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6년 만에 남북미 정상이 한자리에서 만났습니다. 그것도 판문점에서요. 지난 일요일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뉴스를 보며 새삼 놀란 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만큼 초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허프포스트


지난 6월 30일 방한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판문점 남측 지역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악수했습니다. 지난 남북정상회담 때처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인도를 받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공식적으로 북한 땅을 밟았습니다. 이로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현역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군사분계선을 통해 북한 국경을 넘어 북한 땅을 밟은 최초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 첫발이 군사 작전이 아닌 대화와 악수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죠.

 

출처 - KBS

출처 - BBC

출처 - JTBC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뉴시스


지난 2017년 방한 때 트럼프 대통령은 DMZ를 방문하려고 했지만 기상악화 때문에 발길을 돌린 바 있습니다. 트럼트는 이번 방한에 앞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DMZ에서 만나자고 청했습니다. 이런 제안은 최소 일주일 전에 구상했고, 트위터를 통해 전격적으로 제안된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JTBC

 

문재인 대통령과 만났을 때도 제 트윗 보셨죠? 하고 먼저 물었다고 하죠. 이 때문에 대한민국 대통령, 북한 국무위원장, 미국 대통령이 세계 최후의 냉전 군사분계선에서 양복을 입고 만나는 사상 최대의 SNS 번개팅이 성사되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가깝게 만나 악수를 나눈 북미 정상은 인사치레 정도만 할 것이라는 세간의 예측과 달리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1시간에 가까운 실질적인 북미 회동을 이어갔습니다. 5분 이내가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보기 좋게 빗나가고 일반적인 정상회담보다도 긴 시간 대화를 나눈 셈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JTBC

 

회동이 끝나고 다시 만난 세 정상의 얼굴은 굉장히 밝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다시 북으로 걸어 올라가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출처 - JTBC

출처 - 청와대

 

남북미 세 정상의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회동 후 회견에서 속도가 중요한 건 아니라며 북한과 굉장히 포괄적인 딜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고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면서도 오늘은 굉장히 역사적인 날이라며 역사는 이런 시기를 정확히 기록할 것이라며 만남의 의미를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미국은 북미협상을 위한 팀을 만들 것이고 폼페이오 국무장관인 팀을 맡을 것이라며 지켜봐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출처 - 로이터


북한 전문가들은 이번 판문점 회담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에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다운 우발적인 회동이긴 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화답하지 않았다면 불발에 그칠 일이었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내 정치 상황을 반전시키며 컨벤션 효과를 극대화했습니다. 즉 자신에게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켜 재선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이익을 확실히 챙김과 동시에 하노이 쇼크 이후 지지부진했던 북미 간 실무회담의 동력을 되살리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출처 - JTBC

 

최종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실무진이 다시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것만으로도 남북미 모두가 윈윈하는 자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번 회동을 모판으로 삼아 앞으로 실무회담이 이어지고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을 때입니다.


출처 - KBS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적절한 시기에 미국으로 와달라며 백악관에 초대 의향을 밝혔습니다. 그러자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트럼프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께서 평양에 오시면 세계 정치 외교사에 거대한 사변이 될 것"이라면서 말이죠. 백악관과 평양에서 실제 만남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미지수입니다만, 어느 편이든 이뤄진다면 세계 정치 외교사에 남을 어마어마한 사건이 될 것은 분명합니다.


출처 - MBC


주역들을 위해 한 발 뒤로 물러선 문재인 대통령의 중재외교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DMZ 군사분계선까지 함께 이동한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이 충분히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JTBC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미 정상과 헤어지기 전 문재인 대통령의 손을 잡고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상 3차 북미정상회담에 가까운 자리를 주선하고 북미 양국의 국기를 배치한 회담장을 마련하는 등 물심양면으로 뒤에서 협력한 것에 대한 명확한 감사 표시라는 해석입니다.


출처 - YTN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에서 모든 일정을 마치고 떠나기 직전 취재진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모두 물리고는 문재인 대통령과 귓속말을 나눴다고 합니다. 40초 정도 되는 이야기였는데 북미 정상회담 직후라 회담의 결과나 김정은 위원장의 이야기를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죠. 미국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한 중요한 성과가 무엇인지는 앞으로 진행 상황을 통해 알 수 있게 되겠죠.

출처 - 경향신문

 

한국전쟁이 발발했던 6월의 마지막 날인 지난 30일 남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으로 6월이 앞으로는 '평화의 달'로 인식되길 기대해봅니다. 그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무력은 결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고, 평화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만 얻을 수 있음을 인식하고 지금과 같이 남북미 정상이 직접 만나고 소통하며 평화로 가는 물결을 계속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어갑니다. 과연 올해는 어떤 말들이 국가와 사람들 사이를 가깝게 또 멀게 만들었을까요? 송년회의 건배사처럼 2017년 한 해 있었던 '말말말'을 가볍게 한번 훑어보겠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아마 2017년 나왔던 수많은 말 중에 단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것이라는데 이견을 가질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이 한 문장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 시민들은 1년 전 추운 겨울 광장에 섰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속 한쪽엔 탄핵 표결이, 나아가 탄핵 인용이 실제로 될까? 시위를 하면서도 반신반의했죠. 그런 만큼 헌법재판소장 권한 대행 이정미 재판관이 낭독한 박근혜 탄핵 심판의 주문이 주는 감격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출처 – JTBC

 

“자살 임무를 맡은 로켓맨”

“미국의 늙다리 미치광이를 반드시 불로 다스릴 것”


하지만 2017년 전 세계적으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라는 '강 대 강'이 맞붙어 불꽃 튀는 막말의 향연이 더 유명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복형인 김정남 암살과 미국 대학생 웜비어의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핵미사일 발사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고, 그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골치 아픈 한 해였습니다. 유엔 연설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로켓맨'에 비유하며 조롱하자 북한은 트럼프를 '늙다리 미치광이'라며 폭언을 퍼부었는데요. 이 때문에 북한의 영문 성명에 들어있던 잘 쓰이지 않던 단어인 'dotard(늙다리)'가 메리엄 웹스터 사전 등에서 검색이 폭주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SBS



“너희 아버지 뭐하시냐. 허리 똑바로 펴고 있어라. 나를 주주님으로 불러라.”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



2017년의 경제계 화두는 재벌들의 갑질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폭행 전문 그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화의 3남 김동선은 자기 회사도 아닌 로펌 김앤장 회식 자리에서 만취해 남자 변소사의 뺨을 때리고, 여성 변호사의 머리채를 쥐고 흔드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조폭 영화인 친구의 대사 같은 느그 아버지 뭐하시노?는 물론이고 내가 돈 주는 너희 변호사들은 나를 주주님을 불러야 한다는 말까지 뿌리며 한화그룹의 수준을 증명했습니다. 반면 갑질에 대해 역대 가장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11월 대기업 경영진과 간담회 후 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면서 조금 늦었는데 재벌 혼내주고 오느라 늦었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이 때문에 품위가 없는 발언이었다는 비판도 있긴 했습니다만 갑질 뉴스에 분노하는 국민 대부분은 통쾌한 마음이었습니다.


출처 – 서울신문


이 밖에도 올해의 유행어라 할 수 있는 김생민의 “스튜핏! 그뤠잇!”처럼 생활밀착적인 말들부터 여전히 망언을 일삼는 정치권의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아바타입니까.”, 국정원으로부터 1억의 특활비를 받았다는 친박 최경환 의원의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에서 할복자살하겠다.”까지 2017년 한해도 말의 스펙트럼은 넓었습니다.


하지만 올 연말 나왔던 말 중에서 영화배우 정우성이 한 말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잘 생긴 것만큼 선행과 평소 정치적 견해를 서슴없이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한 배우인데요.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출처 - SBS

 

“어느 순간부터 국민이 권력의 불합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정치적 발언이라는 프레임으로 발언 자체를 억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생겼다. 나라와 관련된, 사회와 관련된 발언을 하면 '정치적 발언이 아니냐' 하고 자제시키는 것 같다. 저는 그런 사회적 분위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 제가 하는 발언이 정치적 발언이면 우리 국민 모두 정치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의 관심이 바람직한 정치인을 만든다. 국민의 무관심은 이상한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을 용인하는 것과 다름없다.”

 

맞습니다. 2018년에 우리는 더 정치적이어야 하고 더 관심을 보이고 더 과감해야겠습니다. 2017년 한 해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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