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한때 생각비행에서 연재했던 기사 [독립, 하셨습니까?]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습니다. 2012년 8월 2일부터 2013년 7월 26일까지 총 8번의 연재물로 진행된 기사의 기획의도는 이랬습니다.

 

"꿈을 펼치는 일의 연장선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인터뷰와 문화 리뷰+칼럼이 뒤섞여 모호하지만, 어딘가로부터 독립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랄까. 내가 면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보편에 기대는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독립'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다시 들려주는 이은 씨의 연재물은 특별했습니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기에,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인터뷰이의 진심에 한층 더 귀를 기울이는 진정성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재물 종료 이후 생각비행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더 취재해 별도의 책으로 기획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은 씨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그 이후로 근 2년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어 나왔습니다. 자기만의 길을 찾아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권합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꿈을 꾸며 자기만의 길을 낸 사람들

 

▸분야: 인문  ▸지은이: 이은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228  ▸가격: 15,000원

▸ISBN 978-89-94502-37-3 (03300)

 

 

"삶을 규정하는 형용구를 찾아 떠난 여행"

 

《독립, 하셨습니까》는 꿈을 꾸며 자기만의 길을 낸 9명의 대상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정리한 기록이다. 저자 자신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고단한 삶을 견디면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꾸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스스로 성찰하며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삶의 여정에서 대개 '무엇이 될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의 직업에서는 특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형용구'에서 그의 인생, 신념, 지향점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신부이자 저술가 차동엽은 '차디찬 시대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사람이다. 반올림 노무사 이종란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의 희망, 안전할 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저자가 만난 9인의 삶을 담은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형용구를 찾아가는 여정에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꾼다"

 

우리는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하지만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살거나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삼포세대'(직장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층),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등의 신조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비단 젊은이만이 아니라 50대, 아니 은퇴 이후 세대까지도 '독립'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저자 역시 백댄서(연습생), 연예기획사 아르바이트, 할인마트 판매직, 잡지사 리포터, 시민단체, 사보 취재 기자 등을 거치며 이 땅의 젊은이와 비슷한 고민의 시기를 거쳤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인 독립보다 더 중요한 '삶의 독립'을 선택했다. 틈틈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독립, 하셨습니까?》는 '삶의 독립'을 화두 삼아 저자가 인생 여정에서 만난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정리한 치열한 기록이다. 그중에 한 명이 차동엽 신부였다.

 

근거가 없더라도 희망의 끝을 놓지 마라
가톨릭 신부이자 저술가인 차동엽은 '소유'와 '욕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보이는 삶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삶의 재미나 보람이란 꼭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차 신부는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그로 인해 얻은 성찰을 나누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숨은 행복을 일깨우는 즐거움을 맛보며 산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고, 갈을 묻는 이에게는 아는 만큼 가르쳐준다.


이를 위해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차 신부는 평생 공부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강연과 인터뷰, 상담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틈날 때마다 책을 놓지 않는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과 20대 때의 독서가 그에겐 삶의 자산이 됐다. 인문학이나 독서의 필요성마저 스펙 쌓듯이 얕은 지식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차 신부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슬픔 앞에서 우리에게 '사유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차 신부 외에 8명의 인터뷰이의 삶이 담긴 《독립, 하셨습니까》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며 삶을 개척하려는 이 땅의 존재들을 위한 응원가로 봐도 무방하다. 열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내는 것은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을 가는 것에 비해 몇 배는 힘들다. 하지만 그 길 끝에 '실패'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저자가 만난 9인의 삶이 오롯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지은이  이은


글 쓰고 영화 만드는 사람. 대학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를 공부했다. 1년 반의 휴학기간 동안 세상을 알아보겠다는 미명하에 백댄서(연습생), 연예기획사 아르바이트, 할인마트 판매직, 잡지사 리포터 등으로 일하며 몸으로 살아내는 일을 깨쳤다. 스물여섯 늦깎이로 졸업한 후 지역의 시민단체와 대안교육 단체 일을 잠시 거쳐 첫 정규직으로 사보 취재 일을 했다. 성희롱에 문제 제기하며 2년 정도 다닌 직장을 그만둔 후, 프리랜서 기자로 수년간 여성지에 원고를 썼다. 잠시 연예부 기자로 외도하는 한편 틈틈이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시나리오도 끄적이기 시작했다.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와중 크고 작은 연극 공연도 올렸다. 노동방식에 대한 선택지와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이 훨씬 큰 세상을 꿈꾸며, 자본에 얽매이지 않은 여러 매체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에세이집 《언니들, 집을 나가다》 기획
-안티 친족성폭력 다큐 <잔인한 나의, 홈> 제작·구성
-여성국극 다큐 <왕자가 된 소녀들> 마케터
-격주간 《빅이슈》 칼럼 ‘도시채집망’ 연재
-단편 극영화 <탱고와 스니커즈> 연출
-카페바인 운영위원

 

 

차례

 

추천사 | 삶의 형용구를 찾은 사람들
머리말 | 독립이라는 그 멀고도 지난한 여정

 

동물복지와 환경을 말하는 패션지, 《오보이!》가 들려주는 남다른 평화
-사진가, 《오보이!》 편집장 김현성

 

차디찬 시대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다
-신부, 저술가 차동엽

 

자본을 거슬러 더 생명에 맞닿은 삶을 기획하는 일
-카페 수카라 김수향

 

단순 명쾌한 배우의 삶, 소년과 청년 사이 어디쯤
-배우 이주승

 

인문학이 밥 먹여주는 세상, 인디고서원
-《Indigo》 편집장 박용준

 

천연가죽의 멋을 살린 핸드메이드 잡화 브랜드
-유르트 강윤주, 김영민

 

노력으로 꽃피운 팝핀댄서 듀오, 블루 웨일 브라더스
-팝핀댄서 팝핀제이, 크레이지 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반올림 노무사 이종란

 

사막의 바람을 거스르며 주류 영화계에 도전장을 내다
-영화 프로듀서 김효정

 

감사의 글 |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2012년 10월 7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플래시 포워드 부분 감독 프레젠테이션에서 지미 라루슈 감독은 "내 영화(<상처>)는 한 인간이 아동기에 겪은 상처가 인생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이은 씨가 <상처>를 관람하고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울러 풀어냈습니다. 지난번 연재 이후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내년에 상영될 친족 성폭력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 제작 일정으로 연재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 있는 분들의 후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상처〉를 대하는 태도,
지미 라루슈 감독에게 묻다

‘상처’는 삶의 복잡다단함을 보여주는 한편 삶을 직면하지 않을 핑계도 제공해준다. 때로는 삶의 중요한 순간을 은근슬쩍 피해 숨을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장치 아닌가 말이다. 그런 태도로 면피해온 것들을 근래 자주 느끼고 있다. 어릴 적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에서 혈연가족이 가하는 폭력은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지난 상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상처와 불화하게 되는 것은 그 후폭풍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한 편의 영화에 이끌려 부산으로

애초 부산에 갈 계획은 없었다. 화려한 레드카펫, 국경을 가로지르는 거장의 영화, 밤마다 넘실대는 술잔…. 영화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나와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가치관이 비슷한 이들과 마음이 움직이는 일만 하다 보니, 그중에서도 독립의 독립, 자본과 무관한 작품들이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영화가 관객과 만나도록 기획하는 일로 바삐 움직인 터라 정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관객으로도) 가본 적이 없었다.

<상처>의 메인 포스터. 붉은 색감이 무척 강렬하다. 묵직하게 쓰여진 시놉시스는 또 어떻고! 하지만 영화는 붉은 빛보다 잿빛에 가깝다. 

"잘못된 인생에서 미래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씻을 수 없는 상처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듯, 리차드의 어린 시절 창고에서 일어난 사건의 상처는 그의 인생을 알게 모르게 바꾸어놓는다. 삼십 년이 지난 후, 그는 복수를 위해 그 장소를 다시 찾고,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는 순간을 강렬한 심리적 서스펜스로 그려낸다."

영화 <상처>의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나의 무의식과 의식이 한달음에 '꼭 봐야 할 영화'라며 소리쳤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새벽기차를 타고 내려가 조조로 영화를 보고야 말았으니, 근래 드물게 유별난 끌림이었다. '트라우마 상담'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살아온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와중에 소란스럽던 내면이 조금 정리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 어딘가 영화가 와 닿을 것 같아서였다. 상처 많은 사람이라 여기며 실상 그 이름에 스스로를 가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던 무렵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심신이 온전히 자라기 이전이므로 별 뜻 없이 저지른 일들이 큰 상처로 남아 평생의 무게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사건의 영향력이나 피해에 비해 빨리 아무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아주 큰 트라우마를 겪고서도 남을 돕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예를 왕왕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연쇄 살인범이라도 매 순간이 상처의 기억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듯,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꼭 사람을 혐오하는 성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상처나 사건 자체보다는 그 후의 처치나 오랜 시간의 관리(혹은 치유), 그리고 자라나며 접하는 환경이란 변수가 꽤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과정이 쉽거나 자연스레 이뤄질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도리어 내면에 괴물을 키워낼 수도 있다. 꼭 가족이나 가까운 이가 아니라도 마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가 있다면 상처는 치유의 길로 시나브로 접어든다.

영화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상처>는 매우 현실적으로 등장인물, 가해 혹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판타지를 접목해 인물들의 정서를 놀랄 만큼 세세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예측하지 못한 결말까지 숨도 못 쉬도록 몰아붙이는 촘촘한 솜씨에 소름이 돋을 정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감독의 이중적 경험을 캐릭터의 감정으로 탄탄히 쌓아올렸기 때문이리라.

30년 전의 리차드와 폴, 그리고 폴의 친구들. 둘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차드도 그들 중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폭력이었다. 

극 중 리차드는 창고에서 린치를 당하고 돌아오지만 싸늘한 집안 공기에 혼자 마음을 쓸어내린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머니가 떠난 후였다. 감싸 안아줄 이가 없었던 그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그조차 마음의 빗장을 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상담이나 도움을 받으려 해보지만 상처는 봉합되지 않고 커져만 갔다. 한편 리차드를 집요하게 괴롭힌 폴에게는 위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는 타인의 고통에 이입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리차드는 아들과 부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는 폴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다. 창고에서 재현되는 폭력적 상황은 판타지와 실재를 오가며 그의 분열된 상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30년 후, 창고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용서와 화해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결말은 기대를 처참하게 배반한다.


상처를 증폭시키거나 잦아들게 하는 것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엄마'의 부재 때문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린 아이를 누군가 때렸다고 치자.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의 부재라는 근원적인 원인이 있지만, 실상 폭력을 직접 유발한 것은 친구의 놀림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가 트라우마일 수는 있지만, 이를 거론하며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신이 어쩌지 못할 상황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절망한 아이는 계속 주먹을 휘두르거나 그러다 때때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연쇄구조를 뷰파인더에 담으며 감독은 냉랭할 만큼 거리를 둔다.

도움의 손길에도 폭력으로 대응하는 리차드는(이는 도와주려던 이를 물어뜯는 개의 모습으로 대변된다), 물어뜯긴 자국이 마음으로 번져 통제하지 못할 무기력에 휩싸인다. 감독 혹은 리차드는 30년 전의 사건을 호출하고, 그곳으로 가해한 친구를 데려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고통을 '해결'하려 발버둥친다. '복수'를 계획했다는 사실이 그 절박한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을 강함으로 가리며 살아온 폴에게 그 사건은 기억조차 희미해진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폭력의 결과로 마음이 망가진 리차드의 항변도 그에겐 '약해빠진 놈들의 핑계'로 치부될 뿐이다. 실패한 복수는 삶의 의지마저 앗아간다.

혼자가 된 리차드. 아내도 아들도 그를 외면한다. 배우 마크 비랜드(Marc Beland)는 드라마 시리즈의 주연 배우로, 섬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   
 
나는 처음에 이 이야기가 실패한 복수, 탈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씹어보니 그저 절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벗어나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수록 더욱 그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하지만 "영화의 절반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고백한 감독은 장난꾸러기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두운 절반을 영화에 쏟아붓고 나니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힌 그는 렌즈를 통과한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드러내었다. 그만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는 뜻일 터.

지미 라루슈 감독

"열다섯 살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어요. 다행히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부재를 매 순간 느꼈어요. 체구가 크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고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그러지 않게 된 건, 아마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게 된 무렵인 것 같습니다. <상처>는 이전에 만든 두 개의 단편을 이어 더 풍성하게 만든 영화고요."

아쉽게도 그의 영화가 거친 폭력을 연상(오해이긴 하지만)시켰는지, 평단이나 관객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작은' 영화들은 사실 영화제의 상영작 수를 채우고 가끔 의외의 발견을 위해 존재할 뿐, 스포트라이트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라인업에서 정해진다. 영화제의 위상에 걸맞은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추천작으로 선정하고 스타들을 레드카펫에 세워 시선을 끄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도 적은 예산(총 제작비가 1,100달러, 약 1억 2000만 원의 저예산 영화)으로 영화를 만들기가 녹록하지 않은 것은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그렇다고 그 성취가 크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애 첫 장편영화인데, 영화제에서 초청해주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비와 프로듀서의 출연으로 제작했는데 개런티에 무관하게 배우들이 출연해주었어요. 덕분에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자전적인 이야기로 만든 영화라도 '극영화'임이 분명한데, 나는 자꾸 만든 이의 '삶'에 집중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니 극영화와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고, 영화를 통해 만든 이의 삶 혹은 정서를 들여다보게 되는 태도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 읽기가 갈수록 어렵다. 삶과 영화의 경계, 감상과 성찰의 경계, 영화 속 삶과 영화 밖 삶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점점 무거워지는 까닭이다.


아마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는 상처에 의해 증폭되거나 묻히거나 혹은 해결되기도 한다. 갈 곳 잃은 상처야말로 가장 위험한 종류의 내상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데 가장 필요한 자원이라고 여기는 것도 과언은 아닐 터. 포기하는 것조차 선택일 수 있지만 돌이킬 기회가 있을 때에야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수잔 브라이슨이 쓴 책,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에 나오는 문구로 글을 맺어야겠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트라우마를 초월하는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 희생자가 겪는 생존자의 딜레마를 푸는 것도 아닌 단지 견뎌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그저 견뎌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일 수 있다.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살아야만 해'라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사무엘) 베케트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얼마나 자신들을 지치게 하는 일인지 잘 이해한다."

어쨌거나 삶도, 영화도 계속된다. 내놓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묻어두려 하지만 않으면 어떤 상처라 하더라도 응당한 대가를 돌려준다고 '믿는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코미디라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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