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 주말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을 맞이하여 열린 평화군축박람회에 다녀왔습니다.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이 행사는 한반도에 당면한 평화 문제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평화를 지향하는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방위산업을 국가전략산업과 수출주력사업으로 육성해왔습니다. 그 결과 세계 2위의 무기 수입국이 되었고, 국방비 지출은 세계 12위에 해당합니다. 지난 25일 정부는 내년 정부 예산에서 복지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였습니다. 분야별 예산을 추계하기 시작한 2005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수치라고 합니다. 반면 2013년 국방예산안은 35.5조 원에 달하며, 매일 972억 원을 국방비로 쓰게 됩니다.
 

이번 평화군축박람회는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군비증강, 전쟁무기 도입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널리 알리고, 제주 해군기지처럼 국가안보에 도움이 되지 않는 국방사업의 진실을 알리는 한편 시민의 안전과 평화에 대한 투자(교육, 주거, 의료 등의 복지예산의 중요성 등)를 촉구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평화를 이야기하자
 
'세계 평화의 날'은 경희대 설립자이자 세계대학총장회의(IAUP) 의장을 지낸 조영식 박사가 1981년 6월 개최된 세계대학총장회 제6차 총회에서 제안한 뒤 유엔에 의해 기념일로 제정되었습니다. 매년 9월 셋째 주 화요일을 '총성 없는 날'로 부르기도 하는데요, 2001년부터 9월 21일을 세계 평화의 날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세계 평화의 날 31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평화군축박람회 현장] 풍선으로 만든 탱크 뒤편으로 평화단체에서 다양한 참여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무기수출 세계 7위 국가라는 목표를 세우고 각종 첨단무기를 과시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을 수시로 벌였습니다. 남북관계는 급속히 단절되었으며 그 결과 연평도 포격사태를 낳았습니다. 평화군축박람회는 군사무기로는 평화를 지킬 수 없고, 무기산업을 키우고 군비를 확장하면 필연적으로 무력충돌로 이어진다는 자명한 현실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교육, 주거, 의료 등 복지를 위한 예산을 희생하면서 적정규모 이상 책정되는 국방예산의 문제점을 알리는 전시물이 많은 시민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3회 평화군축박람회는 우리 사회에 평화에 관한 관심이 왜 중요한지를 알리면서 군축에 공감할 수 있도록 다양한 참여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평화를 주제로 한 토크쇼, 콘서트, 영화상영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마련했습니다.
 

한국은 휴전 상태이므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국방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계시겠지요. 하지만 이번 행사에 참여한 많은 시민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 확대, 남북 여성교류를 위한 인프라 구축, 한미행정협정(SOFA)개정, 방위비 감축과 여성복지 확대, 군사주의 문화를 평화문화로 전환' 같은 의제에 공감을 표했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이들이 현실을 무시하고 당장 모든 군대를 없애자거나 무장을 해제하자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현재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평화에 이르는 길을 다양하게 모색하자고 제안할 뿐입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해 친구가 되면 평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강력한 무기와 핵억지력 등으로 상대를 압박하고 굴복시켜서 얻는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닐 뿐더러 오래가지도 않습니다. 총을 내려놓고 조금씩 군비지출을 줄이고 복지예산을 확대해나가는 방식으로 실질적인 평화를 추구하는 신뢰가 필요한 때입니다. <한반도 평화와 군축을 위한 시민제안전>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리였습니다.


변모하는 세계정세,
과연 군사력이 대안인가?  


과거 국제정치에서 국력을 중요한 요인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주로 '현실주의'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정세는 그동안 많이 변해왔고, 국력만큼 중요한 요인도 많이 생겼습니다. 국제정치에서 현실을 강조하는 이들은 유엔 같은 국제기구가 세계정세를 움직일 만한 힘이 없다고 강조하지만, 사실은 그동안 세계정세의 긍정적 변화를 간과하거나 부정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과거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후진국의 차이는 절대적이었으나 이제는 그 간극이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으로 나라가 파탄 났던 우리나라가 지금 이 정도의 경제력을 갖출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군비증강이 그 요인입니까? 아닙니다. 전 세계 여러 나라와 교역하면서 인적, 경제적, 문화적 역량을 키웠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그랬듯이 우리와 같은 역량을 갖춘 나라가 앞으로 많이 생겨날 겁니다.

과거 강대국은 세계의 주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렸던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이룬 국력으로 지금도 세계 패권국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입니다. 그런데 미국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 교수는 미국을 '불량국가'로 규정합니다. 미국이 세계 유수의 지역분쟁을 유발했으며, 지하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명분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키는 깡패국가이기 때문이지요.

시민 한 사람 사람은 도덕적일지 모르지만, 개인이 모인 집단으로서의 사회는 비도덕적이기 쉽고, 깡패국가나 불량국가가 되기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지나친 국방력 그 자체가 전쟁의 도화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에 포진해 있는 미군, 미국의 경제의 한 축이 된 군산복합체, 국가안보사업에 집중되는 최첨단 기술 등은 사실상 미국경제를 떠받치는 토대입니다. 당연히 엄청난 유지비가 듭니다. 이 때문에 군비증강에 열을 올리는 미국은 시시때때로 전쟁을 일으켜 무기 재고를 소진하고, 지하자원을 획득하거나 전후 복구를 떠맡으면서 국가경제를 쇄신해왔습니다.

이렇게 국력 강화에 힘을 쏟는 미국조차 최근 국제정치에서는 영향력을 잃고 있습니다. G3, G7, G8, G20... 이런 국제적 변화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게 무엇입니까? 세계정세가 단극화 체제에서 다극화 체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아닌가요? 일부 깡패국가를 제외하면 전쟁보다 세계 평화를 유지하는 편이 각국의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세계 정상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대한민국은 전 세계 국가와 연대를 공고히 하고 인적, 물적, 문화적 교류를 활발히 하면서 국제 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한민국에 도둑, 강도, 깡패가 있다고 전 국민이 무장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당하는 쪽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위해를 가하는 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신다면, 비록 지금 국제기구의 힘이 약하다고 하나 그 실효성을 키우고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막연한 이상론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대한민국이 깡패국가를 이겨낼 만한 군사력을 갖추는 일이 오히려 더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과거 대한민국 안보 이데올로기의 중심은 북한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북한을 통일의 대상이 아닌 적국으로 규정하고 비정상적인 냉전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면서 전쟁 위협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엄청난 예산을 국방비로 쏟아왔습니다. 하지만 국가안보 논리는 필요 이상으로 남북의 군사적 대립을 조장했고, 때때로 무력 충돌을 낳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화와 타협이 아닌 무력으로 평화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군사력 증강에 투입하는 예산을 복지와 다른 측면으로 환원한다면 우리의 후대에겐 지금과 다른 세상을 물려줄 수 있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해군기지로는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최근 센가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싼 중·일 간 영토분쟁이 미·중 간 신경전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지난달부터 미·일 양국은 괌 일대에서 합동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는데요, 양국 군이 합동으로 도서 상륙 훈련을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합동 군사훈련이 일본과 중국 간 영토갈등을 빚고 있는 센카쿠열도를 겨냥한 것으로 보고 이를 기사화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동북아 정세를 가만히 살펴보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대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한·미·일 삼국의 군사동맹 강화 시도나 신냉전 구도를 연출하려는 미국의 전략적 움직임이 활기를 띠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이 속으로 쾌재를 부를지 모르겠습니다. 그간 해군은 "제주남방해역은 한·중·일의 울타리 없는 앞마당과 같은 지역으로 보호가 절박하다. 주변국들은 항공모함, 잠수함 건조 등 군비경쟁을 가속화하고 우리의 해양영토 넘보기를 노골화하는 등 우리의 각별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며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주장해왔으니까요. 하지만 그 이면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해군의 논리가 얼마나 철저하게 미국의 해양패권전략을 위한 것인지가 드러납니다.

이번 평화군축박람회 행사에서 제주 해군기지 문제의 실체를 알리는 전시물이 많은 시민의 호응을 받았습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점철된 해군기지로는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킬 수 없으며 동북아 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아래 자료를 보시죠.

제주 해군기지가 미국의 이익을 위해 사용된다는 점을 증명하는 자료는 또 있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은 제주 해군기지가 제주의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을 해왔는데요, 과연 믿을 만한 이야기일까요? 아래 자료를 보시죠.

제주 해군기지는 지역경제를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제주도민을 속이고 이중계약서까지 써가면서 추진했던 사업이었으나 사실상 해군기지 건설사업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항만 내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 입출항이 불가능하다고 해군조차 설계 오류를 인정했지요. 그 밖에 절차상 많은 문제가 발생하자 국회는 2011년 12월 말에 2012년 해군기지 예산을 대폭 삭감하여 정부의 일방적 추진에 급제동을 걸었습니다. 예결특위에서 여야 합의로 삭감된 새해 예산안이 한나라당 단독으로 처리된 본회의에서 그대로 통과된 점을 고려하면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정부가 해군기지 건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데 거부감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국가안보를 위한 해군기지라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는 애초부터 그런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거짓과 은폐를 조장하여 강정마을 주민을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게 함으로써 마을 공동체를 분열시켰습니다. 제주 해군기지의 진행과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볼까요?

1. 2007년 4월 26일에 강정마을 전 회장 윤태정 씨가 마을 운영위원회를 소집하고 불과 87명 참석한 가운데 만장일치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의하고 다음 날 유치 신청했습니다. 향약에서 정한 공고일을 위반했을 뿐 아니라 중요한 내용을 결정하는 일은 수시로 방송해서 마을주민 전체에게 알려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고 공고 내용조차 불명확했습니다.

2. 제주도지사는 2차례 여론조사를 하고서 주민 대다수가 찬성한다고 2007년 5월 14일 강정동에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여론조사는 용역 발주, 설문 내용, 설문 대상 선정 등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KBS <추적60분>에도 이런 내용이 잘 나와 있습니다.

3. 해군기지 문제가 불거지자 강정마을 주민은 유치 찬반을 마을 전체 투표로 결정하기로 합니다. 2007년 8월 20일 주민투표 결과 94퍼센트의 주민이 해군기지를 반대했습니다. 이것이 강정주민의 뜻입니다.

4. 2009년 4월에 해군 측이 환경영향평가를 졸속 시행했음이 드러났습니다. 연산호 현황조사 미비와 보존 및 저감대책 부재, 해양 환경의 영향 예측 검토 미흡, 공유수면 매립 및 부유사로 인한 저감대책 부재, 공동생태계조사결과 반영 미흡 등이 지적되었습니다. 제주도는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지질공원 인증 등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을 달성한 전 세계적으로 유일한 곳입니다.

5. 2009년 12월 17일에 제주도의회는 <강정해안에 대한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안>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 환경영향평가서 협의내용 변경안> 2건을 날치기로 통과시킵니다.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사업을 추진하려고 한나라당이 꼼수를 부린 것입니다. 기명전자투표가 아닌 거수표결 실시도 문제였고, <절대보전지역 변경동의안>의 경우, 재적의원 27명 중 18명이 찬성했는데 찬성 수가 적어 일사부재의(一事不再議) 원칙을 위배하고 재투표한 결과입니다.

6. 2010년 12월에 제주해군기지 건설 예산 포함 2011년도 예산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11년 2월 16일에 해군기지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천혜의 자연을 훼손하면서 건설 중인 해군기지를 대한민국 해군은 여전히 민군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속이고 있습니다. 공권력을 남용하여 강정마을 주민, 평화지킴이, 종교인을 위시한 평화지지자들을 탄압하면서 인권유린 또한 서슴지 않습니다.

지난 9월 6일부터 15일까지 제주도에서 세계자연보전총회가 열렸습니다. 9월 18일 《한겨레》신문에 <세계자연보전총회 뭘 남겼나>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번 세계자연보전총회에서 이명박 정부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과 전략으로 채택했다는 점을 부각하여 '녹색성장의 선도국'으로 인정받고 싶어 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와 해군은 모든 힘을 동원하여 제주 강정마을을 고립시키고 해군기지 문제를 덮으려고 과도하게 움직였습니다.

그 결과
환경단체들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세계자연보전연맹과 세계자연보전총회 조직위원회는 이번 총회에서 정부와 자본, 군사주의에 굴복하고, 과학적 근거로 자연 생태계 관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는 세계자연보전총회의 중립적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습니다. 

기사 주요내용

-이번 총회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으로 꼽히는 것은 세계자연보전연맹 집행부가 한국 내 환경 현안에 대해 중립적 입자을 취하지 않고 한국 정부 쪽에 기운 듯한 태로를 보이면서 스스로 위상을 실추시켰다는 점이다.

-정부가 강정마을을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개회식에 참석하러 오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일본 지부 대표의 입국 신청까지 거부할 정도로 국외 환경평화 운동가들에 대한 입국 거부조처를 남발했다는 점도 문제다.

-환경단체들의 연대기구인 한국환경회의는 결의문(자연보전과 경제개발의 지송가능한 전략으로서 녹색성장) 통과 뒤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으로 포장된 원전 확대 정책과 토건 사업이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이름으로 확산될 것을 우려하며, 한국 정부에 의한 환경파괴 사태를 직시하지 않고 결의문이 채택된 것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결의문 발의안 원안에 있던 "한국 녹색성장의 지도국이며, 최초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비전과 전략으로 채택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을 녹색성장의 사례로 고려하고 있음을 인정한다"는 부분은 거의 삭제되고, "한국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 전략과 비전으로 채택했음을 인정한다"는 내용만 살아남았다. 이번 총회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의 녹색성장 정책을 전세계 환경단체들에 홍보하고, 자연환경 부문 세계 환경단체 연합체로부터 '녹색성장의 선도국'으로 공인받으려던 계획은 절반만 성공한 셈이다. 

-해군기지 문제는 총회장 안팎에서 뜨거운 문제로 부각됐다. 강정마을회는 세계자연보전연맹에 총회 부스 설치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총회에 참석하려던 외국 활동가 7명의 입국이 거부됐다. 국방부와 해군은 기자호견 등을 통해 해군기지 문제의 결의안 채택을 저지하려 총력을 기울였다. 이 때문에 오히려 외국의 활동가들이 해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 평화, 통일은 앞으로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할 지향점입니다. 이런 시국에 아름다운 자연을 훼손하면서 무기를 앞세운 평화가 과연 가능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편화군축박람회는 우리에게 많은 화두를 던졌습니다. 평화와 군축을 위해 활동하는 여러 시민단체가 대화하고 협력하는 만남은 앞으로 더 자유 열려야 하며, 평화와 군축을 지향하는 시민의 공감을 더 많이 끌어내야 합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추진한 실리 외교의 결과는 실로 참담했습니다. 대북정책의 실패로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남북 간에 긴장관계를 조성해서 우리 국민이 득 본 게 있습니까? 미국과의 관계는 또 어떻습니까? 한미혈맹을 강조하던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굴욕적인 외교협상도 모자라 끝내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세간의 염려를 무시하고 졸속으로 한미FTA를 통과시켜 애초에 예견된 시나리오대로 움직인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낳았습니다.

이처럼 평화는 안보/평화 같은 이분법적 도식으로 풀 문제가 아닙니다. 평화와 안보는 상호보완적이고 병행적인 관계입니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평화를 증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발점은 군축입니다. 모두가 바라는 평화를 어떻게 이뤄나갈지 앞으로 시민사회와 한국사회가 답을 낼 차례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국익에 필요한 것은 동북아 평화를 위협하는 제주 해군기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정치계의 변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의 뜻을 받드는 정치인을 배출하고, 남북화해를 통해 통일을 지향하는 대통령을 뽑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대한민국이 남북 간 갈등 국면을 넘어 통일의 길을 모색한다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할 수 있고, 국제사회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계기가 되어 국익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클 테니까요. 무력은 결코 평화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없고, 평화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국민이 더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과 같이 생각비행 1주년을 기념하여 열렸던 오동명 선생님 강연회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이날 강연은 〈보도사진과 혁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되었는데요, 사진에 대한 오동명 선생님 자신의 경험을 비롯하여 사진과 연관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카메라를 든 인연

오동명, 오동명 기자, 사랑의 승자, 생각비행, 보도사진과 혁명

오동명 선생님

대학 강연을 그만둔 지 벌써 2년이 되었네요. 그러다 보니 약간은 떨립니다. 제가 유명인이나 대단한 사람들 앞에선 떨지 않습니다만, 젊은 사람들이나 진지한 사람들 앞에선 긴장하는 편이거든요. 오늘 참석한 여러분이 젊고 진지한 분들 같아서 긴장되네요. (웃음)

제가 생각비행과 인연을 맺은 건 《사랑의 승자》를 기획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그 이전에 개인적인 인연이 있긴 했습니다만, 생각비행의 첫 책으로 출간된 책이니《사랑의 승자》부터라고만 말씀드리죠. 어쨌든 생각비행 분들, 매우 진지한 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강연 주제도 매우 진지한 내용을 주셨어요. 〈보도사진과 혁명〉.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보도사진이라는 분야와 혁명을 붙인 이유는 아마도 제가 신문사 기자 출신이라는 딱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하시는 분은 《중앙일보》 이야기를 꼭 하시거든요. 벌써 12년이나 흘렀는데 말이죠. 전 그저 《중앙일보》에서 일어난 일이 창피해서 나온 것뿐인데 많은 분이 아직까지 이야기해주십니다. 고맙고도 부끄러운 일이죠. 이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제가 카메라를 처음 만진 때는 대학교에 들어가서였습니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집안의 반대에 부딪쳐 경제학을 전공하게 됐거든요. 그런데 경제학은 제게 잘 맞지 않았나 봅니다. 공부하기 싫은 차에 마침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때 잡은 카메라가 직업으로 이어졌죠. 사람들이 돈 많이 주는 좋은 직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제일기획, 《국민일보》 《중앙일보》를 거쳤습니다. 공부도 잘 못했던 제가 그런 직장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경기가 좋았기 때문이었겠죠. (웃음)

사진으로 자기계발하기

다게르, 니에프스, 사진, 최초의 사진기, 사진기,다게르타입

다게르와 니에프스(출처: 위키피디아)

요즘은 카메라 다들 하나씩 갖고 계시죠? 제가 기자생활 할 때만 해도 카메라는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다게르(Louis Daguerre)니에프스(Joseph Nicephore)가 공동연구로 시작했다가, 1839년에 다게르가 독자적으로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카메라는 매우 크고 무거운 물건이었습니다. 그랬던 게 롤필름이 나오면서 한층 가벼워져 휴대하기 간편해졌죠. 조금씩 대중화하던 카메라는 최근 10년간 디지털화를 거치는 사이 완전히 대중의 일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이제 누구나 카메라 한 대씩은 가지고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까요.

이렇게 너도나도 가지고 있는 카메라로 이른바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어떨까요? 최근에 제가 피터 드러커(Peter Ferdinand Drucker)라는 사람의 책을 한 권 봤는데요, ‘자기계발’이야말로 미래의 혁명이라고 이야기하더군요. 그 말대로 사람들이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도구는 아주 다양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진’을 통한 자기계발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죠.

여러분 혹시 다들 취미 하나씩 갖고 있는지요? 영국의 유명한 석학인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취미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뭔가 하고자 하는 게 있고, 그 일에 집중하면 주위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이는 곧 자유로워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음악가인 브람스(Johannes Brahms)의 좌우명은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였습니다. 여기서 고독이란 뭔가에 집착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고독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줍니다. 이렇게 어떤 일에 집중한다면, 우리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요?

자, 그렇다면 사진을 취미 삼아 집중해보는 건 어떨까요? 저야말로 사진으로 자기계발을 했던 사람입니다. 앞서 대학교 시절에 카메라를 처음 접했다고 말씀드렸죠? 원래 저는 매우 소극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사진기를 잡게 된 이유도 그런 성격을 바꿔보려는 일환이기도 했죠. 사진을 찍기 위해선 적극적이어야 하니까요. 좋은 사진을 얻으려면 피사체를 향해 좀 더 다가가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하거든요. 그러니 사진은 좋은 소통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로 카메라 활용하기

요즘 같은 불통의 사회에서 어떻게 보면 사진이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선 피사체와의 끊임없는 대화와 관찰이 필요한데요, 그러다 보면 사람이 적극적으로 변하게 됨과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평소보다 침착해질 수 있습니다.

다게르 타입, 라이카, SLR, 일안반사식카메라

1839년 다게르 타입 카메라와 라이카의 M7(출처: 위키피디아)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소통의 도구로 훌륭하게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를 흔히들 잘못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죠. 카메라의 발전, 특히 카메라의 디지털화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셔터 누르기를 남발하고, 사진을 찍기까지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졌습니다. 불과 10년 전 필름을 사용할 때만 해도 이러지는 않았습니다. 필름 값이 아까워서라도 사람들은 피사체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필름 값이 들지 않는 디지털카메라가 보편화하면서 사람들은 무조건 찍기 바쁩니다. 더구나 포토숍 같은 수정·보정 도구의 등장은 사진을 더더욱 성의 없이 찍는 문제를 낳았습니다. 대충 찍은 사진이라도 포토숍을 이용해 보정을 거치면 전혀 다른 사진이 되니 사람들은 한 컷 한 컷 찍는 데 의미를 두지 못하는 것이죠.

프로슈머(Prosum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 소비자는 생산자이기도 하다는 말입니다. 자신이 생산자라는 생각으로 사진을 촬영한다면, 셔터 누르기를 남발하고 성의 없게 촬영해선 안 되겠죠. 요즘은 사진 기자만이 아니라 일반인이 찍은 사진도 얼마든지 보도사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진을 찍는 편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대구 지하철 사건 때 신문에 보도된 사진을 보셨겠지요? 그 사진은 무겁고 사용하기 어려운 DSLR로 촬영한 게 아닙니다. 기자가 촬영한 사진은 더더욱 아니지요. 현장에 있던 어느 학생이 휴대전화기로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연평도 포격사건도 기억하시겠지요? 연평도 포격사건을 다룬 뉴스에서 처음 보도된 사진 또한 일반인이 콤팩트 카메라로 촬영한 겁니다. 이처럼 이제는 언론에서 일방적으로 주는 정보만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현장에 있다면 언론에 제공할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고, 한편으로는 언론을 경계할 수도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훌륭한 보도사진을 찍으려면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느냐는 문제겠지요. 대구 지하철 참사, 연평도 사태를 담은 사진을 봐서 다들 아시겠지만, 일단은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기자들이 보도사신을 찍을 수 있는 이유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현장을 찾아가기 때문입니다. 일반인들도 현장에 있다면 당연히 자신만의 고유한 사진을 담을 수 있습니다. 현장이라고 해서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활하는 영역도 훌륭한 현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예를 들어볼까요? 사람들은 청소하는 분들의 생활을 잘 모릅니다. 대부분 사람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 일어나 일하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청소하시는 분이 콤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갖고 다니면서 자신이 일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담는다면 그것도 훌륭한 보도사진이 될 수 있습니다.

DSLR,콤팩트 카메라,캐논

DSLR이든 콤팩트 카메라든 그 종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출처: 캐논 컨슈머 이미징).


다음으로 사진을 잘 찍으려면 대화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피사체가 사람이라면 대화를 나누고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수록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습니다. 피사체가 사물이라면 어떨까요? 끊임없이 관찰해야겠죠. 금낭화를 예를 들어보죠. 사람들은 금낭화의 대롱을 많이 찍습니다. 여러분도 그 이외의 사진을 본 적이 거의 없을 겁니다. 하지만 금낭화를 잘 관찰한 사람이라면 씨앗을 찍었을 겁니다. 별모양의 금낭화 씨앗은 아주 예쁘거든요.

또 하나, 여러분은 피사체와 관련된 정보를 두루 습득해야 합니다. 제가 예전에 대학에서 강의할 땐 초반에 미술책을 자주 보게 했습니다. 구도, 빛과 같이 미술의 기본적인 요소는 사진에서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미술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한 이후 본격적인 사진수업에 들어갔죠.

마지막으로 보도사진가를 지망하는 분이라면 사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둬야 합니다. 신문을 계속 읽으면서 사회의 변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정보를 습득하고, 사회과학 서적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보도사진가는 뷰파인더를 통해 본 사회를 담기 이전에 제가 앞서 안목을 키워야 합니다. 누가 시켜서 찍는 사람은 보도사진가가 아닙니다. 여러 지식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시선을 담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진정한 보도사진가입니다.

자유롭고 고독하게 사진 찍기

아, 사진을 배우실 때 주의할 점을 빠뜨렸네요. 사진을 처음 찍는 분들이 자주 하는 실수 중 하나가 ‘~따라하기’ 같은 책을 구입하는 겁니다. 제일 좋은 사진책은 말이죠, 카메라 제품설명서입니다. 사실 다른 카메라에 대해 알 필요는 없잖아요. 자기가 소유한 카메라에 어떤 기능이 있고, 그 기능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만 파악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겁니다.

남들 따라 동호회에 들어가지 마세요. 사진을 빨리 배우겠다고 동호회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습니다만, 그런 분들은 대부분 사진기부터 바꿉니다. 주위 사람들이 갖춘 장비에 현혹되기 때문이지요. 서투른 사람이 연장 핑계를 대는 법입니다. 저도 경험해본 바라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냥 사람이 좋고 사진은 겸해서 배우려는 분이시라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제대로 배우려는 분이시라면 삼가기 바랍니다. 차라리 사진 설명서를 제대로 보고 교양과 시각을 형성하는 데 좋은 책을 사보시는 편이 사진 실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생각비행, 생각비행 1주년, 생각비행 1주년 기념 강연, 보도사진과 혁명, 자기계발 혁명

보도사진과 혁명이라는 거창한 주제로 꽤 오래 이야기했습니다만, 혁명이야기는 안 하고 다른 이야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웃음) 사실 저는 혁명이라고 해서 크고 대단한 담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하고 그것이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혁명이겠죠.

여러분 중에 혹시 오선지를 만든 사람이 누군지 아시는 분이 있나요? 아무도 모르시죠. 저도 얼마 전에 알았답니다. 몇백 년 전에 수도사들이 음계와 함께 만들었다고 하는군요. 아쉽게도 오선지를 만든 수도사들의 이름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없었다면, 유명한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는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이름 없는 사람들 덕분에 점점 변했고, 바로 이런 변화가 하나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의 과정이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이름’을 남기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유명한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라는 사람의 묘비명을 아시는 분 있나요?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라고 하는군요. 현대인들은 여러 이유로 망설이는 일이 잦습니다. 그럴 때 망설이지 말고 뛰쳐나오시기 바랍니다. 브람스의 말처럼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살아보는 것도 좋겠죠. 그때 여러분의 도구가 사진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사진으로 고독한 자기계발을 해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 계신 분 모두가 자유로워지셔서 그 힘이 한데 모여 혁명을 이루는 것,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사회로 가는 길이 아닐까요?

참석해주시고 오랜 시간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