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청의 최고 기온에 관한 기록을 또 한 번 경신하던 여름 폭염 속에서 제73주년 광복절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보다 하루 앞선 8월 14일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됐습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북한과 함께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해방이 되면 고국에 묻어달라고 했던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시사위크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광복절 이후 1년간 여성 독립운동가 202분을 찾아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인 강주룡 지사와 고차동, 김계석 김옥련, 부덕량, 부춘화 등 제주에서 시작된 해녀 항일운동을 일으킨 해녀들을 호명했습니다. 이번에 공식 인정된 배화여학교 학생 6명 김경화, 박양순, 성혜자, 안희경, 안옥자, 소은명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광복을 위한 모든 노력에 반드시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받게 하겠다고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다시 한 번 약속했습니다. 동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잇따라 만나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단순히 외교만의 문제가 아니며 세계 인권과 평화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출처 - 국가보훈처


이런 문재인 대통령의 행보와는 달리 박근혜 정권 시절 양승태 대법원장은 재판 거래에 나섰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더 큰 비판을 받았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은 심지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과 강제 징용 관련 소송을 두고 외교부와 거래를 한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이후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에 나섰는데, 당시 양승태의 법원행정처는 위안부 합의 일주일 만에 5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가며 관여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 겁니다. 이 시나리오는 모두 재판이 시작되기 전 박근혜 정부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성됐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첫 번째 시나리오부터 네 번째 시나리오는 한국 법원에 재판권이 없다는 결론을 정해놓고 소송 자체가 성립하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일본 재판부인지 한국 재판부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유일하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손을 들어주는 마지막 시나리오마저 일본의 강력 반발과 박근혜 정부 기조와 다른 판단으로 갈등이 우려된다며 문건 말미에는 한국 법원에 재판권 자체가 없다는 첫 번째 시나리오와 같은 결론으로 회귀해버립니다. 이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소송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단 한 번도 심리가 열리지 않았죠. 그러는 사이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절반 이상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전범기업 상대 소송에 박근혜의 비서실장이었던 김기춘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기 때문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장이었던 차한성 대법관이 2013년 말 김기춘과 만나 재판 진행 상황을 논의하고 청와대의 요구사항을 전달했다는 관련자 진술과 회동 기록 등이 확보됐습니다. 이 내용은 최근 외교부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문건들에서 확인됐다고 합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대법원은 2012년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책임을 인정해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는데 2013년 해당 전범기업들의 재상고로 사건이 대법원에 다시 접수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김기춘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 소송의 최종 결론을 최대한 미루거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판결을 뒤집으라는 요구를 대법원에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실제로 대법원은 5년 동안 결론을 미루다가 최근에서야 전원합의체에 회부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실 때문에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이 사법농단에 직접 관여한 게 아닌가 하는 의혹 또한 커지고 있죠. 

 

출처 - 뉴시스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와 강제 징용 피해를 거래 품목으로 삼아 청와대, 외교부, 사법부가 매국적인 장사를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로 미루어볼 때 사법농단의 몸통은 양승태 대법원장이며 그 재판 거래의 상대는 박근혜의 청와대였다는 점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그 누구보다 국가가 나서서 지켜줘야 할 위안부 피해자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마저 정부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버림패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야말로 충격적입니다. 그러므로 각계각층의 사법농단 청산 요구는 사법부를 다시 세우는 일일뿐만 아니라 전쟁 범죄 후속 대처와 세계 보편적인 인권을 바르게 다시 세우는 일과도 맞닿아 있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출처 -경향신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은 첫 일본군 위안부 기림의 날을 맞아 세계연대집회를 개최했고 광복절인 수요일에는 제1348차 정기 수요 시위도 열렸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로 사람들이 다시 상기하게 된 실제 모델인 이용수 할머니 등도 참석했습니다. 시위 참석자들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범죄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과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이행을 통한 정의 실현을 강력히 요구했습니다. 또한 평화비 건립 방해 행위 중단과 아직도 버티고 있는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등도 요구했습니다. 36도가 넘는 뜨거운 날씨보다 더 맹렬했던 사람들의 연대가 안타깝게 돌아가신 피해자 할머니들께 닿지 않았을까요?

 

출처 - 뉴스원

 

부산 지역 시민단체가 사법농단 사태와 관련하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는 지난 20일 부산지방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의 진실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적폐 판사들을 해임하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철저한 수사와 사법 적폐세력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에서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출처 - 뉴시스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정론관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과 양승태 사법농단 시국회의,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모임이 기자회견을 열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특별법에 대한 심사와 논의를 조속해 진행하라고 촉구했습니다.

 

'재판거래·법관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가 헌법재판소의 내부 기밀을 파견 법관을 통해 몰래 빼돌린 단서를 포착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에서 헌법재판소로 파견을 나간 최모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당시 헌재 내부 동향 등을 대법원으로 빼돌린 사실이 발견된 것이죠. 검찰은 지난 20일 강제 수사에 착수했는데요, 빼돌린 기밀을 통해 법원이 헌재를 적극 견제해왔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최근 양승태 사법부가 재판거래를 시도한 단서들이 드러나면서 양 전 대법원장 등 대법관들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지 관심이 모이고 있죠. 법조계는 검찰이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물증과 진술을 다수 확보한 만큼, 이들 대법관에 대한 조사를 곧 진행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극에 달했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KTX 근로자 복직소송, 쌍용차 해고소송 등 사회적 관심이 큰 재판을 사법부가 정치권력의 시녀가 되어 제대로 심리하지 않은 사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최근 드러난 사법부의 사조직화도 치명적입니다. 과연 어떻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사법개혁은 국민의 요구입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을 되찾는 길밖에 없습니다. 인사권, 운영권을 독립시켜야 함은 물론 권한에 대한 책임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사법농단 세력을 제대로 처벌하고 다시는 헌법 유린, 국기문란 사태로 국민이 희생되지 않도록 온 국민이 사법개혁 과정을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재판거래’ 의혹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던 신임 대법관들이 국민 신뢰를 회복할 만한 개혁을 이뤄내길 기대합니다.

박근혜의 대표적인 적폐였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가 사실상 파기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후속 조처에 대해서는 환영과 우려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외교부가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일본에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도 일본 정부의 출연금 10억 엔을 우리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지난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015년 12.28 합의가 양국 간 공식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고 밝히며 이를 감안해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도 일본 측이 스스로 국제보편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 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출처 - 뉴스1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과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본군 위안부 연구회는 지난 9일 공동입장문을 내고, 외교부의 발표로 박근혜의 위안부 합의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정부의 공식입장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일본 정부 위로금 10억 엔 전액을 정부 예산으로 편성하고 늦게나마 우리나라 정부가 피해자 중심 문제해결을 원칙으로 정한 것도 환영했습니다. 더러운 일본의 10억 엔이 아니라 떳떳한 우리나라의 돈으로 피해자 할머니들을 치유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단체들도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의 명예, 존엄, 인권회복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한 방향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그러면서도 일본 정부가 자발적 조치를 취할 리 만무한데도 외교적 문제를 이유로 일본 정부에 대한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않은 채 우리나라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만을 취하겠다는 태도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원천무효라면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추구하고 범죄 인정과 공식 사죄,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조치 등의 법적 책임 이행을 요구할 국가적 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한일 위안부 합의의 절차적 정당성과 내용상 정당성이 애초부터 없었던 만큼 10억 엔으로 세웠던 화해치유재단의 즉각적 해산도 촉구했습니다. 일본이 건넨 10억 엔은 금융기관 등에 예탁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동결시킬 방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 단체들은 한일 위안부 합의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정부 입장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공식적으로 기획전략팀을 가동해 결과를 냈고 그에 따라 후속조처를 마련하기 시작하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에 진정성을 보였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피해자 입장에서 일을 처리한다면 비록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전 정권이 워낙 큰 잘못을 저질렀던 현실을 감안하여 이번 수습안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해결해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대응이 '외교적 한 수'였다는 풀이도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 간 합의를 인정하면서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불가역적'이라는 것과 '10억 엔' 등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실상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이행할 뜻이 없음을 밝힌 것이죠. 이 때문에 오히려 일본이 외교적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합의를 이행하라고 할 경우 우리는 이행할 생각이 없어 10억 엔을 동결시켰으니 가져가려면 어서 가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그 돈을 돌려받을 경우 일본 쪽에서 합의를 무른 셈이 됩니다. 한편 이 10억 엔의 처리에 대해 양국이 논의하자고 나설 경우 이는 사실상 위안부 합의의 재협상이 되는 셈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문제를 계속 이슈화한다면 일본 입장에서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를 자꾸 세계에 드러내는 꼴이 되지만 우리 정부는 국제사회에 여성과 인권에 대한 문제를 계속 어필하고 이슈화하면서 주도권을 쥘 수 있게 됩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애초에 위안부 합의 이전에 존재했던 고노 담화라는 국가 간 합의를 깨고 무력화한 건 일본 정부와 아베 정권이었습니다. 일본이 12.28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할 처지가 아닙니다. 그래선지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 대해 일본의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한일 위안부 합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원론적 발언을 하는 정도에 그쳤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일본이 진실을 인정하고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진심을 다해 사죄하고 그것을 교훈으로 삼아 국제사회와 노력 하는 것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부가 피해자를 배제한 채 조건과 조건을 주고받아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애초에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처 - 뉴스1


같은 날 종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제1317차 수요시위가 열렸습니다. 26년째 계속되고 있죠. 윤미향 정대협 공동대표는 오늘 우리가 여기에 앉아 있는 것은 순전히 포기할 줄 모르던 생존자 덕분이라며 그들이 주저하지 않았기에 할머니들의 문제가 평화와 역사의 정의를 세우는 문제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는 해결된 게 아닙니다. 굴욕적 합의로 인한 소극적인 방어를 넘어 앞으로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역사와 정의를 세우는 일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습니다. 외교부 장관 직속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가 발표한 결과 보고서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가 2015년 12월 28일 맺은 한일위안부 합의 때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 앞에서 알아서 엎드린 이면 합의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제2의 한일협약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죠.


출처 - 연합뉴스


사실상 이면합의라고 할 수 있는 위안부 합의 당시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 발표 내용 이외에 비공개된 부분에는 일본 쪽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 피해자 관련 단체들을 특정하면서 한국 정부에 만약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이 단체들이 불만을 표할 시 한국 정부가 설득하도록 요청했고, 박근혜 정부는 자신들이 알아서 위안부 관련 단체들을 설득하도록 노력하겠다며 일본의 요청을 그대로 수용한 사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은 유엔을 비롯해 미국에서도 정식 명칭으로 쓰인 '일본군 성노예(sexual slavery)'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 것을 우리나라에 요구했는데, 박근혜 정부는 우리의 공식명칭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뿐이라며 일본군의 만행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는 명칭의 표현에 가해자인 일본이 간섭할 여지를 스스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일본의 해외 정책 중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녀상과 기림비에 관해서도 이면합의가 존재했습니다. 일본은 해외에 위안부 관련 소녀상과 기림비를 설치하는 것을 한국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으려 했고, 박근혜 정부는 지원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이면합의에 넣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소녀상이나 기림비는 일부 민간의 활동일 뿐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이를 토대로 외교전을 펼치려는 일본의 속셈을 아무런 비판 없이 들어준 겁니다.


게다가 일본이 주한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을 어떻게 치울 것인지 한국 정부의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으라고 하자 박근혜 정부는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이 비공개 부분에 적시됐습니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소녀상은 민간단체 주도로 설치된 것이라 정부가 관여해 철거하기 어렵다는 말을 방패로 삼아왔는데, 이면합의를 보면 이조차도 일본보다는 대한민국 국민을 속이는 말이 아니었나 싶어 의미가 크게 퇴색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박근혜의 위안부 합의의 가장 큰 문제였던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는 문구에서 불가역적이란 표현도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말을 꺼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은 초기에 최종적 해결을 주장했는데 한국이 불가역적 사죄를 언급하자 되레 불가역적 해결을 함께 요구한 겁니다. 우리 외교부에서는 일본 총리 명의의 공식적인 불가역적 사죄가 있어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는 의미로 이 말을 꺼냈지만, 일본은 이를 여우처럼 뺏어 먹었습니다. 

 

일본 외교부에 말려 들어간 우리나라 외교부의 무능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 표현의 문제를 인지한 외교부가 그렇다면 아예 이 표현을 삭제할 필요가 있다고 박근혜 청와대에 검토 의견을 전달했으나 박근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모든 요구와 표현이 일본이 원하는 대로 나오게 한 장본인이 바로 박근혜입니다. 무능과 사악함이 만나 최악의 외교 참사를 빚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2015년은 1965년 박정희가 굴욕적인 한일협정을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는 어떻게든 한일협정 50주년이 되는 해에 어떻게든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끝내려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의 후광만으로 살아온 사람이니 말입니다. 그 결과는 대를 이은 친일이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12.28 합의가 발표되고 나서 열린 수요집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또 한 번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일본에 또 한 번 돈 받고 팔아먹었단 사실이 두 눈으로 확인됐기 때문이었죠. 그로부터 2년이 지나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들은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의 결과 보고서를 통해 이면합의까지 드러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를 폐기해야 할 근거가 명확해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국민적 자존심이 걸린 일을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무시한 데다 이면합의까지 해주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피해자의 이해와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가 지급한 10억 엔은 되돌려주고 그 돈으로 박근혜가 설립한 화해치유재단도 해체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NHK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건드렸다간 한일 관계가 되돌이킬 수 없는 파국에 이를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니시무라 관방부 부장관은 지난 28일 오전 문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한 데 대해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혀 12.28 합의가 최종적, 불가역적 합의이며 국가 간에 정상적인 협상 과정을 거친 국가 간 합의임을 다시 강조했습니다. 일본 NHK도 "문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을 재차 밝혔다"라면서 "한국 정부가 이번 위안부 합의 검증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새로운 정책을 선보일 것"이라고 보도함과 아울러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한일 관계가 위축될 수 있다"라고 전망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탈권위적이고 파격적인 소통 행보로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검찰, 국가정보원을 비롯해 전방위에서 이뤄진 적폐청산이 긍정 평가를 이끄는 한편 사회복지 정책, 경제 및 일자리 창출이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집권 2년 차를 맞이한 문재인 대통령은 70퍼센트에 육박하는 높은 국정운영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교·안보 정책은 다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남북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에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6차 핵실험을 하는 등 고강도 도발을 멈추지 않아 한반도 위기감이 고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북미 간 기싸움이 고조되면서 '군사적 옵션'이 거론되기도 하는 등 이른바 코리아 패싱 논란도 불거졌습니다.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경제 보복도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형국입니다.

 

지난 이명박근혜 9년의 적폐가 지금과 같은 안보 위기를 낳았습니다. 생각비행이 지난해 마지막 책으로 《부끄러운 이명박근혜 9년》을 펴낸 까닭이기도 합니다. 지난 9년의 적폐를 기록한 책을 들여다보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보입니다.

 

 

 

대한민국의 물길을 막은 이명박의 4대강 사업부터 시작해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박근혜의 패악에 이르기까지 지난 9년간 쌓인 적폐는 파도 파도 끝이 없습니다. 이 때문인지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신년 메시지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면서 국민의 삶을 바꾸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습니다. 국민의 삶의 질 개선을 최우선 국정목표로 삼아 국민 여러분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만들라는 국민의 뜻을 더 굳게 받들겠습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일이 국민 통합과 경제 성장의 더 큰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새해에는 노사정 대화를 비롯한 사회 각 부문의 대화가 꽃을 피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조금씩 양보하고, 짐을 나누면 더불어 잘사는 대한민국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희망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출처 - 교수신문

 

《교수신문》은 전국 1000명의 대학교수를 대상으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파사현정(破邪顯正)'을 2017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꼽았습니다. 이는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뜨려 없애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파사현정은 2012년 새해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선정된 바 있었죠. 박근혜 정부 이후 5년 만에 올해의 사자성어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2017년에 선정된 파사현정에는 '새로운 정부에 개혁을 바란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파사현정을 2017년 사자성어로 추천하면서 "사견과 사도가 정법을 눌렀던 상황에 시민들은 올바름을 구현하고자 촛불을 들었으며, 나라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기반이 마련됐다"며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른 추천인인 최재목 영남대 동양철학과 교수는 "최근 적폐청산의 움직임이 제대로 이뤄져 '파사'에만 머물지 말고 '현정'으로까지 나아갔으면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경향신문

 

이명박근혜 정권이 낳은 외교적 어려움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하는 이때 '파사현정'이란 사자성어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를 위해 뜻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2018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2018년 새해 복 많이 만듭시다!

 

12월 달력에 20일이 빨갛게 표기되어 있어 '어? 무슨 날이지?' 하고 생각한 분들 계실 겁니다. 탄핵 없이 박근혜가 대통령이었다면 원래 대선일은 12월 20일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SNS에서는 박근혜의 차기 대통령으로 김무성이나 반기문이 당선되는 패러디 뉴스를 올린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달랐죠. 국정농단을 좌시하지 않고 우리나라 국민은 촛불을 들고 추운 겨울을 거리에서 싸웠습니다. 그 결과 법치와 민주주의에 의거한 대통령 탄핵이 이뤄졌고, 장미 대선으로 문재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촛불 시민은 독일 에버트 인권상을 받았고 《이코노미스트》지는 2017년 올해의 국가로 프랑스와 함께 대한민국을 선정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국정농단의 여파로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한 시민들이 늘어 우리의 정치 현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주목을 받은 한 해였습니다. 지난해 〈무현: 두 도시 이야기〉에 이어 올해는 좀 더 세련되게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가 다큐 영화 사상 최단 기록으로 100만 관객을 넘어서며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대통령 당선 이전의 문재인 후보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부분이 있었다는 얘기가 나와 관심을 끌기도 했죠.


출처 - JTBC


독특한 다큐 영화도 나왔습니다. 촛불을 가로막고 박근혜를 지키겠다고 튀어나온 일군의 사람들을 보셨을 겁니다. 이른바 '박사모'들로 자칭 태극기 집회라는 걸 주도한 사람들이죠. 이 사람들이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지를 관조하는 영화 〈미스 프레지던트〉도 개봉했습니다. 이 다큐는 청주에 의관을 갖추고 박정희 사진에 절을 하는 한 할아버지 농부와 울산에 살며 박정희에 관한 것에 둘러싸여 사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따라갑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왜 저러는지, 어떤 감성과 생각으로 태극기 집회에 나가는 것인지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쫓아갑니다.

 

정치, 사회 이슈를 다룬 다큐멘터리는 고발하는 성격을 띠기 쉬운데, 〈미스 프레지던트〉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해부하는 데 주력하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일정한 거리 두기를 통해 현상과 인물을 객관적으로 조명하여 관객이 각자 판단하기를 권하는 연출을 택했습니다. 이 때문인지 촛불 시민들에게서는 박사모를 미화하는 영화라고 비판받고, 박사모들에게서는 박사모를 비하하는 영화라고 하여 양쪽에서 비판을 받은 다큐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탄핵 1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때 그 사람들은 무엇이었나를 각자 나름대로 생각해볼 만한 이야깃거리를 주는 영화이니 흥미로운 건 사실입니다.


출처 - 유튜브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적폐인 굴욕적인 12.28 위안부 합의 때문인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영화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바로 〈아이 캔 스피크〉입니다. 2007년 2월 미국 하원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행을 증언한 이용수 할머니의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입니다. 연말 영화제에서 이용수 할머니 역을 맡은 나문희 배우가 연이어 수상하고 있을 정도로 재미와 메시지를 둘 다 잡은 수작이었죠. 이용수 할머니는 올해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청와대에 초청되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포옹을 하기도 해 박근혜의 위안부 합의가 언어도단이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유튜브


하지만 속절없이 흘러가는 시간 앞에 또 한 분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돌아가시기도 했습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외국에 거주한 마지막 한국인 위안부 피해 생존자셨기에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송신도 할머니는 일본에 사는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로는 유일하게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던 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1993년 처음 소송을 제기해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가 확정되기까지 10년간 법정에서 싸웠습니다. "재판에 졌지만 내 마음은 지지 않아!" 하고 외친 송신도 할머니의 이 10년에 걸친 재판은 〈다이빙벨〉의 공동감독이기도 했던 안해룡 감독의 2007년작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다큐 영화로 개봉한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자원봉사자들과 아픔을 딛고 씩씩하게 싸우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돌아가셔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이 밖에도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1987년 6월 항쟁을 영화화한 〈1987〉 등 개봉을 앞둔 실화 영화도 있습니다. 크리스마스 연휴에 어떤 영화를 보셨나요? 2017년이 지나기 전에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를 찾아보며 우리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나 되돌아보시는 건 어떨까요? 2018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에도 제격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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