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3명의 주요 대통령 후보가 경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복지와 경제민주화’입니다. 세 후보 역시 이와 관련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동안 정치권이 외면하던 복지와 경제민주화 정책이 이렇게 이슈가 된 까닭은 지난 시절 국민에게 희생만 강요한 성장 위주 정책이 더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어야 하건만 지금까지의 정치는 절망만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정권은 바뀌어도 대다수 국민의 삶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갈수록 삶의 질은 떨어지고 미래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이젠 정치인들의 희망 섞인 말에 잠시 기대했다가 이내 절망을 재확인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
그리하여 잠들라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

이미 많이 가진 자들이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몰려다닙니다. 온갖 행패를 부리지만 누구 하나 말리질 못합니다. 오히려 말리려는 이웃들만 피해를 보고 다칩니다. 그들에겐 법이 소용없고, 경찰도 검찰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사하던 검찰은 그들의 회사 임원으로 옷을 갈아입고, 공무원은 돈으로 매수됐습니다. 광고의 달콤함에 빠져버린 언론은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급급하고 정치인들 역시 눈치만 살피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많은 사람이 절망하고 아파하고 있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1978년에 출간된《나는 별아저씨》에 실린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 이라는 시 속의 사회와 오늘날 1퍼센트가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지 않습니다. “누구의 입김인가 이 안개는 / 살찐 死者들의 입김이지, 이 안개는 / 꼭꼭 숨어라 친구들이어 머리카락 보인다 이웃들이어”라는 표현에 드러났듯이 ‘살찐 死者들의 입김’은 안개를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개는 마을을 뒤덮습니다. 그 안개에 갇히면 죽습니다. 死者의 입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숨기를 권합니다. 
死者는 보통 死者가 아닙니다. 살찐 사자입니다. 지금도 살찐 死者가 대한민국의 99퍼센트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낮의 일과 불투명한 노력들은 / 우리들 자신의 몫이 못 되고 /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 허락되기 어렵다 하더라도 / 피곤과 우울은 우리의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노동자의 몫이 부족한 나라, 밝은 미래가 오리라는 불확실성 속에서 과연 노력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은 나라, 99퍼센트가 꿈꾸는 희망이 1퍼센트의 희망에 무참히 짓밟히는 나라에서 힘없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남은 것은 ‘피곤과 우울’뿐입니다. 

살찐 死者들이 1퍼센트가 돼서 99퍼센트에게 절망을 안기고 있지만 ‘너희도 희망을 가지면 우리처럼 될 수 있어’ 하고 언론이, 공권력이, 정치가들이 거짓을 근사하게 포장하는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이 발표된 1970년대 말을 지나 수십 년이 흘렀건만 2012년 오늘도 이런 거짓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99퍼센트의 희망을 품은, 우울함과 피곤함에 지친 이들이 서로의 어깨를 안으며 서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편히 잠들라 내 이웃들이어 / 각성은 눈뜨면 못 쓰고 / 잠조차 뿌리내릴 수 없는 / 아, 이땅의 가난한 영혼이 / 뜬눈으로 그대의 잠을 지키고 있다”는 정현종 시인의 표현처럼 이 땅의 가난한 영혼이 뜬눈으로 살찐 死者로부터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고 있습니다.
 
시인은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서도 그 희망이 현실에서 이루어진다고 확신하지는 못합니다. 현실의 희망이 피곤과 우울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희망을 잃은 이웃들이 편히 잠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믿고 싶기에 시인은 死者의 입김을 피하라고 친구들과 이웃들에게 소리칩니다.

시인은 이 시의 제목처럼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이야기하며, 거짓을 쓰러트리는 진실의 힘을 꿈꾸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은 시를 마무리하면서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기 위해 말없이 현실의 벽과 싸우고 있는 '가난한 영혼'이 우울하고 피곤한 이웃의 밤을 지키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거짓 희망을 직접 쓰러트리지 못하는 현실이 못내 답답하지만, 시인의 얘기처럼 거짓 희망에 맞서서 끊임없이 싸우는 이들이 있기에 우울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며 희망을 꿈꿔봅니다.

이제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정치 이벤트인 만큼 많고 많은 말이 우리를 현혹합니다. 서민 경제를 살리겠다느니,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이룩하겠다느니, 대선 후보자들과 주변 인물들이 세상을 뒤바꿀 것처럼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시달릴 지경입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말과 행동의 간극을 보며 마음의 진실함을 확인합니다. 99퍼센트의 국민에게 희망을 주겠다고 모두 한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이때에 지키지 못할 사람의 약속에는 속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 희망을 쓰러트리는 우리들의 희망’을 실현하기 위해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해서 스스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는 눈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정현종
193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재학 시절 대학신문인 《연세춘추》에 발표한 시가 연세대 국문과 박두진 교수의 눈에 띄어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단에 등장했다. 1966년에는 황동규, 박이도, 김화영,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동인지 《사계》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1970∼1973년 《서울신문》 문화부 기자로, 1975∼1977년에는 《중앙일보》 월간부에서 일했으며, 1977년 신문사를 퇴직한 뒤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부임해서 시 창작 강의를 했다. 1982년부터 연세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에 정년퇴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사물의 꿈》《나는 별아저씨》《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한 꽃송이》《세상의 나무들》《갈증이며 샘물인》《견딜 수 없네》 등이 있다. 시선집《고통의 축제》《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이슬》 등이 있으며 시론집《숨과 꿈》과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충만한 힘》 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연암문학상, 이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미당문학상, 경암학술상(예술부문) 등을 수상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6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한국전쟁을 수나라, 당나라, 원나라의 침략처럼 과거에 일어난 일로 치부하고 역사의 화석같이 취급할지도 모르지만, 사실 6.25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현실입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한반도의 상흔은 복구 노력과 오랜 개발의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정서적 충격과 이데올로기적 논리는 1970~1980년대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민족을 분열시키는 정치적 도구로 여전히 활용되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준비가 부족했던 해방을 맞이한 뒤, 우리의 의사와 무관한 분단과 남북 갈등을 겪은 것도 모자라 같은 민족끼리 피를 뿌리는 참혹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처럼 1945년부터 1950년 초반까지의 한반도는 기쁨과 희망에서 슬픔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맺힌 공간이었습니다. “아아~6.25!” 하고 슬픈 탄성을 자아내는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고 살아남은 이에게는 괴로움, 분노, 삶의 허무함만 남겼습니다. 전쟁을 경험한 많은 분이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전쟁의 충격을 알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그 감정을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생각비행이 찾은 하나의 답은 박인환의 <어린 딸에게>라는 시입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어 소개합니다.

1955년 발행된 박인환의 첫 시집이자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

 

어린 딸에게

기총과 포성의 요란함을 받아가면서
너는 세상에 태어났다 죽음의 세계로
그리하여 너는 잘 울지도 못하고
힘없이 자란다.

엄마는 너를 껴안고 삼 개월간에
일곱 번이나 이사를 했다.
서울에 피의 비와
눈바람이 섞여 추위가 닥쳐오던 날
너는 입은 옷도 없이 벌거숭이로
화차 위 별을 헤아리면서 남으로 왔다.

나의 어린 딸이여 고통스러워도 애소(哀訴)도 없이
그대로 젖만 먹고 웃으며 자라는 너는
무엇을 그리 우느냐.

너의 호수처럼 푸른 눈
지금 멀리 적을 격멸하러 바늘처럼 가느다란
기계는 간다. 그러나 그림자는 없다.

엄마는 전쟁이 끝나면 너를 호강시킨다 하나
언제 전쟁이 끝날 것이며
나의 어린 딸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행복할 것인가.

전쟁이 끝나면 너는 더욱 자라고
우리들이 서울에 남은 집에 돌아갈 적에
너는 네가 어데서 태어났는지도 모르는
그런 계집애.

나의 어린 딸이여
너의 고향과 너의 나라가 어데 있느냐
그때까지 너에게 알려 줄 사람이
살아 있을 것인가.

박인환 하면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의 시를 떠올릴 분이 많으실 겁니다. 그런데 박인환이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긴 <어린 딸에게>라는 시는 막연하게 서구를 동경하는 시인으로 알고 있던 박인환의 또 다른 면을 엿보게 합니다. 이 시는 1955년에 나온 박인환의 첫 시집《박인환선시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박인환 시인은 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피난을 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지하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는 도중 서울 수복 3일 전에 딸이 태어났고, 1.4 후퇴 때 시인은 딸을 안고 가족과 함께 피난 열차에 오릅니다. <어린 딸에게>라는 시는 이런 참담한 배경을 두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마치 유서처럼 써내려간 작품입니다.

비극적인 상황에서 태어난 딸의 불투명한 미래와 빈곤한 형편, 불안한 조국의 현실과 좌절감, 참혹한 현실에서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를 전쟁으로 단절된 현실과 절망적 상황을 형상화하지 못하고 허무주의에 빠진 일상적 심정을 배설하고, 현실 극복의지가 떨어진다고 평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펜대를 휘둘러 남을 깎아내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말일 뿐입니다.

한국전쟁은 시인 박인환의 정신에 깊숙이 상처를 남겼습니다. 그 상처는 곧 허무주의로 나타났으며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극복하지 못한 그의 한계가 되었습니다. 사실 박인환은 <샤르트르와 실존주의>라는 글에서 사르트르를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는 행동철학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못하고 소박한 감상주의를 바탕으로 한 허무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만약 그가 김수영처럼 4·19 혁명을 겪으며 1960년대를 맞이했더라면 어쩌면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군요.

전쟁은 모든 것을 무효로 만들고,
전쟁은 모든 것을 황폐화하고,
전쟁은 살아 있는 것 자체를 절망으로 만듭니다.

박인환
1926년 8월 15일 강원도 인제에서 태어나 1956년 3월 20일 31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인제공립보통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서울로 상경하자 덕수공립보통학교로 전학했으며, 경기공립중학교를 다니다 영화에 빠져 만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자퇴했다. 그 후 명신중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하고 평양의학전문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자 중퇴했다. 그는 '마리서사'라는 책방을 운영하며 문단에 얼굴을 내밀었으며 많은 문인과 교류했다. 마리서사는 그가 시인이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946년 《국제일보》에 <거리>를 발표하면서 공식적으로 시인으로 인정받았다. 주요 작품으로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등을 남겼으며 <아메리카 영화시론>을 비롯해 많은 영화평을 쓰기도 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하여 시공관에서 신협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성년의날을 맞아 기형도의 <질투는 나의 힘>이란 시를 소개합니다. <입 속의 검은 잎>이라는 시로 유명한 기형도 시인은 1960년에 태어나 1989년에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젊음은 태양처럼 빛날 수 있지만 청춘기엔 불안한 마음에 고민하고 방황하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할 문제라도 지금은 밤을 새워 고민할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기형도의 시는 는 이로 하여금 과거의 길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단순히 돌아봄이 아니라 찬찬히 살펴보게 하는 힘이라고나 할까요.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잛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시인

기형도를 처음 만난 1992년 여름날이었습니다. 그의 시집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 다시 천천히 그의 시를 읽었습니다. 가슴 저 밑바닥에서 답답함과 허무함이 몰려오더군요. 또다시 시를 읽었습니다. 답답함과 허무함이 내 안에 있는 절망과 슬픔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는 듯했습니다. 다시 그의 시를 읽었습니다. 그러고는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창 밖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감상에 젖기 쉬운 20대에 저는 기형도를 통해 스스로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시간을 얻었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낄 때는 오히려 절망감이 밀려옵니다. 하지만 그 절망은 극복의 대상이지 회피의 대상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이 "이 일은 나에게 맞지 않아!" 하고 회피하며 다른 일을 찾아 나서거나 자신에게 맞는 일이 없다며 투덜댑니다. 어쩌면 이 세상엔 자신에게 딱맞는 일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맞다고 스스로 믿고 해야 할 일만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5월의 태양처럼 그러한 믿음이 빛날 때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시인의 삶에 대한 인식은 사랑을 다시 찾아 나서는 희망의 한걸음입니다. 그의 언어는 허무하지만 아주 따듯한 시선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살았던 1960~1980년대의 우울한 유년시절과 부조리한 세계를 추억의 공간에서 시로 풀었습니다. 그러한 행위로 시인은 암울한 시대와 개인적 슬픔과 절망을 희망으로 극복하려 했다고 생각합니다.

시인 기형도는 1989년 3월 7일 탑골공원 뒤편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첫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보지 못하고 혼자 죽었습니다. 《입 속의 검은 잎》 해설을 쓴 비평가 김현은 "좋은 시인은 그의 개인적·내적 상처를 반성·분석하여, 그것을 보편적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이 맞다면 기형도는 좋은 시인임이 분명하겠지요. 


기형도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하여 1989년 3월 7일 종로 파고다극장에서 심야영화를 보다 뇌졸중으로 죽었다.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로 활동했다.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등단했으며 강한 개성을 담은 독특한 시들을 발표했다. 《입 속의 검은 잎》은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이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5월 16일과 5월 18일은 박정희와 전두환이라는 인물로 상징되는 군사독재정권을 생각하게 되는 날입니다. 5.16은 박정희에 의해 4.19의 희망이 절망으로 뒤바뀐 날이며 5.18은 전두환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갈구하던 국민을 군홧발로 짓밟은 날입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독재정권은 1970년대를 지나 1980년 5월 18일 정점을 찍었습니다. 엄혹했던 그 세월 동안 이름 없이 쓰러진 많은 분의 피로 우리 사회는 지금 이 정도나마 민주주의를 쟁취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 상황도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무리가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상식이 아닌 비상식으로 한국 사회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 맺힌 현실을 노래했던 많은 시 중에서 양성우의 <겨울 共和國>을 소개합니다. 이 시는 1970년대 유신체제와 작금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양성우 시집: 겨울 共和國


겨울 共和國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눈을 뜨면서
뜨겁게 뜨겁게 숨쉬는 것을 보았는가
여보게 우리들의 논과 밭이 갈아앉으며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부르면서
불끈 불끈 주먹을 쥐고
으드득 으드득 이빨을 갈고 헛웃음을
걸껄껄 웃어대거나 웃다가 새하얗게
까무라쳐서 누군가의 발밑에 까무라쳐서
한꺼번에 한꺼번에 죽어가는 것을
보았는가

총과 칼로 사납게 윽박지르고
논과 밭에 자라나는 우리들의 뜻을
군화발로 지근지근 짓밟아대고
밟아대며 조상들을 비웃어 대는
지금은 겨울인가
한밤중인가
논과 밭이 얼어 붙는 겨울 한때를
여보게 우리들은 우리들은
무엇으로 달래야 하는가

삼천리는 여전히 살기 좋은가
삼천리는 여전히 비단 같은가
거짓말이다 거짓말이다
날마다 우리들은 모른체하고
다소곳이 거짓말에 귀기울이며
뼈 가르는 채찍질을 견뎌내야 하는
노예다 머슴이다 허수아비다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부끄러워라 잠든 아기의 베게 맡에서
결코 우리는 부끄러울 뿐
한 마디도 떳떳하게 말할 수 없네
물려 줄 것은 부끄러움 뿐
잠든 아기의 베게 맡에서
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
하는가

서로를 날카롭게 노려만 보고
한마디도 깊은 말을 나누지 않고
번쩍이는 칼날을 감추어 두고
언 땅을 조심 조심 스쳐가는구나
어디선가 일어서라 고함질러도
배고프기 때문에 비틀거리는
어지럽지만 머무를 곳이 없는
우리들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들을 모질게 재갈 물려서
짓이기며 짓이기며 내리 모는 자는 
누구인가 여보게 그 누구인가
등덜미에 찍혀 있는 우리들의 흉터,
채찍 맞은 우리들의 슬픈 흉터를 
바람아 동지 섣달 모진 바람아
네 씁쓸한 칼끝으로도 지울 수 
없다

돌아가야 할 것은 돌아가야 하네
담벼랑에 붙어 있는 농담거리도
바보같은 라디오도 신문도 잡지도
저녁이면 멍청하게 장단 맞추는
TV도 지금쯤은 정직해져서
한반도의 책상 끝에 놓여져야 하네
비겁한 것들은 사라져 가고 
더러운 것들도 사라져 가고
마당에도 골목에도 산과 들에도
사랑하는 것들만 가득히 서서
가슴으로만 가슴으로만 이야기 하고
여보게 화약냄새 풍기는 겨울 벌판에
잡초라도 한줌씩 돋아나야 할 걸세

이럴 때는 모두들 눈물을 닦고 
한강도 무등산도 말하게 하고
산새들도 한번쯤 말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이 만일 게으르기 때문에
우리들의 낙인을 지우지 못한다면
차라리 과녁으로 나란히 서서
사나운 자의 총끝에 쓰러지거나
쓰러지며 쓰러지며 부르짖어야 할 걸세

사랑하는 모국어로 부르짖으며
진달래 진달래 진달래들이 언 땅에도
싱싱하게 피어나게 하고
논둑에도 밭둑에도 피어나게 하고
여보게 
우리들의 슬픈 겨울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일컫게 하고,
묶인 팔다리로 봄을 기다리며
한사코 온 몸을 버둥거려야
하지 않은가
여보게

 -- 양성우, 《겨울 共和國》(1977년 화다출판사) 

1992년에 양성우의 《겨울 共和國》을 처음으로 읽은 뒤로 참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20년이 지나 시집을 다시 펼쳐드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악랄한 유신체제의 현실을 '겨울 공화국'이라고 표현했던 시인의 마음을 처음으로 접했던 20대 시절보다 40대가 된 지금, 시의 구절마다 단어마다 배어 있는 애끊는 심정이 훨씬 더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끝없이 지치지 않고 봄을 기다리는 시인처럼 우리도 봄을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거짓이 진실이 되고 비상식이 상식이 된 현실 앞에서 단순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봄이 오지는 않겠지요. "여보게/우리들의 슬픈 겨울을/몇 번이고 몇 번이고 일컫게 하고,/묶인 팔다리로 봄을 기다리며/한사코 온 몸을/버둥거려야/하지 않은가" 라는 시인의 권유처럼 현실에서 버둥거려야 우리가 원하는 봄이 옵니다.

<겨울 공화국>은 활자화되기 전 1975년 2월 12일 광주 YWCA 회관에서 열린 민청학련사건 관련 구속자 석방 환영회 겸 구국 금식기도회에서 시인이 처음으로 낭송했다고 합니다. 그 후 많은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광주 일대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시인은 재직하던 중앙여고로부터 사직 압력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광주 중앙여고는 금호그룹을 창업하고 사세를 확장하던 박인천이 이사장이었습니다. 당시 기업인들은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했기에 시인을 파면하라는 정보기관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인은 사퇴하지 않고 계속 버텼습니다. 그러자 1975년 3월 12일 박인천 이시장은 자신을 위원장으로 하는 징계위원회를 열어 시인을 파면합니다. 시인이 학교 측에 제출한 재심 청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자 시인은 여느 때처럼 출근했지만 교무실에 있던 그의 책상은 치워졌고 기관원들이 진을 치고서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부당 해고로 신음하고, 열악한 노동환경 탓으로 병을 얻거나 죽어도 언론이 외면하는 오늘날의 현실과 시인이 감내해야 했던 <겨울 共和國>이 겹쳐 보입니다. 

"신문, 잡지, TV가 정직해져야 하고 비겁하고 더러운 것들이 사라져야" 한다는 시인의 외침은 2012년 5월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잠든 아기의 베게 맡에서/우리들은 또 무엇을 변명해야/하는가"라는 시인의 고백이 귀에 맴도는 5월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시집에 실린 양성우 시인의 모습

양성우
1943년 전라북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시인지에 <발상법> 등 6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저항시를 주로 썼다.《겨울 공화국》은 1977년 장편 저항시 〈노예수첩〉을 일본 월간지에 게재해 투옥된 상태에서 출간 되었다. 서문에서 고은은 " 正義 의 엘리지를 원한과 분노로써 확인하는 사내 양성우는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나 그의 마음과 우리 마음은 이런 책 말고도 끊임없이 만나고 있다"고 쓰며 시인 양성우를 그리워 했다.
시집으로는 《발상법》《신하여 신하여》《겨울 공화국》《북 치는 앉은뱅이》《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5월제》《그대의 하늘 길》《세상의 한가운데》《사라지는 것은 사람일 뿐이다》《첫 마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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