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의 대명사 중 하나인 BMW가 운행 중 느닷없이 불타는 사고가 우리나라에서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지금까지 30여 건이 넘는 BMW 자동차 화재 사고가 있었지만 그동안 BMW는 원인 규명에 신경을 쓰지 않았고, 사과도 뒤늦었으며, 리콜도 마지못해 늑장 대응으로 일관해 소비자들의 분노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난 6일 BMW 코리아 김효준 회장이 뒤늦게 대국민 사과를 하고 10만 6000대의 차량을 리콜하겠다고 입장을 밝혔지만 이에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BMW 측은 기자회견에서 디젤 차량의 EGR 쿨러에서 발생하는 냉각수 누수 현상이 화재 원인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미국을 제외한 모든 해외시장에서 똑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쓴다며 한국 BMW 모델이 다른 부품을 쓴 열화 모델이 아니냐는 의심에 대해 해명했습니다. 한국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유사한 결함 사례가 있었고 전체 화재 사고 차량 중 EGR 결함률은 한국이 0.10%, 전세계가 0.12%로 비슷하다고 밝혔죠.


출처 - 전자신문


BMW가 2016년부터 유럽에서 비슷한 엔진 화재 사례가 발생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최근까지 원인 규명을 위한 실험을 해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늑장 리콜 논란이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도 같은 문제로 디젤차 32만 3700대를 리콜할 예정이라고 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 BMW 서비스의 불만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닙니다. 이름 있는 외제차라고 샀는데 문제가 발생했으나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KBS

 

리콜 대상 차량인 520d 차주 중 한 명은 엔진이 불에 완전히 타서 화재가 주변 차량과 건물까지 옮겨붙었는데, 손해 배상을 차주가 알아서 하라는 답변이 BMW 측에서 돌아왔다고 합니다. 차주가 불을 내고 싶어서 낸 것도 아니고 불이 난 이유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인데 손해배상을 자기 보험으로 처리해야 된다니 억울하지 않을 사람이 있겠습니까? BMW 서비스센터는 가뜩이나 부족한데 이번 사태로 완전 포화 상태여서 아우성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과 같은 수준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란 기업들의 악의적인 행위로 소비자가 피해를 볼 경우 손실액보다 훨씬 크게 배상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은 차량 결함으로 인한 사고에는 피해액의 최대 8배까지 배상해야 하고 유럽도 천문학적인 배상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소비자 권리와 기업의 잘못에 대한 기준이 느슨하다 보니 애꿎은 소비자들만 당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3년 전 폭스바겐 디젤게이트 때도 한국 소비자들은 미국 소비자들 배상액의 10%도 안 되는 배상을 배상을 받았습니다. 게이트로까지 번진 폭스바겐 사례나 이번 BMW 사례처럼 원인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나온 사건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제로 엄히 다스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처- 한국일보


제발 저린 재계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적용 검토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습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에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의 요건을 확대할 경우 과잉 처벌의 우려가 크고 소송 남발로 사회적 비용이 늘어난다는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BMW 사태도 그렇고 사회 분위기가 소비자, 노동자 보호 강화로 흐르고 있는데다 문재인 정부가 이런 정책 기조를 뚜렷이 하고 있다 보니 예전처럼 큰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출처 - SBS

 

한 대기업 관계자는 국내의 기업 규제 현실이나 법체계를 감안할 때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맞지 않는 옷이라는 재계의 인식을 전했습니다. 실제 입은 손해만큼 배상한다는 실손전보 원리를 채택한 우리나라 법 체계에 맞지 않고 기업의 고의적 악의적 행위를 방지한다는 명분과 달리 악의적인 소송을 부추기고 기업을 악덕의 온상으로 몰고 가는 풍조가 심화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출처 - 매일경제


하지만 소비자들은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한다면 대기업들이 다이어트라도 해서 옷에 몸을 맞추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피해의 최대 3배까지 손해 책임을 부과하도록 되어 있지만, 신체에 중대한 해를 끼친 경우로 제한하고 있어 최근 BMW 사태처럼 재산상 손해만 발생한 경우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징벌적이라는 표현이 무색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국토부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포함한 자동차 리콜 제도 개선방안을 만들어 이달 중 법령 개정 등 관련 절차를 밟기로 했습니다. 현행 리콜제도만으로는 사고를 방지하고 기업에 책임을 묻기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입니다.


출처 – SBSCNBC 유튜브


재계의 앓는 소리는 핑계일 뿐입니다. 여태까지 권력에 붙어 로비하는 데 펑펑 썼던 돈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드는 데 쓰면 될 문제니까요. 손해배상 폭을 훨씬 넓히거나 아예 제한을 두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상품을 만들 때 더 신중하게 될 테고, 징벌적 손해배상이 실질적으로 두렵다면 그만큼 안전하고 완벽한 제품을 생산하는 데 최선을 다할 테니까요.

 

출처- 경향신문

 

그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것은 물론 피해자 일부가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하면 다른 피해자들도 재판없이 배상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제 도입도 함께 도입해야 합니다. 이번 BMW 화재 사고로 인한 사회적 관심이 대기업들이 각성하고 소비자의 권리가 보호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뜻깊게 보내셨는지요? 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우리 이웃 중 유독 슬픈 시간을 보낸 분들도 계십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비롯해 사과 아닌 사과를 받은 옥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및 유가족들 얘깁니다. 오늘은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라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지난 5년 동안 어째서 문전박대를 당해야 했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옥시 가습기 살균제, 안방에서 일어난 화학 테러


환경보건시민센터가 접수한 결과에 의하면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최대 239명, 심각한 폐질환이 최대 1528명에 이릅니다. 사상 최악의 화학 참사라고 할 수 있죠. 인명 피해 규모뿐 아니라 사망자의 대부분이 산모와 영유아였다는 점에서 사람들은 이를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비견되고 있습니다.


2011년 원인 불명의 폐질환으로 환자가 급증하고, 특히 임산부와 영유아의 폐에 심각한 문제가 생기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역학 조사 결과 가습기를 세척할 때 쓰는 가습기 살균제가 폐를 손상시키는 원인임을 알게 되었죠. 이때 가습기 살균제 6종은 회수되었습니다.


출처 - 환경보건시민센터


그런데 문제는 1997년 출시된 가습기 살균제가 2011년까지 연간 60만 개 정도 판매되었다는 겁니다. 회수 조치를 했으나 이미 사태가 심각했고, 판매량으로 추측할 때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있어도 사실상 원인 불명으로 돌아가신 분이 많았을 겁니다.


가습기 살균제에는 PHMG, PGH, MCIT 성분이 있는데, 피부에 묻을 경우 독성이 다른 살균제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해 샴푸, 물티슈 등 여러 제품에 이용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성분을 호흡기로 흡입할 경우 독성이 오히려 치명적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습기 살균제는 공산품으로 분류되어 식품위생법이나 약사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일반적인 안전 기준만 적용되었기에 피해 예방도 늦어졌습니다.


인체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인 PHMG 계열엔 옥시레킷벤키저의 옥시싹싹, 롯데마트의 와이즐렉, 홈플러스의 홈플러스가 있고, PGH 계열에는 버터플라이이펙트의 세퓨, MCIT 계열에는 애경의 애경가습기메이트, 이마트의 이플러스 등이 있습니다. 옥시 제품의 사망자와 피해자가 가장 많긴 해도 롯데, 홈플러스, 이마트, 애경 등 이름만 들으면 아는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 판박이, 피해자들 두 번 울려


명백한 화학 테러이자 대량 학살이라고 불릴 만한 참사가 일어났지만 책임의 주체 중 단 하나도 책임을 지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옥시레킷벤키저는 지난 5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하고 보상계획안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뒤늦은 대응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오기 시작한 2011년 이후 무려 5년이 흘렀기 때문이지요. 게다가 옥시 측의 사과와 보상안발표는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극도로 나빠진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이뤄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 이전에 옥시 측은 언론 취재엔 무응답, 피해자에겐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일관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산모와 아기들이 죽든 말든 관심도 없더니 정작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는데도 발뺌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자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는 한국 지사와는 경영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옥시는 논란이 한창이던 2011년 12월 기존 법인을 고의로 해산하고 유한회사로 새롭게 설립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법인이 변경되면 이미 사라진 법인의 죄를 새 법인이 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속셈이었겠죠.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건 이들은 자사 게시판에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들의 글을 일괄 삭제했습니다. 옥시레킷벤키저의 홈페이지에 15년 전부터 가습기 살균제 부작용을 호소하는 글이 꾸준히 올라왔으므로 옥시 측이 가습기 살균제의 부작용을 모르고 있었을 리 없습니다. 부작용을 호소한 소비자의 글을 삭제한 것이 바로 강력한 증거입니다. 이를 알고서도 옥시가 계속 제품을 판매했으니 살인죄를 적용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혹시 측은 발뺌할 뿐 아니라 증거 인멸까지 적극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독성을 검증하고 고발했어야 할 연구팀조차 돈을 받고 연구 결과를 조작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죠. 서울대 연구팀의 조명행 교수는 옥시레킷벤키저 측의 연구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 결과를 조작했습니다. 개인 계좌로 수천만 원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가 인체에 큰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결론을 도출해준 것이죠. 이 연구 결과는 기존의 재판 과정에서 옥시 측을 변호하는 결정적 증거로 쓰였습니다. 검찰은 증거 인멸 및 뇌물 수수 혐의로 서울대 조명행 교수를 긴급 체포했습니다.


출처 - JTBC


환경부는 이번 달 들어서야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피해 재발 방지를 위한 살생물제 전수조사 관리 체계를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이 모든 사태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 당국의 직무유기에 대한 질타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돈에 미쳐 있다면 이를 제재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피해자들의 호소에 무관심했을 뿐 아니라 기업과 개인 간의 문제로 국한해 피해 규모를 축소해왔습니다. 애경 제품은 옥시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부는 애경 제품을 검찰 기소에서 제외하기까지 했죠.



5년 동안 가습기 특별법 막은 새누리당과 전경련


가습기 살균제 검찰 조사가 속도를 내자 뻔뻔하게도 새누리당은 여기에 숟가락을 얹었습니다. 사건을 철저히 규명하여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인데요, 철면피가 따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2013년 새누리당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구제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박근혜 정부는 피해자 실태조사만 하고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다며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당시 친박 실세인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국회에서 청문회를 열 사안이 아니라며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권성동 새누리당 의원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 특별 보호해주고 교통사고 당한 피해자는 안 해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죠.

 

출처 - 세계일보


요즘 어버이연합을 지원한 사실이 들통난 전경련도 새누리당과 똑같았습니다. 2013년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법안 제정에 대해 기업 부담을 가중시키기 때문에 안 된다고 극구 반대했으니까요.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기도 한 유독물질을 생산한 기업인 SK케미칼 같은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기업들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게 그 이유였습니다. 참사의 1차적 원인이 기업의 과실과 불법행위에 있었음에도 사과나 대안 마련은커녕 특별법 제정을 방해한 새누리당과 전경련은 후안무치함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번에 갑자기 태세를 바꾼 건 어버이연합―전경련―국정원 연계설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우리나라도 징벌적 배상제 마련해야


최근 미국에서 존슨앤드존슨이라는 기업이 거액의 배상 판결을 받았습니다. 땀띠용 파우더가 난소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판결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입니다. 지난 2월 난소암 피해자에게 처음으로 800억 원의 배상 판결이 나왔고, 우리나라에서 옥시가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를 했던 지난 2일에는 다른 난소암 피해자에게 6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또 나왔습니다. 기업의 책임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에선 대기업들이 가습기 피해자 전원을 대상으로 마련한 기금이 고작 50억 원이 될까 말까 하는 상황이니까요.


출처 - JTBC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가해자의 행위가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일 경우,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금을 부과해 유사한 부당행위를 방지하는 제도입니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처럼 소비자의 줄이은 신고를 듣고 기업이 피해를 예상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경우도 이에 포함됩니다.

 

1992년 미국에서는 커피 컵 뚜껑을 열다 커피를 쏟아 화상을 입은 여성에 대해 맥도날드가 일반 배상금 16만 달러, 손해배상금 48만 달러를 줘야 한다는 판결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맥도날드 측이 그간 커피가 너무 뜨겁다는 소비자 불만이 계속 제기되었음에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이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했습니다. '기업 하기 좋은 나라'라는 허울 때문에 국민이 죽어 나가더라도 규제를 오히려 더 풀겠다는 심산입니다.


출처 - 피키캐스트


수많은 피해자가 난 끔찍한 사태를 두고도 기업과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도,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변명만 무성할 뿐인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책임을 다하지 않는 기업은 망하는 게 마땅합니다. 이제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고 이전에 일어난 기업의 잘못을 더 철저히 규명해 처벌해야 합니다. 아울러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응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라도 알뜰살뜰 적금을 들어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언감생심입니다. 워낙 저금리 시대라 이젠 적금을 들어도 예전 같은 이율을 바랄 수 없습니다. 복권이라도 당첨되어 수십억을 예금해놓고 이자나 받아먹으며 사는 부자가 월급쟁이들의 꿈 중 하나였지만,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이자율이 너무 낮아 예금을 할 경우 오히려 은행에 보관료를 내는 꼴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다수가 은행에 꼬박꼬박 월급을 저축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은행보다 안전한 보관처는 없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 이러한 기본적인 믿음마저 송두리째 뒤흔드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피땀 흘려 모은 전 재산 1억 2000만 원이 농협 통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라일보



피해자는 보이스피싱은커녕 인터넷뱅킹도 가입한 적이 없어


여러분 중 대부분이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에 걸렸거나 인터넷뱅킹을 해킹당하는 등 피해자 쪽에서 뭔가 잘못했겠거니 하고 생각하셨을 테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출처 - YTN


19년 전 충남 삽교 농협에서 통장을 만든 50대 이씨는 지난 7월 돈을 찾으러 은행을 들렀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1억 2000만 원이 들어 있어야 할 통장의 잔액이 0원도 아니라 마이너스 500만 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 재산을 털린 것도 모자라 본인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대출까지 받은 상황에 처한 겁니다.


문제는 피해자가 어떠한 잘못이나 실수를 한 적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보이스피싱이나 스미싱에 걸린 적도 없고, 은행 보안카드를 잃어버린 적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씨는 애초에 인터넷뱅킹조차 가입한 적이 없었습니다. 이용한 거라곤 농협에서 제공하는 텔레뱅킹뿐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씨의 전 재산이 감쪽같이 사라진 겁니다.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죠.


알고 보니 원인은 중국 쪽의 해킹이었습니다. 대포 통장을 통해 3일에 걸쳐 41번에 나눠 피해자의 계좌에서 1억 2000만 원을 빼내고 거기에다 500만 원의 마이너스 대출까지 해간 겁니다.



출처 - SBS


아무튼 바로 농협과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는 농협이 사기에 대비해 손해보험에 들어있다는 말을 믿고 3개월을 기다렸습니다. 사고 처리에 2~3개월이 걸린다고요. 그런데 3개월이 지나 농협은 갑자기 말을 바꿨습니다.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의 과실은 아니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없으므로, 은행 잘못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또한 전례가 없어 피해액을 전혀 보상해줄 수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한술 더 떠 농협은 피해자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빼간 마이너스 대출에 대한 이자까지 독촉했습니다.


피해자로서는 황당한 상황에 기가 막혔을 겁니다. 농협을 믿고 돈을 맡긴 고객 입장에서 농협이 돈을 잃어버린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사고 처리를 해주겠거니 믿고 기다렸으나 사과는커녕 뒤통수를 아주 제대로 친 셈이니까요. 이씨가 모은 돈은 새 보금자리의 중도금을 치를 용도였다고 합니다. 이번 사건으로 이씨는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뻔뻔하고 비열한 농협, 법도 무시하고 보안책임은 나 몰라라


중국의 해킹도 좌시해선 안 될 일이지만, 사람들은 더 분노하게 했던 건 뻔뻔하고 비열한 농협의 처신입니다. 피해자가 신고했을 때는 마치 손해보험으로 다 보장해줄 것처럼 얘기하다가 경찰 조사 결과 피해자의 무과실이 드러났음에도 보상은커녕 이자마저 내놓으라니 말문이 막히지 않겠습니까? 원인이 확실히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는 종결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농협은 전례가 없기 때문이라는 옹색한 변명으로 피해자의 믿음을 배신했습니다.


출처 - SBS


하지만 이는 명백한 농협 측의 불법행위입니다. 2006년 4월 제정된 전자금융거래법에 의하면 피해자의 중대 과실이 없는 경우 은행이 보상하도록 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은행의 부실한 보안에 의한 해킹 사건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2005년 6월 외환은행의 5000만 원 해킹 사건을 기억하시는지요? 그때도 외환은행 측은 과실이 아니라며 피해자의 돈을 보상할 수 없다며 버텼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모든 언론과 여론의 엄청난 비난이 외환은행 측에 집중되었습니다. 그 계기로 제정된 것이 전자금융거래법입니다.

 

전자금융거래법에 의하면 원인이 없고 과실이 없는 사건의 경우 일단 은행이 전적으로 책임지게끔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말이죠. 사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돈을 맡은 쪽이 지킬 방책을 세워야지 맡긴 쪽이 대책을 마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니까요. 돈을 맡긴 쪽에 과실이 없다면 응당 돈을 맡은 쪽이 사고의 책임을 지는 건 지극히 합당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농협이 뻔뻔이 버티고 있는 이유는 억울하면 피해자가 소송을 하라는 겁니다. 으름장을 놓고 버티면 피해자는 알아서 나가떨어지던가 혹은 배상을 하게 되더라도 배상 규모를 줄이거나 배상 시기를 최대한 늦출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반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믿고 맡긴 돈을 잃은 것도 억울한데 소송을 하려면 추가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니 참으로 곤란한 상황이 빚어지는 겁니다. 우리나라 법이 미비해서 이런 은행의 비열한 행태를 막을 방법이 현재로써는 없다고 하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닙니다.


출처 - JTBC


애초에 농협은 돈을 맡은 자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보안의 의무에 나태했습니다. 농협에서 1억 2000만 원이 사라진 사건이 공론화되자 비슷한 시기에 50여 명이 자신의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다는 신고를 했습니다. 이들은 스마트폰에 해킹코드를 심는 이른바 파밍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금융결제원에서 중국발 해킹 IP에 대한 경고를 무려 100여 번이나 각 은행에 보내며 이 IP를 차단하거나 관찰하라고 했음에도 농협은 이를 귓등으로 흘린 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1억 2000만 원의 피해를 본 이씨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인터넷뱅킹이나 스마트폰 뱅킹에 가입조차 한 적이 없으니까요. 이씨 사건으로 볼 때 농협의 시스템 자체가 해킹된 것은 아닌지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 피해자가 앞으로 더 생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지요.


농협은 정부에서 보안 강화 조치의 일환으로 지시한 이상금융거래 탐지시스템(FDS) 구축에도 나태했습니다. 혹시 신용카드로 처음 해외 결제를 해보신 분이라면 한밤중에라도 전화를 받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본인이 결제한 게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 때문입니다. 평소 이용자의 결제 유형과 너무 다르거나 이상 행동을 하면 일단 이상이 생긴 것으로 보고 거래를 중단하는 시스템이 바로 FDS입니다.

 

이번에 피해를 본 이씨의 경우 3일에 걸쳐 대포통장으로 41번의 인출이 있었습니다. 하루에 10번 이상의 인출이 있었다는 건데요. 일반인의 경우 아주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연달아 하루에 10번이 넘는 거래를 하지도 않을뿐더러 41번의 인출을 통해 통장을 전부 비우는 일도 웬만해선 발생하지 않겠지요. 만일 FDS 시스템이 농협에 구축되어 있었다면 이번 사건도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농협은 정부가 지시한 지 1년 반이 지나도록 이 시스템 구축을 구축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습니다.


한마디로 농협의 행태는 적반하장도 유분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은행으로서 최소한의 보안 책임도 지지 않고, 고객의 잘못이 없음이 입증된 사건에서조차 법적으로 정해진 피해보상을 미루며 버티고 있으니까요.



징벌적 배상제와 제도 정비로 고객의 억울함 없게 해야


이번 사건은 지금까지 살펴봤듯이 농협의 나태한 보안의식과 무책임함 그리고 법률적 제도적 미비함이 맞물려 일어난 금융 참사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금융사고의 책임을 떠안고 있는데, 이제는 이러한 책임을 은행이 우선 지도록 해야 합니다.



출처 - 아주경제


일본에서는 전화 사기를 당해 고객이 자기 정보를 유출하는 실수를 저지르더라도 이를 가벼운 잘못으로 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를 중대 과실로 보고 보상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애초에 사기를 친 쪽이 잘못이지 당한 쪽의 잘못은 아니기 때문이지요.


미국의 경우 우선 사고로 피해를 본 금액을 10일 안에 고객에게 되돌려주고 45일간 은행이 조사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래서 만약 고객에게 과실이 있었다면 그에 해당하는 돈을 회수하고 무과실이 입증되면 그대로 수사를 종결합니다. 또한 미국에서는 농협처럼 뻔뻔하게 법적으로 정해진 피해보상을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기업의 행태를 막는 방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10일 안에 고객에게 일단 피해액을 전부 보상하지 않으면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매기겠다고 정부가 보증하는 것이죠.


스미싱까지 포함해 27만 건의 사고, 피해액 총 1조 6000억 원. 이것이 우리나라 금융사기의 민낯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은행들은 5억이면 도입할 수 있는 보안 시스템을 돈 아깝다고 미루면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 농협 사건 경우 보안의식이 투철한 제대로 된 사회였다면 예금자들의 인출이 속출하는 뱅크런으로 은행이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대체 이 나라와 기업, 기관들은 언제까지 피해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지우려고 하는 걸까요. 은행은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입니다. 시급한 개선이 필요합니다!

 

농협 계좌에서 주인도 모르게 억대의 돈이 인출된 사건과 관련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진상파악을 위해 오늘 전체회의를 열고 긴급 현안보고를 받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회의에는 최원병 농협중앙회장, 임종룡 NH농협금융지주회장, 김주하 NH 농협은행장 등이 출석하며 여야 의원들은 이들을 상대로 불명의 예금 인출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 방지 대책을 추궁할 예정이라고 하니 피해자를 구제함은 물론 좀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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