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찰칵 하는 셔터음이 나 부담스러울 때 있으시죠? 조용한 레스토랑 안에서 음식 사진을 찍을 때나 사진 촬영이 가능한 미술관, 박물관에서 셔터음이 새삼 크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마트폰에 카메라 기능이 있으니까 셔터음이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층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옛날 기계 카메라 시절의 얘기죠. 스마트폰 카메라는 원래 그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녹음된 셔터음이 재생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전화기에서 셔터음이 나는 건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같은 삼성, LG 스마트폰이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출시되는 폰은 셔터음이 나지 않죠.

 

우리나라 스마트폰에서 카메라 기능을 쓸 때 셔터음이 나는 것은 법으로 이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몰카 방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일상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몰카에 사용될까 법으로 셔터음을 강제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몰카 방지에 민감하다면, 왜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어 보이는 진짜 몰카는 아무런 제재 없이 아무에게나 팔리고 있는 걸까요?


출처 - 허핑턴포스트


지난달 31일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팬사인회에 이른바 몰카 안경을 쓰고 참석한 남성이 걸그룹 멤버에게 걸린 거죠. 연예인으로서 수많은 카메라 샤워를 받는 입장이겠지만 최소한 그건 자신이 찍힌다는 걸 자각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아무리 연예인이더라도 자신이 카메라에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도 없이 몰래 찍히는 건 인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근거가 희박한 꼬투리를 잡아 많은 음식점을 망하게 한 〈먹거리 X파일〉도 이런 몰카 안경을 쓰고 무리한 취재를 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기술이 발달해 몰카용 장비를 육안으로는 식별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졌습니다. 이미 논란이 된 안경 모양은 물론 자동차 키홀더, USB, 만년필, 라이터, 넥타이 단추 같은 형태의 초소형 위장 카메라를 10만 원대부터 비싸야 4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몰카에 대한 관리나 제재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운상가 등 몰카 장비 관련 전문가들도 소리나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는 송수신기가 달려 있다면 모를까, 초소형 몰카로 상대방이 지금 나를 찍고 있는지는 그 자리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더구나 몰카를 파는 사람들은 이용 목적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암묵적인 금기사항이랍니다. 괜히 손님 비위 상하게 해서 물건을 못 팔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요즘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는 몰카를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스토킹'에 이어 성행위 촬영물을 복수할 목적으로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마저 횡행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몰카를 일상적으로 팔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구매자의 양심에만 기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총을 무제한으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입니다. 몰카와 리벤지포르노의 메카로 십수 년을 끌어온 소라넷이 지난해에야 겨우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양심에만 기대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요?


출처 - 한국일보


몰카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자 국회는 디지털 성폭력 고발단체인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이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에 제안한 몰카판매금지법을 정식으로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과 남인순 의원이 입법화를 검토 중입니다. 이 법은 몰카 구매에 대한 전문가 제도 마련, 몰카 구매자 관리 시스템 도입, 전문가 외 몰카 소지 불법화,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 개선 의무교육 등을 제안해 일주일 만에 1만 5000여 명의 시민이 지지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여성 혐오 범죄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하는 분석입니다. 

 

현 20대 국회 출범 1호 발의 법안도 스토킹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었습니다. 벌금 10만 원에 불과한 스토킹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개정하려는 겁니다. 또한 현재 명예훼손죄로만 다뤄지는 리벤지 포르노도 성폭력으로 처벌토록 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발의된 상태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몰카 야동이 피해자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는 걸 비춰보면 당연한 개정입니다.


출처 - 채널A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런 법안들이 무사히 통과되어 공포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겠지만, 돼지 발정제를 이용한 강간 모의를 젊은 시절의 치기와 추억으로 치부할 정도로 성범죄에 대한 개념과 젠더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현실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이번 2016 리우 올림픽은 예년에 비해 열기가 뜨겁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출전한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무더운 여름밤을 이겨낸 분이 많으실 줄 압니다. 이번 리우 올림픽을 통해 우리나라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하나하나 드러나 사람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겼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우선 도핑 적발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박태환 선수를 수영협회 차원에서 편법적으로 출전시켰음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으로 이어졌죠. 여기서 메달을 땄느냐 못 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간 박태환 선수와 대한수영연맹, 대한체육회 사이의 분열과 갈등 양상은 한국 수영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했습니다. 금지약물 양성반응으로 박태환 선수가 국제수영연맹의 선수자격 정지징계를 받은 이후 국가대표 선발 규정을 놓고 보인 대한체육회의 행보는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가까스로 출전할 수는 있었으나 훈련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고 제대로 된 지원도 받지 못했죠. 기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갖춰지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유도 대표팀은 또 어떻습니까? 사상 최악의 결과라며 여기저기서 성토가 끊이질 않았죠. 세계 랭킹 1위인 선수가 무려 4명이나 출전했음에도 금메달 하나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비판 여론의 근간에는 메달 획득 여부보다 한국 유도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 컸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984년 LA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하형주 선수를 기억하십니까? 지금은 동아대학교 예술체육대학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형주 학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유도의 부진 원인으로 전략 실패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출처 - 머니투데이

 

하형주 학장의 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한국 유도 대표팀이 일본 선수를 피하고자 올림픽에서 유리한 시드를 받으려는 목적으로 세계 랭킹을 올리는 데 주력한 것이 문제였다고 합니다. 세계 랭킹을 올리기 위해 우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많이 참석해야 했는데, 바로 이것이 독이 되어 돌아왔다는 분석입니다. 세계 랭킹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합을 소화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의 전력과 약점이 쉽게 노출되었다는 겁니다. 한편 하형주 학장은 용인대 출신이 독점한 한국 유도계의 구조적 병폐에 대한 비판도 비껴가지 않았습니다. 파벌로 얼룩져 경쟁이 없는 한국 유도계가 부진을 면치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다른 종목을 놓고도 다양한 문제점을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현재 대한민국 체육계의 가장 큰 문제는 승자독식 구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스포츠는 저변 확대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라 성과를 거두는 종목 위주로 지원해주는 구조가 잡혀 있습니다. 중계되지 않는 종목이나 사람들의 관심이나 호응이 떨어지는 종목, 메달 종목이 아니라면 지원을 받기조차 어렵죠. 이 때문에 승부조작이 난무하고 높은 순위를 받기 위해 약물 복용, 편파 판정, 폭력 사태, 파벌 다툼 등의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기 일쑤입니다.

 

출처 - 한국경제

 

2014년 12월 28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스포츠 4대악'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여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긴 바 있습니다. 그동안 쉬쉬했던 체육계 비리의 실체가 민낯을 드러내는 순간이었죠. 체육계 비리 조사 '스포츠 4대악' 신고는 2013년 5월 한 태권도 선수의 아버지가 심판의 편파 판정에 항의하다 목숨을 끊은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마련된 조처였습니다. 그 이후 상황이 개선되었을까요?

 

출처 - 연합뉴스

 

지난 2015년 《연합뉴스가》 51개 주요 언론사의 스포츠 담당 부서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발표한 〈2015년 스포츠 10대 뉴스〉에서 프로야구 선수의 원정도박, 프로축구의 심판 매수, 승부조작, 입시부정, 도핑 사건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진 한국 스포츠의 부끄러운 모습이 가장 큰 뉴스로 뽑혔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가 얼마나 타락했는지를 보여주는 자화상입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죠. 스포츠는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특출난 스포츠 인재를 키워내는 체계가 아니라 사회체육과 생활체육이 기본이 되어 다양한 스포츠 분야를 즐기는 사람이 많아져야 하고 그 안에서 서로 다른 재능을 발현하는 운동선수가 나타나야 합니다. 공자는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말을 남겼죠.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리우 올림픽을 계기로 체육계의 문제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널리 알려지고 운동선수들이 즐겁고 행복하게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최근 선수촌 몰카 촬영 파문은 이런 기대에 다시 한 번 찬물을 끼얹고 말았습니다.

 

출처 - SBS


남자 수영 국가대표 선수인 정 모 씨가 진천 선수촌 수영장 여자 탈의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여자 수영 국가대표 선수들의 알몸을 촬영해 친구한테 보여줬다가 신고를 당해 발각된 건데요. 다른 사람도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선수가 몰카 범죄를 저질렀기에 이를 대체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 모 씨가 3년 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수영대회에서도 여자 탈의실의 몰카를 찍다가 적발된 적이 있는 상습범이었다는 겁니다. 심지어 2009년 말 당시 고등학생일 때도 자신이 다니던 체육고등학교 수영장의 여성 탈의실에서도 몰카를 찍다가 발각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변태 상습범이 국가대표로 활동할 수 있었을까요?


출처 - 뉴시스


원인은 문제가 불거졌음에도 이를 제대로 징벌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3년 전 제주대회 때 적발된 정 모 씨를 비롯해 수구 선수 등 3명은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영구 제명을 당합니다. 당연한 일이죠. 그런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 비정상적입니다. 몇 달이 지나자 영구 제명이란 말이 무색하게 그들의 선수 자격이 회복되었습니다. 가해 학생들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국가대표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앞날을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쯤 되면 다들 예상하시겠지만 결국 '연줄'로 해결된 것이었습니다. 정 모 씨의 지도자가 수구 대표팀 코치였고, 당시 연맹의 실세인 정 모 전무가 개입했습니다. 대한수영연맹의 정 전무는 국가대표 선발 비리와 각종 금품수수 혐의로 올해 구속된 인물로, 10년 넘게 수영연맹의 각종 비리에 관여해온 핵심 관계자입니다.

 

한국 남자들 사이에 만연한 변태적인 성 관념, 사회적으로 만연한 연줄과 비리, 쉬쉬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기고 솜방망이 처벌이 뒤따르는 현실. 어떻게 보면 헬조선의 축소판과도 같은 사건입니다. 현재 몰카 촬영 가해자인 정 모 씨는 경찰에서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동조자인 다른 한 명은 군 소속이라 헌병대에 넘겨졌지만 혐의를 부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선수촌 몰카 파문이 확대되자 안종택 국가대표팀 감독은 사퇴했고 다른 선수들은 진천선수촌 입촌을 거부해 한국 수영팀은 사실상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리우 올림픽을 돌아보고 분석하여 다음 대회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 선수들, 특히 여자 선수들은 엄청난 일의 피해자가 되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라면 2019년 우리나라에 유치한 세계선수권 대회를 어떻게 준비할 것이며, 외국 수영선수들이 변태 같은 몰카 파문이 일어나는 한국에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출처 - 비주얼다이브


국가대표 수영선수들의 몰카 파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만연한 몰카 범죄의 근원에는 왜곡된 성 관념, 특히 남자들의 잘못된 성 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본능이라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러느냐는 식의 생각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초소형화된 카메라나 누구나 쓸 수 있게 된 고화질 스마트폰 카메라 때문에 발생하는 우발적인 범죄로 치부하고 넘어갈 일도 아닙니다. 스마트폰 촬영 시 소리가 나게 하는 나라는 몰카 왕국인 일본과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몰카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현실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사회적인 대응이 필요한 때입니다.

출처 - 비주얼다이브


몰카 범죄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비겁한 죄를 저지르는 사람의 문제이며 그걸 보는 사람들 역시 기본적인 도덕성이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타인의 알몸이나 은밀한 부위, 성행위 등을 몰래 촬영하고 그것을 돌려보는 행위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훼손하는 심각한 범죄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특히 여성 모르게 은밀하게 훔쳐보는 행위를 통해 여성이 자신의 밑에 있다는 정복감과 우월감을 변태적으로 채우고 있는 남성이 우리 사회에 많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사회적인 대응과 관리가 절실하다는 방증입니다. 몰카에 찍힌 피해자는 불안함과 수치심으로 오랜 시간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하는 한국 남자들의 왜곡된 성 의식은 〈SBS 스페셜〉에 나온 한국에 사는 외국인(로빈, 일리야)이라는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출처 - 매일경제


지난 8월 30일, 경찰이 수사를 진행한 결과 서버를 폐쇄하여 사라진 줄 알았던 소라넷이 9월 5일 부활한다는 공지가 SNS에 올라왔습니다. 불법 몰카를 유포하고 집단 성폭행을 모의하는 등 우리나라 성 의식의 밑바닥을 보여주었던 소라넷이 서비스를 재개하겠다고 예고하여 사회적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운영하든 '소라넷'이라는 이름을 단 사이트를 부활시켜 같은 범죄행위를 반복하고 이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생긴다면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왜곡된 성 의식을 바로잡고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안은 비단 이번에 문제가 불거진 스포츠계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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