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한 지 일주일인데 역대 최대 흥행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어벤져스:엔드게임〉 얘기가 아닙니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유한국당 해산 청원 얘깁니다.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은 시작된 지 8일 만인 지난 4월 30일 오전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오후에는 12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120만 명은 조두순의 출소를 막아달라는 청원으로 청와대 청원 게시판이 열린 이후로 사상 최다 청원 게시물 기록이었죠. 그런데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의 파죽지세는 계속 이어져 지난 5월 1일 16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이대로라면 200만 명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무시무시한 흥행세 때문에 누리꾼들은 자유한국당이 끝장난다는 의미에서 〈자유한국당:엔드게임〉 청원 게시판 절찬 상영중이라며 조소하고 있습니다.

 

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청와대 청원 게시판)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579682

 

국민들이 분노에 찬 청원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당연히 자유한국당에 있습니다.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법안 등의 패스트트랙과 민생 법안 처리 등을 방해하고 국회법까지 어겨가며 동물국회를 만들어버린 자유한국당에 대한 부정 여론이 폭발한 것이죠. 이번 패스트트랙의 경우 생각비행이 여러 번 말씀드렸다시피 지지 정당, 연령을 가리지 않고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법안입니다. 그런데도 자유한국당은 자기네 지지자들의 의견까지 묵살하며 국회를 마비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모욕감은 자유한국당이 국회 회의장을 점거하고 밤샘 극한 대치 끝에 폭력 시위로 부상자가 속출하면서 극에 달했습니다. 일명 '빠루'라는 노루발못뽑이(쇠지렛대), 쇠망치까지 등장하는 극한 몸싸움이 벌어지며 동물 국회로 전락했습니다. 그전까지 31만 명에 불과했던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불붙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습니다.


출처 - JTBC


하지만 눈에 확연히 보이는 여론 지표조차 무시하고 눈을 돌리는 자유한국당의 발악은 여전합니다. 이른바 '박근혜 키즈'로 불리는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자유한국당 정당해산 청원이 여론조작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그렇지 않다는 청와대의 반박 자료를 보고 바로 수긍했습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의 나경원 원내대표는 청와대 청원이 민주주의 타락을 부추기고 있다며 조작 여부가 의심이 간다고 아직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출처 - 국민일보


청와대 청원으로 정당이 해산될 일은 없겠죠. 실제로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행정부인 청와대가 입법부인 국회의원들의 정당을 해산에 개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이 때문에 자유한국당은 의미없는 짓이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론의 향방을 파악하는 일은 무척 중요합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이라도 해야 나쁜 정치가 망한다"는 말을 기억하실 겁니다.


출처 - 국민일보


나는 이기는 길이 무엇인지, 또 지는 길이 무엇인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반드시 이기는 길도 있고, 또한 지는 길도 있다. 이기는 길은 모든 사람이 공개적으로 정부에 옳은 소리로 비판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못하는 사람은 투표를 해서 나쁜 정당에 투표를 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나쁜 신문을 보지 않고, 또 집회에 나가고 하면 힘이 커진다. 작게는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된다. 하려고 하면 너무 많다. 하다못해 담벼락을 쳐다보고 욕을 할 수도 있다.


반드시 지는 길이 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모든 사람이 나쁜 정치를 거부하면 나쁜 정치는 망한다. 보고만 있고 눈치만 살피면 악이 승리한다.


160만 명이 넘는 국민이 아무것도 몰라서, 청원 하나로 진짜 정당이 해산되리라고 생각해서 이런 일에 참여하는 게 아닙니다.국민은 불의한 정치를 향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있는 겁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이 청원을 디지털 촛불이라고 부르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은 장외 투쟁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그럴수록 여론은 안 좋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자유한국당이 서울광장에서 열겠다던 시위를 불허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자유한국당은 삭발투쟁에 나설 여성 당원 10명을 구한다는 공문을 내보내어 시대착오적이고 성차별적인 인식을 드러냈죠. 촛불집회 맞불집회처럼 더불어민주당 해산청원을 올렸지만 흥행세는 〈자한당: 엔드게임〉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29일 마감인 〈자한당: 엔드게임〉의 결말과 최종 흥행 스코어는 어떻게 될까요? 〈어벤져스: 엔드게임〉보다 더 흥미진진한 〈자한당: 엔드게임〉의 결말 좀 누가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올해 초,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하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사람들의 열화와 같은 참여로 한 달간 23만 명이 넘는 사람이 이 청원에 동의했습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사이트 폐쇄를 요청합니다 : 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113699

 

그동안 알려진 일베의 해악은 노골적인 지역감정 조장과 여성 혐오, 노무현 전 대통령 같은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 세월호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 가짜뉴스 양산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생각비행도 일베의 행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출처 – 일간베스트 저장소

인터넷 사이트 일베, 어떻게 봐야 하나? : http://ideas0419.com/439


청와대의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겼기에 지난 3월 23일 청와대 Live를 통한 답변이 있었습니다. 정혜승 뉴미디어 비서관과 김형연 법무비서관이 나와서 답변했는데요, 김형연 법무비서관의 말에 의하면 정부가 일베를 폐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출처 – 청와대 유튜브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음란물이나 사행성 정보를 비롯해 비방 목적의 명예훼손 등 불법 정보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심의 후 방송통신위원회가 해당 정보의 처리 거부, 정지 또는 제한을 명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은 개별 게시물 단위로 판단하지만 개별 정보의 집합체인 웹사이트 자체를 불법정보로 판단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에서 김일성 찬양 글이 게시된 한총련 사이트를 폐쇄한 조치가 정당하냐는 문제 제기에 대해 계속 지워도 대량으로 반복해 게시하는 현실에서 폐쇄 말고 적당한 대안이 없다며 합헌이 다수 의견이었죠. 이에 견주어 보자면 일베도 폐쇄할 수 있다는 것이 법리적 판단입니다.


보통 불법 정보가 70퍼센트에 달하면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접속을 차단하는데 음란 사이트인 소라넷이나 불법 도박 사이트들이 여기 해당했습니다. 일베가 저지른 성적 모욕, 폭력 위협, 명예 훼손, 성범죄 모의와 인증 등 숱한 사회적 물의를 감안할 때 사이트 폐쇄 기준에 이르렀는지 고려해봐야 합니다. 지난 5년간 제재 건수가 가장 많은 사이트가 일베였음은 물론 해마다 1위 제재 대상도 일베입니다.


출처 – MBC 유튜브


일베가 문제가 많은 건 인정하지만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 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존재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국정 철학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헌법이 규정하듯이 모든 국민은 표현의 자유를 갖는 동시에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일베의 극우적 성향이 문제라기보다는 노골적으로 패륜적이고 여성이나 노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 혐오가 매우 심각한 측면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죠. 김치녀, 맘충, 틀딱충, 똥꼬충 등 약자를 비하하는 용어들도 일베에서 퍼진 추한 표현이었습니다.

 

출처 - 오마이TV


게다가 외국 사례를 봐도 이런 혐오 사이트들이 표현에 그치지 않고 직접적인 행동을 선동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개인 단위의 성적 모욕, 폭력 위협, 성범죄 모의와 인증 등도 셀 수 없고,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집회라는 어이없는 짓을 벌이는 일베의 해악을 똑똑히 본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면서도 소수자에 대한 폭압과 차별, 혐오에 대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단죄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는 미국도 정부가 나서지 않을 뿐 민간의 자율적 규제는 엄격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각종 혐오와 차별이 비등해지고 있지만 차별과 혐오에 대한 법 조항이 구체적으로 없는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유엔을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관련 제도를 만들고 정비하라는 권고를 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일베 폐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요즘 많은 주목을 받으며 사회적 이슈마다 인기를 얻고 있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재미있는 청원 글이 올라와 소개해봅니다. 제목은 〈번역청을 설립하라〉입니다. 1월 22일 현재 약 7300명이 넘는 인원이 동의했으며 2월 7일에 마감됩니다. 이 청원은 말 그대로 외국 콘텐츠를 우리말로 번역해서 펴내는 국가 기관인 번역청을 설립해 더 많은 국민들이 해외의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겁니다.

출처 - 청와대



청원한 사람이 청원 개요에서 밝혔다시피 번역은 한 문명이 다른 문명을 받아들이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에 따라 시대와 국가를 바꾸는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중세 유럽 사회에 십자군 전쟁으로 이슬람의 신문명이 유입되고 오랜 전쟁으로 지배층이었던 봉건영주 대다수가 몰락했습니다. 그 결과 왕권이 강화되어 교권을 능가하면서 르네상스가 일어나게 되었죠. 하지만 신문명인 이슬람의 우수한 콘텐츠를 번역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긴 어려웠을 겁니다. 또한 종교개혁 당시 라틴어 성경이 각 나라의 사정에 맞춰 독일어, 영어 등 자국어로 번역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서양 문명이 존립할 수 있었을까요?


출처 - 경향신문


먼 나라의 예를 들 필요 없이 근대 일본이 적극적인 번역으로 서양 문명을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한때 미국까지 위협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근대 일본의 번역 사업은 지식인들만이 아니라 메이지유신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군사제도나 부국강병에 관한 서적뿐 아니라 태정관, 원로원 같은 권력 기관이 주도적으로 정치, 사상,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의 책을 번역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 힘은 지금까지 이어져 번역 왕국 일본을 지탱하고 있습니다.


출처 - 한국고전번역원


물론 우리나라에 한국고전번역원처럼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같은 한문, 고어로 된 서적들을 오늘날의 한국어로 번역하는 기관이 있긴 합니다. 이 작업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만 현재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번역은 주로 한국어로 된 서적을 외국어, 특히 영어로 번역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국가의 교육 방침과 국민 스스로의 기준은 외국어를 개개인이 직접 공부하여 각자도생하는 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12년 동안 영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예만 봐도 외국어 공부가 번역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어를 공부했다고 손쉽게 소통할 수 있다면 오늘날 많은 외국어 학원이 돈을 벌고 있지는 않겠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외국어를 직접 배워 해당 국가의 콘텐츠와 정보에 접근하는 건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전문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의 외국어 공부에는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가야 합니다. 공교육에서 강조하여 가르치는 영어는 그럴 수 있다고 칩시다. 하지만 프랑스어는요? 독일어는요? 일본어는요? 수천 개에 달하는 언어를 어떻게 다 배울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많은 언어를 습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수준으로 활용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국민 전체에게 도움이 될 정보의 질과 지식의 수준을 올리기 위해서는 국민 대다수가 외국어 능력을 갖추기보다는 한국어로 제대로 번역된 콘텐츠의 양을 늘리는 편이 훨씬 더 낫지 않느냐는 소립니다. 인간은 모국어로 사고할 때 가장 창의적이라고 하니 번역에 드는 시간을 연구와 사고의 효율화로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겠죠. 한편 번역청 같은 국가 기관이 생긴다면 출판사나 학계마다 중구난방인 외국어 번역 기준이나 용어 등도 통일성을 꾀하기가 쉬워질 겁니다.

 


출처 - 앱스토리 매거진


서양의 동양학 연구자들은 연구 대상의 동양 고전이 자국어로 번역되어 있지 않으면 고전 텍스트 번역 작업을 우선시한다고 합니다. 미국과 유럽의 중국학, 한국학 전공의 석·박사 논문 절반 이상이 번역으로 채워진다고 하죠. 하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번역을 학문적 업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풍조입니다. 이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되는 콘텐츠의 질은 고사하고 절대적인 양이 너무 적은 편입니다. 

 

출처 - 국제신문

 

앞으로 인공지능의 딥러닝을 적용한 구글 번역기가 번역의 대세가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질이 높고 많은 양의 해당 언어의 콘텐츠가 필수적입니다. 인터넷으로 세계가 연결된 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시대이기에 우리말로 된 양질의 콘텐츠가 더욱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인공지능의 놀라운 진화 속도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거나 위협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겠으나 아직은 인간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의 후세대가 경쟁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 어쩌면 우리는 번역에 힘을 기울여 양질의 콘텐츠를 쌓아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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