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역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베트남전쟁 반전 평화시위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를 제외하면 미국 사회가 이렇게 들끓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미국인들이 거리로 나서게 된 배경에는 월가로 대표되는 미국 금융업계의 파행적 행태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있습니다.

과거 엔론사태와 리먼브라더스사태를 돌이켜보면 미국 금융업계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이 맡긴 돈을 말도 안 되는 위험한 돈놀이에 투자하여 낭비했고, 가상의 돈에서 수익을 내는 터무니없는 파생상품으로 사람들을 속여 그 반사이익으로 금융권은 자신의 배를 불렸습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미국 금융산업의 상징인 월가에 좀비가 나타났다. 미국 젊은이들은 미국 뉴욕 월가의 주코티 공원을 점령한 채 3주째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출처: AP)


이 때문에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되었고, 취업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한때 미국 경제의 지지기반이었던 중산층이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려, 지금은 국립공원이나 숲 혹은 산으로 들어가 텐트를 치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세계의 경찰국가요, 경제대국으로 불려 왔던 미국이 어떻게 하여 이런 사태를 맞게 되었을까요? 유럽에서 가장 먼저 국가 파산을 경험한 아이슬란드의 사례를 재고하면서 기업이 도덕적해이에 빠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과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정이 건전했던 아이슬란드가 디폴트를 선언한 이유

아이슬란드는 북극권 바로 남쪽 대서양에 인접한 섬나라로서 천혜의 자연을 자랑하는 나라입니다. 지열을 이용한 발전, 훌륭한 교육시스템과 건강보험제도, 낮은 범죄율로 세계에서 살기좋은 나라로 손꼽히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이슬란드가 뉴스에 자주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2008년 9월 아이슬란드는 국가적 파산을 공표했습니다. 좋은 자연환경과 교육시스템을 갖춘 나라, 에너지나 식량이 부족하지 않은 풍요로운 나라가 파산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2000년에 들어 아이슬란드는 환경과 경제에 대한 규제를 완화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규제를 완화하면서 아이슬란드는 규모가 큰 3개 은행을 민영화했습니다. 이 은행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이었습니다. 3개 은행은 5년간 1200억 달러를 대출했다고 하는데요, 이는 아이슬란드 경제규모의 10배 수준이라고 합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아이슬란드 정부는 가장 큰 규모의 은행 3개를 민영화했다. 민영화된 은행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해외에서 돈을 끌어오는 것이었다. (출처: 영화 인사이드잡)


거액을 빌려 온 은행들은 운영을 아주 방만하게 했습니다. 별다른 규제 없이 원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한 예로 어떤 이는 은행에서 거액을 빌려 런던에 상점을 구입하고, 개인 전용 제트기와 요트를 구입했으며, 맨해튼에 있는 고급 펜트하우스를 구입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일부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뿌린 돈은 사실상 아이슬란드 국민의 돈이었습니다. 이런 문제 외에도 은행은 머니마켓펀드(MMF)라는 상품을 만들어 예금자들에게 투자를 종용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예금자보호 같은 장치는 없었습니다. 높은 수익만 강조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은 부산저축은행 사태와도 비슷합니다. 금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 높은 수익을 보장하겠다는 그럴듯한 말로 꼬드겨 예금보호가 되지 않은 상품에 돈을 넣으라고 권했으니까 말이죠.

이렇게 돈놀이를 한 결과 아이슬란드 경제에 엄청난 거품이 끼기 시작했습니다. 주가는 9배나 올랐고, 부동산은 2배나 상승했습니다. 국가와 은행은 이런 상황을 마치 경제성장인 양 생각했습니다. 이를 부채질하기라도 하듯 미국의 신용평가사들은 아이슬란드에 AAA라는 최고 등급을 매겼고, 아이슬란드 은행을 감시한 미국 회계법인조차 은행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런데 불안한 줄타기와 방만한 경영과 투자가 계속되면서 2008년 9월 아이슬란드는 국가 파산을 경험합니다. 아이슬란드 경제가 무너지는 속도는 너무나도 빨랐습니다. 실업률은 6개월 만에 3배가 되었고, 보장받지 못한 금융상품에 돈을 넣었던 많은 사람이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아이슬란드 금융감독원이 은행을 감시하는 일은 역부족이었다. 은행은 금융감독원의 감사를 회피하기 위해 돈과 인맥을 동원한 로비로 자신들의 부정을 숨겼다.(출처: 영화 인사이드잡)


국가에는 은행을 비롯한 금융회사들의 부정을 감시하는 금융감독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슬란드의 금융감독원은 왜 이러한 사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기까지 보고만 있었을까요? 여기에는 전방위적인 로비가 있었습니다. 금융감독원이 고용한 변호사가 금융 안건에 대해 이야기하면 은행들은 더 유명한 변호사를 고용하여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다 금융감독원이 고용한 변호사의 실력이 좋을 경우 은행은 아예 그 변호사를 영입하는 엄청난 일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결국 아이슬란드 금융감독관의 3분의 1이 은행으로 취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부산저축은행 사태와 너무나 흡사합니다. 금융감독원 인맥으로 감사를 요리조리 피해 갔던 모습과 똑같아서 놀랍기까지 하군요. 이렇듯 국가, 은행, 해외 평가사의 3박자가 맞아떨어져 아이슬란드는 파산에 이르렀습니다. 국민과 고객은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에 먼 도덕적 해이의 극치가 빚은 엄청난 사태였습니다.

아이슬란드는 국가파산을 어떻게 극복했나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가파산을 초래했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선 게이르 하르데 아이슬란드 전 총리. 아이슬란드는 총리를 법정에 세울 정도로 과감하고 단호한 처방을 내렸다.

국가파산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른 아이슬란드는 2년 만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면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사실 아이슬란드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까지 받았기에 경제 전문가 사이에선 언제 회복될지 모르는 나라로 분류되었으나 지금은 2퍼센트대 이상의 경제성장이 예상되고 있으며 국가재정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된다고 하는군요. 단기간에 위기를 극복한 아이슬란드를 두고 국제협력개발기구(OECE) 등은 모범적 사례라고 칭찬해 마지않았습니다. 과연 아이슬란드는 국가파산의 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일반적으로 금융위기가 일어나면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처방은 회사를 살리는 데 치중합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공적자금을 부실 금융회사나 보험사 등을 살리는 데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의 처방은 달랐습니다. 과감하게 자본을 통제하고 부실 은행을 법정관리하는 등, 초기부터 단호하게 조처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파산 상태에 처한 은행은 채권단이 해결하게끔 강경하게 대처했습니다. 

아이슬란드 국회의 자정작용도 활발했습니다. 2010년 아이슬란드 의원 19명은 ‘아이슬란드 현대 언론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이 법안은 진실을 파헤치고 비리를 고발하는 전 세계 부사기자들에게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정보공개, 내부고발자 보호 등을 통해 사회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정 단체가 진실을 감춰 국가 파산을 경험한 아이슬란드에서 다시는 같은 악몽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아이슬란드의 디폴트 선언은 엉뚱하게도 관광산업을 흥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뛰어난 자연경관을 보러 많은 관광객이 아이슬란드를 찾았고, 이는 아이슬란드가 국가부도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었던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출처: 영화 인사이드잡)


때아닌 관광특수는 아이슬란드가 국가파산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이슬란드 화폐인 크로나의 가치가 떨어지자 예전에 비싼 관광비 탓으로 여행을 올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사람들이 아이슬란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이렇게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은 예전과 비교하면 4배를 웃돌았다고 합니다.

기업과 고객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아이슬란드 파산사태를 돌아보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시장이 스스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과 별다를 바 없는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아이슬란드의 기업, 특히 금융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채 돈벌이에 급급하여 기업으로서 지켜야 할 도덕이나 고객을 향한 신뢰를 저버렸습니다. 자신의 배를 불리기 위해 고객에게 위험한 곳에 투자하라고 종용하고,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방만한 경영으로 흥청망청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기업이라 하여 단순한 영업적 이익에 집착할 게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자각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경영방식을 말합니다. 경제적 수익성 외에 환경적 건전성이나 사회적 건전성까지 고려해야 하죠. 앞서 살펴본 아이슬란드의 국가부도 사태는 경제적 수익성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회적 건전성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금융기업들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입니다.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디폴트 선언,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아이슬란드 디폴트 이유, 아이슬란드 국가 파산 이유, 금융기업 도덕적해이, 모럴해저드,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금융기업의 사회적 책임, 신자유주의의 광풍, 신자유주의, 아이슬란드 경제, 거품경제, 미국 신용평가사, 미국 신용평가사의 부패, 금융감독원, 금융감독원 부패, 월가 시위, 월가의 좀비들, 아이슬란드 전 총리 구속, 부산저축은행 부실수사 논란, 부산저축은행 사건

부산저축은행 부실 감독을 규탄하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 (출처: 뉴시스)


현재 미국에서 일어나는 경제적 위기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금융권과 부자들의 탐욕과 빈부격차에 항의하는 뜻으로 3주째 이어지고 있는 '월가 시위'에는 매일 많은 사람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제는 시민단체들까지 손을 걷어붙였다고 합니다. 뉴스에서는 이를 미국판 자스민혁명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부산저축은행 사건에서 드러난 일련의 행태를 보면 규모만 다를 뿐 아이슬란드 은행들이 했던 도덕적 해이와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예금자를 속여 보장받지도 못하는 상품에 투자를 종용한 점, 금융감독위원회의 부정부패를 보면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저희만은 아니겠지요. 대한민국의 국민이자 소비자로서 우리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관심을 두고 지켜볼 의무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때 과감히 그 기업을 거부하는 모습도 보여야 합니다. 고객을 소중히 여기는 기업이 성장하고, 성장의 혜택을 다시 국민과 나누는 기업이 늘어날 때 대한민국의 경제는 더욱 안정된 토대를 구축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2010년 11월 11일. 누군가에게는 G20, 누군가에게는 빼빼로데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농업인의 날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힘차게 일어서 직립하라는 뜻을 담은 지체장애인의 날.

일반적으로 빼빼로데이로 널리 알려진 이날, 상술에 놀아나는 것이 아니라 강철 같은 의지로 자신의 삶을 살아나갔던 여성들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솔로라서 이러는 거 아닙니다. ^_^;;;;;;;;

'철의 여인'이라고 하면 '강한 의지를 품은 여성'에게 붙이는 별명이지만, 여성 국가원수를 비롯해 어떤 권력의 정점에 올라간 여성들을 지칭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 인디라 간디

우선 스리랑카의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인디라 간디가 있습니다.

이름에 간디가 들어가지만 비폭력, 무저항 운동으로 유명한 마하트마 간디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은 아니고요. 인도의 초대 총리인 자와할랄 네루의 외동딸입니다. 자와할랄 네루라고 하면 《세계사 편력이란 책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요.  이 책은 자와할랄 네루가 영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하다가 여섯 번째로 투옥당했을 때 딸이 서구 편협한 역사관에 갇힐까 염려해 보낸 편지에서 비롯되었죠. 인디라 간디는 아버지에게서 그 편지를 받아보며 역사의식을 키운 《세계사 편력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여성의 몸으로 파키스탄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조국을 수호했지만, 자국 내 시크교도들의 독립운동을 탱크를 동원해 진압하여 600여 명의 사망자를 내는 무자비함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로 말미암아 암살 당하고 맙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인도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철의 여인이라고 할 만하지요.



낙천적 독립투사 - 골다 메이어

두번째 철의 여인은 인디라 간디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총리가 된 여성, 이스라엘의 골다 메이어입니다.

이스라엘을 건국한 정치인 중 한 명이며, 이스라엘 독립전쟁 당시에는 수류탄을 속옷에 숨겨 가지고 다니며 국경을 넘는 임무도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였습니다. 그럼에도 성격은 낙천적이었다고 하는군요.

그렇지만 뮌헨 올림픽에서 이스라엘 선수 11명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살해 당하자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에 그 테러 관련자들을 조건없이 모조리 죽이라는 지시를 내린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후에 중동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책임 논란이 일며 결국 5년만에 총리직에서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이스라엘의 처음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입니다. 불관용과 비타협의 시대를 무력으로 돌파한 철의 여인이지요.


가장 널리 알려진 철의 여인 - 마거릿 대처

세 번째 철의 여인은 '철의 여인'이란 별명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영국의 총리 마거릿 대처입니다.

과감하게 시장주의를 도입하여 영국을 영국병으로부터 구하고자 했으며 아르헨티나와의 사이에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경제 정책은 훗날 경제 호황을 가져온 밑바탕이 되었다고 인정받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영국병을 근본부터 고친 게 아니라 '대처리즘'이라고 이름 붙은 진통제를 놓았을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또한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정책 탓으로 노동자들은 진압당했으며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나머지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영화로도 유명한 그래픽 노블 《브이 포 벤데타》에서는 그 시절 대처리즘의 극우성을 통렬히 꼬집었다고 하네요. '철의 여인'이란 별명도 그런 반공주의 때문에 소련에 의해 붙여졌다는 듯.

음, 분명히 이분들 역시 철의 여인들이지만 좀 아쉽군요. 정치란 권력을 통해 무언가를 이룬 사람들이라 그런지 어둡고 위압적인 면이 조금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밑에서부터 싸워 이겨낸 여성은 없을까요? 그래서 조금 더 찾아봤습니다.


미 여성참정권 운동의 어머니 - 수전 앤서니

지금으로부터 100년도 더 전인 1872년의 11월. 미국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에 로체스터의 한 투표소에 여인들이 몰려듭니다. 여성도 투표할 권리가 있다고 항의하는 시위였죠. 시위대의 맨 앞에 많은 여성을 이끌고 온 수전 앤서니가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여성의 몸으로 투표하겠다는 건 명백한 불법행위. 수전은 재판에 회부되고 벌금형을 선고받습니다. 하지만 수전은 그 벌금의 납부를 거부하고 더더욱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요.

기소된 후 수전은 미국 전역을 돌며 <여성도 사람입니까?>라는 연설을 했다고 합니다. 이 연설은 영어권의 명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는군요.

수전은 여성참정권운동 이전에도 금주, 노예제 폐지 등 사회개혁운동 전반에 참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남북전쟁이 끝난 뒤에는 여성참정권운동에 헌신하게 되지만, 결국 살아생전에는 미합중국 최고재판소로부터 여성투표의 합법성을 거부당했다고 하네요.

다행히 이런 노력은 사후에 결실을 보아 1920년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는 수정헌법 19조를 의회에서 통과시키며 '수전 앤서니 수정헌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살아생전에 강철 같은 의지를 품고 자신의 인생을 살아낸 대표적인 여성은 없을까요? 골리앗과 싸워 이겨낸 다윗처럼 말입니다.


석유재벌 록펠러와 싸워 이긴 여성 저널리스트 -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바로 그런 여성이 존재합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여성 저널리스트로서 미국의 진보시대에 유력한 지도자이자 언론인이었죠.

당시 미국 석유의 95퍼센트를 독점한 곳은 존 D. 록펠러가 이끄는 스탠더드 오일이라는 거대한 회사였습니다. 스탠더드 오일은 동일산업 부문에서 자본의 결합을 축(軸)으로 한 독점적 기업결합. 즉 경쟁자를 없애려고 같은 업종의 기업을 합병하여 독점하는 방식인 '트러스트'와 각종 획책과 로비를 더해 미국 정유업계의 공룡이 된 상태였습니다.

이때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반독점법이 부활하게 되고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독점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섭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은 오랜 탐사 끝에 《매클루어 매거진의 연재 기사를 통해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의 비열한 수법들을 낱낱이 폭로합니다. 날 선 비판을 담은 기사는 훗날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합니다.  탐사보도폭로라는 언론의 무기가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 일도 바로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아이다 타벨의 폭로기사를 근거로 소송이 진행되고, 1911년 연방대법원은 석유재벌이었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수십 개의 작은 회사로 해체하라고 판결합니다. 루스벨트가 대기업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부활시킨 반독점법이 이제는 독점재벌을 해체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을 발휘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연방정부가 이렇게 각종 트러스트를 규제할 수 있도록 대중의 지지를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었습니다. 정말 현실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습니다!


참조 포스트 : 미국의 반(反)독점법에 대해 아시나요?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폭로기사를 정리한 《스탠더드 오일의 역사》는 《뉴욕 타임스에서 선정한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가장 중요한 100개의 보도 가운데 5번째로 꼽혔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달 착륙, 워터게이트 사건을 포함해 수없이 많은 20세기 미국 저널리즘의 보도 중 5번째로 꼽힌 보도를 살아생전에 해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의 강철 같은 의지와 행동력에 존경으로 다시금 고개가 숙여집니다.


겨울이 성큼 다가온 늦가을,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강철같은 의지와 행동력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낸 철의 여인들의 삶을 되돌아 보며, 어떻게 하면 보다 주체적인 여성으로 이 세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_^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