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참여연대와  은수미 국회의원실이 공동으로 진행하여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정부의 메르스 확산에 대한 대응 실패로 민심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전국 19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0퍼센트가 정부 대책을 불신했고, 88퍼센트가 메르스 감염 지역, 병원 정보를 진즉에 공개해야 했다고 보았습니다.

 

메르스 확진 환자가 점차 늘어나는 가운데 사회적 불안 심리 또한 진정되지 않고 있는 형국입니다. 정부의 초기 대응 실패도 문제였지만, 메르스 확산을 막기 위한 예방적 차원에서 집중 보도에 신경을 기울였어야 할 신문과 방송이 공포를 조장하면서 국민의 혼란을 부추긴 점도 간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오늘은 메르스 정국으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가운데 우리가 지나쳐서는 안 될 중요한 문제 하나를 살펴보려 합니다. 바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법외노조화 사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조사에서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제에 대해서는 조사자 중 반대가 40.9퍼센트, 찬성이 30.2퍼센트, 잘 모르겠음 28.8퍼센트로 반대 의견이 우세했습니다.

 

 

거꾸로 가는 노동계, 사법계의 시곗바늘과 인권 문제

 

보수정권의 눈에서 벗어난 전교조를 분쇄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의 고용노동부(이하 고용부)는 2013년 10월 해직교사가 전교조에 가입한 것 등을 이유로 삼아 전교조를 교원노조법상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에 전교조는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법률적 근거가 없다면서 취소 소송과 함께 효력정지를 신청합니다. 2014년 6월 1심 재판부가 고용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전교조는 합법노조로서 그 지위를 박탈당할 위기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런데 2014년 9월 2심 재판부가 효력정지와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항소심 선고까지 합법노조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죠.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애초 박근혜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판단하면서 근거로 삼은 교원노조법 제2조는 '교원이란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교원을 말하며 해고된 사람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이 있을 때까지만 교원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교원노조법 제2조는 노동자의 단결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과잉금지원칙과 평등권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그렇기에 2014년 서울고등법원(이하 서울고법)이 교원노조법 제2조의 위헌성을 지적하며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것이죠.

 

그런데 지난 5월 28일 헌재가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을 선고하면서 전교조는 법적 지위를 상실할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이 합헌, 1명이 위헌 의견을 내어 합헌으로 결정한 것이죠. 이번 헌재의 결정은 '해직된 교원은 노조원이 아니다'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로써 헌재는 전교조를 사실상 법외노조로 인정한 셈이나 다름없습니다. 

 

출처 - 한겨레

 

헌재는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해직조합원이 조직의 자주성을 해친다는 논리를 들먹였습니다. 그러나 조합원이 6만 명에 달하는 전교조에 단 9명의 해직자가 포함되어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를 합법노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작년 말,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며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장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린 헌재의 선고를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유일하게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등의 일부 세력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기각 의견을 낸 바 있습니다. 통진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만 3만 명이 넘는 탄탄한 정당인데 문제를 일으킨 몇몇의 행동을 통진당이라고 하는 3만 명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논리를 제기한 것이죠.

 

김이수 재판관은 이번 교원노조법 제2조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헌재에서 유일하게 반대 의견을 냈습니다. 그는 교원노조법 제2조의 입법 목적이 다른 행정 수단과 결합하여 노조의 자주성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면서, "해당 법률 조항은 교원노조의 자주성을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반면 헌재의 결정대로라면 전교조에 법외노조를 통보하고 설립을 취소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시도가 오히려 전교조의 자주성을 지키는 것이 됩니다. 과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걸까요?

 

전교조는 물론 야권은 헌재의 결정이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린 폭거라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노조의 자주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에서 시대착오적이고, 노동권에 대한 보편적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결정이기 때문에 스스로 노동탄압 국가라는 증명을 한 셈이라는 겁니다. 조직에 9명의 해직자가 있다고 해서 6만 명의 조합원이 있는 노조를 법 밖으로 몰아내도 되는 걸까요? 부당한 처우를 받은 교사를 보호할 수단이 공식적으로 법의 인정을 받은 노조인 전교조였건만, 이제 그런 보호의 테두리마저 끊길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출처 - 한국경제

 

설상가상으로 지난 6월 2일 대법원 1부는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전교조의 신청을 받아들인 서울고법의 결정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 지난 5월 28일 헌재의 결정이 영향을 미친 겁니다. 대법원은 "헌법재판소가 교원노조법 제2조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으로 결정했다"며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사유가 인정된다고 본 원심의 판단에는 행정소송법 제23조에서 정한 집행정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 이외의 사유로 법외노조 통보 효력을 정지할 것인지는 서울고법이 다시 심리하게 됩니다. 대법원이 "나머지 재항고 이유에 대한 판단을 생략한 채 원심 결정을 파기한다"고 밝혔기 때문입니다. 서울고법의 파기 환송심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헌재의 합헌 결정에 대법원의 원심 파기까지 더해져 서울고법이 전교조의 합법적 지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더구나 파기환송 사건은 원심 결정을 내린 서울고법 행정7부가 아닌 다른 재판부가 맡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교조가 박근혜 정부의 무력화 시도대로 합법적 지위를 상실하여 법외노조가 된다면 교육부는 노조 전임자들을 교단으로 복귀시켜 전교조를 붕괴하려 하겠지요. 이와 더불어 조합비 원천징수 금지, 사무실 퇴거 등의 조처로 전교조를 해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투쟁에 나서고 국제사회에 호소해 힘을 빌릴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처음부터 가시밭길 걸은 전교조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 못 하고 슬퍼하는 아이들... 26년 전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전교조는 1987년 민주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전국교사협의회가 모태입니다. 1989년 7월 1일 당시 문교부는 교사의 노조 결성 행위가 불법이라며 1527명에 이르는 교사를 파면·해임했습니다. 26년 전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어이없는 풍경은 이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입니다. '민족·민주·인간화 교육'을 기치로 내세우고 참교육을 표방했던 수많은 전교조 선생님이 교단을 떠나야 했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선생님을 잃어야 했습니다.

 

해직교사 1329명은 1994년 교단으로 돌아갔지만, 합법화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시민사회의 촉구와 국제노동기구(ILO)의 전교조 노조 인정 권고안을 채택하는 등 국제사회의 지지까지 이어지자 1999년 교원노조법이 국회에서 통과됩니다. 이에 따라 전교조는 불법으로 내몰린 지 10년 만인 1999년 7월 6만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합법노조로 공식 인정받게 됩니다. 선생님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사회적 연대 속에서 전교조는 촌지 근절과 부패사학 척결운동 등으로 사회적 지지를 받으면서 한국교총과 더불어 교원단체의 양대산맥을 형성하게 되었죠. 

 

그런데 2006년 교원평가 등에 반대의 뜻으로 집단 연가투쟁을 벌이고, 2008년 이른바 '광우병 파동'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데 앞장서는 등 전교조가 강경 노선을 유지하며 정치 이슈에 힘을 기울이는 사이 내부의 반발도 있었고 정권의 탄압·회유로 말미암아 회원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위기 상황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전교조는 어려움 속에서도 인권과 민주주의와 참교육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출처 - 경기일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교조와 교육부를 중심으로 갈등은 다시 고조되었습니다. 2008년 일제고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교사 12명이 파면·해임됩니다. 2010년에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전교조의 규약을 문제 삼고 나섰습니다. 고용부는 이 규약을 바로잡으라고 명령했고 전교조가 이를 거부하며 시정명령 취소소송을 합니다. 이때부터 정부와 전교조 사이에 소송전이 시작되었죠. 2012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전교조가 2차 시정명령에 따르지 않자, 정부는 2013년에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법외노조 통보를 하겠다고 최후통첩합니다. 이때부터의 상황은 앞서 정리한 바와 같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출처 - 한겨레

 

헌재가 교원노조법 제2조 합헌 결정을 내린 지난 5월 28일은 전교조의 26번째 생일이었습니다. 생일에 사형선고를 받은 셈입니다. 아이들의 교육과 권리를 위해서도 교사의 권리를 지킬 보루인 전교조가 필수적입니다.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인 교육을 맡은 교사의 노동권이 인정받지 못하는데 다른 노동권이 인정받을 수 있을 리 만무합니다.

 

자주성 원칙에 따라 조합원 자격은 노조 스스로 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에 확립된 기준입니다. 이에 참여연대는 "노조의 조합원 자격은 노조가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할 일이 아니다"고 비판했습니다. 헌재에서 소수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이 교원노조법 제2조가 원래 입법 목적과 달리 이번 사례처럼 행정관청이 재량을 남용하는 근거로 악용되어 교원노조의 자주성과 단결권을 본질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고 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앞으로 전교조와 고용부는 법외노조 통보가 적법한지를 두고 공방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헌재가 이번 결정이 고용부의 법외노조 통보가 적절했다는 취지는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래 박근혜 정부까지 사회 곳곳에서 노동 탄압이 심해지고 있습니다. 험난한 시국을 헤쳐나갈 전교조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헌정 사상 최초로 헌법재판소(헌재)에 의해 정당이 해산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19일 헌재의 결정으로 통합진보당(통진당)이 해산되었는데요, 다소 놀라웠던 점은 재판관 사이에 갑론을박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8 대 1의 압도적인 의견으로 해산 결정이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보수 진영은 헌재가 정의를 구현했다며 일제히 쾌재를 불렀고, 일부 진보 진영과 법률가들은 일단 헌재의 판단을 존중하긴 하지만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문은 법률에 대한 지나친 과대 해석과 사실관계 왜곡으로 정당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었다며 저항하는 모양새입니다.


출처 - 기자협회보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주목하라


헌재는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며 대한민국 정부(법무부 장관)가 청구한 통진당 해산 청구에 대해 재판관 8 대 1의 의견으로 해산 및 소속 국회의원 5인의 의원직 상실 결정을 내렸습니다. 공안 검사 출신 두 명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나 이처럼 압도적인 의견차는 가히 충격적입니다.


출처 - 서울경제


헌재의 다수는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 이념 활동을 해왔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당이며 폭력에 의한 이념 실현을 위한 활동을 해왔다며, 이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했습니다. 현재 내란음모 및 내란선동죄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는 이석기 전 의원 등 이른바 RO조직과 활동이 통진당의 주도 세력이며 의지인 것으로 판단한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에 심대한 위협을 끼치는 종북정당으로서 폭력에 의한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 정당이니 이 위험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당 해산 결정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이에 반해 유일하게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이석기 등의 일부 세력의 활동을 통진당이라는 정당 전체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라며 기각 의견을 냈습니다. 생각비행은 일전에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라는 기사를 통해 법리적 판단이 상식적이지 않을 때 다수의 의견이 옳은 것만은 아니며 소수의 의견이 옳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김이수 재판관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김이수 재판관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 그리고 그 의미는 가능한 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수용 가능한 해석 방법론에 의해 확정돼야 하고 또 정당 해산의 요건을 해석하고 적용함에 있어서는 어떤 논리적 오류나 비약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통진당에 은폐된 목적이 있다고 하는 대한민국 정부의 말도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할 사항인데, 통진당 해산을 청구한 정부는 이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통진당은 당비를 내는 진성 당원만 3만 명이 넘는 탄탄한 정당인데 문제를 일으킨 몇몇의 행동을 통진당이라고 하는 3만 명 전체의 의지라고 생각하는 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논리입니다. 또한 단순히 기존 체제에 도전한다는 것을 민주주의를 향한 전복적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체제에 대한 비판은 민주국가 어느 곳에서나 세대별, 계층별로 늘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통진당 해산 헌재 결정의 후폭풍


출처 - SBS


많은 이가 비판한 내용처럼 법률을 논리적 비약 없이 엄정하고 합리적으로 적용한 판단은 소수 의견에 가까웠습니다. 다수 의견의 논리 비약과 끼워 맞추기식 해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화 변호사는 최종 변론 이후 한 달도 안 돼 정당 해산 결정이 났다는 건 재판관들이 17만 쪽 분량의 증거 자료를 안 봤다는 이야기라고 비판했습니다. 민사든 형사든 재판이라면 응당 판사가 선고하기 전에 증거 자료를 보고 어느 주장이 옳은지 판단해야 하는데, 이런 기초적인 과정을 생략하거나 무시했다는 얘기입니다. 1950년대에 있었던 독일 공산당 해산도 심리 기간이 4년 7개월이나 되었습니다.


출처 - 국민TV


미심쩍은 면은 한둘이 아닙니다. 헌재 결정문에 쓰인 A씨는 형사소송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이 회합 참석자로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사람이고 현재 당원도 아닙니다. RO모임 참석자로 언급한 B씨도 형사소송에서 거론되지도 않았고 실제로도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는데 결정문에 등장합니다. 헌재는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사실상 오류를 시인했습니다. 이쯤 되면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은 애초에 무리수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국민TV


사안에 비해 지나치게 짧은 결정기일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당선 2주년 선물로 일정을 짜 맞춘 게 아니었느냐는 추측마저 나돌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인혁당 사건에 이은 사법살인에 가깝다는 표현도 서슴지 않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통진당 해산 결정의 후폭풍이 크고 다양합니다. 일단 일반적인 해석은 이번 결정이 오히려 민주주의에 심대한 타격을 안길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소수 의견인 김이수 재판관은 해산 결정은 비례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며 해산 결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사회적 이익이 크지 않은 반면 해산 결정으로 초래될 사회적 불이익은 민주 사회의 순기능에 장애를 줄 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정당 해산 결정이 우리 사회가 추구하고 보호해야 할 사상의 다양성, 특히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고 훼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자의 정치적 자유를 위협하는 일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마자 고영주 변호사 등은 통진당 당원 전원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고영주 변호사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주요 사건으로 등장한 부림사건을 담당한 검사였습니다. 누구든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던 검사 출신 변호사인 것이죠. 지난 9월 부림사건이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자 사과나 반성도 없이 좌경화된 사법부가 자기 부정을 했다며 비난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없는 간첩도 만들어서 족치던 군부독재 시절을 생각할 때 신유신 정국의 박근혜 정부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검찰은 한술 더 떠 통진당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등에 대해 일반 당원들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총 13만 명입니다. 통진당 거리 집회를 모두 촬영해 검토 후 수사에 착수한다고 합니다. 일사천리로 '모조리 꼼짝하지 마'라는 위협이자 경고가 아니겠습니까? 



지나친 헌재 의존도 문제,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사실 통진당 해산 문제는 헌재가 해결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적으로 해결할 문제였지요. 만약 정말로 통진당이 사회에 타격을 입히는 정당이고 민심이 돌아섰다면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손으로 정당의 존재 유무가 판가름 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무슨 문제만 벌어지면 정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사법부, 특히 헌재에 대한 의존을 키워왔습니다. 그러다 결국 정당 해산 결정이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삼권분립이 명확해야 하는데 행정부나 입법부의 문제마저 사법부가 판단하다 보니 헌재가 필요 이상의 정치적 권력을 갖게 된 꼴입니다.

 

출처 - 문화일보

 

국민의 지지가 없는 정당이라면 어떤 활동 근거가 있겠습니까? 그런 정당이라면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석기 내란 음모와 폭력 사태, 투표 조작 등 갖가지 의혹으로 누가 봐도 국민의 마음이 통진당에서 다소 멀어졌다고 볼 수 있는 때였습니다. 통진당 스스로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을 때 정부가 청구하고 헌재가 결정한 강제 해산으로 통진당은 탄압받는 피해자의 지위를 재차 획득했습니다. 이런 복잡하고 미묘한 정치적 엇갈림이 앞으로 대한민국 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이러한 때에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을 두고 "자유민주주의를 확고하게 지켜낸 역사적 결정"이라고 했다지요. 박근혜 정권이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란 대한민국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과 참 멀어 보입니다.

 

정치판의 혼돈 상황이 극에 다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진보 정당'을 창당하려는 진보 진영 일각의 움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세균 서울대 명예교수와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 명진 스님 등 진보 성향의 학계·종교계·문화계 인사가 주축이 된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국민모임)'은 지난 2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보적 대중정치' 복원과 '평화생태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했습니다. 통진당 해산이라는 정치권의 큰 문제와 맞물려 신당 창당 움직임이 어떤 효과를 자아낼지 궁금해지는군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이 알려진 이후 《뉴욕타임스》와 BBC 등 외신은 박근혜 정부가 정치인을 종북으로 몰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며 비판했습니다. 이 가운데 세계 헌법재판기관 회의체인 베니스위원회는 헌재 해산 결정문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999년에 베니스위원회는 정당 해산의 근거를 폭력의 행사 등으로 엄격하게 하고 당원 개별 행위에 대해서 정당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등의 규정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과연 베니스 위원회는 이번 통진당 해산 결정문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정부와 기업에 이어 이젠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마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됩니다.


검열의 역사는 뿌리 깊습니다. 과거 왕권과 종교의 권위에 도전하는 책을 금서로 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음란과 폭력을 통제한다는 미명하에 이뤄지는 검열에 이르기까지 검열은 지배자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된 측면이 다분합니다. 권력에 의해 자행되는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면 피통치자는 검열의 '끝판왕'이라고 할 자기 검열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속칭 '알아서 기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은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검열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비화합니다. 생각비행은 검열의 헤게모니를 쥐고 표현의 자유를 억합하려는 국가와 정부의 문제를 줄곧 비판적인 시각에서 다뤄왔습니다.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http://www.ideas0419.com/145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http://www.ideas0419.com/192

 

정보조작 의혹으로 살펴보는 SNS 심의의 허구성
http://www.ideas0419.com/280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http://www.ideas0419.com/354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http://www.ideas0419.com/448

 

삼일절에 돌아보는 헌법의 근본정신
http://www.ideas0419.com/456

 

증거 조작 시대에 꼭 봐야 할 영화 5편
http://www.ideas0419.com/459 

 

안타깝게도 2014년 현재 광주에서 예술가의 작품을 검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광주 비엔날레



광주비엔날레, 박근혜 비판을 금지하다


민주화의 상징 도시 광주에서 격년으로 열리는 광주 비엔날레는 올해로 20돌을 맞은 현대설치미술전시회입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생긴 비엔날레로 국제적 위상도 매우 높습니다. 올해 9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에 17개 나라,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그간 쌓아온 위상을 일거에 허물어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비엔날레 창설 20돌을 맞아 광주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특별전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비엔날레 측이 정치적인 이유에서 특정 예술 작품의 수정을 지시하고, 그 수정본조차 전시를 거부한 일이 사건의 발단입니다. 문제 작품은 민중미술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입니다.


출처 - 뉴시스


광주비엔날레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을 거부한 이유를 보면 기가 막힙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대통령을 작품에서 허수아비로 표현했기 때문인데요, <세월오월>은 세월호 참사로 불거진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실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 올라가 결국 518 광주에 닿는 작품입니다.

 

작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 김기춘 비서실장,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문창극 총리 후보자, 이명박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등장합니다. 광주 비엔날레 측은 박정희로 보이는 군사독재 정권과 김기춘에 의해 조종되는 허수아비로 묘사된 박근혜 대통령 부분을 수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홍 작가는 고민 끝에 박근혜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형상화한 내용을 닭으로 수정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그러나 광주비엔날레 측은 홍 작가의 작품 전시를 유보했고, 보수단체들은 홍 화백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하기에 이릅니다. 홍 화백은 "세월호를 들어 올려서 아이들을 탈출시켜 우리 품 안에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그림의 주제도 못되고 부제일 뿐이다. 세월호 사건은 단순한 침몰 사고가 아니라 학살사고이고 그 이유는 박근혜 대통령에 있다고 생각해 그림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림 수정으로 작품이 담고 있는 원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윤장현 광주시장은 작가의 작업에 간섭하지 않겠다며 취소 결정을 뒤집고 비엔날레 재단이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서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하지만 비엔날레 재단은 결국 <세월오월> 작품의 전시 유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로써 <세월오월>은 특별전 장소인 광주시립미술관에 걸리지도 못한 채 특별전 개막식이 열렸습니다.

 

특별전을 총괄해온 책임 큐레이터는 <세월오월> 전시 유보가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강행된 결정이라며 개막식에 앞서 사퇴를 표명했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말입니다. 애초 계획된 특별전 개막식은 5분 만에 파행으로 끝났고, 2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는 5.18 정신을 세계에 알리기는커녕 그 정신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작가들의 공동 대응, <세월오월>의 전시를 허하라!


지난 8일 특별전 개막식장 바깥에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세월오월> 작품의 게릴라 전시가 기획되었습니다. 홍성담 작가를 포함한 다른 작가들이 <세월오월> 작품의 수정된 그림을 4배 크기로 확대한 프린팅을 가지고 외부에 전시하는 항의 퍼포먼스를 벌이려 했으나 사복경찰 50여 명이 동원되어 이를 막는 소란이 일었습니다. 이후 홍 작가의 거주지를 사복경찰이 감시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자 광주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이 공동 대응에 나섰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이윤엽, 홍성민, 정영창 작가는 지난 11일 오전 광주비엔날레 20주년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년 그 후’에 출품했던 자신들의 작품을 자진 철거했습니다. 작가들은 홍성담 작가의 <세월오월> 검열에 항의하면서 이 작품을 전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출처 - 광주일보


광주비엔날레 보이코트 움직임에 국제적인 반향이 일고 있습니다. 일본 오키나와 미술계가 출품작의 철회 의사를 밝히며 홍 작가의 <세월오월> 작품 전시를 요청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키나와 미술계는, 예술은 정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문제로 제안하는 행위이므로 예술 작품은 정치의 힘으로 막을 수 없으며, 그렇지 못하다면 비엔날레의 이념이 무너진 것이니 참여할 의미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서 가장 주목받는 독일 판화가 케테 콜비츠의 작품을 오키나와 미술계가 대여해주었기 때문에 오키나와 미술계가 전시를 철회할 경우 광주비엔날레는 국제적인 망신을 면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태는 광주시와 광주비엔날레 측이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보면서 벌어진 촌극에 가깝습니다. <세월오월> 작품 중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광주민주항쟁으로부터 이어진 민주정신이 세월호 참사로부터 사람들을 구해낼 수 있다는 승화와 치유가 작품의 전체적인 주제입니다. 

 

설사 홍 작가의 작품 주제가 직접적인 박근혜 비판이라 할지라도 정치권이나 행정력이 예술에 과도하게 개입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일반적인 장소가 아니라 예술적 표현의 극한을 맛볼 수 있어야 할 예술전시회장에서 이번과 같은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권력의 검열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가 얼마나 경직되어 있는지 드러나는 지표가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보고 몸을 사려야만 무사할 수 있다는 자기 검열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다른 곳도 아닌 민주화의 성지인 광주가 독재자의 딸을 무서워하며 알아서 기다니 참혹한 심정입니다.

 

 

박근혜 정부, "자유 없는 민주주의"를 꿈꾸는가?


 

출처 - 한겨레


작년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월간 《현대문학》이 원로소설가 이제하와 정찬, 서정인의 소설 연재를 정치적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중단시킨 것이죠. 그러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을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문학에 이어 이번에는 미술 다음에는 어떤 예술이 권력 앞에 굴복하고 자기 검열을 하게 될까요? 독재자의 그늘에서 비롯된 박근혜 정권의 어둠이 우리 사회에서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술계의 연대와 시민의 관심과 비판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종북몰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면서 "자유 없는 민주주의"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닙니다. 2013년 12월 16일 국회 세미나실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와 언론탄압 2차 사례발표'에 참석한 유종성 교수(미국 UC샌디에고)는,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 요소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는 것은 자유 없는 민주제"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 부정 당선 의혹, 국정원과 국방부가 연류된 부정 선거와 댓글 조작 의혹, 이를 수사하던 검찰의 수장을 혼외아들 문제로 찍어낸 의혹, 국가정보원의 유오성 간첩조작사건 등을 바라보면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세월호 참사가 단순한 선박 침몰 사고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퇴행과 깊은 연관 관계가 있으며, 총제적인 구조 실패가 독재 국가에서나 나타날 법한 정권의 경직성 때문이라는 비판적 분석이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어제(8월 12일) 《경향신문》에 홍성담 작가를 인텨뷰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내 그림 '수장고'라는 감옥에 가두지 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전달하는 것으로 이번 기사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왜 이런 작품을 구상했나.

“올 1월부터 ‘광주 정신과 관련한 전시회를 하는 데 걸개그림을 그려 달라’는 요청이 있었는데 수차례 거절해 왔다. 그런 와중에 세월호가 침몰했다. 내 작업실이 안산에 있는데 단원고 2학년생 2명을 아르바이트로 써 왔다. 이 중 한 명도 숨졌다. 사고 이후 진도 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을 오가며 나흘을 보냈다.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한국의 자본주의와 부패한 관료, 국민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국가 시스템이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세월호와 5·18은 국가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작품을 결정했다.”

 

-박 대통령 풍자 장면은 꼭 필요했나.

“세월호 침몰로 304명이 죽거나 실종됐지만 정부는 아무것도 못 했다.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박 대통령에게서 유신의 그림자를 봤다. 대통령은 유신의 어두운 그림자들의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사건이 발생한 정치적 원인은 반드시 밝혀서 증언하고 기록해야 한다. 역사적 사건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록할 임무와 의무가 민중미술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광주시는 ‘시의 예산이 지원됐는데 정치적 내용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광주시에서 5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전체 제작비는 1억원 정도 들었다. 작품은 기획 단계부터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광주 정신은 저항 정신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들에게 저항하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광주 정신을 알리겠다는 전시회에서 이런 정도의 권력에 대한 풍자와 패러디도 못 한다면 광주 정신은 집어치워야 한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전시가 불가능하다면 작품은 작가에게 돌려줘야 하는데 시는 미술관 수장고에 넣어 둔 채 감옥살이를 시키고 있다. 세상에 빛을 못 보게 하려는 술수다. 광주시가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다. 윤장현 시장이 책임지고 담대하게 결정을 내려야 할 때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은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와 압제에 항거하여 만세시위를 펼친 역사를 기념하는 제95주년 삼일절입니다.

2014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3.1운동의 의미를 독립운동(민족혁명)이라는 좁은 의미로 이해할 게 아니라 민주혁명으로서 그 진정한 의미를 되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찬란한 '3·1 혁명', 누가 '3·1 운동'으로 바꿨나). "1919년 3월 1일부터 국내외 각지에서 일어난 독립선언과 만세시위는 민중의 힘으로 주권재민의 근대국민국가 수립과 일제 식민통치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 민족·민주혁명이었다"는 주장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3.1운동을 3.1혁명으로 복권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늘 이 자리에서 논의하려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선열이 흘린 핏값을 토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헌법 제1조를 얻었습니다.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나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며 과연 헌법의 근본정신이 이 시대에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수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있건만, 정작 국가가 국민의 권익을 보장하지는 못할망정 죄 없는 시민을 간첩으로 내모는 일이 지금 이 땅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실 국가가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23년 만에 무죄 판결.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 사건을 잘 아실 겁니다. 이 사건은 1991년 명지대생이었던 강경대가 시위 도중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해 분신한 김기설의 유서를 전민련 총무부장이었던 강기훈이 대신 써줬다는 혐의로 구속되어 3년을 복역한 시국사건입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운동권은 유서까지 대신 써주며 동료의 자살을 종용하는 파렴치한으로 몰렸습니다. 먹이를 물은 듯 주류 언론은 연일 맹공을 퍼부었고, 이 때문에 민심이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물론 강기훈 유서대필 의혹은 조작이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사회와 일부 언론은 사건 초기부터 유서 대필이 검찰의 조작이라는 의혹을 제기해왔습니다. 6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오랜 시간 동안 20대 피고인은 어느덧 50대가 되었고, 30대 변호인은 60대가 되었습니다. 그간 유서를 대신 써주며 동료의 분신자살을 방조한 범죄자라는 누명을 감내해야 했던 강기훈에게 드디어 무죄 판결이 났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이 말은 무죄 판결을 받은 김용판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읊조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삶이 뒤틀린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 판결로 그분들의 아픔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 말은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의 소감이다.


1991년 12월 4일 서울형사지법의 유죄선고가 있은 지 만 23년 만입니다. 재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형사10부(권기훈 부장판사)는 13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 6월을 선고받았던 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이날 법정 안은 숙연했고 박수 소리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출처 - 중앙일보

강씨의 변호인단은 “재판부가 검찰의 무리한 추론은 받아들여 ‘운동권은 목적을 위해 유서를 대신 써주기도 하는 집단’이라는 엄청난 편견을 합리화시켜줌으로써 그동안 대필 여부를 두고 사실관계로 두터던 사건을 정말로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만들고 말았다.”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상식의 승리‘라는 드레퓌스 사건 당시 조르쥬 클레망소의 말대로 ’상식의 승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과거 강 씨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항소와 상고를 기각했던 사법부의 사과는 없었으며, 검찰 역시 아무런 사과의 뜻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상식의 승리를 믿고 23년간 함께 싸워준 변호인만이 무죄 판결이 난 선고의 최후 변론에서 “진실 만세!”로 끝을 맺었을 뿐입니다. 이번 무죄 판결에 목이 메었다는 이석태 변호사의 인터뷰를 함께 보시죠.

출처 – 오마이뉴스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말이 자꾸 등장하는데요, 증거조작과 마녀사냥에 의한 인권탄압의 대표적인 사건인 드레퓌스 사건에 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삼일절을 맞이하여 이번 기회에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겠습니다.


나는 고발한다!

제목 : 가족의 저녁식사
“우리 오늘은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지 맙시다.”
“이야기하지 말자고 했잖아!”
출처 – 르 피가로

선거철 우리나라 밥상머리 상황같이 꽤 친숙한 모습입니다. 19세기 말 프랑스를 양분하여 극한으로 대립하게 했던 드레퓌스 사건 당시 신문에 실린 만평입니다.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드레퓌스는 어느 날 갑자기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됩니다. 비공개로 진행된 군법회의 끝에 간첩 혐의로 종신유형이 선고됩니다. 이때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근거는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음에도 당시 프랑스 군부, 보수 가톨릭 교회, 수구 언론은 일제히 유대인인 드레퓌스를 비난하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는 프랑스령 기아나의 한 섬으로 유배를 당합니다.

2년 후 군 정보국에서 근무한 피카르 중령의 중대한 발견으로 문제가 부각됩니다. 간첩 사건의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에스테라지 소령이었다는 겁니다. 피카르 중령이 우연히 당시 문건을 열람한 결과 독일대사관에 팔려간 프랑스 기밀문서의 필적이 에스테라지의 필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피카르 중령은 이 조사 결과를 상부에 알리고 드레퓌스의 재심을 요구하지만, 군 상층부는 그를 한직으로 좌천시켜 쫓아내고 재심 요구를 무시합니다. 제국주의가 시작되던 시기에 가톨릭과 보수세력은 자국 군대의 위신과 국가의 질서가 일개 유대인에 의해 교란되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에 따라 진범인 에스테라지는 오히려 존재치도 않는 유대인 비밀조직으로부터 프랑스를 구한 영웅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피카르 중령은 좌천도 모자라 군사기밀누설죄로 체포됩니다. 그 후 드레퓌스의 형도 에스테라지를 고발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이미 종결된 사건이라며 이를 묵살합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대통령 각하, 저는 진실을 말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정식으로 재판을 담당한 사법부가 만천하에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제가 진실을 밝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제 의무는 말을 하는 겁니다. 저는 역사의 공범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제가 공범자가 된다면, 앞으로 제가 보낼 밤들은 유령이 가득한 밤이 될 겁니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으며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음을! 진실이 지하에 묻히면 자라납니다. 그리고 무서운 폭발력을 축적합니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에는 세상 모든 것을 휩쓸어버립니다."

_<나는 고발한다!> 중에서 

이때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대문호인 에밀 졸라가 행동에 나섭니다. 그는 문학 신문 《로로르(L'Aurore)》에 그 유명한 <나는 고발한다!>란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보냅니다. 이를 통해 에밀 졸라는 죄 없는 드레퓌스에게 종신유배를 선고한 법정과 진범인 에스테라지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정을 고발하고, 재심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에밀 졸라의 용기 있는 행동은 프랑스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뜻있는 인사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얻습니다. 미국의 문호 마크 트웨인은 에밀 졸라에게 깊은 존경과 찬사를 보내며 진실을 감추는 군인과 성직자들을 비판했습니다.

결국 드레퓌스 찬·반파로 프랑스 사회는 양분되어 극한 대립에 돌입합니다. 이 와중에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던 법원이 재심을 열었지만 드레퓌스를 종신유배에서 10년형으로 감형하는 데 그칩니다. 재심으로 진실이 승리할 것으로 믿었던 세계 각국의 인사들은 다시 의기투합하여 드레퓌스 구명 운동에 나섭니다.

결국 세계 여론에 떠밀린 프랑스 정부는 드레퓌스를 특별사면하게 됩니다. 무죄가 아닌 특별사면 형식이어서 불만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몸이 쇠약해진 드레퓌스는 이를 일단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 만인 1904년에 형의 도움으로 새로운 증거를 첨부해 재심을 청구하고 피카르 중령과 함께 최고재판소에서 무죄와 함께 복권을 선고받습니다.

이후 건강상 이유로 전역했던 드레퓌스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현역으로 복귀하여 베르덩 전투 등 큰 전투에 참가하여 세운 공훈으로 레지옹도뇌르 훈장까지 받습니다. 자신에게 온갖 누명과 고난을 안긴 조국을 위해 희생하여 다시금 큰 공을 세우다니 대단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사코와 반제티 사건

출처 - 위키피디아

안타깝게도 드레퓌스와 유사한 처지에 놓였던 이는 강기훈만이 아니었습니다. 이탈리아계 이민이었던 미국의 사코와 반제티도 누명을 썼으나 드레퓌스 사건처럼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비극으로 끝나 안타까움을 남겼습니다.

1920년 4월, 매사추세츠주(州) 사우스브레인트리에서 제화공장(製靴工場)의 회계담당 직원과 수위(守衛)가 두 명의 남자에게 사살되고 종업원의 급료를 탈취당했다. 경찰은 이탈리아계(系)의 이민(移民)인 N.사코와 B.반제티를 용의자로서 체포, 이듬해 5월부터 재판이 열렸다. 두 사람 모두 무죄를 주장하여 7년에 걸친 법정 투쟁이 전개되었으나, 용의자들이 외국 이민이라는 것, 제1차 세계대전 중 징병을 기피했다는 것, 무정부주의자라는 것 등이 사람들의 편견과 반감을 샀다. 또 당시의 미국사회가 외국 이민을 좌익분자로 보는 경향도 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리하여 많은 의혹이 남겨진 채 1927년 4월에 사형을 선고하였고, 재심(再審)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도 아랑곳없이 그 해 8월에 처형되고 말았다. 그런데 1959년에 진짜 범인이 판명되어, 이는 미국 재판사상 하나의 큰 오점으로 기록되고 있다.


유대인이었던 드레퓌스처럼 사코와 반제티 역시 이탈리아 이민자라는 사실로 공격을 받았고, 무정부주의자로서 징병을 거부했던 점 때문에 애국심이 부족하다며 법정은 물론 대중의 질타를 받았습니다. 이에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세계의 지성들이 항의 서한을 보내고 호소문을 발표했지만, 미국은 사형선고를 내린 지 4달 만에 형을 집행하고 맙니다. 결국 사코와 반제티는 누명을 쓴 채 전기의자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50년이 지난 후에야 그들의 무죄 사실이 입증되어 복권되지만, 그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죠.

출처 - 위키피디아

드레퓌스 사건이 강기훈 사건과 겹쳐 보인다면, 사코 반제티 사건은 사법살인이었던 인혁당 사건과 겹쳐 보입니다. 역사는 장소를 옮겨가며 반복되는 걸까요? 아니, 장소조차 바뀌지 않고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군부독재 시절 정권의 편의에 따라 간첩을 만들어내던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의혹 사건에서 드러나듯이 무고한 시민을 간첩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마저 조작하는 오늘날 검찰의 행태를 보면 말입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김요한 기자는 “‘간첩’과 ‘증거조작’을 구분해서 봐야 한다. ‘유우성이 간첩이냐’와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유우성이 간첩이든 아니든 수사기관은 증거를 조작해서는 안 된다”며 “검찰도 정치권도 언론조차도 ‘사실이 무엇인가’보다는 ‘누구 편에 유리한가’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다”고 비판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수사기관이 직접 증거자료를, 그것도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해 법원을 속이려 했다면 이는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을 만한 일이며, 검찰 자체가 문을 닫아야 할 만큼 어마어마한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치권도 언론도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를 애써 꺼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사안의 본질은 어디 가고 여느 때처럼 곁가지 공방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드레퓌스, 사코, 반제티, 강기훈, 그리고 어쩌면 유우성.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드레퓌스 사건이 회자하는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우리 모두의 관심과 목소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국가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조작 문제를 좌시할 수 없습니다.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는 데 왜 용기가 필요하다면 이런 상황 자체가 비상식이 상식이 되어버린 형국을 방증합니다. (관련 자료: 국정원·검찰 '증거 조작' 의혹에도 '눈뜬장님' 행세하는 '불량 언론'! )


박근혜 정부 1년, 무엇을 남겼나?

박근혜 정부 출범 1년을 맞은 지난 25일, 여러 시민사회 단체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와 민생 후퇴를 지적하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지킬 것을 촉구했습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 등 10개 시민단체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1년간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권리는 공권력에 의해 위축됐고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으로 민주주의가 공격당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실로 그렇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사실상 폐기 또는 변질했습니다. 최근 박 대통령이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선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마저 사라졌습니다.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노조탄압, 민영화 정책 등의 실정을 반성하기는커녕 정부가 앞장서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한 사실이 속속 증명되고 있으며, 민영화 반대를 외친 철도파업 행위를 탄압하기 위해 정부가 여론 조작과 허위사실 유포 같은 치졸한 행위마저 서슴지 않았음이 보도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1년을 돌아보면 '이명박 정권 6년차'라는 세간의 비판이 아주 틀린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삼는 등 측근 인사를 요직에 앉혀 제왕적 통치의 기반을 굳히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박 대통령도 ‘친박’ 인사로 분류되는 이경재 전 새누리당 의원,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인 김원배 목원대 총장, 김병호 전 새누리당 의원을 각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문화방송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에 앉히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저널리스트 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는 매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발표합니다. 세계 각국·지역 보도의 자유도에 순위를 매김으로써 검열 상황, 제도장치, 투명성, 인프라 등의 항목으로 세계 180개국·지역을 채점해왔습니다. 지난 2월 12일에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 2014'에서 한국은 57위를 기록했습니다.

출처 - 국경없는 기자회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 순위는 노무현 정부에서 최고 31위(2006년)까지 기록했지만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속적으로 하락했습니다((2011년: 42위, 2012년: 44위, 2013년: 50위). 아시다시피 2009년 역대 최하위인 69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네르바 사건, PD수첩 등에 대한 검찰의 무리한 수사 등이 순위에 영향을 주었죠.

언론의 자유가 위축되자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유래 없이 언론사 총파업 같은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이번 2014년 결과 순위가 알려주듯이 정권의 언론장악 환경은 큰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생각비행은 지금까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중요하게 여겨 관련 기사를 꾸준히 발행해왔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정리해서 보여드립니다.
 
-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기각과 언론 재벌의 독과점
- 언론은 진실만을 전하고 있는가?
- 맷값 최철원 선생과 PD수첩 무죄 판결
- 이 시대의 폭로 저널리즘? '위키리크스'
-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과 같은 '탐사보도'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법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친일파 맞다"
- 한국의 탐사보도 - MBC가 제작한 탐사보도 프로그램
- PD수첩이 사라진다면 무한도전도 위험합니다
- 검사와 스폰서 사건에서 발견한 탐사보도의 가치
- 중요한 사회문제를 덮어버린 서태지-이지아 가십기사
- 다시 기억해야 할 5.18 광주민주화운동, 신군부의 독재와 언론·방송의 굴종사
- [서울디지털포럼 참관기] 위키리크스로 돌아보는 탐사보도의 역사와 현황
-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사회 변화의 씨앗 있다
- 《PD수첩》 무죄판결로 살피는 탐사보도의 가치
- 《경향신문》 창간 65주년 기념 MB氏 불통강령 단독입수!
- 1퍼센트의, 1퍼센트에 의한, 1퍼센트를 위한 종편 개국
- 리영희 선생 1주기에 돌아본 한국 언론의 현실
- 1퍼센트를 위한 종편을 넘어 SNS에서 대안을 찾자
- 질질 끄는 미디어렙법 처리, 누구를 위한 정치 놀음인가?
- <뉴스타파> <제대로 뉴스데스크>에서 대안언론의 가능성을 보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하며 표현의 자유를 다시 돌아보다
- <천안함 프로젝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95주년 삼일절을 맞이하여 헌법의 근본정신을 이야기하면서 이런저런 말씀을 많이 드렸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지만 너무 길어지는 것 같아, 지난 2013년 촛불시민과 누리꾼이 주축이 되어 발표한 선언문을 게재하는 것으로 이만 인사 올립니다.

<촛불시민·누리꾼 3차 시국선언문>
 
- 우리는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국민저항권을 발동한다 -
 
대한민국의 근본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가의 근본 질서를 규정하는 헌법이 특정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있으며,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분립마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법과 민주주의가 무너진 결과 대한민국은 정의와 진실과 원칙이 짓밟히고 거짓과 음모와 술수가 판치는 삼류 국가로 전락했다.
 
대한민국을 이렇게 치욕스럽게 만든 주범은 1219 부정선거의 주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며, 이러한 범죄 행위에 대한 최고 책임자는 이명박과 박근혜이다. 우리는 이승만 독재와 3.15 부정선거에 저항한 4.19 시민혁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은 유구한 민주화 투쟁과 80년 5월 광주의 민중항쟁 그리고 86년 6월 민주항쟁에 바친 피와 죽음의 역사를 잊지 않고 있다.
 
하지만 장구한 세월 동안 민주열사와 애국시민들의 희생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가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에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종교계를 필두로 대학 교수와 청년 학생 그리고 수백 개 시민단체와 일반 시민들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나서서 국정원의 개혁과 박근혜의 책임 있는 결단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오히려 적반하장 격으로 민주주의의 회복을 요구하는 선량한 시민을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하며 제2의 유신독재의 길을 걷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향후 어떤 선거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어 마침내 우리의 민주주의는 무덤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반역의 무리들에게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경고한다. 일제강점기의 국권 회복을 위한 독립열사들과 민주화를 위한 시민들의 저항과 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친일 종속적인 망언, 망동으로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갈 자격이 없다. 민족 분단의 비극과 모순을 극복할 의지도 능력도 없이 선량한 시민들을 향해 종북좌파 운운하며 시대착오적 매카시즘에 편승하여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 유지에 급급한 세력에게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압살하고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지는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자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를 능멸하는 것을 좌시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반드시 이러한 반역의 무리들을 척결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지켜나갈 것이다.
 
우리는 헌법 파괴와 국기문란의 주범인 박근혜 정권을 향해 엄숙하고도 강력하게 선언한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 원리는 국민의 뜻을 왜곡하지 않는 선거의 공정성을 지키는 데 있다. 하지만 지난 대통령 선거는 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의 야합과 음모 속에 부정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는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무시하고 국기를 문란하게 한 범죄 행위이다. 더구나 위의 세 집단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가리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과 범법 행위를 무차별적으로 자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같은 국기문란 세력을 진압하고 이들의 역사적 과오를 바로잡을 권리와 책임을 통감한다. 이에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국민 저항권을 발동한다.우리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행동 강령을 선포한다.
 
하나,우리는 민주공화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을 다하기 위하여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세력을 바로잡기 위한 무기한 투쟁에 돌입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의 부정선거 연루자는 국민 앞에 사죄하고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며, 부정선거를 주도한 국정원은 즉각 해체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국가 기관으로 거듭날 것을 촉구한다.
 
하나,국정원과 경찰 그리고 새누리당이 공모한 부정선거의 최대 수혜자이자 최고 책임자인 박근혜는 모든 책임을 지고 즉각 대통령직에서 물러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
 
하나,우리 촛불 민주시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전복하는 세력에 맞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그날까지 어떠한 위협이나 억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맞서 싸울 것임을 독립열사와 민주열사 앞에 맹세한다.
 
2013년 10월 5일
촛불시민·누리꾼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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