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샘 성추행 사건, 현대카드 성추행 사건, 성심병원 간호사 노출 강요, 유니세프 회장의 성추행 발언에 이르기까지 올 한해 우리나라에서 분야를 가리지 않고 내로라하는 기업들에서 성범죄가 연이어 터져 나왔습니다. 몰래카메라나 리벤지 포르노, 도촬로 인한 범죄도 만연했습니다. 성적인 욕구나 변태성 때문에 이런 범죄가 일어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권력 혹은 직급을 이용한 성범죄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몰카 역시 나는 몰래 훔쳐보는데 도촬 당하는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른다는 미묘한 우월감과 권력감의 발현이라고도 하죠. 크리스마스, 송년회, 신년회 등 회식과 모임이 빼곡한 요즘 여성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한샘이나 현대카드는 그나마 이름 있는 대기업이니 문제도 되고 기사도 나옵니다. 반면 규모가 작은 기업에서 이뤄지는 성범죄는 훨씬 심각하더라도 징계는커녕 뭘 잘못했는지조차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출처 - JTBC


이런 성범죄가 우리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대한 대처는 우리나라와 판이하죠. 아카데미상을 수두룩하게 따낸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은 올해 그간 있었던 성범죄가 드러나며 퇴출당했습니다. 자기가 세운 영화사 와인스타인 컴퍼니에서 쫓겨난 건 물론이고 영화사마저 매각되어 사라지게 될 전망입니다. 거물 제작자라는 권력을 이용하여 할리우드 여배우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것까진 우리나라 대기업들과 같지만 그 대가는 자신이 평생 일군 회사에서 쫓겨날 정도로 혹독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도 누구든 성범죄를 저지르면 혹독한 처벌을 피할 수 없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관련 법안 등도 개선해야겠죠. 성범죄에 민감한 사회로 변화하는 것이 오히려 서로 안심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출처 - 한겨레


사회 각계각층에서 목소리를 내고 폭로를 한 덕분에 그나마 여러 대책이 세워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디지털 성범죄와 전면전을 선포했죠. 우선 인격 살인에 해당하는 디지털 성범죄인 몰카, 리벤지 포르노 피해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영상촬영물 삭제를 국가가 지원하는 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이 대표 발의한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국가가 유포된 몰카 삭제를 위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해 신속하게 성폭력 피해자를 구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그간 피해자들이 수백만 원의 사비를 들여 온라인 정보 삭제 대행업체를 이용하던 것이 현실이었죠.


출처 - 한국일보


이와 함께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앞으로 화장실, 탈의실 등 사생활 침해 우려가 큰 곳엔 영상촬영기기 설치가 금지됩니다. 고정되는 CCTV 같은 것은 물론이고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등등 웨어러블 기기로 포함됩니다. 이를 위반할 경우 5000만 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업무 목적으로 촬영할 경우 반드시 촬영 사실을 표시해서 누구나 촬영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또 자신도 모르게 찍힌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될 경우 촬영자나 게시자에게 열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거부할 경우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발목을 잡는 인간들이 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예산을 자유한국당이 절반으로 삭감해버렸습니다. 이들은 과연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성범죄에 민감해지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이러다가 이제 성관계 할 때 각서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식의 농담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이런 말조차 앞으로는 조심해야 합니다. 합의 각서를 쓰고 성관계를 했더라도 협박한 정황이 있다면 강간이라는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죠. 서울고법은 19일 물리적인 폭행이 아니더라도 협박의 정도가 상당하면 합의 각서를 썼더라도 강간에 해당한다며 가해자에게 징역 4년과 8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명했습니다. 1심에서는 성관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과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한다며 이 부분에 무죄 판결을 내렸는데, 2심에서 이 부분을 파기한 것이죠. 이 판결은 우리에게 아주 간단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성관계에 앞서 각서 같은 걸 받을 생각을 하지 말고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라는 겁니다.


출처 - 한겨레


친절은 감정이 아니라 태도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미소를 보인다고 호감이 있다고 착각해선 안 됩니다. 기분이 더러워도 상사 앞에서는, 손님 앞에서는 웃는 낯을 유지해야 하는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모두 '고객 만족'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친절'을 강요당하는 감정노동자들의 현실은 외면하지요. 자신의 감정과 요구되는 감정이 다를 때 일어나는 감정부조화는 스트레스로 작용합니다. 그러니 고강도의 감정노동을 개인의 성격이나 품성으로 치부하며 손쉽게 처리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아울러 자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이 많으니 일단 참고 지내보자 하는 식의 대응으로는 노동자 자신의 삶도, 사회의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한국 사회에서 감정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한 전쟁터에서 무분별하게 착취되고 있습니다. 구조적 병폐로 자리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활 속의 적폐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군요.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부 기업은 '고객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여 만일의 사태를 예방하기도 합니다. 아울러 우리 사회가 감정노동자에게 과도한 친절을 강요하거나 직장 안에서 직급 혹은 권력 관계를 이용한 성추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합니다. 이 땅의 감정노동자와 성범죄 피해자들이 바로 우리의 이웃이고 가족이니까요. 실효성 있는 법 개정과 인식의 전환을 통해 생활 적폐를 하나씩 제거해가야 하겠습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 찰칵 하는 셔터음이 나 부담스러울 때 있으시죠? 조용한 레스토랑 안에서 음식 사진을 찍을 때나 사진 촬영이 가능한 미술관, 박물관에서 셔터음이 새삼 크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마트폰에 카메라 기능이 있으니까 셔터음이 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젊은층도 있겠지만, 사실 그건 옛날 기계 카메라 시절의 얘기죠. 스마트폰 카메라는 원래 그런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 녹음된 셔터음이 재생되는 것일 뿐입니다. 사실 전화기에서 셔터음이 나는 건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뿐입니다. 같은 삼성, LG 스마트폰이더라도 다른 나라에서 출시되는 폰은 셔터음이 나지 않죠.

 

우리나라 스마트폰에서 카메라 기능을 쓸 때 셔터음이 나는 것은 법으로 이를 강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몰카 방지'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일상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몰카에 사용될까 법으로 셔터음을 강제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몰카 방지에 민감하다면, 왜 일상생활에서 쓸 일이 없어 보이는 진짜 몰카는 아무런 제재 없이 아무에게나 팔리고 있는 걸까요?


출처 - 허핑턴포스트


지난달 31일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사인회에서 소란이 있었습니다. 팬사인회에 이른바 몰카 안경을 쓰고 참석한 남성이 걸그룹 멤버에게 걸린 거죠. 연예인으로서 수많은 카메라 샤워를 받는 입장이겠지만 최소한 그건 자신이 찍힌다는 걸 자각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아무리 연예인이더라도 자신이 카메라에 노출되어 있다는 감각도 없이 몰래 찍히는 건 인권 침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근거가 희박한 꼬투리를 잡아 많은 음식점을 망하게 한 〈먹거리 X파일〉도 이런 몰카 안경을 쓰고 무리한 취재를 한 경우가 있었다고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기술이 발달해 몰카용 장비를 육안으로는 식별해내기가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졌습니다. 이미 논란이 된 안경 모양은 물론 자동차 키홀더, USB, 만년필, 라이터, 넥타이 단추 같은 형태의 초소형 위장 카메라를 10만 원대부터 비싸야 40만 원 정도면 살 수 있습니다. 문제는 누군가의 삶을 망가뜨릴 수 있는 몰카에 대한 관리나 제재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세운상가 등 몰카 장비 관련 전문가들도 소리나 영상을 실시간 전송하는 송수신기가 달려 있다면 모를까, 초소형 몰카로 상대방이 지금 나를 찍고 있는지는 그 자리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더구나 몰카를 파는 사람들은 이용 목적을 확인하지 않습니다. 암묵적인 금기사항이랍니다. 괜히 손님 비위 상하게 해서 물건을 못 팔면 손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지요. 요즘 같은 인터넷 환경에서는 몰카를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망가뜨리는 '스토킹'에 이어 성행위 촬영물을 복수할 목적으로 유포하는 '리벤지 포르노'마저 횡행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몰카를 일상적으로 팔고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구매자의 양심에만 기대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총을 무제한으로 파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한 일입니다. 몰카와 리벤지포르노의 메카로 십수 년을 끌어온 소라넷이 지난해에야 겨우 사라지게 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의 양심에만 기대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이 아닐까요?


출처 - 한국일보


몰카가 사회적 문제로 비화하자 국회는 디지털 성폭력 고발단체인 디지털성범죄아웃(DSO)이 시민입법플랫폼 국회톡톡에 제안한 몰카판매금지법을 정식으로 검토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진선미 의원과 남인순 의원이 입법화를 검토 중입니다. 이 법은 몰카 구매에 대한 전문가 제도 마련, 몰카 구매자 관리 시스템 도입, 전문가 외 몰카 소지 불법화, 경찰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 개선 의무교육 등을 제안해 일주일 만에 1만 5000여 명의 시민이 지지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 같은 여성 혐오 범죄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하는 분석입니다. 

 

현 20대 국회 출범 1호 발의 법안도 스토킹 범죄 처벌 특례법 개정안이었습니다. 벌금 10만 원에 불과한 스토킹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으로 개정하려는 겁니다. 또한 현재 명예훼손죄로만 다뤄지는 리벤지 포르노도 성폭력으로 처벌토록 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 개정 법률안도 발의된 상태입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몰카 야동이 피해자에 대한 인격 살인이라는 걸 비춰보면 당연한 개정입니다.


출처 - 채널A


그런데 너무나 당연한 이런 법안들이 무사히 통과되어 공포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우리 각자의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도 필요하겠지만, 돼지 발정제를 이용한 강간 모의를 젊은 시절의 치기와 추억으로 치부할 정도로 성범죄에 대한 개념과 젠더감수성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로 나오는 현실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처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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