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도 최저임금이 진통 끝에 2018년 대비 10.9% 오른 8350원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은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지키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며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인 최저임금 적용 업종인 편의점을 비롯한 소상공인들은 발표 직후 최저임금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불복 선언을 하기도 했죠. 최저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알바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환영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2년 연속 두자릿수로 오른 최저임금에 대한 심리적 저항이 큰 자영업자들이 많은가 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처음에는 인건비 상승을 감당할 수 없다며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지역별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달라고 요구하며 심야영업 중단 및 심야에 물건값에 할증을 붙여 파는 식의 강력한 단체 행동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죠. 하지만 여론이 좋지 않았고 편의점주와 알바라는 을과 을의 전쟁이라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편의점주들은 비판의 무게중심을 옮겼습니다. 공동휴업 등 단체행동을 하는 대신 카드 수수료 문제, 근접 출점, 가맹수수료 인하 등의 요구조건을 꺼내든 겁니다. 그러면서 을과 을의 싸움을 절대 원치 않는다며 정부와 가맹본부 쪽에 정당하게 공을 넘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적절한 판단이었습니다. 편의점 업계의 가장 큰 문제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편의점주들이 어찌할 수 없는 갑들의 문제였기 때문이죠. 을과 을의 전쟁으로 번질 뻔한 문제를 진짜 문제인 갑에게 돌리는 데 성공한 셈입니다. 편의점 왕국인 일본은 편의점주들이 노동조합으로 연대해 가맹본부와 수수료 요율 등을 매년 협상한다고 하죠.


출처 - KBS


편의점을 비롯해 프랜차이즈 가맹 사업자들이 힘든 이유는 편의점 업주들이 성토하는 그대로입니다. 가맹본부가 가져가는 높은 비율의 가맹수수료와 건물 임대료가 가장 큰 지출을 차지합니다. 알바생들의 인건비는 5명을 교대로 근무시킨다 해도 이보다 부담이 낮습니다. 상황이 이런데도 그간 편의점주들이 최저임금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까닭은 가맹수수료와 임대료는 자신들이 낮추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인건비는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약자가 더욱 약한 상대에게 피해를 돌리는 을의 전쟁으로 번지곤 했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출처 - KBS


사실 편의점 업계는 장기불황이라는 말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형마트나 백화점은 매출이 미미하게 상승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도 했는데, 편의점 업계만 10.9%라는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으니까요. 문제는 이로 인해 가맹본부는 엄청난 이익을 보는 반면 편의점주들의 실질적인 이익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출처 - KBS


편의점주 대다수가 근접 출점을 막아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편의점 자체가 너무 많아지는 현상도 문제입니다. 인구가 우리의 두 배인 편의점 왕국 일본의 전국 편의점 수가 5만 5395개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4만 192개 수준으로 인구에 비해 편의점 수가 너무 많은 편입니다. 

 

가맹본부 입장에서는 편의점 수가 많아지면 만하질수록 수수료 수익이 늘어나니 좋겠죠. 하지만 편의점주 입장에서는 편의점끼리 과다한 경쟁을 하게 된다면 자신들의 파이가 줄어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는 가맹본부가 편의점 매출액의 30~40%를 가져가는 정률제 계약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런 조건 때문에 가맹본부는 편의점들의 매출 신장을 지원하기보다 전체 편의점 수를 늘리려 합니다. 편의점끼리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데도 이를 신경쓰지 않는 것이죠.


출처 - 머니투데이


최근 가맹점주들 사이에서는 가맹본부가 수수료를 인하하고 신규 점포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맹본부는 현재 이익률이 낮아 수수료율을 손보기가 난망하다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가맹본부가 낮다고 한 이익률이 수천억입니다. 일례로 BGF리테일의 경우 2016년 오너 일가의 배당금이 180억 원이었을 정도입니다. 오너와 주주는 본부에서 배당을, 본부는 편의점주들에게 수수료를, 편의점주들은 알바들의 최저시급을 빨아먹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MBC


이와 동시에 편의점주들에게 큰 문제는 건물 임대료입니다. 일부 보수 언론은 최저임금이 18년 동안 4배 올랐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하지만 건물주가 받는 월평균 월세는 10년 사이에 6배나 올랐습니다. '갓물주'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갑들의 지나친 이익 추구로 인해 치명타를 입는 건 언제나 을들이라는 소립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사태를 초래한 범인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국회입니다. 이 모든 사태의 요인을 막거나 완화할 수 있었던 상가임대차보호법 등 100여 건의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법률이 일하지 않는 국회에 쌓여 처리가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말로만 민생 민생 하지 말고 어서 법안들을 처리해 실제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바랍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울러 편의점주, 자영업자들도 진짜 요구를 해야 하는 대상을 혼동하지 말길 바랍니다. 을과의 전쟁에 열을 올리지 말고 연대를 통해 갑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며 실질적인 답을 찾야야 합니다. 가맹본부와 건물주, 나아가 이 돈이 집중되는 재벌 오너 일가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을과의 상생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지난 6월 19일 ‘2018 경향포럼’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 컬럼비아대 교수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지대추구 행위가 불평등을 심화시켜 결국 공동체를 붕괴시킨다면서 정부의 과감하고 직접적인 개입을 주문했습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날 기조강연을 통해 "타인을 착취해 이익을 얻는 것이 지대추구 행위"라면서 "기업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해지면서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민주주의까지 약화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가 바로 이러한 문제를 다룹니다. 갑이 많은 사회적 부를 움켜쥐게 된 까닭은 을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쥐어짜내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양극화가 심화된 대한민국이란 ‘하청사회’는 극소수의 갑만 이익을 챙기고 대다수의 을은 희생을 당하게끔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하청사회는 막다른 골목으로 을들을 내몰고 상호 변절을 강요하는 사회이기도 합니다. 성과를 내야 하는 일터에서 살아가는 을의 눈에는 옆의 을이 동료라기보다는 경쟁자로 보일 뿐이죠.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상황에서 을들은 협동보다 생존을 우선적인 가치로 생각하게 됩니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을과 을들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2018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화병(Hwabyeong), 재벌(Chaebol)에 이어 갑질(Gapjil)도 영어사전에 등재될 것 같습니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조현아에 이어 동생 조현민의 갑질이 지난 14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기사로 났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화병을 유발하는 경제 시스템의 근원이 재벌이고 갑질을 하는 것도 재벌이니 세계화된 단어의 근간에 재벌이 있는 셈입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차녀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회사 직원에게 물병을 집어 던지고 얼굴을 향해 물을 뿌린 이른바 물벼락 갑질이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이후 추가로 공개된 녹취록을 들어보면 단순히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조절장애 이상의 정신장애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악을 쓰며 괴성을 지릅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그간 다양한 채널로 대한항공 조씨 집안의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갑질 행태가 터져 나왔죠. 첫째인 조현아는 땅콩회항으로 유명인이 되었고, 셋째인 차녀 조현민은 이번 물벼락 갑질뿐 아니라 다른 갑질도 드러났으며, 둘째인 아들 조원태는 차선 위반으로 단속하려던 경찰을 치고 달아나다 시민들에게 붙잡힌 바 있습니다. 그는 아기를 안고 있는 70대 할머니를 밀치고 폭언한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죠. 이처럼 자식들이 콩가루 집안임을 입증했는데, 그들의 부모라고 멀쩡할 리 있겠습니까? 삼 남매의 어머니인 조양호 회장의 부인은 더 한다는 폭로가 이어졌습니다. 입에 아주 욕을 달고 살며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합니다.


출처 - 한겨레


재벌 일가의 갑질에 분노한 국민들은 한진그룹 소유인 대한항공에서 '대한'을 회수하고 한진항공이라고 하게 하자거나, 조현민을 처벌해달라고 하는 청원을 청와대 누리집에 올리는 등 사회적 단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더 분노하게 하는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조씨 일가가 재벌이라는 배경을 이용해 온갖 불법을 저지른 정황이 드러난 것이죠. 물벼락 갑질의 조현민은 외국 국적인데도 대한항공 자회사인 진에어의 이사를 5년 동안 맡아 불법 의혹이 제기되었죠. 국내 항공법상 외국 국적자는 이사를 맡을 수 없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조현민의 상속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또한 항공사 오너 일가라는 점을 이용해 해외에서 여러 물품을 들여오며 공항 세관의 눈을 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죠. 오너 일가의 짐을 마치 승무원들의 짐인 것처럼 나눠 들고나와 대한항공 운영사무실을 통해 공항 밖으로 빼낸 건데요. 대한항공은 이를 관행이었다며 사실상 인정했습니다. 세관을 거치지 않는 건 엄연한 관세법 위반인데 이를 눈감아주는 대가로 세관 직원들에게 무료항공권이나 좌석 업그레이드 등 편의를 제공했다는 제보도 나왔습니다. 

 

심지어는 총수 일가의 화물을 항공기 부품으로 속여서 들여온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조양호는 카메라 부품과 와인, 부인인 이명희는 가구, 조현민의 경우는 애완견용 특정 브랜드 사료를 그런 식으로 반입했다고 합니다. 현행법상 수입 신고를 하지 않거나 신고를 했더라도 실제 다른 물건을 들여오면 밀수죄에 해당합니다. 원가가 5억 원 이상이면 무기징역도 가능한 중죄이며 벌금형 없이 반드시 징역형에 해당합니다. 게다가 오너 일가가 이랬으니 업무상 배임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SBS


900명이 넘는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갑질 불법 비리 제보방'이라는 카카오톡의 오픈 채팅방에서 총수 일가의 갑질과 비리 사례를 공유하며 회사 정상화에 가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채팅방은 지난 18일 개설되었고 참가자들이 총수 일가와 관련한 폭언 녹취 파일, 갑질·폭력·부당한 업무지시, 강등·퇴사 등 부당 인사, 세관 통과·탈세·비자금, 국토교통부 관련 비리·비위 등을 제보받고 있습니다.

 

출처 - MBN

 

생각비행이 출간한 책 《갑의 횡포, 을의 일터》의 저자는 정당한 경쟁을 회피하는 재벌의 지대추구행위를 비판합니다.

 

 

내가 책에서 지대추구행위의 대상으로 주로 비판하려는 대상은 공공선택론자들이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정부가 아니다. 오히려 시장경쟁을 저해하는 갑의 지대추구행위에 초점을 맞춘다. 즉 시장에서 정당한 경쟁을 통해 형성된 가격이 공공의 이익을 증대하도록 하는 대신, 기득권을 지닌 갑이 부당하게 경쟁을 회피하며 특권과 특혜를 증가시키려는 행위를 비판한다. 달리 말해, 나는 지대추구행위를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서 ‘보이지 않는 손’을 방해하는 ‘보이지 않는 발’이라고 비유한 E. K. 헌트의 이해를 공유하고자 한다.

 

하청사회의 갑은 어느 날 갑자기 그 위치에 서게 된 것이 아니다. 갑의 ‘보이지 않는 발’이 남긴 발자국을 추적해 들어가면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공영호에 따르면, 1960년대 이후 재벌, 정치인, 관료들이 ‘지대추구연합’을 형성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이루어졌다. 정부는 재벌을 위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에 해당하는 저렴한 금리를 제공했으며, 각종 규제를 통해 다른 업체의 진입과 경쟁을 억제하는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이처럼 오늘날 하청사회의 갑인 재벌과 대기업은 오랜 기간 정부에 의지해 막대한 지대를 획득하면서 성장해왔다. 엄청난 규모로 누적된 지대추구행위가 시간의 흐름에 묻혀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토지나 토지와 유사한 성격의 영역을 선점한 지대추구행위자는 이 ‘보이지 않는 발’을 통해서 경쟁자들을 짓밟은 채 사회에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단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득을 옮길 뿐이다. 또한 그 과정에서 독점적으로 지대를 차지하는 데 들인 매몰비용을 회수하려고 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순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

 

지대추구행위가 경쟁의 규범처럼 작동하면 독점적인 지대를 차지하는 갑이 되는 것만이 중요해집니다. 대한민국에서 갑들을 지대추구행위를 통해서 아무런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지 않고, 단순히 이쪽에서 저쪽으로 소득의 이전만을 행할 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재벌가의 갑질은 잊을 만하면 돌아오는 막장드라마처럼 등장해 여론의 질타를 받아왔습니다. 한화의 김승연과 그 아들이나, SK 오너 일가의 맷값 폭행 등이 사회적 물의를 빚은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런데도 재벌 일가의 갑질이 계속되는 건 철저한 단죄와 예방 조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영 능력이 부족하고 윤리의식마저 바닥인 오너 일가가 재벌 기업을 좌지우지하도록 놔두는 건 국가 경제를 생각할 때 큰 문제입니다. 이 악순환을 끊어내는 입법과 단죄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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