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부터 국민들이 생활 속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운영 중입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 전국의 주요 문화시설을 무료나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런 사실 알고 계셨나요? 

 

출처- 문화가 있는 날 누리집

 

'문화가 있는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힌 국정운영 4대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입니다. 그 취지는 좋았으나 홍보 부족으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문화가 있는 날'을 수요일로 정했는데 평일에 마음 편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주말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면 문화콘텐츠를 주업으로 하는 업체들의 수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일로 지정한 것일 텐데요, 제도의 취지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어쨌든 어제가 새해 들어 첫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파독광부 및 간호사, 이산가족들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날 관람에는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장, 영화 스태프 및 가족, 20∼70대 등 세대별 일반 국민 180여 명이 함께 했다고 하는군요.

 

팍팍한 경제 사정 때문에 그나마 영화 관람이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일 텐데요, 역대 대통령들도 종종 영화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역대 대통령이 관람해 유명해진 영화들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제시장〉〈명량〉〈넛잡〉〈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을 관람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전에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김윤진이 분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들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마치 본받아야 할 전통이나 미담인 것처럼 얘기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영화관을 찾은 박 대통령은 영화 제작 스태프들과 표준계약서를 맺은 점 등을 평가하면서, 문화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만큼 제작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윤제균 감독 등에게 감동적이었다며 앞으로 이런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시장〉은 흥행했는데 영화의 배경이었던 '꽃분이네'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오늘 <한겨레> 사설을 보면 "매주 수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가게 주인이 권리금을 3배 가까운 5천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관광차 들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니 '꽃분이네'는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문화산업의 융성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시장> 외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또 다른 영화인 <명량>을 보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코너에 몰렸던 정국의 반전을 꾀하며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건드리려 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보가 엿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시사회 기념 애니메이션 산학리더 간담회에 참석해 "뽀로로를 보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된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작년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이틀 만에(18일) 대검찰청이 미래부, 안행부, 방통위, 경찰청, 포털업체 등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안'을 마련했지요.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전담팀이 설치되고 검사 5명과 수사관이 배치되었습니다. 검찰은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사업자들을 대책회의에 모아 놓고 메신저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사실 유포사범은 벌금형이 아닌 재판 회부를 원칙으로 하고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시킨 사람까지 엄하게 벌하겠다면서 말이죠.

이런 일련의 조처는 국내 모든 메신저에 대한 검열을 예고했고, 누리꾼들은 자신의 대화 내용이 언제 국가에 의해 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메신저가 실시간 검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드러나자 많은 사용자가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이없는 발언과 검찰의 과잉 충성으로 빚어진 시대의 희극은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던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약속과 참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도가니〉〈워낭소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허울뿐인 자원외교로 천문학적인 국고를 낭비한 혐의로 청문회 증인 채택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도가니>와 <워낭소리>를 관람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1990년 <야망의 세월>이란 드라마로 그의 기업인 시절 이야기가 그려진 적도 있었지요.


출처 – 다음 영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2011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도가니>의 열기가 국회로 이어져 이른바 '도가니법'이란 성폭력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졌습니다.

 

오는 2월 2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오늘 《경향신문》 머리기사로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의 상당 부분을 외교 사안에 할애하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반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광우병 파동 등 재임 중 '내치 실패'에 대해선 대부분 야당과 당시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책임으로 돌려 파장이 예상된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2007년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에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는 발언을 한 연설 동영상이 나왔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에 대해 나경원 전 대변인은 "BBK 설립했는데 주어가 빠졌다"는 궤변의 논평을 내놓아 대한민국 국민의 얼을 빼놓았습니다. 과연 이번에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주어'가 있을까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왕의 남자〉〈맨발의 기봉이〉〈밀양〉〈화려한 휴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가장 많은 영화를 본 대통령이었습니다.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밀양> <화려한 휴가> 등 공식적으로 본 영화만 해도 5편이라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왕의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에 의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습니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간 유시민 전 의원 등이 '왕의 남자'로 불리는데, 이후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실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된 동시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마을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광주의 아들이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광주 시민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정작 당사자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화려한 휴가〉


문화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통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기라 짬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임 전후로는 꽤 많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정계 은퇴 후 영국을 다녀온 뒤에는 <서편제>를 봤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화려한 휴가> 등을 관람했습니다. 일본의 사회파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의 <케이티(KT)>는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야당 후보 김대중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한국의 영화정책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를 보이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진전했습니다. 정책의 방향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김 전 대통령은 검열 철폐와 문화에 대한 지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화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여 년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쥐고 흔들려다 역풍을 맞자 또 오해 타령을 하는 부산시장과 현 정부는 문화정책 면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을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편제〉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던 시절, 대통령이 본 영화라는 타이틀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 영화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관람한 <서편제>였습니다. 100편 이상의 영화를 찍은 국민 감독 임권택의 작품으로 국악과 한을 다룬 영화적 완성도 또한 훌륭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 상영관도 없고 관객 집계도 수기로 이루어지던 시절이라 전국 관객 집계가 남아 있지 않지만,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후 196일 동안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죠.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돌파한 영화였으니 우리나라 최고 흥행 영화라는 얘기가 과언은 아니었겠죠.

 

출처 – 다음 영화


살펴본 바처럼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는 당대 최고의 흥행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통령이 봤기 때문에 흥행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국민이 많이 찾은 영화를 대통령도 본 것인지 선후 관계는 영화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행보에는 일정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와 어떤 대통령을 선호하시는지요? 이번 주말에는 여러분이 투표한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겨 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검열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과거 왕권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음란과 폭력을 통제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다분합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면 피통치자는 검열의 '끝판왕'이라고 할 자기 검열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속칭 '알아서 기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합니다. 생각비행은 검열의 헤게모니를 쥐고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려는 국가와 정부의 문제를 줄곧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왔습니다.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www.ideas0419.com/145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http://www.ideas0419.com/192

 

정보조작 의혹으로 살펴보는 SNS 심의의 허구성
http://www.ideas0419.com/280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www.ideas0419.com/354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http://www.ideas0419.com/448

 

삼일절에 돌아보는 헌법의 근본정신
http://www.ideas0419.com/456

 

증거 조작 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 5편
http://www.ideas0419.com/459 

 

안타깝게도 2014년 현재 광주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광주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박근혜 비판을 금지하다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20돌을 맞은 현대설치미술전시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습니다. 올해 9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에 17개 나라,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그간 쌓아온 위상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측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예술 작품의 수정을 지시하고, 그 수정본조차 전시를 거부한 일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문제 작품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입니다.


출처 - 뉴시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거부한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을 작품에서 허수아비로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올라가 결국 518 광주에 닿는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광주 비엔날레 측은 박정희로 보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김기춘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박근혜 대통령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홍 작가는 고민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내용을 닭으로 수정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홍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유보했고, 보수단체들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홍 화백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탈출시켜 우리 품 안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의 주제도 못되고 부제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침몰 사고가 아니라 학살사고이고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 수정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작가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취소 결정을 뒤집고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재단은 결국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도 못한 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책임 큐레이터는 <세월오월> 전시 유보가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된 결정이라며 개막식에 앞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애초 계획된 특별전 개막식은 5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고, 2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는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그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작가들의 공동 대응,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하라!


지난 8일 특별전 개막식장 바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월오월> 작품의 게릴라 전시가 기획되었습니다. 홍성담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이 <세월오월> 작품의 수정된 그림을 4배 크기로 확대한 프린팅을 가지고 외부에 전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려 했으나 사복경찰 50여 명이 동원되어 이를 막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홍 작가의 거주지를 사복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는 지난 11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했던 자신들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검열에 항의하면서 이 작품을 전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광주비엔날레 보이코트 움직임에 국제적인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술계가 출품작의 철회 의사를 밝히며 홍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미술계는, 예술은 정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로 제안하는 행위이므로 예술 작품은 정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엔날레의 이념이 무너진 것이니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오키나와 미술계가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미술계가 전시를 철회할 경우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벌어진 촌극에 가깝습니다. <세월오월> 작품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정신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승화와 치유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설사 홍 작가의 작품 주제가 직접적인 박근혜 비판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이나 행정력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극한을 맛볼 수 있어야 할 예술전시회장에서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권력의 검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드러나는 지표가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려야만 무사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독재자의 딸을 무서워하며 알아서 기다니 참혹한 심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출처 - 한겨레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간 《현대문학》이 원로소설가 이제하와 정찬, 서정인의 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중단시킨 것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 다음에는 어떤 예술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될까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권의 어둠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연대와 시민의 관심과 비판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북몰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2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유종성 교수(미국 UC샌디에고)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 없는 민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부정 당선 의혹, 국정원과 국방부가 연류된 부정 선거와 댓글 조작 의혹, 이를 수사하던 검찰의 수장을 혼외아들 문제로 찍어낸 의혹, 국가정보원의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을 바라보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침몰 사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으며, 총제적인 구조 실패가 독재 국가에서나 나타날 법한 정권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8월 12일) 《경향신문》에 홍성담 작가를 인텨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 그림 '수장고'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구상했나.

“올 1월부터 ‘광주 정신과 관련한 전시회를 하는 데 걸개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절해 왔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내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 단원고 2학년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써 왔다. 이 중 한 명도 숨졌다. 사고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나흘을 보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 시스템이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월호와 5·18은 국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작품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풍자 장면은 꼭 필요했나.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게서 유신의 그림자를 봤다. 대통령은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반드시 밝혀서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록할 임무와 의무가 민중미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는 ‘시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정치적 내용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들었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광주 정신은 저항 정신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알리겠다는 전시회에서 이런 정도의 권력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못 한다면 광주 정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작품은 작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시는 미술관 수장고에 넣어 둔 채 감옥살이를 시키고 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게 하려는 술수다. 광주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윤장현 시장이 책임지고 담대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