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통이란 말로는 실제 더위를 표현하기 힘든 요즘입니다. 불가마를 방불케 하는 폭염이 연일 이어지는 가운데 초복과 중복이 지났습니다. 대체 말복까지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싶지만 삼계탕이나 냉면 같은 먹거리를 찾아 먹는 재미가 있는 여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맘때면 해마다 똑같은 논란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바로 보신탕 논쟁이죠.


출처 - 스플래시뉴스


올해는 왕년의 할리우드 스타로 유명했던 킴 베이싱어가 미국 LA 한국 영사관에서 개고기 식용 문화에 항의하는 집회에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개고기에 반대하는 옷을 입고 피켓을 든 킴 베이싱어가 동물보호단체 사람들과 더불어 항의 시위를 했다고 하죠.


출처 - 서울신문


우리나라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날씨보다 뜨거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반려견인 토리를 등장시켜 시민들의 큰 관심을 끈 카라 등 동물보호단체들은 초복의 뙤약볕 아래에서 동물 해방 시위를 했습니다. 개 도살 금지법 제정 촉구를 위한 시위였죠. 개 식용 문제는 위법과 합법 사이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남의 반려견을 훔쳐서 도살하고 잡아먹는 것은 현재 상식으로도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만, 개는 축산물위생관리법상 가축의 대상에 들어 있지 않지만 축산법에서는 가축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법 조항 자체가 이랬다 저랬다 하고 있으니 애매한 상황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최근 들어 개 식용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은 국내에 반려견, 반려묘 등 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인구가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주를 이룹니다. 이에 더해 동물권을 인식하고 채식주의 같은 식문화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등 다양성이 점점 인정되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과거에는 주로 외국 동물보호단체들이 개 식용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면 이제는 국내 동물보호단체들이 집회나 시위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출처 - 세계일보


반려동물로서 개의 인기가 높아진 만큼 개고기에 대한 인기는 폭락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1996년 설문조사에서 37%를 받아 최고의 건강식품 1위로 꼽혔던 보신탕은 2015년에 이르러 6%로 내려앉았습니다. 소, 돼지, 닭 등의 고기를 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현재로선 굳이 개고기를 찾아 먹을 이유가 줄었기 때문일 겁니다.


출처 - Pawel Kuczynski


개고기 식용 금지법에 대한 찬반 여론이 갈리는 것도 바로 이 지점입니다. 개고기 옹호론이 단순히 개고기를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지난날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고기를 먹는 한국 사람들을 비난했을 때는 한국 문화에 대한 몰이해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개고기를 먹거나 안 먹거나는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일이라서 이를 다른 사람이 비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겁니다.


출처 - 세계일보


지난 5월 개고기 식용 금지법에 대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20대에서 반대 목소리가 가장 높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개고기를 거의 입에 대지 않지만, 먹고 싶다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막는 건 잘못됐다고 보는 젊은이가 아주 많다는 의미입니다. 본인은 개고기를 먹지 않지만 '개와 고양이와 흔히 먹는 소, 돼지, 닭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라는 이중잣대에 대한 불호가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한편 성장이 끝난 어른이 아닌 이상 미성년자가 채식을 하는 것은 영양불균형의 위험이 큽니다. 채식주의자인 부모가 자녀들에게 채식을 강요한다면 이 역시 식습관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빼앗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다양한 이유 때문에 요즘 젊은이들은 개 식용을 옹호한다기보다 강한 개고기 반대론에 반대한다는 인상을 줍니다.


출처 – MBC 유튜브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이 급속히 줄어들고 있으므로 이런 추세라면 보신탕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 같습니다. 수요가 없는 사업이 유지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반대 급부로 동물권은 점차 신장될 조짐입니다. 어쩌면 식문화 관점에서 개고기를 먹는 문화를 보호하자는,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 얘기가 나오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 배달의 민족

 

최근 배달의민족이 동물보호단체 회원을 상대로 법적 조치에 나서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22일 열린 '배민 치믈리에 자격시험'을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이 방해했기 때문인데요, 이날 동물 보호단체 회원 7~8명은 시험 시작 직후 무대로 나와 “닭을 먹지 말라” "닭이 치킨이 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진실을 숨기고 ‘치믈리에’라는 이름으로 유희화하는 것에 분노한다"는 의견을 표명했습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마케팅 차원에서 행사를 준비해왔던 배달의민족 운영업체인 (주)우아한형제들은 23일 입장문을 내어 "오랜 시간과 비용, 노력을 기울여 함께 준비한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고, 수백명의 참가자들에게 죄책감과 불편한 마음을 갖도록 했다"면서 동물보호단체 회원들에게 민형사상 대응 방침을 예고했습니다. 이에 대해 채식주의를 추구하는 동물보호단체 '우아한 피믈리에' 활동가들은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배달의 민족 사무실 앞에서 모여 '치믈리에 자격시험' 폐지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쯤 되면 '개고기만 반대하는 줄 알았더니 닭도 먹지 말라는 것인가?' 하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어안이 벙벙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시험이란 게 대체 뭘까요? 배달의민족이 2017년 1회 행사로 진행한 '치믈리에 자격시험'은 1교시 필기시험과 2교시 실기시험으로 나뉩니다. 필기시험에는 마치 수능시험처럼 듣기평가 항목도 있습니다. 지난해 듣기평가 시험에서는 "다음 소리를 듣고 진짜 닭소리를 보기에서 고르시오"가 1번 문제로, "다음 멜로디를 듣고 치킨 프랜차이즈의 광고음악이 아닌 것을 보기에서 고르시오"가 2번 문제로 출제됐다고 합니다.

 

출처 -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자격시험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실기시험은 치킨의 맛을 보고 치킨 브랜드와 메뉴를 맞히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됐습니다. 실기시험은 총 12개의 치킨을 후라이드 치킨 영역, 가루 치킨 영역, 양념 치킨 영역, 핫양념 치킨 영역으로 각각 3개씩 나눠 치러졌다고 합니다.

 

출처 - 배달의민족

 

2017년에 열린 첫 시험에는 추첨을 통해 선발된 500명이 참가해 119명의 치믈리에가 배출됐습니다. 치믈리에 자격증은 올해 민간 자격증으로 등록되기도 했다고 하는데요, 119명의 치믈리에는 치킨과 잘 어울리는 맥주 개발에 참여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습니다. 언론 보도를 보면 한국 수제 맥주 브랜드 '더부스'가 최근 내놓은 맥주 치믈리에일은 119명의 치믈리에가 치킨과 잘 어울리는 맥주 맛을 찾아낸 결과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죠. 이 정도면 일개 기업의 마케팅 차원이 아니라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출처 - 배달의민족

 

치믈리에 행사 반대 기습시위 사건에 대해 인터넷상에서는 찬반이 엇갈렸습니다. 아무리 좋은 취지더라도 기업이 주관한 행사장에 난입해 기습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과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의 시위였고 폭력적이지도 않았으므로 배달의민족 측의 법적 대응 방침이 과도하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밥상에 오르는 동물들의 생존권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며 동물권 보호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국제동물보호단체 PETA(동물의 윤리적 처우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지난 1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LA 한인타운 한복판에 산낙지 식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옥외광고판을 내걸었습니다.

 

출처 - 미주중앙일보

 

 
PETA가 설치한 옥외광고에는 산낙지 사진과 함께 영어와 한글로 "저는 저예요. 고기가 아니라구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PETA 측은 산낙지 요리가 매우 잔인하며 동물에 극단적인 고통을 주는 형태라고 지적하면서 한인타운 식당들이 산낙지 등 살아 있는 해산물을 손질해 음식을 만드는 과정을 촬영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트레이시 라이먼 PETA 수석 부회장은 "낙지의 다리를 잘게 잘라 음식으로 만드는 것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PETA 측은 식당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망신을 줘야 한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스위스에서는 조리법이 잔인하다며 산 채로 바닷가재를 요리하는 걸 금지하는 내용의 동물보호법이 개정된 상황이기도 합니다.

출처 - 동물출제 반대축제 기획단

 

지난 7월 7일 우리나라에서는 송어나 산천어, 오징어 맨손잡기 축제로 동물이 학대를 받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축제가 개최되기도 했습니다. 서울시 은평구 서울혁신 파크에서 열린 ‘제1회 동물의 사육제 2018-동물축제 반대축제’(동축반축)는 지난 2013~2015년 서울대 수의대 천명선 교수팀이 진행한 전국 86개 동물축제 동원 동물 이용 실태 조사를 바탕으로 동물축제의 현황을 살피고 올바른 동물축제의 방향성을 제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 생각비행

 

동물축제반대축제를 기획한 정혜윤 CBS PD는 "인간의 축제가 동물의 입장에서 보면 '죽음의 카니발'이 되는 셈"이라며 "동물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동물은 인간의 이익 추구, 욕구 추구, 오락 여가 선용의 수단일 뿐이어서 현재와 같은 동물축제에 반대하는 행사를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 생각비행

 

생명다양성재단·시셰퍼드코리아·아름다운커피·나온버스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행사에는 동물 복장을 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동물 코스튬 플레이와 동물이 선거 유세를 한다는 내용의 연극, 동물 축제를 주제로 한 릴레이 토크 등이 이어졌습니다. 동물축제반대축제 행사장 곳곳에는 동물들이 인간처럼 당을 만들어 자신들을 대표로 찍어달라면서 공약을 붙여놓았습니다. 공약을 읽으면 각각의 동물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참 기발한 방법입니다.

 

이 축제를 기획한 이들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위해 반경 2km 빙판 아래 갇힌 산천어들의 처우를 같이 고민해보자고 했습니다. 대표적인 동물축제로 자리 잡은 화천 산천어 축제에 동원되는 산천어는 지난해 기준으로 180톤, 76만 마리에 해당한다죠. 축제를 준비하기 위해 전국 17개 업체가 생산한 양식 산천어들은 운송 중 스트레스를 받아 토하고 기절하고 깨어나길 반복한다고 합니다. 축제가 끝나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산천어는 굶어 죽거나 축제 중 생긴 상처가 곪아 폐사되고, 죽은 산천어는 어묵 공장으로 보내집니다. 동물축제반대축제 기획단은 동물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축제에서) 동물은 인간의 이익 추구, 욕구 추구, 오락, 여가 선용의 수단일 뿐인 죽음의 카니발"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제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고 유익한 축제 프로그램을 고민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독립, 하셨습니까?] 연재도 어느덧 네 번째를 맞이했네요. 오늘은 패션 사진가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패션 사진가' 하면 과장된 환상을 보여주어 잠재된 욕망을 이끌어내고 소비를 부추기는 작업을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사진가로서의 본업보다 지구환경과 동물복지를 생각하고 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하는 친환경 잡지를 만드는 일에 더 열심인 사진가가 있습니다. 《오보이!》의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씨를 이은 씨가 만나고 왔습니다. 

패션지, 동물복지와 환경을 만나다, 
《오보이!》 발행인, 사진가 김현성 

한때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더 훌륭하고 고상한 삶이라 믿었다. 내가 행복해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어떤 이들은 사랑하는 존재에게 자신의 이기심으로 원치 않는 행동을 강요하기도 하는데 사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은 한끝 차이일 수도 있다. 종(種)이 달라도 얼마든지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다. 김현성 편집장은 표정이 그다지 없는 얼굴이지만 그토록 좋아하는 동물이란 존재를 위해 있는 힘껏 살고 있는, 그러니까 행복한 사람이었다. 

동물, 사지 말고 입양해요 

그는 잘 나가는 유학파 포토그래퍼였다. 10년을 훌쩍 넘겨 패션 사진을 찍으며 스튜디오를 차려 실장 직함도 달았고 크게 남부러울 일 없이 살았다. 특유의 감성이 엿보이는 사진과 일에 안달하지 않는 그의 시크한 태도가 도리어 차별화 전략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럭저럭 잘 나가던 어느 날, 삶이 바뀌었다. 남보다 잘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존재와 생명을 돌보는 일에 대가 없이 자신을 쏟아붓게 됐다. 자식처럼 키우던 개 '먹물이'의 죽음 때문이었다. 

창간호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모델과 연예인이 표지를 장식했지만오보이!》의 주인공은 반려동물이다. 그들이 없었더라면 잡지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니.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전에는 잘난 척하면서 제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했어요. 제 인생과 앞길만 위해 살았어요. 상업 사진 찍으면서 제 감성을 팔았는데 자식처럼 키우던 먹물이의 죽음이 (《오보이!》를 만들게 된) 계기가 됐어요. 아이를 낳아보지는 않았지만 제 자식이었거든요. 저보다 일찍 죽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까 미리 준비했는데, 그래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힘든 일로만 지나가 버리면 먹물이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의미 있는 일을 찾아 하게 된 거죠. 갑자기 성자가 된 건 아니지만 이대로 사는 건 무의미하고, 돈 벌어서 땅 사고 건물 짓고 이름 알리는 일이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보이!》를 만든 거지요. 욕심이 없어져서 옷도 안 사요. 예전 같으면 인터뷰하는 자리에 옷도 신경 쓰고 나왔을 텐데 지금은 예의만 차리는 정도죠." 

사진가이긴 해도 '찍히는' 일도 더러 있다. 인터뷰하던 날 그는 무늬가 없는 단색 티셔츠에 무채색의 팬츠, 운동화 차림이었다. 최신 유행 아이템을 입지 않아도, 차림이 캐주얼해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격식 아닐까.
    
이렇게 2009년 말에 등장한 무가지 《오보이!》 창간은 여러모로 흥미로운 '사건'이었다. 이런 변화는 잡지 시장의 다양화, 양적인 팽창과 수익구조의 악화로 거품이 꺼지면서 무가지가 속속 등장하던 배경에서 시나브로 일어났는데, 그 틈바구니에서 '동물 복지를 이야기하는 패션 매거진'이라는 다소 급진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를 담은 잡지가 등장할 수 있었다. 거의 3년 동안 31권을 만들어오면서 그간 공존할 수 없었던 것들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패션 사진이 단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오보이!》에 나름의 원칙은 있다. (기존의 패션 화보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가죽으로 된 신발이나 소품은 가능한 사용하지 않고, 모피는 절대 등장하지 않는다. 잡지 말미에는 유기동물을 스타가 안고 있는 화보를 실어 분양을 부추긴다. 잡지의 권수가 늘어난 만큼 아무 대가 없이 《오보이!》에 등장한 스타의 수도 그만큼 늘어난 셈이다. 아무리 잘 나가는 톱스타라도 촬영 때는 개나 고양이의 컨디션이 우선이다. 고양이는 특히 예민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화보가 예쁘게 나와야 녀석들이 좋은 곳으로 입양될까 싶어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서인지 잡지의 인기는 나날이 상한가다. 매월 초 서울 도심 곳곳에 있는 배포처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오보이!》는 들어오기가 무섭게 동나곤 한다. 지난 9월호도 그랬다. 아이돌 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 크리스탈이 표지 인물로 나온 고양이 특집은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0여 페이지가 넘는 화보, 이름난 글쟁이들이 고양이에 관해 쓴 글로 가득 채워져 고양이 애호가 사이에서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이 되었다. 잡지는 별다른 꾸밈없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패션 리더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화려하고 멋진 것이 다가 아니라는 인식도 심어주었다. 함께 살아가는 존재를 아끼는 것 또한 아주 멋진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동물권'이란 단어조차 생경하게 느끼는 이가 여전히 많지만, 동물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유행을 선도하고 남보다 앞서갈 수 있다고 사람들이 공감하는 데는 분명 《오보이!》 같은 잡지와 이효리 같은 톱스타의 영향이 존재한다. 

《오보이!》에 실린 기사와 화보는 누리집에서도 볼 수 있다.

"벌써 3년 가까이 됐네요. 생계를 위해 촬영하면서 틈틈이 잡지 만들고. 한 달에 열흘은 계속 컴퓨터 앞에서 작업하고, 쉬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매달 기획과 섭외를 하고 촬영을 부탁하는 일이 힘들긴 해요. 다행히 화보를 찍겠다고 먼저 연락하는 스타가 늘었어요. 효리 씨도 화보 촬영으로 처음 만났고요. 기획사나 방송국도 그렇지만 요즘 연예권력이 엄청나잖아요. '누가 입었다' 하면 완판되고 산업 자체가 연예인에 의해서 왔다 갔다 하잖아요. 이왕이면 그런 유명세를 긍정적인 쪽으로 활용해보고 싶었어요. 잡지를 만들면서 동물복지에 관심 있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됐지요."  

《오보이!》 그리고 《그린보이》  

그에게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당연한, 본능과도 같은 일이다. 버려지는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니 덕에 언제나 동물로 넘쳐나던 집안 분위기도 큰 몫을 했으리라. 수없는 만남과 이별을 겪었음에도 유독 잊을 수 없는 반려견이 있었다고 한다. 어릴 적 처음으로 상실의 아픔을 느끼게 했던 개, ‘레니’ 그리고 결혼 후 처음으로 키운 개 ‘밤식이’와 ‘먹물이’. 10년이나 자식처럼 키우던 밤식이와 먹물이가 차례로 곁을 떠난 후, 세상은 텅 빈 굴처럼 공허했다. 하지만 잡지를 창간하면서 많은 것이 변했고, 지금은 잡종 개 ‘뭉치’가 그의 곁을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다.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흔히 이야기하듯, 그네들이 주는 사랑은 조건 업고 절대적이다. 그래서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굳이 비싼 품종일 필요는 없다. 개는 사람에게 좋은 반려자가 되어준다. 애정을 쏟을 사람이 있으면 개는 행복하지만 철창에 갇힌 개는 그렇지 않다. 

"더는 안 키우려고 했는데 보시다시피 얘가 잡종이라 입양이 안 되면 안락사당할 확률이 높아 보호소에서 데려왔어요. 자기 배가 고픈데 동물을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요. 세상엔 좋은 사람도 많지만, 지구나 환경 측면에서 보면 인류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죠. 출산율이 낮다고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럴수록 환경과 동물엔 피해가 가니까요. 할 일이 많죠. 동물을 '같이 사는 존재'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아이들이 반려동물을 자연스럽게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식을 개선하는 교육도 하고 싶어요. 하루아침에 바뀌길 바라는 건 아니고, 작은 영향이라도 조금씩 일어나길 바라요. 보신탕 먹는 사람을 비난하는 식이 아니라, 공장식 축산의 폐해를 알려주면서 천천히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는 몇 년을 썼는지조차 가물가물한 ‘017’로 시작하는 피처폰을 쓴다(사실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고장 나기 전에 물건을 사는 일이 없으니). 배터리 수명이 다된 탓에 충전기에 늘 꽂아두지 않으면 통화가 힘들 정도지만, 굳이 ‘스마트’한 새 전화기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철 따라 싫증 나면 바꾸는 세태 속에서 이런 삶의 방식이 대단한 실천으로 보일 지경이다.

꾸준히 책을 내면서 미약하나마 변화를 감지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덕분에 반응이 좋아져 광고 수익과 정기구독을 통해 어느 정도 유지도 가능해졌다. 아직은 1인 매체지만 장기적으로는 필자들에게 고료도 지급하고, 함께 일할 사람도 고용할 계획이다. 원고 쓰는 일은 물론 촬영과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주변인의 '재능기부'에 기대어 계속 만들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게 본인의 인건비를 고려하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전 같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책을 보거나 게임에 몰두할 시간을 지금은 온전히 《오보이!》에 들인다. 이는 그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지켜봐주는 아내 덕이기도 하다. 잡지를 만들며 틈틈이 쓴 글들에 살을 붙여 《그린보이》란 책도 냈다. 이래저래 바쁜 일상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감지하며 힘을 내는 수밖에.

"주로 동물이나 문화 관련 특집이 중심이기 때문에 틀은 빤한데 어떻게 포장해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죠. 기획은 다 제 머리에서 나오고 큰 틀에서 글은 자유롭게 쓰도록 해요. 애초 전하고자 한 것과 다른 방향의 글이 들어오는 것도 재밌고요. 만든 지 3년 가까이 되었는데 달라진 걸 많이 느껴요. 객관적인 수치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반응들이 오니까요. 좋아하는 스타가 나와서 우연히 책을 접했다가 동물복지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는 글을 받으면 참 뿌듯하죠. 죽을 때까지 해야 하고 그 이후에도 이어져야죠. 미스코리아에게 소원을 물으면 '세계 평화'라고 하는데, 제 소원도 마찬가지예요. (웃음) 사람이 평화로워야 해요." 
  
동물 문제 실상 알리고 환경에 기여하고파 

열심히 책을 만들면서 이를 알리는 일에 나서다 보니 패션지를 벗어나 시사잡지, 각종 학보(學報)와 문화면까지 등장하게 됐다. 환경이나 동물복지 이슈를 알리기 위해 인터뷰나 강연은 가리지 않는다. 말수가 적고 능변은 아니지만, 정성을 다해 대답하는 모습이 마음에 와 닿았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육식과 공장식 도축의 폐해를 줄이는 일이라 했다.

(이하 사진) 개인 전시 혹은 사진집의 형태로 곧 만나게 될 그의 사진들. 무심히 보면 건조해 보이지만 언뜻언뜻 세세한 결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저도 완전한 채식주의자는 못 돼요. 아예 먹지 말자는 게 아니라 육식을 줄이고 되도록 건강한 고기를 먹자는 거예요. 다국적기업의 대규모 축산과 도축은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이들을 더 굶주리게 해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받을 때도 잦아요. 개한테 염색을 시키거나, 억지로 교배시켜 작게 만들어 컵 안에 넣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나요. 동물을 생명이 있는 대상으로 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예요."

그가 늘 입바른 이야기만 하고, 메시지가 있는 사진만 찍는 것은 아니다. 15년간 작업해온 사진가로서 잡지와 무관한 사진집과 전시도 준비하고 있다. 꾸밈이 없어 건조해 보이기까지 하는 사진은 동물보다는 덜 오래되었으나 그의 절친한 친구다. 누구도 보지 못한 결정적 순간을 놓칠세라 재빨리 셔터를 누르기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피사체와 느릿느릿 호흡을 맞추는 것이 그의 스타일이다. 특별한 기술이 요구되기보다는 특유의 감성이 필요한 사진. 담백한 시선에 솔직함이라는 양념을 가미한 그의 작업이 기대되는 이유다.

"메시지와 무관한 일상이나 아무것도 아닌 걸 찍어요. 결정적 순간에만 집착하지는 않아요. 기록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아요. 세트나 조명을 복잡하게 꾸미지 않은 솔직한 사진을 좋아하거든요." 

그는 자기만의 메시지나 이야기를 가질 틈조차 없어 보이는 젊은 세대를 만나면 또 할 말이 많아진다. 세상을 숫자로 환원하고, 조금이라도 덜 가지면 불행하다는 딱지를 붙이는 것에서 벗어나면 동물도 사람도 더 행복해질 텐데. 가난해도 힘써 살아온 이들이 부자들보다 남을 돕는 일에 지갑을 더 잘 여는 것을 보면, 그래도 희망은 있다.

"누군가가 더 잘나가면 불행하다고 느끼는 마음을 바꿔야 해요. 나보다 힘겨운 존재를 알고 그들을 위해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 행복해진다고 봐요. 실제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이 기부도 많이 하고 마음이 더 여유로워요. 주식이나 부동산, 자기 앞날만 생각하면서 각박하게 사는 것보다는요." 

김현성은 남다른 이상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면서 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아끼고 사랑하던 이가 죽은 후에 그 죽음을 되새기며 삶의 전환점을 찾고, 소소한 자신의 삶에서부터 변화를 일으켜 그것으로 인해 인류가 조금이나마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그 꿈은, '너무 어려워요' '난 못해요'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의 자그만 태도나 습관 하나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도치 않게 배우게 해줬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힘겹고 지난하지만 각자가 삶의 태도를 바꾸기란 훨씬 쉬우니까. 얼핏 보기에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애정과 의지가 있다면 자신만의 타협점이나 틈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3년 전 얼마 못 가리라고 많은 이가 걱정하던 도전을 멋지게 지속 가능한 현실로 만든, 그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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