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정확한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천안함 침몰 사건 이후 5주기가 지났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다하다 순직한 이들을 가슴에 묻고 말 못할 한을 안은 채 지난 5년을 보낸 유족들과 천안함 생존자들 역시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부가 공식 주관하는 46용사 추모식은 5주기인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하는군요. 천안함 사건 5주기를 맞은 시점에 대한민국의 국가 안보의 현실을 점검해보겠습니다.
 

출처 - 경북도민일보



북한의 어뢰 공격이란 공식 결론 vs. 정부가 자초한 음모론


대한민국 국방부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근해에서 훈련 중이던 천안함이 갑작스런 폭발로 선체가 두동강 나며 침몰했다고 밝혔습니다. 당시 근처에서 작전 중이던 속초함과 참수리급 고속정과 해경에 의해 58명이 구조되었지만 46명은 사망했습니다. 그중 6명은 시신조차 찾지 못했죠.

 

대한민국 정부와 호주, 미국, 스웨덴, 영국 등 5개국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조사단은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에 의한 폭침이 원인이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지만, 북한은 즉각 자신들이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고 천안함은 좌초된 것이라며 반박했습니다. 합동조사단의 공식 발표 이후 그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와 백서 등이 나왔지만 지금까지도 국내에서는 어뢰설, 기뢰설, 내부폭발설, 피로파괴설, 좌초설, 잠수함 충돌설  등 천안함 사건의 원인을 두고 논란이 가중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각에서는 음모론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한편 북한을 무조건 경계하던 국민의 시각과 안보의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는 일방적으로 북한을 미워하게 만들려 했던 대한민국 국방부가 자처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반복되는 '종북몰이'에 국민은 피로감을 느낍니다. 더구나 군에서 발생하는 잦은 사고와 의문사, 군납 비리, 부실한 위기대응 체계로 말미암아 안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점점 허물어졌습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에도 아랑곳없이 이를 둘러싼 진실 공방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이유가 과연 무엇일까요? 정부의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라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는 일에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과거 사건의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국민을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 말기 바랍니다. 천안함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천안함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처 - 뉴스타파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천안함 사건 5주기를 맞아 <뉴스타파>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시행한 여론조사 결과 26.5퍼센트가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라고 응답했고 20.7퍼센트는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즉 정부의 천안함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전체응답자의 47.2퍼센트에 달했습니다. 반면 "매우 신뢰한다"고 밝힌 응답자는 18.8%퍼센트였고 "신뢰하는 편이다"는 응답은 20.4퍼센트로 나타나 정부의 천안함 결과를 신뢰하는 사람의 비율은 39.2퍼센트로 나타났습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정부와 국방부가 자초한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국방부는 상황 파악과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수차례 발표를 번복하는 사이 교신 일지가 사라지거나 TOD 영상 은폐 의혹이 일어나 국민들이 신뢰를 접기도 했습니다. 국방부는 카이스트의 실험으로 어뢰의 버블제트 효과로 인한 폭침을 입증하려 했으나 이내 민간 영역에서 각종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하지만 군의 대응은 무능력함과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되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흐지부지한 천안함 뒤처리, 지금도 반복되는 군납 비리


천안함 사건 이후 국가 안보와 관련해서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사건 당시 이명박 정부를 비롯해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출처 – 한국관광공사


천안함 2주기였던 2012년만 해도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갔습니다. 천안함 사건의 대응 및 수습 과정을 감사한 감사원은 국방부에 장성 13명을 포함해 25명을 징계하라고 통보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국방부는 6명만 징계했지요. 사실 그조차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짓거리에 불과했습니다. 

 

국방부의 발표대로 천안함이 훈련 중 북한군 어뢰에 의해 폭침된 것이라면 대한민국의 방어 전선이 뚫린 엄청난 안보 위기 사건입니다. 작전에 실패하고 국가 안보를 지켜내지 못한 해군 작전사령부와 합참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최소한 장성급들이 줄줄이 옷을 벗기라도 했어야 말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전투준비 태만과 허위보고 등으로 낮은 수위의 징계를 받은 장성들은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치고 호의호식하거나 심지어 진급을 한 이들마저 있었습니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렸건만 지휘관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니 꽃다운 46명은 대체 무엇을 위해 산화한 것일까요?

 

출처 - 노컷뉴스


"제2의 천안함은 없다"면서 2011년 서북 5도 방어를 전담하는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한 대한민국 국군. 사상 최초로 육해공 합동으로 구성된 부대라 북한에 대적할 병력 증강 및 신형 무기 배치 등 후속 조치를 내놓기도 했는데요, 이조차 최근의 무기 도입 비리 수사를 보면 점입가경입니다.

 

출처 - 중앙일보

 

지금까지 구속된 장성 숫자가 7명인데 그중 6명이 해군입니다. 또 그중 2명은 무려 전직 해군참모총장이고요. 2억 원짜리 싸구려 음파탐지기를 40억 원으로 속여서 함정에 장착해 전함을 어선으로 만들어버린 게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전문가들은 천안함과 그 배에 달려 있던 구형 음파탐지기의 관계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양욱 연구위원/국방안보 포럼: (2010년 당시에) 천안함급 배들은 치워버리기로 됐었어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버리는 물건에 많은 돈을 투입을 안 하잖아요. 그런 상태에서 (천안함이) 간 거였기 때문에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제일 아프고 약한 허점(음파탐지기 등)을 찔린 거죠.


[청와대] 천안함 5주기에도…정신 못 차린 '난파 해군' (JTBC)


작전에 투입된 천안함에 제대로 된 음파탐지기가 달려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만약 국방부 발표대로 북한의 어뢰가 사건의 원인이었다면 폭침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국가 안위의 최전선을 지키는 해군 초계함에 설마 어군탐지기 수준의 싸구려 음파탐지기가 장착되었으리라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승진은 승진대로 하고 "우리가 남이가" 하면서 제 식구는 끔찍이 챙기면서 문자 그대로 "밑에서 뺑이 치는" 장병들의 안전은 안중에 없었던 인면수심의 장본인들이 대한민국 안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민주당 신학용 의원실의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국방부가 전력 보강을 위해 2011년 국방예산에 긴급소요로 편성한 예산은 1157억 원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제2의 천안함 사건을 막기 위한 해군 전력 증강 사업에는 300억 원을 배정했을 뿐입니다. 군함 성능 개량에 172억 원, 음향센서에 89억 원, 레이더에 10억 원 등이 그 사용처입니다. 

 

언론 보도를 따르면 현재 전방에서 작전하는 초계함과 호위함들의 음파탐지기가 천안함이 달고 있던 것과 똑같은 싸구려 저질 장비라고 합니다. 국방부는 퇴역할 구형 함정에 굳이 돈을 들여 개량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존 구형 함정을 신형 호위함이 대체하려면 적어도 1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하는군요. 연평해전과 천안함 사건을 겪고서도 이렇게 정신을 못 차리는 대한민국 국방부가 대체 어떻게 국민의 안위를 보증할 수 있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지금까지 실체가 모호한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순직한 46명 장병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는 건 다름 아닌 대한민국 정부와 군입니다.



종북몰이 그만두고 세계정세 살펴야


지난 26일 천안함 5주기에도 정치권은 종북몰이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4월 재보궐 선거에 천안함 사건을 이용하려는 파렴치한 의도가 너무나 적나라해서 보는 사람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남북관계는 여전히 경색되어 있고 군납 비리는 연일 터지고 있으며 정치권의 종북몰이와 사회적 퇴행은 점입가경입니다. 천안함 5주기를 맞았으나 수습되고 봉합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셈입니다.
 

출처 - 중도일보


우리의 아들이자 형제요, 누군가의 연인이었던 사람들을 가슴에 묻은 유족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슬픔을 안고 살아갑니다. 안타깝게도 추모 열기마저 예전 같지 않습니다. 인양한 천안함을 해군 2함대에 전시하고 46명의 장병을 기리고 있지만 갈수록 방문객이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5년 동안 85만 명이 다녀갔으니 결코 적은 수는 아닙니다. 하지만 2011년 25만 명의 추모객에 비해 2014년에는 12만 명으로 절반 이상 줄어든 상황입니다. 정부와 국방부가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순직한 이들의 죽음의 원인을 제대로 드러낼 때 전 국민이 한마음으로 이들을 추모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대한민국 안보 이데올로기의 중심에는 북한이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적국으로 규정하고 비정상적인 냉전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전쟁 위협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국방비로 쏟아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안보 논리는 필요 이상으로 남북의 군사적 대립을 조장했고, 때때로 무력 충돌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아닌 무력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최근 동북아 정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미·일 삼국의 군사동맹 강화 시도나 신냉전 구도를 연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최근 정치권에 급부상한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논란이 이를 방증합니다. 하지만 군사력 증강에 투입되는 막대한 예산이 정말로 우리의 안보를 책임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명박 정권의 대북정책 실패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습니까? 남북 간 긴장관계를 조성해서 우리 국민이 득 본 게 있었나요? 이제는 국민들이 평화와 안보가 상호보완적이고 병행적인 관계임을 깨달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평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 시발점이 군비축소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익에 필요한 것은 엄청난 화력을 자랑하는 무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권의 변혁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인을 배출하고, 남북화해를 이뤄 통일을 지향하는 국민의 대리인이 필요합니다. 막대한 국방예산을 복지와 다른 측면으로 환원한다면 우리의 후대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물려받을 수 있을 겁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대한민국이 남북 간 갈등 국면을 넘어 통일의 길을 모색한다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무력은 결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고, 평화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국민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검열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과거 왕권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음란과 폭력을 통제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다분합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면 피통치자는 검열의 '끝판왕'이라고 할 자기 검열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속칭 '알아서 기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합니다. 생각비행은 검열의 헤게모니를 쥐고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려는 국가와 정부의 문제를 줄곧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왔습니다.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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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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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조작 의혹으로 살펴보는 SNS 심의의 허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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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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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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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절에 돌아보는 헌법의 근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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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조작 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 5편
http://www.ideas0419.com/459 

 

안타깝게도 2014년 현재 광주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광주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박근혜 비판을 금지하다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20돌을 맞은 현대설치미술전시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습니다. 올해 9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에 17개 나라,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그간 쌓아온 위상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측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예술 작품의 수정을 지시하고, 그 수정본조차 전시를 거부한 일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문제 작품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입니다.


출처 - 뉴시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거부한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을 작품에서 허수아비로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올라가 결국 518 광주에 닿는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광주 비엔날레 측은 박정희로 보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김기춘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박근혜 대통령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홍 작가는 고민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내용을 닭으로 수정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홍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유보했고, 보수단체들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홍 화백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탈출시켜 우리 품 안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의 주제도 못되고 부제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침몰 사고가 아니라 학살사고이고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 수정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작가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취소 결정을 뒤집고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재단은 결국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도 못한 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책임 큐레이터는 <세월오월> 전시 유보가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된 결정이라며 개막식에 앞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애초 계획된 특별전 개막식은 5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고, 2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는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그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작가들의 공동 대응,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하라!


지난 8일 특별전 개막식장 바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월오월> 작품의 게릴라 전시가 기획되었습니다. 홍성담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이 <세월오월> 작품의 수정된 그림을 4배 크기로 확대한 프린팅을 가지고 외부에 전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려 했으나 사복경찰 50여 명이 동원되어 이를 막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홍 작가의 거주지를 사복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는 지난 11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했던 자신들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검열에 항의하면서 이 작품을 전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광주비엔날레 보이코트 움직임에 국제적인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술계가 출품작의 철회 의사를 밝히며 홍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미술계는, 예술은 정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로 제안하는 행위이므로 예술 작품은 정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엔날레의 이념이 무너진 것이니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오키나와 미술계가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미술계가 전시를 철회할 경우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벌어진 촌극에 가깝습니다. <세월오월> 작품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정신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승화와 치유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설사 홍 작가의 작품 주제가 직접적인 박근혜 비판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이나 행정력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극한을 맛볼 수 있어야 할 예술전시회장에서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권력의 검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드러나는 지표가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려야만 무사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독재자의 딸을 무서워하며 알아서 기다니 참혹한 심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출처 - 한겨레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간 《현대문학》이 원로소설가 이제하와 정찬, 서정인의 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중단시킨 것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 다음에는 어떤 예술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될까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권의 어둠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연대와 시민의 관심과 비판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북몰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2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유종성 교수(미국 UC샌디에고)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 없는 민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부정 당선 의혹, 국정원과 국방부가 연류된 부정 선거와 댓글 조작 의혹, 이를 수사하던 검찰의 수장을 혼외아들 문제로 찍어낸 의혹, 국가정보원의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을 바라보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침몰 사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으며, 총제적인 구조 실패가 독재 국가에서나 나타날 법한 정권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8월 12일) 《경향신문》에 홍성담 작가를 인텨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 그림 '수장고'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구상했나.

“올 1월부터 ‘광주 정신과 관련한 전시회를 하는 데 걸개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절해 왔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내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 단원고 2학년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써 왔다. 이 중 한 명도 숨졌다. 사고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나흘을 보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 시스템이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월호와 5·18은 국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작품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풍자 장면은 꼭 필요했나.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게서 유신의 그림자를 봤다. 대통령은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반드시 밝혀서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록할 임무와 의무가 민중미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는 ‘시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정치적 내용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들었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광주 정신은 저항 정신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알리겠다는 전시회에서 이런 정도의 권력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못 한다면 광주 정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작품은 작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시는 미술관 수장고에 넣어 둔 채 감옥살이를 시키고 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게 하려는 술수다. 광주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윤장현 시장이 책임지고 담대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와 압제에 항거하여 만세시위를 펼친 역사를 기념하는 제95주년 삼일절입니다.

2014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3.1운동의 의미를 독립운동(민족혁명)이라는 좁은 의미로 이해할 게 아니라 민주혁명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찬란한 '3·1 혁명', 누가 '3·1 운동'으로 바꿨나). "1919년 3월 1일부터 국내외 각지에서 일어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민중의 힘으로 주권재민의 근대국민국가 수립과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 민족·민주혁명이었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복권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하려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선열이 흘린 핏값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헌법 제1조를 얻었습니다.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며 과연 헌법의 근본정신이 이 시대에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있건만, 정작 국가가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지는 못할망정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23년 만에 무죄 판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이 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이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3년을 복역한 시국사건입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운동권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동료의 자살을 종용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렸습니다. 먹이를 물은 듯 주류 언론은 연일 맹공을 퍼부었고, 이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은 조작이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유서 대필이 검찰의 조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습니다. 6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오랜 시간 동안 20대 피고인은 어느덧 50대가 되었고, 30대 변호인은 60대가 되었습니다. 그간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분신자살을 방조한 범죄자라는 누명을 감내해야 했던 강기훈에게 드디어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이 말은 무죄 판결을 받은 김용판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읊조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삶이 뒤틀린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 판결로 그분들의 아픔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 말은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의 소감이다.


1991년 12월 4일 서울형사지법의 유죄선고가 있은 지 만 23년 만입니다. 재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던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날 법정 안은 숙연했고 박수 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강씨의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추론은 받아들여 ‘운동권은 목적을 위해 유서를 대신 써주기도 하는 집단’이라는 엄청난 편견을 합리화시켜줌으로써 그동안 대필 여부를 두고 사실관계로 두터던 사건을 정말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만들고 말았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식의 승리‘라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조르쥬 클레망소의 말대로 ’상식의 승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과거 강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던 사법부의 사과는 없었으며, 검찰 역시 아무런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상식의 승리를 믿고 23년간 함께 싸워준 변호인만이 무죄 판결이 난 선고의 최후 변론에서 “진실 만세!”로 끝을 맺었을 뿐입니다. 이번 무죄 판결에 목이 메었다는 이석태 변호사의 인터뷰를 함께 보시죠.

출처 – 오마이뉴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말이 자꾸 등장하는데요, 증거조작과 마녀사냥에 의한 인권탄압의 대표적인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삼일절을 맞이하여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제목 : 가족의 저녁식사
“우리 오늘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잖아!”
출처 – 르 피가로

선거철 우리나라 밥상머리 상황같이 꽤 친숙한 모습입니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양분하여 극한으로 대립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당시 신문에 실린 만평입니다.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드레퓌스는 어느 날 갑자기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됩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군법회의 끝에 간첩 혐의로 종신유형이 선고됩니다. 이때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근거는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당시 프랑스 군부, 보수 가톨릭 교회, 수구 언론은 일제히 유대인인 드레퓌스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는 프랑스령 기아나의 한 섬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2년 후 군 정보국에서 근무한 피카르 중령의 중대한 발견으로 문제가 부각됩니다. 간첩 사건의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에스테라지 소령이었다는 겁니다. 피카르 중령이 우연히 당시 문건을 열람한 결과 독일대사관에 팔려간 프랑스 기밀문서의 필적이 에스테라지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카르 중령은 이 조사 결과를 상부에 알리고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지만, 군 상층부는 그를 한직으로 좌천시켜 쫓아내고 재심 요구를 무시합니다. 제국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에 가톨릭과 보수세력은 자국 군대의 위신과 국가의 질서가 일개 유대인에 의해 교란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진범인 에스테라지는 오히려 존재치도 않는 유대인 비밀조직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피카르 중령은 좌천도 모자라 군사기밀누설죄로 체포됩니다. 그 후 드레퓌스의 형도 에스테라지를 고발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며 이를 묵살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버립니다."

_<나는 고발한다!> 중에서 

이때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대문호인 에밀 졸라가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문학 신문 《로로르(L'Aurore)》에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이를 통해 에밀 졸라는 죄 없는 드레퓌스에게 종신유배를 선고한 법정과 진범인 에스테라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정을 고발하고, 재심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에밀 졸라의 용기 있는 행동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습니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에밀 졸라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진실을 감추는 군인과 성직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찬·반파로 프랑스 사회는 양분되어 극한 대립에 돌입합니다. 이 와중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법원이 재심을 열었지만 드레퓌스를 종신유배에서 10년형으로 감형하는 데 그칩니다. 재심으로 진실이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세계 각국의 인사들은 다시 의기투합하여 드레퓌스 구명 운동에 나섭니다.

결국 세계 여론에 떠밀린 프랑스 정부는 드레퓌스를 특별사면하게 됩니다. 무죄가 아닌 특별사면 형식이어서 불만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몸이 쇠약해진 드레퓌스는 이를 일단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 만인 1904년에 형의 도움으로 새로운 증거를 첨부해 재심을 청구하고 피카르 중령과 함께 최고재판소에서 무죄와 함께 복권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건강상 이유로 전역했던 드레퓌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현역으로 복귀하여 베르덩 전투 등 큰 전투에 참가하여 세운 공훈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까지 받습니다. 자신에게 온갖 누명과 고난을 안긴 조국을 위해 희생하여 다시금 큰 공을 세우다니 대단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출처 - 위키피디아

안타깝게도 드레퓌스와 유사한 처지에 놓였던 이는 강기훈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이었던 미국의 사코와 반제티도 누명을 썼으나 드레퓌스 사건처럼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나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주(州) 사우스브레인트리에서 제화공장(製靴工場)의 회계담당 직원과 수위(守衛)가 두 명의 남자에게 사살되고 종업원의 급료를 탈취당했다. 경찰은 이탈리아계(系)의 이민(移民)인 N.사코와 B.반제티를 용의자로서 체포, 이듬해 5월부터 재판이 열렸다. 두 사람 모두 무죄를 주장하여 7년에 걸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으나, 용의자들이 외국 이민이라는 것, 제1차 세계대전 중 징병을 기피했다는 것, 무정부주의자라는 것 등이 사람들의 편견과 반감을 샀다. 또 당시의 미국사회가 외국 이민을 좌익분자로 보는 경향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의혹이 남겨진 채 1927년 4월에 사형을 선고하였고, 재심(再審)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도 아랑곳없이 그 해 8월에 처형되고 말았다. 그런데 1959년에 진짜 범인이 판명되어, 이는 미국 재판사상 하나의 큰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처럼 사코와 반제티 역시 이탈리아 이민자라는 사실로 공격을 받았고, 무정부주의자로서 징병을 거부했던 점 때문에 애국심이 부족하다며 법정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고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미국은 사형선고를 내린 지 4달 만에 형을 집행하고 맙니다. 결국 사코와 반제티는 누명을 쓴 채 전기의자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50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의 무죄 사실이 입증되어 복권되지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출처 - 위키피디아

드레퓌스 사건이 강기훈 사건과 겹쳐 보인다면, 사코 반제티 사건은 사법살인이었던 인혁당 사건과 겹쳐 보입니다. 역사는 장소를 옮겨가며 반복되는 걸까요? 아니, 장소조차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편의에 따라 간첩을 만들어내던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마저 조작하는 오늘날 검찰의 행태를 보면 말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김요한 기자는 “‘간첩’과 ‘증거조작’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유우성이 간첩이냐’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유우성이 간첩이든 아니든 수사기관은 증거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도 정치권도 언론조차도 ‘사실이 무엇인가’보다는 ‘누구 편에 유리한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자료를, 그것도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을 속이려 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며, 검찰 자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도 언론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애써 꺼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사안의 본질은 어디 가고 여느 때처럼 곁가지 공방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드레퓌스, 사코, 반제티, 강기훈, 그리고 어쩌면 유우성.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드레퓌스 사건이 회자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국가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 문제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하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형국을 방증합니다. (관련 자료: 국정원·검찰 '증거 조작' 의혹에도 '눈뜬장님' 행세하는 '불량 언론'! )


박근혜 정부 1년, 무엇을 남겼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지난 25일, 여러 시민사회 단체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와 민생 후퇴를 지적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10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는 공권력에 의해 위축됐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민주주의가 공격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실로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사실상 폐기 또는 변질했습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마저 사라졌습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노조탄압, 민영화 정책 등의 실정을 반성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한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으며, 민영화 반대를 외친 철도파업 행위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여론 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같은 치졸한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음이 보도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1년을 돌아보면 '이명박 정권 6년차'라는 세간의 비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삼는 등 측근 인사를 요직에 앉혀 제왕적 통치의 기반을 굳히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인 김원배 목원대 총장, 김병호 전 새누리당 의원을 각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앉히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저널리스트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발표합니다. 세계 각국·지역 보도의 자유도에 순위를 매김으로써 검열 상황, 제도장치, 투명성, 인프라 등의 항목으로 세계 180개국·지역을 채점해왔습니다. 지난 2월 12일에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 2014'에서 한국은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 국경없는 기자회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31위(2006년)까지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2011년: 42위, 2012년: 44위, 2013년: 50위). 아시다시피 2009년 역대 최하위인 69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등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이 순위에 영향을 주었죠.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자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유래 없이 언론사 총파업 같은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번 2014년 결과 순위가 알려주듯이 정권의 언론장악 환경은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생각비행은 지금까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겨 관련 기사를 꾸준히 발행해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서 보여드립니다.
 
-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기각과 언론 재벌의 독과점
- 언론은 진실만을 전하고 있는가?
- 맷값 최철원 선생과 PD수첩 무죄 판결
- 이 시대의 폭로 저널리즘? '위키리크스'
-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과 같은 '탐사보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법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친일파 맞다"
- 한국의 탐사보도 - MBC가 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이 사라진다면 무한도전도 위험합니다
-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서 발견한 탐사보도의 가치
- 중요한 사회문제를 덮어버린 서태지-이지아 가십기사
-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 [서울디지털포럼 참관기] 위키리크스로 돌아보는 탐사보도의 역사와 현황
-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 《PD수첩》 무죄판결로 살피는 탐사보도의 가치
- 《경향신문》 창간 65주년 기념 MB氏 불통강령 단독입수!
-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종편 개국
- 리영희 선생 1주기에 돌아본 한국 언론의 현실
- 1퍼센트를 위한 종편을 넘어 SNS에서 대안을 찾자
- 질질 끄는 미디어렙법 처리, 누구를 위한 정치 놀음인가?
-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데스크>에서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보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헌법의 근본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지난 2013년 촛불시민과 누리꾼이 주축이 되어 발표한 선언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이만 인사 올립니다.

<촛불시민·누리꾼 3차 시국선언문>
 
- 우리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저항권을 발동한다 -
 
대한민국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근본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이 특정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마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대한민국은 정의와 진실과 원칙이 짓밟히고 거짓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든 주범은 1219 부정선거의 주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며,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명박과 박근혜이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4.19 시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은 유구한 민주화 투쟁과 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 그리고 86년 6월 민주항쟁에 바친 피와 죽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민주열사와 애국시민들의 희생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가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종교계를 필두로 대학 교수와 청년 학생 그리고 수백 개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국정원의 개혁과 박근혜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선량한 시민을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하며 제2의 유신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향후 어떤 선거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 마침내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반역의 무리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한다. 일제강점기의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열사들과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친일 종속적인 망언, 망동으로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다. 민족 분단의 비극과 모순을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종북좌파 운운하며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에 편승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한 세력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자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반역의 무리들을 척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는 헌법 파괴와 국기문란의 주범인 박근혜 정권을 향해 엄숙하고도 강력하게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는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데 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의 야합과 음모 속에 부정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한 범죄 행위이다. 더구나 위의 세 집단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가리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과 범법 행위를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국기문란 세력을 진압하고 이들의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을 권리와 책임을 통감한다. 이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민 저항권을 발동한다.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선포한다.
 
하나,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을 바로잡기 위한 무기한 투쟁에 돌입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의 부정선거 연루자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며, 부정선거를 주도한 국정원은 즉각 해체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국가 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공모한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하나,우리 촛불 민주시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복하는 세력에 맞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그날까지 어떠한 위협이나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임을 독립열사와 민주열사 앞에 맹세한다.
 
2013년 10월 5일
촛불시민·누리꾼 일동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저희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정치적 압박 및 제작 방해, 언론 및 방송의 자율성 훼손 등으로 표현의 자유가 심히 위협받고, 탐사보도가 점차 설 자리가 없어지는 현실에 대해 수차례에 걸쳐 우려를 표명한 바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최근 벌어진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는 소비자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 군, 정부, 보수 세력의 의견과 다른 의사 표현을 억압하고 막으려는 의도가 농후한 조처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하에서 <MB의 추억><남영동1985> 같은 영화가 개봉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에 청와대나 국정원 같은 국가 권력 기관이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대중의 의혹 제기는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서는 듯한 인상을 남깁니다.

2013년 9월 10일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의 보도채널 <뉴스타파>가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를 보도하면서 우리 사회의 '소통의 부재'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습니다. 천안함 사건을 들여다보면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 보입니다.


과거 천안함 사건은 '안보'와 '보안'을 핑계로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된 바 있습니다. 군의 기밀주의는 안보상업주의를 부추겼고, 조중동을 위시한 보수언론과 방송은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 하기보다는, 북한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추측성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여기에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안보 세력과 보수 세력을 결집시키는 계기로 활용했고, 정부를 비판하는 대중과 진보 세력을 종북 세력으로 규정하고 공안 정국을 조성하여 공권력으로 국민을 기만하고 탄압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언어의 배반 -  좌파, 좌빨

《언어의 배반》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언어학자와 정치학자 권력에 중독된 언어를 말하다'라는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언어 중에 본래 의미를 왜곡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용어를 '언어의 배반' 사례로 규정합니다. 두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현실을 호도하고 가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를 분석합니다.

언어의 배반 사례 중 대표적인 예가 '좌파' 또는 '좌빨'이 아닐까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려는 이들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죄다 '종북좌파'로 규정되고 마니까요. 2010년 4월 21일에 43개 보수단체가 모여서 만든 '4대강 살리기 국민연합' 출범식에서 보수 세력은 천안함 사건을 기회로 좌파 세력을 일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 천안함 침몰 민군합동조사단의 보고서에 의문을 제기하며 천안함 좌초설을 주장한 신상철 민간위원에 대해 해군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일도 있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비이성적인 일이 일어나는 걸까요? 《언어의 배반》이라는 책이 일말의 해답을 주는 것 같습니다.

좌파 또는 좌빨이라는 말이 한국에 들어와 권력 투쟁의 굴곡을 겪으면서, 오늘날에 와서는 이념을 구분하는 말이라기보다 자기가 싫어하고 무너뜨리고 싶은 사람들을 싸잡아 부르는 말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듭니다. …… 제가 느끼는 더 큰 문제는 좌빨이라는 용어가 언어사회학적으로 참이 아닐 뿐 아니라 기득권 세력의 배타적 폭력성과 일방주의까지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 

좌우를 구분하는 것은 또한 시대와 국가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보존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또 바꾸고자 하는 가치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주로 유럽에서는 민족주의나 국가주의가 우파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를 겪은 한국에서 민족주의는 좌파의 가치가 된 경우도 과거에는 있었습니다. 프랑스혁명에서 좌파의 기원을 만들어냈던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는 오늘날 보수로 치부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보수 우파가 친미적이거나 친일적인 것도 특이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진보로 간주되지만, 한국에서는 보수로 분류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이념의 상대성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를 획일적으로 재단하기는 어렵지만, 특정한 시대의 특정한 나라로 좁혀서 보면 조금 명확해집니다. …… 

소련의 붕괴와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세계적으로 좌파는 퇴조하고 있는데 유독 한국에서 이념 논쟁이 거센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것이 정말 한국에서는 좌파가 세력을 확장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그건 아니지요. 언어에 숨은 권력이 만든 가짜 이념 논쟁 때문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나 북한과의 화해를 이야기해도 좌빨, 먹거리에 대한 불안에서 출발한 촛불집회도 좌빨, 천안함 사건에 대한 의문점만 제기해도 좌빨, 민주나 노동조합, 또는 환경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좌빨이라고 단정해 버립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빨갱이라고 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관련 검색어로 나오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그 획일성과 거친 단죄는 가히 공포스러울 정도입니다.
_《언어의 배반》 본문 중에서

 
천안함 사건의 실체, 여전히 오리무중?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천안함 사건을 '2010. 3. 26(금) 21:22분 경 백령도 서남방 2.5Km 해상에서 경계 임무수행 중이던 해군 제2함대사 소속 천안함(PCC-722)이 북한 잠수정의 기습 어뢰공격으로 침몰하여, 승조원 104명 중 46명이 전사하고 58명이 구조된 「국가 안보차원의 중대한 사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출처: 대한민국 해군)

그러나 천안함 사건을 알리는 군의 태도는 초기부터 국민의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도리어 우리 사회에 안보 위협과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켰습니다. 선택적으로 제시하는 정보에 상식적인 반론조차 허용하지 않는 국방부의 폐쇄성에 많은 국민이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당황한 국방부는 천안함 사건을 국가의 안보 위기인 양 침소봉대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미궁에 빠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지 벌써 3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대한민국 국방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대한민국 정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백서》를 내놓았습니다. 국방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보고서는 국민의 의혹을 불식시킬 정도로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각종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일부 과학자 그룹에서 천한함 사건의 보고서 내용이 과학적 사실을 담보하지 못한다며 의혹을 제기했으니까요.

생각비행은 과학 분야를 계속 다뤄온 전문 출판사가 아닙니다. 과학적 연구를 하는 단체는 더더구나 아닙니다. 그럼에도 천안함 사건으로 상징되는 군 관련 정보의 왜곡,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 안보상업주의를 유포하는 보수 언론 및 방송의 그늘이 우리 사회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군과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이에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의 머리말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과연 이 보고서가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명백히 밝혔는지, 국민의 오해를 온전히 해소할 수 있었는지, 그렇지 못하다면 과학자와 국민은 어떤 의혹을 여전히 제기하고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해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머리말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정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산화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습니다.
국방부는 천안함의 침몰원인과 행위자를 명백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3월 31일 민·군 합동조사단을 구성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전문가와 함께 외국 전문가까지도 참여시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2010년 5월 31일 최문순 국회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천안함 관련 민군합동조사단 명단을 제출받은 뒤 작성한 보도자료를 보면, "민 ․ 군 합동조사단의 지휘부 및 조사요원은 총 47명이며, 조사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인원을 제외하고 순수 조사 활동에 참여한 인원은 47명으로 민간인 25명, 군인 22명임. 이외에 외국 전문조사팀은 미국 15명, 호주 3명, 스웨덴 4명, 영국 2명이고 국회 추천 전문요원은 3명“이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문순 국회의원은 
"외국 전문조사팀 명단은 제출되지 않았고, 검토해 본 결과, 민간인으로 분류되는 인원 중 상당수는 국방과학연구원, 국과수 등 국방부나 정부 기관에 포함된 인사로 이번 천안함 사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에서 조사를 할 민간위원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습니다.   

2010년 6월 7일 《참세상》은 박선원 미국 부르킹스 연구소 초빙연구원(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전략비서관)이 7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에 출연해 “해외에서 온 국제적인 전문가들이 참여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국적 조사의 결과는 아니”라며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고 국제 전문가들은 이것에 대해서 기술적 자문만 한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한국의 독자적인 조사결과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이를 다른 측면에서 뒷받침하는 《주간경향》 기사도 있었습니다. 천안함 사건 1주기가 지나서 작성된 2011년 3월 29일 기사(
천안함, 외국 조사단 역할은 '들러리'? )를 보면, 정부가 천안함 침몰 사건을 규명하기 위해 국제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하겠다며 미국, 영국, 스웨덴, 호주와 합의각서를 체결했으나 해외조사단이 들러리를 선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 것이지요.

(출처: 주간경향)

 

국방부 조사본부 관계자는 “해외조사팀과 합조단은 서로 토의하고 조사를 하면서 정보를 공유했다. 해외조사팀이 열심히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조단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했던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해외조사팀에는 천안함 사건 관련 정보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해외조사팀은 들러리였다. 합조단 시나리오에 해외 전문가가 참여했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라며 “지난해 4월 말 중간보고가 있었는데, 한국·미국·영국 팀만 발표를 했다. 왜 호주·스웨덴 조사팀은 발표를 안 하는지 궁금해서 물어봤다. 그들이 ‘우리들은 의미있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대답하더라. 알고 보니 천안함 항로, 엔진 관련 정보, 천안함 속력 등 기본적인 정보가 전혀 공유되어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웨덴이 최종보고서에 조건을 단 이유가 이 때문이라는 것. 이에 대해 당시 합조단 단장을 맡았던 윤덕용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합조단에는 북한 잠수함이 공격했다는 것을 분석한 정보분석팀이 있었다”면서 “이 정보분석팀에 스웨덴 팀이 참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출처: 《주간경향》


2010년 5월 25일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는 <천안함 침몰 조사과정의 6가지 문제점>이라는 10쪽 분량의 보도자료에서 "조사단의 구성, 활동 방향, 명단 등이 공개되지 않아 실제적으로 ‘민간’이 어느 정도 조사단에 포함되어 있는지 조사단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은 그들의 입만을 바라보고 있는 실정. 조사단의 정체가 불분명한데 그들이 내놓은 조사결과를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또한 "조사단의 명단을 밝히는 것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일이 아님이 분명하고, 그들의 명단을 공개했을 때 그들이 언론에 시달릴 것을 우려해서 명단을 공개할 수 없다고 하는 국방장관의 설명은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를 보면 "민·군 합동조사단은 객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민간 전문가와 함께 외국 전문가까지도 참여시켜 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라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첫 내용부터 국민의 의혹을 잠재우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머리말의 다음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서해 사건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면서 험난한 기상과 조류 등 악조건 속에서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 활동을 실시하여 천안함이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에서 발사된 어뢰에 의해 침몰되었음을 밝혀내고 5월 20일 이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합조단의 발표 이후 2010년 5월 21일 당시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보시죠. 지금 돌아보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소행임을 전제하고 이야기하는 김무성 원내대표조차 군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이후 천안함 사건 관련자는 오히려 줄줄이 진급했습니다.

5월 20일 합조단 발표 현장에서 황원동 중장은 외신기자가 왜 공격을 막을 수 없었느냐는 질문에 대해 (북한 잠수함의) 기지 이탈을 식별했지만 우리 영해까지 침범해서 도발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충분한 대처를 못했다는 황당한 답변을 합니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정적 증거라며 내세운 어뢰 추진체는 천안함 침몰의 원인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기는커녕 증거 차제의 신빙성에 대한 의문과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둘러싼 의구심만 증폭시켰습니다.

2012년 7월 22일 《미디어오늘》은 "천안함이 북한 잠수함이 쏜 1번 어뢰에 피격됐을 가능성이 0.000,,,0001%에 불과하다고 밝혀 반향을 일으켰던 재미 잠수함 전문가 안수명 박사가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보고서에 대해 “비양심적이며 과학적으로 수긍할 증거가 하나도 없다”고 혹평했다"는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기사 원문: 미잠수함 전문가 “천안함 보고서 비양심적…상상초월”)

민·군 합동조사단은 6월 14일 유엔 안보리에 조사결과를 설명하였으며, 그 결과 ‘북한이 천안함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규탄’하는 의장성명이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보리 논의에 회부하면서 북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결의안 채택을 목표로 치열한 외교전을 벌였습니다. .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책임론을 수용하지 않고, 북한도 유엔 외교전에 뛰어들면서 이명박 정부의 주장은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주요국은 천안함 침몰을 '공격(attack)'이라고 규정하고 비난하면서도, 정작 중요한 공격 주체를 밝히지 않은, 참으로 이상한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합의합니다.

유엔 안보리 의장 성명서(2010. 7. 9)

1. 안보리는 2010년 6월 4일자 대한민국(한국) 주 유엔대사 명의 안보리 의장 앞 서한(S/2010/281) 및 2010년 6월 8일자 조선 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주 유엔대사 명의 안보리 의장 앞 서한(S/2010/294)에 유의한다.

2. 안보리는 2010년 3월 26일 한국 해군함정 천안함의 침몰과 이에 따른 비극적인 46명의 인명 손실을 초래한 공격을 개탄한다.

3. 안보리는 이러한 사건이 역내 및 역외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4. 안보리는 인명의 손실과 부상을 개탄하며, 희생자와 유족 그리고 한국 국민과 정부에 대해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명하고, 유엔 헌장 및 여타 모든 국제법 관련 규정에 따라 이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이번 사건 책임자에 대해 적절하고 평화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한다.

5. 안보리는 북한이 천안함 침몰의 책임이 있다는 결론을 내린 한국 주도하에 5개국이 참여 한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에 비춰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

6. 안보리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

7. 이에 따라 안보리는 천안함 침몰을 초래한 공격을 규탄한다.

8. 안보리는 앞으로 한국에 대해, 또는 역내에서, 이러한 공격이나 적대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9. 안보리는 한국이 자제를 발휘한 것을 환영하고,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한다.

10. 안보리는 한국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고 상황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한다.

11. 안보리는 모든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 헌장의 목적과 원칙을 지지하는 것이 중요함을 재확인한다.

-출처: 《천안함 백서》

안보리 의장성명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천안함이 북한의 공격에 의해 침몰했음을 국제사회에서 공인받겠다던 이명박 정부의 유엔 외교가 물거품이 됐다는 것이지요. 게다가 의도하지 않은 '북한의 입장'이 반영된 조항마저 채택되고 말았습니다. 공동성명 초안 6항에 있는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는 북한의 반응, 그리고 여타 관련 국가들의 반응에 유의한다"는 문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참으로 맥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의장성명을 이끌어내기까지 사실상 참으로 어려운 외교적 노력이 있었다는 뒷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되었습니다. 2010년 7월 11일 《연합뉴스》는 <유엔 안보리 '천안함 의장성명' 뒷얘기>라는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Attack을 넣는게 가장 어려워" = 우리 외교당국이 안보리 문안협상에서 가장 주력했던 것은 attack(공격)이라는 표현을 넣는 작업이었다는 후문이다. 이는 사건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어라는 판단에 따라 필사적인 로비전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condemn(규탄)이라는 단어도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인해 협상과정에서 상당히 어려움을 겪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안보리 문안협상은 그야말로 언어공학(language engineering)으로 부를만 하다"며 "한문장 한문장이 엄청나게 어려운 협상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시사점은 매우 큽니다. '언어공학'이 빚어낸 의장성명이라니, 참 이이가 없지 않습니까? 천안함 사건의 실체는 증발된 채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각국이 저마다의 실익을 챙기기 위해 어떤 협상을 했을지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저간의 사정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조작극이라고 비난하면서 대남위협의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도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 사실과 다른 의혹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등 무책임한 언행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북한은 천안함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자신들도 조사단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는 가해자가 진상 규명에 참여할 수 없다는 논리와 더불어 군사 기밀 누설 방지 차원에서 이를 거부했습니다. 궁색하기 짝이 없는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은 범인을 대동하고 사건 현장에 나가 사건의 경위와 살해 방법 등을 상세히 재현하고 이를 기록합니다. 국방부와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것임이 분명하고 이를 증명할 수 있었다면 북한의 만행을 만천하에 공개할 좋은 기회를 왜 마다했을까요? 앞서 살펴본 안보리 의장성명의 문구를 '언어공학'적으로 '마사지'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조차 없었을 텐데요. 돌아보면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참으로 이상하게 풀어내려 했다는 의혹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국방부는 우리 국민과 국제사회에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올바르게 알려 불필요한 오해와 의혹이 해소될 수 있도록 민·군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입증 자료들을 수록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보고서는 개요, 침몰요인 판단 결과, 분야별 세부분석 결과, 결론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체적인 조사 내용과 판단 결과는 부록에 수록하였습니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모든 침몰 가능 요인을 망라하여 조사한 전 과정을 서술하였으며, 300개 이상의 각종 그림과 도표를 활용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습니다.
특히 4개 국가와 국내 12개 민간연구기관 및 군의 총 73명의 전문가가 과학수사·함정구조·폭발물·정보 분석 등 다양한 분야의 조사 및 보고서 작성에 적극 참여하였고, 보고서 내용에 전원이 동의하여 국제적으로 검증된 자료가 되었습니다.
본 보고서는 어뢰 공격으로 침몰된 군함의 선체를 인양하여 조사한 세계 최초의 보고서로서, 결정적 증거물(Smoking gun)인 어뢰 추진체를 수거하고 폭약성분까지 검출한 것은 어떠한 은밀한 공격행위도 증거로 남는다는 사실을 북한과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북한이 도발을 자행하지 못하도록 엄중히 경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를 둘러싼 다양한 의문은 다음 방송, 기사 및 강연회 내용을 들어보시고 직접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천안함 합조단에 조작 주도한 인물 있었다"고 주장하며 정부의 천안함 조사 결과에 과학적인 오류를 지적해온 서재정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정치학)와 이승헌 버지니아대 교수(물리학)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걸까요? 미국 시민권자라서 이들에게는 종북좌파의 딱지를 붙이지 못하는 걸까요? 아니면 국방부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136회] 제1부 알기 쉬운 천안함의 진실

[김어준의 뉴욕타임스 198] 천안함 조사, 산수조차 틀렸다

천안함, 불편한 진실을 말하다 : 신상철 강연회

[이털남2-309회] 성접대 의혹 / 천안함 막전막후 (29분 부터)

라디오 반민특위 13회 - 천안함,진실에 가장 가까운 남자

[추적60분]  의문의 천안함, 논쟁은 끝났나?

[프레시안] 천안함 합조단에 조작 주도한 인물 있었다

이제 보고서 머리말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본 보고서는 이번 천안함 사태를 거울삼아 다시는 북한의 기습적 도발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우리 국민의 확고한 안보의식과 안보문제에는 어떤 개인·집단적 이해도 개입될 수 없음을 일깨워 주는 데 기여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본 보고서는 군사비밀 내용이 제외되었고, 과학적·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하기 때문에 전문용어들을 쉽게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음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쪼록 금번에 발간한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가 천안함 피격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동안 제기되어 왔던 모든 오해와 의혹이 해소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평소 이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 국민들과 국내외 학자 및 언론인 모두에게 유용한 자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010년 9월
민·군 합동조사단

한 건의 보고서로 천안함 사건의 실체를 규명했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방부의 시각이 참 일천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천안함 프로젝트〉가 바로 이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의문은 곧 소통의 시작이라는 것이지요. 

천안함 사건 발생 후 3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1200톤급의 해군 초계함이 두 동강 난 채 침몰하고 46명의 젊은 장병들이 목숨을 잃었으며, 수색에 참여했던 한주호 준위와 98금양호 선원 9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을 무조건 경계하던 국민의 시각과 안보의식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방적으로 북한을 미워하게 만들려 했던 대한민국 국방부가 자처한 일입니다. 더구나 우리 군의 부실한 위기대응 체계로 말미암아 국민의 신뢰는 허물어졌습니다. 안보상업주의에 휘둘리지 않는 국민이 많아졌습니다.

천안함 침몰이 북한소행이라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있었으나 이를 둘러싼 진실 공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발표를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일이 아니라 국민이 믿고 신뢰할 수 있도록 분명한 증거를 제시하는 일에 대한민국 국방부와 정부가 나서기 바랍니다.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많은 국민을 종북좌파로 규정하고 입을 틀어막으려 하지 말기 바랍니다. 천안함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진실이 규명될 때까지 천안함 사건을 잊어서는 안 될 이유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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