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9일 5.18 관련 법안 3건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하루 전 상임위를 통과하고 속전속결로 본회의까지 통과된 것이죠. 5.18 왜곡처벌법으로 불리는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 개정안, 5.18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 5.18 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출처 - KBS


5.18 왜곡처벌법은 반인도적 범죄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고 5.18에 대한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최대 징역 5년이나 5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은 진상 조사 기한과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5.18 유공자 예우법 개정안은 오월 단체를 공법 단체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지난 10월 더불어민주당은 5.18 관련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악의적으로 부인하거나 비방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하도록 발의했습니다. 합의 과정에서 징역 5년과 벌금 5000만 원으로 조정되었습니다. 5.18 진상규명법은 발포 책임과 암매장 유해 수습, 헬기 사격 및 계엄군 성폭력 등 진상 규명이 필요한 부분을 명시했습니다. 광주 주변 지역에서도 인권 유린이 자행된 점을 감안해 진상 규명 지역 범위도 넓혔죠.


출처 - 오마이TV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 11월 18일 법사위에서 5.18 역사 왜곡 처벌법과 관련해 공식적이고 근거 있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처벌 가능하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당시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이 5.18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처벌하겠다는 게 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고 묻자 "민주주의를 파괴한 것은 맞니 않나"라고 되물었습니다. 독일이 나치에 대한 발언을 법에 따라 처벌하듯 민주화운동이라고 판명 난 5.18에 대해 모욕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려는 경우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출처 - JTBC


지난 40년 동안 진상 규명이 지지부진했지만 전두환과 관련된 소송을 통해 법원이 헬기 사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처럼 의미 작지만 있는 변화는 줄곧 있었습니다. 지난 8월 국정원이 40년간 보관해온 5.18 관련 자료를 진상조사위에 공개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시민군이 쓴 헬기 사격 목격담도 포함됐다고 하죠. 5.18 진상조사위 측이 받는 자료는 모두 40여 건, 3300부에 달한다고 합니다. 전두환, 노태우는 물론 그 이후에도 국정원은 5.18 관련 자료의 공개를 거부해왔습니다.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가 작성한 이른바 80위원회 자료도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런 자료가 공개된다면 안기부가 광주의 진실을 어떻게 왜곡하려 했는지 밝힐 수 있습니다. 40년 동안 국정원은 이런 자료를 갖고 있으면서도 외면하고 은폐했던 것인데 이번에 드디어 그 실체가 공개되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난 10월 16일 국감장에서 육군참모총장이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집단 발포 등에 대해 40년 만에 공식적으로 사죄했습니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군이 개입한 건 대단히 잘못되었다며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유족분들에게 큰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남 총장은 사죄 발언 후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사죄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 사죄는 어쩌면 육사 출신이 아닌 참모총장이었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은 육사 출신 장교가 중심이 되어 일어났고 1969년 이래 남영신 총장 전까지는 모두 육사 출신 총장이었습니다. 군사반란의 원죄가 있는 육사 출신 육군참모총장이 사죄하는 것이 마땅한데도 그들의 졸렬함이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나 봅니다.


출처 - 뉴스핌


5.18 진상 규명은 늦었지만 그래도 한고비를 넘긴 셈입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현대사에는 진상 규명과 피해 보상이 이뤄져야 할 사건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제주 4.3 사건이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인 이 사건은 일어난 지 72년이나 지났지만, 생존자와 유족들이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특별법 입법이 계속해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2020년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 폭력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고, 더불어민주당이 정기국회 내 반드시 처리할 미래 입법 과제로 선정해 이번에 다시 한번 개정안 통과를 시도했습니다.


출처 - KBS


국회에서 논의했던 4.3특별법 개정안은 법무부가 수형인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검사가 직권으로 재심을 청구하는 수정법률안을 제시한 상태였습니다. 희생자나 유가족들이 일일이 재심청구를 할 필요 없이 법무부 차원에서 특별재심사유로 인정해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죠. 이와 동시에 희생된 1만 3000명에 대한 배상과 보상을 추진하고 있으나 국민의힘과 기획재정부는 돈 문제를 이유로 반대했습니다.


출처 - 제주일보


그러는 사이에 좋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지난 7일 제주 4.3 사건 당시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수감생활을 한 피해자인 93세의 김두황 할아버지의 재심 사건에서 최종 무죄 판결이 난 것이죠. 4.3 관련 재심사건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판결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당시 적용됐던 내란죄와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가 근거 없음을 밝힌 것으로 향후 재심 재판에서도 구체적으로 인용될 수 있어 의미가 큽니다. 이런 순풍으로 기대감이 있었지만, 지난 9일 21대 정기국회에서 4.3 개정안 처리는  불발됐습니다. 


출처 - 헤드라인제주


이번 주 국회는 12월 임시회 일정을 이어갑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무제한 반대 토론)를 강제 중지함에 따라 임시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이해충돌방지법,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4.3특별법 등 굵직한 남은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입니다. 5.18과 4.3 모두 지금 우리나라를 만든 근현대사의 큰 상흔입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할 때입니다. 4.3 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꼭 통과되길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제 오후 7시 30분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비념>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제주해군기지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주최한 행사에 70여 명의 관객이 참여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관람한 뒤 임흥순 감독의 인사말씀을 듣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되었습니다.  

비념 홍보용 전단

임흥순 감독이 만든 <비념>은 어떤 다큐멘터리일까요? 전단을 보니 이렇게 설명되어 있군요.

<비념>은 4.3의 진실을 설명하고자 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또한 강정의 현실을 주장하려는 영화도 아닙니다. <비념>은 4.3사건으로 희생된 제주섬과 제주사람들에 관해 읊조리는 작은 기도, 혹은 가만가만 부르는 치유의 노래입니다. 기존 다큐멘터리처럼 서사와 인물에 기대어 관객을 설득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보다는 공간, 사물의 움직임, 바람 부는 풍경, 곤충과 동물 같은 생명들을 보여줌으로써 은유와 상징을 통해 제주의 슬픔에 다가갑니다.

임흥순 감독은 오래 전부터 제주도가 아름다운 광광지면서 동시에 실은 거대한 무덤이고 치유되지 못한 영혼들의 땅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하여 <비념>의 이미지들은 제주도에 대해 우리가 만들어낸 낭만의 풍경이 아닌 현실에 밀착되어 있는 실제 풍경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명료하게 나눠진 빨강과 파랑의 지난 시대 이념의 색깔도 <비념>에서는 감귤의 주황색으로 곱게 영글고, 푸른 숲에서 따온 녹색으로 따뜻하게 감싸 안습니다.

<비념>은 임흥순 감독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주섬을 오가며 마음을 벼리고, 2년 4개월 동안 카메라에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와 돌과 바람과 숲을 담았습니다. 바람 한 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깊은 설움이 묻어 있음을 예민하게 느꼈던 까닭입니다. 더불어 <비념>은 4.3 당시를 기억하는 분들의 이야기와 강정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묘하게 맞닿아 반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합니다. 4.3은 유령이며, 동시에 강정으로 반복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인 실체입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4.3의 영혼들과 아물지 않은 기억을 '애도'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념>이 그러한 간절한 마음, 숨겨진 마음을 불려내는 요령(방울)이었으면 합니다.

1948년 4.3과 2013년 강정을 최초로 함께 다룬 다큐멘터리를 찍은 임흥순 감독은 관객에게 제작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4.3이 어떻게 보면 현재로서의 강정마을로 보여졌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 두 가지를 왜 하느냐 이렇게 얘기하셨지만 제가 봤을 때는 제주 4.3 같은 경우가 제주 과거의 일이라면 강정마을 같은 경우는 제주의 현재 모습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걸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결과적으로 4.3을 이야기하는 것도 현재 제주의 모습을 이해하려고 한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현재가 더 중요한 부분이 있죠. 어쨌든 4.3으로 시작을 해서 강정마을까지 갔지만 더 깊이 있게 들어갈 수 없었던 지점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들로 해서... 이 영화가 매개가 되어서 많은 부분, 또 많은 분들, 또 많은 분야에서 또 다시 현재 제주의 현재를 좀 만들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흥순 감독, 인사말씀 중에서

이후에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세 번째 파일에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시는 이유가 4.3 때 안 좋았던 기억들 하고 절차의 타당성에 대한 의심 그 두가지 때문인가요?"라는 관객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제는 제주 4.3사건 65주년 추념일이었습니다. 1949~1954년 당시 공권력에 의해 제주도민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무고한 시민이 '빨갱이'로 몰려 피를 흘려야 했던 역사적 비극의 상처가 아물기도 않았는데, 오늘날 대한민국 도처에서 무고한 시민이 어려움을 겪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주 4.3항쟁 65주년을 보내며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 후보자 시절에 제주도민을 위한 공약을 발표했습니다. 제주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하면서 4.3 추모기념일 지정, 피해자 생계비 지원, 유가족 의료 복지 확대, 유적지 복원 정비 등의 공약을 포함시켰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진정으로 약속을 지킬 마음이 있었다면 제주 4.3 희생자 65주기 위령제에 참석해 무고한 시민의 죽음에 애도의 뜻을 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재임 기간 내내 제주 4.3사건에 무관심했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대통령은 위령제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제주 4.3사건을 다룬 독립영화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를 관람한 관객이 7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지슬>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4관왕에 이어 2012 올해의 독립영화상, 제29회 선댄스영화제 한국영화 최초 심사위원 대상, 제19회 브졸아시아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최초 황금수레바퀴상 등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하지만 상을 많이 받았거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많은 시민이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건 아닐 겁니다. 지난해에 용산 참사를 다룬 문제작 <두 개의 문>을 대하는 시민의 관심이 뜨거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 이래로 심화된 국가폭력과 인권유린의 상황이 <지슬>과 같은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를 주목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 이닐까 하고 추측해봅니다.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정부의 인식은 인권의 가치를 가늠하는 지표였습니다. 국민의 정부 시절에 국민화합 차원에서 진상규명과 보상을 위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고,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었습니다. 진상규명위원회는 그로부터 3년 뒤 정부 차원의 보고서를 채택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4·3사건과 관련해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잘못을 공식적으로 사과합니다.


제주4·3사건 희생자 위령제 추도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도민과 4·3 유가족 여러분,
우리는 오늘, 58년 전 분단과 냉전이 불러온 불행한 역사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저는 먼저, 깊은 애도의 마음으로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빕니다. 오랜 세월 말로 다 할 수 없는 억울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오신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국가권력이 불법하게 행사되었던 잘못에 대해서 제주도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제주도민과 유가족 여러분,
2년 반 전, 저는 4·3사건 진상조사 결과 보고를 받고,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여 여러분께 사과를 드린 바 있습니다. 그때 여러분이 보내주신 박수와 눈물을 저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늘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정부는 그동안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추모사업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지난달에도 2,800여 명을 4·3 희생자로 추가 인정했고, 이곳 4·3평화공원 조성을 적극 지원하고 있습니다. 유해와 유적지를 발굴하는 일도 지속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입니다. 이제 4·3사건위원회가 건의한 정부의 사과와 명예회복, 추모사업 등은 나름대로 상당한 진전이 이뤄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만, 이에 대해서는 국민적인 공감대를 넓혀가면서 가능한 일 하나하나를 점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4·3사건을 제대로 알리고, 무고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자랑스런 역사이든 부끄러운 역사이든, 역사는 있는 그대로 밝히고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 특히 국가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잘못은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국가권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합법적으로 행사되어야 하고, 일탈에 대한 책임은 특별히 무겁게 다뤄져야 합니다. 또한 용서와 화해를 말하기 전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국가가 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이자 의무입니다. 그렇게 했을 때 국가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확보되고 그 위에서 우리 국민들이 함께 상생하고 통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과거사 정리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사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갈등의 걸림돌을 지금껏 넘어서지 못했던 것입니다. 누구를 벌하고, 무엇을 빼앗자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분명하게 밝히고,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주고,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서 우리 국민이 하나가 되는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날의 역사를 하나하나 매듭지어갈 때, 그 매듭은 미래를 향해 내딛는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주도민 여러분,
제주도는 대한민국의 보배입니다.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사랑하는 평화의 섬, 번영의 섬으로 힘차게 도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주도가 반드시 해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도민 여러분은 폐허를 딛고 아름다운 섬을 재건해냈고, 그 어느 지역보다 높은 자치역량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주민 스스로 결의해서 항상 중앙정부가 기대하는 이상의 높은 성과를 이루어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앞장서 나아가는 만큼 정부도 열심히 성원하고 힘껏 밀어드리겠습니다. 함께 힘을 모아 풍요롭고 활력 넘치는 제주를 만들어 나갑시다. 이 평화의 섬을 통해 한국과 동북아의 평화, 나아가서는 세계의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들어 갑시다.

다시 한 번 4·3 영령들을 추모하며, 영원한 안식을 빕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이 행사를 지켜보면서 그 엄청난 고통과 분노가 시간이 흐르면서 돌이켜볼 수 있는 역사가 되고 또 그 역사의 마당에서 진행되는 공연을 보면서 앞으로 또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 이것이 제주도의 새로운 하나의 문화로서 자리잡고 그것이 우리 모든 국민들에게 이제는 분노와 불신과 증오가 아니라 사랑과 믿음, 그리고 화해를 가르쳐주는 그런 아주 중요한 상징물이 될 것이라는 그런 기대를 가지게 됐습니다. 함께 노력합시다. 감사합니다.

 

제주 4.3사건을 바라보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진전된 시각을 이명박 정부는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폭력은 점점 수위를 높여갔고, 5년간 인권이 유린되는 일이 수없이 발생했지요. 용산 철거농성장 현장을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시작된 국가권력의 인권 유린은 쌍용차 농성장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투쟁현장에서 그 정점을 찍었습니다. 용산참사의 비극은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통해 세간에 널리 알려졌고, 얼마 전 개봉한 다큐멘터리 <비념>은 제주 4.3사건부터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과정에서 일어나는 공권력의 폭력에 주목합니다.

 

 

<비념>은 제주 4·3사건과 강정마을 문제를 함께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입니다. 임흥순 감독은 제주 4.3사건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임을 강정의 현실에 주목하며 다양한 은유와 상징으로 이를 형상화해냅니다. <비념>의 배급과 마케팅을 맡고 있는 (주)인디스토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임흥순 감독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제주섬을 오가며 마음을 벼리고, 2년 4개월 동안 카메라에 제주 구석구석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묻힌 역사와 기억들과 나무와 돌과 바람과 숲을 담았다. 관객들은 ‘비념’을 통해 바람 한점, 돌멩이 하나에도 제주섬의 오랜 한숨과 깊은 설움이 서려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국가권력이 앞세우는 폭력에 국민이 저항하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그럼에도 폭력의 희생자와 연대하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이 존재합니다. 누군가는 일상을 포기하고 현장에 머물며 투쟁의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란 바로 그런 연대의 결과물이기도 한 것이지요. <레드 헌트>는 1996년 제작된 다큐멘터리로 제주 4.3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만든 조성봉 감독님이 어제 페이스북으로 이런 글을 쓰셨더군요.

 

돌아보면, 2011년 4월3일 강정에 온 이유도 강정마을회관에서 <레드헌트2>를 상영하기 위해서 였다. 물론 요청으로.
 
Red-Hunt는 두편을 만들었다.
레드헌트1은 '빨갱이 사냥', 레드헌트2는 '국가범죄'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둘 다 4.3항쟁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1 Red-Hunt1 -빨갱이 사냥

뭐..국가보안법에 걸렸던 영광스런 다큐이니 관련 이야기를 다할려면 끝도 없다. 책한권은 쓰야 한다. 몇가지만.....
 
1.
 
97년 봄이었다. Q채널이라는 케이블방송에서 하는 다큐멘터리영상제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그 때 삼성영상사업단이라고 해서 이들이 운영했다. 아마 지금의 CJ-엔터테인먼트의 모태였을 것이다. 처음부터 이 다큐영상제를 염두에 두고 <레드헌트>를 만들었다. 출품 데드라인 밎춰 제작해서 출품했고,예상대로? 본선에 진출했고 영화제에 참석했지만 상영 당일 취소가 되었다. 4.3이 방송불가 소재라는 게 이유였다. '심의'가 통과되지 않는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중국의 '천안문' 사건을 다룬 외국다큐도 상영취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품 자체를 자진철회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영화제쪽에서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레드헌트> 첫부분에 희생자 연령별 성별 수치가 자막으로 나오는데, 이 자막 앞에 "이 수치는 사실과 다를 수도 있고 희생자의 시각에서 제작되었다"라는 별도의 자막을 넣어달라는 게 영화제의 요구였다. 그렇게하면 '심의'도 통과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냉 짐싸서 영화제를 떳다.
 
그 때 영화제 슬로건이 '진실의 눈, 진실의 힘'이었다. 재미난 사실 하나는 나와 교섭한 다큐영상제 쪽 프로그래머가 고려대 사학과를 나온 제주도 출신이었고,그의 부친이 '서북청년단' 출신이었다. 그는 나와 동갑이었다. 몇년 전에 이 친구인터뷰가 '씨네21'에 실렸기에 들여다보니 'CJ-CGV'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레드헌트에 <서북청년단 '박형요'의 증언>이 있다.

2.
 
97년 가을이었다. 2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되었다. 남포동의 아카데미극장에서 첫상영이 있었고 당시 귀빈이었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감독이 <레드헌트>를 보러왔던 기억이 난다. 이후 '인권영화제'에서 상영한 후 부터 '국가보안법'으로 수배 당했고, '베를린영화제'에서 초청이 와서 참석하기 위해 여권 발급 받으러 갔다가 체포되었다. 피해다니다 스스로 찾아간 나의 의도적인 신변정리 차원이었다.
기소 이유가 재미있었다.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과 똑같다는 게 이유였다. 북한에서 어떻게 주장하냐고 물으니 '이승만정권과 미군정에 의한 의도적인 학살'이라고 한단다. 그래서 '내 생각과 같네..'했다.
<대정면 남로당책이었던 '이운방'의 증언>

3.

영화 '지슬'은 동광리 학살에 대한 이야기다. 큰넓궤라 부르는 용암동굴로 피신해던 동광사람들의 삶을 흑백으로 담아낸다. '지슬'에선 동굴 속에서의 삶까지만 영화화하지만 <레드헌트>엔 그 이후의 동광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큰넓궤가 토벌군에 의해 공격당하자 동광리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 곳은 볼레오름이었다.
 
결국, 볼레오름에서 붙잡힌 동광리 주민들은 다른 마을 주민들과 함께 1월22일 서귀포시 정방폭포 위에서 총살당했다. 정방폭포에서 희생된 86명 가운데 동광리 주민은 40여명으로 알려졌다. 바다와 이어진 정방폭포에서 사람들의 시체가 파도 너머로 떠밀려갔다. 시신을 찾지 못해던 유족들은 후에 심방을 불러 초혼제를 지내고 혼만 불러 '헛묘’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동광학살에 대한 증언>
 
4.
 
서귀포 '강정'
해방 후 한반도의 집약적 모순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곳이 제주도였다.
경제난, 미군정의 지배, 친일파들의 재등장, 남로당의 불법화, 통일된 나라에 대한 염원..등이 당시 남한의 전반적인 상황이었다.

47년 3월 1일, 3.1절 기념집회 후 가두행진에 대한 미군정경찰의 발포로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당하는 사건이 발생함으로써 4.3의 전야는 시작된다. 이 때 발포에 항의하여 총파업에 돌입하는데 제주도지사, 경찰들까지 파업에 동참한다. 이로인해 도지사도 육지껏으로 바뀌고 경찰도 육지에서 대규모로 파견되어 들어온다. 서북청년단도 마찬가지다.당시 신문자료엔 서귀포 중문지서 경찰들이 파업에 동참해 파면당했다는 기사가 있다.

4.3 당시 서귀포경찰서장 '김효겸'의 증언은 해방 후 친일파 출신의 인물들이 경찰의 상층부를 구성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도 만주군 출신이다. 현재 강정에서 서귀포경찰서장과 경찰들의 활약상?은 익히 알져져 있는 바이다. 그들의 선배가 그러했으니 ....
 
<서귀포경찰서장 '김효겸'의 증언>


#2 Red-Hunt2 -국가범죄

일단 형식이 1편과는 다르다. 나레이션없이 증언만으로 구성했다.
 2편을 만든 이유가 있다. 국보법으로 조사를 받을 때 였다. 담당수사관이 '만든 사람의 의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그래서 4.3에서 엄청난 학살이 있었다는 말들이 믿기지가 않는다.' 라는 말을 했다. 그래서 '좋다 그러면 또한편만들겠다. 피해자의 증언만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학살당했는지, 이게 왜 국가에 의한 범죄행위였는지 보여주겠다.'..해서 만들게 된 것이다.

다큐의 시작은 광주로부터다. 5.18광주항쟁과 4.3항쟁은 다르지않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민중의 저항과 지배자의 학살은 늘 함께 했다. 외세 또한. 갑오농민혁명, 3.1독립운동, 4.3항쟁, 4.19혁명, 5.18광주가 그랬다.

2편 덕분에 스위스 프리부르그영화제에도 가보고, 내 인생 처음으로 상도 받아보았다. 개근상도 한번 못받았던 내가 다큐멘터리 작품상을 받았다. '영화인회의'와 '영화인협회'가 주관했던 2000년 '한국영화축제'에서 였다.
 
나 같이 운좋은 놈이 또 있을까 싶다. 삼십 중반에 다큐를 시작해,처음 만든 다큐가 국가보안법에 걸려 세상의 주목을 받고, 베를린영화제에도 가고, 후에는 상까지 받았으니...복받은 놈이다.
 
4.3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제주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제주에 4.3에 늘 빚지고 있는 마음이다.
지금 강정에 있는 이유도 그러하다.
 강정해군기지 또한 국가범죄다.
 
2013년 4월 3일, 4.3항쟁 65주년이다.
 죽어간 모든 이들의 넋을 빈다.

 

2011년 여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생각비행은 강정마을을 지지방문했습니다. 태풍 무이파가 제주도를 강타해 큰 피해가 발생하는 일을 직접 경험했는데요, 태풍이 몰아치던 날 오후에 강정마을회관에서는 주민과 평화지킴이, 지지방문자들이 한데 모여 <레드 헌트>를 관람했습니다. 한국대학생연합 학생들에게 제주4.3사건의 국가폭력이 강정에서 벌어지는 해군기지 건설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열정적으로 들려주시던 조성봉 감독님을 기억합니다. 그날 있었던 이야기를 생각비행 블로그에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반대 5] 세계는 제주의 평화를 원한다〉는 기사로 소개한 적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지난 3월 1일 제주 관덕정 앞 광장에서 있었던 제2차 3.1 제주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대회에서 결의한 선언문을 다시 공유합니다.

 

제주도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문

오늘은 일제의 폭력에 대항해 비폭력 평화적인 방법으로 자주독립국임을 선언하였던 3.1운동 제94주년이 되는 날이다.
또한 66년 전, 제주4・3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3・1절 제28주년 기념식이 2만여 명의 도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던 날이기도 하다.

지금은 제주읍 목관아지가 복원되어 있는 이곳 관덕정에서는, 매년 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사라졌던 ‘입춘굿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이곳 역시 제주도의 역사와 함께한 장소이다.
1901년 이재수 신축항쟁 당시 피비린내 나는 역사적 현장이었고, 제28주년 3․1절 기념식 후 당국의 발포로 6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1949년에는 제주4・3항쟁의 장두인 이덕구의 시신이 전시되기도 했었다.
제주4・3유족회가 육지부 형무소 등지에서 행방불명된 영령들의 혼백을 모셔와 합동제례를 올린 곳이기도 하다.

‘3월 1일’, 우리가 ‘관덕정’에서 비무장 평화의 섬 선언을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선열들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서이다.
불의의 폭력에 맞선 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을 추모하고, 정의가 수난받는 개탄스런 현실을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이다.

제주도는 역사적・현실적으로 외세와 중앙에 휘둘리고 이용당해왔다!

제주도는 대몽항전 시절 몽고에 의해 일본침략의 교두보로 이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중・일전쟁에서 중국 폭격을 위한 일본군의 도양지로 사용되었다.
일제 말기에는 제주도 전체를 군사 요새화하여 일촉즉발의 위기가 있기도 했다.
그만큼 제주도는 지정학적인 중요성 때문에 시시때때로 군사기지의 역할을 해왔다.

4・3당시 이승만은 미국이 제주도에 영구적인 기지를 설치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은 미국의 오키나와 기지 대신 제주도를 새로운 미군기지로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 모슬포 송악산 공군기지 건설이 좌초된 이후, 정부는 화순과 위미를 타진하다가 현재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제주도는 세계 평화의 섬이다!

지난 2005년, ‘정부는 제주4.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국내외 군사력에 의해 끊임없이 고초를 겪고 희생 당해왔던 제주도가 새로운 평화의 진원지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무장 평화의 섬을 향한 노력은 제주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한 제주도가 두 세력 간의 각축장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오히려, 두 세력 간의 완충지로 평화의 전진기지가 되기를 기원한다.
그것은 제주도가 진정한 의미의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그것은, 제주도에 군대나 군사기지도 없는, 전쟁이나 폭력이 없는 평화의 섬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난개발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하여 자연보존과 환경보호를 이뤄내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생명에 대한 테러를 반대하여, 소중한 생명의 자생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외세나 그 어떤 세력들의 간섭도 미치지 못하는 영세 중립의 자주적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제주도 비무장 평화의 섬이 갖는 본질이다.

간악한 외세에 저항하고 소중한 제주공동체를 지키고자 했던 선열들의 얼이 서려있는 이곳 관덕정에서 3월 1일 우리는,
전쟁과 폭력의 산물인 멸망과 파괴를 버리고
평화와 상생의 열매인 부활과 복원을 이루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지속적인 실천과 평화적인 노력을 통해 비무장 평화의 섬을 실현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또한 우리의 결심과 실천 의지를 다시 확인하고 제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양심있는 시민들과 함께 해나갈 것을 천명한다.

2013년 3월 1일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만드는 사람들


2011년 8월 6일 토요일, 강정천 바로 옆 체육공원에서 제2차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촉구 제주 강정평화대회가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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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일 제주시청 앞에서 열렸던 1차 전국집중집회에 이어 강정마을 주민과 인근마을 주민, 제주도내 시민사회단체 회원을 포함하여 전국 방방곡곡에서 많은 단체와 개인이 집회에 참여했습니다.

이날 집회는 전국의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야5당이 공동으로 준비했기 때문에 그 의미가 각별했습니다. 민주당 정동영·김재윤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권영길 의원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진보신당 윤난실 부대표, 국민참여당 권태홍 최고위원 등 많은 정치인이 강정마을을 찾아왔습니다.

야5당 대표자, 국민 앞에서 약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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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서 가장 먼저 발언한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제주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만들어지고 혹시나 이것이 미국이 그동안 기도해온 대 중국 압박 전략과 MD전략의 일환으로 사용된다면 단 한순간에 우리 국민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뒤흔들게 될 것"이라며 "단 1퍼센트라도 이것이 전쟁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면 우리 국민의 안전을 뒤흔들 위험이 있다면 우리는 헌법을 지키기 위해서 100퍼센트 평화로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야5당은 3개월 동안의 진상조사를 통해 이곳 해군기지가 2008년 국회가 내건 조건에 맞지 않게 추진되고 있고 주민들의 공동체를 산산히 조각내고 있으며 환경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야5당이 함께 힘을 모아 국회에서 책임있게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고 내년 4월 총선에서 강정마을의 봄을 만들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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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성경 창조한국당 대표는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과 관련해 전면적으로 다시 검토해야 하는 문제"이며 "기본정책으로 균형외교를 선택했던 지난 노무현 정부가 제주해군기지를 추진한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안보만능이라는 바위를 평화와 연대의 계란으로 깨트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5당이 힘을 모아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강정마을 평화버스에 이어 내년에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으로 가는 통일버스를 함께 타자"고 피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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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난실 진보신당 부대표는 "강정은 강정주민 것만이 아니라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것으로, 강정주민들은 무례한 정부의 공권력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을 권리가 있다"고 발언했습니다. 또한 “야5당이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단을 꾸려 200일을 조사한 결과 해군기지가 심각한 환경훼손을 가져오고 추진 절차상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 부대의견조차 무시한 사업”이라며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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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에 나선 정동영 민주당 최고위원은 "대한민국에서 평화라는 말이 절절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곳 제주만큼 크게 와닿는 곳은 없을 것"이라며 "제주에는 아직도 일제강점기 일본 가미가제 특공대가 출동했던 비행장과 4.3과 6.25 당시 발생한 피어린 흔적과 상처들이 남아있다"고 하며 "이런 제주에 저희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해군기지를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사과드린다. 진상조사단은 해군기지 문제를 전면 재검토하라고 했는데 이는 사실상 원점재검토다. 민주당이 해군기지 백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가 아니라 평화의 마을로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군기지 백지화! 국민에게 보내는 메시지


이날 집회에 야5당을 대표하여 발언한 이들은 현수막에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를 직접 쓰는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보이십니까? 야5당이 국민에게 한 엄숙한 약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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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진보신당) 윤난실

강정을 지켜내는 것이 평화를 지켜내는 것입니다! -창조한국당- (공성경)

강정에 평화를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야당이 함께 나갈 것입니다. 평화를 지키는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

강정을 해군기지 말고 평화공원으로 만들자!! 정동영 <민주당>

야5당이 연대해서 강정을 평화마을로! -국민참여당- (권태홍)

야5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라

2011년 9월 6일 오후 국회 예결특위 조사소위가 강정마을 현장에서 조사를 마치고 간 직후 해군기지사업단은 기다렸다는 듯이 굴착기를 투입해 구럼비를 깨트렸고, 추석 연휴 동안 잠시 멈췄던 공사를 오늘(9월 20일) 오전부터 다시 재개했습니다.

공사 재개 소식에 강정마을 주민의 마음은 또 다시 무너졌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합니까? 구럼비를 지키고 해군기지를 백지화하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이가 모여야 합니까?

야5당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십시오! 해군기지를 백지화하고 강정마을에 평화를 되찾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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