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오전 6시 20분께 관악구 신림동에서 술에 취해 귀가하는 여성을 집까지 뒤쫓아 가서 집에 침입하려다 실패한 30대 남성이 오늘 구속 전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받습니다. 이른바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 속 남성의 범행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트위터와 유튜브 등 SNS에 급속도로 퍼지면서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강남역 살인사건의 충격으로 '여성 혐오'에 다각적인 대응이 일어나고 '미투 운동'이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웠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다시금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생각비행이 이런 문제의식을 내포한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여성의 마음이 가장 치열한 전쟁터다"

이 사회는 여성들이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분석하려 하지 않으면서 페미니스트들이 태생부터 유별난 사람들인 것처럼, 마치 외계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 사람들인 것처럼, 간단히 그들을 ‘혐오 세력’으로 규정하곤 한다. 그러나 페미니스트들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존재도 아니고, 어디 고립된 섬에 따로 모여 살고 있는 이방인이 아니다. 페미니스트들 역시 남성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살아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누군가의 딸, 오누이, 여자 친구였던 여성들이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지난 수년간 한국의 여성운동 진영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갑자기 참여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논쟁이 치열해졌고, 그 와중에 상처 받고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춰버리는 동료들도 늘어갔다.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이유는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을 단순히 ‘이기주의자’로 규정하고, 성별 대립을 ‘상호 혐오’ ‘이성 혐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론적 해석은 여성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내적 갈등과 사건들을 생략하므로 옳지 않다. 여성주의는 지금까지 보던 세상을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이며, 이 과정은 수많은 혼란과 주저함, 갈등을 거치며 이루어진다.

 

현 사회에서 남성이 기득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성별에 관계없이 강자를 선망한다. 열렬히 여성의 편을 드는 남성은 거의 없지만, 열렬히 남성의 편을 드는 여성들이 넘쳐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사회는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혐오하는 사회가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가 여성을 혐오하는 사회이다. 여성 페미니스트들조차도 자신 안에 있는 여성 혐오를 발견하고 놀라고 반성하기를 반복하는데, 어떻게 남성들이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남성을 대적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꾸만 강자의 위치를 선망하고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려 하는 자신 안의 비겁함을 직면하고 맞서 싸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페미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 여성들은 이 내면의 전쟁만으로도 이미 녹초가 되고 만다. 대표적인 자유주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여성의 종속》이라는 저서에서, 여성에 대한 지배가 다른 모든 종류의 지배보다 더욱 끔찍한 것은 바로 여성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남성과 여성의 성별 싸움은 이처럼 여성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진다. 남성들은 여성을 진심으로 남성의 이해관계에 동조하게 만들기 위해, 여성인 척 여성 커뮤니티에 잠입하여 여성들을 훈계한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에 들게 행동하는 여성에게는 ‘개념녀’라는 훈장을, 그렇지 않은 여성에게는 ‘김치녀’라는 모욕을 줌으로써 여성들의 행동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조종하고 통제하려 한다.

 

여성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여성운동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려 하는 남성의 시도에 맞서 싸우는 일이며, 그렇기에 페미니스트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과 가장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다. 이미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충분히 지친 사람들은 동료를 포용할 정신적 여유가 없다. 최근 여성들끼리 서로 상처 주는 일이 늘어난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지난 몇 년간의 싸움으로 지쳐 있는 페미니스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커다란 일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마음을 남성으로부터 지켜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힘든 싸움을 한 것이라고.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것이라고.

 


《82년생 김지영》 이후의 페미니즘

2018년 한 해 동안 《82년생 김지영》으로 인해 한국 사회가 몸살을 앓았다. 고 노회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이슈가 되었고, 그 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국내에서만도 100만 부가 넘게 팔리고, 세계 각국으로 번역되어 나갔다. 그러자 ‘82kg 김지영’이니, ‘90년생 김지훈’이니 하면서 한국 남성들의 조롱도 이어졌다. 젊은 남성들은 ‘저런 차별은 82년생들이나 겪은 거지, 더 어린 여성들은 경험한 바가 없다, 이미 성차별은 사라졌다.’라고 주장하지만 웬걸, 오히려 더 어린 여성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이조차 너무 온건하다고 주장한다.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진 《82년생 김지영》이 한국 사회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것은 바로, 페미니즘을 소수 엘리트 여성의 것에서 다수의 평범한 여성들의 것으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이다. 조남주 작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한국에서 페미니스트 작가로 가장 유명한 이는 공지영 작가였다. 이 두 페미니즘 작가 사이에는 커다란 시간차가 있었으며, 그사이 한국 사회는 참 많이 변했다. 그 변화의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페미니즘의 필요성이 엘리트 여성에게서 다수의 평범한 여성에게로 옮겨가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고, 조남주 작가는 시의적절하게도 이 점을 잘 포착해냈다.

 

공지영 시대의 페미니스트만 보더라도 나름대로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난 고학력 엘리트 여성들이었다. 그걸 보면서 평범한 여성들은 ‘나 같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외쳐도 될까?’ 하고 주저하기도 했고, 거꾸로 엘리트 여성이라면 응당 페미니스트여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의 등장으로 이러한 분위기는 많이 완화되었다. 어쩌면 이 소설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를 페미니즘에 대한 평범한 여성들의 갈증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차별’이라는 것이 뭔가 대단한 사회적 지위나 권력을 두고서만 제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일상 속 작은 불편함에도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이 소설이 말해준 것이다. 거기서 많은 여성은 자신들이 느끼던 막연한 고통을 설명할 언어를 찾을 수 있었다.


《82년생 김지영》의 주인공 김지영은 지극히 평범하다. 이 사회를 바꾸리라는, 혹은 남성과 동등한 지위에 올라서겠다는 야망을 가진 엘리트 여성도 아니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일 뿐이다. 선거권이 일시에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부자 남성, 그다음에는 평민 남성, 그다음에는 흑인 남성, 그다음에 여성에게 주어졌듯이, 페미니즘 역시 처음에는 엘리트 여성에게만 주어졌다가 서서히 평범한 여성들에게로 확장되는 경로를 밟아나가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말해주었다. 여자라고 더 잘할 필요 없다고, 그리고 성평등을 주장하기 위해서 굳이 뛰어난 성취를 거둬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바로 이 메시지에 여성들은 열광했다. 이제 평범한 여성 대중을 위한 페미니즘이 이전의 것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 더 많이 논의해야 할 때이다.


《누구나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평범한 페미니스트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꿰뚫는다. 왜 평범한 여성들이 ‘개념녀’가 되길 포기하고 ‘이퀄리즘’(성별 불평등을 스스로의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로 여기도록 만들기 위해 고안된 용어)을 비판하는지, 왜 페미니스트가 ‘탈코르셋’을 주장하며 ‘미러링’이란 방법을 동원하는지, 왜 ‘가부장제’와 ‘남성 중심 사회’를 거부하며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연공서열제’를 비판하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여성 혐오’와 ‘여성 착취’에 왜 연대하여 맞서야 하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저자

이유주
1991년에 출생하여 남성과 동등한 교육을 받고 자랐지만 늘 남성이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에 의문을 품어 왔다. 그러다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성이 만든 사회와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 페미니즘의 목표라는 것을 깨닫고 페미니스트로 거듭났다. 최근 전개된 한국의 새로운 세대 여성운동을 재구성한 르포 소설 《나의 페미니즘 동아리》를 출간한 바 있고, 앞으로 꾸준히 여성운동에 참여하며 그 역사를 기록해나갈 예정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 여성의 마음, 가장 치열한 전쟁터

 

1. 개념녀가 되길 포기하다
 각자내기를 하면 평등해질까?
‘개념녀’ ‘이퀄리즘’은 어떻게 신자유주의에 부역하는가?
갑옷과 코르셋의 서로 다른 기능
 왜 하필 ‘김치녀’일까?
사랑받지 못하는 남성들
 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도 ‘억압’을 느끼는 남성들
 전업주부를 질투하는 남성들
 여성의 연약함은 무기가 된 적이 없다
 나는 남성들을 더욱 몰아붙일 것이다

 

2. 피해자다움은 없다
 혜화역 시위가 메갈리아 영향권에 있다고?
미투 운동 그 이후의 한국 사회
 이기적인 여성이 사회를 진보시킨다
‘미러링’은 여자들을 변화시켰다
 공적 제도를 불신하는 여성들
 피해자다움은 없다
 누구나 그렇게, 흔들리며 페미니스트가 된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한계

 

3. 가부장제 사회에 비비탄을 쏘아 올리다
 로맨스와 범죄 사이를 넘나드는 위험한 드라마들
 미쓰백, 여성들의 새로운 공동체 문화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통해 보는 가부장제와 사교육
《82년생 김지영》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것
 우리가 남이가? 네, 우리는 남입니다
 비비탄의 성공을 위하여
 가족임금 이데올로기와 연공서열제
 여성후보 뽑기 운동만으로 될까?
자신들을 대변할 정당이 없는 것은 여성도 마찬가지다

 

4. 새로운 지구를 위한 상상력
‘홍대 몰카’ 피고인 안모 씨의 어머니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내적 탈코, 이제는 생존 전략이다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세대
 나라가 망할 땐 ‘암탉’이 먼저 운다?
군대는 여성 착취 위에 존재한다
 진보 남성은 왜 여성을 혐오하는가?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착각하는 남자들
 탈코르셋 운동과 제3세계
 젠더와 성별, 그리고 제3세계

 

참고 도서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에 탐사보도의 개념과 역사에 대해 짧게나마 소개했습니다. 어떻게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네요. ^^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탐사보도 관련 기사는 연재물로 기획했습니다. 처음에는 탐사보도라는 장르의 개념을, 그다음으로는 탐사보도와 관련된 프로그램을 여러분께 소개하기로 약속드렸죠.


그래서 이번에는 한국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에는 3개의 지상파 방송이 있는데요, 방송국마다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장수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아쉽게도 사라지는 프로그램도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연재할 포스팅은 방송사마다 장수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아울러 주요 사건도 함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오래 방송되지 못하고 사라진 프로그램도 추후에 다룰 예정입니다.)

오늘 소개할 방송사는 MBC입니다. MBC는 정말 많은 탐사보도 프로그램를 제작하고 방영했습니다. 그 가운데 저희가 주목해서 소개하려는 프로그램은 <PD수첩>과 <시사매거진 2580><불만제로> 입니다.

<PD수첩>

<PD수첩>은 1990년 5월 8일 <피코 아줌마 열 받았다>편을 시작으로 처음 전파를 탄 MBC의 간판격 탐사보도 프로그램입니다. 1980년대 말, 많은 시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함께 등장한 기념비적인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부터 방영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이다 보니 여러 가지 사건·사고를 직접 취재하여 방영했습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볼 때 <PD수첩> 스스로 이야기하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목격자'라는 말과 부합하는 면이 있는 듯하군요.

지금까지 <PD수첩>이 방영한 탐사보도 가운데 사회에 영향을 끼친 내용이 무척 많습니다.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란, 촛불집회의 효시가 된 효순이·미선이 사건, 사이비 종교 문제, 지도층 인사들의 비리, 고위인사들의 한국 국적 포기와 같은 굵직굵직한 사회의 부조리를 밝혀 시청자들에게 널리 알렸습니다. 특히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다룬 방송은 국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게 한 기념비적인 방송이었다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 밖에도 일본으로 강제로 끌려간 동포들이 살고 있는 우토로 철거에 대한 탐사보도는, 국내에서 우토로 살리기 운동을 촉발하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었죠.

방송금지 사태가 벌어진 3개의 탐사보도


방송을 위해 늘 현장을 취재하는 <PD수첩>이다 보니 여러 가지 우여곡절도 많았다고 합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세 번의 방송금지 사태였습니다.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직전 방영할 예정이었던 <그래도 농촌을 포기할 수 없다>편은 MBC 사장의 직권으로 방송을 금지한 사례였는데요, 이 때문에 MBC 직원들은 파업을 단행했습니다.

다음으로 만민교회 이단 목사 파문의 경우가 좀 특별합니다. 방송이 나가는 도중 갑자기 끊기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MBC 방송사으로 만민교회 신도들이 난입한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습니다. 광신도들이 MBC 주조종실에 침입해서 기기를 부수는 바람에 방송이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황우석 교수 사태 때는 <PD수첩> 프로그램이 사실상 존폐위기에 놓였습니다. <황우석 신화의 난자의혹>편은 당시 언론 대다수가 '신화'로 일컫는 줄기세포가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에 '황우석 열풍'이 불던 대한민국에서는 기업들이 <PD수첩>을 옥죄기 위해 MBC에 광고를 중단하는 사태에 이르렀고, 결국 자본의 힘 앞에서  <PD수첩>은 무기한으로 방송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PD수첩>은 끝까지 황우석의 줄기세포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 결국 줄기세포가 없다는 진상을 밝혀냈습니다.

여전히 그들은 성역과 금기에 도전하고 있다


최근에도 <PD수첩>은 많은 외압을 받고 있습니다.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던 광우병 파동, 스폰서 검사사건, 4대강 사업과 관련된 탐사보도를 제작 방영하면서 PD가 경찰 조사를 받는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PD수첩>의 보도 의지는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항상 이야기하는 시청자의 파수꾼, 외압과 무력에 굴하지 않는 <PD수첩>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죠. 이러한 의지의 산물일까요? 올해 <PD수첩>이 20주년을 기념하며 시청자들을 초대해 축하 방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


앞서 <PD수첩>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말 그대로 PD들이 방송을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기자가 중심이 되어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바로 <시사매거진 2580>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PD수첩>과 비슷한 시기인 90년대 초(1994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사회적 문제가 되었던 '외국인 매춘관광' '화장품 피라미드' 등을 다뤘습니다. <시사매거진 2580>의 첫 방송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시사프로그램으로, 그것도 심야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으로  24퍼센트의 시청률을 기록했으니까요.

첫 방송 이후, <시사매거진 2580>은 첫해에만 2개의 상(이달의 프로그램상, 한국방송대상 보도부문 작품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지존파 7인의 어린 시절 등을 다룬 방송으로 시청률 30퍼센트를 돌파합니다. 시의적절한 내용을 발 빠르게 전달했기 때문에 좋은 출발을 보여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최근에 <시사매거진2580>이 폭로한 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떠들썩했습니다. 재벌 일가인 어느 중견업체 회장이 회사 합병 과정에서 고용승계에서 제외되자 항의하기 위해 1인 시위를 벌인 탱크로리 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한 사건이었습니다. <시사매거진2580>이 밝힌 내용은 구타 후 발설하지 않는 대가, 즉 맷값으로 2000만 원을 건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방송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른바 재벌의 폭행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맷값 사건이 방영된 후 수많은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뤘습니다. 결국, 최 사장은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았고 결국에는 구속되었습니다. '맷값 사건 보도'는 재벌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벌인 파렴치한 행위를 탐사보도로 밝혀내어 시민의 억울함을 풀어준 통쾌한 방송이었습니다.


<불만제로>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돈을 주고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습니다. 대부분의 시민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잦았죠. 하지만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소비자가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돈을 낸 만큼 제값을 따지는 게 당연하다는 점을 이젠 소비자 스스로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발맞춰 MBC에선 소비자들의 정당한 권익을 찾아주는 탐사보도 방송을 제작하여 방영하고 있습니다. 바로 <불만제로>입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음식재료를 잘못 쓴 어떤 기업이 망할 뻔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통기한이 지난 재료를 사용했다는 사실이 들통 난 사건이었는데요, 그 일이 일어나자 기업 총수가 TV에 나와서 90도로 인사하며 사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동안 그 기업의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습니다.

한국에서는 소비자의 대응이 조금 약한 편이죠. 그런데 인터넷 매체가 발달하면서 문제가 있는 상품에 관한 불만사항을 올리는 사례가 늘었습니다. 그런 불만이 쌓여 점차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이 자신의 권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불만제로>는 탐사보도 형식으로 많은 불량기업을 폭로하며 그 몫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불만제로는 우선 시민의 여러 가지 불만을 접수합니다. 그리곤 직접 확인 과정을 거치는데요, 그 과정이 상당히 정확하고 과학적입니다. 이를테면 기업의 문제라면 내부 고발자를 인터뷰하고, 몰카를 이용하여 잡입취재를 해서 생생한 증거물을 수집하는 방식이죠.
소비자의 불만사항을 직접 확인하는 실험과 분석을 진행한 다음, 콩트 형식으로 알기 쉽게끔 설명하는 진행방식은 <불만제로>의 큰 장점입니다. 기존 탐사보도 프로그램이 시사적이고 대의적인 내용이 많다면, <불만제로>는 소비자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을 보도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불만제로>의 가장 큰 특징은 사후관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방송으로 끝내지 않고 다시 찾아가 소비자의 불만 내용이 시정되었는지 재차 확인합니다. 시정 조치를 하지 않은 곳은 또다시 고발해서 바로잡도록 했고, 제대로 고친 곳은 그 내용을 시청자에게 당당하게 공개했습니다. 방송에서 소비자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법이 개정되어 <불만제로>가 문제가 있는 기업체를 고발한 다음 그 업체 정보를 게시판에서 알려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송에서 다룬 기업의 상호를 공개하기 시작했고, 또한 취재 과정에서 우수했던 기업의 상호나 연락처도 공개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잘못된 기업에 대해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지금까지 M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MBC에서 방송했던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더 있으며, 그 방송이 정말 많은 일을 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프로그램은 과거에 쉬쉬하고 지나갔던 암울한 과거를 바로잡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김혜수의 W>는 세계 여러 나라에 눈을 돌려 우리가 뉴스를 통해 미처 보지 못하는 새로운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W를 통해 제 3세계 불우 아동들에 대한 후원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자세히 다룬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정말로 많지만, 이 정도로도 여러분이 국내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데는 충분하리라고 봅니다. 앞으로 다룰 다른 방송사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더 많은 정보를 전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



못다 한 이야기
**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은 (<PD수첩><시사매거진 2580>< 불만제로> 등)은 imbc홈페이지에 회원가입후 무료로 볼 수 있으며 일부는 다운로드까지 가능합니다.
** <PD수첩>의 인기는 코미디 패러디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김현철 씨의 <PD공책>이 바로 그것이죠. ^^
** 현재 <PD수첩>은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낮아진 퀄리티로 인해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입니다. 이럴때일수록 따끔한 비판도 좋지만, 따뜻한 지지로 많은 힘을 북돋아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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