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돌아오는 호국 보훈의 달 6월, 모처럼 제대로 된 현충일 추념식이 거행되었습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 곁을, 이전 정권에 늘 앉아 있던 4부 요인들 대신 원래 그 자리에 앉아 마땅한 분들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목함 지뢰 사건으로 발을 잃은 김정원, 하재헌 중사를 비롯해 국가유공자인 박용규 씨와 아들 박종철 씨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목함 지뢰 사건으로 부상한 개개인에게 돌아갔어야 할 돈을 빼돌려 흉물스러운 발 동상을 세웠던 지난 박근혜 정부와 달리 '사람이 먼저'인 상식적인 대우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 다행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애국의 역사를 통치에 이용한 불행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겠"다면서 "전쟁의 후유증을 치유하기보다 전쟁의 경험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념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청산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울러 문재인 대통령은 애국, 정의, 원칙,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만들어가자고 이야기하며 국회가 동의해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해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제 한 걸음 더 나가겠습니다. 국회가 동의해 준다면, 국가보훈처의 위상부터 강화하겠습니다.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겠습니다. 국가유공자와 보훈대상자, 그 가족이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보상받고 반역자는 심판받는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국민이 애국심을 바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입니다.

 

애국이 보상받고, 정의가 보상받고, 원칙이 보상받고, 정직이 보상받는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개인과 기업의 성공이 동시에 애국의 길이 되는 정정당당한 나라를 다함께 만들어 나갑시다.

 

'국가보훈처' 하면 지난 8년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막은 이상한 정부 기구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으실 텐데요, 그건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상식 없는 극우 인사를 보훈처장에 앉히는 등 기구 자체가 망가져서 그렇습니다. 국가보훈처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참여정부 때 장관급 기구로 격상한 바 있죠. 하지만 이명박 정권 때 차관급으로 격하하여 박근혜 정권에서도 그 상태로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런 주제에 이명박근혜 정권이 안보와 보훈을 얘기했으니 우습지 않습니까?

 

이번에 보훈처를 제대로 되돌려놓자는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장관급 기구로 격상하자는 말을 꺼냈습니다. 최초의 여성 헬리콥터 파일럿이자 진보 성향의 예비역 여군 중령인 피우진을 신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한 것도 그런 의도로 파악됩니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입니다만 국가 유공자들을 나라가 책임지겠다는 뜻이니까요.


출처 - 노컷뉴스


이런 과정은 정상 국가로 재편되는 좋은 일이지만 그간 쌓인 군 관련 적폐는 제대로 청산해야 합니다. 사드 부지 환경 평가를 원점에서 다시 하게 되어, 국방부가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 뒤통수까지 쳐가며 강행하려던 사드 추가 배치가 사실상 내년으로 넘어갔습니다. 국방부와 군피아들이 자초한 일이죠. 사소한 군납 비리부터 국가 안위를 뒤흔드는 거대한 비리까지, 그간 '생계형 비리'라는 터무니없는 말로 국민 혈세를 후안무치하게 빼먹은 군피아들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와 더불어 그동안 미처 신경 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립 현충원 안장에 관한 것인데요, 현충원은 초등학생도 알다시피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분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곳입니다. 하지만 현충원에도 청산해야 할 적폐가 있습니다. 호국영령과 순국선열을 모시기 위한 현충원에 친일파와 민간인 학살, 군사독재 부역자와 관련자들이 함께 묻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현충원이 한국의 야스쿠니 신사도 아니고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 싶으시겠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3.1 운동 정신과 4.19 혁명 정신을 우리나라 정통성의 양대 기둥으로 삼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애초에 현충원 안장 기준부터 이상합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많이 하고 독재자라도 대통령, 장관을 역임하면 그냥 현충 시설에 안장됩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요?

 

제5조 (국립묘지별 안장 대상자) 
 ①국립묘지에는 다음 각 호의 구분에 따른 사람의 유골이나 시신을 안장한다. 다만, 유족이 국립묘지 안장을 원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1. 국립서울현충원 및 국립대전현충원
가. 대통령·국회의장·대법원장 또는 헌법재판소장의 직에 있었던 사람과 「국가장법」 제2조에 따라 국가장으로 장례된 사람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국립묘지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사람이 사망한 후 그를 안장(安葬)하고 그 충의(忠義)와 위훈(偉勳)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宣揚)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만, 위 내용대로라면 대한민국의 가치 구현을 위해 기려야 할 분을 모시는 게 아니라 생전에 성공한 사람을 자동으로 모시는 개념에 가깝습니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던 어처구니없는 판결처럼 말입니다. 


현재 현충원 안에는 민간인 학살자나 군사독재 부역자, 관련자를 제외하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사람만 해도 72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독재나 부정부패 같은 여러 독직 사건을 더하면 100명도 넘어가게 생겼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대표적으로 수년간 시민단체가 이장을 요구한 대전 현충원의 김창룡 준장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의 배후 인물로 지목된 사람인데, 공교롭게도 대전 현충원은 백범 김구 선생과 그의 모친, 아들이 안장된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김구 선생을 두 번 죽이고 있었던 셈입니다.


극우 테러 집단의 대명사로 제주 4.3 사건을 일으킨 서북청년단을 이끈 문봉제도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테러 집단의 장이 단지 이승만의 충견이었다는 이유로 현충원에 있는 겁니다. 전두환의 경우 군사독재와 광주 학살의 장본인이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란죄 판결로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박탈당하여 그 자격을 잃었죠.

 

그 이후 형을 사면받았는데 이런 경우 어떻게 되는 건지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입니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5조 제4항을 보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없는 기준이 있긴 합니다만 전두환 같은 사례가 있으므로 더 구체적인 내용을 추가해야 할 듯합니다. 지금대로라면 자서전에서 자신이 피해자라고 밝힌 전두환이 현충원에 묻히겠다고 주장할 경우 명확하게 반박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생깁니다. 애초에 만주군관학교 출신인 박정희가 제일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다는 것부터가 문제입니다만.

출처 - 오마이뉴스


현충원 안장에 관련된 법과 제도를 정비하여 대한민국 헌법정신과 시민정신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퇴출함이 마땅합니다. 앞으로는 단순 직책에 따른 안장이 아닌 국가와 공동체에 실제로 공헌하고 희생된 사람들이 안장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민간인 학살이나 독재 같은 중죄를 지은 것이 밝혀질 경우 현충원에서 다른 곳으로 강제 이장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할 듯합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우리는 광복절이 돌아올 때마다 총리나 국방장관 자격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일본 정치인들을 지탄했습니다. 당연합니다. 그런데 현충일이면 매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요인, 시민단체들이 기리는 대한민국 현충원에 친일파와 독재자, 학살자들이 합사되어 있다는 건 참으로 모욕적인 일 아니겠습니까? 하루빨리 현충 시설에 관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이뤄지길 기대합니다.

꼬마의 소원

역사를 보면 많은 창조적 선구자들이 고독하고 절망적인 것 같이 보이는 투쟁을 전개한다. …… 그러나 그는 백성은 결코 그들의 안에서 울려오는 진리와 정의에의 갈망의 소리를 오래 외면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역시 잘 안다.


오 기자 대통령님과 악수 못했지? 손을 잡아보고 싶어 그 짧은 팔을 쭉 뻗고 있던데. 나도 꼬마와 악수하는 대통령을 찍고 싶어 기다렸지만, 경호원들이 하도 설쳐대는 바람에 나는 사진을 못 찍고 넌 악수를 못 했구나.
여자아이 하필 내 앞에서 돌아서시잖아요. (악수했다면) 친구들한테 무지 자랑했을 걸요? 아쉬워요. 며칠 손도 안 씻었을 텐데요.
오 기자 그분이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오실 때, 그때는 꼭 악수할 수 있을 거야.
여자아이 그럴 거예요. 오늘은 운이 없어서 못했지만, 그땐 꼭 손을 잡아 드릴 거예요. 수고 많이 하셨다고.
오 기자 왜 그렇게 악수하고 싶은 건데?
여자아이 대통령이시잖아요. 그것도 우리 동네 대통령이요.
오 기자 그래. 5년 후에 다시 돌아오실 때 나도 이 자리에 너랑 같이 있으면 좋겠다. 그럴 수 있길 바라며 이 기자 아저씨랑 악수, 어때?
여자아이 꿩 대신 닭으로요? 음, 좋아요. 아저씨도 그때 꼭 다시 오셔야 해요.

‘너, 내가 닭띠인 줄 어떻게 알았지?’ 농담 한마디 못 하고 황급히 꼬마와 헤어졌다. 나는 아직도 그 꼬마의 말을 기억한다. 아마도 순진한 여자아이는 그날, 대통령이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하지만 꼬마의 소원은 어른의 입장에 의해―사정이야 어떻든 간에―깨지고 말았다. 어떤 낯으로 그때 그 꼬마를 볼 수 있을지. 어떤 경우든 약속, 특히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그 꼬마에게 직접 한 약속은 아니지만 당연히 기대하는 소박한 희망은 약속과 다름없다. 나는 아이의 지금 심정을 듣고 싶다. 하물며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께서야 더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침묵이 폭력보다 더 나쁜 죄악이라며 간디를 비유해 얘기했던 김대중, 계속 침묵만 하실 것인가.

이 꼬마만이 아닌 모든 국민이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국민에 대한 화답을 기다린다. 하지만 현충원에서는 절대 들릴 리가 없다. 갇혔으니까. 국민과 단절되어 있으니까. 편하게 가서 마음을 탁 터놓고 말이라도 걸어보고 싶어도 군인이, 그것도 칼날같이 옷을 다려 입은 장대 키의 늠름한 헌병이 지키고 있는 곳을 자연스럽게 드나들 국민이 얼마나 될까. 곁에 기대어 하소연하고 울음도 터트렸다가 돌아설 땐 마음에 작은 희망이라도 품을 만한 곳으로 현충원은 적합하지 않다. 그곳은 그저 서서 하는 참배나 어울린다. 과연 경례를 받으려고 그곳에 계신 것인가. 김대중은 경례보다도 어깨동무를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마음을 기댈만한 위인이 우리 곁에 있으면 좋겠다.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1931년 40세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1922년 6월 4일자 일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조금 내려가면 조선신궁 공사를 하고 있다. 아름다운 성벽을 파괴하고 장려한 문을 떼어내 가면서까지 굳이 숭경을 강제하는 신사 따위를 거액의 돈을 들여 지으려는 관리들의 속내를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산 정상에서 경복궁 안의 신축청사(조선총독부 건물) 등을 내려다보면 어이가 없어 화가 치밀어 오른다. 백악, 근정전, 경회루, 광화문 사이에 무리하게 비집고 들어 앉아 있는 모습이 너무나 뻔뻔하다. 게다가 기존 건축의 조화를 완전히 깨뜨려 정말이지 볼썽사나워 보인다. 백악산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일본인의 수치로 남게 될 것이다.”
-《조선의 흙이 된 일본인》 중에서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기념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
-《한일교류의 역사》 중에서

김대중, 평생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다간 사람. 그가 얼마나 한국을 사랑했던가. 지역갈등과 민족분열을 넘어 소통과 통합, 화합과 통일을 외치던 그는 한국의 빛나는 미래를 꿈꾸었다. 그런 그가 영원히 잠들 곳으로 현충원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다. 그곳은 민중의 땅이 될 수 없다. 차갑고 쓸쓸한 땅을 떠나 국민의 곁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래야 영원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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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승자 - 김대중, 빛바랜 사진으로 묻는 오래된 약속



2010년 8월 18일 국립 현충원에서 거행된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에 생각비행이 다녀왔습니다. 전날 열린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 문화제처럼 추모하고 싶었지만 평일 아침에 거행된 행사라 참석할 수 없었던 많은 분을 위해 현장을 스케치해 봅니다.


이미 현충원 앞에는 경찰차와 전경 버스가 주루룩 늘어서 있었습니다. 추도를 위해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니 질서 유지를 위해 출동한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전날 추모 문화제 때처럼 믿음보단 위협이 느껴지는 세태가 아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은 18일 오전 10시 묘역이 있는 국립 현충원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추모 문화제 떄와 마찬가지로 시사 만화와 헌시들이 주차장 입구에 늘어서 있었습니다.


추도식장으로 다가가자 추도식 조총(銃)을 위해 도열한 의장대가 보였습니다. 묵념 중 오랜만에 들은 총소리는 생각보다 더 커서 깜짝 놀랐고, 뒤이어 매캐하게 날아오는 화약 냄새가 전쟁 위협이 높아지는 요즘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화환들도 많이 늘어서 있었는데...... 전두환과 노태우까지 화환을 보냈을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전두환의 화환에는 제12대 대통령이란 문구까지 뻔뻔하게 들어가 있더라고요. 이미 전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는 국가 반란에 대한 재판 이후 없어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뻔뻔히 대통령이란 호칭을 쓰다니 염치도 없는 것 같습니다-_-++




추도식은 간결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인사 말씀과 김대중 대통령의 업적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고은 시인의 추모시로 가사를 붙인 김대중 대통령 추모의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그리고 영부인이셨던 이희호 여사께서 김대중 자서전을 헌정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것으로 추도식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김대중 대통령의 묘소에서 헌화와 참배를 드리는 순서가 남아있었어요. 올라가면서 김대중 대통령뿐 아니라 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셨다는 생각에 코가 시큰해 졌습니다.


묘역으로 올라가는데 대부분의 차들은 예의를 지켰지만 어떤 한 차가 현충원 안에서 빵~ 하고 경적을 울리더군요. 사람들이 한꺼번에 이동하다보니 길이 좁아져서 그랬나 봅니다. 체어맨을 타신 걸 보니 높은 분 같은데 그런 상식없는 짓을 하시다니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같이 거창한 낱말을 이런 기초 상식에까지 끌어 와야 할까요?


힘겹게 올라가다 보니 이렇게 여러 생각이 들게 하는 표지판이 생각비행을 안내했습니다. 아마도 이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국립 현충원에 안장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던 거 같습니다.

1주기에 앞서 한겨레 13일자에 난 이번엔 '봉하 물' 들고 광주까지 걸어요 - DJ 서거 1돌 두 대통령 영정 들고 300km 답사 이창희씨(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434971.html )의 사연을 봐도 목적지에 국립 현충원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김대중 대통령 1주기를 추모하며 5.18 민주묘지와 옛 망월동 묘역에 봉하마을 계곡물을 뿌릴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의 승자》의 저자이신 오동명 선생님께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와 나란히 묻혀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 국립 현충원이란 감옥을 나와 국민 가까이에 묻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셨는데, 그분 이외에도 국립 현충원 깊숙한 곳에 잠들어 계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계신 분이 적지 않은 모양입니다. 자격 문제가 아니라 더 국민들 가까이서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일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묘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같이 떠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라는 그분의 포부가 새겨진 돌이 눈에 들어오네요. 그 정의의 강물이 거꾸로 흐르려 하는 이때 한 번 더 새겨 두어야 할 말씀입니다.





당연하지만 뉴스에서 익히 보아온 얼굴들이 대단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희호 여사께서 사람들의 박수 속에 감사를 표한 후 돌아가셨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묘역에는 빨간 줄이 쳐져 있었다는 겁니다. 김대중 대통령 가족 및 측근끼리의 예배 시간과 장소의 협소함으로 처음에 일반인들은 빨간 줄밖에 서있어야 했습니다. 이해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만, 오동명 선생님께서 《사랑의 승자》 본문을 통해 왜 많은 국민들과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그런 장소에 안장 되셔야 한다고 주장하셨는지도 이해할 법 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줄을 서있자니 조금 힘들더군요. 하지만 딸까지 데리고 올라와 제 앞에 선 일본인 어머니를 보자니 약한 소릴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았지만 자식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모님도 상당수였습니다.



이희호 여사까지 돌아가시고 나자 일반인들의 분향과 헌화가 긴 줄을 타고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생각비행도 직접 긴 줄을 기다려 헌화와 분향 그리고 묵념으로 김대중 대통령의 뜻을 기렸습니다. 사람들이 묵념하는 자리에 카메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되어 묘소와 제단은 일부러 찍지 않았습니다.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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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문화제 포스트와 마찬가지로 위에 쓰이지 않은 사진들까지 김대중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도식 사진을 모두 슬라이드로 모아 봤습니다. 현장 분위기를 좀 더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슬라이드를 이용해 주세요^_^


이 사진은 부록입니다. 헌화하려 줄을 서 있는데 밑으로 KBS의 중계차가 보였습니다. 차체에는 KBS는 시청자가 주인입니다.란 문구가 붙어 있더군요. '그러면 말을 좀 들어!'란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독자 여러분과 저만의 비밀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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