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어갑니다. 과연 올해는 어떤 말들이 국가와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또 멀게 만들었을까요? 송년회의 건배사처럼 2017년 한 해 있었던 '말말말'을 가볍게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아마 2017년 나왔던 수많은 말 중에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것이라는데 이견을 가질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이 한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시민들은 1년 전 추운 겨울 광장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쪽엔 탄핵 표결이, 나아가 탄핵 인용이 실제로 될까? 시위를 하면서도 반신반의했죠. 그런 만큼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박근혜 탄핵 심판의 주문이 주는 감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출처 – JTBC

 

“자살 임무를 맡은 로켓맨”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


하지만 2017년 전 세계적으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강 대 강'이 맞붙어 불꽃 튀는 막말의 향연이 더 유명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과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핵미사일 발사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골치 아픈 한 해였습니다. 유엔 연설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로켓맨'에 비유하며 조롱하자 북한은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는데요. 이 때문에 북한의 영문 성명에 들어있던 잘 쓰이지 않던 단어인 'dotard(늙다리)'가 메리엄 웹스터 사전 등에서 검색이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SBS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 나를 주주님으로 불러라.”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



2017년의 경제계 화두는 재벌들의 갑질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폭행 전문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화의 3남 김동선은 자기 회사도 아닌 로펌 김앤장 회식 자리에서 만취해 남자 변소사의 뺨을 때리고,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조폭 영화인 친구의 대사 같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물론이고 내가 돈 주는 너희 변호사들은 나를 주주님을 불러야 한다는 말까지 뿌리며 한화그룹의 수준을 증명했습니다. 반면 갑질에 대해 역대 가장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1월 대기업 경영진과 간담회 후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면서 조금 늦었는데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 때문에 품위가 없는 발언이었다는 비판도 있긴 했습니다만 갑질 뉴스에 분노하는 국민 대부분은 통쾌한 마음이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이 밖에도 올해의 유행어라 할 수 있는 김생민의 “스튜핏! 그뤠잇!”처럼 생활밀착적인 말들부터 여전히 망언을 일삼는 정치권의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아바타입니까.”, 국정원으로부터 1억의 특활비를 받았다는 친박 최경환 의원의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까지 2017년 한해도 말의 스펙트럼은 넓었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 나왔던 말 중에서 영화배우 정우성이 한 말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생긴 것만큼 선행과 평소 정치적 견해를 서슴없이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인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출처 - SBS

 

“어느 순간부터 국민이 권력의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치적 발언이라는 프레임으로 발언 자체를 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 나라와 관련된, 사회와 관련된 발언을 하면 '정치적 발언이 아니냐' 하고 자제시키는 것 같다. 저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제가 하는 발언이 정치적 발언이면 우리 국민 모두 정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관심이 바람직한 정치인을 만든다. 국민의 무관심은 이상한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맞습니다. 2018년에 우리는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더 관심을 보이고 더 과감해야겠습니다. 2017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공휴일인 광복절마저 토요일이라 우울하던 찰나,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라는 대통령 지시가 있었습니다. 지난 4일 휴가에서 돌아온 첫 국무회의 자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광복 70주년을 축하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메르스 사태 등으로 침체된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8월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생각지도 않은 휴일이 생겨 반갑게 여기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과연 마냥 좋아할 일일지 의문이 듭니다.

 

출처 - 한국경제


우선 임시공휴일 지정이 갑작스레 확정되었다는 점이 의아합니다. 국가적 임시공휴일을 불과 열흘 앞두고 결정한다는 건 박근혜 정부의 행정이 전시행정에 불과함을 드러내는 일밖에 안 됩니다. 국가 차원에서 임시공휴일을 이렇게 급작스레 정해버리면 그날 연차를 낸 사람이나 휴가를 쓴 나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 하는 개인적 차원의 아쉬움을 남기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생각할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임시공휴일 지정이 내수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질 경제에 타격을 가하거나 삶의 현장에 혼선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친기업적인(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의 예상과 달리 모든 사업자는 정해진 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월간 계획, 분기 계획, 연간 계획 등이 그것이죠. 그런데 난데없이 열흘 전에 전국 단위 공휴일이 지정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원래 계획이 흐트러지는 셈입니다. 어떻게 보면 정부는 온갖 생색을 다 내지만, 사실상 실질 경제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일단 관공서는 14일에 100퍼센트 쉬게 되지만, 민간 기업은 재량에 맡긴다고 합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재량껏 쉬어도 문제요 안 쉬어도 문젭니다. 갑자기 쉬게 되면 앞서 말씀드린 대로 기존 일정이나 생산 계획이 틀어질 수 있고, 안 쉬면 직원들에게 통상임금의 150퍼센트에 해당하는 휴일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현장 실무를 맡은 기업의 직원들은 당일 일을 하더라도 관공서가 쉬기 때문에 증명서 발급 등 관공서 업무와 연계된 분야는 큰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공무원과 달리 쉬지 못한다는 상대적 박탈감이 더욱 크게 느껴지겠지요.

 

출처 - 연합뉴스


기업만이 아닙니다. 교육 현장도 갑작스러운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일대 혼란에 빠졌습니다. 각종 연수시설은 일정을 조정하느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일선 학교도 방과후학교 등의 처리 방법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교육 일정을 인제 와서 취소하기도 쉽지 않은 일인데, 관공서 등은 100퍼센트 휴무라니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강의 준비를 마친 교사와 강사들도 어그러진 일정 때문에 불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혼란에 빠지긴 마찬가집니다. 방과후학교의 경우 학생들에게 일정 시간 수업을 진행하기로 약속하고 이미 수강료를 받았기 때문에 반드시 시간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정해진 일정대로 진행하지 못하면 방학 중인 8월 14일은 학생들의 학원 수강 일정이 제각각이어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보충수업 한 번으로 끝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대상의 돌봄교실은 공휴일에 문을 닫기 때문에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들은 그날 아이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경우 임시공휴일에 쉬는 건 그림의 떡인 상황이라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 현실적으로 자식 걱정까지 해야 하는 형편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국적인 임시공휴일같이 큰일을 열흘도 안 남긴 시점에 갑자기 정하는 게 과연 정상적인 행정이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학부모가 많은 실정입니다.

 

출처 – 뉴스1


박근혜 정부의 주먹구구식 생색내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임시공휴일로 지정된 14일에 민자 도로를 포함한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주겠다고 전격 발표했는데요. 이는 정부가 한국도로공사와 사전 조율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내용이라는 말이 나돕니다. 26조가 넘어가는 누적 적자를 떠안고 있는 한국도로공사로서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 상황이라 골머리를 앓고 있을 겁니다. 같은 정부 부처끼리도 손발이 안 맞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1969년 우리나라 최초의 고속도로인 경인고속도로 개통 이후 처음 있는 일일 정도로 이례적인 조처입니다. 고속도로 무료 이용에 따라 줄어드는 세수는 그렇다 치더라도 민자 도로의 통행료를 정부가 면제한다고 결정했다면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이 손실액마저 한국도로공사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어서 부채가 늘어나게 되겠지요.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친박 출신 낙하산이라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부채를 떠안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정부의 발표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증세 없는 복지 타령은 여당에서조차 헛소리로 치부되는 상태인데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른 선심성 예산 낭비야말로 포퓰리즘 정치가 아닌가 싶습니다.


상황이 이런지라 정부 발표처럼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내수 경기 활성화가 이루어질지 의문이 듭니다. 대통령의 한마디로 급작스럽게 결정되는 임시공휴일이 아니라 법제화된 제도에 따라 미리 정식으로 지정되는 대체 휴일제에 따른 휴일이었다면 내수 경기 진작 혹은 활성화 효과를 예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강조한 바와 같이 불과 열흘을 앞둔 시점에 갑작스레 결정된 임시공휴일은 사회적 혼란을 가중하는 불안 요소가 다분합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결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8월 14일은 여름 휴가의 정점을 이루는 시점인데, 임시공휴일 지정으로 통행료 면제까지 겹쳐 교통대란이 예상됩니다. 한국도로공사는 최악의 교통대란이 우려된다며 교통량을 예측조차 못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급조된 임시공휴일로 줄어든 세수에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을 비용으로 환산한다면 오히려 낭비라는 역효과가 우려될 정도입니다.

 

출처 - 메트로


지난 2013년 대체 휴일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며 대체 휴일 하루당 경제 손실이 10조에 이른다고 설레발치던 경제계 총수들이 웬일인지 이번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정식으로 도입하는 대체 휴일제조차 반대하던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갑작스러운 임시공휴일은 더욱 큰 손실을 야기할 텐데 말이죠. 이번에 박근혜 정부가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내세운 경제효과가 1조 3000억 원이었습니다. 경제계 총수들의 계산법을 따른다면 8조 7000억 원이나 손해인 셈입니다. 그런데 재벌 총수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건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출처 – SBS


저희 생각으로는 8.15 특별사면에 재벌 총수들을 포함하기 위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그들만의 짬짜미가 아닌가 합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이번 특사는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예정입니다. 법무부가 마련한 사면 대상자 초안을 보면 경제인 사면 대상자에 SK 최태원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얼마 전 기사에서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 역시나입니다. 이대로 사면 대상자가 확정된다면 박근혜 정권의 대선공약 중 하나였던 경제사범 사면 불가도 쓰레기통에 들어가게 됩니다.  

출처 - 민중의소리

출처 - 미디어오늘

출처 - 경향신문

 

휴일은 기분 좋게 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같은 거대한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침묵했습니다. 그러고는 휴가에서 복귀한 뒤 자신이 무슨 왕이나 되는 양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며 국민의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면서 대단한 시혜를 베푸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그 실상은 재벌 총수들의 특별사면과 같이 정계와 재계의 뒷거래에 따른 결과임이 분명한데 말입니다. 임시공휴일을 마음 편히 쉬기는 아무래도 틀린 것 같습니다.


얼마 전까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달라는 읍소형 광고가 인터넷과 신문을 뒤덮었습니다. 삼성물산의 광고를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한 분이 많으셨을 줄 압니다. 여기에 찬성하지 않으면 간악한 해외 투기 자본인 헤지펀드 엘리엇이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의 경영권을 강탈해갈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게 하는 광고였기 때문이지요. 자본주의와 이윤추구라는 명제의 최첨단을 달리는 주식시장에서까지 애국심 마케팅을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이것도 삼성이 하는 것이라 뭔가 다른 걸까요?


출처 – YTN


물량 공세에 가까운 광고 덕분인지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이 가까스로 가결되었습니다. 주주총회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가결될 수 있었는데, 69.5퍼센트가 이에 찬성했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와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헤지펀드인 엘리엇이 합병 무효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어 향후 삼성그룹의 향방은 아직 미지수입니다.

 

출처 - 울산매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단순한 두 회사의 합병이 아니라 삼성그룹 전체 지배 구도를 짜기 위한 수순입니다. 다른 재벌들도 그렇지만 삼성그룹은 계열사들끼리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순환출자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순환출자는 오너 입장에서 적은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어느 한 회사가 공격을 당하면 그 회사 하나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지배권이 모조리 넘어갈 수도 있다는 위험성도 따릅니다. 

 

삼성그룹 전체의 정점에 있던 이건희 회장의 사망 소식이 언론에 떠돌기도 할 정도로 그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기 때문에 삼성 오너 일가로서는 부회장인 이재용을 중심으로 하루속히 지배구조를 재편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그들은 전 직원을 동원해 주주들에게 위임장을 받기 위해 전화를 돌리기 바빴습니다. 그리고 오너 일가의 지배구조를 공고화하기 위한 방책으로 주요 주주인 엘리엇을 돈에 눈이 먼 탐욕스러운 벌처 펀드로 매도하기 바빴죠. 급기야 앞서 말씀드린 감성팔이 물량 광고까지 동원하게 되었습니다.


일개 삼성 재벌의 경영구조나 영리만을 목적으로 한 자본주의적 발상 등도 비판할 여지가 많겠지만, 생각비행은 국민연금과 박근혜 정권의 입장 등에 초점을 맞춰 이 문제를 들여다보려 합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가결될 수 있었던 건 삼성물산 지분의 11퍼센트를 보유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합병 가결 선인 66.6퍼센트를 겨우 2.9퍼센트 차로 넘긴 이번 합병에서 국민연금의 지지가 없었다면 성사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들어주었다는 데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박근혜 정권이 대선공약의 기치로 내건 경제 민주화, 그중에서도 가족이 소유한 재벌들을 견제하여 한국 경제의 혁신을 가져오겠다던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렸다는 겁니다. 의결권 자문기관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과 서스틴 베스트가 합병안에 반대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권고를 무시한 채 국민연금은 합병 찬성에 표를 던졌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삼성재벌에 대한 박근혜 정권의 패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삼성공화국이니 재벌공화국이니 하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님을 방증하는 일이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둘째, 더 직접적인 문제점은 그간 연기금 고갈 타령으로 더 걷고 덜 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던 국민연금이 무려 이틀 만에 3000억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세금을 이 합병안으로 인해 날려버렸다는 사실입니다. 합병에 반대하라는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의 권고를 무시하고 삼성 편을 들어주었으나 예상을 뒤엎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는 폭락을 거듭했습니다. 이 때문에 국민연금은 이틀 만에 30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을 봤습니다. 그 돈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국민연금에서 나온 것이었죠.

 

매매와 매도도 상식을 벗어났습니다.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군인연금 등 연기금은 6월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1250억 원어치 순매수한 반면 제일모직 주식은 1197억 원어치 순매도했습니다. 합병 법인의 지분을 계속 보유하려면 상대적으로 싸진 제일모직 주식을 사 모으는 편이 유리하지만 연기금은 그 반대로 매매를 한 겁니다. 자기네 돈이 아니라고 이렇게 막 써도 되는 걸까요? 갈팡질팡한 연기금의 잘못된 투자는 고스란히 국민의 불이익으로 돌아올 겁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러놓고 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은 공공기관으로서 국가기관과는 거리가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는 이번 사태와 비슷한 경험을 한 바 있습니다. 현대 오너 일가의 무리한 토지 거래였죠. 현대그룹 본사를 세운다면서 시가의 3배가 넘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삼성동 부지를 샀지만, 무리한 투기로 말미암아 기업 가치와 주가가 곤두박질치고 현대그룹의 위기설마저 나올 지경이었습니다. 당시 현대 오너 일가의 무리한 땅 투기에 대해 외국인 주주들이 비난하자 현대는 이를 쓸데없는 간섭으로 매도했죠.


국외 자본의 도덕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기업을 소유하려 드는 재벌 오너 일가와 이를 무비판적으로 편들어주는 정부의 행태는 정경유착 외에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습니다. 이런 비이성적인 전례는 국가의 신뢰와 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작년에 있었던 세월호 사고, 올해 터진 메르스 사태 등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크나큰 타격을 입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돌발적인 일보다 기본적인 시장경제 질서마저 유린하는 재벌들의 전횡과 거기에 친재벌적인 춤사위를 곁들이는 비이성적인 기관들과 이런 행태에 침묵하는 경제 전문가들과 전문 기관이야말로 대한민국호의 앞길을 가로막는 더 큰 암초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만날 당하기만 하는 국민도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 경제의 문제점이 그저 해결될 리는 만무하니까요. 변화의 필요를 느끼는 시민이 더욱 깊고 넓게 연대해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몇 달 전에 2분기 1퍼센트 성장을 장담하던 정부와 한국은행의 전망이 엉터리 예측이었음이 판명 났습니다. 실제 성장률이 0.3퍼센트에 그쳤기 때문이지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예측과 달랐던 것은 메르스 사태와 가뭄이라는 돌발변수 때문이라며 해명했지만,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위원은 "메르스 사태가 시작되기 전인 4~5월에 이미 수출이 마이너스였고, 투자 지표도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지난해 8월 주택시장 정상화를 명분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등 부채 확대에 기반을 둔 경기 부양책을 내세워 가계부채를 어마어마하게 늘렸습니다. 허구한 날 사고가 터지고, 양극화와 빈부 격차는 날로 늘어나는 가운데 점점 늘어나는 가계부채로 인한 경제 위기를 걱정해야 할 상황입니다.  

 

지난 7월 22일 미국 뉴욕 주는 패스트푸드 식당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약 1만 7400원)로 인상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주의 특성상 뉴욕 주의 변화를 필두로 다른 주도 뒤따르는 효과가 나타날 겁니다. 이에 최저 임금 15달러 운동을 주창했던 노조 및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은 모두 함께 기뻐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정점을 달리는 미국에서조차 이런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지난 7월 6일 열린 제10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다음 날인 7일 11차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성의 없는 사용자 위원 측의 인상안에 분노한 노동계 위원 전원이 항의하며 퇴장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6년 최저임금은 노동계 위원의 참석 없이 결정되었죠. 문제는 또 있습니다. 최근 정부가 노동개혁 방향을 기업을 위해 '쉬운 해고'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가 제시하려는 취업규칙 변경 기준 가이드라인과 일반 해고 기준 절차에 관한 가이드라인이 일방적으로 기업에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지요. 청년 일자리 창출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서도 이것이 실상 노동자의 임금을 깎는 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이 따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인 사면에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때에 박근혜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 17명이 청와대에서 모인다고 합니다. 지난 22일 두산 회장이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인 박용만이 기자간담회에서 SK의 최태원 회장과 한화의 김승연 회장을 사면 대상자에 포함시켜 달라며 노골적으로 요청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 중 하나는 경제사범의 사면 불가였죠.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에 어떤 결정을 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사면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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