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 주역이 직권상정을 요구하는 기막힌 현실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집회·결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도 모자라 민주주의 시스템의 근간인 삼권분립에도 마수를 뻗고 있습니다. 청와대가 지난 15일 정의화 국회의장을 직접 만나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지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만나 노동5법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기업활력제고법, 테러방지법 등의 직권상정을 요구했습니다. 일반 해고와 같은 독소 조항이 가득 담긴 하나같이 악법들인데, 국회선진화법 등으로 날치기가 어려워지자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하여 얼른 통과시키라고 종용한 것이죠. 

 

잘 아시다시피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낸 주역은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예산안이 날치기 통과되고 국회에서 대립과 마찰, 폭력이 난무하하면서 여론이 등을 돌렸습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당시 한나라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치 쇄신안을 내놓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었죠. 이 법안의 골자는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극도로 제한하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 출신이면서도 선거법 단 하나만 직권상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나머지는 직권상정할 법적 근거가 없다며 그렇게도 직권상정을 원한다면 청와대에서 법적인 명분을 제시하라면서 거부의 뜻을 밝혔습니다. 같은 새누리당은 직권상정을 거부한 정의화 국회의장에 대해 '직무유기' '해임결의' 등의 언사를 동원하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새누리당의 비난에 대해 말을 함부로 배설하듯 하면 안 된다고 격노했습니다. 지난 24일 보도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정기국회 폐회를 앞두고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노동개혁 관련 5개 법안 등 쟁점 법안의 직권상정을 요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정의화 국회의장은 법률 전문가들에게 자문까지 한 결과 현재로써는 직권상정 요건이 안 된다고 답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민주주의란 힘이 절차에 의거해 행사되는 과정을 골자로 하는데, 이를 무시하는 정치 형태를 우리는 흔히 '독재'라고 부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요청'이라는 겉모습을 취했다고는 하나 현 정권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온 행적을 비추어볼 때 사실상 국회의장에게 내리는 명령과도 같아 보입니다.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오늘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삼권분립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볼까 합니다.



미국 헌법과 프랑스대혁명


우리나라에서 '삼권분립'이라고 주로 표현하는 권력분립은 한 개인이나 집단에 힘이 집중되지 않도록 나누어 구분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존 로크가 행정과 입법의 이권분립을 주장한 바 있고, 몽테스키외에 의해 입법, 행정, 사법이라는 삼권분립의 틀이 잡혔는데요, 그 목적은 상호 견제와 세력 균형을 유지하여 권력의 남용을 막고 권리의 보장을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근대적 의미의 헌법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1787년 필라델피아 비밀헌법회의 모습을 그린 그림


 1787년 세계 최초로 미국이 헌법에 삼권분립을 명시하고 이에 따라 사법부를 독립시켰다고 합니다. 1789년 프랑스 인권선언은 '권리의 보장이 확보되어 있지 않고, 권력의 분립이 규정되어 있지 아니한 모든 사회는 헌법을 가지고 있지 아니하다'고 규정했죠. 1789년은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된 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권력분립은 법치와 민주주의의 모태가 되는 근대적 헌법의 공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부회 모습을 그린 그림


근대적 의미에서가 아니라면 프랑스대혁명 이전에도 권력분립과 유사한 제도가 있었습니다. 바로 삼부회인데요. 프랑스의 귀족, 고위 성직자, 평민, 이 세 신분의 대표자가 모여 중요 의제에 관해 토론하던 신분제 의회를 말합니다. 200여 년간 유명무실했던 삼부회가 1789년 세금징수 문제로 국왕 루이 16세에 의해 다시 소집되었습니다. 루이 16세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남편으로 당시 프랑스는 누적된 권력 과시와 사치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 지원 등으로 재정이 파탄 상태였습니다.

 

이에 대해 근대적 인권 개념에 눈뜬 평민 대표는 봉건적 특권의 축소와 폐지를 요구하며 앞선 문제에 대해 삼부회에서 다수결로 표결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귀족과 성직자 두 신분은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삼부회 자체를 해산해버렸죠.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역사 시간에 배워 우리가 잘 아는 대로입니다.

 

혁명에 필요한 무기를 탈취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파리 민중을 그린 그림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민중이 혁명에 가담한 까닭은 일시적인 불만이나 부르주아의 선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사람들은 불평등한 사회체제에 저항하는 사회개혁 의지를 품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파리 시청 앞 광장에 모여 국왕과 의회에 음식을 요구하는 생존권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결과 국왕이었던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죠. 왕정하에서도 말입니다. 하물며 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권력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두말할 필요없이 국민입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를 잘 모르는 듯합니다. 그렇기에 국민에게 있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를 짓밟고, 공권력을 동원해 시민을 사찰하고,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조작하며, 비판 세력은 종북 몰이로 탄압하고, 세월호 참사 당일 자신의 7시간 행적을 감추기 위해 사이버상 검열을 강화하는 조처를 강제했을 뿐 아니라 급기야 민중총궐기에 나선 시민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친일, 독재의 역사를 정상으로 생각하기에 뉴라이트 사관에 입각한 국정교과서를 만들고자 그토록 노력 중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여,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이 행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선거부정과 부정헌법개정을 저질러 사법부와 민주주의를 유린한 행위로 하야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에서 배우기 바랍니다. 아버지의 죽음은 이 자리에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프랑스대혁명에서 삼권분립과 민주주의에 대해 좀 배우기 바랍니다. 그 목 부지하려면 말입니다.





2010년 11월 25일, 헌법재판소는 야당에서 청구한 미디어법 권한쟁의심판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총 9명의 재판관 중 4명이 인용, 4명이 각하, 1명이 기각 의견을 내어 인용을 위한 정족수 5명에 1명 모자라 안타깝게도 기각되었습니다.

참고로 문제의 핵심인 미디어법은 이런 법입니다.

미디어법 [media law]
 
법률상의 용어는 아니나, 편의상 흔히 미디어에 관련된 여러 법을 통틀어 미디어법으로 부른다. 주로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언론중재법, 디지털전환법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된다.

한나라당이 개정을 주장하였으나 야당과 진보 세력의 반발을 야기했고, 2009년 7월 22일 국회에서 논란 끝에 통과되었다. 통과 과정에서 투표의 유효성 논란이 발생했다. 7월 3일 민주당 등 세 야당은 헌법재판소에 방송법의 효력정지가처분 및 권한쟁의심판청구를 신청하였으나 기각되었다.

개정안에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여 대기업과 일간신문이 방송사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했다. 한도는 지상파 방송 10%, 종합편성 채널 30%, 보도채널 30%까지다. 또한 외국인은 종합편성과 보도 채널을 60%까지 소유할 수 있다. 지상파, 종합편성 및 보도 채널을 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지분도 66%로 상향조정되었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신문과 방송의 겸영을 허용하고 있으나 언론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러 제한장치를 두고 있다.

출처 : DAUM 백과사전 시사상식사전

일부 대기업과 언론사가 독과점을 이룰지도 모를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거죠. 이때 통과 과정에서 재투표, 대리투표 등 날치기라고 밖에 볼 수 없는 절차상의 문제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올려주신 따뜻한 카리스마 님의 예를 참조하시면 더욱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일개 국민 입장에서 미디어법 통과, 왜 잘못됐는지 설명해볼까요?( http://careernote.co.kr/686 )

문제는 이미 헌재가 국회 표결 당시 절차상의 위법은 있지만 법안 자체가 무효는 아니라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작년 10월 이 때문에 '컨닝한 것은 인정되지만 합격이 무효는 아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 등 국민 사이에 헌재를 비꼬는 말이 많았죠. 절차에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그 결과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적어도 절차상 하자는 하자, 공을 돌려 받은 국회는 이 하자를 제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아무 것도 안 했습니다. 그래서 야당 의원들은 국회의장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헌재에 문제를 제기했고, 올해 11월 25일 결국 이런 웃지 못할 대답을 듣게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헌재가 한 말은 이런 말입니다. 잘못한 건 맞는데 늬들 일은 늬들이 알아서 해결해라.

자기들이 저지른 일은 자기들이 알아서 해라... 언뜻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헌재가 이미 미디어법 표결 절차에 하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이상 법적인 문제로 다뤄야 함에도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해버렸습니다. 이번 판결에 대한 한상희 건국대 교수와 임지봉 서강대 교수의 말을 옮겨보죠.

한상희 건국대 교수 : "헌재가 존재해야 할 이유를 스스로 부정한 사건"
임지봉 서강대 교수 : "헌재가 존립하는 이유는 위법 위헌 상태를 적극적 위헌 판결을 통해 바로잡고 우리사회의 헌법질서를 수호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결정을 보면 헌재가 있을 이유가 없고 위헌이나 위법의 유권 해석은 법학자에게 물어봐도 될 사안"

출처 : 미디어법 기각 … “헌재 스스로 존재이유 부정”(http://www.naeil.com/News/politics/ViewNews.asp?nnum=583690&sid=E&tid=0, 내일신문)

정치적인 선택으로도 직무 유기에 가깝습니다. 민주주의 정부의 근간은 삼권분립입니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가 서로 권력을 견제한다는 사실은 중학교 사회 시간에도 배웁니다. 헌법재판소는 사법부의 상징으로서 입법부의 잘못을 견제해야 하는 정치적 의무가 있음에도 그 의무를 방기해버렸다고 할 수 있죠. 그런 의미에서 법조계 사람들과 의식있는 언론인들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

반대로 현 정부의 방통위와 방송 시장에 진출하려는 대기업 그리고 이른바 조중동은 신이 났습니다. 헌재의 판단까지 나왔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다는 거죠. 방통위는 이미 종편 심사 절차와 관련된 일정을 밀어붙이기로 했습니다.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종편과 보도채널을 준비하는 언론사들도 마찬가지고요.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란 기자가 진실이란 칼을 탐사보도란 끈기로 벼려내어 그 유명한 석유 독점재벌 록펠러의 문어발을 잘라내 해체한 후 100년. 이젠 국민을 대신해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독점재벌이 되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언론인 정신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약자의 입장에 서서 진실을 파헤치는 참다운 저널리스트와 저널리즘이 그리운 이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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