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현충일을 앞두고 국립현충원에 있는 친일행위자의 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여론이 주목받았습니다. 군인권센터는 현충원에 현재 친일 군인 56명이 묻혀 있다면서 지난 4일 파묘와 이장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제국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부역한 군인들이 현충원에 묻혀 있는 건 국가적 모욕이라는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친일인명사전》에 따라 지난 4일 발표된 친일 군인은 박정희를 비롯해 국무총리였던 김정렬, 정일권, 국방부장관이었던 신태영, 유재흥, 이종찬, 임충식 등 56명에 달합니다. 이 중 32명은 국립서울현충원에, 24명은 국립대전현충원에 묻혀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정희가 일본 육사 출신으로 만주군 소속 중위로 부역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죠. 국무총리였던 김정렬, 정일권 역시 일본군 대위, 만주군 대위였습니다. 대한민국의 국방부장관이었던 이들도 마찬가집니다. 모두 일본 육사 출신에 계급도 높아 중령, 소령, 대위였습니다. 특히 임충식은 독립군을 토벌하고 다닌 만주군 간도특설대 준위였습니다. 이들의 계급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친일 부역 군인들은 일본에 끌려가 어쩔 수 없이 총알받이 군인이 된 게 아닙니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본제국의 침략전쟁에 충실히 복무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논란에서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백선엽'입니다. 올해 100세가 되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은 사망할 경우 대전현충원 안장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보훈처는 그가 현충원 안장 대상이고 다른 방안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전세 역전의 계기가 된 낙동간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전쟁 영웅으로 알려졌습니다. 그 후 평양전투와 중공군 춘계공세 저지 등 한국전쟁 와중에 풍전등화의 대한민국에 혁혁한 전공으로 희망을 보여준 사람임은 분명합니다. 최고 훈장인 대극무공훈장을 두 차례나 받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 이렇게만 보면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차고도 넘쳐 보입니다.


출처 - YTN


문제는 그에게 과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인 독립군 토벌로 악명 높은 만주군 육군 휘하 간도특설대에서 1943년부터 1945년까지 장교로 복무한 전력이 있습니다. 간도특설대의 일원으로 압록강, 두만강, 상류 일대에서 주로 중국 항일 게릴라 토벌에 종사했다고 하죠. 이때 중국 주도의 항일 게릴라에는 중국인, 만주인과 함께 조선인이 다수 포함돼 있었습니다. 1944년 백선엽은 일본에 맞선 중국공산당의 주력부대인 팔로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는 이유로 일본제국으로부터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백선엽은 자서전에서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만주군 간도특설대로서 복무했으며 일제 패망 당시 만주군 중위였다는 사실은 시인합니다. 그리고 독립군과 직접 싸운 적이 없다고 변명하지만, 간도특설대 자체가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는 일제의 방침에 따라 만들어진 특수부대였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백선엽의 진술은 신빙성이 아주 떨어집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백선엽이 몸담기 전이긴 하지만 간도특설대는 1939년 천보산 전투에서 포로로 잡은 조선인 독립군들을 고문 살해한 전적도 있습니다. 또한 중국 기록을 보면 백선엽이 복무하던 1944년 7월과 9월, 11월에 간도특설대가 무고한 조선인 등을 살해하고 식량을 강탈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백선엽이 일제의 군인, 그것도 간도특설대였다는 사실 자체도 큰 문제지만, 그는 지금까지 복무 사실만 인정했을 뿐 일제에 부역한 과오에 대해 사죄하거나 반성한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사학 비리의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인 선인학원 문제 등으로 수천억 원대의 치부를 한 사람이기도 하죠. 이렇게 과오가 분명한 사람이 과연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3일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친일행위자에 대한 현충원 파묘 및 이장에 대해 응답자의 54%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전쟁 등 다른 공이 있더라도 친일부역자라면 현충원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입니다. 이장에 반대한다는 의견은 32.3%였습니다.

 

출처 - Korea TV

 

지난 3월 1일은 101주년 삼일절이었습니다.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계봉우·황운정 지사 내외분의 유해를 모신 데 이어 '봉오동 전투 100주년'을 기념하며, 카자흐스탄 대통령의 방한과 함께 조국으로 봉환하여 안장할 것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문재인 SNS / 매일노동뉴스

 

그리고 지난 7일 봉오동 전투 승리 100주년을 맞이하여 문재인 대통령은 SNS를 통해 승리와 희망의 역사를 만든 평범한 국민의 위대한 힘을 가슴에 새긴다고 밝혔습니다. 문 대통령은 “봉오동 전투는 임시정부가 '독립전쟁의 해'를 선포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일궈 낸, 무장독립운동사에 길이 남을 승리였다"면서 "이로 인해 독립운동가들은 ‘자신감’을 얻었고, 고통받던 우리 민족은 자주독립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아울러 "독립군 한 분 한 분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은 국가의 책무임과 동시에 후손들에게 미래를 열어 갈 힘을 주는 일"이라며 "코로나 때문에 늦어졌지만 정부는 이역만리 카자흐스탄에 잠들어 계신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조국으로 모셔올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위키백과

청산리 전투 승리 기념 사진  |  출처 - 독립기념관  / 연합뉴스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 대한국민이 일제에 저항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일부 보수 세력의 말처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이전의 과보다는 그 이후의 공을 고려해서 안장을 결정해야 한다는 건 헌법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주장입니다. 이런 논란을 의식했기 때문에 보수가 그리도 '건국절 타령'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군요. 보신과 치부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사람들이 현충원에 그대로 남아 있어도 괜찮은 걸까요? 과반수의 국민과 헌법정신이 답을 묻고 있습니다.

21세기 중국에 황제가 등극했습니다. 현재 중국 주석인 시진핑 얘기라는 걸 다들 아실 겁니다. 중국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인대에서 99퍼센트라는 압도적인 찬성으로 중국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중국 국가 주석은 두 번 이상 맡을 수 없다는 규정이 삭제되었기 때문인데요. 이 개정헌법으로 시진핑은 임기인 2022년을 넘어 영구집권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한 셈입니다. 100페센트 찬성이라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와 기권을 끼워 넣어 99퍼센트 찬성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공산당 농담이 현실이 되는 세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한편 시진핑은 헌법 서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림으로써 마오쩌둥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인 독재의 폐해를 막기 위해 마오쩌둥의 교시로 마련한 중국의 집단지도체제는 이번 개헌으로 와해되었죠. 반부패 작업 명목하에 장쩌민, 후진타오 등 전 주석들의 측근도 모두 제거했고, 국가감찰위까지 설치가 완료되면 측근 감시는 더욱 강화될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실상 시진핑 주석의 1인 체제가 들어서게 되어 명실상부한 21세기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당 원로들과 작가, 학자, 언론인 사이에서 질타가 쏟아졌지만 서슬 퍼런 검열에 잠잠해졌습니다. 이제는 관변학자들이 시진핑을 살아 있는 보살이라고 찬양하는 소리만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출처 - 이데일리


소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기 위한 일본의 개헌 드라이브도 만만찮습니다. 이번에 나온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개헌안, 즉 내각제인 일본으로서는 일본 정부 개헌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안 역시 일당 독재로 국민들을 옥죄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른바 평화헌법인 9조의 개정에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지금까지 헌법 9조에 의해 공식적으로 군대를 가질 수 없게 되어 있었죠. 그러니 9조를 개정하여 일본 국방군을 신설하는 것이 현재 일본 아베 정권의 지상과제이며, 이를 위해 내놓은 개헌안에는 긴급사태발동권, 문민통제 철폐, 개헌안 발의 요건 완화 등등 군에 대한 족쇄를 풀어버리는 안건이 대부분입니다. 아울러 이에 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주의적인 조항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특히 21조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서는 표현의 자유는 보장하지만, 공익 혹은 공적 질서를 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결사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을 박고 있습니다. 그 목적과 결사에 대한 단서 조항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표현의 자유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부득이하게 제한하는 경우 단서 조항을 붙이더라도 자유와 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마저 무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정안 3조인 일본 국민은 국기 및 국가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을 보면 아베 정권을 위시한 자민당 일당 독재가 제한하고자 하는 표현의 자유와 그 목적, 결사에 대한 생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중국과 일본이 개헌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드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도 정부 개헌안이 나왔습니다.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가 지난 1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헌법개헌안 초안을 보고했습니다. 여기에는 대통령 4년 연임제 채택, 수도조항 명문화, 대선 결선투표 도입, 5.18 민주화운동 등의 헌법 전문 포함, 사법 민주주의 강화, 국회의원 소환제 등의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초안을 토대로 국회 통과 가능성을 고려해 현실적인 개헌안을 마련할 것으로 관측됩니다. 대선 당시 공약대로 6.13 지방선거 투표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부치려면 늦어도 이번 달 21일까지는 개헌안을 발의해야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초안에는 3.1 운동과 4.19 민주이념에 이어 5.18 민주화운동, 부마 민주항쟁, 6.10 민주항쟁 등이 헌법 전문에 포함되었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린 촛불혁명은 빠졌죠. 시민혁명으로서의 성격은 분명히 있으나 지난해에 일어난 일이라 아직은 역사적 평가가 완료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부 헌법개정안의 주요 내용으로 눈여겨볼 부분은 미국과 같은 식의 대통령 4년 연임제를 채택하고 선출된 대통령이 민주적 정당성을 담보할 수 있도록 결선투표제를 도입한 점입니다.

 

출처 - 뉴스1


정부 헌법개정안은 삼권분립의 권한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하여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고 실질화하는 한편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데 초점을 뒀다고 하죠. 또한 지방분권이 새로운 국가질서임을 천명하기 위해 자치분권의 이념을 헌법에 반영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분명히 하고 토지의 특수성을 명시해 사회경제적 불평등 완화를 위해 국가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여러 요소가 도입되었습니다. '국민'에서 '사람'으로 기본권을 확대했고 새 기본권도 신설했습니다.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국적이 있는 국민이 아니더라도 마땅히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보장입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국회의원 선거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원칙을 명시했고, 무엇보다 국회의원 소환제와 국민 발안제를 포함했습니다. 국회의원 소환제는 국민이 투표로 국회의원을 파면할 수 있는 제도이며, 국민 발안제는 국민이 직접 법률안이나 헌법개정안을 발안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67.9퍼센트가 개헌에 찬성했습니다. 아울러 국민은 헌법 전문에 추가해야 할 시대정신으로 5.18과 촛불혁명을 꼽았습니다. 국민이 선호하는 정치 형태는 상당히 많은 국회의원이 좋아하는 내각제는 아니었습니다. 지금과 같이 한계가 많은 선거구제에서 현재 수준의 국회의원들이 중심이라면 내각제가 도입된다 한들 옆 나라 일본의 열화된 짝퉁에 불과할 겁니다. 사실상 일당 독재의 유사 민주주의를 민주주의라고 우기는 나라가 될 뿐입니다. 그 점을 대한민국 국민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국민헌법자문특별위원회는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초까지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조사 결과 개헌이 필요하다는 응답은 86.4퍼센트였습니다. 그런데 개헌 쟁점을 숙의한 후 토론을 거친 뒤에는 개헌 찬성 입장이 93.4퍼센트로 늘었다고 합니다. 개헌 시기와 관련해서는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중 이미 중국과 일본은 개악이라 불러 마땅한 개헌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갔습니다. 시민이 주축이 된 촛불혁명으로 헌법정신을 유린한 권력자를 법으로 심판한 우리나라만이라도 민주주의 국가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을 개헌안을 만들어 '사람'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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