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 다음 달로 다가오고 코로나19 사태로 정국이 혼미한 상황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숟가락을 들이미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 4일 박근혜는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세력에게 힘을 합해달라고 호소하는 자필 편지를 공개했습니다. 그러면서 박근혜와 미래통합당을 지지하는 대구 경북 지역을 다독이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자필 편지는 A4 용지 4페이지 분량이었다고 하죠.


출처 - 연합뉴스


탄핵당한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로 정치권이 술렁였습니다. 총선을 불과 42일 앞둔 시점에 나온 편지이다 보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서로 다른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미래통합당은 신이 났습니다. 박근혜가 자기들을 중심으로 극우 진영이 통합되기를 바란다고 표명했으니까요. 반대로 여권은 박근혜의 편지 공개에 대해 강력한 비난을 보냈습니다. 국정농단과 선거조작 등으로 감옥에 간 사람이 이 시기에 이런 메시지를 낸다는 건 다시 한번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으로서 한 게 아무것도 없었던 박근혜가 다른 일도 아니고 신천지 때문에 확산하기 시작한 코로나19 사태에 대해 말을 얹을 자격이나 있는 사람입니까?   


출처 – 서울의 소리


사이비 종교 신천지의 총회장인 이만희는 오래전부터 정치권에 줄을 대어 친분을 과시해왔습니다. 이번에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에 대해 사과한답시고 인터넷 생중계 자리에 나와 사과문을 읽고 절할 때 보인 손목시계는 박근혜가 대통령 시절 일부 사람들에게만 준 박근혜 기념 시계였습니다. 여기서 시계의 진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지금까지 이만희가 보수 정치권과 결탁해 세력을 강화해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가 신천지 확장에 곤란을 야기할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박근혜 시계로 연출된 것이죠.

 

출처 - MBC


신천지는 2002년부터 이회창 대선 후보를 지원했고 2003년에는 한나라당 대표에 출마한 서청원 의원을 조직적으로 지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2004년 17대 총선 당시에는 이만희가 한나라당 선거 유세에 신자들을 동원했다는 의혹도 있죠. 그 와중에 있었던 신천지 전국체전 축사 자리에 이경재 새누리당 기독교 대책 본부장이 직접 나서자 논란이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06년에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한 맹형규의 출판기념회에 이만희는 신도들과 더불어 참석했습니다.


출처 – 서울의 소리


2006년 이만희는 국회의원이던 박근혜, 황장엽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2007년에는 박근혜의 당내 경선을 돕고자 신천지 신도들을 대거 한나라당 당원으로 가입시키기도 했습니다. 황길중 신천지 수석 장로는 2012년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신천지는 정치권, 특히 개신교 색채가 강한 극우 보수 정당에 계속해서 줄을 댔습니다. 그간 신천지가 합법적/불법적으로 정치 헌금을 준 액수가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루머가 괜히 떠도는 게 아닙니다. 국정농단과 사이비 종교의 밀월 관계는 최순실의 국정농단 이전부터 줄곧 있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 뉴스1


헌법을 위반하고 국정농단으로 감옥에 들어간 박근혜. 허리 수술을 받고 인터넷 방송에 나와 대국민 사과문을 읽으며 국민에게 큰절한, 신천지 신도로부터 선지자로 추앙받는 이만희. 신천지 같은 사이비 종교를 대체 어떤 멍청이가 믿는 거냐고 의아해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100퍼센트는 아니어도 박근혜를 잊지 못하는, 박근혜 편지에 호들갑을 떠는 무리가 상당하겠죠.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건, 박근혜의 망령에 휘둘리고 거짓 선지자의 혀에 현혹되는 이들이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휘두르며 대한민국의 안위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첫눈이 내렸지만 휴일 잘 보내셨는지 여쭙기가 무서운 주말이었습니다. 23일 군인 두 명과 민간인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연평도 포격전의 상처는 다 아물지도 못했고, 28일 일요일부터 시작된 한미연합훈련 시에는 북측에서 또 한 번 포성이 들려와 또다시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소리로만 그치고 대피령도 곧 해제되었지만요.

주말 동안 인터넷에서 재밌지만 의미심장한 사진들을 보았습니다. 23일 연평도 포격전을 처음으로 알린 연합뉴스의 사진을 원본으로 좌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색감과 프레임 등을 바꿔버린 1면 사진들입니다. 《경향신문》《한겨레》《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일간지와 원본이 된 《연합뉴스》의 사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네요.

원본과 비교하자면 《한겨레》의 경우 원본보다 다소 연기가 덜해 보이고, 《중앙일보》의 경우는 마치 핵전쟁이라도 일어난 거 같아 보입니다. 사실 언론사도 기업으로서의 속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자사 신문의 구독자 취향을 현실적으로 무시할 수는 없다는 점을 압니다. 그 연장선상에서 언론사별로 편집 기조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도요.
그럼에도 이런 중대한 사건까지 자기가 보고 싶어하는 현실만을 보려 하고 또 그런 현실만을 골라 의도적으로 보여주려는 일에 언론이 앞장서는 행태는 최소한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요? 명백한 의도를 가지고 노출한 프레임을 통해 그 의도대로 현실이 확대, 재구축 되도록 하는 행위가 과연 언론과 기자의 본분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는 사태 해결을 위한 객관적인 현실 파악에도 혼란을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위 사진뿐 아니라 각 언론사의 기사 역시 각자 자기 입장을 대변하기 급급한 글이 대부분이었죠.

타벨은 록펠러의 삶을 조사하면서 한 개인 안에 선과 악이 공존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록펠러를 오직 선한 존재나 혹은 악하기만 한 존재로 한정하는 일은 전기적인 죄악 그 자체였다. 타벨은 록펠러의 생을 연대기적으로 기술하면서 때로 인정사정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사업적 성취를 선이나 악이라는 감상적인 틀에 맞춰 왜곡하는 오류를 범하지는 않았다. 타벨은 록펠러에 대해 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을 '실로 대단한 스탠더드 오일 The Legitimate Greatness of the Standard Oil Company'이라고 붙이기도 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쓰러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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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비행이 출간한 책《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에 나온 위 내용처럼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가 견지해야 하는 기본 중의 기본은 사실에 입각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아닐까요? 그것을 토대로 토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건 바로 독자들의 몫일 겁니다. 그러니 적어도 독자를 현혹하는 일이 그들의 임무는 아니겠지요. 특정 계층의 나팔수라 불리기 싫다면, 우리나라 언론은 냉정함을 지키며 한 번쯤 초심으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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