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평가가 일주일 연기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7년 수능은 11월 16일이 아닌 11월 23일에 치르게 되었습니다. 예정된 수능일을 하루 앞두고 일어난 포항 지진 때문입니다. 지난 15일 오후 경북 포항시 북구 지역을 강타한 규모 5.4의 지진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가 고층에 있거나 민감한 분들은 서울에서조차 흔들림을 느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지난해 9월 경주에서 발생한 5.8 규모의 지진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입니다. 포항 시내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건물 외벽이 깨지거나 금이 가는 등 실로 아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생들은 수능을 앞두고 예비소집이 이뤄진 날이기도 해서 포항 지역 학생들은 난데없는 지진에 혼비백산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지진 직후 정부의 입장은 수능을 예정대로 치른다였습니다. 이 때문에 수능 전날 저녁 수능을 일주일 연기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학부모와 입시생들의 혼란과 반발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천재지변은 인간이 예측하거나 대응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천재지변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수능을 치르는 도중에 지진이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포항 시내의 상황과 작년 경주 대지진 때의 정부의 대응을 비교하여 생각하면 '수능 연기'라는 전격적인 결정은 학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나아가 입시생 전체의 형평성을 고려한 의미 있는 결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스포츠경향


우선 포항에서는 오늘 수능 고사장으로 사용될 전체 시험장 건물 14곳 중 10곳이 벽 등에 균열이 생긴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예비시험장으로 마련해두었던 포항중앙고에서조차 균열이 발견되었죠. 포항고는 균열이 너무 심하고 포항여고는 뒷담이 무너진 상태입니다. 심지어 포항여고 과학실에서는 보관 중이던 실험용 포르말린이 지진으로 깨지면서 누출되었다고 합니다. 떨어진 타일이나 파편들은 밤 사이에 치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균열이나 넘어진 담을 하루 만에 복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만에 하나 건물에 균열이 간 상태로 시험을 강행하다 여진이라도 일어나 2차 균열과 파괴가 발생한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학생들에게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 때문에 수능을 예정대로 치르겠다는 발표에도 불구하고 포항교육청이 교육부와 청와대에 수능 연기를 강력히 요청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문재인 대통령은 책임 있는 당국자가 현장에 가도록 지시했고,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포항으로 급파되었습니다.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본 김부겸 장관은 이대로는 도저히 수능 진행이 어렵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교육부 역시 마찬가지의 입장을 보였습니다. 지진으로 파괴된 현장을 보면 겨우 일주일만 연기하고 복구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이를 취합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긴급 보고를 하자 문재인 대통령은 수능을 강행할 수 없다고 판단, 전격적으로 수능일 연기를 발표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사상 초유의 수능 연기로 이에 따른 후폭풍이나 심리적 물리적 어려움에 대한 비판이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우리가 목도한 안타까운 죽음과 안전불감증을 생각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 얼마나 상식에 근거한 판단인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해서 책임과 권한이 있는 자를 현장으로 내려보내 사태를 파악한 후 최고 결정권자가 책임을 지고 그 보고를 받아들인 과정은 지난 9년간 정부에서 보지 못한 의사결정 과정이 아닙니까? 

 

출처 - SBS


참고로 역대 최대였던 작년 경주 대지진 당시 박근혜 정부의 대응은 어땠습니까? 국민이 죽든 말든 감히 장관이나 대통령의 단잠을 깨우려 하다니 무엄하도다, 이런 식이 아니었나요? 현재 문재인 정부 같이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을 하라는 뜻에서 우리는 지난겨울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외쳤던 것 아니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도저히 시험을 치를 수 없는 처지인 포항 학생들만 따로 나중에, 혹은 다른 장소에서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은 전체 학생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 어긋나고 수능 보안에도 심대한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수능 강행이냐 연기냐, 두 가지 선택지 밖에 없는 셈이었고, 학생들의 안전과 형평성을 고려해 현 정부는 수능 연기라는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난데없는 천재지변으로 일주일을 더 고생해야 하는 학생들과 학부모의 처지는 안타깝지만, 시험보다 학생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출처 - 중앙일보


원래 예정된 수능일이었던 오늘 수능 시험장으로 지정된 학교는 예정대로 휴교한다고 합니다. 아울러 포항의 모든 학교는 휴교에 들어갔습니다. 전국 지역별 85개 보관소로 배포된 수능 시험지는 보안에 문제가 없도록 경찰과 교육청 관계자가 합동으로 경비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따라 수능 출제위원들도 일주일 더 감금(?)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수능 끝나자마자 여행 가려고 예약한 사람들, 시험을 앞두고 교과서, 참고서, 문제집 등을 다 버려버린 학생들 등, 천재지변으로 꼬여버린 일정에 마음이 아프겠지만, 생명과 안전보다 귀한 것이 없음을 생각하면서 일주일 뜻깊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학생들은 자기 실력만큼 좋은 성과 거두시길 빕니다.

 

5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영화 <사도>는 수차례 만들어진 영조와 사도세자의 이야기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황산벌> <왕의 남자> 등 사극에서 강한 면모를 보였던 이준익 감독과 신들린 연기를 선보인 배우 송강호, 유아인에 힘입어 흥행은 기세가 대단합니다. '왕으로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아버지'라는 역사적 실화가 주는 울림이 아무래도 영화 흥행의 가장 큰 요인이 아닌가 합니다. <사도>는 실록을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자격을 갖춘 왕자'를 바랐던 왕과 '자애로운 아버지'를 바랐던 아들의 엇갈린 감정으로 여백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오늘날 세대론과 맞닿는 부분도 보이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사도세자처럼 죽고 싶지 않으면 공부하라는 엄마들


영화 <사도>가 40대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합니다. 10대 학생인 아이들을 대동하고 관람하는 엄마들이 많다는 건데요, 아이들의 부족한 국사 교육을 위한 목적일까요? 아니면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일까요? 아닙니다. 《조선일보》의 취재 내용에 의하면 일부 엄마들이 영화관을 찾는 이유가 좀 섬뜩하기도 합니다.

 

출처 - YTN

 

"영화에서 아버지 영조의 뜻을 어기고 공부를 게을리 한 사도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채 결국 뒤주에 갇혀 죽는 걸 보면서 아이들이 느끼는 게 분명 있을 것"이라며 "요즘 사춘기라 그런지 부쩍 말을 안 듣는데, 이 영화가 스스로 '사도세자처럼 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부는 영화 '사도' 바람 (《조선일보)


이는 달을 가리키는 이의 의도와 달리 손가락을 쳐다보는 상황에 해당합니다. 영조-사도세자 부자 사이에서 벌어진 비극을 다룬 영화를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 성공한다'는 교훈을 가르치는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영조의 지나친 교육열과 권위주의는 사도세자를 망치는 데 큰 몫을 차지하는 요인입니다.


과연 영화를 본 아이들은 일부 강남 엄마들의 생각대로 죽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도세자가 갇혀 죽은 뒤주를 보고 '저거 현실에도 있는 건데?'라고 하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작년에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스터디룸은 사실상 현대판 뒤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군요. 아이들이 이런 상황을 이상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영화 <사도>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엄마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엄마는 "아이들에게 역사 공부가 될 것 같아 극장엘 갔는데, 나올 땐 오히려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며 "영조처럼 자식을 몰아붙이다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는 것 아닌가"라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으니까요.

 

'과유불급'이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지나치게 과열된 교육열과 자식 사랑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범탕'에 '총명 주사'까지 수험생을 위한 영약 천태만상


2015년 수능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금, 강남에 수능 보약 광풍이 불고 있습니다. 캥거루 꼬리, 철갑상어, 산삼과 함께 캐나다산 하프물범을 달여서 만든 물범탕이 수험생에게 좋다는 소문 때문에 한 달에 50만 원을 넘게 들여 아이들에게 먹이는 부모가 많다고 합니다. 강남 엄마들 사이에선 수험생인 자식에게 물범탕을 안 먹이면 죄짓는 것이라는 얘기마저 돌고 있다는군요.

 

출처 - 조선일보


이뿐 아닙니다. 강남 성형외과는 수능 주사가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여러 종류의 영양제와 태반 성분을 섞은 주사가 기억력 증진과 학습 능력 향상에 좋다고 하면서 '총명 주사' '집중력 주사' 등의 이름을 내걸고 수험생을 대상으로 놓아준다고 합니다. 한 번 맞는데 10만 원 정도 든다고 하니 만만치 않은 가격입니다.

 

장기간 복용해야 하는 총명탕과 달리 단기간에 효능을 볼 수 있다는 수능 응급약 '수능환'은 한 알에 5만 원이라고 합니다. 정력에 좋다거나 수험생에게 좋다는 건 안 팔리는 게 없다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넘길 일이 아닌 셈입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의사들은 보양식이나 환으로 집중력 혹은 기억력을 향상하거나 장기간 유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평소에 먹지 않던 약품을 잘못 복용하면 오히려 컨디션을 망쳐 수험생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고 조언합니다. 그러나 강남 엄마들의 자식 사랑에 대한 집념은 사이비 종교에 대한 광신과도 같아서 불합리한 행동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죽는 나라는 결국 어른들이 만드는 것


사실 영화 <사도> 흥행으로 드러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올 초에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를 자기 편할 대로 왜곡해서 해석한 강남 엄마들의 호들갑이 있었으니까요.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해 명문 음대에 입학한 주인공이, 실력은 최고지만 최악의 폭군이기도 한 플렛처 교수에게 발탁되면서 벌어지는 광기를 가감 없이 보여주는 영화입니다. <사도>의 송강호처럼 신들린 연기를 보여준 플렛처 교수 역의 J. K. 시몬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기도 했지요. 올해 갓 서른이 된 감독의 사실상 데뷔작인데도 저예산 독립영화로는 의외라고 할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죠.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제목인 '위플래쉬'는 채찍질을 뜻하기도 합니다. 플렛처 교수는 문자 그대로 주인공을 채찍질하듯 잡아가며 가르칩니다. 아니, 가르친다기보단 괴롭힌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 같군요. 플렛처 교수의 광기 어린 지도에 따라 점점 몰입해가는 주인공의 광기가 맞물려 그야말로 불꽃이 튀는 연주 장면을 그려내는 감독의 감각이 탁월하긴 합니다. 그런데 일부 강남 엄마들은 이 영화를 스파르타식으로 애를 잡아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자기합리화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영화 공개 후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주인공이 30대에 약물 중독으로 죽거나 자살했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어쩌면 영화의 메시지와 달리 일부 강남 엄마들은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학벌이란 도박에 자신과 아이의 인생을 판돈으로 내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겨레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11년째 자살률 1위를 지키며 자살률이 세 배나 증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청소년 사망의 원인 중 자살은 줄곧 1위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발표된 통계를 보면 2015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 때문에 사고로 인한 사망이 1위로 올라서고 자살이 2위였습니다. 

 

 

출처 - 생각비행

 

경쟁 중심적인 교육 상황을 만들어놓고 영어·수학을 잘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고, 일류학교를 졸업하면 출세가 보장되는 전근대적인 학벌 사회를 바꾸지 않는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선생님과 어른의 의견에 무비판적이고 순응적인 아이를 양산하는 교육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올라도 가만히 있으라는 지시를 따라 기다리다 희생된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우리 기성세대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생각비행이 펴낸 책, 《김용택의 참교육 이야기―사랑으로 되살아나는 교육을 꿈꾸다》의 저자 김용택 선생님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건강한 사회란 소수가 아니라 다수가 행복한 사회다. 그런데 사회적인 존재여야 할 인간을 개인적인 존재로 키우고, 국영수 점수로 가치와 서열을 매기는 교육으로 다수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 리 없다. 학벌로, 경제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줄 세우고 차별하는 사회를 만들어 누가 행복하겠는가? 무한경쟁에서 학교를 구해내는 것만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을 참되게 기르는 건강한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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