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입니다. 세 후보 역시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까닭은 지난 시절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성장 위주 정책이 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건만 지금까지의 정치는 절망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젠 정치인들의 희망 섞인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절망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
그리하여 잠들라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몰려다닙니다.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누구 하나 말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말리려는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다칩니다. 그들에겐 법이 소용없고, 경찰도 검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사하던 검찰은 그들의 회사 임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무원은 돈으로 매수됐습니다. 광고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고 정치인들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아파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1978년에 출간된《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이라는 시 속의 사회와 오늘날 1퍼센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라는 표현에 드러났듯이 ‘살찐 死者들의 입김’은 안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마을을 뒤덮습니다. 그 안개에 갇히면 죽습니다. 死者의 입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숨기를 권합니다. 
死者는 보통 死者가 아닙니다. 살찐 사자입니다. 지금도 살찐 死者가 대한민국의 99퍼센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의 몫이 부족한 나라,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나라, 99퍼센트가 꿈꾸는 희망이 1퍼센트의 희망에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에서 힘없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은 것은 ‘피곤과 우울’뿐입니다. 

살찐 死者들이 1퍼센트가 돼서 99퍼센트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지만 ‘너희도 희망을 가지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고 언론이, 공권력이, 정치가들이 거짓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발표된 1970년대 말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건만 2012년 오늘도 이런 거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9퍼센트의 희망을 품은, 우울함과 피곤함에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이 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살찐 死者로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의 희망이 피곤과 우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은 이웃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고 싶기에 시인은 死者의 입김을 피하라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칩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처럼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쓰러트리는 진실의 힘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시를 마무리하면서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기 위해 말없이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영혼'이 우울하고 피곤한 이웃의 밤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짓 희망을 직접 쓰러트리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시인의 얘기처럼 거짓 희망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울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희망을 꿈꿔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만큼 많고 많은 말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느니, 대선 후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말과 행동의 간극을 보며 마음의 진실함을 확인합니다.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때에 지키지 못할 사람의 약속에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눈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종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에 정년퇴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등이 있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등이 있으며 시론집《숨과 꿈》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충만한 힘》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더위도 한풀 꺾여 곧 가을이 오려나 봅니다. 이제 좀 살만하다고 느껴야 할 텐데, 그게 아닙니다. 계속해서 오르는 물가, 여기저기서 들리는 경제위기와 관련된 불안한 소식들,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건들만 보도하는 뉴스와 신문 때문에 국민의 속마음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뭔가 기분 좋은 소식이 없나 싶어 눈을 굴려보지만 좀처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값 등록금 논의는 소리소문없이 증발했고, 중국과 FTA를 한다는 소식만 무성할 뿐 잘나가는 공기업을 민영화하겠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알려주는 언론이 없네요.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설 용역회사의 문제, 제주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목소리와 현장의 투쟁상황을 주요 언론이 외면하는 가운데 여름이 가고 가을로 접어드는군요. 

누구를 위한 FTA이고 누구를 위한 민영화이며 누구를 위한 해군기지인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고도 위정자들은 오늘도 국민의 뜻대로 정치를 펼치겠노라고 헛소리만 해댑니다. 참 슬프고 우울한 세상입니다. 일찍이 함민복 시인은 사회적 소통이 단절된 공간 속에 은거하고 있는 현대인의 소외된 삶을 <우울氏의 一日>이라는 연작시에 담아낸 바 있습니다.

단지 공짜라는 이유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나와 경북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입사했지만 기계와 대면하는 삶이 힘들어 4년간의 근무를 끝으로 서울예전 문창과에 늦깎이로 들어간 함민복. 그는 2학년 때인 1988년에 시인으로 등단했습니다. 그는 가난하게 살았지만 슬픔마저 관조하는 여유로움을 보여줍니다.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

아래층에서 물 틀면 단수가 되는
좁은 계단을 올라야 하는 전세방에서
만학을 하는 나의 등록금을 위해
삭월세방으로 이사를 떠나는 형님네
달그락거리던 밥그릇들
베니어판으로 된 농짝을 리어커로 나르고
집안 형편을 적나라하게 까보이던 이삿짐
가슴이 한참 덜컹거리고 이사가 끝났다
형은 시장 골목에서 짜장면을 시켜주고
쉽게 정리될 살림살이를 정리하러 갔다
나는 전날 친구들과 깡소주를 마신 대가로
냉수 한대접으로 조갈증을 풀면서
짜장면을 앞에 놓고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를 보았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
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
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
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
나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워
물배가 부른데도 짜장면을 남기기 미안하여
마지막 면발까지 다 먹고나니
더부룩하게 배가 불렀다, 살아간다는 게

그날 나는 분명 슬픔도 배불렀다

이 땅에 많은 사람이 현실에 순종하며 살면서 저마다 행복을 꿈꿉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희망만 있다면 참을 수 있는데, 그 희망마저 빼앗는 세상이라니 사는 게 고역입니다. 졸업과 동시에 등록금 대출이라는 빚을 떠안고 사회로 나와 좁은 취업문을 두드리다 희망보다 절망에 익숙해지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젊은이들. 그들에게 희망을 제시해야 하는 게 바로 앞선 세대와 국가의 의무가 아닌가요? 

과연 누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그날 나는 슬픔도 배불렀다>라는 시를 쓴 함민복 시인 자신도 이처럼 미래를 논할 수 없는 곤궁함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신의 등록금을 대기 위해 형은 전세에서 사글세로 옮겨야 했고, 그런 형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그의 심정은 참혹했습니다. 

그런 일상 가운데 함민복 시인은 이상한 중국집 젊은 부부의 삶을 보았습니다. “바쁜 점심시간 맞춰 잠 자주는 아기를 고마워하며/젊은 부부는 밀가루, 그 연약한 반죽으로/튼튼한 미래를 꿈꾸듯 명랑하게 전화를 받고/서둘러 배달을 나아갔다"고 하면서 그는 그 모습이 눈물처럼 아름다웠다고 말합니다. 함 시인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실낱같은 희망에 행여 그림자라도 드리울까 염려하여 이미 물배가 찼으나 마지막 면발을 남기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함 시인의 시선으로 보면 우리 사회엔 아직 무수한 희망이 잠재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건설 현장에서 뜨거운 태양에 굴하지 않고 빗물 같은 땀방울을 흘리는 노동자의 모습에서, 날품팔이 재래시장에서 가난함을 벗어나지 못해도 웃음을 잃지 않고 하루하루를 견디는 노파의 모습에서, 국가 폭력과 공권력 폭력이 난무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남의 고통을 제 것인 듯 견디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슬픔으로 배부른 세대, 좌절에 익숙한 세대에게 그저 기다림이 희망의 묘약이 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젊은 중국집 부부처럼 작은 일에 감사하며 하루를 온 힘으로 버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희망을 빼앗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젠가 일어설 것입니다. 들풀처럼 민중은 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니까요. 

함민복
1962년 충청북도 중원군 노은면에서 태어났다.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4년 근무하다 서울예전 문창과를 졸업했다. 1988년 《세계의문학》에 <성선설>로 등단했으며 <21세기 전망>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강화도에서 전업시인으로 살고 있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애지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을 받았다. 그가 펴낸 책으로는 시집 《우울씨의 일일》《자본주의의 약속》《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말랑말랑한 힘》, 에세이집 《눈물은 왜 짠가》《미안한 마음》《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 동시집 《바닷물, 에고 짜다》가 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한낮의 햇볕을 피하고 싶을 정도로 뜨거운 요즘, 무더위를 식히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시도록 정호승 시인의 <또 기다리는 편지>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이 시는 1982년에 출간된 정호승의 두 번째 시집인 《서울의 예수》에 담겨 있습니다. 이 시집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선물한 책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 정호승의 시에 나타난 서울은 밝은 모습이 아닙니다. 군사정권 아래서 바라본 현실이 밝을 수는 없었겠지요. 정호승의 시선은 소외되고 외로우며 하루하루 힘들게 연명하는 우리 주변 인물들을 향해 있습니다. 시인은 그들의 아픔과 슬픔을 일상적인 언어로 표현합니다. 그래선지 더 슬프고 아프게 다가옵니다. 

정호승 시인은 2009년 경향신문과 나눈 인터뷰에서 “76년 김명인·김승희·김창완 시인 등 젊은 시인들과 함께 ‘반시(反詩)’라는 동인을 만들었습니다. 60년대 선배 시인들이 난해하고 추상적인 시들을 많이 썼는데, 우리는 ‘일상의 쉬운 언어로 현실의 이야기를 시로 쓰고자 한다’는 의미로 ‘반시’라는 이름을 지은 것이죠.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경향과의 만남] 등단 37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시인 정호승)라고 말했습니다.

1980년대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서울이 결코 희망적인 도시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실 겁니다. 일반인도 그렇게 느낄진데 감수성이 충만한 시인에게는 어땠을까요? 서울이라는 숨막히는 공간에서 희망은 절망으로, 절망은 더 큰 절망으로, 기쁨은 슬픔으로,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정호승은 절망스러운 희망을 '기다림'으로 표현합니다. 그에게 희망이란 곧 기다림이었습니다. 모순이 가득하고 잘못되어 가는 사회 속에서 시인은 묵묵히 기다립니다. 사랑하는 사람보다 조금 먼저 가서, 조금 더 앞의 세상을 바라보고 기다립니다.
 
그 기다림은 2012년의 서울에서도 유효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광장에 나와 웃을 수 있는 세상, 더 많은 사람이 아픔 없이 사랑을 노래하는 세상, 강남과 강북이 물질적인 편견으로 나뉘지 않는 세상, 남과 북이 손을 맞잡을 수 있는 세상.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견디면 더 좋아지리라는 기대로 그런 세상을 기다립니다. 꿈꿉니다.

또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벽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라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평론가 정과리는 "한국 민중의 전통적 감성에 깊이 몸담고 있는 시인이다"라고 정호승 시인을 평했습니다. 정호승의 시를 읽어보면 그 의견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고려가요의 <가시리>, 정지상의 <송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등 교과서에서 배운 전통적 정서는 정호승의 <이별노래><또 기다리는 편지><우리가 어느 별에서><새벽편지><슬픔이 기쁨에게> 등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별노래><또 기다리는 편지><술 한잔><수선화에게> 같은 아름다운 시에 양희은, 이동원, 김현승, 안치환이 곡을 붙인 노래는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지요. 특히 <부치지 않은 편지>는 김광석의 유작앨범에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앞서 정호승 시긴이 갖춘 특유의 기다림의 정서를 언급했는데요, 어쩌면 기다림이란 허무로 이어질 수도 있는 미묘한 감정입니다. 기다림의 끝이 결국에는 더 긴 기다림의 출발점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기다림'이라는 소극적 감정의 한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한계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길은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세상을 바꾸며 사는 삶이 아닐까요?

<아버지>에서 "믿는 도끼에 찍힌 발등만 쳐다보며/내 집 한 칸 없이 살아오신 아버지"처럼, <서울의 예수>에서 "술 취한 저녁. 지평선 너머로 예수의 긴 그림자가 넘어간다. 인생의 찬밥 한 그릇 얻어먹은 예수의 등뒤로 재빨리 초승달 하나 떠오른다. 고통 속에 넘치는 평화, 눈물 속에 그리운 자유는 있을까. 서울의 빵과 사랑과, 서울의 빵과 눈물을 생각하며 예수가 홀로 담배를 피운다. 사람의 이슬로 사라지는 사람을 보며, 사람들이 모래를 씹으며 잠드는 밤. 낙엽들은 떠나기 위하여 서울에 잠시 머물고, 예수는 절망의 끝으로 걸어간다"고 표현된 예수처럼 절망은 여전히 우리 앞에 버티고 있기에 도망갈 수도 없습니다. 이제 절망이란 벽을 조그만 희망이라는 망치로 내리치면서 벽이 무너지기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그 끝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지금은 시(詩)의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현실을 슬퍼하고, 비판하고, 기뻐하고, 괴롭다고 가슴을 치기도 하고, 욕도 내뱉던 시의 시대가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누구보다도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고 표현했던, 아름다운 미사여구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시를 쓰는 시인이 그립습니다.

정호승

1950년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도시 변두리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전국 고교문예 현상모집에서 <고교문예의 성찰>이란 글이 당선되어 문예장학금을 지급하는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했으며, 같은 대학의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제대 후에《한국일보》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당선됐다. 김요섭 선생에 의해 《현대시학》에 시가 추천되기도 했으며, 1973년에 《대한일보》에 <첨성대>라는 시가 당선되어 《1973》 동인지를 시작했다. 1982년에는《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위령제>가 당선되었다.
 
1976년 경희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숭실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김창완, 권지숙, 이종욱, 하종오, 김명인, 김명수, 김성영 등과 《反詩》 동인지 활동을 했다. 정호승 시인이 참여한 '반시'동인지는 “삶은 곧 시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것들의 시화(詩化)가 중요하다. 꽃이나 사랑 등의 관념적 어휘는 배제한다”며, 예술성은 지키되 시가 오늘의 현실인 삶의 문제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시 동인들이 만든 동인지 《반시》는 1978년 세 번째 동인지를 만들며 상업화되는 시단을 비판하고 동인지 중심의 시단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오월시》 등으로 동인지를 양적으로 확산하는 데 이바지했다. 하지만 1979년 군사정권에 의해 동인지가 불법적인 정기간행물로 규정되어 박해를 받았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서울의 예수》《새벽편지》《별들은 따뜻하다》《사랑하다 죽어버려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눈물나면 기차를 타라》 등이 있으며, 시선집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산문집으로 《정호승의 위안》, 어른을 위한 동화집 《항아리》《연인》 등이 있다. 소월시문학상, 동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총선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법안 등이 포함된 '희망사다리 12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이를 "비정규직, 중소기업, 장애인, 학생 등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면 좋겠지만 그중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 법안의 취지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 속셈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면 지금 불법인 사내하청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지, 사내하청을 합법화는 법안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내하도급은 명백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여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법치질서에 어긋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새누리당의 법안은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기업의 사내하청을 부추기는 법안이요, 사다리를 걷어차서 희망을 절망으로 만드는 법안일 뿐입니다. 
 
생각비행은 6월 출간을 목표로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알아야 할 노동법》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번 새누리당의 '희망사다리법'(통합민주당의 표현에 따르면 '절망미끄럼법') 발의를 목도하면서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읽었던 시집 《노동의 새벽》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1984년 출간된 초판본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초판 표기를 따름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 시인의 첫 시집으로 198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말에서 딴 '박노해'라는 필명을 가진 얼굴 없는 시인은 곧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1년 7월, 7년의 수배생활 끝에 두 손에 수갑을 찬 박노해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노동현장의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 행동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시인 박노해이기 전에 그는 노동자 박기평이었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고 천주교 사제를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16세 소년을 서울 빈민가로 내몰았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부에 다니며 체험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그는 사제의 꿈을 접고 맙니다. 그렇지만 노동 야학에 열심히 참여하며 《사상계》《창작과 비평》 같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며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노동자 파업에도 적극 가담하면서 현실 참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철공소, 구로공단, 성수공단 등에서 섬유, 화학, 금속 노동자로 지내면서 잔업, 철야, 특근을 반복하는 저임금, 인권유린의 노동 현실하에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성수공단에서 최초의 파업을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후 살해 위협을 받은 채 어두운 둑길에 버려졌습니다. 이후로 그는 대학생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는 안양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취직하여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치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 '우리만 좋아지지 말고 다른 노동형제들의 삶도 함께 개선하자'며 공부와 실천을 병행하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동현장과 투쟁현장 속에서 노동자 박기평은 1970년대부터 "저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처절한 고통의 시간과 체험이 빚은 결과물이 곧 시인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노동현실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얻은 풍요의 열매를 지금 누가 거두고 있습니까? 1970, 1980년대와 비교해서 노동현장이 더 나아졌으니 이제는 만족해야 할까요?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대한민국의 외형적인 발전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적이란 없으며 말없이 이 땅에서 피땀 흘린 노동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에서조차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는 여전합니다. 사내하청, 하도급,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기업의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는 노동자의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노동의 새벽》이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채광석과 김사인의 노력이 지대했습니다. 그들은 박노해의 시를 두고 "민중문학의 실체를 찾았다"면서 출간을 위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학성'과 '위험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병식이 사장으로 있던 풀빛이라는 출판사에서 간신히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윤과 김봉준의 판화가 인상적인 《노동의 새벽》 초판본에서 작가 소개를 보면 '1956년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는 간단한 이력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었을 때 문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지식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쓸 수 없는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비수 같은 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시집은 198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문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시를 읽거나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문학이론서를 봐도 이런저런 표현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지를 규정합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토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며 쓴 박노해의 시야말로 세대를 초월하여 가슴에 깊이 남는 좋은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시집

박노해
196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서울에 올라와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4년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이 되었다.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했다. 7년의 수배생활을 하다가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1998년 8월 15일 석방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석방 후 그는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세계의 분쟁지역과 빈곤지역을 돌며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새벽》《참된 시작》《사람만이 희망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등이 있으며 두 번의 사진전 <라 광야>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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