 이대로라면 자기네 밥줄이 끊어지게 생겼으니 뭐든지 물고 늘어지려는 겁니다. 지난 3월 7일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5당 대표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4월 말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합의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정상회담 장소를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북한이 먼저 제안했다고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대표단 방북에 대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6월 지방선거용 아니냐며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구시대적 안보 프레임으로 평화적인 남북관계의 여정에 흠집을 내려는 의도였습니다. 대통령 발의 개헌안을 보이콧했던 것도 자기네에게 불리한 국면을 피해보겠다는 심산이었죠. 하지만 촛불혁명을 이뤄낸 국민이 얕은 홍 대표의 생각을 모를 리 있겠습니까?

 

 

출처 - 국민일보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전 '4월 전쟁설'을 운운하던 자유한국당의 예측과 루머가 무색하게 북한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습니다. 그 결과 남북 정상이 4월 27일 2018밀리미터 크기의 탁자 앞에 마주 앉게 되었습니다. 2018년 두 정상 간 거리를 탁자의 크기로 상징한 것이죠. 자유한국당의 발악이 무색하게 남북화해의 분위기는 이미 국민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평화는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행보의 결과입니다. 개헌을 향한 뜻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움직여야 합니다. 역사적인 개헌을 가로막기 위해 국회를 공회전시킨 주범과 당을 심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을 탄생시켰던 주구인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이 더 이상 없다는 걸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분명히 보여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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