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한때 생각비행에서 연재했던 기사 [독립, 하셨습니까?]를 책으로 엮어 출간했습니다. 2012년 8월 2일부터 2013년 7월 26일까지 총 8번의 연재물로 진행된 기사의 기획의도는 이랬습니다.

 

"꿈을 펼치는 일의 연장선에서 글을 써보려 한다... 인터뷰와 문화 리뷰+칼럼이 뒤섞여 모호하지만, 어딘가로부터 독립한 '사람'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글이랄까. 내가 면하고 있는 것들이 하나같이 자본으로부터의 철저한 독립, 대중성 없음, 알아주는 이 적으나 열광적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으므로 보편에 기대는 이야기들은 아닐 것이다"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독립'한 사람들과의 만남, 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다시 들려주는 이은 씨의 연재물은 특별했습니다. 다양한 삶의 궤적을 그리며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기에, 독립된 삶을 살아가는 인터뷰이의 진심에 한층 더 귀를 기울이는 진정성이 드러났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연재물 종료 이후 생각비행은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는 이들을 더 취재해 별도의 책으로 기획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이은 씨에게 협업을 제안했습니다. 그 이후로 근 2년간의 작업 끝에 드디어 한 권의 책이 완성되어 나왔습니다. 자기만의 길을 찾아 어딘가로부터,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는 분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권합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꿈을 꾸며 자기만의 길을 낸 사람들

 

▸분야: 인문  ▸지은이: 이은  ▸판형: 신국판(152*225)

▸쪽수: 228  ▸가격: 15,000원

▸ISBN 978-89-94502-37-3 (03300)

 

 

"삶을 규정하는 형용구를 찾아 떠난 여행"

 

《독립, 하셨습니까》는 꿈을 꾸며 자기만의 길을 낸 9명의 대상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삶을 정리한 기록이다. 저자 자신이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고단한 삶을 견디면서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꾸었기에,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그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은 스스로 성찰하며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삶의 여정에서 대개 '무엇이 될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의사, 변호사, 회계사, 교수 등의 직업에서는 특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하는 '형용구'에서 그의 인생, 신념, 지향점을 파악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 소개된 신부이자 저술가 차동엽은 '차디찬 시대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사람이다. 반올림 노무사 이종란은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노동자의 희망, 안전할 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다. 저자가 만난 9인의 삶을 담은 이 책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우리 자신을 규정하는 형용구를 찾아가는 여정에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꾼다"

 

우리는 정신적,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하지만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오롯이 자신의 인생을 살거나 자신의 포부를 이루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삼포세대'(직장이 없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해야 하는 청년층), '청백전'(청년백수 전성시대),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생각을 해야 한다) 등의 신조어는 이 시대 젊은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비단 젊은이만이 아니라 50대, 아니 은퇴 이후 세대까지도 '독립'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적 화두가 되고 있다.


저자 역시 백댄서(연습생), 연예기획사 아르바이트, 할인마트 판매직, 잡지사 리포터, 시민단체, 사보 취재 기자 등을 거치며 이 땅의 젊은이와 비슷한 고민의 시기를 거쳤다. 하지만 그는 경제적인 독립보다 더 중요한 '삶의 독립'을 선택했다. 틈틈이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본'에 얽매이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자 오늘도 고군분투 중이다.


《독립, 하셨습니까?》는 '삶의 독립'을 화두 삼아 저자가 인생 여정에서 만난 9명의 인터뷰이의 삶을 정리한 치열한 기록이다. 그중에 한 명이 차동엽 신부였다.

 

근거가 없더라도 희망의 끝을 놓지 마라
가톨릭 신부이자 저술가인 차동엽은 '소유'와 '욕망'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보이는 삶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삶의 재미나 보람이란 꼭 남들이 누리는 평범한 일상으로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차 신부는 삶의 근원적인 의미를 탐구하고, 그로 인해 얻은 성찰을 나누면서 사람들의 일상 속에 숨은 행복을 일깨우는 즐거움을 맛보며 산다.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희망의 말을 건네고, 갈을 묻는 이에게는 아는 만큼 가르쳐준다.


이를 위해 꾸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차 신부는 평생 공부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삶을 살고 있다. 강연과 인터뷰, 상담으로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지만, 틈날 때마다 책을 놓지 않는다. 동서양을 아우르는 고전과 20대 때의 독서가 그에겐 삶의 자산이 됐다. 인문학이나 독서의 필요성마저 스펙 쌓듯이 얕은 지식이 난무하는 이 시대에, 차 신부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 슬픔 앞에서 우리에게 '사유의 힘'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차 신부 외에 8명의 인터뷰이의 삶이 담긴 《독립, 하셨습니까》는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무언가로부터 '독립'을 꿈꾸며 삶을 개척하려는 이 땅의 존재들을 위한 응원가로 봐도 무방하다. 열정으로 자신만의 길을 내는 것은 이미 누군가 걸어간 길을 가는 것에 비해 몇 배는 힘들다. 하지만 그 길 끝에 '실패'가 아닌 '행복'이 기다리고 있음을 저자가 만난 9인의 삶이 오롯이 증명하기 때문이다.

 

지은이  이은


글 쓰고 영화 만드는 사람. 대학에서 매스커뮤니케이션과 대중문화를 공부했다. 1년 반의 휴학기간 동안 세상을 알아보겠다는 미명하에 백댄서(연습생), 연예기획사 아르바이트, 할인마트 판매직, 잡지사 리포터 등으로 일하며 몸으로 살아내는 일을 깨쳤다. 스물여섯 늦깎이로 졸업한 후 지역의 시민단체와 대안교육 단체 일을 잠시 거쳐 첫 정규직으로 사보 취재 일을 했다. 성희롱에 문제 제기하며 2년 정도 다닌 직장을 그만둔 후, 프리랜서 기자로 수년간 여성지에 원고를 썼다. 잠시 연예부 기자로 외도하는 한편 틈틈이 독립영화에 출연하며 시나리오도 끄적이기 시작했다. 여성단체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와중 크고 작은 연극 공연도 올렸다. 노동방식에 대한 선택지와 다른 삶에 대한 가능성이 훨씬 큰 세상을 꿈꾸며, 자본에 얽매이지 않은 여러 매체를 통해 여성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에세이집 《언니들, 집을 나가다》 기획
-안티 친족성폭력 다큐 <잔인한 나의, 홈> 제작·구성
-여성국극 다큐 <왕자가 된 소녀들> 마케터
-격주간 《빅이슈》 칼럼 ‘도시채집망’ 연재
-단편 극영화 <탱고와 스니커즈> 연출
-카페바인 운영위원

 

 

차례

 

추천사 | 삶의 형용구를 찾은 사람들
머리말 | 독립이라는 그 멀고도 지난한 여정

 

동물복지와 환경을 말하는 패션지, 《오보이!》가 들려주는 남다른 평화
-사진가, 《오보이!》 편집장 김현성

 

차디찬 시대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다
-신부, 저술가 차동엽

 

자본을 거슬러 더 생명에 맞닿은 삶을 기획하는 일
-카페 수카라 김수향

 

단순 명쾌한 배우의 삶, 소년과 청년 사이 어디쯤
-배우 이주승

 

인문학이 밥 먹여주는 세상, 인디고서원
-《Indigo》 편집장 박용준

 

천연가죽의 멋을 살린 핸드메이드 잡화 브랜드
-유르트 강윤주, 김영민

 

노력으로 꽃피운 팝핀댄서 듀오, 블루 웨일 브라더스
-팝핀댄서 팝핀제이, 크레이지 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반올림 노무사 이종란

 

사막의 바람을 거스르며 주류 영화계에 도전장을 내다
-영화 프로듀서 김효정

 

감사의 글 |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오랜만에 이은 씨가 [독립, 하셨습니까?]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그간 60년 전 남장 아이돌과 열혈팬들의 삶을 담은 다큐 〈왕자가 된 소녀들〉의 스태프로 일하면서 바쁜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누굴 인터뷰했을지 궁금하시죠? 바로 소개하겠습니다. 


세상엔 남들보다 더 많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영화사 ‘꿈꾸는 오아시스’의 김효정 대표도 그런 부류(?)일 것이다. 평범한 삶에는 가슴이 뛰지 않으며 비록 현실이 모래바람일지라도 진짜 사막 걷는 것을 꿈꾸는 이들. 이들에게 삶이란 가로질러야 할 무언가이면서 가로지르는 일 자체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영화를 찍다가 진짜 사막을 가로지르는 사막 레이서가 되어버린 김효정 프로듀서는 그래서 오늘, 또 다른 꿈을 꾼다.

사막을 횡단하다

영화가 매력적인 이유는, 사람이 사람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점인 것 같다. ‘인터뷰도 사람과 이야기를 잇는 매개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바람으로 이 일을 시작했고, 어느새 초심을 돌이켜볼 시점이 되었다. 인터뷰이를 고민하다가 리스트의 앞부분에 있었지만 소식이 알려지지 않은 김효정 프로듀서를 찾아 나섰다. 그가 남긴 책이자 이정표인 《나는 오늘도 사막을 꿈꾼다》를 들고서.

김효정은 ‘갈 데까지 가본 사람’이다. 2003년 모로코 사하라 사막을 시작으로 2005년 중국 고비, 2006년 칠레 아타카마, 2007년 이집트 사하라, 2008년 남극까지 세계 5대 사막 레이스에서 약 1000킬로미터를 완주했다. ‘그랜드슬래머’라는 타이틀을 얻기 위해서는 이 중 고비, 아타카마, 사하라, 남극을 지나야 한다.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 세계를 통틀어도 세 번째로 타이틀을 획득한 여성이 바로 그다. 그것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영화 촬영과 촬영 사이 막간의 휴지기에 이룬 쾌거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끝도 없는 사막과 평지, 능선이 펼쳐지는 사막 레이스. 가려도 가려도 온통 모래투성이가 되어버린다.

언뜻 보아도 스포츠 우먼과는 거리가 먼 듯한데 어떻게 사막 레이스에 도전할 생각을 다 했을까. 그는 시인이 되고 싶어 문예창작과에 진학했지만 고전영화 마니아들과 어울리며 점점 영화의 매력에 빠져들어 같은 대학 영화과로 재입학했다. 스물넷에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었던 영화사(현 싸이더스)에 제작부 막내로 입사한 뒤로 쉼 없이 달리기만 했다. 2000년 모래바람을 맞으며 10개월간 영화 <무사>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40대 중반의 신한은행 박중헌 지점장이 사막 마라톤을 완주하는 모습을 TV를 통해 봤다. 스물다섯 청춘이 바닥부터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그로부터 3년 후, 김효정은 사하라 사막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촬영 중 틈틈이 준비한 터라 뛰어서 완주할 체력도 없었지만, 전쟁터 같은 현장에서 늘 종종거린 탓에 뛸 마음도 없었다. 한낮의 태양과 밤의 적막함, 외로움과 동행하며 꼴찌 비슷한 성적으로 완주했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어 그는 끊임없이 사막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그러는 사이 <행복한 장의사> <킬리만자로> <무사> <결혼은, 미친 짓이다> <싱글즈> <역도산> <호로비츠를 위하여> 등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고, 프로듀서로 권형진 감독의 <트럭> 등의 작품을 제작했다. 2008년 남극 마라톤까지 완주하고 나니 그랜드슬래머라는 영예와 함께 더 이룰 꿈이 없어졌다는 허무함이 찾아왔다.

"사막에서도 달리지 않고 열 시간 동안 같은 속도로 속보를 했어요. 처음엔 뒤로 처지지만 결국은 앞질러 뛰던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할 수도 있는 거죠. 처음엔 자아를 찾으려고 갔는데 두 번째부터는 주변 사람이 보이더라고요. 마음을 많이 키웠죠. 수업료치고 비쌌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대학생 때 배낭여행 붐이 불어도 저는 부모님께 손 벌리기 싫어서 해외여행도 안 갔어요. 그런데 사막 레이스를 하면서 근처의 대도시를 많이 경유했어요. 다섯 번 다녀오고 회사 그만두고 나서 쉴 겸 호주에 마지막 레이스를 하러 갔어요.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데가 사막이었거든요. 왜 또 왔지 싶다가도 되게 즐겁고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돈도 떨어지고 이 돈이면 다른 걸 할 수 있다는 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해가 질 무렵, 꼴찌로 들어오는 참가자를 환영하기 위해 피니시 라인으로 향하는 레이서들. 사하라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란다.

남극 레이스에서 만난 펭귄. 보호 규정상 근접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영화로 세상에 말을 건네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숱한 이의 노동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스태프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열악한지는 화려한 스크린 뒤편에 가려져 있다. 제작부는 현장 통제와 세팅, 장소 헌팅과 섭외는 물론 청소까지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부서다. 제작부 신입(현장에선 '막내'라 부른다)으로 시작해서 제작부장, 실장을 거쳐야 프로듀서가 될 자격이 된다. 편당으로 계약하는 프리랜서는 참여 기한도 짧고 진급도 비교적 빠른 편이지만 김효정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서 꽤 많은 작품의 기획 단계부터 완성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겪어냈다. 현장에서 시작한 덕분에 작품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됐다. 14년이란 시간이 지나는 동안 거의 없었던 여성 스태프의 수가 많이 늘었고, 마케터 출신이나 유학 다녀온 프로듀서가 많아지면서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었던 것들이 다소 경시되는 경향도 있다.    

"제작팀에 들어갈 때 여자 스태프가 드물었어요. 여자 선배가 절 처음 보자마자 중간에 관둘 거면 지금 그만두라면서 3~4년은 밤낮도 없고 사생활도 없을 텐데 괜찮겠냐고 묻더라고요.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제가 일을 제대로 못 하면 남에게 부담이 가니까 더 많이 일했던 것 같아요. 맨손으로 쓰레기 줍고 도시락 분리수거하고 잡다한 일까지 다 해요. 현장에서 하는 일이 대부분인데 성별 따져서 일 나누기도 그렇고, 무거운 거 들고 갈 때 남자 스태프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마다하고 그랬어요. 남자들도 쉬이 그만두는 판에 제작이나 연출 파트 여성들은 남성적 성향이 많아야 견딜 수 있어요. 이제는 제 위치가 생기기도 했고 요즘 같으면 그렇게 하지 않겠죠. 피디도 남들보다 늦게 됐지만 차근차근 모든 단계를 경험한 것이 지금은 큰 자산이 됐어요."

처음에 한 번이라고 생각했던 사막행이 잦아지면서 점점 회사에 얘기하지 않고 다녀오게 됐다. 아무리 휴가 결재가 떨어졌다고 해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경우, 반길 수만은 없는 부분이 있었고 그런 점이 신경 쓰여 일에 완벽을 기하려고 더욱 노력했을 터다. 영화라는 작업 자체가 계획한 일정에 맞춰 끝나기 힘든데다 개개인의 사정을 봐가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취미나 다른 일과 병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꾸준히 체력훈련을 해야 하는 일을, 김효정은 자투리 시간만 이용해 해냈으니 대단한 성취일 수밖에. 그걸 아는 사람들은 경탄의 눈길로 바라봤을 테고 또 어떤 이들이 질시의 시선으로 보는 것도 당연했다.      

"남들 휴양지 갈 때 난 사막에 가는 것하고 다를 바가 없는 거죠. 저는 몸을 움직이는 게 행복하고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몸을 내몰았을 때 희열을 느껴요. 인생이 일과 사막, 두 가지뿐이었죠. 그러다 2009년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어요. 프로듀서로 데뷔해서 한 작품을 했는데 회사가 갑자기 어려워져서 희망퇴직처럼 나온 거예요. 독립할 요량이었으니 잘됐다 싶으면서도 불안했는데 책을 쓰면서 나름대로 극복한 것 같아요. 그동안 못 만난 친구들도 만나고 열심히 놀았어요. 그러면서 제 영화사도 차렸고요. 2년 정도 촬영한 다큐가 있는데 마무리하고, 올해 장편 상업영화를 제작할 계획이에요. 되어 봐야 아는 거긴 하지만."    

사막 레이스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아프리카'였다. 십 년간 영화를 찍어 번 돈의 절반은 사막에, 나머지 반은 아프리카 촬영에 쏟아부었다. 그 계기가 된 영화가 <데저트 플라워>(2009)였다. 아프리카 소말리아 사막의 가난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나 강제 결혼을 피해 고향에서 도망쳐 천신만고 끝에 세계적인 톱모델이 된 와리스 디리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그간 사막을 가로지르기만 했던 김효정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여성 할례란 여성 성기 절제술을 이르는 말로, 여성의 성기에서 성적으로 민감한 부분을 제거해 성적인 쾌감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아직도 널리 행해지고 있는 악습이다.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20~30퍼센트에 달하는 아이가 감염과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전통할례를 치르고 있는 소녀들 (케냐 Olenguruone) -서민수
NGO 교육프로그램을 경청하는 여인들 (에티오피아 Gift)-서민수
2.6 할례 반대의 날(Anti-FGM Day) 거리캠페인 중인 학생들 (에티오피아 Addis ababa) -서민수

할례를 피해 도망온 아이들을 보호하는 캠프에서 만난 소녀의 뒷모습 (케냐 Kuria) -서민수

"한국 사람들이 할례도 잘 모르고 아프리카를 오지(奧地) 이미지로만 알고 있잖아요. 저도 사막을 그렇게 다녔는데 그곳 사람들의 삶을 전혀 몰랐더라고요. 가보면 다들 원조받은 브랜드 옷 입고 핸드폰 들고 다녀요. 아프리카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마사이족이 실제로는 제일 잘살아요. 저희는 현지인처럼 정말 가난하게 다녔어요. 싼 방에서 다 같이 자고, 현지 음식을 먹고 물만 사서 마시는 식으로. 할례를 피해서 도망쳐온 아이들을 만나려고 2010년 겨울하고 이듬해 겨울 두 번 다녀왔어요. 겨울방학이 우기라서 학교에 못 가기 때문에 그때 할례를 해요. 우리가 도와줄 건 없고 결국엔 아이들에게 교육할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부모가 초등학교 중퇴니까 아이를 안 보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첫해에 하루도 안 빼고 촬영했는데 나중에 보니 쓸 게 없더라고요. 이듬해에는 할례를 피해 도망온 아이들을 돌보는 기숙학교에 한 달 있었어요. 철제 이층침대에 다 꺼진 스펀지를 깔고 아이들하고 같이 잤어요. 한 달쯤 지나서 돌아갈 때가 되니 그제야 마음을 조금 열더라고요."

아이들과 똑같이 먹고 자고 하다 보니 살이 빠졌다. 아침은 묽게 탄 짜이(밀크티 비슷한 차)와 마가린밥, 점심엔 팥 삶은 것만 먹는 약소한 식단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집보다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내서 그런지 얼굴에 윤기가 돌았다. 방학이 끝나면 집과 학교로 돌아가거나, 아예 집을 떠나야 하는 아이들. 딱히 해줄 것이 없어서 120명이나 되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얼굴을 뷰파인더에 담아 사진을 인화해주었다. 우리나라식으로 졸업사진을 찍어준 셈인데, 사진을 보며 아이들은 특별한 동기생과 한국에서 온 노란 피부의 언니들을 평생 떠올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영화가 완성되어 함께 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진 찍어서 잠깐 보여주고 마는 건 좀 아니잖아요. 카메라 두 대로 종일 찍고 인화해서 졸업날 개인 사진하고 단체 사진을 나눠줬어요. 아이들에게 안 입는 옷을 나눠주려고 수하물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1인당 10킬로그램씩 챙겨갔어요. 우리는 옷을 두 벌만 가져가서 매일 빨아서 입고.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줄 수가 없잖아요. 언젠가 집 떠나 독립하려면 스스로 책임져야 하니까 돈 버는 일이 힘들다는 걸 가르쳐주고 싶어서 같이 옷을 팔았어요. 처음에는 잘 팔리니까 재밌어하더니 금세 지루해하더라고요. 남은 옷은 저희가 다른 장에 가져가서 팔았어요. 일주일 후에 옥수수가루랑 차, 비누 같은 생필품을 사줬어요. 한국에 돌아오니 후반작업 비용이 필요해서 기업 사회공헌 기금이나 단체 지원금을 주로 알아봤는데 할례가 거부감을 주는 소재라면서 나무 심기나 축구공 기증처럼 눈에 보이는 사업에 지원하겠대요. 저 같으면 생리대 판매수익이 아프리카 여성을 위해 쓰인다고 하면 살 것 같은데 말이에요. 잘 마무리해서 개봉하려고 해요."

이 다큐멘터리는 아마 상업적으로 크게 이득을 안겨주는 결과물은 아니겠지만, 그의 본업은 상업영화 프로듀서다. 더 많은 사람이 향유할 수 있는 대중영화라도 기왕이면 사람들의 마음에 조그만 행복이라도 안겨주는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짬짬이 강연이나 다른 책 작업을 하면서 영화 일에 힘쓰고 있다. 시간이 지나 어떻게 기억되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별다른 수식어 없이 '김효정'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다져온 꿈인 만큼 좋은 영화, 오래 회자할 만한 영화를 만들어내리라 기대한다. 꿈꾸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이루게 마련이니까. '꿈꾸는 오아시스'라는 영화사 이름을 곱씹을수록 그러하다.

"물론 오락영화도 좋고 그런 영화는 영화대로 보지만, 제가 만든 영화가 뭔가 사람들의 삶에 작용하길 바라요. 조금씩 퍼뜨려져서 전 세계가 행복해지면 좋겠다는 어찌 보면 막연한 꿈을 꾸는 거죠. 영화란 게 기획 기간이 길고 실 제작에 들어가야 펀딩이 되고 저도 인건비를 받을 수 있는데 그 과정이 너무 길죠. 대박이 나야 수익도 나는 거고. 남들은 신세가 좋은 줄 알겠지만 미치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에요. 영화 작업이 더뎌지면서 스트레스를 받지만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져요. 저는 꿈 얘기할 때가 가장 즐겁고 밤새는 줄도 몰라요. 직장 그만두고 나서 돈보다 자아를 찾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남들이 결혼하고 애 낳고 그런 건 안 부러운데,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친구들은 참 부러워요. 세상에 즐거운 일이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걸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2012년 10월 7일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 센텀시티 문화홀에서 열린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플래시 포워드 부분 감독 프레젠테이션에서 지미 라루슈 감독은 "내 영화(<상처>)는 한 인간이 아동기에 겪은 상처가 인생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를 보여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이은 씨가 <상처>를 관람하고 감독과 나눈 이야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아울러 풀어냈습니다. 지난번 연재 이후 오랜만에 올리는 글입니다. 내년에 상영될 친족 성폭력 다큐멘터리 <잔인한 나의, 홈> 제작 일정으로 연재가 늦어졌다고 합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다큐멘터리에 관심 있는 분들의 후원과 참여를 기다립니다.)


〈상처〉를 대하는 태도,
지미 라루슈 감독에게 묻다

‘상처’는 삶의 복잡다단함을 보여주는 한편 삶을 직면하지 않을 핑계도 제공해준다. 때로는 삶의 중요한 순간을 은근슬쩍 피해 숨을 수 있게 해주는 편리한 장치 아닌가 말이다. 그런 태도로 면피해온 것들을 근래 자주 느끼고 있다. 어릴 적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폭력,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는 가정에서 혈연가족이 가하는 폭력은 뚜렷한 족적을 남긴다. 지난 상처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결정적으로 상처와 불화하게 되는 것은 그 후폭풍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한 편의 영화에 이끌려 부산으로

애초 부산에 갈 계획은 없었다. 화려한 레드카펫, 국경을 가로지르는 거장의 영화, 밤마다 넘실대는 술잔…. 영화 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없는 나와 거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가치관이 비슷한 이들과 마음이 움직이는 일만 하다 보니, 그중에서도 독립의 독립, 자본과 무관한 작품들이나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영화가 관객과 만나도록 기획하는 일로 바삐 움직인 터라 정작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는 부산국제영화제에는 (관객으로도) 가본 적이 없었다.

<상처>의 메인 포스터. 붉은 색감이 무척 강렬하다. 묵직하게 쓰여진 시놉시스는 또 어떻고! 하지만 영화는 붉은 빛보다 잿빛에 가깝다. 

"잘못된 인생에서 미래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씻을 수 없는 상처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듯, 리차드의 어린 시절 창고에서 일어난 사건의 상처는 그의 인생을 알게 모르게 바꾸어놓는다. 삼십 년이 지난 후, 그는 복수를 위해 그 장소를 다시 찾고, 한 인간이 자신의 과거와 직면하는 순간을 강렬한 심리적 서스펜스로 그려낸다."

영화 <상처>의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나의 무의식과 의식이 한달음에 '꼭 봐야 할 영화'라며 소리쳤다.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새벽기차를 타고 내려가 조조로 영화를 보고야 말았으니, 근래 드물게 유별난 끌림이었다. '트라우마 상담'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살아온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와중에 소란스럽던 내면이 조금 정리되는 경험을 했는데, 그 어딘가 영화가 와 닿을 것 같아서였다. 상처 많은 사람이라 여기며 실상 그 이름에 스스로를 가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었다는 걸 조금씩 깨닫던 무렵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는 심신이 온전히 자라기 이전이므로 별 뜻 없이 저지른 일들이 큰 상처로 남아 평생의 무게가 되기도 한다. 한편으론 사건의 영향력이나 피해에 비해 빨리 아무는 경우도 있다. 어린 시절 아주 큰 트라우마를 겪고서도 남을 돕는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예를 왕왕 볼 수 있으니 하는 말이다. 연쇄 살인범이라도 매 순간이 상처의 기억으로 가득한 것이 아니듯, 사랑받지 못한 아이가 꼭 사람을 혐오하는 성인으로 자라는 것은 아니다. 상처나 사건 자체보다는 그 후의 처치나 오랜 시간의 관리(혹은 치유), 그리고 자라나며 접하는 환경이란 변수가 꽤 크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다. 물론 모든 과정이 쉽거나 자연스레 이뤄질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자신의 약한 부분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 도리어 내면에 괴물을 키워낼 수도 있다. 꼭 가족이나 가까운 이가 아니라도 마음의 길을 따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가 있다면 상처는 치유의 길로 시나브로 접어든다.

영화로 돌아가 이야기하자면, <상처>는 매우 현실적으로 등장인물, 가해 혹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판타지를 접목해 인물들의 정서를 놀랄 만큼 세세하게 전달한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예측하지 못한 결말까지 숨도 못 쉬도록 몰아붙이는 촘촘한 솜씨에 소름이 돋을 정도.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던 감독의 이중적 경험을 캐릭터의 감정으로 탄탄히 쌓아올렸기 때문이리라.

30년 전의 리차드와 폴, 그리고 폴의 친구들. 둘 사이의 권력관계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리차드도 그들 중의 일원이 되고 싶어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폭력이었다. 

극 중 리차드는 창고에서 린치를 당하고 돌아오지만 싸늘한 집안 공기에 혼자 마음을 쓸어내린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와의 불화로 어머니가 떠난 후였다. 감싸 안아줄 이가 없었던 그의 마음은 점점 황폐해지고 그조차 마음의 빗장을 열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상담이나 도움을 받으려 해보지만 상처는 봉합되지 않고 커져만 갔다. 한편 리차드를 집요하게 괴롭힌 폴에게는 위압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있었고, 그는 타인의 고통에 이입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누구와도 마음을 나누지 못하는 리차드는 아들과 부인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 그는 폴에게 복수하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긴다. 창고에서 재현되는 폭력적 상황은 판타지와 실재를 오가며 그의 분열된 상태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30년 후, 창고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용서와 화해까지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결말은 기대를 처참하게 배반한다.


상처를 증폭시키거나 잦아들게 하는 것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엄마'의 부재 때문으로 그려지지만 실상이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예를 들어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린 아이를 누군가 때렸다고 치자. 거슬러 올라가면 엄마의 부재라는 근원적인 원인이 있지만, 실상 폭력을 직접 유발한 것은 친구의 놀림이다. 아이에게 엄마의 부재가 트라우마일 수는 있지만, 이를 거론하며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자신이 어쩌지 못할 상황 때문에 폭력을 행사하게 되면, 절망한 아이는 계속 주먹을 휘두르거나 그러다 때때로 당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연쇄구조를 뷰파인더에 담으며 감독은 냉랭할 만큼 거리를 둔다.

도움의 손길에도 폭력으로 대응하는 리차드는(이는 도와주려던 이를 물어뜯는 개의 모습으로 대변된다), 물어뜯긴 자국이 마음으로 번져 통제하지 못할 무기력에 휩싸인다. 감독 혹은 리차드는 30년 전의 사건을 호출하고, 그곳으로 가해한 친구를 데려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하며 어떻게든 고통을 '해결'하려 발버둥친다. '복수'를 계획했다는 사실이 그 절박한 마음을 대변한다. 그러나 자신의 약함을 강함으로 가리며 살아온 폴에게 그 사건은 기억조차 희미해진 하나의 해프닝일 뿐이었다. 폭력의 결과로 마음이 망가진 리차드의 항변도 그에겐 '약해빠진 놈들의 핑계'로 치부될 뿐이다. 실패한 복수는 삶의 의지마저 앗아간다.

혼자가 된 리차드. 아내도 아들도 그를 외면한다. 배우 마크 비랜드(Marc Beland)는 드라마 시리즈의 주연 배우로, 섬세하게 흔들리는 감정을 잘 표현했다.   
 
나는 처음에 이 이야기가 실패한 복수, 탈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씹어보니 그저 절망에 관한 이야기였다. 벗어나기를 포기한 게 아니라, 벗어나기 위해 애를 쓸수록 더욱 그것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하지만 "영화의 절반이 자신의 이야기"임을 고백한 감독은 장난꾸러기의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어두운 절반을 영화에 쏟아붓고 나니 조금은 홀가분해진 것일까. 어린 시절 아버지의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익힌 그는 렌즈를 통과한 자신의 이야기를 대중에게 드러내었다. 그만한 거리를 둘 수 있게 됐다는 뜻일 터.

지미 라루슈 감독

"열다섯 살에 처음으로 카메라를 들었어요. 다행히 좋은 아버지 밑에서 자라났지만 어머니의 부재를 매 순간 느꼈어요. 체구가 크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고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 그러지 않게 된 건, 아마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게 된 무렵인 것 같습니다. <상처>는 이전에 만든 두 개의 단편을 이어 더 풍성하게 만든 영화고요."

아쉽게도 그의 영화가 거친 폭력을 연상(오해이긴 하지만)시켰는지, 평단이나 관객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작은' 영화들은 사실 영화제의 상영작 수를 채우고 가끔 의외의 발견을 위해 존재할 뿐, 스포트라이트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라인업에서 정해진다. 영화제의 위상에 걸맞은 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추천작으로 선정하고 스타들을 레드카펫에 세워 시선을 끄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도 적은 예산(총 제작비가 1,100달러, 약 1억 2000만 원의 저예산 영화)으로 영화를 만들기가 녹록하지 않은 것은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그렇다고 그 성취가 크지 않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생애 첫 장편영화인데, 영화제에서 초청해주어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사비와 프로듀서의 출연으로 제작했는데 개런티에 무관하게 배우들이 출연해주었어요. 덕분에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어요."

아무리 자전적인 이야기로 만든 영화라도 '극영화'임이 분명한데, 나는 자꾸 만든 이의 '삶'에 집중해 이야기를 들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다 보니 극영화와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고, 영화를 통해 만든 이의 삶 혹은 정서를 들여다보게 되는 태도로 영화를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영화 읽기가 갈수록 어렵다. 삶과 영화의 경계, 감상과 성찰의 경계, 영화 속 삶과 영화 밖 삶의 경계를 구분하는 일이 점점 무거워지는 까닭이다.


아마도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상처는 상처에 의해 증폭되거나 묻히거나 혹은 해결되기도 한다. 갈 곳 잃은 상처야말로 가장 위험한 종류의 내상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일 줄 아는 능력이야말로 세상을 사는 데 가장 필요한 자원이라고 여기는 것도 과언은 아닐 터. 포기하는 것조차 선택일 수 있지만 돌이킬 기회가 있을 때에야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수잔 브라이슨이 쓴 책, 《이야기해 그리고 다시 살아나》에 나오는 문구로 글을 맺어야겠다.

"트라우마 생존자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는 그것은 트라우마를 초월하는 것도 아니고, 트라우마 희생자가 겪는 생존자의 딜레마를 푸는 것도 아닌 단지 견뎌내는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그저 견뎌내는 것은 너무도 힘든 일일 수 있다.
트라우마에서 살아남았던 사람들은 '나는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아, 나는 살아야만 해'라는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사무엘) 베케트적 딜레마를 푸는 것이 얼마나 자신들을 지치게 하는 일인지 잘 이해한다."

어쨌거나 삶도, 영화도 계속된다. 내놓을 용기가 있는 사람은 절망하지 않는다. 묻어두려 하지만 않으면 어떤 상처라 하더라도 응당한 대가를 돌려준다고 '믿는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코미디라는 사실이 지금으로서는 의미심장하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도 어느덧 네 번째를 맞이했네요. 오늘은 패션 사진가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 사진가' 하면 과장된 환상을 보여주어 잠재된 욕망을 이끌어내고 소비를 부추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진가로서의 본업보다 지구환경과 동물복지를 생각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친환경 잡지를 만드는 일에 더 열심인 사진가가 있습니다. 《오보이!》의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씨를 이은 씨가 만나고 왔습니다. 

패션지, 동물복지와 환경을 만나다, 
《오보이!》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한때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더 훌륭하고 고상한 삶이라 믿었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존재에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사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은 한끝 차이일 수도 있다. 종(種)이 달라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 김현성 편집장은 표정이 그다지 없는 얼굴이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동물이란 존재를 위해 있는 힘껏 살고 있는, 그러니까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물, 사지 말고 입양해요 

그는 잘 나가는 유학파 포토그래퍼였다. 10년을 훌쩍 넘겨 패션 사진을 찍으며 스튜디오를 차려 실장 직함도 달았고 크게 남부러울 일 없이 살았다. 특유의 감성이 엿보이는 사진과 일에 안달하지 않는 그의 시크한 태도가 도리어 차별화 전략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어느 날, 삶이 바뀌었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생명을 돌보는 일에 대가 없이 자신을 쏟아붓게 됐다. 자식처럼 키우던 개 '먹물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모델과 연예인이 표지를 장식했지만오보이!》의 주인공은 반려동물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잡지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전에는 잘난 척하면서 제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제 인생과 앞길만 위해 살았어요. 상업 사진 찍으면서 제 감성을 팔았는데 자식처럼 키우던 먹물이의 죽음이 (《오보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어요.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제 자식이었거든요. 저보다 일찍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까 미리 준비했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힘든 일로만 지나가 버리면 먹물이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하게 된 거죠. 갑자기 성자가 된 건 아니지만 이대로 사는 건 무의미하고, 돈 벌어서 땅 사고 건물 짓고 이름 알리는 일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보이!》를 만든 거지요. 욕심이 없어져서 옷도 안 사요. 예전 같으면 인터뷰하는 자리에 옷도 신경 쓰고 나왔을 텐데 지금은 예의만 차리는 정도죠." 

사진가이긴 해도 '찍히는' 일도 더러 있다. 인터뷰하던 날 그는 무늬가 없는 단색 티셔츠에 무채색의 팬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최신 유행 아이템을 입지 않아도, 차림이 캐주얼해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격식 아닐까.
    
이렇게 2009년 말에 등장한 무가지 《오보이!》 창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이런 변화는 잡지 시장의 다양화, 양적인 팽창과 수익구조의 악화로 거품이 꺼지면서 무가지가 속속 등장하던 배경에서 시나브로 일어났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동물 복지를 이야기하는 패션 매거진'이라는 다소 급진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담은 잡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거의 3년 동안 31권을 만들어오면서 그간 공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패션 사진이 단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오보이!》에 나름의 원칙은 있다. (기존의 패션 화보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가죽으로 된 신발이나 소품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모피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잡지 말미에는 유기동물을 스타가 안고 있는 화보를 실어 분양을 부추긴다. 잡지의 권수가 늘어난 만큼 아무 대가 없이 《오보이!》에 등장한 스타의 수도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톱스타라도 촬영 때는 개나 고양이의 컨디션이 우선이다. 고양이는 특히 예민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화보가 예쁘게 나와야 녀석들이 좋은 곳으로 입양될까 싶어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서인지 잡지의 인기는 나날이 상한가다. 매월 초 서울 도심 곳곳에 있는 배포처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오보이!》는 들어오기가 무섭게 동나곤 한다. 지난 9월호도 그랬다.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크리스탈이 표지 인물로 나온 고양이 특집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0여 페이지가 넘는 화보, 이름난 글쟁이들이 고양이에 관해 쓴 글로 가득 채워져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이 되었다. 잡지는 별다른 꾸밈없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패션 리더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멋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주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아끼는 것 또한 아주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물권'이란 단어조차 생경하게 느끼는 이가 여전히 많지만,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유행을 선도하고 남보다 앞서갈 수 있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데는 분명 《오보이!》 같은 잡지와 이효리 같은 톱스타의 영향이 존재한다. 

《오보이!》에 실린 기사와 화보는 누리집에서도 볼 수 있다.

"벌써 3년 가까이 됐네요. 생계를 위해 촬영하면서 틈틈이 잡지 만들고. 한 달에 열흘은 계속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쉬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매달 기획과 섭외를 하고 촬영을 부탁하는 일이 힘들긴 해요. 다행히 화보를 찍겠다고 먼저 연락하는 스타가 늘었어요. 효리 씨도 화보 촬영으로 처음 만났고요. 기획사나 방송국도 그렇지만 요즘 연예권력이 엄청나잖아요. '누가 입었다' 하면 완판되고 산업 자체가 연예인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이왕이면 그런 유명세를 긍정적인 쪽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동물복지에 관심 있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지요."  

《오보이!》 그리고 《그린보이》  

그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 본능과도 같은 일이다. 버려지는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니 덕에 언제나 동물로 넘쳐나던 집안 분위기도 큰 몫을 했으리라. 수없는 만남과 이별을 겪었음에도 유독 잊을 수 없는 반려견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 처음으로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했던 개, ‘레니’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키운 개 ‘밤식이’와 ‘먹물이’. 10년이나 자식처럼 키우던 밤식이와 먹물이가 차례로 곁을 떠난 후, 세상은 텅 빈 굴처럼 공허했다. 하지만 잡지를 창간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은 잡종 개 ‘뭉치’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흔히 이야기하듯, 그네들이 주는 사랑은 조건 업고 절대적이다. 그래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굳이 비싼 품종일 필요는 없다. 개는 사람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어준다. 애정을 쏟을 사람이 있으면 개는 행복하지만 철창에 갇힌 개는 그렇지 않다. 

"더는 안 키우려고 했는데 보시다시피 얘가 잡종이라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당할 확률이 높아 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자기 배가 고픈데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요.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만, 지구나 환경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출산율이 낮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럴수록 환경과 동물엔 피해가 가니까요. 할 일이 많죠. 동물을 '같이 사는 존재'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자연스럽게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하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바뀌길 바라는 건 아니고, 작은 영향이라도 조금씩 일어나길 바라요. 보신탕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알려주면서 천천히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는 몇 년을 썼는지조차 가물가물한 ‘017’로 시작하는 피처폰을 쓴다(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고장 나기 전에 물건을 사는 일이 없으니). 배터리 수명이 다된 탓에 충전기에 늘 꽂아두지 않으면 통화가 힘들 정도지만, 굳이 ‘스마트’한 새 전화기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철 따라 싫증 나면 바꾸는 세태 속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 대단한 실천으로 보일 지경이다.

꾸준히 책을 내면서 미약하나마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덕분에 반응이 좋아져 광고 수익과 정기구독을 통해 어느 정도 유지도 가능해졌다. 아직은 1인 매체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자들에게 고료도 지급하고, 함께 일할 사람도 고용할 계획이다. 원고 쓰는 일은 물론 촬영과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주변인의 '재능기부'에 기대어 계속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게 본인의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 같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책을 보거나 게임에 몰두할 시간을 지금은 온전히 《오보이!》에 들인다. 이는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지켜봐주는 아내 덕이기도 하다. 잡지를 만들며 틈틈이 쓴 글들에 살을 붙여 《그린보이》란 책도 냈다. 이래저래 바쁜 일상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감지하며 힘을 내는 수밖에.

"주로 동물이나 문화 관련 특집이 중심이기 때문에 틀은 빤한데 어떻게 포장해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죠. 기획은 다 제 머리에서 나오고 큰 틀에서 글은 자유롭게 쓰도록 해요. 애초 전하고자 한 것과 다른 방향의 글이 들어오는 것도 재밌고요. 만든 지 3년 가까이 되었는데 달라진 걸 많이 느껴요.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반응들이 오니까요. 좋아하는 스타가 나와서 우연히 책을 접했다가 동물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글을 받으면 참 뿌듯하죠.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이어져야죠. 미스코리아에게 소원을 물으면 '세계 평화'라고 하는데, 제 소원도 마찬가지예요. (웃음) 사람이 평화로워야 해요." 
  
동물 문제 실상 알리고 환경에 기여하고파 

열심히 책을 만들면서 이를 알리는 일에 나서다 보니 패션지를 벗어나 시사잡지, 각종 학보(學報)와 문화면까지 등장하게 됐다. 환경이나 동물복지 이슈를 알리기 위해 인터뷰나 강연은 가리지 않는다. 말수가 적고 능변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대답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육식과 공장식 도축의 폐해를 줄이는 일이라 했다.

(이하 사진) 개인 전시 혹은 사진집의 형태로 곧 만나게 될 그의 사진들. 무심히 보면 건조해 보이지만 언뜻언뜻 세세한 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저도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못 돼요. 아예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육식을 줄이고 되도록 건강한 고기를 먹자는 거예요.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축산과 도축은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을 더 굶주리게 해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받을 때도 잦아요. 개한테 염색을 시키거나, 억지로 교배시켜 작게 만들어 컵 안에 넣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요. 동물을 생명이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예요."

그가 늘 입바른 이야기만 하고, 메시지가 있는 사진만 찍는 것은 아니다. 15년간 작업해온 사진가로서 잡지와 무관한 사진집과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꾸밈이 없어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진은 동물보다는 덜 오래되었으나 그의 절친한 친구다. 누구도 보지 못한 결정적 순간을 놓칠세라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피사체와 느릿느릿 호흡을 맞추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기보다는 특유의 감성이 필요한 사진. 담백한 시선에 솔직함이라는 양념을 가미한 그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메시지와 무관한 일상이나 아무것도 아닌 걸 찍어요. 결정적 순간에만 집착하지는 않아요. 기록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세트나 조명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은 솔직한 사진을 좋아하거든요." 

그는 자기만의 메시지나 이야기를 가질 틈조차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를 만나면 또 할 말이 많아진다. 세상을 숫자로 환원하고, 조금이라도 덜 가지면 불행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서 벗어나면 동물도 사람도 더 행복해질 텐데. 가난해도 힘써 살아온 이들이 부자들보다 남을 돕는 일에 지갑을 더 잘 여는 것을 보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누군가가 더 잘나가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바꿔야 해요. 나보다 힘겨운 존재를 알고 그들을 위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 행복해진다고 봐요. 실제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기부도 많이 하고 마음이 더 여유로워요. 주식이나 부동산, 자기 앞날만 생각하면서 각박하게 사는 것보다는요." 

김현성은 남다른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아끼고 사랑하던 이가 죽은 후에 그 죽음을 되새기며 삶의 전환점을 찾고, 소소한 자신의 삶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그 꿈은, '너무 어려워요' '난 못해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의 자그만 태도나 습관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도치 않게 배우게 해줬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힘겹고 지난하지만 각자가 삶의 태도를 바꾸기란 훨씬 쉬우니까. 얼핏 보기에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애정과 의지가 있다면 자신만의 타협점이나 틈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년 전 얼마 못 가리라고 많은 이가 걱정하던 도전을 멋지게 지속 가능한 현실로 만든, 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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