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의 피해 상황으로 세계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 유일의 피폭국인 일본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싫겠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습니다. 천재인 대지진에 도쿄전력, 일본 정부의 무능력과 실책이란 인재까지 더해져 발생한 상황이라 보는 이를 더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도움을 받기로 한 이상 모쪼록 일본에 살고 계시는 분들께 더는 큰 피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빕니다.

요즘 각 언론의 헤드라인을 유심히 살펴보신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이번 일본의 대재앙과 관련해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멜트다운 위험 문제 옆에는 꼭 주식시장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자가 수만 명을 헤아리게 될지도 모를 '일본 전후 최대의 위기'라는 이 사태를 다루면서 국제적인 주식시장에 대한 기사와 국내 증시에 관한 내용을 함께 다루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주식시장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뿐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 한 국가가 안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평가하는 경제적 척도로 보이기까지 합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원래부터 주식(증권)은 극단적인 위험으로부터 큰 이익을 취하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만든 것이니까요.


1488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발견하고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개척함으로써 유럽과 동양 사이에 직접 무역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른바 대항해 시대의 서막인데요. 이로써 유럽 사람들은 동양의 금은보화와 진귀한 물자를 배로 싣고 유럽으로 되돌아가 되파는 해상무역으로 막대한 이익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바다'라는 대자연이었습니다. 개척 항로 무역을 통한 이익은 태풍을 비롯한 예상할 수 없는 천재지변을 극복해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해적선의 약탈까지 염두에 둬야 했습니다.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지만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걸어도 안전을 보장하기 힘든 위험천만한 성공률 때문에 사람들은 '고위험 고수익'이라는 극단적 투기성 무역을 위해 주식 형태의 증서를 발행함으로써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증권의 시작이지요.

이런 동서양 해상무역이 나날이 발전하자 1602년 마침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니 세계 증권시장의 역사는 이제 400년이 조금 넘는 셈이군요.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나 현재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의 중심은 미국, 그중에서도 월스트리트라고 할 수 있죠. 250여 년 전 뉴욕 월스트리트를 따라 맨해튼 쪽에 유럽에서 들어오는 수입품을 하역하는 선착장이 있었는데, 물품 대신 송장(invoice)을 근거로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화폐가 없던 시절이라 은으로 만든 막대를 사용해 거래를 시작했는데 이것이 곧 뉴욕 증시의 시작이라고 하는군요. 이 전통에 따라 아직도 뉴욕증시는 주가를 소수점이 아닌 1/8단위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대항해 시대와 마찬가지로 다른 세계끼리의 무역이 주식의 시초가 되었네요.

그리고 1789년 미국 정부는 남북전쟁 비용을 조달하고자 최초로 정부채권을 발행했고 뒤이어 은행·보험사들이 거래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천재지변에 이어서 이번에는 전쟁이라니 주식의 역사에서 위험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듯합니다. 하지만 이런 위험성은 결국 투기로 말미암은 고공비행 끝에 1929년 주가 폭락과 더불어 대공황을 유발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 셈이지만 이때부터 미국에 증권감독원이 생겨 주식시장에 증시 안정을 위한 제대로 된 규정과 감독기관이 등장했습니다.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습니다. 1930년 일제강점기에 '취인소'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우리나라 증권시장은 해방 이후 1956년 현대적인 의미의 증권거래소를 개장했지만, 상장회사도 투자자도 여력이 거의 없던 시절인지라 거래는 미미했습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자본시장 육성에 관한 특별법과 1970년대에 들어서 투자신탁회사가 설립되어 기관투자자의 시대가 시작되었고, 기업공개촉진법의 반강제적인 도입으로 1970년대 말부터 상장기업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국제화 단계에서 삐끗하게 되어 1997년 IMF 사태가 터졌죠. 이를 극복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코스피(KOSPI) 지수가 된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유럽이든 미국이든 일본이든 우리나라든 원인이 무엇이건, 과열 후 폭락 그리고 재조정은 주식시장에서 거치지 않을 수 없는 단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국가 간의 주식시장은 점점 더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이렇듯 역사적으로 주식은 시작부터 위험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습니다. 과연 이번 일본 대지진과 주가 위기가 세계 경제와 주식 역사 속에 어떤 족적을 남기게 될까요? 부디 대재앙을 이용해 폭리를 취하려는 간사한 세력이 나타나지 않기만 바랄 뿐입니다.

2010년 11월 11일. 누군가에게는 G20, 누군가에게는 빼빼로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농업인의 날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차게 일어서 직립하라는 뜻을 담은 지체장애인의 날.

일반적으로 빼빼로데이로 널리 알려진 이날,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강철 같은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던 여성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솔로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_^;;;;;;;;

'철의 여인'이라고 하면 '강한 의지를 품은 여성'에게 붙이는 별명이지만, 여성 국가원수를 비롯해 어떤 권력의 정점에 올라간 여성들을 지칭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인디라 간디

우선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인디라 간디가 있습니다.

이름에 간디가 들어가지만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입니다. 자와할랄 네루라고 하면 《세계사 편력이란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 책은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하다가 여섯 번째로 투옥당했을 때 딸이 서구 편협한 역사관에 갇힐까 염려해 보낸 편지에서 비롯되었죠. 인디라 간디는 아버지에게서 그 편지를 받아보며 역사의식을 키운 《세계사 편력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을 수호했지만, 자국 내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여 6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는 무자비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암살 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도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의 여인이라고 할 만하지요.



낙천적 독립투사 - 골다 메이어

두번째 철의 여인은 인디라 간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입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정치인 중 한 명이며,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에는 수류탄을 속옷에 숨겨 가지고 다니며 국경을 넘는 임무도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성격은 낙천적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살해 당하자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 그 테러 관련자들을 조건없이 모조리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후에 중동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책임 논란이 일며 결국 5년만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스라엘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불관용과 비타협의 시대를 무력으로 돌파한 철의 여인이지요.


가장 널리 알려진 철의 여인 - 마거릿 대처

세 번째 철의 여인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입니다.

과감하게 시장주의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경제 정책은 훗날 경제 호황을 가져온 밑바탕이 되었다고 인정받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영국병을 근본부터 고친 게 아니라 '대처리즘'이라고 이름 붙은 진통제를 놓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 탓으로 노동자들은 진압당했으며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그 시절 대처리즘의 극우성을 통렬히 꼬집었다고 하네요. '철의 여인'이란 별명도 그런 반공주의 때문에 소련에 의해 붙여졌다는 듯.

음, 분명히 이분들 역시 철의 여인들이지만 좀 아쉽군요. 정치란 권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둡고 위압적인 면이 조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밑에서부터 싸워 이겨낸 여성은 없을까요?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미 여성참정권 운동의 어머니 - 수전 앤서니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872년의 11월. 미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에 로체스터의 한 투표소에 여인들이 몰려듭니다. 여성도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항의하는 시위였죠. 시위대의 맨 앞에 많은 여성을 이끌고 온 수전 앤서니가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여성의 몸으로 투표하겠다는 건 명백한 불법행위. 수전은 재판에 회부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수전은 그 벌금의 납부를 거부하고 더더욱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요.

기소된 후 수전은 미국 전역을 돌며 <여성도 사람입니까?>라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이 연설은 영어권의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는군요.

수전은 여성참정권운동 이전에도 금주, 노예제 폐지 등 사회개혁운동 전반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만, 결국 살아생전에는 미합중국 최고재판소로부터 여성투표의 합법성을 거부당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이런 노력은 사후에 결실을 보아 1920년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수정헌법 19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며 '수전 앤서니 수정헌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강철 같은 의지를 품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 대표적인 여성은 없을까요? 골리앗과 싸워 이겨낸 다윗처럼 말입니다.


석유재벌 록펠러와 싸워 이긴 여성 저널리스트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바로 그런 여성이 존재합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여성 저널리스트로서 미국의 진보시대에 유력한 지도자이자 언론인이었죠.

당시 미국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곳은 존 D.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한 회사였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은 동일산업 부문에서 자본의 결합을 축(軸)으로 한 독점적 기업결합. 즉 경쟁자를 없애려고 같은 업종의 기업을 합병하여 독점하는 방식인 '트러스트'와 각종 획책과 로비를 더해 미국 정유업계의 공룡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반독점법이 부활하게 되고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섭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오랜 탐사 끝에 《매클루어 매거진의 연재 기사를 통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비열한 수법들을 낱낱이 폭로합니다. 날 선 비판을 담은 기사는 훗날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합니다.  탐사보도폭로라는 언론의 무기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도 바로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아이다 타벨의 폭로기사를 근거로 소송이 진행되고, 1911년 연방대법원은 석유재벌이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수십 개의 작은 회사로 해체하라고 판결합니다. 루스벨트가 대기업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부활시킨 반독점법이 이제는 독점재벌을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연방정부가 이렇게 각종 트러스트를 규제할 수 있도록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었습니다. 정말 현실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참조 포스트 : 미국의 반(反)독점법에 대해 아시나요?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폭로기사를 정리한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는 《뉴욕 타임스에서 선정한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100개의 보도 가운데 5번째로 꼽혔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워터게이트 사건을 포함해 수없이 많은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보도 중 5번째로 꼽힌 보도를 살아생전에 해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력에 존경으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늦가을,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강철같은 의지와 행동력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낸 철의 여인들의 삶을 되돌아 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_^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어떻게 한 명의 저널리스트가 독점재벌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렸나




분야 : 정치, 사회                      지은이 : 스티브 와인버그 옮긴이 : 신윤주이호은

판형 : 신국판(152*225)                                                쪽수 : 464가격 : 23,000

발행일 : 20101110일                                      ISBN : 978-89-94502-02-1 (03300)


진실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아이다 M. 타벨 vs. 존 D. 록펠러"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Ida Minerva Tarbell, 1857. 11. 5~1944. 1. 6)과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1839. 7. 8~1937. 5. 23)의 대결은 현대판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록펠러는 독점기업 스탠더드 오일을 이끈 재계의 거물로 미국의 석유산업을 대표하는 인물이었으며 타벨은 이런 록펠러의 음모를 파헤친 여성 저널리스트였다.
석유 개척기 시대에 새로운 희망을 품고 사업을 시작한 수많은 석유 생산업자, 정유업자, 운반업자는 모두 록펠러의 희생양이었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스탠더드 오일은 타 기업을 흡수·통합하고, 사세를 확장해 거대한 트러스트를 만든 재벌기업의 전형이었다. 록펠러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화려한 성장 이면에는 뇌물 수수와 협박, 담합, 위법 행위, 폭력적 행동이 숨겨져 있었다. 그 실상을 취재해 거대 독점기업인 스탠더드 오일을 무너뜨린 아이다 타벨의 삶과 기자정신은 부의 파워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부패의 고리를 파헤치는 탐사보도의 역할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한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면 역사는 그대로 반복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판치는 재벌의 문제를 돌아보기 위해서라도 아이다 타벨과 그의 정신을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다 타벨의 삶과 기자정신"


아이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석유 저장 탱크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석유산업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겪었다. 타벨은 석유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영향으로 소규모 석유 생산업자들과 스탠더드 오일의 부당한 경쟁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타벨은 펜실베이니아 주 미드빌에 있는 앨러게니 대학에서 공부한 재원이었다. 그 당시 여성은 대학 교육을 받는 일이 드물었으나 교육의 중요성에 일찍 눈뜬 부모의 영향으로 타벨은 폭넓은 세계를 경험했다. 남북전쟁 이후 뉴욕 주 셔토쿼 호숫가 마을에서 주일학교 교사와 교회 봉사자를 훈련하는 모임으로 시작한 교육운동은 대중의 지적 탐구심을 자극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타벨은 셔토쿼 문학과학 서클의 편집장과 잡지 셔토퀀의 편집기자로 활동하면서 저널리즘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파리로 유학을 떠난 타벨은 체계적인 조사 연구 기법을 배우는 한편 다양한 언론매체에 기사를 기고하면서 저널리스트로서 감각을 익히기 시작했다. 매클루어 매거진의 발행인 새뮤얼 시드니 매클루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인 아이다 타벨을 발탁해 거대 독점재벌인 스탠더드 오일의 상거래 독점 상황을 파헤치는 탐사보도를 연재하게 한다.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1902년부터 19회에 걸쳐 록펠러와 기업의 비리를 통렬하게 파헤친 폭로기사로 말미암아 스탠더드 오일은 1911년 연방 대법원으로부터 기업분할 명령을 받아 해체되기에 이른다. 1904년에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 타벨의 폭로기사는 20세기 탐사보도의 역작이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현대적 탐사보도의 선구자인 타벨의 유년시절부터 석유제왕 록펠러를 파헤치기까지의 인생 여정을 정밀하게 묘사하면서 진실이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지은이

스티브 와인버그
논픽션 작가로 활동하며 지금까지 6권의 저서를 냈고 여러 언론 매체에 활발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계적인 언론 단체인 미국 탐사기자 및 편집인협회IRE, Investigative Reporters and Editors 전직 대표였으며, 9년간 미국 비평가협회 이사로 활동했다. 지금은 미주리 대학교 언론대학원에서에서 탐사보도를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옮긴이

신윤주
한동대학교 국제어문학부를 졸업했다.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한다. 현재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호은
한동대학교 언론정보문화학부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M. Div)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일에 관심을 두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비즈니스 관계 심리학 : 빅 파이브가 있다.


차례

서문

1.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석유와 함께한 어린 시절

2. 존 데이비슨 록펠러
    석유산업의 잠재력을 내다본 열혈 청년

3.
남북전쟁
    성장하는 석유산업

4.
도약
    소명을 찾아서

5.
잃은 것과 얻은 것
    타협이 아닌 저항을 꿈꾸다

6.
활자의 힘
    여성 저널리스트로 향하는 길

7.
타향살이
    문화적 차이에서 깨달은 통찰

8.
매클루어 매거진
    사회 변혁의 씨앗이 되는 잡지의 탄생

9.
나폴레옹
    탐사보도로 되살아난 영웅

10.
증인, 자료, 인터뷰
      펜 끝에서 되살아나는 역사

11.
폭로적 사고방식
      탐사보도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들

12.
괴물
      드러나는 스탠더드 오일의 실체

13.
폭로
      사실을 보도하는 저널리즘의 가치

14.
인격의 문제
      록펠러라는 사람을 향한 의구심

15.
폭로의 여파
      스탠더드 오일을 해체하다

16.
그 이후 그들의 인생
      타벨, 매클루어, 록펠러가 남긴 교훈


자료의 출처
참고문헌
감사의 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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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스티브 와인버그 (생각비행,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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