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곧 5월입니다. 5.18 민주화항쟁을 떠올리게 되는 때죠. JTBC 보도에 의하면 당시 공수부대 대대장이 시민을 향해 "저건 죽여도 좋다"고 지시하고 계엄군이 그 지시에 따라 시민을 사살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학살자 전두환과 쿠데타 세력은 광주의 시민군이 먼저 공격해 자위권, 즉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쐈을 뿐이라고 주장해왔지요. 그런데 국방부에 의해 내용이 지워진 채 공개됐던 11공수 상황일지 원본에는 계엄군이 시민을 사살해서 시범을 보였다라고 나와 있다고 합니다. 시민 1명이 버스를 몰고 분수대를 돌아나가려 할 때 그 자리에서 사살, 폭도들 앞에서 시범을 보였다고요.


출처 - JTBC


공수부대원의 자필 수기는 더 자세합니다. 버스가 오고 있을 때 대대장이 저건 죽여도 좋다고 했다며 중대장이 병사에게 실탄을 줘 조준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그 사격에 의해 운전을 하던 시민은 내리다 쓰러졌습니다. 버스가 계엄군에게 돌진한 것도 아니고 돌아나가는 순간 시민을 상대로 사람을 죽이는 시범을 보인 겁니다. 학살자의 수괴인 전두환의 죄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갑니다. MBC가 입수한 해병 7연대 상황일지에 의하면 전두환은 부마항쟁의 진압 또한 지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죽기 직전 부산과 마산에 들불처럼 번진 민주화 시위인 부마항쟁을 당시 박정희 정권의 계엄령으로 공수부대가 투입돼 무차별 진압했죠. 그런데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현장에서 이를 직접 지휘한 사실이 군사 기록을 통해 확인됐습니다.


출처 - MBC


전두환은 소요사태 수습은 초기 진압이 가장 중요하다며 시위대에 강력한 수단을 사용하라는 등 당시 계엄사령관, 3공수 특전여단장 등과 강경진압 작전 계획을 강행합니다. 5.18 민주화항쟁과 관련해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 않았으므로 진압작전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왔던 전두환이 사실은 그 전인 부마항쟁 진압 때도 현장에서 계엄사령부, 특전단과 작전 지휘를 했던 겁니다. 3공수 여단장을 앉혀놓고 전두환이 직접 보고를 받는다는 자료가 나온 것을 보면 전두환은 그때도 이미 권력의 핵심에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두환은 부마항쟁 진압 후 10.26으로 박정희 유신정권이 무너지자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찬탈합니다. 요컨대 전두환에게 부마항쟁은 5.18 민주화항쟁 학살의 예행연습이었던 셈입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얼마나 망가뜨리고 왜곡시켰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출처 - 경향신문


힘겹지만 왜곡된 역사를 시민의 힘으로 하나둘 고쳐가고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지난 23일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령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당시 수사 과정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지 않았더라도 국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1970년 긴급조치 위반으로 옥살이를 했던 김모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승소한 건데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긴급조치 1호는 헌법의 근본 원리인 국민주권주의 등에 비춰봤을 때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동시에 박정희는 국민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을 탄압하기 위해 긴급조치 1호를 발령해 대통령의 의무를 어겼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 판결은 지난 2015년 3월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대법원이 긴급조치가 위헌이긴 하지만 박정희의 긴급조치 발동은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대통령은 국민 전체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개개인의 권리에 법적 의무를 지지는 않기에 불법행위는 아니라고 판결했던 것과 정면으로 대치됩니다. 게다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현행법상 양승태 대법원 판결을 취소하지 못한다고 결정한 이후 나온 판결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오늘 TBS 〈김어준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유한국당 홍문종 의원이 "촛불집회는 아스팔트 쿠데타"라고 말했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된 탄핵을 쿠데타로 규정해 파문을 일으켰는데요, 전두환, 노태우에 의한 군사정권 당시 여당을 계승한 자유한국당이 촛불집회를 쿠데타로 운운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부마항쟁, 5.18 등 굴곡진 한국 현대사는 파면 팔수록 친일, 독재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친일파, 독재자가 아닌 민중의 시각에서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후대에 물려주기 위해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리려는 무리에 대항해 온 국민이 힘을 모아야 할 때입니다.

지난 5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수만 명의 시민이 모였습니다. 세 차례의 집회금지 통고 등의 난항도 있었지만, 경찰의 차벽이 없어지자 2차 민중총궐기는 평화적인 시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날 참석한 수많은 시민은 지난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이 단행한 폭력 진압을 규탄하고, 노동 개악과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의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지난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로 10만 명 이상이 광장에 모였지만 정작 얘기를 들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해외 순방을 핑계로 도망쳤습니다. 정부와 경찰은 불통의 벽을 쌓은 채 시위대를 향해 살인 물대포를 퍼부었습니다. 이로 인해 농민 백남기 씨는 지금도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태입니다.


출처 - JTBC


1차 민중총궐기 때 경찰의 폭력 진압은 도를 넘었습니다. 국민은 상식적인 선에서 최소한 물대포에 관해서 만큼은 사과나 문책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박근혜 정부의 반응은 적반하장이었습니다. 1차 민중총궐기를 불법 폭력시위로 낙인을 찍고 시위대를 테러범에 비유하기까지 했으니까요. 


 

불법 진압만 없으면 평화시위 가능하다

 

지난 5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차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언급한 '복면금지법'에 반대의 뜻을 밝히려는 시민으로 넘쳤습니다. 스스로 제작한 다양한 모양의 복면을 쓴 채 집회에 참석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과 여당은 1차 민중총궐기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시민을 구속, 수배, 체포, 소환하고 있습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평화적 집회와 시위가 일상화되었으나 이명박근혜 정권은 시위와 집회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독재정권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최근 향수 어린 옛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문화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습니다. 케이블 TV 드라마로는 공전의 히트를 한 '응답하라 시리즈'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응답하라 1988>을 제작해 인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아닌 1988년을 현실로 살아낸 사람들은 그 당시를 서울올림픽이라는 화려한 모습보다는 눈물·콧물 흘리게 한 최루탄 냄새와 독재타도라는 구호로 기억합니다. 

 

박근혜 정권은 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경찰 기동대로 이뤄진 '검거 전담부대'를 현장에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수많은 국민이 이를 사실상 '백골단'의 부활이라며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백골단은 사복경찰 체포조로서 1980~1990년대 군부독재 시대에 무자비한 탄압의 상징이었습니다. 시위 진압에 특화된 경찰부대의 별칭이 바로 백골단이었습니다. 흰색 헬멧을 쓰고 일반 경찰과 달리 사복에 가까운 청 재킷 복장에 방패, 곤봉으로 무장해 시위대를 때려잡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죠. 당시 백골단은 대부분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해병대 출신이 특채되었습니다.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백골단의 임무는 시위대를 때려잡는 일이었습니다. 전경이 방패를 이용해 시위대를 가두거나 밀어내는 데 주력한다면 백골단은 몽둥이로 시위대를 때리고 발로 차고 끌어내 진압했습니다. 백골단 앞에서는 남자, 여자의 성별도 노인, 아이의 나이도 무의미했습니다. 시위대가 집에 숨어들면 대문을 부수고 들어가 두드려 팬 후 끌어냈고, 학교 도서관으로 도망치면 무고한 학생마저 때려서 끌어내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렇기에 시위대뿐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백골단은 공포의 상징이었습니다.


경찰 측은 시위와 집회가 있을 때마다 폭력시위, 폭력시위 하는데 사실상 시위와 집회에 각목과 화염병이 등장한 이유가 잔인무도한 백골단 때문이라는 견해도 상당합니다. 독재정권의 무자비한 공권력이 오히려 시위를 과격하게 만들었다는 얘깁니다. 역기능이 더 많았던 백골단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해체되다 1996년 연세대 사태 이후로는 자취를 감췄습니다.

 

출처 - 민주와운동기념사업회


그런데 지난 2차 민중총궐기를 앞둔 경찰의 강경 진압 방침에서 국민은 백골단의 부활 조짐을 인식했습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11월 30일 집회, 시위 현장에서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기물을 파손하는 등 불법행위를 저지른 시위대를 유색물감을 뿌린 뒤 현장에서 검거한다는 내용의 폭력시위 대응방침을 공개했기 때문이었죠. 경찰관 기동대로 이뤄진 검거 전담부대를 집회 현장에 투입해 복면을 착용한 시위대를 바로 검거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국민은 박근혜 정권이 독재를 공식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파악했습니다. 과거 수많은 시민을 공포에 떨게 한 백골단도 공식 명칭은 사복경찰 체포조였으니까요. 

 

1차 민중총궐기를 불법 집회로 규정하고 2차 민중총궐기를 옥죄려고 강경 진압 방침을 내놓았지만, 사실상 '백골단의 부활'은 필요 없는 각본이 되고 말았습니다. 2차 민중총궐기가 평화적인 집회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이죠.

 

 

박근혜를 비판한 세계 주요 외신 보도

 

많은 국민이 정부와 언론이 쏟아내는 1차 민중총궐기의 불법성을 그대로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차 민중총궐기 이후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은 미국에서는 공무 집행 중 경찰이 시민을 쏴 죽여도 무죄라면서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벗어나면 경찰이 그대로 패버린다며 그게 정당한 공권력이라는 미친 소리를 쏟아내 민심을 또 한 번 들끓게 하기도 했지요. 이완영 의원의 말처럼 외국에서 공권력의 과잉 진압에도 시위대가 평화롭다면, 외신들은 1차 민중총궐기 때 시위대의 대응을 질타하는 기사를 쏟아냈을 겁니다. 과연 그러했는지 오늘은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에 대한 외신의 반응을 집중적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출처 - BBC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경찰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자들에게 최루액과 물대포를 사용했다며 경찰의 살인 물대포를 직사로 맞고 있는 시민의 모습을 파리 테러 속보와 함께 누리집 메인 화면에 게재했습니다. BBC는 이날 참가자들이 친일 독재를 은폐하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습니다.

 


AP통신은 11월 14일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정부에 대항해 행진한 민중총궐기의 모습을 상세하게 보도했습니다. 물대포와 최루액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의 모습뿐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가 국민을 탄압했던 독재자였다는 역사적 사실부터 지난 5월 세월호 집회 때 경찰이 시위대를 연행한 사실까지 보도하며 한국의 현 상황에 대한 맥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NBC


미국 NBC는 파리 테러, 북한 김정은과 더불어 시위대를 향해 물대포를 직사하는 경찰을 고공 촬영한 사진을 11월 14일 오늘의 사진으로 선정했습니다. 국정교과서에 대항해 많은 시민이 들고일어났으나 경찰은 물대포를 쏠 뿐이었다고 말이죠.


출처 - CTV


이 밖에도 캐나다 CTV 뉴스는 한국에서 7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대가 행진을 벌이다 물대포에 난사 당한 시민 한 명이 중태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태국 일간지인 《방콕포스트》도 같은 논지의 보도를 했습니다.


출처 - 고발뉴스


1차 민중총궐기 때 취재 중이던 외신 기자 중 몇몇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나동그라지기도 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기자는 손대지 않는 것이 불문율일진데 말이죠. 사람에게 살인 물대포를 쏘고 환자를 태운 구급차에 물대포를 난사하는 박근혜 정권의 경찰들이 외신 기자 몇 명쯤 신경이나 썼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한국의 상황 때문에 방독면을 착용한 채 민중총궐기를 취재하는 외신 기자들도 있었죠. 복면금지법을 만들면 앞으로 외신 기자들마저 감옥으로 가는 일이 생기겠군요.



《뉴욕타임스》, 한국에서 경제보다 더 큰 위기는 박근혜라고 규정하다


11월 14일 다른 외신들과 현장에서 민중총궐기 참가 단체들의 주장을 상세히 다루고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 방법에 대해 구체적인 묘사를 세계에 전한 《뉴욕타임스》는 11월 19일 국제면 사설을 통해 다시 한 번 민중총궐기를 짓밟은 박근혜 정권을 정조준해 비판했습니다.

 

 


출처 –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는 이날 사설에서 "북한의 꼭두각시 정권에 비해 마치 낮과 밤처럼 대비되는 남한의 민주주의를 역행시키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도가 드러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첫머리부터 직설적인 비판을 날렸습니다. 우리나라를 북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건 소위 종북세력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이란 얘깁니다. 《뉴욕타임스》는 박근혜 정권에서 국정원을 통한 카카오톡 감청으로 시민의 비판과 민주주의가 위축되고 있으며, 친일파였던 아버지 박정희를 왜곡 미화함으로써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국정교과서 추진의 배경 등에 대한 맥락도 상세히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메르스 등으로 큰 타격을 입은 한국의 큰 위기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 역사를 뜯어고치려는 시도와 반대를 탄압하려는 박근혜 대통령의 위압적인 시도에서 올 것이다"라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사설을 마무리했습니다.



경찰은 시위대를 보호해야 한다


올해 상반기 세월호 시위 당시 차벽을 친 경찰 버스의 유리창이 깨진 사진을 올리며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구입한 경찰 버스를 훼손한 시위대를 비난하는 트윗이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흥분한 시위대가 경찰 버스 유리를 깼으니 같이 비난해달라는 거였죠. 이에 대해 로이터 통신의 기자는 어이없다는 듯, 만약 영국에서 경찰 버스로 차벽을 쳐 시위대를 가뒀다면 유리창뿐 아니라 경찰 버스 전체가 박살 났을 거라면서 사진 한 장을 올렸습니다.


출처 - 트위터


영국의 경찰차가 박살 난 사진이었습니다. 사실 촛불시위가 확립된 이후로 우리나라 시위는 너무 얌전해졌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평화적인 시위로 정착되었습니다. 경찰의 과잉, 불법 진압이 난무하던 시대에 돌멩이와 쇠파이프, 화염병으로 대응해야 했던 과거 시위대의 모습과 너무나 달라 현재의 평화 시위는 메시지 전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비판을 하는 사람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판국에 선진국에서 불법 폭력 시위를 하면 큰일 나고, 애초에 선진국에는 평화 시위만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시위대를 비판하는 분들은 정신을 좀 차리기 바랍니다. 9.11 테러가 있었던 미국조차 백악관 앞에서 진행하는 집회를 허용합니다. 명박산성과 근혜차벽을 쌓는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나 다릅니다. 선진국와 우리나라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선진국에선 경찰이 시위대를 보도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해외에서 차벽 치다 망신당했던 박근혜 정권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캐나다와 미국을 순방했을 때 현지 교민들이 세월호특별법 제정 및 부정선거 규탄 시위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박근혜 대통령의 수행원들은 현지에서 트럭과 대형버스를 긴급 수배해 광화문 시위를 막는 것처럼 시위대 앞에 차벽을 치려 했습니다. 시위대가 현지 경찰에게 차벽을 언급하자 그들은 설마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지겠나 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차벽이 등장해 시위대를 가리자 현지 경찰관들은 차벽을 치울 것을 운전기사에게 요구했습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경호원들이 시위대를 제지하려 했을 때 오히려 현지 경찰관들은 경호원들의 행동을 제지하며 시위대에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출처 - 일요신문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주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도망치듯 해외 순방에 나서서 하는 일이란 게 고작 이 정도 수준입니다. 선진국의 공권력이 엄중하게 작동하는 이유는 경찰이 시민을 보호하고 시위대조차 안전하게 집회를 끝낼 수 있도록 보호해주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위의 자유는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고, 시위 중에 얻어맞는 일이 생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 나라 민주주의에 큰 문제가 생긴 거지요.

 

 

또 하나의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 만들려 하나?


백골단이 일으킨 수많은 역사적 과오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일 겁니다. 1991년 4월 명지대학교 학생이던 강경대를 백골단이 시위 진압이라는 명목으로 철근이 든 죽도와 쇠파이프로 때려죽인 사건이었죠. 집단구타 후 강경대 학생을 길거리에 팽개치고 죽도록 내버려두었으니, 사실상 공권력이 조직폭력 및 살인이라는 만행을 저지른 셈입니다. 그런데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성균관대학교 학생 김귀정 또한 경찰의 집단 구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으로 신군부의 마지막 정권인 노태우 정부는 큰 위기에 봉착합니다.


출처 - 한겨레


그렇게 민중의 피로 일궈낸 민주화의 꽃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시곗바늘이 돌고 돌아 독재자의 영애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 폭력 진압이 용인되는 시대가 다시 오고 말았으니까요. 불통의 정치에 성난 민심을 표출했을 뿐인 농민 백남기 씨에게 살인 물대포를 직사해 사경을 헤매는 상태에 처하게 한 박근혜 정부는 정녕 또 하나의 강경대 폭행치사 사건을 만들려 하는 겁니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경찰이 시민을 상대로 헌법이 보장한 집회 결사의 자유를 '허가' 하거나 '불허'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위헌 결정을 받은 차벽을 없애니 평화시위가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2차 민중총궐기가 증명했습니다.

 

분명히 말합니다. 헌법을 유린하고 폭력을 자행하는 세력은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과 경찰이지 무고한 시민이 아닙니다. 독재를 종식하게 한 6월 민주항쟁의 함성을 온 국민이 다시 외치기 전에 박근혜 정부는 농민 백남기 씨와 가족에게 사죄하고 그의 쾌유를 위해 노력하기 바랍니다.



긴급조치 4호도 ‘위헌’(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2112158535&code=940301, 경향신문)

긴급조치 1호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⑦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긴급조치 4호

민청학련과 이것에 관련한 제 단체의 조직에 가입하거나, 그 활동을 찬동, 고무 또는 동조하거나 그 구성원에게 장소, 물건, 금품 그 외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그 활동에 관한 문서, 도서, 음반, 그 외의 표현물을 출판, 제작, 소지, 배포, 전시, 판매하는 것을 일제히 금지한다. 이 조치를 위반한 자,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영장 없이 체포되어 비상군법회의에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한다. 학생의 출석거부, 수업 또는 시험의 거부, 학교 내외의 집회, 시위, 성토, 농성, 그 외의 모든 개별적 행위를 금지하고 이 조치를 위반한 학생은 퇴학, 정학처분을 받고 해당학교는 폐교처분을 받는다는 것. 군의 지구사령관은 서울특별시장, 부산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학생탄압을 위한 병력출동 요청을 받을 때는 이에 응하고 지원해야 한다.

박정희의 유신독재정권 시절, 백기완·장준하 선생처럼 뜻있는 인사들을 구속하고 재판하며 괴롭혔던 긴급조치 1호 위헌 판결에 이어 긴급조치 4호도 위헌이라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습니다.

유신독재의 긴급조치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재판부의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인 표현의 자유와 신체의 자유 등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나치게 제한해 긴급조치가 실효되기 전부터도 위헌이고 현행 헌법에 비춰보더라도 위헌"이라는 판결문은 속이 다 후련할 지경입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말이 안 되는 조치였다는 거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끊임없는 진실의 추구로 차차 독재의 망령이 하나둘 물러가나 봅니다.

타벨은 이런 과정을 거쳐 힘 있는 인간 존재의 행위와 동기에 대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확신을 품었다. 타벨은 그러한 진실이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진제가 된다는 사실도 확신했다.

아이다미네르바타벨어떻게한명의저널리스트가독점재벌스탠더드오일? 상세보기

진실은 더디 오지만 반드시 찾아온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앞으로도 유신독재와 군사정권의 폭거를 폭로하는데 사법부와 언론, 그 밖에 많은 사람이 앞장서기를 기대합니다.

PS. 소셜북스 주최로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댓글 토론회가 페이스북에서 열리고 있습니다(http://www.facebook.com/pages/doseochulpan-saeng-gagbihaeng/175898799102846?v=app_4949752878#!/event.php?eid=121586681247246).
탐사보도의 효시이자 독점재벌에 맞서 치열하게 진실을 추구함으로써 끝내 승리했던 여성 저널리스트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에 대한 독자분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를 기대합니다.


[종합]무바라크 사임, 군부에 권력이양…시위자들 축제 분위기(http://www.newsis.com/ar_detail/view.html?ar_id=NISX20110212_0007405597&cID=10103&pID=10100, 뉴시스)

29년간 이집트를 통치해온 무바라크 대통령이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지 18일만에 사임했다는 속보입니다. 기사 중 한 시민의 소감은 같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심금을 울리네요.

시위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국민이 현 정권을 무너뜨렸다”고 외쳤다. 대통령궁 주변에서 시위를 벌인 한 시민(60)은 “마침내 우리는 자유를 얻었다. 이제부터 통치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국민들이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비행이 ID(ideas0419)로 삼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승리의 날인 4.19혁명이 떠오르는 광경입니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지만 이집트 시민의 자유를 향한 위대한 승리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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