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개하다"와 "미안하다"

 

"미개하다"와 "미안하다", 지난 6.4 지방 선거를 뜨겁게 달궜던 단어입니다. 당시 서울 시장 후보였던 정몽준의 막내아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국민을 향해 미개하다는 망언을 하여 아버지의 낙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발언이 언론에 오르내리자 당황하며 즉각 사과했지만 이미 민심은 떠나버린 후였습니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고승덕 후보 역시 페이스북을 통한 딸의 폭로로 여론조사 1위에서 지지율이 급락하는 곤경에 처했습니다. 사태가 다급하게 돌아가자 선거 유세 마지막 날 고 후보는 거리를 돌아다니며 자신이 버린 딸을 향해 미안하다고 소리쳤습니다. 이 장면은 아직도 인터넷과 개그 소재로 패러디되고 있습니다.

출처 – YTN/뉴스1


이에 반해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후보는, 아들이 다음 아고라에 올린 진심을 담은 글 덕분에 후보로서 공약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극적으로 당선의 기쁨까지 누리게 되었죠. 물론 선거 이후 나온 통계 자료에 의하면 사전투표 결과에서 조 후보가 1위를 차지하긴 했습니다만, 조 후보의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이 유권자의 마음을 뒤흔든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선거판을 뒤흔드는 후보자 자녀들의 선거 지원

 

이 밖에도 강원도지사 후보였던 최문순의 딸들이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서기도 하는 등, 지난 지방선거는 유난히 후보자 자녀들의 행동이 두드러졌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사회관계망서비스의 급속한 확산과 더불어 올해 선거에서 각 후보의 가족 및 자녀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흔드는 주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과거에는 후보자의 가족이 명함을 돌리는 정도로 소극적으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후보자의 자녀들이 자신들에게 익숙한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후보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은 7월 30일에 있을 재보궐 선거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서울 동작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진보 후보 단일화를 위해 자진 사퇴한 기동민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아들 기대명 군이 한동안 화제였습니다. 인기 배우를 닮은 매력적인 외모와 훤칠한 키로 아버지의 유세장에 등장해 유권자의 표심을 끌었기 때문입니다. 무더위에 아랑곳없이 선거운동을 펼쳤던 기대명 군은 '효도유세'라는 유행어를 남겼습니다.

 

출처 - 트위터


이번 7.30 재보궐 선거의 가족 지원에서 가장 돋보이는 이는 경기도 수원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박광온 후보의 딸입니다. 박광온 후보는 여론조사상 같은 지역구 후보로 나온 정의당 천호선 후보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6일 박 후보의 딸이 <SNS로 효도라는 것을 해보자(@snsrohyodo )>라는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서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일명 랜선효녀라고 알려진 이 트위터 계정의 특이한 점은 박광온 후보의 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시점에서 사실상 실명 후원과 다름이 없는데도 그 운영이 익명의 트잉여(트위터만 하는 잉여)가 하는 것과 다름없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가감 없이 툭툭 던지는 일상어 말투, 후보로 나선 아버지를 지원하는 건지 '디스'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절묘한 문장 구사 등으로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식의 선거 지원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새로움에 큰 흥미를 느끼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 트위터


슈퍼불효녀를 자칭하면서도 트위터를 통해 아버지를 홍보하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효도로 시작한 랜선효녀의 트위터 활동은 적어도 그녀가 원했던 아버지의 인지도 상승이란 측면에서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듯합니다. 후보자 자녀의 선거 지원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물론 후보자 자녀의 선거 지원 행위는 위험 부담도 굉장합니다. 선거를 위한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된 어휘 선택과 사적인 감정 표현으로 자칫하면 지원은커녕 후보자를 매장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정몽준 후보 막내아들의 사례만 봐도(이 경우는 아버지를 지원하려는 목적이 있었는지 정확한 경위를 파악할 수는 없는 사례이긴 합니다) 알 수 있죠.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화제가 된 박광온 후보의 딸 계정도 처음에는 박 후보의 선거 캠프에서 딸을 사칭한 비방용 계정이 아닌가 오인하여 차단했다가 나중에 해제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가족은 후보자와 동일시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자녀의 선거 지원은 크나큰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처 - 트위터


그런 차원에서 볼 때 랜선효녀의 계정처럼 운영되는 방식은 잃을 것이 없는 후보가 인지도를 폭발적으로 늘리기 위해서 한 일종의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온라인상에서 누린 주목도가 실제 득표율로 이어질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랜선효녀는 애초에 자신의 트위터 계정의 목적을 아버지에 대한 인지도 상승으로 명확히 설정했고, 한국에서 트위터 서비스가 시작되기도 전인 2008년부터 트위터를 사용해온 공력을 바탕으로 지금까지는 별다른 역풍을 받지 않고 현상 유지를 하고 있습니다. 

 

만약 트위터에 대한 이해 없이 어설프게 '드립'을 치며 장난식으로 운영했다면 벌써 묻혔거나 건방지다는 역풍을 맞았을지 모릅니다. 이전에는 이런 방식으로 후보자의 자녀가 선거 지원을 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흥미롭게 여겨 사람들이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며 반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계정 운용을 누군가 다시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주목받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최초라는 프리미엄에 명확한 목표 설정 그리고 홍보 대상에 맞춘 운영 능력이 어우러졌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7.30 재보궐선거의 향방은?


이렇게 위험 부담이 있음에도 올해 선거 판세를 뒤흔든 일들은 모두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일어났습니다. 선거만이 아니라 개인, 단체, 기업의 활동에 있어서 브랜딩과 마케팅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포털 게시판,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한 차례씩 바람이 불었습니다. 이번 7.30 재보궐 선거는 또 어떤 후문을 남길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7월 25일부터 26일 오후 6시까지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따른 사전투표 결과를 공시했습니다. 선거인 288만 455명 중 22만 9986명이 투표에 참여해 최종 7.98퍼센트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밝혔는데요, 이는 역대 재보궐선거의 사전투표율 중 가장 높은 기록이라고 합니다. 이번 재보궐선거에서 큰 관심을 불러모으고 있는 서울 동작을 지역구는 13.22퍼센트의 투표율을 기록했군요. 재보궐선거에 어떤 후보자들이 나왔는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타고 들어가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각비행은 한 표 차이가 가른 역사 (꼭 투표하세요!)라는 기사에서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가 때론 국가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대한민국 국민은 대통령, 정부, 정치인의 약속만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참사의 반복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와 가치에 대한 근원적인 반성이 없는 한, 그리고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회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흘린 눈물은 의미 없이 증발하고 말 것입니다. 이런 시점에 정치적 무관심에서 벗어나 소중한 선거권을 행사하는 일은 자본주의적 욕망에 생을 저당 잡히고 점점 괴물을 닮아가는 우리네 모습에서 벗어나 삶의 근본적인 조건을 변혁하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재보궐선거 유권자분들은 소중한 권리를 꼭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6월 4일 오늘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날입니다.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 선거권이 있는 19세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자신이 사는 지역을 책임질 대리자를 선출하는 소중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사전 투표를 하신 분도 계시겠지만 '그깟 투표 하나 안 하나 바뀌는 것도 없잖아?'라는 생각으로 일찌감치 놀러 갈 계획을 세워둔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가 때론 국가와 역사의 방향을 바꿔버리는 크나큰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한 표 차이가 바꾼 역사

1794년 3000여 개의 연방 법률을 영어와 독일어로 반포하려는 미국 하원의 표결이 찬성 41표, 반대 42표로 부결되었습니다. 영어가 미국의 국어로 단독 지정된 것도 바로 이 한 표 차이 때문입니다. 미국 건국 당시에는 독일계가 잉글랜드계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러니 1794년의 투표 결과가 아니었다면 오늘날 미국의 국어는 영어와 독일어이거나 아예 독일어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미국 대통령 및 주지사 선거에서 단 한 표 차 혹은 동률로 명암이 갈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 (출처 - 위키피디아)

미국 독립선언서의 초안을 작성한 토머스 제퍼슨은 그리 잘 알려진 정치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1776년 7월 4일을 기해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서가 채택되고 공포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부각되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후보자의 득표수에 따라 대통령과 부통령이 정해지는 방식이었습니다. 1800년 미국 제3대 대통령 선거에서 토머스 제퍼슨은 에런 버와 함께 73표 동률로 하원에 넘겨졌는데, 의회의 결선 투표를 7일간 36차례나 거듭한 뒤에야 제퍼슨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1839년 미국 매사추세츠 주지사 선거도 한 표가 당락을 갈랐습니다. 당시 후보로 나선 에드워드 에버렛 주지사는 마지막까지 사람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다 투표장에 5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정작 자신은 투표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표 결과 딱 한 표 차이로 패했습니다. 주지사라면 차기 대권을 노릴 수도 있는 자리였는데 말입니다.

앤드루 존슨 (출처 - 위키피디아)

한편 1868년 앤드루 존슨 대통령의 탄핵안 상원 통과가 무산된 것도 한 표 때문이었습니다.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를 두고 공화당 과격파와 대통령이 척을 지게 됩니다. 이때 에드먼드 로스라는 공화당 내 젊은 과격파 의원이 당의 명령과 상관없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투표하겠다며 반대표를 던져 탄핵안이 의결정족수에서 한 표 모자라 부결되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해방 흑인 노예들의 권익 보호 요구를 무시해서 사회 갈등의 불씨를 키운 장본인이란 소릴 듣기 때문에 에드먼드 로스의 양심에 따른 한 표가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양심에 따른 한 표가 정국을 뒤바꿔놓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만은 변함이 없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1845년에 텍사스가 미국 땅이 되는 데 딱 2표가 운명을 갈랐습니다. 미국이 처음부터 50여 개 주로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는 사실은 잘 알고 계시죠? 당시 멕시코에서 독립한 텍사스 공화국은 미국으로의 합병에 대해 투표를 하게 되는데요. 상원에서 27대 25라는 2표 차이로 결정이 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의 한 표는 대통령이나 주지사 선출은 물론 국가의 정체성과 영토를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대한 권리 행사입니다.

출처 - 프레시안

우리나라에서 역사를 가른 한 표를 든다면 역시 사사오입 개헌이 가장 유명하겠죠. 독재를 꿈꾸던 자유당의 이승만 대통령이 제출한 개헌안이 국회 표결 결과 재적 203명 가운데 찬성 135, 반대 60, 기권 7로 개헌 정족수에 한 표가 미달하여 부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독재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이승만과 자유당은 사사오입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개헌안이 가결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이 억지스러움은 국민의 분노를 자아내어 4.19혁명으로 이어졌고 끝내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하여 하와이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출처 - MBC

몇 년 전에 있었던 지방 선거의 사례도 소개하겠습니다. 2008년 강원도 고성군수를 뽑는 재보궐 선거에서 무소속이었던 윤승근 후보는 마찬가지로 무소속이었던 황종국 후보에게 단 한 표차로 낙선했습니다. 지역의 대표자가 정말로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뽑히는 것이란 평범한 진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윤승근 후보는 2010년 선거에 힘을 받고자 한나라당에 입당했지만 오히려 표차는 더 벌어져 200여 표 차이로 낙선하게 되는데요. 이번 6.4 지방선거에 새누리당 후보로 고성 군수에 출마한 상태입니다. 라이벌이었던 황종국 전 고성 군수는 2013년 별세했다고 하니 이번에는 당선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6월 4일은 투표하는 날!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프랭클린 P. 애덤스는 선거란 누구를 뽑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해 투표하는 것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뽑을 사람이 없어 투표를 하지 않는 것도 나름의 의사 표시 방법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꿔주십시오.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지 못하고 우리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는 대표자를 더 늘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6.4 지방선거에 소신 있고 양심에 근거해 소중한 여러분의 권리인 한 표를 꼭 행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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