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새누리당은 지난달 30일 19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총선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비정규직 법안 등이 포함된 '희망사다리 12개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은 이를 "비정규직, 중소기업, 장애인, 학생 등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법안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법안이라면 좋겠지만 그중에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이 법안의 취지는 노동법의 사각지대인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상 속셈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내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겠다면 지금 불법인 사내하청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어야지, 사내하청을 합법화는 법안을 만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사내하도급은 명백한 불법파견을 합법화하여 이를 양성화하겠다는 의도가 있으며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법치질서에 어긋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 이번 새누리당의 법안은 겉으로는 노동자를 위하는 척하면서 기업의 사내하청을 부추기는 법안이요, 사다리를 걷어차서 희망을 절망으로 만드는 법안일 뿐입니다. 
 
생각비행은 6월 출간을 목표로 《입사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이 알아야 할 노동법》이라는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노동자의 권익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는데 이번 새누리당의 '희망사다리법'(통합민주당의 표현에 따르면 '절망미끄럼법') 발의를 목도하면서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이란 시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20년 전에 읽었던 시집 《노동의 새벽》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1984년 출간된 초판본

노동의 새벽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날아 빠질 수만 있다면
아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쳐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가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노동의 새벽》 초판 표기를 따름

《노동의 새벽》은  박노해 시인의 첫 시집으로 1984년에 출간되었습니다. '노동해방'이라는 말에서 딴 '박노해'라는 필명을 가진 얼굴 없는 시인은 곧 노동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91년 7월, 7년의 수배생활 끝에 두 손에 수갑을 찬 박노해의 얼굴이 세상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는 노동현장의 체험을 시로 승화시킨 행동하는 시인이었습니다. 

시인 박노해이기 전에 그는 노동자 박기평이었습니다.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그는 독서와 글쓰기를 즐기고 천주교 사제를 꿈꾸던 소년이었습니다. 하지만 가난은 16세 소년을 서울 빈민가로 내몰았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부에 다니며 체험한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그는 사제의 꿈을 접고 맙니다. 그렇지만 노동 야학에 열심히 참여하며 《사상계》《창작과 비평》 같은 진보적 잡지를 탐독하며 민주회복을 열망하는 집회에 참여하고 노동자 파업에도 적극 가담하면서 현실 참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철공소, 구로공단, 성수공단 등에서 섬유, 화학, 금속 노동자로 지내면서 잔업, 철야, 특근을 반복하는 저임금, 인권유린의 노동 현실하에서는 미래가 있을 수 없음을 절감하고 성수공단에서 최초의 파업을 이끌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경찰에 납치되어 폭행당한 후 살해 위협을 받은 채 어두운 둑길에 버려졌습니다. 이후로 그는 대학생들과 연대를 모색하며 본격적으로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에는 안양 시내버스 정비공으로 취직하여 여러 활동을 펼쳤습니다. 영치회라는 친목회를 만들어 '우리만 좋아지지 말고 다른 노동형제들의 삶도 함께 개선하자'며 공부와 실천을 병행하는 조직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노동현장과 투쟁현장 속에서 노동자 박기평은 1970년대부터 "저는 노동자이자 시인이며 혁명가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고 합니다. 처절한 고통의 시간과 체험이 빚은 결과물이 곧 시인 박노해와 《노동의 새벽》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예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노동현실도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얻은 풍요의 열매를 지금 누가 거두고 있습니까? 1970, 1980년대와 비교해서 노동현장이 더 나아졌으니 이제는 만족해야 할까요? 

'한강의 기적'이란 말로 대한민국의 외형적인 발전을 자랑하지만 실제로는 그런 기적이란 없으며 말없이 이 땅에서 피땀 흘린 노동자가 있을 뿐입니다. 많이 개선되었다는 오늘날의 노동현장에서조차 다치거나 죽는 노동자를 책임지려 하지 않는 기업의 행태는 여전합니다. 사내하청, 하도급, 파견 등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기업의 도구로 쓰이다 버려지는 노동자의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노동의 새벽》이 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채광석과 김사인의 노력이 지대했습니다. 그들은 박노해의 시를 두고 "민중문학의 실체를 찾았다"면서 출간을 위해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학성'과 '위험성'을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그 와중에 나병식이 사장으로 있던 풀빛이라는 출판사에서 간신히 출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오윤과 김봉준의 판화가 인상적인 《노동의 새벽》 초판본에서 작가 소개를 보면 '1956년 전남 출생. 15세에 상경하여 현재 기능공'이라는 간단한 이력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노동의 새벽》이 출간되었을 때 문단은 경악했다고 합니다. 지식인은 아무리 애를 써도 쓸 수 없는 현장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비수 같은 시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이 시집은 1980년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을 아우르는 민중문학의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시를 읽거나 써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정의합니다. 문학이론서를 봐도 이런저런 표현으로 좋은 시란 무엇인지를 규정합니다. 저희가 생각하기에 현실을 토대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행동하며 쓴 박노해의 시야말로 세대를 초월하여 가슴에 깊이 남는 좋은 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지요?

새로운 디자인으로 재출간된 시집

박노해
196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6세에 서울에 올라와 선린상업고등학교 야간부를 졸업했다.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4년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면서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이 되었다. 1989년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했다. 7년의 수배생활을 하다가 1991년 체포되어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복역하던 중 1998년 8월 15일 석방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과 수필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석방 후 그는 2000년부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세계의 분쟁지역과 빈곤지역을 돌며 평화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동의 새벽》《참된 시작》《사람만이 희망이다》《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등이 있으며 두 번의 사진전 <라 광야> <나 거기에 그들처럼>을 열었다.

얼마 전 <후끈한 바자회> 소식을 전해드렸습니다.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에게 제공할 난로를 바자를 열어 재원을 마련하여 전달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행사였습니다만,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의 파업이 일단락되자 다른 비정규직 대학 청소 노동자들을 돕는 방향으로 급선회했습니다. 혹시 이 상황을 모르시는 분은 아래 포스트를 참조하세요.


그 <후끈한 바자회>가 지난 3.1절에 홍익대학교 앞 놀이터에서 열렸습니다. 생각비행도 바자에 책을 기증한 터라 궁금하기도 해서 가족 같은 독자 두 분과 함께 홍익대학교 앞 놀이터로 나갔습니다. 오전에 눈과 비가 내려 날씨가 흐렸지만, 다행스럽게도 오후부터는 햇빛이 나면서 맑아지더군요. 애초 걱정과 달리 이때부터 많은 분이 행사장을 찾아와주셨습니다. ^^



홍익대학교 놀이터로 가는 길입니다. <후끈한 바자회> 포스터가 전봇대에 붙어 있네요.


저희가 도착하니 아직 준비 중이셨습니다. 저희가 조금 일찍 왔거든요.
자원봉사를 나온 분들이 책을 정리하고 계셨고, 몇 분은 행사 포스터를 붙이러 나가신 듯했습니다.


행사장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후끈한 바자회>에 대한 취지, 그리고 현재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의 상황을 알려주는 홍보물들이 보였습니다.


<후끈한 바자회>에 참여한 출판사의 책을 구매하면 판매 금액을 정규직 청소 노동자를 위해 사용합니다. 한쪽에 자발적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모금함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애쓴 끝에 준비가 거의 끝났습니다. 책이 출판사별로 가지런히 정리되었죠? ^^


생각비행의 책이 보입니다. 《사랑의 승자》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설득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사회적기업 창업 교과서》가 전시되어 있군요.


오후부터 많은 분께서 <후끈한 바자회>를 둘러보러 오셨습니다. 우선 둘러보시더니 책을 구매하는 분이 한 분, 두 분 늘어났습니다. 이날 참 많은 분이 책을 사주셨습니다. 행사의 취지에 공감하여 책을 구매한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날 책을 구매하신 분 가운데 득템한 분들도 계실 겁니다. 책 안에 문화상품권과 연극 티켓, 그리고 오페라 공연티켓 등을 숨겨놓았거든요. 또한 저자 사인이 들어 있는 책도 있었는데요, 이런 이벤트에 흥미를 느낀 분들이 많이 사가셨다는군요. ^^


기증받은 중고책과 만화책도 이날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습니다.


아~ 그리고 무료로 타로점을 봐주는 봉사자도 계셨습니다. 저희도 연애운을 점쳐봤습니다. 결과는...음....뭐, 그렇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야겠더라고요. ^^;;;


<후끈한 바자회>가 성사되도록, 온·오프라인에서 열심히 뛰고 활동한 분이 계십니다. 페이스북에서 소셜북스를 운영하고, 바이엔조이에서 소셜커머스를 맡은 오승주 씨입니다. 바쁜 분에게 시간을 조금 내달라고 조른 끝에 <후끈한 바자회>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Q: <후끈한 바자회>는 어떻게 기획한 행사인가요?
A:
홍익대학교 청소 노동자의 파업이 일어난 시점부터 그분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우당탕탕 바자회>라는 행사를 접했습니다. <우당탕탕 바자회>는 정말 청소 노동자분들이 필요한 부분을 도와준 바자회였습니다. 그 행사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습니다.
파업이 진행되면서 날씨가 추워지자 그분들에게 난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난로를 통해 도움을 드리려 했고, 이름도 <후끈한 바자회>로 정해졌습니다. 청소 노동자분들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해고 노동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생계문제더라고요. 그래서 애초 난로로 도움을 드리려 했던 행사가 1000만 원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습니다. 이후 여러 출판사에 제안해서, 정가 기준으로 1000만 원 상당의 책을 후원받아 이렇게 바자를 열 수 있었습니다.

Q: <후끈한 바자회>라는 이름을 듣고 난로를 연상하긴 했습니다.
A:
원래 처음 행사 이름은 <난로 프로젝트>였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난로나 전기요는 이미 많이 들어온 상태였습니다. 쌀을 비롯한 음식과 생필품도 많이 있었죠. 그러나 이분들께 궁극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재원이었습니다. 결국 돈으로 후원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이번 바자에 출판사가 얼마나 참여했나요?
A:
총 29개 출판사가 참여했습니다.

Q: 적은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한데요?
A:
제가 원래 출판계에 몸담고 있어서 아는 분이 조금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자를 열기 전에 여러 가지 작업을 병행했는데요,  그 한 예로 여기 바자에 나온 책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알리는 작업을 했습니다. 바자에 나온 책은 모두 제가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 책들을 블로그와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기증했을 때 얻을 수 있는 효과와 일정에 대해서도 정확히 출판사에 설명했습니다. 감사한 건, 많은 출판사가 이런 취지를 알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참여해주신 출판사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Q: 행사 마감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이번 바자의 가장 큰 관건은 날씨였습니다. 원래 2월 27일에 하려 했다가 오늘로 일정을 급변경했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와서 기온도 내려갔는데요, 그럼에도 많은 분이 찾아주셨습니다. 오전에 흐렸던 날씨가 오후가 되자 햇볕이 나기까지 하더라고요.

Q: <후끈한 바자회>를 열기까지 소셜북스와 바이엔조이의 노력이 큰 역할을 담당했는데요,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A:
예전에 인터넷에서 포털사이트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책과 좋은 책을 내는 출판사들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확산시키고, 홍보하는 역할을 하고자 했죠. 하지만 일이 쉽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생각과 달리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페이스북은 제가 생각했던 바와 아주 잘 맞았습니다. 예전에는 출판사 위주로 마케팅이 구성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례사 비평 같은 홍보문만 나와 책을 구매하려는 사람에게 크게 어필할 수 없었죠.
이런 점을 고려해 소셜북스가 생각한 방법은 독자가 실권을 쥐는 것입니다. 독자가 주도하여 책에 대해 이야기하면 통속적 반응이 아닌 여러 가지 신선한 반응이 나옵니다. 책 마케팅이 출판사에 끌려다니면, 출판사도 죽고 독자도 죽습니다. 하지만 독자가 주도하면 출판사와 독자 모두 살 수 있죠. 소셜북스는 이러한 내용을 고민하여 얻어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셜북스는 리뷰를 쓰는 분들에게 주례사비평은 절대로 쓰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책을 받은 분이 주는 가장 값진 선물은 책에 대한 개인적 생각이 담긴 피드백이나 댓글이라고 말씀드립니다.  
참고로 페이스북을 트위터와 비교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트위터는 '상황'을 공유하고, 페이스북은 '생각'을 공유하는 SNS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예전에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이 출간되었을 때 말도 많고 탈도 많았습니다. 책이 출간되었지만 광고를 할 수 없었고, 책과 관련된 기사를 언론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비합리적인 상황을 유명 트위터리안들이 알리기 시작하자 큰 반향을 일으키며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트위터리안이라 할지라도 '상황'이 아닌 책에 대한 리뷰를 했을 때, 즉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반응은 미온적입니다. 트위터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비교적 '상황'에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겠죠.
반면에 페이스북은 '생각'을 공유합니다. 페이스북 담벼락을 보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세요'라고 쓰여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 무슨 책을 읽고 계세요'라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이란 읽는 행위에서 끝나는 대상이 아니라 책에 담겨 있는 뜻을 생각하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책은 페이스북과 잘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제가 트위터와 페이스북 양쪽에 커뮤니티를 만들어봤습니다만, 페이스북 쪽에서 더 많은 호응이 오고 있습니다.
 
Q: 바이엔조이에 대해서도 설명을 부탁합니다.
A: 바이엔조이는 일종의 사회적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시민단체와 언론운동을 6년간 했는데요, 시사IN 창간운동부터, 촛불집회 때는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국민캠페인)의 광고 불매운동, 진알시(진실을 알리는시민모임)의 신문 배포 등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을 하면서 한계를 느꼈습니다. 촛불 이후 국민은 소비자로서 변해가고 있으며, 사회적 문제를 정치적 언어로 이야기하는 데 한계가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방법을 바꿔 경제적인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뜻이 맞는 분들과 함께하여 바이엔조이를 만들었습니다.
바이엔조이의 목표는 트위터상에서나 혹은 성명서상에서 언급했던 현실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타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시장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구매 기부'가 핵심이 됩니다. 바이엔조이에서 소비자가 물품을 구매하면 정가의 10%가 기부됩니다. 여기서 기부되는 돈을 '미션 머니'라고 부릅니다. '미션 머니'는 이름 그대로 임무를 띤 돈입니다.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이지요. 이번 <후끈한 바자회> 같은 경우, 미션은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를 돕는 일입니다. 미션 수행과정에 대해서는 기부한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정보를 공개합니다.
우리는 현재 바이엔조이의 비즈니스 모델을 좀 더 논의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명확한 내용이 나오면 계속 발표할 예정입니다. 우선 현재 목표는 바이엔조이를 어느 정도 궤도에 올려놓는 겁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일을 해서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바이엔조이 식구가 그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렇다면 이번 <후끈한 바자회>는 바이엔조이의 첫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군요.
A: 맞습니다. 청소 노동자의 원론적인 문제를 당장 해결할 수는 없지만, 그분들의 행동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바자를 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지만 이분들이 어려워하시는 생계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재원을 마련해서 도움을 드리고자 하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Q: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A: <후끈한 바자회>를 진행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중 "왜 홍익대학교 문제만을 놓고 그러는가"라는 질문을 많이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비정규직이라는 큰 범주를 생각해야죠. 저희도 그러했습니다. 가장 먼저 비정규직 문제를 생각했고 구체적으로 파고 들어갔더니 청소 노동자 문제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그 가운데 이슈가 컸던 홍익대학교부터 시작한 셈이죠.
홍익대학교 문제가 일단락되니 저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래서 앞으로 비정규직 문제 타개 시리즈로 프로젝트를 진행해볼까 합니다. 한국의 비정규직은 이제 1000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엄청난 숫자죠. 저나 저와 함께 일하는 분들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이 정말로 많구나'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으로 나온 프로젝트는 없습니다. <후끈 바자회>가 끝나고 논의하여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죠. 앞으로도 많은 분이 저희 프로젝트와 비정규직 문제에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시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오승주 씨는 <후끈한 바자회> 진행을 위해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폐장까지 약 1시간 정도 남았던 상황인지라 할 일이 많기 때문이었지요. 인터뷰를 마무리하고 생각비행도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좀 더 남아서 마지막까지 보고 싶었지만 일정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ㅠㅠ

바자가 끝나고 나서 바이엔조이에서 결과를 통보해왔습니다. 그날 총 30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합니다. 1000만 원 모금이 목표였지만, 급하게 바꾼 일정과 쌀쌀한 날씨를 참작하면 많은 분이 찾아주셨기에 이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앞으로 일정도 공개되었습니다. 3월에 '시민광장'이란 단체에서 온라인 바자를 진행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후끈한 바자회>는 서점 형식으로 참여할 계획이라고 하는군요. 온라인 바자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다시 공지할 예정이니 여러분이 널리 알려주세요.


여러분 덕분에 베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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