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가을비가 마치 장맛비처럼 내리는 아침입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아침저녁으로 기온 차가 더 심해지겠지요. 날씨가 추워질수록 사람의 온기가 그립습니다. 지난 추억으로 지나간 사람이든, 지금 만나는 사람이든,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그립습니다. 산이 갈색으로 물들고 거리에 플라타너스 잎이 말라 떨어지는 때면 사람이 더욱 그립습니다. 옷을 두껍게 입을수록, 체온의 소중함을 느낄수록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있다면,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어도 마음의 그리움이 사뭇 커지는 계절입니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삶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일은 행복입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일은 즐거움입니다. 황지우 시인의 얘기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약속 장소에서 기다려본 사람은 압니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설레는 일입니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 내가 미리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시적 화자는 약속 장소에 먼저 나가 기다립니다. 약속 장소로 다가오는 모든 발걸음 소리가 기다리는 대상으로 느껴져 가슴이 떨립니다. 바람에 흩날려 거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처럼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정입니다. 바로 설레는 마음이죠.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라는 시인의 표현처럼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시간은 점점 가까워집니다. 오기로 약속한 대상을 시적 화자가 기다립니다. 누군가 문을 열면 그 사람일까 기대합니다. 한 사람 또 한 사람 들어올 때마다 “너였다가 / 너였다가 /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이내 문이 닫힙니다. 기다림의 기대가 무너질 때 설렘은 아픔으로 바뀝니다.
 
그러다 시적 화자의 마음이 “사랑하는 이여”라는 부분에서 바뀝니다. 수동적으로 더 기다리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는 반어적 표현에서 시적 화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약속 장소를 떠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행위가 현실에서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지난 시간 속으로, 지난 추억 속으로 그 사람을 찾아갑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과 추억으로 가는 시간도 길어집니다.

마침내 추억의 시간이 기대의 시간으로 다시 바뀝니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라는 표현에서 느낄 수 있듯, '설렘'에서 '애림'으로 바뀌었던 시적 화자의 심경이 다시 '기대감'으로 변화합니다. 이제는 기다리는 시간이 크게 상관없습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처럼 그 사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적 화자가 다가가는 만큼 기다리는 대상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느새 기다리는 행위가 만나러 가는 행위와 같아집니다. 가슴의 쿵쿵거림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설렘으로 더욱 커집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는 표현처럼 그동안 마냥 기다리던 수동적 행위가 이제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능동적 행위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여러분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니면 쿵쿵거리는 가슴으로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습니까?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만큼 설레고, 애리고, 다시 설레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은 없겠지요. 깊어가는 가을, 연필로 꾹꾹 눌러 편지를 쓰시기 바랍니다. 앞서 소개한 시인의 마음처럼 '기다림'의 행위를 '만나러 가는 행위'로 바꾸어줄 소중한 도구가 될 테니까요.

황지우

195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광주일고를 거쳐 서울대 인문대 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연혁(沿革)>이 입선하고, 《문학과지성》에 <대답 없는 날들을 위하여>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등장했다. 하우저의《예술사의 철학》 등을 번역하며 《시와 경제》 동인으로도 참가했다. 
첫 시집이자 제3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는 전통적 시 관념을 부수면서 기호, 만화, 사진, 다양한 서체 등을 사용하여 풍자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한 《나는 너다》에는 화엄(華嚴)과 마르크스주의적 시가 들어 있는데, 이는 스님인 형과 노동운동가인 동생에게 바치는 헌시다. 
다른 예술에도 관심이 많아 1995년에 아마추어 진흙조각전을 열기도 하고, 미술이나 연극의 평론을 쓰기도 했다. 199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게눈 속의 연꽃》은 초월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노래했으며, 《어느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거다》는 생의 회한을 가득 담은 시로 대중가사와 같은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시집이다. 여기에 실린 <뼈아픈 후회>로 김소월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시집으로 제1회 백석문학상을 받았다.
시집으로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나는 너다》《게눈 속의 연꽃》《저물면서 빛나는 바다》《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등이 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감동을 전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고민을 하는 분들을 위해 생각비행은 《설득의 스토리텔링》을 출간하고 블로그에 설득이나 커뮤니케이션 기술과 연관된 기사를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좀 흥미로운 접근으로 여러분께 '설득의 비밀'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201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후보로 올라(12개 부문) 알짜배기 4개 부문(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의 상을 석권한 영화 <킹스 스피치>는 설득의 비밀을 알려주는 유쾌한 영화입니다. 1939년 세기의 로맨스라는 스캔들을 일으키며 왕위를 포기한 형 에드워드 8세 때문에 버티(조지 6세)는 본의 아니게 왕위에 오릅니다. 왕으로서 권력을 가지고 명예를 누리게 되었으나, 한편으로 책임감과 사명감을 짊어진 그가 두려워하는 게 있었으니 다름 아닌 '마이크'였죠. 버티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마이크 앞에만 서면 말을 더듬는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잘해보려고 무던히 노력하지만, 점점 국왕의 자리를 버겁다고 느낍니다. 그를 지켜보는 아내 엘리자베스 왕비와 수많은 백성도 애가 타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버티가 왕위에 오른 시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불씨가 타오르기 시작한 위험천만한 시대였습니다. 불안한 정세 속에서 자신들을 이끌어줄 좋은 지도자를 원하는 국민을 위해 그는 아내의 소개로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 로그를 만납니다. 삐걱거리는 첫 만남 이후 두 사람은 예전과 다른 기상천외한 치료법으로 말더듬증을 극복하고자 도전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보여주면서 남을 설득하고 이끌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자신감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자신감이란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마음에서 비롯합니다. 버티는 어린 시절부터 엄혹한 부왕을 향한 두려움과 무슨 일이든 자기보다 더 잘하는 형(에드워드 8세)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렸습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엄혹한 시절에 그는 왕족으로서 사명감과 책임감을 통감하고 다방면으로 노력합니다. 하지만 재능이 있어도 그것을 을 제대로 풀어놓지 못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법이죠. 트라우마가 되어 버린 어린 시절의 두려움과 열등감 때문에 버티는 줄곧 자신을 인정하지 못했고, 그 결과 수많은 대중 앞에서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 하고 말문이 막히는 말더듬증에 시달립니다. 말로 백성과 소통해야 하는 왕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죠.



이에 괴짜 언어 치료사인 라이오넬이 내놓은 치료법은 유머와 위트로 버티의 긴장을 풀어주고 칭찬으로 자신감을 북돋워 주면서 친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왕으로서 항상 수직적 관계 속에 살다 보니 친구가 없는 조지 6세를 "버티"라고 부르며 라이오넬은 '평등'한 관계에서만 우러나올 수 있는 '소통'을 이야기합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 이안 커러더스도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비법으로 자신감을 꼽습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당신에게서 권위가 보이지 않는다면 청중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거들먹거리며 거만하게 행동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기회를 빌려 당신이 가진 기량을 자신감 있게 발휘하라는 말이다. 

그러니 다음번에 사람들 앞에 서게 되면 기억하라. 그들은 무언가 듣고 싶어 한다.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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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오넬은 버티와 소통하며 말더듬증을 치료하고 나아가 백성과 친근한 벗이 되어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조지 6세의 아버지인 조지 5세는 백성과의 평등한 관계와 소통을 중요시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백성은 곧 나를 일컫는다."

<킹스 스피치>에는 왕족뿐 아니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다른 위인도 여럿 등장합니다. 대표적인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이끌고 영국을 지켜낸 의회의 수장 윈스턴 처칠이 있군요. 영화 속에서 처칠은 아직 수상이 되기 전의 모습입니다. 처칠은 선천적인 구강 구조 탓에 말을 잘하게 되기까지 각고의 노력을 해왔다는 경험담을 들려주며 조지 6세의 힘을 북돋아 줍니다. 역사상 위대한 연설가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처칠조차 누군가를 말로 설득하는 일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설득의 스토리텔링》의 저자는 다양한 영화를 예로 들어 '설득의 비밀'을 이야기하는데요, <킹스 스피치>라는 영화를 예상했던 걸까요?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

경영진은 술 취한 사람이 몸을 가누기 위해 술집 카운터에 몸을 기대듯 파워포인트를 사용한다. 세상이 불안하게 느껴질 때 파워포인트로 짠 거창한 계획이 그들을 받쳐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처칠이 요즘 시대에 태어나서 자랐더라면 노트북을 불살라버렸을 것이고, 파워포인트의 슬라이드에는 다음과 같은 말만 적었을 것이다.

나의 제안

-  피
-  땀
-  눈물

나는 당신이 파워포인트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다음번에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때는 이렇게 해 보라. 사진이나 그래프를 보여 주는 용도로만 사용하는 것이다. 파워포인트는 그런 용도로는 아주 제격이다. 그 외에는 사용하지 마라. 특히 문자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마라. 입이 있지 않은가? 문자로 전달할 것이라면 차라리 말로 표현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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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스 스피치>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 오늘날 파워포인트와 같은 소통의 도구는 무엇이었을까요? 다름 아닌 '마이크'였을 겁니다. 조지 5세는 왕족이 앞으로 이 앞에서 연기하는 광대가 되어야 한다고 열변합니다만, 버티로서는 그 앞에 서기만 하면 말을 더듬게 되는 공포의 대상일 뿐이었죠.

하지만 버티는 마지막 연설을 시작하면서 '기술'이 '설득'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진정성 있는 호소를 하지 않는다면 마이크를 거쳐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는 그의 목소리는 그저 공허한 메아리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설득을 도와주는 파워포인트라는 도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슬라이드를 현란한 기교로 채워서 다른 이의 눈을 현혹하더라도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킹스 스피치>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는 행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영화입니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이나 면접을 앞두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보시고 그 감흥을 《설득의 스토리텔링》으로 재정리하시길 권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테니까요!  



킹스 스피치
감독 톰 후퍼 (2010 / 오스트레일리아,영국,미국)
출연 콜린 퍼스,제프리 러시,헬레나 본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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