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맛난 음식과 이야기를 나누며 좋은 시간을 보내면 좋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 반대인 경우도 적지 않게 일어납니다. 가족이라도 나이를 먹을수록 대화의 접점이 적어지고 맛난 음식을 준비하는 가사 노동을 여자들에게 전가되기 십상이며 집안에 나눌 재산이라도 걸려 있다면 명절이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기 쉽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세를 누릴 종가에서도 2018년 새해부터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추앙받는 영웅, 아니 성웅으로 불릴 정도의 위인인 이순신 장군의 집안에 큰 다툼이 벌어진 것이죠. 바로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는 현충사의 현판이 화근입니다.


아산에 있는 현충사는 초임 군장교나 경찰 공무원이 임관되기 전, 불굴의 의지로 우리나라를 지켜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해 찾는 뜻깊은 공간입니다. 현충사에는 300년 역사의 숙종이 내린 현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1966년 군부 독재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자신과 군부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이곳 현충사에 자신의 친필 현판을 내걸었습니다. 그 현판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그런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난중일기》의 소유주인 15대 맏며느리, 즉 종부가 이 박정희의 현판을 내리고 원래 있었던 숙종의 현판으로 교체해달라고 문화재청에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뒤로 미루자 2018년 들어 15대 종부는 박정희 현판이 내려질 때까지 《난중일기》 전시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합니다.

 

15대 종손에게 자손이 없었기에 현재 《난중일기》는 그 배우자였던 15대 종부에게 적법하게 상속된 유산입니다. 그렇기에 종부의 결정은 법적으로 하자가 없습니다. 하지만 종친회는 현판 교체에 적극 반대하며 종부가 《난중일기》를 볼모로 사리사욕을 차리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견 15대 종부의 입장은 민주주의 시민 사회의 당연한 요구로 보입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의 현판이 아직도 현충사에 걸려 있다는 것은 진보한 우리 사회에 대한 모욕이 될 수 있으며, 애초에 걸려 있던 숙종 사액 현판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그 가치와 정당성에서 빼어나기 때문입니다. 두 현판을 비교해서 보기만 해도 누구나 그 가치의 차이를 느낄 만합니다.


한편 종회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그들의 가치는 시대착오적이고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S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인터뷰를 한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회 회장 이종천의 말을 들으면 대체 저런 사람이 21세기 한국인이 맞나 싶을 정도였죠.


◇ 김현정> 1966년에 현충사 성역화 작업을 하면서 그때.


◆ 이종천> 네. 그때 지어서 거기에 맞게 박 대통령이 현충사라는 현판을 썼는데.


◇ 김현정> 그렇죠.


◆ 이종천> 숙종만 임금인가, 박정희 대통령도 임금이요.


◇ 김현정>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 이종천> 박정희 대통령이 임금 아닙니까?


◇ 김현정> 대통령이 임금은 아니죠. 지금 군주시대가 아니니까.


◆ 이종천> 임금이나 마찬가지죠.


◇ 김현정> 이제 대통령이라는 거는 선거로 뽑힌 거니까, 민주주의 제도에서. 임금은 아닙니다마는 어쨌든 리더란 의미 말씀하시는 거예요, 국가의 리더?


◆ 이종천> 그래서 그 현판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그 현판을 내리려면 현충사를 다 부숴야 돼요. 박정희 대통령이 해 놓은 걸 현판만 내리면 됩니까? 다 부숴야죠.


◇ 김현정> 현판을 내리려면 현충사도 부숴라? 그거 너무 극단적인 주장 아니세요?


◆ 이종천> 여보세요, 최순선 얘기만 듣고 그런 얘기를 자꾸만 하는데. 현판을 내리려면 현충사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 놓은 현판이나 현충사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리고 그 현충사에는 숙종이 내린 현판은 보이지도 않아요. 너무 작아서.


현충사 현판 "숙종것으로 교체" VS "박정희도 임금인데.."(노컷뉴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이후에도 박정희 찬양에 열을 올리는 종회 회장은 박정희 현판을 내릴 거면 현충사까지 다 때려부수라며 예의 없는 인터뷰를 일관하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기에 이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전직 대통령을 임금으로 생각하고 독재자를 떠받드는 노추를 드러낸 겁니다.


출처 - 뉴스1


그러자 다음 차례로 인터뷰한 15대 종부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독재자 박정희에 의해 오염되어 온 면이 있으니 이 기회에 문화재청이 결단을 내려 숙종 사액 현판으로 현판을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무라이를 경배하며 술자리에서 매번 엔카를 불렀던 박정희가 왜색으로 치장해놓은 현충사도 이 기회에 복원해야 한다고 말이죠. 애초에 15대 종부인 자신이 상징적으로 소유권을 가진 건 맞지만 《난중일기》를 비롯한 충무공의 유물은 이미 1960년대부터 현충사에 위탁해 공공기관에서 관리를 해왔으니 《난중일기》를 볼모로 사리사욕을 채우려한다는 모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론 이 사태만 놓고 보면 15대 종부의 발언이 이치에 맞습니다. 국정농단 사태에서 비롯된 적폐 청산의 차원에서도, 군부 독재 종식 차원에서도, 그리고 문화재 복원의 측면에서도 말이죠.


다만 종회의 비난이 거짓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의구심을 지울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실제로 15대 종부는 2009년에 사기 혐의로 구속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15대 종부는 2005년부터 충남 일대 토지를 매입해 건설사에 되파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모 씨에게 5억을 투자하면 배로 불려주겠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구속될 당시 이미 13억이 넘는 빚을 지고 토지매입 작업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였죠. 또한 같은 해 3월 빚 때문에 자기 명의로 돼 있는 현충사 충무공 고택 터 등을 경매 처분당했습니다. 자칫 현충사 고택 터가 무관한 남의 땅이 될 아찔한 순간이었지만 덕수 이씨 풍암공파 문중이 이를 되사서 겨우 막은 바가 있습니다. 15대 종부가 이번 현판 관련 건에 관해서는 이치에 맞는 말을 하고 있지만, 과연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역사 바로 잡기를 위한 것인지는 검증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호부견자(虎父犬子)라더니 새해 벽두부터 가장 유명한 위인의 집안이 콩가루가 되어 싸우는 소식이 들려와 안타깝습니다. 이치는 명백하지만 어느 한편을 지지하기 힘든 이전투구로 보인다는 점에서 더 안타깝습니다. 하늘에 계실 충무공 이순신 장군께 부끄러운 후손의 모습이 누가 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드러나는 일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을 담은 영화에서 계엄군이 시위를 벌이는 광주시민을 사격하는 장면이 날조되었다고 반발하는 전두환 측 사람이나, 새해 벽두부터 12.28 위안부 합의의 문제점를 짚기는커녕 외교기밀을 왜 공개했는가만 문제 삼는 등 말도 안 되는 발언으로 '혼수성태'라는 별명을 얻은 정치인도 있습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혼이 비정상'이 아닌가 싶군요. 이들을 반면교사 삼아 2018년 한 해는 올바른 역사 인식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해양국가에서 해양전력의 영향력, (나라를) 구원한 능력이라는 점에서 이보다 더 두드러진 역사적 사례는 없다."


1911년 영국 정부 관리였던 제이 에이치 롱퍼드가 자신의 책 〈더 스토리 오브 코리아〉에서 이순신 장군을 평가한 내용입니다. 조선을 뒤이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1910년 8월 상실되어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된 시기였음을 생각하면 롱퍼드의 이순신에 대한 평가는 대단한 상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더 지난 2017년 4월 18일,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인 4월 28일을 앞두고 서울시청에서 국제 학술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세계 속의 이순신'이란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언 바우어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 교수 또한 〈더 스토리 오브 코리아〉를 인용하며 이순신을 상찬했습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이 대영제국의 기틀을 닦은 호레이쇼 넬슨 제독과 비교된다고 전했습니다. 한편 영국의 해군 제독이자 군사학자인 지 에이 발라드는 이순신이 전술뿐 아니라 기술적 측면에서도 뛰어나, 과거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새롭고 강력한 함정인 거북선을 건조했다고 극찬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시대 신형 호위함을 개발한 영국의 코크레인 제독을 평가하면서 이순신 제독처럼 공학을 이해하고 있었다고 평했을 정도니 이순신 장군에 대한 전 세계적인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아시다시피 임진왜란은 한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많이 거론되는 전쟁입니다. 무적함대를 이끌고 바다를 누비며 일본 해군을 격파한 불세출의 명장 이순신을 비롯해 내륙에서 무기를 들고 일어나 일본군에 맞서 싸운 의병들의 활약상 등은 한국인에게 우리의 힘으로 나라를 지켰다는 자부심을 심어주며 TV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 수많은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로 쓰입니다.

 

특히 거북선을 건조해 일본 해군을 물리친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게 연전연패한 일본에서조차 군신의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 방위대 이노우에 야스시 교수는 17세기 일본은 이순신을 통해 충신의 이미지를 알게 되었고, 19세기 이후 해군 전략가로서 이순신을 받아들여 해양 강국 일본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합니다. 1904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일본이 세계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데 기여한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 또한 자신이 "넬슨한테는 비교될 수 있어도 이순신한테는 비교될 수 없다"고 말했을 정도로 이순신의 위상은 일본 내에서 확고합니다.

 

 

이순신에게 배우는 자주정신

 

그런데 임진왜란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자 조선의 최고 국가 원수였던 선조 임금은 오늘날 우리가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인식과 정반대의 시각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생각비행이 출간한 《자주파 vs 사대파》의 내용을 중심으로 이순신의 자주정신과 현재 사드 논란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까지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 극복의 공을 명나라에게만 돌린 채, 이순신 같은 장군은 물론 조선 관군과 의병들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해버렸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3년 후인 1601년, 선조는 공신 책봉을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겼습니다.

 

이번 왜란에 적을 평정한 것은 오직 명나라 군대의 힘이었다. 우리나라 장수들은 중국 군대의 뒤를 따르거나 혹은 어쩌다 운이 좋아 패잔병의 머리를 얻었을 뿐, 일찍이 제힘으로는 한 명의 적병을 베거나 하나의 적진도 함락하지 못했다. 그중 이순신과 원균 두 장수는 바다에서 적군을 섬멸했고, 권율權栗은 행주幸州에서 승첩을 거두어 약간 나은 편이다.

 

그리고 중국 군대가 나오게 된 연유를 말하자면 모두가 호종한 여러 신하가 어려운 길에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위해 의주에 가서 중국에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왜적을 토벌하게 되었고, 강토를 회복하게 된 것이다.

 

- 1601년 3월 14일 《선조실록》, 비변사에서 호종 신하와 역전 장사의 녹훈에 대해 아뢰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일어난 조선 백성의 공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명나라 군대를 더 믿은 선조는 사대주의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목숨을 걸고 일본군에 맞선 수많은 의병보다 선조를 따라 도망친 사람들이 명군을 불러왔기에 공이 더 크다고 하니, 이런 망언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조선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그에 대한 정보는 임금에게 보고되니, 선조는 자연스레 모든 일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조가 의병들의 공훈을 몰라서 저렇게 말했을 리는 없습니다. 알고서도 일부러 철저하게 무시한 것이죠. 왜 그랬을까요?

 

사실 임진왜란 내내 선조가 경계한 것은 일본군보다 자국 내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반란이었습니다. 수도를 버리고 도망가기에 바빴던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선조는 두려워했습니다. 신하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고, 전란의 와중에 곡식을 풀어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다거나 하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으니까요. 실제로 선조가 피난간 곳을 벽에다 낙서로 적어 일본군에게 알려주는 사건까지 있었을 만큼 백성은 선조를 미워했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전쟁 영웅들이 등장해 백성의 신망을 받는 것에 대해 선조가 정치적 위협을 느꼈을 가능성은 무척 큽니다. 특히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일어나 일본군과 싸운 의병들을 경계했겠죠. 의병들이 세력을 계속 키워나갈 경우 군벌로 성장하고 더 나아가 조정에 반기를 들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 때문에 선조는 의병들을 모두 관군에 배속해 관부가 그들을 통제하여 결코 반란을 일으킬 수 없도록 조치했습니다.


아울러 선조는 조선군의 명장인 이순신마저 경계하여 출정하라는 명령을 어겼다는 죄목으로 붙잡아다 고문하는 식으로 압박을 가했습니다. 이는 이순신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어 자신에게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정신적 조치였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를 보면 명나라 군대에 대해 선조와 다른 평가를 한 이순신의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명나라 군사의 파병 자체는 일단 환영했습니다. 명나라가 조선을 돕는다면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순신은 명군이 일본군과 교전을 회피하자 강한 불신감을 표출합니다. 더구나 명나라와 일본 간의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명군은 조선군이 일본군을 공격하거나 추격하는 일을 엄격히 금지했습니다. 이순신은 이런 명군의 조치를 듣고 몹시 분개했습니다.

 

- 1594년 3월 6일명나라 군사 두 명과 왜놈 여덟 명이 패문을 가지고 왔기에 그 패문과 명나라 군사 두 명을 보낸다"고 했다. 그 패문을 가져다 보니, 명나라 도사부 담종인이 "적을 치지 말라"는 것이다. 나는 몸이 몹시 괴로워서 앉고 눕기조차 불편하다.

 

- 1594년 3월 6일

 

이순신은 명군의 지원을 어디까지나 부수적 요소로 파악했습니다. 결코 선조처럼 "우리나라 군사들은 아무것도 한 일이 없고, 오직 명군의 힘만으로 나라를 되찾았다"라는 식의 극단적 사대주의는 보이지 않았죠. 일본군과 싸우는 일의 주력은 어디까지나 조선군이고 명나라는 그저 도우러 온 조역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순신의 지론이었습니다. 선조를 극단적 사대파라고 본다면, 이순신은 자주파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봐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안위만 생각한 선조의 사대적 발언은 이후 조선인 사이에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심각한 자기 비하와 모멸감과 함께 외부 강대국의 힘을 빌려야만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극심한 외세 의존과 사대주의라는 역효과를 불러왔습니다. 그 결과가 바로 1910년 일본에 주권을 넘긴 일제강점기였고, 해방 이후에도 새로운 종주국인 미국에 대한 극심한 사대로 나타난 것이죠. 

 

 

기습적인 사드 배치, 무엇을 의미하나?

 


출처 - YTN


세계 속에 빛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일을 불과 이틀 앞둔 지난 26일 새벽, 그 누구보다도 이순신 장군의 덕목을 배우고 실천해야 할 대한민국 군과 경찰이 성주 주민의 결사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드 기습 배치를 강행했습니다. 경찰 병력 80개 중대를 투입해 자기 국민의 차 유리창을 모조리 깨고 견인하고 주민들이 다쳐 병원에 실려가든 말든 모조리 끌어냈습니다. 이를 틈타 군은 새벽 4시 반쯤 엑스밴드 레이더와 사드 발사대 일부를 골프장으로 진입시켰습니다.


출처 – 뉴스1


2016년, 한국 사회를 달군 최대의 화젯거리는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HAAD 배치를 둘러싼 논란이었습니다.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미국이 원하는 일이고 사드가 있어야 북한이나 중국의 핵미사일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맺은 동맹이 어떤 외교 관계, 심지어 한국과 중국 사이의 경제 관계가 파탄 나는 것보다 더 중요하기에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반면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사드를 배치해봤자 우리가 통제할 수 없고, 북한의 잠수함 미사일도 막을 수 없는 무용지물일 뿐이라고 반박합니다. 만약 사드가 정말로 배치된다면, 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피해가 올 것이라고 봅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2014년까지만 해도 사드 배치 문제는 지금처럼 뜨거운 화젯거리는 아니었습니다. 국방부나 청와대를 비롯한 한국 정부 기관들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서 "아직 결정된 것도 없고 논의된 바도 없다"라고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했고, 보수 언론들조차 "사드 배치는 미국과 중국 및 러시아 사이에서 먼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국제적인 문제"라며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2016년 2월, 한국 정부는 갑자기 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합니다. 이전까지의 자세와는 너무나 대조적이어서 나라 안팎에서 그 이유를 두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사대 배치 강행의 진짜 목적은 한국의 보수 기득권에게 닥친 정치적, 경제적 위기를 덮으려는 것이었죠.

 

2015년 4월에 터진 성완종 스캔들로 여당인 새누리당은 이완구 총리를 물러나게 하는 등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이후 9월 3일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행사 참여로 미국의 큰 반발이 있었고, 심상치 않은 국제 정세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당사자들과 협의도 없이 일본 정부와 졸속으로 처리해버렸습니다. 이는 한-미-일의 관계를 굳건히 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선택이었죠. 미국과 일본에게는 점수를 얻었을지 몰라도 박근혜 정부에 대한 국내의 비난 여론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이를 감지했기 때문인지 해가 바뀐 2016년 2월, 박근혜 정부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해오던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돌연 태도를 바꿔 "북한의 핵무기를 막기 위해 사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발표합니다. 사드의 실효성조차 입증되지 않았는데, 비판 여론을 무시하며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공안정국을 형성하려는 속셈이었죠. 박근혜 정부는 이런 식으로 정치적 위기 때마다 국민이 예기치 못한 돌파구로 위기를 모면하는 방식을 주특기로 써먹었습니다.  

출처 - 인스티즈

 

그러나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한 정권이 안정적일 리 없습니다. 2016년 4월 13일 20대 총선에서 국민은 집권 여당을 심판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무능과 부패, 갈수록 악화되는 경기 침체 등으로 서민의 마음이 여당이 아닌 정권 심판과 변화를 부르짖는 야당에 쏠렸기 때문에 벌어진 결과였죠. 2016년 10월 들어 박근혜 정부는 물론 한국 현대사에서 최대의 정권 비리인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대통령인 박근혜 주위에 있던 이재용, 김기춘, 조윤선 같은 인물이 구속되면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최악의 정치적 참사에 직면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더욱 밀어붙였습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이 제기한 사드의 효용성에 대한 의문을 묵살하고, 사드 배치의 목표가 되는 중국과 러시아가 보이는 거센 반발도 무시해버린 채로 말입니다.

 

AN/TPY-2 사드 레이더 / 출처 - 위키피디아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인 최순실이 구속되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박근혜가 대통령직에서 쫓겨나 구속된 상태인 지금, 여전히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방부나 대통령 권한대행 등은 "북한 핵무기의 위협으로부터 국가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정작 그 말을 신뢰하는 국민은 많지 않습니다. 사드 배치의 진짜 목표가 북한이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라는 사실 정도는 알기 때문입니다.

 

기습적인 사드 배치와 박근혜 정부의 핵심 요인 대부분이 친미 반공 성향을 가진 보수 우익 인사라는 사실과의 관련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의 보복으로 한국 경제가 파탄 나고 수백만 명의 실업자가 발생해도 미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지금 미국이 지고 있는 부채는 무려 20조 달러입니다. 이 엄청난 빚을 해결하지 못하는 한, 미국 경제는 되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을 겁니다. 자연히 미국의 패권 또한 쇠퇴 일로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지요. 한국의 국내 총생산GDP은 고작 1조 3000억 달러로 미국이 진 빚의 1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한국의 경제력을 송두리째 희생해도 미국의 부채를 갚을 수 없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미국 내 인프라 개선 문제에 무려 8조 달러의 예산이 필요하니, 혹여 한국의 친미 기득권 세력이 사드를 1만 개쯤 들인다고 해도 미국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일제강점기 무렵 친일파들이 조선 땅 전체에서 쌀과 개가죽, 놋쇠, 요강까지 죄다 긁어서 일제에 헌납했어도 끝내 일제의 패망을 막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친미파 기득권 세력이 아무리 한국 국민의 혈세를 미국에 헌납한다고 한들 그들이 섬기는 미국의 쇠퇴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출처 - 산업연구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국 간 무역마찰 시 한국이 멕시코 다음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연구원KIET이 30일 발표한 〈세계무역 웹을 이용한 무역마찰의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른 분석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를 추진한 것만으로도 중국의 경제 보복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그런데도 사드 배치를 결정하고도 여전히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계속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현재 한국이 처한 딜레마 때문입니다. 미국의 손에 든 총은 겁나는데, 중국이 손에 든 돈은 탐나는 겁니다. 그래서 미국이 시키는 대로 사드를 배치하면서도 중국이 쥔 돈을 어떻게든 계속 빼먹고 싶어서 중국을 상대로 "사드는 결코 너희를 겨누는 게 아니야! 그냥 북한 핵 대비용이야!" 하고 거짓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또한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을 "중국에 아부하려는 속셈에서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비굴한 사대주의자"라며 비난합니다. 사드 배치 반대론자들이 "미국의 압력에 맞서 우리나라의 경제적 이익 같은 자주성을 지켜야 한다"라고 말할 것을 대비하여, 그들이 내세우는 '자주'라는 명분을 거꾸로 빼앗아 무기로 내세워 먼저 공격하는 것이죠. 

 

이 시점에, 사드 배치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혹시 한국이 중국의 경제 보복을 당해 경제가 파탄나면, 미국이 그 보상으로 한국에 막대한 경제적 지원이라도 해주리라고 믿는 것일까요? 지금까지의 미국 사정을 보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한국 정부가 사드 배치를 한다고 발표했음에도 미국 정부는 한국산 철강에 대한 덤핑 관세를 60퍼센트나 올리지 않았던가요? 또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기업인 삼성과 현대가 "수천 명의 미국인을 실업자로 만든다. 이들 기업들이 미국에서 부당한 이익을 챙기도록 결코 놔두지 않겠다"라는 강경한 발언으로 한국을 경제적으로 압박하지 않았습니까? 최근 트럼프는 사드비용 10억 달러를 한국에 내게 할 것이라며 FTA 재협상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허버트 맥마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오늘(30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사드 배치 비용청구' 발언과 관련해 "동맹국들의 비용 분담에 대한 미국민들의 여망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일반적인 맥락에서 이뤄졌다"고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측의 이런 진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드비용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겁니다. 직접적인 비용이 아니더라도 내년 예정된 방위비분담금 협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사드 운용비용을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판국에 미국이 한국에 경제적 지원을 해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반대하며 대형 성조기를 흔들며 미국을 향해 "박근혜 탄핵 취소시켜주십시오!" 하고 외치면서 트럼프의 얼굴 사진이 들어간 깃발을 들고 다니던 사람들은 비웃음을 샀습니다. 아무리 트럼프 사진과 성조기를 들고 미국에 충성한다고 외쳐도, 트럼프나 미국 정부는 신경 쓰거나 보상을 해주지 않을 테니까요. 박근혜 전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위 참가자들은 스스로를 애국자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애국심은 공허한 명분일 뿐입니다. 그들은 단지 좌파에 대한 맹목적인 증오심과 미국에 대한 광신적인 숭배를 애국심이라고 착각하고 있을 뿐이죠.

 

 

한국사, 어떤 관점에서 볼 것인가?

 

《자주파 vs 사대파》의 저자는 돌이켜보면 조선 중기 이후로 우리 역사에서는 3가지 큰 실패가 있었다고 봅니다. 첫째는 병자호란, 둘째는 경술국치, 셋째는 남북 분단이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역사의 격변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에 외국 침략군에게 국토가 짓밟히고 외세에 주권을 빼앗기고 강대국들의 마음대로 국토가 분열되어 70년 넘은 지금까지도 남과 북이 서로 대치하고 싸우며 국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면 우리는 역사의 4번째 실패를 맛볼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미국과 일본의 의도대로 벌어질 제2차 한국전쟁입니다. 미국의 잠재 적국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쟁에 멋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중국의 보복을 받아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백만, 어쩌면 수천만의 인명 피해가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왜 우리가 제2차 한국전쟁을 겪어야 합니까? 강대국의 하수인 신세가 되어서, 또 다른 강대국의 보복을 받고 흠씬 두들겨 맞는 일은 국민들의 생명을 갖다 바칠 만큼 가치 있고 숭고한 일이 아닙니다. 가게에서 단돈 100원이라도 손해를 보면 펄펄 뛰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명이 송두리째 날아갈지도 모르는 전쟁에 열렬히 찬성하는 것은 참으로 불가해한 일입니다.

 

출처 - JTBC

사드 배치 문제는 결코 그냥 넘어갈 만한 하찮은 일이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는 유명무실해졌지만 한국의 보수 기득권층은 광신적인 친미 사대주의에 빠져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배치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쪽이 현명할까요? 20조 달러라는 막대한 부채에 짓눌려 망해가는 미국의 패권을 연장해주기 위해서 사드를 배치하고 그 대가로 경제 파탄이라는 환란과 제2차 한국전쟁이라는 재앙을 감수해야 할까요? 아니면 송나라와 요나라, 금나라 사이에서 현명한 등거리 외교를 펼쳐 강대국들의 입김에 놀아나지 않고 나라와 백성을 무사히 보존해야 했던 고려 시대 선조들의 지혜를 배워야 할까요?

 

출처 - 경향신문


자주와 사대라는 두 갈림길에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국민의 선택이 중요한 이때, 대한민국 군의 기습적인 사드 배치는 불법입니다. 미군과 한국군 모두 차기 대통령이 배치를 결정할 일이라는 공식 발표를 했거니와 환경영향평가조차 끝나지도 않았고 시설공사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장비 반입을 강행한 것은 그 자체로 불법입니다. 더구나 사드 기습 배치를 위해 군인과 경찰을 동원해 종교인과 주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 역시 불법적인 행위입니다. 부동산 알박기도 아니고 국방부는 대체 뭐가 급해서 군도 모자라 경찰까지 동원해서 사드 긴급 배치를 강행한 것일까요?

 

국방부장관, 나아가 황교안 권한대행이 이를 몰랐다면 무능력을 규탄하고 군의 항명으로 다스려야 할 것이고, 알았다면 불법적인 월권 행위로 이 또한 처벌해야 마땅합니다. 군에 계신 모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 보기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무엇이 애국이고 충정인지 대한민국 군이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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