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17일간 갇혔다가 기적적으로 생환해 세계의 축하를 받은 유소년 축구팀 선수들과 코치가 지난 18일 처음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태국 치앙라이 매사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클럽에 소속된 선수들과 코치는 자신들의 팀 유니폼을 차려입고 등장했습니다. 자신들을 구조한 태국 네이비실 대원들과 치료를 담당한 의사 등과 함께 축구공을 차는 모습으로 건강을 증명했고, 밝은 얼굴로 동굴 고립 당시 상황을 풀어놓았습니다. 한 소년은 동굴에 갇혔을 때 집에 가서 엄마에게 꾸중을 들을까 봐 겁났다고 말해 그 순진함에 사람들이 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모두 무사히 구조되어 웃는 얼굴로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사건 당시만 해도 생존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이들을 구조할 수 있을지 세계의 걱정이 집중되던 사건이었죠. 지난 6월 23일 선수 가운데 한 명의 생일파티를 위해 탐루엉 동굴에 들어갔다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동굴 내 수로에 물이 불어나면서 이들은 밖으로 나올 수 없었습니다. 동굴 앞에서 팀원들이 타고 다니던 자전거와 가방, 축구화 등을 발견한 태국 당국은 이튿날부터 수색에 나섰습니다. 아이들과 코치는 실종 열흘째인 지난 2일 영국 잠수전문가들에 의해 동굴 안쪽 깊숙한 에어포켓 공간에서 생존이 확인됐던 바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태국 당국은 전 세계와 공조를 통해 이들의 구조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아이들의 생존을 확인한 사람이 영국 잠수 전문가들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미 공군 구조대원 30명을 비롯한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전문가들을 불러모았습니다. 한편 이 아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태국 정부는 통상 외교관에게만 부여하는 면책특권을 약속하며 세계에서 전문가들을 초빙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동굴 잠수 및 구조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호주의 의사 해리스와 2명의 보조 인력을 초청했는데요, 그들이 임무에 최선을 다했지만 일이 잘못됐을 경우 명시적으로 보호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응한 해리스는 4km가 넘는 구간을 잠수해 들어가 아이들의 건강 상태를 점검했고, 그의 진단 결과는 생존자들의 구조 시기와 순위를 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쓰였습니다. 태국 당국은 동굴 곳곳에 고인 물을 빼내는 한편 아이들에게 수영과 잠수장비 이용법을 가르친 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3일에 걸쳐 안전하게 전원을 구조하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출처 - 뉴시스


동굴에서 종유석에 맺힌 물만 먹고 살아 2kg 정도 체중이 줄고 기력이 없긴 했지만 아이들의 생명에는 이상이 없었다고 하죠. 이는 당시 아이들과 같이 갇혔던 엑까뽄 코치가 아이들을 잘 돌보며 살아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엑까뽄 코치는 음식물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자신은 굶은 채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이 때문에 발견 당시 건강 상태가 가장 나빴던 것으로 알려졌죠. 살신성인하며 아이들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돌본 엑까뽄 코치는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구조된 다음 마지막으로 동굴을 나왔습니다. 이런 미담 때문인지 엑까뽄 코치는 태국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런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함께 무국적 난민이 되었다는 사실이 또 한 번 놀라움을 선사하기도 했죠.


출처 - JTBC

 

태국 동굴에 갇힌 유소년 축구팀을 무사히 구조하는 과정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정부의 빠른 대처, 적확한 판단을 내린 전문가, 사건 현장에서 아이들을 돌본 코치의 살신성인 등을 보면 세월호 참사와는 거의 정반대일 정도로 훌륭한 대응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9일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시 국가가 초동 대응과 구조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다며 국가가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4년여 만에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겁니다.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고 피해를 키운 정부와 해경, 무리한 증·개축을 한 청해진 해운, 사고 당시 단원고 학생들을 버려두고 제일 먼저 달아난 선원들과 선장 같은 탐욕스러운 어른들, 제대로 된 대처와 피해 보상을 등한시했던 정치권과 공권력 등등, 이 모든 대응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판결한 겁니다.


출처 – 연합뉴스


태국 정부와 사회, 그리고 언론은 동굴에 갇힌 아이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침착함을 유지했습니다. 구조에 관계없는 사람의 출입을 제한하고, 감정적인 보도가 이뤄지지 않도록 정보를 통제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구조 작업 과정에서 구조대원 1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차분함을 유지했습니다. 나롱싹 오소따나꼰 치앙라이주 주지사는 실종사건 도중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하지만 태국 정부는 현장 책임자였던 그에게 계속 지휘권을 부여하며 구조 과정을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그는 다국적 구조팀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순조롭게 구조가 이뤄지는 와중에도 구조된 아이들의 이름조차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소년들의 가족이 겪을 수도 있는 감정적인 동요나 혼선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출처 - 뉴스1

 

소년들의 가족들도 구조 순서를 일절 묻지 않는 성숙한 자세로 구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동굴 속에 갇힌 태국 소년 중 한 명인 나이트의 가족을 취재한 AFP는 그의 생환을 기원하며 생일 파티를 열 수 있기를 기도하는 나이트의 동생의 목소리를 소개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오빠가 살아 돌아올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냉장고 안에 둔 케이크를 버리지 않았다." 나이트라는 별명을 가진 소년은 실종 당일인 지난 6월 23일 17세 생일을 맞았다고 하죠. 가족들은 구조 작업이 성과 없이 흘러갈 때도 그가 살아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출처 - phonphotchanan jitasa

 

태국 치앙라이주 정부는 과도한 대중의 관심이 아이들에게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18일 열린 인터뷰 이후 아이들은 물론 가족들 또한 언론 인터뷰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생환자와 가족의 생활을 방해하는 경우 아동보호법에 따라 기소될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깔끔한 마무리입니다.

 

출처 - MBC

 

하지만 우리는 어땠습니까? 생각비행은 세월호 참사 당시와 그 이후 구조 과정에서 드러난 언론과 방송의 보도 행태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주류 언론이라는 기사를 통해 질타한 바 있는데요, 권력과 자본에 굴복한 언론과 방송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사고 당시부터 오보를 속출하고 감정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경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어둡게 했습니다.

 

출처 - MBC

 

JTBC는 세월호 참사 당시 뉴스특보를 전하며 생존 학생과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끔찍한 일을 겪은 당사자에게 절대적 안정이 중요한 순간에 피해생존자를 생방송으로 인터뷰한 것부터가 잘못이었습니다. 문제가 지적되자 JTBC 측은 이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인터뷰를 시도한 것 자체가 매우 부적절한 취재행위였습니다. 한편 공영방송 MBC는 세월호 희생자의 대다수를 차지했던 단원고 학생들의 여행자보험을 들먹이며 사고 피해자들이 받을 보험금을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보도를 내보냈습니다. 그러고도 MBC는 사과조차 하지 않았죠. 

 

출처 - 아이엠피터

 

일부 언론과 방송은 피해생존자들에게 세월호 내에서 촬영한 사진이나 영상을 요구하기도 하는 등 재난보도 준칙을 어기는 행위로 질타를 받았습니다. KBS는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며 권력에 굴복하여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기레기(기자+쓰레기) 취급을 받았고, KBS와 MBC 내부에서 정권과 권력에 항의하며 진실을 전하려 했던 기자들과 PD들은 회사를 떠나야 하는 상반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17일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세월호 사건을 취재하는 언론들의 무분별한 취재경쟁을 중단하고 취재와 보도에 신중을 기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언론이 재해보도준칙에 입학하여 다음의 원칙을 준수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신속한 보도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 감정적, 선정적 어휘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반복, 중복하여 보도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 피해 상황을 전달하는 것보다 구조대책 및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추가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보도에 주력해야 한다.
- 보도는 피해자를 안심시키는 내용이어야 하며,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의 명예, 사생활, 심리적 안정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 피해생존 청소년과 아동에 대한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어야 한다.
- 공익에 상당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피해자와 유족, 피해생존자를 담은 근접촬영 화면의 사용은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 4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겨우 국가가 책임을 인정하는 형국입니다. 태국 동굴소년 구조와 세월호 구조, 과연 무엇이 달랐을까요?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은 달라졌을까요? 두 사건의 교훈을 곱씹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진도 여객선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안타까운 뉴스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습니다. 수학여행 중이던 안산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탑승해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는데요, 추억으로 되새길 수학여행이 끔찍한 경험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정확한 정황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만으로도 인재의 요소가 다분합니다. 1993년 일어나 우리나라 최악의 여객선 침몰 사고로 기억되는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와 닮은 점이 꽤 있습니다.

헬기로 인명 구조를 하는 모습 (출처-한겨레)


안전불감증으로 인한 무리한 출항

서해훼리호는 1993년 10월 군산 인근 위도에서 침몰한 여객선입니다. 이 여객선의 정원은 220명. 침몰 사고 첫날에 40여 구의 시신이 발견되었고 생존자는 70여 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종 및 사망자는 많아야 150명 정도여야 했겠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사망자는 정원을 훌쩍 넘는 292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서해훼리호는 정원보다 무려 141명이나 더 태우는 불법을 저지른 채로 출항했던 겁니다. 안전불감증이 낳은 최악의 참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서해훼리호 사고 당시 모습 (출처-한겨레)

서해훼리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에는 날씨도 좋지 않았습니다. 초속 13미터의 강풍이 몰아치는 와중에도 서해훼리호 는 출항을 강행했습니다. 승객은 정원 초과 상태였고, 위기 상황 발생 시 안내와 안전을 책임져야 할 승무원은 규정의 절반밖에 승선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승객의 안전을 무시한 과도한 욕심이 사상 최악의 해양사고를 낳았던 겁니다.

이번에 일어난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바와 같이 언론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두 사고는 닮은 점이 있습니다. 세월호의 선장은 짙은 안개가 끼었음에도 출항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평소 다니지 않는 위험한 항로를 택했다고 합니다.
(침몰 사고 초기에는 세월호가 위험한 항로를 택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세월호가 통상적인 항로를 벗어난 채 운항한 건 아니었습니다.― 4월 23일 현재) 
출처-연합뉴스

현재까지 해경이 밝힌 최초 조난신고는 오전 8시 58분에 휴대전화로 접수된 것으로, 탑승객의 가족이 연락을 받고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사고신고가 쏟아졌지만 정작 사고 선박의 신고장비 등을 통해 접수된 조난신고는 없는 것으로 해경은 밝혔다.


그런데 이것보다 훨씬 더 큰 문제는 세월호의 선체가 기울고 물이 들어오는 와중에도 선장이 승객들에게 대피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교신 내용을 들어도 그렇고, 사고 생존자들의 증언도 그렇습니다. 배가 기울고 물이 차는데도 선내방송으로 승객에게 대피하지 말고 선실 내에서 기다리고 했다니, 도대체 이런 대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더군다나 침몰 신고를 선장이 아닌 배에 타고 있던 단원고 학생이 했고, 승객은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객선의 대피명령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터넷을 보고서야 알았다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출처-서울신문)

더 기가 막힌 건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대피를 지휘해야 할 선장과 기관사가 다른 승무원들과 더불어 먼저 탈출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말단의 승무원이 홀로 끝까지 남아 승객의 대피를 돕다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점은 대구 지하철 참사의 아픈 기억을 떠오르게 합니다.


터지지 않는 구명정, 노후한 배

20여 년 전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에 의하면 배가 침몰하는데도 자동으로 터져야 할 구명정 대부분이 터지지 않아 사망자가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바다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요동쳤다. 자동으로 터졌어야 할 구명정은 네 개 중 한 개만 작동했다. 운 좋게도 그 하나의 구명정에 올라타 살 수 있었다. 2년 넘게 악몽에 시달렸다. 지옥을 봤기 때문이다."


 

출처 - 중앙일보

이번 진도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승객 대부분이 구명복을 입고 있었지만 구명정은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해훼리호 때와 마찬가지로 그나마도 많은 구명정이 배가 침몰하는데도 작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구명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위험천만한 배들이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던 셈입니다.


사고 파악도 수습도 제대로 못 하는 정부

사고 자체에 대한 의문이 한둘이 아니지만, 재난 상황에 대응하는 정부의 무능력함은 20년 새 더 커졌습니다. 세월호 사고 초기에 구조자가 탑승자의 거의 대부분인 368명이라고 공식 발표하더니 30분만에 착오라며 갑자기 실종자만 200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기막힌 참사를 눈앞에 두고 초기 상황을 오판했고, 구조 대상자의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잠수 인력과 장비 투입에도 소흘했습니다.

출처 – YTN

오전에는 '이 배에 탑승한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모두 구출됐다'는 경기도교육청의 발표가 나오는 등 사고가 원만하게 수습될 것이란 긍정적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오후 들어 사고 피해 규모에 대한 판단이 180도 뒤집힌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고 규모에 따라 구조인력과 장비 투입 등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사고 초기 대응이 악영향을 받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사고가 심각하지 않다는 전망이 제기된 오전에는 잠수인력이 20명 정도만 투입됐다가 오후 6시30분께는 178명이 투입됐다. 또 잠수 지원 장비를 갖춘 해군 구난함이 도착하지 않아 잠수대원들은 오후 5시께부터 개인 잠수통을 이용해 수심이 얕은 지역을 중심으로 탐색구조 활동을 폈다. 잠수 지원 장비를 갖춘 해군 구난함 청해진함과 평택함은 17일 새벽에 현장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


큰 사고는 초기 상황 파악이 가장 중요한데 정부는 배가 침몰하긴 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일인 양 초기 상황을 전파하여 대처에 큰 혼선을 주었습니다. 좀 더 신속히 대처했더라면 더 많은 시간을 초기 구조에 투자할 수 있었을 테고, 더 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안전행정부라는 이름값을 못하는 정부입니다.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폭력성

출처 - JTBC

정부의 무능력함과 더불어 20년 새 사건·사고에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언론의 행태도 가관입니다. 종편인 JTBC는 겨우 살아나온 여학생에게 친구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잔인하게 캐물어 그 학생이 오열하게 만들었죠. 비난이 빗발치자 JTBC는 공식 사과를 하기에 이릅니다.

공중파라고 다를 것 없습니다. MBC는 득달같이 사망한 학생의 책상을 찍어 올리기 바빴고, 뉴시스는 사망한 학생의 일기장을 허락도 없이 공개해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사망자의 존엄과 생존자 및 유족의 마음을 고려치 않고 국민의 알 권리를 내세우며 단지 특종과 속보 경쟁에 달려드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하이에나 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JTBC의 손석희 사장은 후배 기자의 부적절한 인터뷰에 대해 공식 사과라도 했다지만, 다른 언론사는 자신들의 짐승 같은 행동을 괘념치 않는 몰상식한 태도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해양사고의 대부분은 인재라고 합니다. 국제해사기구에 의하면 해양사고의 60퍼센트 이상이 인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다고 합니다. 선박의 결함이나 기상변화와 같은 원인에 의한 사고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고 합니다. 서해훼리호부터 진도 여객선 청해진해운의 세월호 침몰 사고까지 2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안전불감증은 달라진 바가 없었습니다. 문제를 일으키는 이도 수습하는 이도 사람인데 이토록 안전에 무감각해서야 되겠습니까?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로 꽤 시간이 지났습니다. 더 많은 분이 구조되었다는 속보를 듣고 싶습니다. 구조 활동에 임하시는 분들도 안전에 유의하시면서 희생자가 생기지 않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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