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회계 부정과 쉼터 고가매입 의혹이 불거진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국회의원 당선자에 대해 검찰이 관련 사건을 직접 수사하기로 했습니다. 정의연 기부금과 후원금을 부정하게 사용한 횡령 혐의, 안성 쉼터를 고가로 매입한 업무상 배임 혐의가 주된 내용이죠. 미래통합당 등 극우 세력은 총선 패배의 책임을 회피하고자 이 사안을 활용하는 데 혈안입니다.


출처 - 뉴시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의 고발로 수면 위로 올라온 갈등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어느 시민운동이든 선하고 좋은 명분을 가지고 있더라도 긴 세월 지속되면서 회계에 대한 실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정말 문제가 있다면 이의를 제기하거나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잘잘못을 따져보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번 사건은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본인이 나서서 후원금 등의 의혹을 제기했기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와 함께 30여 년을 함께한 정의기억연대라면 당연히 의혹을 풀어드리는 것이 맞겠죠.


 

출처 - 미디어오늘


하지만 작금의 언론과 극우 세력이 펼치는 주장과 자극적인 속보 경쟁은 선을 넘은 지 한참입니다. 또한 명확한 진실이 가려지지 않은 상황인데도 정파에 매몰된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아 문제입니다. 정당한 문제 제기 차원을 넘어 오랜 기간 위안부 문제를 사회 이슈로 만들고 일본의 책임을 묻는 활동을 해온 단체를 폄훼하고 활동을 비하하는 등 정도를 넘어선 발언이 쏟아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출처 - 평화뉴스

 

지난 7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한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는 정의기억연대가 피해자를 위해 후원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의 말을 종합해보면 모든 피해자를 위해 필요한 사업을 해야 한다는 운동의 방향성에 대한 이견으로 보입니다. 이상한 쪽으로 보도가 집중되자 12일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는 폄훼와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돼야 한다는 전제에서 말한다며, 현시대에 맞는 사업 방식과 책임 있는 집행 과정, 그리고 투명한 공개를 통해 누구나 공감하는 과정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하지만 《조선일보》 《중앙일보》를 중심으로 한 보수 언론은 문제 제기의 맥락을 무시한 채 정의기억연대가 회계 부정을 통해 횡령을 했으며 후원금을 모두 개인 치부에 써버렸다는 식의 침소봉대 프레임으로 보도했습니다. 정의기억연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돈을 한 푼도 주지 않고 학대해온 것처럼 말입니다. 이 때문에 "할머니를 앞세운 앵벌이 모금" 같은 천박한 비유까지 나오게 되었죠. 보수 언론의 프레임에 갇힌 기사는 다시 피해자들에게 돈을 안 줬냐는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졌고, 그 과정에서 시민단체 활동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사태를 더욱 진흙탕으로 만들었습니다.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당선인의 해명이 사실인지 아닌지와 별개로 언론 보도는 진영 논리를 바탕으로 자극적인 기사로 채워졌습니다. 기레기다운 모습들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정의연 활동 중에 비리, 부정이 있었다면 조사하여 밝히고 그에 맞는 책임을 지우면 됩니다. 특히 회계 투명성에 대한 시대적 요구가 높아졌는데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고 있는 시민단체들의 경우 자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합니다. 정의기억연대는 이미 지난 15일 한국공인회계사회에 공익법인 감사 회계 기관 추천을 의뢰했다고 하죠. 그렇지만 검찰은 압수수색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지난 2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평화의 우리집'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정의기억연대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한다는 명분으로 발을 들였습니다. 이곳은 길원옥 할머니와 고 김복동 할머니가 함께 거주했던 곳입니다. 작년 1월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한 이후 길원옥 할머니 혼자 거주하고 있죠. 

 

출처 - 정의기억연대

 

정의연 측은 평화의 우리집에 길원옥 할머니가 머물고 있는 점을 고려해 검찰 측에 임의 제출 형태로 빠른 시일 내에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했고 검찰도 이에 동의했습니다만, 이 협의와 무관하게 검찰이 추가 영장을 발부받아 압수수색을 해버린 겁니다. 애초 검찰과 언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고령의 할머니가 혼자 계신 집을 약속과 다르게 우르르 몰려가 털어버릴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박주민 의원의 말대로 이 약속을 어긴 압수수색은 오히려 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출처 - MBC


이런 혼란한 상황을 틈타 극우 세력은 다시 준동을 시작했습니다. 《반일종족주의》 저자들과 얽힌 단체는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었다며 강제 동원 피해를 부정하는 시위를 시작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철거하고 수요집회를 중단해야 한다는 극우시위 역시 다시 극렬해졌습니다. 서울 동작구에서는 20대 남성이 평화의 소녀상을 돌로 찍어 훼손하는 사건마저 발생했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기어나오는 극우 세력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기레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상황에서 가장 신이 난 건 일본 극우 세력입니다. 《산케이 신문》 등 극우 언론과 일본 극우 단체들은 여태까지 부정해왔던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자기네가 해온 말이 맞다는 걸 증명하는 사건이라며 반색하고 있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이번 사태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를 한국의 남남 갈등으로 몰아가고 위안부 관련 역사적 사실을 없었던 방향으로 몰고 가는 것이 가장 우려스럽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우려는 한국과 일본 보수 세력의 연대를 통해 점점 현실화하고 있죠.

 

출처 - MBC


정의기억연대에 애초 의혹을 제기한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자신은 정의기억연대의 운동 방향과 윤미향 당선인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인데, 언론과 보수 세력이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 위안부 피해자 운동 자체를 폄훼하려 든다는 겁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위안부 피해자 운동 자체를 폄훼하려 드는 건 인간 취급을 할 수 없는 인간 이하의 인간이라며 직접적인 분노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미래통합당 홍문표 의원은 22일 YTN 라디오에서 윤미향 당선자에 대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인간이 겪지 못할 수모를 당한 위안부 피해자들의 성금을 빼돌린 게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며 "이완용보다 더 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반면 민주당 설훈 최고위원은 "이완용보다 더하다는 말씀을 거침없이 하시는데 지나치다"며 "지금까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20년, 30년 일 해왔던 사람을 이완용보다 더하다고 매도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정의연 활동 회계 문제는 제가 들여다본 결과 대부분 소명이 되는 것 같다”면서 "윤미향 본인이 변소하는 것을 들어보면 '그렇구나' '이해가 간다' 이런 내용들이 꽤 많이 있다"라고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는 오는 25일 기자회견을 예고했습니다. 이 기자회견에 윤미향 당선인이 참석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번 논란이 어떤 식으로 풀려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있습니다. 적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대한 폄훼는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론은 '팩트' 경쟁을 하며 진실을 호도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민들은 잘못된 정보에 휘둘리지 말고 진실이 밝혀지길 기다리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 논란이 진영 논리를 떠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잘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동백꽃 이순덕 할머니께서 지난 4월 4일 오전 7시 30분께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향년 100세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중 최고령이었던 분이시죠. 이순덕 할머니는 16살 때인 1934년에 좋은 옷과 쌀밥을 준다는 말에 속아 일본군에 의해 만주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다 해방 후 사람들에 섞여 귀국하셨다고 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고 이순덕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역사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를 이끌어낸 이른바 관부 재판의 마지막 원고였다는 점입니다. 관부 재판은 1992년 12월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야마구치 지방재판소에 위안부 피해자 3명과 근로정신대 피해자 7명이 원고가 되어 약 9년에 걸쳐 진행된 재판을 말합니다. 일본 법원 소재지였던 시모노세키의 한문 표기에서 '관' 자를 따고 피해자들이 거주하던 부산에서 '부'를 따서 '관부' 재판이라고 부른 겁니다. 이 재판을 위해 한국은 물론 진실을 규명하려는 일본 시민단체들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습니다.


출처 - 한겨레


그 결과 1998년 4월 사상 최초로 일본 사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물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것을 판결했습니다. 정확히는 행위 자체보다 입법부작위에 따른 국가배상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것인데요. 일본국 헌법 해석상 국회에 침략전쟁 피해자에 대한 전후보상 입법 제정의무가 있는데 이를 태만히 하여 원고인 위안부 및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심각한 고통을 받도록 방치했다는 것입니다. 야마구치 지방법원은 이는 여성차별, 민족차별 및 헌정질서에서 허락지 않는 방치상황이기 때문에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간접적이나마 일본 사법부가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전쟁범죄 책임과 그에 대한 입법 및 사법 조치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판결이어서 의미가 깊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1심 판결은 3년 후인 2001년 3월 일본 정부의 항소로 진행된 2심 재판에서 뒤집힙니다. 일본 정부의 작심한 항소와 압력으로 히로시마 고등법원이 1심 판결을 파기한 것이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든 역사에서 지우려는 일본 정부의 작태가 이 재판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출처 – 미디어몽구 트위터


이후 아베 정부의 극우 일변도 행보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박근혜 정부가 매국적이고 치욕적인 위안부 합의에 동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명예회복은 더 힘들어지게 되었죠. 이런 마당에 외교부 윤병세 장관은 이순덕 할머니의 빈소를 찾지도 않았으면서 직원(정병원 외교부 동북아 국장)으로 하여금 대리로 조객록에 이름을 남기게 해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상황에 따라 윤 장관 대신 국장이 조문한다"며 "이번 경우도 정 국장이 장관 보고를 거친 뒤 대신 조의금을 전달했으며 이 할머니의 유족에게도 미리 알린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직접 장례식장에 갈 수 없는 상황일 때 지인에게 조의금을 전달하여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고 상주와 유가족을 위문하는 것은 관례이긴 합니다. 하지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역사의 오점인 위안부 합의를 한 외교부의 수장이 아닙니까? 굴욕적인 합의의 내용을 왜곡해 발표하기까지 했습니다. 외교부는 역사적인 합의를 이뤄낸 것처럼 호도했지만, 실상은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출연하기만 하면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되는 것으로 명시돼 있었습니다. 애초 일본 정부에 사죄와 반성을 요구할 생각 자체가 없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겁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을 비롯한 외교부 인사들은 이런 황당한 합의로 일본의 사과를 받아냈다고 주장하니, 이들이 과연 제정신인 인간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윤병세 장관이 진심으로 이순덕 할머니의 죽음을 애도할 마음이 있다면 장례식장에 와서 잘못된 합의를 한 과오를 뉘우치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더 늦지 않게 합의를 파기하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럴 마음도 없는 사람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장례식에 대리 조문으로 마음을 쓴 것처럼 이름을 올리니 사람들이 곱게 보지 않는 겁니다. 인두겁을 쓰고 이따위 작태를 보이는 이가 외교부 장관이라니 박근혜 정부의 인사에 다시 한번 혀를 내두르게 되는군요.


출처 –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 페이스북


이순덕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날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가 한국으로 복귀했습니다. 《교도통신》은 주한 일본대사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소녀상 문제 해결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지난 3일 기자들에게 "앞으로도 소녀상 문제(이전)와 위안부 합의를 착실히 이행하도록 요구한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정권 이행기를 맞아 정보수집에 더욱 힘쏟고 차기 정권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치욕적인 위안부 합의 이후 1년이 조금 더 흐른 사이에 벌써 9분의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238분 중 남은 생존자는 38분뿐입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날로 뻔뻔해지는 일본의 대응에 맞서 차기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무효화하고 피해자분들이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으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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