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이제 곧 겨울입니다. 눈도 내리겠지요. 푸름을 자랑하던 나무도 낙엽을 떨구며 겨울로 향하고 있고 2012년도 11월을 넘어 2013년을 향해 달려갑니다. 올 1월에 세웠던 계획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더라도 한 해를 잘 보내겠다던 생각은 간직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내년을 준비하며 보냈으면 합니다. 

2012년은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로 마감합니다. 대한민국의 정계를 둘러보면 많은 정치가가 입문할 때 다짐했던 첫 마음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대개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정계에 들어왔겠지요. 부디 그 초심을 기억하고 실천하기 바랍니다. 특히 대통령이 될 유력 후보들이 출마하면서 했던 말을 끝까지 지키기 바랍니다.

 


초심

눈 오는 아침은
설날만 같아라

새 신 신고 새 옷 입고
따라나서던 눈길
어둠 속 앞서가던 아버지 흰
두루막 자락 놓칠세라
종종걸음치던 다섯 살
첫길 가던 새벽처럼

눈 오는 아침은
첫날만 같아라

눈에 젖은 대청마루
맨발로 나와
찬바람 깔고 앉으니
가부좌가 아니라도
살아온 흔적도 세월도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흰 눈송이 같은데

투둑, 이마를 치는
눈송이 몇
몸을 깨우는 천둥 소리

아, 마음도 없는데
몸 홀로 일어나네
몸도 없는데
마음 홀로 일어나네

천지사방 내리는 저 눈송이들은
누가 설하는 무량법문인가

눈 오는 아침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첫날만 같아라

많은 사업가가 기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의 마음을 잊고 지냅니다. 자신의 부를 위해, 돈에 대한 욕심으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노동자와 사회에 보탬이 되는 기업가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시작하고 기업을 키우려고 열심히 노력했을 겁니다. 하지만 욕망이란 괴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런 순수한 사람들의 초심을 앗아갑니다.

초심을 잃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과연 어디에서 차이가 생겼을까요. '조금'과 '지금'의 차이가 아닌가 합니다. 아주 조금, 조금만 더 사업체를 키운다면 사회를 위해, 직원들을 위해 무언가를 실천하겠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 '조금'을 기다리는 사업가에게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기회가 오지 않습니다. 사업체가 커가는 사이 변하는 자신을 합리화하기 바쁘고, 거래처에 부담을 지우고, 직원의 노동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악덕 기업주로 변해버립니다. 반면 초심을 잃지 않는 사업가에게는 '지금'이 중요합니다.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처음 생각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초심을 실천하려 합니다. 

시인은 초심을 "눈 오는 아침은 / 설날만 같아라"라고 표현하는데, '눈이 오는 아침'이 '설날'로 이어지면서 눈에 이입된 초심의 이미지가 확대되는 효과를 거둡니다. 어린 시절 설날은 흥분되고 기다려지는 가장 풍요로운 날입니다. 떡국과 맛난 음식, 세배하고 받는 세뱃돈 등 어린 시절의 설날을 생각하면 언제나 설레는 기억뿐입니다. 이런 기억은 "종종걸음치던 다섯 살 / 첫길 가던 새벽처럼" 새 신에 새 옷 입고 아버지를 놓칠세라 따라가는 다섯 살 아이의 설레면서도 조급한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시인은 설빔을 입고 아버지를 따라 설을 보내러 가는 다섯 살 아이의 마음으로 ‘눈이 오는 날을 설날 같다’고 초심을 묘사합니다. 시인에게 초심은 다섯 살 아이의 마음으로 설날을 맞는 벅찬 감정인 셈입니다. 

어린아이의 초심은 "눈 오는 아침은 / 첫날만 같아라”처럼 눈이 오는 첫날 아침의 이미지로 성장하여 어른의 눈으로 '초심'을 생각합니다. 초심은 다섯 살 어린아이의 천진한 설날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며 다시 힘을 내어 살아야 하는 첫날로 변화합니다. 지나온 모든 흔적을 덮는 눈, 아무도 밟지 않는 눈, 그것을 보는 시인은 처음 품었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는 첫날을 느낍니다.

 

"눈에 젖은 대청마루 / 맨발로 나와 / 찬바람 깔고 앉으니 / 가부좌가 아니라도"라는 표현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시인이 어린아이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설날을 맞이하는 다섯 살 아이의 설레는 시각과, 오랜 시간 현실과 맞서 싸우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버티는 현재의 시점으로 떨어지는 흰 눈송이를 봅니다. 그런 마음이기에 "살아온 흔적도 세월도 / 흰 눈송이 위에 내리는 / 흰 눈송이 같은데”라고 자신이 걸어온 세월과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겠지요.
  
일관된 삶을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시인이지만 혹여 초심을 잃을 수도 있을까 싶어 자신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런 심정이 "투둑, 이마를 치는 / 눈송이 몇 / 몸을 깨우는 천둥 소리"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납니다. 아주 작은 눈송이가 이마에 떨어졌을 뿐인데도 시인은 그것을 천둥소리로 느끼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초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지요. 시인에게 이러한 충격은 지금까지 견지해온 삶의 무게에서 기인합니다. 그 충격이 "아, 마음도 없는데 / 몸 홀로 일어나네 / 몸도 없는데 / 마음 홀로 일어나네"와 같은 깨달음으로 이어집니다. 천지에 내리는 눈송이를 보며 누가 설하는 무량법문인가 하고 스스로 묻지만, 사실 시인은 이미 답을 얻었습니다. 고승의 설법이 아니더라도 시인의 이마를 적시는 흰 눈송이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하고 잊지 말아야 할 초심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입니다. 눈을 맞으며 깨달음을 얻은 시인이 눈 내리는 아침을 새롭게 느끼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아마도 "눈 오는 아침은 /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 첫날만 같아라"라는 표현을 쓸 수 있지 않았을까요?

이제 곧 서울에도 첫눈이 내리겠지요.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지난날의 흔적을 지우려 하기보다 어린 시절 품었던 이상과 올바름을 간직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재 여러분의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백무산
1955년 경상북도 연천에서 태어났다.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80년대 노동의 삶에 관한 관심을 시적으로 형상화하기 시작한 그는 자본의 무한 잡식성을 비판하고 자본의 가치를 넘어서는 인간의 근원에 대한 생각들을 시에 담아내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90년에 출간한 그의 두 번째 시집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는 '정치 조직을 통한 노동자 계급의 권력 획득'을 선언하며 노동계급의 투쟁을 직설적으로 노래했다. 1988년 말부터 1989년 초까지 약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울산 현대중공업 대파업투쟁을 한 편의 완결된 장시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작가의 실제 삶이 문학적 표현으로 투영된 흔치 않은 경우라 할 수 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인간의 시간》《길은 광야의 것이다》《초심》《길 밖의 길》《거대한 일상》《완전에 가까운 결단》《그 모든 가상자리》 등이 있다. 1989년 제1회 이산문학상, 1997년 제12회 만해문학상, 2007년 제6회 아름다운 작가상, 2009년 오장환문학상, 제1회 임화문학상 등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입니다. 세 후보 역시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까닭은 지난 시절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성장 위주 정책이 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건만 지금까지의 정치는 절망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젠 정치인들의 희망 섞인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절망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
그리하여 잠들라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몰려다닙니다.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누구 하나 말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말리려는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다칩니다. 그들에겐 법이 소용없고, 경찰도 검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사하던 검찰은 그들의 회사 임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무원은 돈으로 매수됐습니다. 광고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고 정치인들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아파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1978년에 출간된《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이라는 시 속의 사회와 오늘날 1퍼센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라는 표현에 드러났듯이 ‘살찐 死者들의 입김’은 안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마을을 뒤덮습니다. 그 안개에 갇히면 죽습니다. 死者의 입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숨기를 권합니다. 
死者는 보통 死者가 아닙니다. 살찐 사자입니다. 지금도 살찐 死者가 대한민국의 99퍼센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의 몫이 부족한 나라,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나라, 99퍼센트가 꿈꾸는 희망이 1퍼센트의 희망에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에서 힘없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은 것은 ‘피곤과 우울’뿐입니다. 

살찐 死者들이 1퍼센트가 돼서 99퍼센트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지만 ‘너희도 희망을 가지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고 언론이, 공권력이, 정치가들이 거짓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발표된 1970년대 말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건만 2012년 오늘도 이런 거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9퍼센트의 희망을 품은, 우울함과 피곤함에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이 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살찐 死者로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의 희망이 피곤과 우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은 이웃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고 싶기에 시인은 死者의 입김을 피하라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칩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처럼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쓰러트리는 진실의 힘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시를 마무리하면서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기 위해 말없이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영혼'이 우울하고 피곤한 이웃의 밤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짓 희망을 직접 쓰러트리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시인의 얘기처럼 거짓 희망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울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희망을 꿈꿔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만큼 많고 많은 말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느니, 대선 후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말과 행동의 간극을 보며 마음의 진실함을 확인합니다.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때에 지키지 못할 사람의 약속에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눈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종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에 정년퇴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등이 있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등이 있으며 시론집《숨과 꿈》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충만한 힘》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도종환보다 시인 도종환으로 훨씬 유명한 그가 세간의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편향적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잣대 때문이었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회의원 신분이 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해당 교과서 출판사에 권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이러한 삭제 권고의 근거로 “교과서 심사 원칙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현존 인물(현역 정치인 포함)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는 것이었음”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필 <아무나 가져가도 좋소>도 빠져야 하고,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뛰어드는 순간 <내 삶의 가치>라는 수필도 교과서에서 빼야 할 겁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제로는 편향적인 교과서 심사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정치가의 기준을 정당에 관련된 인물이나 투표로 선출된 사람으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박근혜 대선캠프에 속한 박효종 교수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의 공동저자입니다. 그는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정치적 이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김동길 교수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라는 글도 교과서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기준이 공정하다면 이들의 글은 교과서에 왜 실릴 수 있을까요?


종점

종점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오다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골목을 채운 아이들 육이오 노랠 듣는다.
구름은 북으로 기울고 새들은 낮게 나는데
우리 누이들 단발머리 풀풀 고무줄 할 때
양지쪽에 기계충독 오른 머릴 쪼이며
― 원수에 하나꺼지 쳐서 무찔러
쪼그려 앉아 따라 부르던 노래
지금도 도깨비 시장 리어카 끄는 서상사 아저씨
짧은 여름밤은 전쟁 얘기로 흥겨웁고
멋진 군인이 되고파 주먹을 쥐게 하더니
아직도 유월이면 이 증오의 노랫소리 들리고
장마전선은 내일도 걷히지 않으리라 한다.
그땐 어찌하여 말해주지 않았을까.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
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
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
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전쟁은 신나는 일도 스릴과 써스펜스도
아니라는 것쯤 왜 가르치지 못했던 것일까.
어둠은 쉬이 오고 곤청색 산들을 끌며
비구름은 지평선을 넘는데
벽 돌담 아래에 아이들은 모여든다.

도종환 시인의 <종점>이란 작품에서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세대가 이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받은 이들입니다.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도종환 시인은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쳐왔고 바른 교육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적어도 그는 <종점>이라는 시에서 지적한 일방적인 증오심을 키우는 교육, 적개심을 일으키는 교육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민중이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을 먼 곳에서 찾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에 앗기우며 한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에 징병으로 끌려가 돌아가신 큰아버지, 그 큰아버지와도 싸웠을 군대에 배속되어 분단의 전쟁을 치른 아버지, 소금장수, 이발쟁이, 날품팔이, 농사군 형제들, 언청이, 못난이 누이들,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내 이웃의 삶 속에는 생생한 역사와 삶의 아리고 한스러운 흔적들이 흉터처럼 박히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민중은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이 모든 동시대인들의 삶에 몇 발작 비켜서서 자학하고 탄식하며 오만함 속에 또한 신비한 체험 속에만 빠져서 반성문 같은 시, 변명 같은 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는 삶 속에, 이 땅 위에 튼튼히 뿌리를 박는 서정과 용기이어야 하리라 믿는다.
분단시대 약소민족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 속에 서서 튼튼한 시를 쓰고 싶었다."
-《고두미 마을에서》 후기 중에서


시인 도종환은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의 후기에서 말하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시를 충실하게 써왔습니다. 전교조가 사회의 이슈로 떠올라 시끄러웠던 때에 전교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시를 썼고, 사회의 벽이 느껴질 때는 그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대면했던 시인 도종환은 이제 국회의원 도종환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와 관련 없는 시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 힘든 정치인생을 겪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자랐던 우리는 이제 시인 도종환이 아닌 정치인 도종환의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번에 시인 도종환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했던 한국교육평가원의 판단은 정치인 도종환이 쓴 <담쟁이>의 일부분을 문재인이 대선에 참여하면서 인용했고, 정치인 도종환이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이던 2004년에 문학사상사가 펴낸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라는 책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면서 “인생의 지표가 된 이 시를 매일 아침 새롭게 가슴에 새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요즘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로 끝나는 함석헌 선생의 시를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지 의심스럽군요.
  
정치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많은 사람에게 밝힌다는 것은 그 시의 상징적 무게를 등에 업는 것과 같습니다.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윤동주의 <서시>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가는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고들 합니다만, 시의 상징성을 등에 업으려 하는 정치가에게 '시어'는 오만한 거짓을 드러내는 진실의 현미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의 <서시>중에서)”는 시인의 표현에 맞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며,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중에서)”라는 외침을 과연 실천할 수 있는지 그들은 되물어야 할 겁니다.

2012년은 정치의 해입니다.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정치가의 언행에 쏠려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정치가가 그립습니다. 정치 세력을 따라 호가호위하려는 언론이나 검찰 등 권력층의 행동은 이 더위에 국민을 더 짜증 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도종환
1954년 청주에서 출생하여 충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오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1998년 해직 10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하여 교사로 재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청주지부장, 장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문학위원회 위원장,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내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7회 민족예술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접시꽃 당신》《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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