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지난 3월 10일 대통령 박근혜를 국민의 이름으로 파면한 날, 생각비행이 한 권의 책을 출간했습니다. 10년 차 초등교사가 학교의 폐쇄적인 문화,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집단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 교육계 전반의 무능과 폭력성 등의 문제를 면밀히 살피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합리적인 의문과 대안을 제시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교육 문제는 복잡하고 실타래처럼 얽혀 있습니다. 해결하기가 어려운 문제이긴 하지만 교사가, 교사의 이름으로, 교사로서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매일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이 숱한 고민의 한 축을 떠안으려 하지 않고서, 산적한 교육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길 기대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교실과 학교 현장에서 경험한 사례를 중심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더 많은 사람과 고민을 나누기 위해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저자가 인기리에 연재했던 글을 다듬고 보완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라는 10년 차 초등교사의 미스터리 추적기는 재미있을 뿐 아니라 귀담아들을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 '보통 사람'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하는 이유


여느 직장이나 조직에 비해 교사 집단에 이상한 사람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교직이라는 직업 자체를 지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넉넉하진 않지만 고정적인 수입에 비교적 여유 있는 휴가를 즐기며 안정된 삶을 꾸리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교직을 찾는다. 그렇다면 안정성을 추구하는 욕구가 큰 사람들 사이에 어떤 특성이 발견되는가? 아니면 교사들이 처한 직업 환경의 특수성이 이상한 교사를 양산하는가?


학창 시절, 교사들에게 크게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교사 개개인은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이다. 대체로 학교에서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고, 선생님이나 부모님 말씀을 충실히 따르는 축에 속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무난히 학교를 졸업하고, 착실하게 임용시험을 준비해 교사가 된다. 소득 수준, 생활양식, 교양 수준도 평범함에 가깝다. 상류층은 아니지만, 딱히 현재의 상황을 뒤엎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회경제적 계층도 아니다. 이들은 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니다 선생으로 학교에 취직하기 때문에 평생 학교가 바라는 도덕적 가치판단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서 '양심을 어기는 것'과 '관습을 위반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존 세력과 마찰을 빚기에는, 너무 착하게 순리대로 살아온 '보통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보통 사람들'은 사회 주류의 가치관, 체제의 속성을 충실히 반영한다. 과거 한국 사회는 (현재보다 더욱) 차별, 권위, 폭력에 무감각했다. 공부 못하는 아이, 가난한 집 아이를 차별하는 것이 당연했고, 교사의 권위와 폭력은 당연한 것을 넘어 '도덕적'인 것이었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한없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과거 교사들의 면면은, 그들 딴에는 나름의 도덕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었다. 학교는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기관 중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에서 그토록 많은 교사가 비리와 악행을 저질렀는지에 대한 의문은 이렇게 풀린다. 즉 당대의 '보통 사람들'인 교사가, 당대의 가장 보편적인 도덕적 가치를 집약적으로 실현해내는 곳이 학교이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의 나긋한 성품 자체를 잘못으로 볼 순 없지만, 사회심리학자의 연구에서 드러나듯이 판이 이상하게 짜이면 가장 위험한 존재로 변모하는 이들이 바로 이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은 맹목적으로 체제에 순응해 본인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 모난 데 없는 성격, 주위 환경과 충돌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맹목과 무비판으로 이어지는 길의 윤활유가 되기도 한다. 유대인을 강제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폴 티베츠, 베트남에서 500명을 학살한 윌리엄 콜리, 프랑스 공화국의 사형 집행인 아나톨 데블레가 그러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들의 극적인 반전이 학교, 군대, 감옥을 비롯한 특정 공간에서 자주 표출되는 것은 그 조직의 구조가 가진 극적인 단순함, 폐쇄성, 그리고 권위 때문이다. 군대에는 계급이 있고, 경찰과 교도관들에게는 법의 집행자라는 권위가 주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과거와 달리 권위와 폭력을 행사하기 쉽지 않은 환경으로 변모하긴 했으나 교사에게는 여전히 학생들을 평가할 권한이 주어져 있다. 교사는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시험문제를 내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권한으로 지금도 여전히 학생에게 절대적 권력을 행사한다.

 

 

출처 -  왜 학교에는 이상한 선생이 많은가?

 

 

▶ 바보 양성소 교대, 이상한 학교의 커리큘럼

 

교대 졸업생 중 한 명으로서 저자는, 교대에서 보낸 4년간의 시간이 예비교사로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건전한 비판의식을 갖춘 성인으로 성장하는 데 방해 요소가 더 많았다는 것이다. 교대는 1학점을 받기 위해 한 달은 리코더, 한 달은 피아노, 한 달은 클래식 듣기 식으로 학생들을 내몬다. 이런 주먹구구식 커리큘럼은 교수들 자리 챙겨주기 외에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다. 넓고 얇게 배우는 대부분의 방법적 내용은 실제 교육 현장과 연계되지 않는다. 교대에서 아무리 피아노로 애국가 반주하기를 연습해봤자 학교 현장에는 피아노 자체가 없고, 지루함을 참아가며 몇 단원의 성취 기준 따위를 달달 외운들, 현장에 나오면 무용지물이 된다. 많은 교대생이 '우리는 졸업해서 초등교사가 안 되면 고등학교 졸업자와 다르지 않다'고 한탄하는 이유가 이런 현실에서 기인한다. 수많은 예비교사가 리코더를 불고, 뜀틀을 넘고, 학습 모형과 초등학교 성취 기준 등을 외워가며 4년을 보내지만, 대학 졸업자로서 전공이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고 성취감을 맛볼 수 없는 환경 속에 존재한다.


반면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수학·과학 성취도 추이변화 국제비교 연구(TIMSS)에서 늘 우수한 결과를 보이는 성공적인 핀란드 교육의 이면에는 '철저한 교사 교육'이 있다. 단순 비교는 어렵더라도 주목해서 봐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핀란드에서는 정규학교 교사가 되려면 반드시 석사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학급 담임교사(초등교사)는 모두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육학을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 과목 전담교사(중학교, 고등학교 교사)는 해당 과목의 석사학위를 취득 후, 별도로 교육대학의 교사 교육과정을 거친다. 또한 핀란드의 예비 초등교사들은 ‘교육학’을 중심으로 공부한다. 한국의 교대 커리큘럼과 임용고사가 '교육과정' 중심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울러 핀란드 교사 양성 과정은 현장 실습을 중요시한다. 핀란드의 예비교사들은 실습 전문학교에서, 실습을 전담하는 교사에게 최소 6~9개월 정도 현장 교육을 받는다. 한국의 예비교사들이 4년간 통틀어 1~2개월 정도의 교생실습을, 별다른 기준 없이 배정된 교실에서 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교대에서 배운 내용,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공부한 내용이 현장과 연계되지 않으니, 신규 1~2년 차 내내 헤매고, 상처받고, 소진되다가 3년 차쯤에 방전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무엇보다 핀란드에는 임용고사가 없다.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부터 확실하게 뽑고, 철저히 교육해서 교육학의 전문가로 양성한다. 핀란드 교사들은 현장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율성을 인정받고(교과서도 스스로 선정할 만큼), 공무원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는다. 교사들의 노동조합 가입률이 95퍼센트를 넘고, 공익에 기여한다는 자부심과 신뢰 속에 직업 만족도 또한 대단히 높다. 반면 한국에서는 교대생 대부분이 임용고사를 보기 위해 유명 강사에게 강의를 듣는다. 강의비, 교재비, 자료 복사비 등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초, 중,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국가에서 설립한 교사 양성 대학의 학생들마저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가?


이처럼 허무맹랑한 교대의 커리큘럼과 폐쇄적인 학교 구조 속에서 예비교사들은 치열하게 생각하고 고민할 기회가 적다. 이렇게 4년을 보낸 학생들은 '교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말 뒤에서 위선의 겹을 쌓는다.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에서 '위안부'라는 말이 빠지고, 박정희가 '지속적 경제 성장을 주장하며 유신을 선포했다'고 기술해도 교사는 충실히 정치적 중립을 지킨다. 그런 중립적인 교육의 결과는 어떤가? 허술하기 그지없는 사고와 편 가르기의 폭력이 만연한 사회다. 지역주의의 폐단을 가르치지 않고, 계급문제를 논하지 않고, 독재자 박정희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보인 결과가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로 드러난다.


 

▶ 책임지는 교사가 답이다!

 

스스로 고민하는 교사를 만들지 않는 교육, 체제에 무비판적인 '보통 사람'을 양산하는 교사 양성 과정 때문에 무수히 많은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자신을 관리하고 통솔하는 이들의 권위에 순응하거나 집단의 목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상한 선생으로 전락하고 만다.


보통 사람들이 이상한 선생으로 변모하는 데에는 학교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또한 한몫한다. 일반적으로 교사들은 자기 반 교실 문을 굳게 닫고 여간해서는 공개하지 않는다. 1년에 몇 번 있는 공개 수업은 일상적인 모습이 아닌 경우가 많다. 교사들 간에도 학생들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른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다른 상황의 대화 속에서 혹은 학생들이 전해주는 말이나 행동 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 현장에서 교사는 내 학생, 네 학생을 따져가며 교육해서는 안 된다. '교육의 중심을 학생'에 두고 교사들이 서로 배우고, 나누고, 필요하다면 날 선 비판도 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어야 한다. 수직적이고 억압적인 교사와 학생의 관계, 다른 교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는 폐쇄적인 학교 문화는 이상한 교사들의 횡포에서 학생들을 구해내는 데 엄청난 방해요인이 된다. 그러므로 교사는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뿐 아니라 이웃 학교, 나아가 지역과 국가의 경계까지도 허물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목소리가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면, '교사들은 입 다물고 하라는 대로만 하라'는 교육 당국의 명령에도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환경은 신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과 특수한 이해관계에 결부된 인간들이 만든다. 그러므로 교사의 권위, 교육 시스템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고 인간이 만든 환경의 부산물에 불과한 것을 절대적 기준인 양 휘둘러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이 증언하듯, 성스러운 장막을 두르고 있던 교실은 그 어떤 곳보다 폭력이 난무하는 장소였다. 난무하던 폭력의 많은 부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화되어 재생산되고 있다. 누구 좋으라고 있는지 모를 성스러운 장막 따위는 이제 걷어내야 한다. 교실에 필요한 건 신의 장막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신뢰다.


먹고사는 문제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시민의 의무와 권리에 무관심하고, 자신의 계급적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선동의 먹이가 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짓밟는 지도자를 선출하는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인류가 어렵게 쌓아 올린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파괴한다. 그런 사람들을 길러내는 교육은 존재할 필요도 존재할 가치도 없다. 배움이 아이들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되지만, 지적 갈망과 가능성을 방임하는 교육이어서도 안 된다. 교육이 사회화와 재생산의 도구로만 기능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 편이 낫다. 학생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세계 변화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들의 지적 헌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김현희 

1982년에 대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일반 대학교를 2년쯤 다니다 자퇴했다. 이후 교대에 입학하여 2007년 3월에 초등교사가 되었다. 교사생활 초기에는 주로 고학년 담임을, 최근 몇 년간은 영어교과 전담을 맡아 일했다. 2016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SickAlien’이라는 닉네임으로 학교에 관한 글을 연재했다. 영화 보는 것이 취미인 평범한 한국의 평교사다.

 

 

차례

 

책을 펴내며 | 교사의 책임

 

01 10년 차 초등교사가 푸는 교육계 미스터리
이상한 선생 질량 보존의 법칙 | 내가 만난 이상한 교사

 

02 권력에 취한 교사들
합리적 의심 | 교사의 권력과 권위

 

03 교권 추락은 교사 스스로 만든 역사
교권은 학생으로부터 나온다 |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 교사의 적은 누구인가 | 다시, 이상한 교사

 

04 보통 사람들
권위에 순응하는 사람들 | 위험한 보통 사람들

 

05 교직윤리를 새롭게 정립하자
교직을 바라보는 관점 | 교사의 직업윤리

 

06 관성의 법칙
사례1.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 사례2. 배구, 배구, 배구! | 관성의 법칙

 

07 교사의 적은 학부모?
극성맞은 학부모라는 프레임 |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 교감, 교장도 교육 현장으로 나오라 | 학부모는 교육의 협력자

 

08 교사로 산다는 것
“너는 공부 잘해서 좋겠다” | 학교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 교사 S와 교사 B | 아둔함과 사악함

 

09 교대는 바보 양성소
예비교사를 바보로 만드는 커리큘럼 | 왜 교대에는 이상한 교수가 많은가 | 교대가 배출한 교사들 | 2년제 교대를 나온 선생님이 내게 남긴 것

 

10 전교조, 분열이 아닌 확장으로
전교조 조합원이 되기까지 | 개혁은 아래로부터 | 학생의 이익은 교사의 이익과 함께한다 | 연대를 위한 물리적 공간 | 받수 받으며 떠나게 하자

 

11 참을 수 없는 도덕 교과서의 경박함
합리적인 판단 능력 성장을 방해하는 도덕 | 감정과 생각을 강요하는 도덕 | 낡고 불완전한 관념을 강요하는 도덕 | 자기계발, 정신승리, 과도한 긍정을 강요하는 도덕 | 현실과 맥락이 없는 공허한 도덕

 

12 유아 수준의 대통령, 어린이 수준의 학교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 | 도덕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13 급식도 교육이다
폐쇄적인 부서 이기주의와 학교 급식 문제 | 부당한 대우에 시달린 막말 조리종사원들

 

14 관료제 유토피아
무상급식, 복지인가 시혜인가? | 무책임의 윤리, 악마는 디테일 속에 | 마법의 단어: 빨갱이, 종북좌파, 외부세력 | 부실 급식 사태 속 괴물, 관료주의 | 학교운영위원회는 왜 급식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을까?

 

15 교사의 지적 헌신 그리고 민주주의
‘융합’, 학습에 늘 효과적인가? | 구체적 조작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항상 옳은가? | 학생들이 전문가처럼 지식을 ‘융합’ ‘창조’할 수 있을까? | 지식 교육이 필요 없다는 헛소리 | 지식은 끊임없이 변한다 | 지식은 구속이 아닌 자유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2013년 들어 세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제목은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약 40년 가까이 학생들을 교육하다 정년퇴임한 선생님의 철학을 담은 교육에세이입니다. 저자인 김용택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 현실을 바꾸기 위해 전교조 활동, 방송 출연 및 제작, 신문 논설위원 등으로 온몸을 던져 살아오신 분입니다.

이 책에서 선생님은 교직에 있는 동안 만난 제자 이야기, 교사의 변화를 촉구하는 이야기, 교실에서 못다 한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위기에 처한 학교의 현실을 진단하고,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교육 철학을 전파합니다.

오늘날 교실붕괴는 시대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교육정책과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일류대학이라는 학벌이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전국단위 일제고사로 개인은 물론 학급, 학교, 지역사회까지 서열화하는 성적지상주의 교육이 교실을 황폐화시켰습니다. 개인의 소질이나 개성을 무시하고 일류대학 진학만을 강조하는 입시교육이 만든 결과가 곧 교실붕괴가 아니라고 강변할 수 있을까요?

칠순을 바라보는 김용택 선생님은 교육을 살리는 길은 수업기술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외칩니다. 퇴임한 지 7년이 됐지만 학벌, 왕따, 학교폭력, 학교운영위원회, 교육과정 등 산재한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여전히 '현직' 교사를 자처하는 김용택 선생님을 만나보시죠!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 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

▸분야: 인문·사회과학 〉교육에세이          ▸판형: 신국판 변형(140*215)      ▸발행일: 2013년 7월 10일
▸지은이: 김용택        ▸쪽수: 248쪽         ▸가격: 14,000원                      ▸ISBN: 978-89-94502-15-1

“언제까지 교실붕괴 타령만 할 텐가!”

칠순의 현직 교사, 김용택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의 저자 김용택은 1969년 초등학교에 첫발을 내디뎌, 38년의 교직생활 후 2007년 2월 정년퇴임한 교사다. 그는 퇴임 당시 정부의 옥조근정훈장(33년 이상 근무한 퇴임 교사 전원이 대상임)을 거부했다. 훈장을 포기했던 사연을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신문과 방송이 큰 사건이라도 만난 것처럼 부산을 떠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그가 훈장을 거부한 이유는 무너진 학교의 현실을 그대로 두고 정년퇴직을 하면 개근상처럼 훈장을 받아들이는 세태를 질책하기 위해서였다. ‘해방 후 지금까지 수십만 명이 훈장을 받았는데 왜 교육은 이 모양인가?’ 하는 항의의 표시였던 것이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훈장을 거부한 사람이 아니라 훈장 받는 사람이 기삿거리가 돼야 할 텐데, 오히려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술회한다.

초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마산지부장을 맡았던 그는 이른바 전교조 1세대 교사다. 전교조 활동으로 5년간 해직 끝에 복직된 그는 무너진 학교를 되돌리기 위해 1994년부터 마산MBC 라디오광장 〈교육이야기〉에 15년간 고정 출연했다. 생방송으로 학교 현장의 실태를 알리고 교육다운 교육이 무엇인지를 전달하고자 애썼다. 또한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기치를 내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학생인권을 강조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좋은 학교 만들기, 민주적인 학교운영 등의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노동자가 노동법을 모르고 역사의식이 없다면 노예로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들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행복을 찾아주려는 취지로 1999년에 지역의 양심적인 대학교수들과 함께 ‘미래를 준비하는 노동사회교육원’을 개설해 노동자 교육에 참여하면서 10여 년간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교직에 몸담은 40년 가까운 세월을 교육개혁에 헌신한 그는 퇴임 후 한 경남도교육감 후보의 정책 참모를 맡아 무상급식과 공립대안학교 설립을 제안, 이후 공립대안학교 TF팀장을 맡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에서 태봉고등학교 설립에 참여했다. 공립대안학교가 공교육 실패를 자인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어렵게 개교하여 지금은 지원율 3대 1이라는 전국에서 유일한 기숙형 공립대안학교로 개교 4년차를 맞고 있다.

그의 교육개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태봉고등학교에서 대안학교지원센터장을 맡아 일하면서 대안학교조차 들어오지 못해 방황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다 가온누리센터 ‘보리학교’를 세웠다. 학교를 떠났으나 여전히 아이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과 제자의 물적 지원에 힘입어 세워진 ‘보리학교’는 아이들의 쉼터요, 탈학교 학생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희망의 장이 되고 있다. 여기서 그는 지금도 아이들을 현직 교사로 만나고 있다.

칠순을 바라보는 그가 포기하지 못한 일이 또 하나 있다. 홈페이지가 유행이던 2000년에 운영한 개인홈페이지(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의 미련을 버릴 수 없어 지금도 포털 다음에서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라는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교단을 떠난 지 7년. 하루가 다르게 현장 감각이나 정보가 떨어지고 기억력도 줄어든다고 한탄하면서도 학교가 교육을 할 수 있는 장으로, 아이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로 바뀔 때까지 그는 이 길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발령을 받아 교단에 선 교사는 교직원 간에 좋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교장 선생님의 뜻에 따라 교과서를 잘 가르치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편애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대하면 금상첨화라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교사가 과연 그렇게만 살면 될까?

교사 김용택은 사회의 온갖 모순과 위선, 폭력,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현실에서 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느냐고 우리에게 묻는다. 교권상실이나 교실붕괴는 사회적인 병리현상과 환경, 입시위주 교육정책을 먼저 개선하지 않고서는 막을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사회가 병들었는데 교실붕괴만 막겠다는 ‘교실붕괴 타령’은 저질 코미디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2013년 4월 《경향신문》은 한때 서울 강북지역에서 명문고로 불렸던 학교의 한 반 38명 학생 중 20명 정도만 수업 듣고 나머지는 다 잔다는 기막힌 현실을 보도한 바 있다. 학교가 왜 이 지경이 됐을까? 교육부가 수월성을 추구한다며 ‘특목고—자사고—일반계고—실업계고’ 식으로 학교를 서열화했기 때문이다. “학교 오면 지옥 같다”느니 “졸업장 따러 학교 간다”느니 하는 말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 중에 학교를 자퇴하고 대학입학검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 조사(2011. 3. 1~2012. 2. 29 기준)에 따르면 해외유학·이민을 제외하고 학업을 중단한 학생이 5만 9165명으로 파악됐다. 전체 초·중·고교 재학생 1000명 중 9명(0.85%)꼴이다. 학업 중단자는 고교생이 3만 3057명(1.7%)으로 가장 많고, 중학생 1만 5337명(0.8%), 초등학생 1만 771명(0.34%) 순이다.

그동안 전교조를 비롯해 수많은 교육단체와 학자들이 교육위기의 원인이 대학 서열화에 있다며 근본적인 해법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어떤 정권도 이를 풀어내려는 진정 어린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독해력은 물론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들을 하루 16시간씩 교실에 가둬두고 끊임없이 문제풀이를 하는 학교에서 아이들만 나무랄 수는 없는 일이다. 

교사 김용택은 학교가 이제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영어, 수학을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일류학교를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사회는 학벌이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사회이기 때문이다. 삶의 지표가 없는 사람은 불행하다. 행복이 뭔지, 진정한 사람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은 더더욱 불행하다. ‘왜 사는가?’에 관한 자기 나름의 대답이 ‘인생관’이다. 이제 학생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니체나 쇼펜하우어, 칸트의 몇 마디 말을 읊조리는 것은 올바른 철학공부가 아니다.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것, 서로 도우며 의지하고 사는 평범한 지혜를 깨우치는 것이 곧 철학이다. 고의든 아니든, 나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더불어 사는 법’을 깨닫게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을 가르치는 학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김용택

그는 ‘김용택의 참교육이야기(http://chamstory.tistory.com)’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정년퇴임한 교사다. 사람이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보려면 살아온 삶을 살펴보면 된다. 그는 40년 가까이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잘못된 교육을 바꿔보겠다며 전교조 활동, 방송 출연 및 제작, 신문의 논설위원 등으로 온몸을 던지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학교에서 못다 한 얘기를 블로그를 통해 나누기 위해 오늘도 컴퓨터 앞을 떠나지 못한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블로그를 시작하고 5년의 세월이 흐르는 사이 하루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찾는 파워블로거가 됐다.
오늘날 교육에 관한 한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을 정도지만, 이해관계로 얽힌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교육에는 해법이 없다. 아니, 오히려 갈수록 복잡해지고 어려워지는 형국이다. 하지만 그를 만나면 문제가 보인다. 왜 학교가 무너지고 있는지, 왜 아이들이 폭력문제로 시달리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다.
병든 교육을 바꿔보겠다고, 신음하는 아이들을 살려내겠다며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고 있는 사람, 그는 말한다. 교육을 살리는 길은 수업기술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퇴임한 지 7년이 됐지만 학벌, 왕따, 학교폭력, 학교운영위원회, 교육과정 등 산재한 우리 교육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여전히 ‘현직’ 교사를 자처하는 사람, 그를 만나면 왜 이런 길을 걷고 있는지 깊이 공감할 수 있다.

본문 중에서

학생들로 하여금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사는 길인지, 어떻게 사는 게 아름답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살면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가르치지 않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길, 이겨야 산다는 생존의 법칙, 힘의 논리만을 가르치는 교사가 과연 교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믿어도 좋은 걸까? ―108~109쪽

주권이 없는 백성은 노예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교사는 지식전달자일 뿐 삶을 안내하는 참스승일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과거로 충분하다.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164쪽

목차
추천사 | 한 사람의 교사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머리말 | 교육 없는 학교, 방황하는 학생

1부 부끄러운 학교를 말하다

수능날 아침, 늙은 교사의 기도
한 반 38명 중 3명만 공부하는 학교
인성교육도 등수 매기나?
학원에서 인성교육, 그럼 학교는 뭘 하지?
교과부, 누더기 교육과정 또 바꾼다
모두를 피해자로 만드는 선행학습, 누가 좋아할까?
학교가 무너진 지 언젠데 이제야 ‘교실붕괴 타령’인가?
학생인권조례 시행되면 교육 현장이 난장판 된다고?
학생 강제하는 교권으로 어떻게 교육 살리나?
학교폭력과 사회폭력, 어느 쪽이 더 심각한가?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원인을 분석해보니
학교폭력, 학생부에 기재하면 안 되는 진짜 이유
복수담임제, 이런 정책으로 폭력을 근절하겠다고?
학교의 주인은 교장인가, 학생인가?
‘교무회의 의결기구화’, 학교 민주화의 길 열린다
진보적인 교장, 민주적인 교장은 어떻게 다른가?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에게 ‘노동자의 가치’ 가르쳐야
야만적인 현장실습, 교육인가 노동착취인가
수능 끝난 학교, 교육도 끝인가?

2부 교사가 바뀌어야 교육이 바뀐다

일류대학이 교육 목표가 된 나라에서 훌륭한 교사란?
교사 휴게실에서 들은 황당한 이야기
교사! 그는 누구인가?
이런 아이, 어떻게 지도하세요?
교사가 저지를 수 있는 ‘일곱 가지 죄’
아이들의 신조어, ‘남아공’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
교육의 질은 교원의 질을 능가하지 못한다?
교장, 교감은 수업하면 안 되나?
‘교장 십계명’, 들어본 적 있나요?
첫 수업마다 들려주던 이야기
담임은 싫고 부장은 서로 하겠다고?
선생님! 저 대학 등록을 못 했어요
씨×! 학교 안 다니면 그만 아닙니까?

3부 교육위기, 극복할 길 있다

교육이란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거잖아요!
일제고사가 교육을 망치는 이유
사교육·입시지옥, 바꿀 수 있습니다
교과서를 바꾼다고 매국노가 애국자 되나?
지금 경기도에는 천지개벽이
학교운영회의부터 개선하자
무상교육, 무상의료는 꿈일까?
교육다운 교육, 할 수 없나?
학부모가 바뀌어야 교육이 산다
영어를 나랏말로 바꿀 셈인가?

4부 교실에서 못다 한 이야기

교사의 기도
선생님이 사전보다 똑똑해요?
삶의 질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제자의 변화
선생님, 쟤 변태예요!
무엇을 위한 행복인가?
인간이 ‘사회적 존재’라는 의미
선생님, 저 술사모 카페 회원이에요!
당신은 선생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나는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이 싫다
현대사를 알면 세상이 보인다
나는 누구인가?
김예슬 죽이는 더러운 세상
교육다운 교육, 교사부터 달라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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