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세월호 참사를 벌써 잊었나?

지난 6.4 지방선거에서 국민은 진보적 성향의 교육감을 대거 선택했습니다. 경쟁 위주 교육에 반대하는 기치를 내건 진보교육감이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3곳에서 당선되었습니다. 반면 박근혜 정부의 인사는 퇴행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인사 참극이 따로 없다고 표현해야 할 지경입니다.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의 편법 병역면제 및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자진 사퇴했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동영상 파문,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사건이 줄줄이 일어났고, 세월호 참사 이후 국면 전환용으로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 후보로 내세웠으나 변호사 수임료 논란으로 자신 사퇴했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에 이제 인물이 없는 게 아닌가 싶을 무렵 "일본의 식민 지배와 6.25가 하나님의 뜻"이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사과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망언을 서슴지 않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선되었습니다. 

이외에 박근혜 대통령은 뉴라이트 역사관으로 논란을 빚은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과 명예교수를 임기 3년의 방송통신위원회(방통심의위) 위원장에 임명하려고 강행하고 있으며, 친일·독재에 대한 기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하지 않은 것을 두고 '국가·국민적 수치'라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주장했던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를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으로 내정했습니다.

유난히 인사 참사가 끊이지 않던 박근혜 정부를 비판적 시각에서 바라보며 6.4 지방선거 이후 변화의 조짐을 기대하던 국민의 가슴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또 한차례 비수를 꽂았습니다.

출처: 경향신문 (김용민의 그림마당)


청소년이 뽑은 교육감 vs 박근혜 정부가 뽑은 교육부장관

지난 6월 16일자 《한겨레》 지면에 <'세월호 10대'가 뽑은 교육감·시도지사는?>이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1618 선거권을 위한 시민연대'가 5월 17~25일에 서울·경기·대구 지역에서 시행한 지방선거 모의 투표 결과를 분석한 기사였는데요, 가상의 투표권을 행사한 1111명의 청소년은 과연 어떤 후보를 선택했을까요?

출처: 한겨레

청소년들은 대중적인 인기나 지역주의로부터 어른들보다 훨씬 자유로웠다. 후보 선택의 제일 중요한 기준은 ‘공약’이었다. 경기도교육감은 실제 선거에서는 7.2%의 득표율로 후보 7명 가운데 꼴찌를 했던 정종희 후보가 26.6%의 득표율로 1위를 했다. 송유현(20) 경기도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은 “청소년들이 제일 고민하는 진로·진학 교육에 대한 정종희 후보의 공약이 호응을 얻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당선자와 접전을 벌였던 조전혁 후보는 정작 청소년 투표에서는 4.9%의 득표율로 꼴찌를 겨우 면했다.   

'세월호 10대'가 뽑은 교육감·시도지사는? (한겨레)
  


시도지사 투표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은 어른들보다 더 강하게 세월호 참사를 심판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새누리당 후보가 3개 지역에서 모두 야당에 1위를 내주었기 때문입니다. 모의투표에 참가한 고등학교 3학년인 유가현(18) 양은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면서 저기에 내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를 너무 못했고, 이후에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서 여당은 찍지 않았다”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반면 새누리당은 6.4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교육감 직선제 폐지를 위해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습니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지방자치발전위원회도 교육감 직선제 폐지 보고서를 의결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교육감으로 진보적 인사가 대거 발탁된 데에는 세월호 참사의 충격이 작용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교육 환경의 변화가 시급하다는 국민의 열망이 분출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오늘 《한겨레》는 사설에서 "세월호의 비극을 겪고 나서, 이제는 우리 아이들을 무한경쟁의 쳇바퀴 안에서 질식시키지 않겠다고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무한경쟁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탐욕을 충족시키려는 이기적 인간을 키워냈고, 그런 사회에서는 원칙과 기본을 지키는 최소한의 공동체적 가치도 자리를 잡을 수 없다는 걸 부모들이 깨닫게 되었다"고 논합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내정한 김명수 한국교원대 명예교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시대적 요구에 어울리는 인물이 전혀 아닙니다. 진보교육감을 배출한 전교조를 극도로 적대시하며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당연하다고 했고, 전교조를 막기 위한 이념투쟁을 공공연하게 주장할 뿐 아니라 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선행학습금지법에 대해 개인 기본권 침해라며 반대할 정도로 보수적인 인물입니다. 무엇보다 김 내정자는 친일·독재 미화 기술로 비판받은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하며 "교사와 한국 사학계, 역사교과서 검정을 담당하는 국사편찬위원회까지 이념적으로 좌편향되어 있다"며 "국정화도 검토해야 한다. 역사교육은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이념투쟁도 해야 한다"고 표명했던 사람입니다.
 

교과서를 바꾼다고 매국노가 애국자 되나?

진보교육감들은 지난달 19일 공동공약으로 "친일독재를 미화한 교학사 교과서를 반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뜻을 분명히했습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의 저자 김용택 선생님은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나라를 사랑했다는 이유로 자자손손 가난과 탄압의 대상이 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지는 참으로 이상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시비를 가리려 하면 좌빨이나 종북으로 매도당하고 승진과 출세를 포기해야 하는 나라. 교육과정 정상화를 입버릇처럼 말하는 교과부가 앞장서서 교육과정을 파괴하는 나라.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등 어느것 하나 기본적인 상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이런 모순의 근원이 박정희 정권에 있다면 틀린 말일까? 케이비에스(KBS)는 백선엽·이승만 다큐 등을 통해 박정희 미화에 나섰고, 보수단체가 친일·독재자의 동상을 건립하는 일이 일어나는 등, 사회 전반에서 거짓 영웅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이명박 정부부터 시작된 역사 우향우 행보에 화답이라도 하듯 교과부는 2013년부터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자유민주주의’로 바꾸고 독재와 민주화 관련 주요 내용을 삭제한다고 했다가 관련 단체와 여론의 반대에 부닥쳤다. 이에 국사편찬위원회는 집필기준에는 넣지 않았지만 4·3항쟁, 4·19혁명, 5·16군사정변, 5·18민주화운동, 6월항쟁 등과 친일 청산 과정을 충실히 기술하라는 고육책을 내놓기도 했다. 얼마 전 뉴라이트 인사들이 이끄는 한국현대사학회가 집필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실의 본심사를 처음으로 통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과서를 바꾼들 매국노가 애국자가 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바보로 아는지 금방 탄로 날 거짓말,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 탓에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촛불집회를 보고 반성한다던 대통령.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 자랑 삼아 자기 입으로 말한 비비케이(BBK)조차 부인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4대강 사업을 환경을 살리는 일이라고 거짓말하고,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한다면서도 줄곧 거짓말을 일삼았다. 정권 말기에는 변모한 사회경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한미에프티에이(FTA)가 경제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길이라고만 강변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우리 사회에서 교사들은 지난 세월, 씻을 수 없는 상흔을 간직하고 있다. 교육의 중립성을 말하면서 반공궐기대회에 학생들을 동원하기도 하고,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제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교사이기 때문에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당하고,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조차 행사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취급받으며 살았다.

교사는 교과서를 금과옥조로 생각하고 가르치기만 하면 되는 존재일까? 그렇지 않다. 교사는 자신의 전공 지식만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학이나 영어교사는 정치가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 역사의식이 무엇인지 몰라도 상관없는 존재가 아니다. 교사이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에 대한 예리한 감각과 올곧은 세계관을 갖추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중요성에 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주권의식에 대한 철학과 소신도 필요하다. 때에 따라서는 정당의 역사며 권력과 폭력을 구별하는 지혜도 일깨워줘야 한다.

경제 사정이 나빠질 때면 으레 ‘다른 건 몰라도 박정희가 경제를 살린 건 사실 아닌가?’ 하며 과거로 회귀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박정희 시절에 연평균 8.5퍼센트의 경제성장과 국민총생산이 4.5배로 커졌으며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에서 791달러로 거의 10배 늘었고 수출도 400만 달러에서 210억 달러로 늘었다는 자료를 들먹인다.

그러나 박정희 시절에 연평균 물가지수가 16.5퍼센트였다는 건 알고 있을까? 18년간 수출이 연간 638억 달러에 수입 871억 달러로 무역적자가 233억 달러였다. 이것이 박정희 경제건설 신화의 실체다. 박정희 정권 시절, 농민의 50퍼센트(670만 명)가 농촌을 떠나 도시 근로자가 됐다. 도시의 산업 근로자 확보를 위해 농촌을 황폐화시킨 주범이 누구였는가? 농민이 잘살았다면 왜 농촌을 떠났겠는가? 박정희는 수출을 위해 저임금 정책이 필요했고 저임금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친 게 아니던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의 토대를 박정희가 닦았다. 독재 권력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보겠다며 재벌과 불법 공생관계를 형성한 것이 정경유착이며, 통화증발과 관치금융으로 특정 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았다. 경제성장 신화를 위해 일반 중소기업이 자생력을 상실하고 재벌에 종속되게 만들었으며, 도시는 비대해지고 농촌은 피폐해지는 지역 간 격차마저 양산했다.

독재 권력을 장기간 유지하기 위해 입법부 기능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마비시킨 장본인이 박정희였다. 관치경제로 재벌과 권력층이 경제를 독식하는 바람에 개발독재, 부패공화국이 조성되었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반공주의로 동족을 적으로 규정하여 통일을 물 건너가게 한 것도 모자라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꿈꾼 이가 바로 박정희 아닌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교사는 수능 점수 몇 점 올려주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별하는 안목을 갖추도록 교육해야 한다.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지혜와,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정의감과, 현상과 본질을 분별하는 판단력도 길러줘야 한다.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를 보고 침묵한다면 중립이 아니라 악의 편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주권이 없는 백성은 노예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교사는 지식전달자일 뿐 삶을 안내하는 참스승일 수는 없다. 시행착오는 과거로 충분하다. 교육의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으로 교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억압을 두고 교육의 중립성을 기대할 수 없다. 불의를 보고 분노할 줄 모르는 교사가 어떻게 존경받기를 기대할 것인가?

_《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 중에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청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교사들

스승의날이었던 지난 5월 15일 오전 11시 서울 영등포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김정훈 전국교직원노조 위원장과 소속 조합원 등 1만 5853명의 교사가 실명을 내걸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출처 - 참세상

교사들은 대통령을 향해 "형식적인 사과와 '연출된 위로'가 국민의 억장을 무너뜨렸"다며 "부실한 구난 시스템과 함께 가슴이 내려앉은 국민들은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한 국가 시스템의 총체적 붕괴 앞에 또 다시 넋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러고는 "강압과 통제로 합리적 의심을 봉쇄하는 것으로 국민의 분노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자신의 책무 불이행을 뼈저리게 고백하고 이제라도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철저한 진상규명과 뼈를 깎는 책임규명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무한 권력자가 아니라 무한 책임자입니다. 국민의 생명을 지킬 의지도 능력도 없는 대통령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세월호 참극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는 교사선언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직후 일선 학교에서는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교사들에 대한 색출 작업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앞서 교육부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실명으로 글을 올려 대통령 하야를 주장했던 교사들에 대해 <위법한 교사선언 관련자에 대한 조치사항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내 "교사 선언에 참여한 교원을 확인하고 징계처분, 형사고발 등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해 달라"고 요청한 바가 있었습니다.  

출처 - News1

교육부는 지난 6일 학교에서 채택한 교과서의 재심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준을 현재 학교운영위 '절반 동의'에서 '3분의 2 찬성'으로 높인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학교장의 목소리가 더 세지게 되어 학부모, 학생, 교원 등 교육주체의 자율성이 제한될 여지가 다분합니다.

이런 때에 6.4 지방선거의 진보 교육감 당선자 13명 중 10명이 ‘전교조의 법외노조’ 여부를 가릴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잇따라 재판부에 탄원서를 냈다고 합니다.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될 시 학교 현장에서 겪을 혼란과 교육청의 행정력 낭비를 고려해달라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13명의 진보 교육감과 역사적 퇴행을 일삼는 박근혜 정부 및 새누리당 사이에 벌어질 역사전쟁의 귀추가 주목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대통령 선거 3일 전, 한밤의 경찰 수사 결과 발표

2012년 12월 16일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초박빙의 대선을 치르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경찰이 국가정보원 직원의 댓글 사건에 대한 긴급 중간 수사 결과 발표를 양당 후보의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경에 느닷없이 진행하여 많은 국민을 어리둥절하게 했던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2012년 12월 16일은 대통령 선거를 사흘 앞둔 중요한 시점이었습니다. 토론에서 박 후보는 "국정원 여직원이 댓글을 달았는지 증거도 없는 걸로 나왔다. 여성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고 사과도 하지 않는다"며 문 후보를 쏘아붙였습니다. 이때 문 후보는 "그 사건은 수사 중인 사건이고, 지금 발언은 수사에 개입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출처-민중의소리

그런데 TV 토론회가 끝난 직후 한밤에 서울 수서경찰서가 긴급 브리핑을 열어 "국정원 직원 김 씨의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 대선후보 관련 댓글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가 박 후보의 토론회 발언 내용을 뒷받침하는 셈이 된 것이죠. 예측을 불허하는 혼전 상황에서 경찰의 이례적인 심야 발표 배경을 놓고 야권은 의구심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2013년 12월 기준으로 국군사이버사령부 직원들이 대선에 개입하는 글을 올린 것과 국가정보원 심리전단에서 트위터에 수십만 건 이상의 정치·대선 개입 활동을 한 사실이 추후 확인되어 이 사건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각계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퇴진 요구가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리서치뷰'는 "대선 당시 경찰이 국정원 사건의 전모를 제대로 밝혔다면, 박근혜 후보에게 투표한 사람의 8.3%가 마음을 바꿔 문재인 후보를 찍어 승패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분석 결과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에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 여론 조작 사건의 문제점을 잘 정리해놓았으니 다음 자료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국정원의 개그본능


대선을 앞두고 경찰의 깜짝쇼가 인구에 회자하자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국정원도 주말 예능을 시작했습니다. 일요일인 지난 9일 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문제와 관련해 기습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발표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만 던졌을 뿐이니까요. 개그콘서트와 시청률 경쟁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요? 이런 중요한 사과를 아무도 주목하지 못할 일요일 밤에, 그것도 기자들한테만 기습적으로 메일을 보내놓고 넘기려 하다니 어이가 없다 못해 실소를 금할 수 없군요.

출처 - MBN
 

국정원은 '발표문' 첫머리에서 "최근 간첩사건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세간에 물의를 야기하고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진심으로 송구스럽다"고 밝힌 뒤 곧바로 해명을 늘어놓았다. 국정원은 "재판 진행과정에서 증거를 보강하기 위해 3건의 문서를 중국 내 협조자로부터 입수해 검찰에 제출했다"며 "하지만 현재 이 문서들의 위조여부가 문제가 되고 있어 저희 국정원으로서도 매우 당혹스럽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아무개씨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이다.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정말로 죄송한 마음이 있다면 한밤중에 꼼수를 부릴 일이 아니라 책임자인 국정원장 혹은 그 상급자인 대통령이  국민 앞에 직접 나서서 진심으로 사과해야 마땅합니다. 사과란 진심과 예의를 갖춰서 해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지요. 국정원의 사과는 꼬리자르기식으로 억지로 꺼낸 비겁한 사과로 보입니다. 여론이 나빠짐을 느껴서일까요, 오로지 종북 타령만 하던 보수 신문과 검찰도 비겁한 급선회에 동참했습니다.

대통령이 "증거자료 위조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한마디 하자 검찰은 전격적으로 국정원을 압수 수색을 했고, 보수 신문들은 남재준 국정원장 사퇴와 사태의 철저 규명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애초 대통령의 유감 표명은 사태 해결을 위해서가 아닌 6.4 지방 선거용 말치레라는 관측이 일반적입니다.

출처 - 노컷뉴스
 

향후 꼬리자르기 위험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국정원이 겉으로 드러나 있는 조직이 아니며, 현재 드러난 것만 알고 있을 뿐 사건의 실체와 배후가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다"며 "국정원이 책임지는 쪽으로 꼬리를 잘라내고, 남재준 국정원장이 정치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정도로 마무리하려 할지 모르나 이렇게 되면 배후도 밝히지 못할 뿐 아니라 수사책임자인 검찰에 대한 사법처리도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이 같은 움직임을 두고 "특검 명분을 없애고 선거 앞두고 조기 봉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야당이 공세를 펴기도 어렵게 돼 지방선거 정국이 여당에 유리하게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며 "정치적으로 과감한 선택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사건 배후와 관련해 박 변호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점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색깔론 공세를 펴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차기 대선 후보에 대한 싹을 자르기 위해 무리하게 하다가 덤터기 쓴 것이다. 검찰의 이런 기세라면 1~2주 안에 처벌대상자와 구속자까지 다 나오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주말 예능식 사과, 박근혜 정부의 정책인가?

그런데 이런 상황,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거의 정확히 1년 전에 이런 주말 예능식 사과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국가 공공기관과 권력자의 잘못을 한 개인에게 떠넘겨 꼬리자르기 하는 대처법은 박근혜 정권의 전매특허인가 봅니다. 세계 외교사에 길이 남을 수치인 윤창중 성희롱 사건에 대한 사과도 이와 똑같았으니까요.

출처 - 한겨레21

미국을 순방한 박근혜 대통령을 수행하던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이 한국대사관에서 자신의 수행으로 배치한 여성 인턴을 호텔 바와 자신의 호텔 방에서 성추행했다는 보도로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이 엊그제 같습니다. 정치권 안팎으로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박 대통령을 포함한 청와대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거세지자 결국 비서실장이 대신해 대국민 사과를 하는 데 이르렀지요. 

전날까지만 해도 "사과 계획은 없다"고 선을 그어오던 청와대가 주말 오전에 갑자기 사과 입장을 밝힌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다음날 일간신문들이 나오지 않는 토요일에 사전 공지도 없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 건 유례를 찾기 쉽지 않다. 이에 이날 오후 2시에 예정돼 있던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 있을 수 있는 '인사참사'에 대한 논란을 사전봉쇄하기 위한 포석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인사 책임자인 대통령은 뒤로 빠진 채 비서실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청와대 대변인이 주말에 기습적으로 대독했지요. 추후 가시적인 책임자도 후속조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진심이 아니라 뒤로 머리를 굴리는 사과, 예의가 아닌 꼼수에 불과한 참으로 나쁜 사과의 전형이었습니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데, 잇따른 인사 실패의 결과가 1년 뒤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까지 이어진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에 대해 많은 국민이 "차라리 사과를 하지 말든가"라고 분노하며 한때 박근혜 정부의 국정지지율이 41퍼센트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이 뽑아준 대표자가 국민을 우습게 보니 사과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소비자 우롱하는 기업의 꼼수 사과도 여전

정치권의 하는 듯 마는 듯한 비겁한 사과 행태가 사업계까지 퍼져나간 걸까요? 국내 최대 소셜커머스업체인 티켓몬스터는 지난 3월 5일 경찰로부터 3년 전인 2011년 해킹으로 113만 명의 회원 정보가 유출된 사실을 통보받았지만, 이를 주말인 7일 저녁에야 언론에 발표했습니다. 직장인들이 다 퇴근하고 주말을 즐기기 바쁜 시간에 은근슬쩍 사과해 진정성에 의구심이 듭니다.


출처 – 티켓몬스터 홈페이지

더군다나 티몬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제대로 공개하지도 않았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건 광고뿐입니다. 별도의 팝업으로 사과문을 띄우기는커녕 한참 스크롤을 내려야 보이는 홈페이지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2011년 개인정보 유출 확인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놓았을 뿐이었습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이거늘, 국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할 대통령, 국정원, 검찰, 여당, 보수언론이 이렇게 비겁한 작태를 보이는데 일개 기업이라고 다르겠습니까? 그러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들이 한결같이 휠체어 신공을 선보이며 집행유예 코스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큰 기금을 출연하여 재단을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기는 술책에 국민이 하루 이틀 당한 것도 아니지요.

박근혜 정부 내내 각계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될 텐데 비겁한 주체들이 앞으로 어떠한 예능감으로 무장하여 국민에게 큰 웃음을 줄지 자못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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