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2014년 들어 출간한 세 번째 책, 《브랜드 임팩트》를 소개합니다. 이 책은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부터 메신저 혁명을 이끈 카카오톡까지 한국을 대표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혁신을 거듭한 다양한 브랜드를 소개하는 연대기입니다. 한국 브랜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역사의 한 축이기도 하지요.

브랜드는 '사랑'이다

브랜드는 소비자의 신뢰를 쌓아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합니다. 세계적인 광고대행사 사치앤사치(Saatchi & Saatchi)의 최고경영자인 케빈 로버츠(Kevin Roberts)는 '러브마크(Love Mark)'라는 개념을 이야기했습니다. 러브마크는 소비자로부터 이성을 뛰어넘는 충성도를 획득한 브랜드를 지칭합니다. 고객은 자신만의 러브마크를 가지고 있으며 러브마크와 독특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러브마크는 고객의 기억을 넘어 가슴속에 남는 브랜드로, 친밀함과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합니다. 꼬마에게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뽀로로'가, 군인 아저씨에게는 '초코파이'가, 가톨릭 신자에게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이 마음에 남는 러브마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현재 여러분 곁에 어떤 브랜드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브랜드의 존재 목적은 '브랜드를 사랑하는 소비자'이며 '브랜드가 속한 사회'입니다. 기업이 정감 있는 브랜드 스토리를 들려준다면 소비자는 브랜드와 교감하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만들 것이며, 사람들에게 그 브랜드는 한국 사회의 혁신을 이끈 '위대한 유산'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한국 브랜드 연대기”

한국 브랜드 탄생, 성장, 혁신의 역사 120년

브랜드의 역사와 시대의 흐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브랜드를 소비하는 주체가 곧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브랜드 임팩트》는 한국 근현대사의 큰 흐름 속에서 우리와 함께한 다양한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브랜드의 이야기에는 시대의 정치․사회적 흐름은 물론 우리네 삶의 애환도 담겨 있다. 

한국 최초의 브랜드인 부채표 활명수부터 메신저 혁명을 이끈 카카오톡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혁신을 거듭한 브랜드의 역사는 대한민국의 살아 있는 역사의 한 축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브랜드는 모두 한국에서 만들어졌거나 한국인이 만든 토종 브랜드다. 

《브랜드 임팩트》는 19세기 말 이후 우리 브랜드가 근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한국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주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선도한 각각의 브랜드가 탄생한 배경, 브랜드의 성장과 혁신, 사회적 가치와 영향력까지 더불어 기술했다. 한국 브랜드 연대기는 다음과 같은 시대 구분을 통해 다뤘다.

① 한국 브랜드의 여명: 개항기(1880년대)~일제강점기(1945년)
② 모방의 역사—미제(美製)를 훔치고 미제를 베끼고: 광복기(1945년)~한국전쟁 극복기(1960년대)
③ 한국 브랜드의 베이비붐: 경제개발 시기(1970년대)
④ 3저 호황은 브랜드 호황: 군부독재와 경제성장기(1980년대)
⑤ 브랜드, 생활의 일부가 되다: 기업의 브랜드 경영기(1990년대)
⑥ 브랜드가 빚어내는 새로운 삶의 양식: 세계화 시대의 브랜드 각축전(2000년대 이후)


한국 브랜드 역사의 특징과 미래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대표 브랜드의 특징은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브랜드는 일제강점기에 즈음하여 태동했다. 일본의 한국 침략과 일본의 통치는 한국인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시기에 도입된 제도와 문화는 이전의 것과는 확연히 달랐으며 이 시대를 구가한 브랜드는 결국 이러한 정치․사회적인 틀 안에서 태어나고 대중화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사업가와 기업은 대부분 친일(親日)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나 활명수를 만든 ‘동화약품’처럼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한 기업이나 사업가 또한 적지 않았다.

둘째, 한국의 브랜드는 산업화와 그 궤를 같이한다. 경제개발 초창기에 우리나라 기업은 주로 기술의 국산화를 이뤄 고가의 수입품을 저렴한 국산품으로 대체했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에 제일제당은 저렴한 가격으로 설탕을 대중화했고 1954년에 럭키는 치약을 국산화했다. 또한 현대자동차는 국산 자동차 모델을 개발하여 한국 산업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셋째, 한국의 브랜드에는 정치·사회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브랜드란 사회 속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1920년대에 일제에 대항하는 ‘물산장려운동’은 해방 이후 ‘국산품 애용 운동’으로,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부도 위기에 직면한 토종 기업과 브랜드를 살리려는 ‘애국심 마케팅’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브랜드는 순수한 소비자의 선택만이 아닌 정치적인 입김에 의해 그 ‘생존’이 좌우되기도 했다.

넷째, 한국 브랜드는 세계화의 물결을 탔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사는 개방의 역사였다. 각 분야에서 문호를 열 때마다 “개방하면 망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우리 브랜드는 외국산 제품들과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글로벌 시장까지 나아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한국 브랜드 세계화의 첨병 역할은 주로 대기업이 감당했다. 특히 삼성과 대우는 한국 브랜드 세계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삼성이 세계 초일류 기업의 반열에 오른 반면 ‘세계경영’와 ‘탱크주의’를 주창했던 대우는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하고 해체되기에 이른다.

다섯째, 전자·정보 혁명으로 한국 브랜드는 새로운 역사를 썼다.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국내 최초로 라디오, 선풍기, 텔레비전, 에어컨 등을 생산하며 이른바 가전 혁명을 이끌었다. 토종 기업이 만든 각종 전자제품은 일상생활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소비문화 형태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PC통신 천리안의 시작(1986)은 초보적인 사이버커뮤니티의 시작이었다.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로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한메일의 무료 이메일 서비스, 싸이월드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열풍, 네이버 지식인 검색 서비스, 스마트폰 메신저 카카오톡에 이르는 다양한 브랜드가 성장했다.

여섯째, 한국 브랜드는 혁신의 길을 걸어왔다. 혁신은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가치를 창조하고 전달하는 프로세스를 말한다. 기업은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 개발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한국의 대표 브랜드는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더 실용적이고 편리한 상품 개발을 멈추지 않는다.

일곱째, 한국의 소비자는 민감하다. 어떤 상품이 선택되고 어떤 상품은 외면당하는가는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가치제안에 달려 있다. 고객의 심리를 알고 이에 맞는 마케팅을 전개할 때 사업도 성공할 수 있다. 이를 위해 기업은 고객에게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에 해당하는 가치를 브랜드에 담는다.

과거 한국의 브랜드는 부단한 노력을 경주해왔다. 기술의 국산화로 가격을 낮추되 품질을 높여 수입제품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각종 신기술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급변하는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소비자도 변했다. 품질도 중요하지만 품격 있는 소비를 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늘어났다. 앞으로 우리 기업과 브랜드는 더 큰 사회적 책임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윤 창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제 기업과 브랜드는 책임 있는 자세와 과학적 합리성 그리고 나름의 예술적 감각을 기초로 하여 현실성 있는 답을 제시하며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때에 한국 브랜드 120년 역사를 담아 출간된 이 책은 한국과 세계를 선도할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의 시작이자 새로운 브랜드 임팩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전병길
사회와 경제 문제에 대한 탐구 정신,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혁신가의 삶을 살고 있다.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를 미시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며 우리 경제와 기업의 역사 속에 어려 있는 한(恨)과 매력을 미래지향적인 가치로 풀어내고 싶어 한다. 삶의 현장에서 브랜드를 배우며 미학(美學)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마케팅을 체득하며 시장(市場)과 소비자의 오묘함을 보았다. 마케팅과 사회혁신, 통일문제를 넘나드는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다수의 기업, 공공단체, 비정부기구(NGO), 대학 등을 대상으로 강연과 컨설팅을 해왔다.
정주영의 기업가정신, 앤디 워홀의 상상력, 무하마드 유누스의 실천력을 본받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 한다. 이러한 그를 가리켜 《조선일보》는 ‘새 통일운동의 불씨’로 《국민일보》는 ‘정의로운 자본주의를 설파하는 이’로 표현하기도 했다.
현재 예스이노베이션 경영컨설팅 대표로 있으며, 연세대학교 경영학 박사과정에 있다. 저서로 《새로운 자본주의에 도전하라》(2009, 네이버 오늘의 책), 《코즈마케팅》(2010, 문화체육관광부 우수학술도서), 《사회혁신 비즈니스》(2013) 등이 있다.


본문 중에서

우리 브랜드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정책과 함께 한반도 주변에 이양선이 수시로 출몰하고 중국 청나라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서양 문물이 유입되어 조선에 없던 상품을 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대해 학습하게 되었다. 이후 일제강점, 해방과 한국전쟁, 경제발전, 민주화, 세계화 과정을 거치며 한국의 브랜드는 성장과 발전, 변화와 혁신을 거듭했다. ―16~17쪽

조선인의 독특한 식습관으로 말미암아 자주 생기는 소화불량에 대처하기 위해 전통 궁중비법과 서양식 제약 기술을 융합하여 탄생한 ‘부채표 활명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 등록 브랜드다. 부채표 활명수는 서양의 브랜드가 활개 치던 개화기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한국 브랜드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41쪽

2014년 4월 16일, 온 국민을 슬픔에 잠기게 한 세월호 침몰 사건 당시 배에 타고 있던 승객의 상당수가 카카오톡을 통해 마지막 메시지와 사진을 세상에 남겼다. 그 내용은 사고 당시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했다.
단원고등학교 한 학생이 사고 당일 오전 10시 17분에 부모에게 보낸 “배가 기울고 있어. 엄마 아빠 보고싶어. 배가 또 기울고 있어”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는 수많은 국민의 마음을 비통하게 했다. 이후 세월호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카카오톡 프로필을 노란리본 사진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대한민국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은 이렇게 산 자와 희생자와 실종자를 연결해주는 통합의 기능을 제공했다. ―383~384쪽

 
차례


• 머리말

1 브랜드의 기원

낙인(烙印) 
‘철도’의 등장과 브랜드의 확산
우리 ‘브랜드의 뿌리’ 연구
한국 브랜드 역사의 7가지 특징
한국 브랜드 연대기

2 한국 브랜드의 여명: 개항기(1880년대)~일제강점기(1945년)


우리나라 최초의 브랜드 생명을 살리는 물 부채표 활명수
‘맛’의 혁명을 일으킨 일제강점기 대표 브랜드 아지노모도(味の素)
선진화된 유통 시스템을 도입한 현대식 소비문화의 집약체 화신백화점
신뢰의 상징이 된 버들표 유한양행
격동의 세기를 함께한 언론계의 쌍두마차 《조선일보》《동아일보》

3 모방의 역사—미제(美製)를 훔치고 미제를 베끼고: 
  광복기(1945년)~한국전쟁 극복기(1960년대)


미제와 똑같은 국산 브랜드의 품질 럭키치약
범접할 수 없는 맑고 깨끗한 맛 칠성사이다
대한민국 화장품의 품질과 유통의 혁명을 이끈 아모레퍼시픽 
아련한 추억 그때 그 맛 백설표
한국 전자산업의 살아 있는 역사 금성사(LG전자)
서민의 배고픔을 달래주던 일등공신 삼양라면, 농심라면
한국인의 피로회복제 박카스
삼천리 구석구석 퍼진 동그라미의 물결 삼천리자전거

4 한국 브랜드의 베이비붐: 경제개발 시기(1970년대)


세계로 비상하는 한국인의 날개 대한항공
두꺼비 한 마리가 이룩한 주류계의 성공신화 진로(참이슬)소주
자꾸만 손이 가는 국민과자의 탄생 새우깡
정(情)이 담긴 한국인의 영양간식 초코파이
주부의 마음을 읽는 생활용품 제국 애경
세계를 달리는 우리 기술 현대자동차
한국형 아파트 건설의 교과서 현대아파트

5 3저 호황은 브랜드 호황: 군부독재와 경제성장기(1980년대)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패스트푸드 롯데리아
색다른 개성으로 중저가 패션 시장을 이끈 이랜드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브랜드 프로스펙스
바른 먹거리를 고민하는 신선식품의 선구자 풀무원
한국을 대표하는 국민 통조림 동원참치
전설의 스타 군단 해태
문구류 시장에 피어난 아침의 영광 모닝글로리

6 브랜드, 생활의 일부가 되다: 기업의 브랜드 경영기(1990년대)


대한민국 워드프로세서의 자존심 한글
온가족이 함께 즐기는 도심형 테마파크 롯데월드
월마트를 물리친 한국형 마트의 개척자 이마트
깨끗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대한민국 맥주 시장의 판도를 바꾼 하이트(HITE)
김치냉장고의 블루오션을 개척한 딤채
‘애니콜’에서 ‘갤럭시’까지 정보통신 시장을 주도한 삼성 모바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SK텔레콤

7 브랜드가 빚어내는 새로운 삶의 양식:
   세계화 시대의 브랜드 각축전(2000년대 이후)


인터넷 포털의 절대 강자 네이버
사교육 산업화를 이끈 인터넷 강의 신화 메가스터디
새로운 소비문화의 상징 온라인 쇼핑몰 인터파크
문화 콘텐츠 복합체 한국형 멀티플렉스의 신화 CGV
브랜드 라이선싱의 가치를 입증한 어린이들의 대통령 뽀로로
새로운 브랜드 전략 카드는 삶의 디자인이다 현대카드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나눔을 실천하는 아름다운가게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8 아리랑 임팩트

제품은 사라져도 브랜드는 남는다
한국 브랜드 속 아리랑 DNA
‘명성(Reputation)’을 관리하라
국가 브랜드가 너희를 보증하리라
앞으로 쓸 브랜드 스토리

• 출처


《브랜드 임팩트》 구매하기

교보문고  /  Yes24  /  알라딘  /  인터파크  /  반디앤루니스  /  11번가  /  대교리브로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 기사(한글 반포 565년, 한글의 현실은?)에서 우리의 글자인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 알아보았습니다. 또한 한글은 지배층이 아니라 백성의 문자생활을 편안하게 하겠다는 세종대왕의 의지가 담긴 민주글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가까운 나라 중국에서 "조선에 사람을 보내 문자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한글은 배우기 쉽고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우수한 문자체계였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지금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오늘은 한글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던 안타까운 역사를 돌아본 다음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단체를 여러분께 소개하려 합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한글을 홀대했는지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보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창제시기부터 푸대접을 받은 훈민정음

한글,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훈민정음은 창제 이전부터 수많은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집현전 학자였던 최만리는 한자를 버려선 안 된다며 기존에 사용한 이두(한자의 발음을 따와서 글자를 만드는 방법)를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죠. 하지만 세종대왕은 이런 신료의 반대를 무릅쓰고 훈민정음을 창제하고서 서두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훈민정음 서두(출처: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의사)소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에 어리석은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그 뜻을 (글자에)실어서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으니라. 내가 이를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개의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서 날로 씀에 편안하게 할 따름이다.

우여곡절 끝에 반포된 훈민정음에 대한 반응은 계층에 따라 달랐습니다. 지배층인 양반들은 훈민정음이 아닌 한문 위주의 생활을 고수했습니다. 그들은 한글을 언문(諺文, 상말을 적는 문자라는 뜻으로 속되게 이르던 말), 암클(여성들이 쓰는 글)이라고 비하하기까지 했습니다.

반면 여성과 서민층에선 훈민정음을 환영했습니다. 편지나 계약서를 쓰는 데 훈민정음은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궁궐에서 생활하는 궁녀들이 주고받는 편지에 많이 썼다고 합니다. 훈민정음은 처음엔 조금씩 확장되었으나 몇 년 전에 발견된 정조의 어찰을 보면 왕도 훈민정음으로 편지를 썼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겨레의 문자인 한글을 탄압한 일본 제국주의

근대로 넘어오면서 한글은 체계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한글을 '국문'이라고 하고, 모든 법령은 국문을 바탕으로 삼고 한문 번역을 붙이거나 국한문을 섞어서 쓰도록 했습니다. 민간에선 주시경이 《대한국어문법》을 저술하여 한글을 정리했고, 이후 많은 학자가 한글은 지속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조선어학회 같은 모임에서 한글 연구와 보급을 지속함으로써 많은 이가 한글을 깨쳤습니다.

조선어학회 회원들-수난동지회 기념(출처: 네이버 지식사전)


하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점령하자 백성의 한글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일제는 한국인을 압박하는 방법으로 1936년 〈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을 공포했고, 1939년 4월부터는 학교에서 국어과목을 없애고, 신문과 잡지를 폐간시켰습니다. 그 대신 모든 학교에서 일본어로 수업을 받고 '가나'로 된 책을 읽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암울한 시기에 '조선어학회 사건'이 터집니다. 일제는 한국어 사전 편찬을 주도한 순수 학술단체인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 단체로 몰아 관련자를 구속하고 혹독한 고문으로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구속된 33명 중 16명을 '조선민족정신을 유지한 내란죄'를 적용하여 함흥형무소에 가뒀습니다. 이때 돌아가신 분들도 계십니다. 결국 이 사건으로 조선어학회는 해산되었고, 한국어 사전 원고가 증거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여러 부분이 사라지는 안타까운 일도 겪어야 했습니다.

외국어에 밀려 홀대받는 한글

1945년 8월 15일, 감격스러운 해방을 맞이하여 드디어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제 한글을 쓴다고 막을 외부세력도 없고, 한글을 쓴다고 해서 잡아가는 세상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광복 후 66년이 지난 현재 한글을 대하는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요? 자유롭게 한글을 쓸 수 있는 여건임에도 한글은 영어에 밀려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영어 열풍은 어릴 때부터 시작해 12년간 공교육에서도 계속 이어집니다. 한국은 원어민 수업, 영어 과외 등으로 한글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더 열심히 배워야 하는 나라가 되어버렸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 영어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합니다. 대학교 들어가자마자 학생들은 취업을 위해 열심히 영어를 배웁니다. 유명 토익학원에 다니며 높은 토익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에 반해 한글에 대한 관심은 극히 미미합니다. 체계적인 작문 교육을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기도 어려워 합니다. 게다가 일본어와 영어의 영향으로 수동형의 언어활용이 급증했고, 영어 단어를 한글에 섞어 쓰기도 하는 등, 한글의 정체성마저 훼손하는 이상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시민패트롤' '서울리뉴얼' '시니어패스' 등 이상한 한영혼용 표기를 시나 도 같은 행정기관이 남발하고 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내세우는 구호들. 대부분 영어로 되어 있다.


직장, 군대, 공공단체 등에서 어려운 한자말, 일본어 잔재, 한영혼용 단어 등을 남발하는 문제가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특별한 발표를 할 때 'Keynote 한다'는 말을 쓰거나 'Presentation 한다'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느끼거나, 영어 단어를 섞어서 말하는 것을 고급스러운 언어생활로 착각하는 이도 많습니다.

최근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을 상징하는 구호를 내걸고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은 'Hi Seoul - Soul of Asia'라는 영어 구호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는 한글을 사용하면 왠지 촌스럽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렸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날 한글을 무시하는 세태를 잘 지적한 글이 있어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마더하세요"?... 이건 학대입니다>

한글을 아름답게 씁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글을 아끼고 가꾸는 노력을 이어가는 단체도 있습니다. 한글 관련 단체라고 해서 하는 일이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음만 먹으면 실천할 수 있는 일들을 소개하면서 우리의 말글살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먼저 소개해드릴 단체는 '한글문화연대'입니다. 한글문화연대는 외국어 남용으로 오염되어가는 한글을 가꾸어 우리 문화와 학문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1999년 12월에 준비위원회가 구성되어 2000년 2월 정식으로 창립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한글문화연대의 활동은 다음과 같습니다. 한글맞춤법을 널리 알리고 교육하는 한글맞춤법 교실 운영, 방송에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널리 알리고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한 사람을 뽑아 '올해의 아름다운 언어상' 시상, 문화답사, 한글 관련 전시, 한글무늬 옷 제작·배포와 같이 다양한 방법으로 한글의 소중함을 알리는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2006년부터는 '우리말 사랑꾼/우리말 해침꾼'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는데요, 우리말 사랑꾼에는 한글을 멋진 디자인으로 승격시킨 디자이너 이상봉 씨를 비롯해 전교생을 이끌고 한글 관련 역사터를 견학시킨 중학교 선생님까지 다양한 분들이 선정되었네요. 우리말 해침꾼에는 〈무한도전〉 프로그램, 강호동 씨, 공정택 전 서울교육감이 선정되었습니다. 통신사인 KT도 선정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Olleh'라는 국적 불명의 신조어를 만들어 홍보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밖에도 한글문화연대는 '새말 찾기 공모전'을 열어 새로운 우리말을 만드는 행사도 개최했으며, 한글무늬 자료집(무료로 이용이 가능)을 만들어 한글을 디자인하고 보급하는 일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네이버 한글한글아름답게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누리꾼에게 알리는 데 포털 사이트 네이버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은 네이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만, 2008년 10월 한글캠페인을 시작한 네이버가 '나눔고딕/나눔명조 글꼴'을 무료로 배포한 일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군요. 단순한 글꼴 배포에 그친 게 아니라 네이버 자체 디자인에도 나눔고딕과 나눔명조 글꼴을 적용하여 많은 사람이 나눔 글꼴을 사용하게끔 유도했습니다. 상업적인 포털 사이트답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견했습니다. 

네이버의 '한글한글아름답게' 기획은 일회성 행사로 그치지 않고 2009년에 아름다운 한글 손글씨 공모전을 개최하여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 이후 공모전 당선작으로 새로운 한글 글꼴을 만들어 배포하고 한글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최근에는 잉크를 30퍼센트나 절약할 수 있는 '나눔글꼴에코'를 만들어 배포했으며, 누구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름다운 한글 문서서식을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국립국어원은 합리적인 국어 정책 추진에 필요한 체계적 조사, 연구와 언어 규범 보완 및 정비를 수행하고 국가 언어 자원을 수집하여 통합 정보 서비스를 강화함으로써 국민 언어생활의 편익을 증진하며 국민의 원활한 의사소통 증대를 위하여 국어 사용 환경을 개선하고 한국어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기반을 조성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습니다. 외래어표기법, 어휘/용어정보, 표준어규정, 어문규정 질의응답, 온라인 강의, 배움마당 등의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표준어 규정, 한글 맞춤법 등의 어문 규정을 준수하여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하는 한국어 사전입니다. 예전엔 민간 출판사나 대학 연구소가 한국어 사전 편찬사업을 주도해왔으나, 기존 한국어 사전에 오른 표제어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를 개선하고자 표준국어대사전을 편찬했습니다만, 우리는 물론 일본조차 쓰지 않는 낱말(한자말)까지 실어놓은 탓에 한자말 비중을 부풀렸으며 일제가 우리말을 한자말로 바꿔 쓴 낱말을 그대로 실었고, 남북한 언어를 아우르려는 욕심에 1992년에 나온 《조선말 대사전》을 그대로 베껴서 섞어냈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인터넷 시대에 앞으로 더 많은 이가 사용할 표준국어대사전이 그 이름에 걸맞게 유용한 사전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말 배움터'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에서 바른 우리 말글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평생교육사이트입니다. 초·중·고등학생들은 배움터와 글쓰기교실, 어문 규정, 철자검사기 등을 통해 바른 우리 말글살이의 바탕을 다질 수 있고, 일반인은 자신이 쓴 글의 잘못이나 일상생활에서 자주 범하는 오류를 교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적으로, 1908년 8월 31일 주시경, 김정진 등이 창립한 '국어 연구 학회'를 모체로 탄생한 단체입니다. 한글날 제정(1926),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1933), 표준말 사정(1936), 외래어 표기법 통일안 제정(1940), 초·중등 교과서 편찬(1945), 큰사전 편찬(1957), 우리말 다듬기(1967), 한국 지명 총람 편찬(1986), 한국 땅이름 큰사전 편찬(1991), 우리말 큰사전 편찬(1991), 국어학 자료 은행 구축(1992), 한글학회 한글정보(컴퓨터 통신 서비스) 개설(1994), 국어학 사전 편찬(1995) 등의 일을 해왔습니다. 1996년에는 비영리 학술단체로는 처음으로 누리집(홈페이지)을 만들어 누리그물(인터넷)을 통하여 갖가지 정보를 제공하고 정보 교환의 마당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정기 간행물로 기관지 한글, 문학한글, 교육한글, 한힌샘 연구, 한글 새소식 등을 펴내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한글을 아름답게 살려 쓰자는 노력을 기울이는 단체가 많이 있습니다. 한글날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국가지정 공휴일로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외국어 홍수 속에서 지켜내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의 한글을 세계화하는 노력에 대해 다음 번 기사에서 소개하려 합니다. 표음문자로서 어떠한 소리라도 옮겨 적을 수 있는 한글의 우수함이 사라지는 세계 각국의 언어를 보존하고 되살리는 데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인간의 행위가 올바름과 온전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으며 관세율이 도덕적으로 온당하게 개정되어야 한다는 사실마저 거부하는 그런 권력자만큼 위험한 존재는 없다.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원출처 : No Man More Dangerous( http://www.youtube.com/watch?v=5Yog7FyAFyA, 'The Erie Hall of Fame'의 유튜브 )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자 생각비행이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이리 명예의 전당 2009년 수상 기념 동영상에 한글 자막을 붙여보았습니다. ^_^

1857년 11월 5일 석유 개척기 시대에 펜실베이니아 시골 마을에서 출생한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매클루어 매거진》에 기고하기 시작해 명실상부한 커리어 우먼으로 자리 잡고, 총 19회에 걸친 연재 폭로기사로 록펠러의 석유 독점기업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해체하는 데 영향을 끼친 이후 만년에 강연을 하며 87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의 일대기를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각비행의 책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분량이 만만치 않아 부담을 느낀 분들은 이 동영상으로 타벨의 일대기를 간략하게나마 한번 정리한 다음 읽으면 한결 편하실 겁니다. 특히 저널리스트를 꿈꾸는 여성들에게 본보기가 될만한 분이 아닐까 싶네요.




첨단 IT 기기 한글 입력 표준, 중국에 빼앗길 위기(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1010080113&mc=m_012_00001, 전자신문)
[사설]한글마저 중국산이 된다면( http://www.etnews.co.kr/news/detail.html?id=201010100048, 전자신문)

주말에 한글날 포스팅을 한 지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참 어이없는 소식입니다. 요약하자면 중국조선어를 자국내 소수민족 언어로 규정하고 스마트폰을 비롯한 첨단기기 한글 입력 방식국제 표준 제정 작업을 멋대로 진행 중이라는 얘깁니다. 동북공정을 비롯해 중국의 오만한 중화주의가 갈수록 심화하는 듯합니다. 이런 오만함은 멀리 보면 중국으로서도 득이 될 게 없는 일일 텐데 말입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여태 잘한 것은 없지요. 각 기업들은 이익 때문에 자사 입력 방식만을 옹호해왔고, 정부한글 수호 의지는 갈수록 흐려지고 있으니까요. 한글날우리나라 국경일 중 유일하게 공휴일에서 제외된 사실만 놓고 봐도 명백하지 않습니까?

기업과 정부가 뒤늦게나마 각성해서 한글 형성 이치에 잘 맞는 표준안우리 손으로 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