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6시 20분께 관악구 신림동에서 술에 취해 귀가하는 여성을 집까지 뒤쫓아 가서 집에 침입하려다 실패한 30대 남성이 오늘 구속 전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습니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남성의 범행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충격으로 '여성 혐오'에 다각적인 대응이 일어나고 '미투 운동'이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금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생각비행이 이런 문제의식을 내포한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여성의 마음이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이 사회는 여성들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분석하려 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들이 태생부터 유별난 사람들인 것처럼,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사람들인 것처럼, 간단히 그들을 ‘혐오 세력’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존재도 아니고, 어디 고립된 섬에 따로 모여 살고 있는 이방인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 역시 남성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누군가의 딸, 오누이, 여자 친구였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갑자기 참여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논쟁이 치열해졌고, 그 와중에 상처 받고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리는 동료들도 늘어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을 단순히 ‘이기주의자’로 규정하고, 성별 대립을 ‘상호 혐오’ ‘이성 혐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론적 해석은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내적 갈등과 사건들을 생략하므로 옳지 않다. 여성주의는 지금까지 보던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이며, 이 과정은 수많은 혼란과 주저함, 갈등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현 사회에서 남성이 기득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성별에 관계없이 강자를 선망한다. 열렬히 여성의 편을 드는 남성은 거의 없지만, 열렬히 남성의 편을 드는 여성들이 넘쳐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가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이다. 여성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자신 안에 있는 여성 혐오를 발견하고 놀라고 반성하기를 반복하는데, 어떻게 남성들이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꾸만 강자의 위치를 선망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하는 자신 안의 비겁함을 직면하고 맞서 싸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여성들은 이 내면의 전쟁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되고 만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종속》이라는 저서에서, 여성에 대한 지배가 다른 모든 종류의 지배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 여성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 싸움은 이처럼 여성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남성들은 여성을 진심으로 남성의 이해관계에 동조하게 만들기 위해, 여성인 척 여성 커뮤니티에 잠입하여 여성들을 훈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여성에게는 ‘개념녀’라는 훈장을,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는 ‘김치녀’라는 모욕을 줌으로써 여성들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

 

여성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운동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는 남성의 시도에 맞서 싸우는 일이며,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미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지친 사람들은 동료를 포용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최근 여성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일이 늘어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몇 년간의 싸움으로 지쳐 있는 페미니스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커다란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남성으로부터 지켜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한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82년생 김지영》 이후의 페미니즘

2018년 한 해 동안 《82년생 김지영》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았다. 고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이슈가 되었고, 그 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국내에서만도 100만 부가 넘게 팔리고,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어 나갔다. 그러자 ‘82kg 김지영’이니, ‘90년생 김지훈’이니 하면서 한국 남성들의 조롱도 이어졌다. 젊은 남성들은 ‘저런 차별은 82년생들이나 겪은 거지, 더 어린 여성들은 경험한 바가 없다, 이미 성차별은 사라졌다.’라고 주장하지만 웬걸, 오히려 더 어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조차 너무 온건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진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페미니즘을 소수 엘리트 여성의 것에서 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의 것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조남주 작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작가로 가장 유명한 이는 공지영 작가였다. 이 두 페미니즘 작가 사이에는 커다란 시간차가 있었으며, 그사이 한국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그 변화의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엘리트 여성에게서 다수의 평범한 여성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고, 조남주 작가는 시의적절하게도 이 점을 잘 포착해냈다.

 

공지영 시대의 페미니스트만 보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난 고학력 엘리트 여성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평범한 여성들은 ‘나 같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외쳐도 될까?’ 하고 주저하기도 했고, 거꾸로 엘리트 여성이라면 응당 페미니스트여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의 등장으로 이러한 분위기는 많이 완화되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를 페미니즘에 대한 평범한 여성들의 갈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차별’이라는 것이 뭔가 대단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두고서만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불편함에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이 소설이 말해준 것이다. 거기서 많은 여성은 자신들이 느끼던 막연한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사회를 바꾸리라는, 혹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올라서겠다는 야망을 가진 엘리트 여성도 아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다. 선거권이 일시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부자 남성, 그다음에는 평민 남성, 그다음에는 흑인 남성, 그다음에 여성에게 주어졌듯이, 페미니즘 역시 처음에는 엘리트 여성에게만 주어졌다가 서서히 평범한 여성들에게로 확장되는 경로를 밟아나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말해주었다. 여자라고 더 잘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성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굳이 뛰어난 성취를 거둬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바로 이 메시지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제 평범한 여성 대중을 위한 페미니즘이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더 많이 논의해야 할 때이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평범한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꿰뚫는다. 왜 평범한 여성들이 ‘개념녀’가 되길 포기하고 ‘이퀄리즘’(성별 불평등을 스스로의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된 용어)을 비판하는지, 왜 페미니스트가 ‘탈코르셋’을 주장하며 ‘미러링’이란 방법을 동원하는지, 왜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사회’를 거부하며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연공서열제’를 비판하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여성 혐오’와 ‘여성 착취’에 왜 연대하여 맞서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유주
1991년에 출생하여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늘 남성이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에 의문을 품어 왔다. 그러다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만든 사회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라는 것을 깨닫고 페미니스트로 거듭났다. 최근 전개된 한국의 새로운 세대 여성운동을 재구성한 르포 소설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를 출간한 바 있고, 앞으로 꾸준히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그 역사를 기록해나갈 예정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 여성의 마음, 가장 치열한 전쟁터

 

1. 개념녀가 되길 포기하다
 각자내기를 하면 평등해질까?
‘개념녀’ ‘이퀄리즘’은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부역하는가?
갑옷과 코르셋의 서로 다른 기능
 왜 하필 ‘김치녀’일까?
사랑받지 못하는 남성들
 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억압’을 느끼는 남성들
 전업주부를 질투하는 남성들
 여성의 연약함은 무기가 된 적이 없다
 나는 남성들을 더욱 몰아붙일 것이다

 

2. 피해자다움은 없다
 혜화역 시위가 메갈리아 영향권에 있다고?
미투 운동 그 이후의 한국 사회
 이기적인 여성이 사회를 진보시킨다
‘미러링’은 여자들을 변화시켰다
 공적 제도를 불신하는 여성들
 피해자다움은 없다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한계

 

3. 가부장제 사회에 비비탄을 쏘아 올리다
 로맨스와 범죄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한 드라마들
 미쓰백, 여성들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보는 가부장제와 사교육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
 우리가 남이가? 네, 우리는 남입니다
 비비탄의 성공을 위하여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연공서열제
 여성후보 뽑기 운동만으로 될까?
자신들을 대변할 정당이 없는 것은 여성도 마찬가지다

 

4. 새로운 지구를 위한 상상력
‘홍대 몰카’ 피고인 안모 씨의 어머니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내적 탈코, 이제는 생존 전략이다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세대
 나라가 망할 땐 ‘암탉’이 먼저 운다?
군대는 여성 착취 위에 존재한다
 진보 남성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
 탈코르셋 운동과 제3세계
 젠더와 성별, 그리고 제3세계

 

참고 도서

지난 주말 혜화역을 중심으로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붉은 옷을 입고 광장으로 나섰습니다. 내로라하는 노조 조직이나 즐거움을 위한 페스티벌도 만 명 정도가 모이기는 쉽지 않죠. 그런데 혜화역에 모인 이들은 SNS 등을 통해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모인 여성이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남성이 피해자였던 홍대 몰카 범죄 수사의 편파성을 규탄하는 한편 한국 사회에서 성별에 따라 사건의 해결 방식과 걸리는 시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현실에 대한 항의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때문에 모임의 대표 구호가 "남자만 국민이냐? 여자도 국민이다!"였습니다.


출처 - KBS


미투 폭로에 이어 이번 대규모 시위가 진행된 이유는 여성의 절박한 위기감과 평소에 느껴왔던 차별감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습니다.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몰카 범죄를 걱정해야 하는 여성들은 홍대 남성 몰카 사건처럼 누가 범인일지 뻔히 보이는 사건조차 접수가 힘들다고 토로합니다. 유명 유튜버 한 명도 스튜디오 비공개 촬영에서 성추행과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습니다. 그런데 기사의 헤드라인은 여성이 찍혀도 몰카녀 사건, 여성이 찍어도 몰카녀 사건으로 달리는 현실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에 질리지 않은 여성이 있을까요? 이번 혜화역 집회를 주도한 운영진들조차 한꺼번에 터져 나온 여성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놀라워했고 최종적으로 1만 2000여 명이나 나와서 함께 시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최근 여성 인권에 대한 의식이 고양되고 사회적 변화가 조금씩 이뤄지기 때문인지, 오는 24일 낙태죄 헌법 위배 여부에 대한 공개변론을 앞두고 여성가족부가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정부 부처가 공식적으로 의견서를 내기는 처음입니다. 헌법재판소에 낙태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취지의 공식 의견서를 제출한 것입니다. 여가부는 낙태를 불법으로 규정한 현행 형법이 여성의 생명권과 건강권, 임신, 출산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재생산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2년 헌재는 낙태죄에 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지만 당시 합헌 4, 위헌 4로 간신히 합헌 판결이 났던 만큼,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2017년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 약 합법화 및 도입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동의한 바 있습니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현행 법제에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에게만 묻고 있다는 문제가 있으며 이를 넘어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에 왔다고 말하며 임신중절과 관련해 정부 차원의 보완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그런데 법무부는 이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법 적용과 변화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법무부다운 입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유가 해괴합니다. 24일 공개변론을 앞두고 작성된 법무부의 변론요지서를 보면 이 논란을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으로 전제하고 낙태를 원하는 여성을 성교는 하되 그에 따른 결과인 임신 및 출산을 원하지 않는 사람으로 폄훼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강간이 아닌 다음에야 남녀가 성교를 한다는 건 응당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라는 말인데요. 법무부 입장은 한마디로 성교만 하고 책임은 안 지겠다는 점이 못마땅하다는 식으로 보입니다.


여러 부분에서 허점이 보이죠. 우선 조국 수석의 말대로 왜 그 책임을 낙태죄란 형태로 여자만 져야 하는가부터 볼 수 있겠습니다. 법무부의 말대로라면 임신은 여자와 남자의 공동 책임일 텐데 말이죠. 또한 1970~1980년대 산아제한, 특히 심각한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낙태된 여자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는 국가가 낙태를 조장했거나 적어도 보고도 못 본 척했다는 말이 되는데 왜 생명권의 무게가 그때와 지금이 달라져야 하는 건지도 이상합니다. 나아가 산아제한처럼 임신과 출산을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발상은 개인의 신체의 자유를 통제하는 쪽으로 나아갈 여지가 있어 더욱 위험한 발상이기도 합니다.


출처 - KBS


오는 26일에는 서울 청계천 한빛광장에서 성차별적 수사 규탄을 위한 시위가 다시 열린다고 합니다. 지난주보다 더 대규모 시위가 되지 않을까 싶군요. 사회는 개개인이 당하는 부당한 차별에 대한 저항으로 바뀝니다. 이 시위를 통해 우리 사회의 차별적인 현실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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