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상황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방구석1열' 족이 장르물에 관심을 보이면서 좀비물, 판타지물이 특수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중에 시장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장르물은 〈킹덤〉입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나 생지옥이 된 위기의 조선에서 왕권을 탐하는 조씨 일가의 탐욕과 누구도 믿을 수 없게 되어버린 왕세자 창의 피의 사투를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죠.

 

출처 - 넷플릭스

 

최근 시즌 2가 종료된 드라마 〈킹덤〉에 대해  우리나라를 비롯해 해외의 호평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는 "16세기 한국 환경에 초점을 맞춰 제작된 경이적인 좀비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한 〈킹덤〉은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 드라마 순위 10위 안에 안착했을 뿐만 아니라 필리핀, 태국, 싱가포르에서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콘텐츠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출처 - 부산행

 

죽은 사람이 몸을 움직이고 돌아다니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해치는 것을 판타지 세계에서는 '좀비(Zombi)'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에 좀비가 등장한 것을 계기로 〈창궐〉이나 〈킹덤〉 등 좀비가 출현하는 영화나 드라마가 잇따라 개봉되고 있죠. 애초 좀비는 중남미 카리브해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의 전통 신앙에서 비롯된 환상의 종족이었습니다. 북유럽의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에도 좀비와 같은 언데드(Undead)인 드라우그(draug)라는 존재가 있었습니다. 죽어서 드라우그가 되는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인색하고 탐욕스럽게 굴었거나, 이웃들한테 못된 행패를 부려 원성이 높았던 이들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에서는 평판이 나쁜 이웃을 드라우그라고 놀리는 일도 있었다고 하죠.

 

출처 - 킹덤

 


〈킹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피를 좇습니다. 세도가들은 혈동에 집착하고, 좀비들은 살아 있는 인간의 피를 탐하죠. 핏줄에 집착하는 세도가들이 인육을 탐하는 좀비와 같은 선상에 놓이면서 이 드라마가 비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요즘 뉴스를 통해 코로나19가 빚어낸 아비규환 같은 상황이 연일 보도되고 있습니다. 누구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마당에 누구는 이 상황을 이용해 돈벌이에 열을 올립니다. 이런 혼란한 시국이다 보니 인간의 욕망을 근원적으로 탐구하는 〈킹덤〉에 대중이 열광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한국형 판타지에 세계인이 열광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함께 보면 좋을 생각비행의 신간을 소개합니다.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

 

 

 

알면 알수록 빠져드는 유럽 판타지 세계의 시작과 끝


유럽의 판타지 세계는 ‘세계인의 보물’과도 같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하여 북유럽 신화, 켈트 신화, 동유럽 신화, 핀란드 신화 속 수많은 이야기가 오늘날 소설, 영화, 드라마, 게임, 만화 등으로 끊임없이 재탄생되어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럽의 판타지 세계는 한국 고유의 판타지보다 우리에게 더 익숙합니다. 국내에서 엄청난 흥행을 거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인 〈어벤져스〉 시리즈의 주인공 중 한 명인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천둥의 신이죠. 영국의 유명 판타지 작가인 J. R. R. 톨킨이 쓴 소설 《반지의 제왕》과 《호빗》은 각 3편씩 총 6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약 5조 5500억 원의 수익을 거뒀습니다.

 

출처 - asmustoys.com

 


오늘날 판타지 작품은 고대 신화 속 이야기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습니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난쟁이 종족인 드워프(Dwarf)는 ‘어둠의 요정’이란 뜻으로 다크알프(Dark elf)로도 불리는데, 땅속 세상인 스바르트알바헤임(Svartalfaheimr)에 살고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돌로 변해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정을 영국의 작가 톨킨은 자신의 작품에서 트롤(Troll)한테 적용했습니다. 이는 드워프인 김리가 동료인 프로도나 레골라스와 함께 원정을 떠나야 하는 설정을 감안하여 일부러 적대 진영에 속한 트롤한테 반영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죠. 드워프의 원래 특성상 김리를 포함한 반지 원정대가 햇빛을 피해 깜깜한 밤이나 동굴 속으로만 움직여야 한다면 웅장한 작품을 만들기는 어려웠을 테니까요.

 

출처 - 반지의 제왕

 


한편 유럽의 판타지 세계를 그린 국내 창작물의 놀라운 흥행성적도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출간된 《만화로 보는 그리스 신화》 시리즈는 1000만 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가 된 지 오래입니다. 그 밖에도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가 밤을 새우며 도전하는 온라인 게임 속의 온갖 괴물(메두사, 키메라, 미노타우로스, 뱀파이어, 늑대인간 등)도 늘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어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인의 보물’인 유럽의 판타지 세계를 자세히 이해한다면, 현대 문화의 흐름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유럽 판타지 세계의 뿌리를 이해할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추려 엮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리스 신화, 북유럽(게르만) 신화, 켈트 신화는 물론 다소 생소한 동유럽(슬라브) 신화와 핀란드 신화까지 망라해 유럽 전 지역에서 전해지는 판타지를 폭넓게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세상의 시작, 신, 영웅, 성자, 마법사, 거인, 괴물, 요정, 정령, 유령, 사후 세계, 신비한 장소, 보물, 세상의 끝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10가지 주제로 분류하고 총 110가지 항목으로 정리했습니다. 여기 실린 이야기만으로도 유럽의 판타지 세계를 충분히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형 판타지 창작에 활력을 불어넣는 좋은 참고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총 7권으로 기획된 ‘판타지 백과사전 시리즈’의 네 번째 책입니다. 다양한 지역에 전승되는 신화와 전설 속 판타지 세계를 바탕으로 삼아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우리나라에서 많이 창작되길 바라는 작가의 희망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지은이

도현신

1980년 수원에서 태어났고, 2005년 순천향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04년부터 작가의 꿈을 꾸고, 전자책 형식의 소설 〈마지막 훈족〉 발간을 시작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08년 출간한 인문·역사 서적 《원균과 이순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 2012년 12월에 출간한 역사 서적인 《르네상스의 어둠》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도서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2017년 9월에 출간한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전 세계 각지의 신화와 전설을 다루는 ‘판타지 백과사전 시리즈’의 일환으로 한국형 판타지 창작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옛이야기에서 찾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풍부하게 수록했다. 2019년 7월에 기존 초판 내용에 빠졌던 세상의 시작, 인간의 탄생, 대홍수, 종말에 관한 항목 등 10개의 이야기를 추가하여 한국적 판타지 세계관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완전판으로 새로이 펴냈다.
2018년 5월과 2019년 3월에는 각각 《중국의 판타지 백과사전》과 《중동의 판타지 백과사전》을 출간했으며, 2020년 3월에 펴낸 《유럽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판타지 백과사전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앞으로 인도, 일본, 제3세계 등 다른 나라와 지역의 판타지 세계를 담은 백과사전을 계속 펴내는 한편 새로운 관점으로 인문·역사를 조망하는 서적도 꾸준히 출간할 예정이다.

 

 

차례

 

_책을 펴내며

 

1. 세상의 시작
001 그리스 신화의 천지개벽 | 002 그리스 신화의 티타노마키아 | 003 북유럽 신화의 천지창조 | 004 동유럽 신화의 천지창조 | 005 핀란드 신화의 천지창조 | 006 켈트 신화의 태초 설화 | 007 그 밖의 천지창조 설화 | 008 그리스 신화의 인류 탄생과 대홍수

 

2. 신들
009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 | 010 바다를 다스리는 포세이돈 | 011 제우스를 구해준 브리아레오스 | 012 그 밖의 그리스 신들 | 013 고대 동유럽의 신들 | 014 전쟁과 지혜의 신, 오딘 | 015 모든 신의 여왕, 프리그 | 016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토르 | 017 토르의 가족들 | 018 가장 오래된 게르만의 신, 티르 | 019 장난과 재앙의 트릭스터, 로키 | 020 그 밖의 북유럽 신들 | 021 켈트 신화의 신들 | 022 그 밖의 켈트 신들 | 023 벨로보그와 체르노보그 | 024 슬라브 신화의 제우스, 페룬 | 025 페룬과 티격태격하는 벨레스 | 026 풍요를 주는 태양신, 다지보그 | 027 스반테비트와 트리글라브 | 028 그 밖의 슬라브 신들 | 029 핀란드 신화의 신들

 

3. 영웅과 성자, 마법사들
030 그리스 신화 최대의 영웅, 헤라클레스 | 031 아테네인들이 사랑하는 테세우스 | 032 포세이돈의 자녀들 | 033 메두사를 죽인 페르세우스 | 034 키마이라를 해치운 벨레로폰 | 035 오딘이 직접 키운 용사, 스타르카드 | 036 북유럽 신화와 전설의 영웅들 | 037 켈트 신화의 영웅들 | 038 핀란드 신화의 주인공, 베이네뫼이넨 | 039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 | 040 켈트족 사회의 사제 계급, 드루이드 | 041 세르비아 전설의 영웅, 마르코 크랄리예비치 | 042 아일랜드의 수호성인, 성 패트릭 | 043 환생을 믿은 고대 서양인들 | 044 신세계를 찾아 떠난 성자, 브렌던

 

4. 거인들
045 오토스와 에피알테스 형제 | 046 올림포스 신들과 맞붙은 거인족, 기간테스 | 047 거인 망신의 대명사, 티티오스와 안타이오스 | 048 천둥 망치에도 끄떡없는 스크리미르 | 049 최고의 마법을 보여준 우트가르드 로키 | 050 토르와 싸운 흐룽그니르 | 051 아스가르드의 성벽을 쌓아준 스미드르 | 052 황금 사과를 훔쳐간 티아지 | 053 솥을 아끼다 목숨을 잃은 거인 히미르 | 054 거인 스크림슬리와 농부의 아슬아슬한 내기 | 055 오딘에게 지혜로워지는 꿀술을 빼앗긴 수퉁 | 056 묠니르를 빼앗아간 트림 | 057 게이로드와 딸들 | 058 하염없이 소금 맷돌을 돌리는 페냐와 메냐 | 059 아일랜드 신화의 포모르족 | 060 웨일스를 지키는 전설의 거인, 브란 | 061 왕자의 아들을 데려간 거인 | 062 1만 7000대의 마차에 실린 황금을 챙긴 거인 | 063 걸어서 바다를 건넌 러시아의 거인

 

5. 괴물들
064 뱀 머리카락을 가진 괴물, 메두사 | 065 미궁 속에 갇힌 괴물, 미노타우로스 | 066 반인반마(伴人伴馬), 켄타우로스 | 067 인류 최초의 로봇, 탈로스 | 068 제우스도 감당할 수 없는 괴물, 티폰 | 069 에키드나와 티폰의 자손들 | 070 새로 변신한 여자 괴물, 하피와 세이렌 | 071 사람을 집어삼키는 괴물,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 072 시대와 지역을 넘나드는 늑대인간 | 073 흡혈귀(뱀파이어)를 물리치는 방법 | 074 바실리스크와 코카트리스 | 075 유니콘 | 076 바다 주교와 바다 수도승, 바다뱀 | 077 로키의 자식들, 요르문간드와 펜리르 | 078 탐욕스럽고 멍청한 트롤과 오거 | 079 판타지 속 ‘약방의 감초’ 크라켄 | 080 흙으로 빚은 인조인간, 골렘 | 081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괴물들

 

6. 요정과 정령들
082 그리스·북유럽 신화의 요정, 님프와 엘프 | 083 어둠의 요정과 땅의 정령, 드워프와 그놈 | 084 브라우니, 고블린, 레프리컨 | 085 산의 정령들, 베르크묀치와 코볼드 | 086 해적 떼로 변하는 바다 정령, 블루맨 | 087 여행자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제나 | 088 슬라브 신화 속 정령들

 

7. 유령들
089 북유럽의 좀비, 드라우그 | 090 죽음을 알리는 유령, 밴시와 듀라한 | 091 프랑스·영국의 저승사자, 안쿠 | 092 실체가 없는 그림자와 같은 고스트 | 093 유럽 각지를 휩쓴 유령 군대

 

8. 사후 세계와 신비한 장소들
094 그리스 신화의 낙원, 엘리시온 | 095 갑자기 사라진 문명, 아틀란티스 | 096 최고신 오딘의 궁전, 발할라 | 097 거인들이 사는 나라, 요툰헤임 | 098 니플헤임, 무스펠헤임, 헬헤임 | 099 아일랜드 신들의 낙원, 티르 나 노그 | 100 아서왕의 ‘불멸의 섬’, 아발론 | 101 세상의 북쪽 끝, 툴레

 

9. 신비한 보물들
102 북유럽 신화의 보물들 | 103 태양신 루의 보물들 | 104 황금 사과가 나오는 신화들 | 105 《칼레발라》의 보물들 | 106 롱기누스의 창 | 107 세상에서 가장 큰 배, 만니그푸알

 

10. 세상의 끝
108 로키의 골탕으로 죽은 빛의 신, 발데르 | 109 로키에게 내린 형벌로 발생하는 지진 | 110 최후의 대전쟁, 라그나뢰크

 

_책을 닫으며
_참고 자료

세상의 시작과 종말을 담은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


2017년 9월 1일에 나온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총 120가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근 2년간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에 대한 보답으로 생각비행은 세상의 시작, 인간의 탄생, 대홍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보완하여 총 130가지로 구성된 완전판을 내놓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신화와 전설로 간직해온 세상의 시작부터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적 판타지 세계관을 더욱 넓고 풍부하게 보완해줍니다.

 

분야: 인문·교양       판형: 신국판 변형(145*210)       발행일: 2019년 7월 1

지은이: 도현신       쪽수: 436쪽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을 견인 중인 방탄소년단(BTS)이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과 프랑스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진행된 4회 공연을 전석 매진시키며 23만 관객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외국인 팬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한국어로 따라 부르며 감동하는 모습을 유튜브 동영상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류 열풍은 우리의 문화를 잘만 다듬으면 얼마든지 외국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서양인들이 한국의 언어를 스스로 배우면서 한국의 노래를 따라 부른다면, 그들이 한국의 신화와 전설에도 얼마든지 친숙해지고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담긴 한국 신화와 전설도 얼마든지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2013년 12월 18일, SBS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는 《광해군일기》에 나오는 기이한 자연현상에 대한 기록에서 모티프를 얻어 제작되었습니다. 지구에 불시착한 UFO를 타고 온 외계인, 말 그대로 ‘별에서 온 그대’를 드라마의 설정으로 도입하여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꾸며 한국은 물론 중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죠.

 

2017년, 2018년에 개봉된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 〈신과함께-인과 연〉은 1, 2편을 동시 제작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어 각각 1441만 명, 1227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습니다. 아울러 한국 신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 만화가 영화, 게임, 캐릭터 등 다양한 산업으로 확산되어 엄청난 부가가치를 남기는 대표적인 한국형 킬러 콘텐츠로 부상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즐기는 대중 예술 작품의 대부분이 서구의 신화와 전설, 민담 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으나, 최근 우리네 정서가 녹아 있는 이른바 ‘한국적 판타지’ 성공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한국적 판타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뿌리인 한국 신화와 전설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랫동안 신화라고 하면 그리스 신화 같은 서구 쪽의 것들만 알려져 있었고, 한국의 신화와 전설에 대해서는 관심도 적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신화적 세계관은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으며, 그 내용들도 여러 문헌과 자료로 흩어져 있어 모으는 작업이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고전 문헌과 민담, 전설 등에서 신기하고 재미있는 내용들만 가려 뽑아 한국적 판타지 세계관 정립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모은 자료집입니다. 21세기 한국에서 문화 콘텐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소재를 신비한 보물, 신비한 장소, 영웅, 악당, 예언자와 예언,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신(神), 괴물과 요괴, 귀신, 도깨비, 사후 세계와 환생, UFO와 외계인, 신선과 도사 그리고 이인(異人), 세상의 시작과 끝 등 14가지 항목을 130가지 이야기로 담았습니다.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전통이 담긴 한국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삼아 세계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콘텐츠가 앞으로 더욱 많이 창작되길 희망합니다.

 

 

지은이

 

 1980년 수원에서 태어났고, 2005년 순천향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인 2004년부터 작가의 꿈을 꾸고, 전자책 형식의 소설 〈마지막 훈족〉 발간을 시작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08년 출간한 인문·역사 서적 《원균과 이순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저술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중에서 2012년 12월에 출간한 역사 서적인 《르네상스의 어둠》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 권장도서에 선정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으며,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에 호응하고자 내용을 보완하여 제3판에 해당하는 완전판을 내놓았다.
2017년 9월에 출간한 《한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한국형 판타지 창작에 관심이 많은 작가들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옛이야기에서 찾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소재를 풍부하게 수록했다.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과 성원에 보답하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신화와 전설로 간직해온 세상의 시작, 인간의 탄생, 대홍수,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추가하여 한국적 판타지 세계관을 풍부하게 보여주는 완전판으로 새로이 펴냈다.
2018년 5월에 출간한 《중국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동양적 판타지 세계관에 관심이 많은 작가와 독자들을 위해 상상력과 재미를 선사하는 진귀한 이야기 100가지를 담고 있다. 2019년 3월에 출간한 《중동의 판타지 백과사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중동의 고대 신화와 전설, 여러 종교 경전에 등장하는 신, 악마, 괴물, 정령 등 이색적인 존재를 소개한다.
앞으로 유럽, 인도, 일본, 제3세계 등 다른 나라와 지역의 판타지 세계를 담은 백과사전을 계속 펴내는 한편 새로운 관점으로 인문·역사를 조망하는 서적도 꾸준히 출간할 예정이다.


 

차례

 

_완전판을 펴내며

1. 신비한 보물
001 죽은 생명을 살려내는 환혼석(還魂石) | 002 모든 병을 치료하는 구리 화로 | 003 미래를 예언한 책 | 004 소원을 이루어주는 신비한 그림 | 005 사람에게 부를 가져다주는 구슬 | 006 하늘을 날아다니는 비차(飛車) | 007 환상을 만드는 하얀 천 | 008 음식과 금은보화를 쏟아내는 박 | 009 술을 만들어내는 용궁의 돌 | 010 귀신을 쫓아내는 살귀환과 경귀석 | 011 생각을 현실로 바꿔주는 거울 | 012 죽을병을 치료한 상륙 뿌리와 신수단 | 013 100년의 수명을 늘리는 약물 | 014 불임 여인을 임신시키는 뱀의 뿔(蛇角)

2. 신비한 장소
015 여인들만 사는 동해의 섬나라 | 016 동해에 있는 신선의 섬 | 017 호랑이와 봉황이 살고 무궁화가 피는 군자국 | 018 〈숙향전(淑香傳)〉의 신기한 나라들 | 019 우리와 다른 차원의 세계 | 020 꿈속에서 찾아간 또 다른 세상 | 021 백두산 천지 속의 용궁 | 022 도적과 괴물 지네가 보물을 지키는 동굴

3. 영웅
023 우산국의 우해왕 | 024 지나가던 스님 VS 지나가던 선비 | 025 율도국(栗島國)의 왕이 된 홍길동 | 026 하늘을 나는 아이와 ‘아기장수’ | 027 백두산의 마귀를 죽인 소년 | 028 이무기를 죽인 박만호와 이복영 | 029 바늘을 던져 왜군 병사를 죽인 조선의 어느 병사 | 030 백마산의 소장군 | 031 소년 씨름꾼 | 032 흑룡을 물리친 백장군 | 033 천하장사 송장군 | 034 백룡을 쏘아 죽인 사냥꾼 | 035 날개 달린 궁수, 묵신우 | 036 새로운 세상을 연다는 정도령의 정체는? | 037 금강산의 승려가 된 일본군 병사

4. 악당
038 백정 출신의 대도적, 임꺽정 | 039 2대에 걸쳐 활동한 도적, 장영기 | 040 갑옷을 입고 활을 당긴 도적 | 041 임진왜란 시기의 도적들 | 042 광해군 때의 마적들 | 043 남원의 비밀 조직, 살인계 | 044 조폭의 원조, 무뢰배와 검계 | 045 5000명의 기병을 거느렸던 장길산 | 046 강원도의 도적, 이경래 | 047 조선의 해적들 | 048 덕유산의 도둑, 이광성 | 049 영조 무렵의 변산 도적들 | 050 말을 타고 총을 쏘는 무법자 | 051 조선을 침입한 영국 해적선

5. 예언자와 예언
052 안동부사의 죽음을 내다본 두 승려 | 053 벌거벗은 예언자 | 054 하늘에 나타난 세 부처의 예언 | 055 정여립의 난 | 056 미륵을 자처한 이금(伊金)과 여환(呂還) 

6. 기상이변과 자연재해
057 사람의 얼굴 모습을 한 우박 | 058 태양의 기이한 변화 | 059 적조와 해일 현상

7. 신(神)
060 환인, 환웅, 단군 | 061 해모수(解慕漱) | 062 〈남궁선생전〉의 신들 | 063 바다 폭풍의 신, 설운(雪雲) | 064 활쏘기의 신, 송징 | 065 고려를 지킨 송악산의 산신령 | 066 모욕당한 여신, 순군부군(巡軍府君) | 067 조령의 신령과 맞선 관찰사 | 068 신명대왕(神明大王) | 069 제주도의 신들

8. 괴물과 요괴
070 동해의 사악한 식인 괴물, 장인족 | 071 저승에 사는 공포의 금돼지 | 072 머리 아홉 달린 지하 세계의 거인, 아귀(餓鬼) | 073 천둥과 비를 일으키는 백룡 | 074 황해도의 거인족, 우(禹)와 을(鳦) | 075 함경도의 안개 괴물 | 076 바다의 인어 | 077 둔갑하는 여우 | 078 털보 거인들의 섬나라에 간 사람들 | 079 식인 벌레 이야기 | 070 우박을 퍼붓는 강철이 | 081 새처럼 날아다니는 사람 | 082 삿갓을 쓴 외다리 요괴 | 083 승려로 둔갑한 호랑이 | 084 백두산 천지의 요괴, 자라 | 085 사람으로 태어난 불여우 | 086 귀마왕(鬼魔王)과 찰마공주(刹魔公主) | 087 짐승으로 둔갑하는 노인 | 088 우물 속에 나타난 황룡 | 089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간 어린 용 | 090 원한을 품고 환생한 뱀 | 091 서해 바다의 섬에 사는 뱀 | 092 괴물 지네

9. 귀신
093 강릉의 무서운 처녀 귀신 | 094 김유신 장군의 귀신이 한 선비를 벌하다 | 095 의병장 고경명을 저주한 처녀 귀신 | 096 악취를 풍기는 귀신을 만난 사람들 | 097 호랑이의 앞잡이, 창귀(倀鬼) | 098 잊힌 전쟁 영웅, 제말의 귀신 | 099 침략군을 물리치는 신비한 병사들 | 100 나무에 붙은 귀신들 | 101 귀신에게 재앙을 당한 사람들 | 102 귀신을 물리친 사람들 | 103 귀신에 빙의된 사람들 | 104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준 귀신 | 105 남자를 홀리는 미녀 귀신 | 106 귀신과 사랑을 나눈 사람들

10. 도깨비
107 이름을 가진 도깨비, 문경관 | 108 미녀를 데려간 폭포의 도깨비 | 109 주인에게 행운을 안겨준 꼬챙이 | 110 동전과 장기알에 붙은 도깨비 | 111 소원을 들어주는 김생원

11. 사후 세계와 환생
112 감사(監司)로 환생한 소년 | 113 아이로 환생한 돌부처의 시종 | 114 저승에 다녀온 박생(朴生) | 115 실수로 저승에 다녀온 사람들 | 116 죽은 친구를 다시 살려낸 정북창

12. UFO와 외계인
117 하늘에 나타난 불덩어리들 | 118 하늘에 나타난 둥글고 빛나는 물체 | 119 하늘에서 내려온 3명의 남자들 | 120 외계인의 아이를 낳은 사람들?

13. 신선과 도사 그리고 이인(異人)
121 도술을 부려 공간을 이동한 거지 | 122 조선의 트릭스터, 전우치 | 123 귀신을 부리며 신선이 된 장산인(張山人) | 124 늙지 않는 책 장사꾼, 조신선 | 125 당나라의 귀빈이 된 신라인 신선, 김가기 | 126 볏짚으로 만든 복제인간

14. 세상의 시작과 끝
127 천지개벽 | 128 사람의 탄생 | 129 대홍수 | 130 종말

_책을 닫으며
_참고 자료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오늘부터 한 달에 세 번, 《르네상스의 어둠》의 저자인 도현신 씨가 기고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꼭지는 우리가 잘 몰랐던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기도 하고,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을 짚어내기도 하고, 미래를 점치는 전망을 싣기도 합니다.

첫 기사로 개성공단 폐쇄를 바라보며 남북한 평화 공존 체제를 구축하자는 주장을 담은 글을 싣습니다. 개성공단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이후 2000년 8월 22일 남측의 현대아산(주)과 북측의 아태, 민경련 간에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여 시작된 남북교류협력 사업입니다. 

(출처: 통일부)

개성공단은 남측의 자본과 기술, 북측의 토지와 인력이 결합하여 마련된 역사적인 협력의 장이었습니다. 2004년 발표된 당초 계획으로는, 2011년까지 총 2000만 평의 부지 위에 800만 평의 공단과 1200만 평의 배후도시를 계획하고, 70만 명의 북한 근로자가 고용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계획처럼 개발이 진전되지는 않았으나, 개성공단의 근로자 현황을 보면 북측 근로자가 2005년(6000명), 2006년(1만 1000명), 2007년(2만 2000명), 2008년(3만 8000명), 2009년(4만 2000명), 2010년(4만 6000명), 2011년(4만 9000명) 등이었고, 2012년 1월에 드디어 5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남측 근로자는 700명~800명 정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싸늘해진 남북관계로 동북아 평화가 크게 흔들렸습니다. 김정은 체제하에서 도발적인 대남전략의 극단적 조치가 개성공단 폐쇄였으며, 이에 우리 정부는 인력 철수라는 강경한 대응을 고수했습니다. 개성공단 철수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야기할까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오늘은 이 문제에 관해 살펴봅니다. (외부 필자의 글은 생각비행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성공단이 폐쇄되기까지

요즘은 다소 조용하지만, 불과 4월 말까지 남북관계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개성공단에 파견된 우리 측 근로자들이 북한에 인질로 잡히면 특전사를 동원해서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서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마치 북한이 당장에라도 근로자들을 인질로 잡고 남한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킬 것처럼 위기감을 조성했습니다. 각종 언론들도 덩달아 앞장서서 가설을 마구 발표하여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결국 부랴부랴 개성공단 근로자들은 귀국했고, 그렇게 해서 2007년부터 운영되었던 개성공단은 현재 잠정 중단, 사실상 폐업한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모든 근로자가 철수했다고 밝힌 개성공단. (출처: ytn)

물론 북한 측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죠. 2013년 2월, 북한은 3차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으며, 무수단 미사일을 동해에 배치해서 언제든지 어디로든 쏴버리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여기에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합동 군사 훈련을 재개하고, 유엔을 통해 대북 제재를 강화하라고 미국과 중국에 호소했습니다.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을 격추시키기 위해 도쿄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했으며, 군사대국화를 외치는 아베 신조가 70퍼센트라는 열렬한 지지를 얻으며 교전권 금지를 명시한 일본의 평화 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 2월부터 5월초까지의 북한 관련 뉴스 보도만 보고 있으면, 당장 북한 때문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위기감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북한의 붕괴설만 믿고 안이했던 정부?

지금은 아니지만,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면 누가 승자가 되든 간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가 떠안아야 합니다. 북한의 장사정포와 화학무기에 의해 수도 서울이 제일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고, 최소한 수백만 명의 사람이 죽거나 다칠 것입니다. 그리고 남한에 투자된 외국 자본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당분간은 돌아오지 않겠지요. 세상에 어느 누가 전쟁이 나서 모든 산업 기반이 파괴되고,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위험한 나라에 귀중한 돈을 투자하고 싶겠습니까? 이 땅에서 다시 전쟁이 난다면 그것은 한국의 모든 사회 전반이 1950년대, 전 세계에서 제일 가난했던 시절로 후퇴함을 우리 모두가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을 대하는 태도가 태연하다 못해 너무나 안이합니다. 북한이 강경 발언을 하면 그에 맞서 강경 발언을 날리고, 북한이 군사 행동을 하면 그에 맞서 군사 행동을 하고, 북한이 조용하면 아무런 말이나 행동도 하지 않고 조용합니다. 이건 꼭 사이가 나쁜 유치원 아이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눈싸움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먼저 나서서 북한과 대화를 해보겠다거나, 아니면 남북 간의 위기 상황을 스스로 해결해보겠다는 움직임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남북문제의 당사자가 우리인 만큼, 결국 우리가 스스로 적극 나서야 하는데, 왜 제3자인 미국이나 유엔에 매달리면서 정작 우리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는지, 궁금할 뿐입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위키리크스 때문이라는 주장을 폅니다. 지난 2010년 2월 17일, 천영우 전 외교통상부 차관이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대사에게 “북한은 이미 경제적으로 무너졌고, 김정일 사후 3년 이내에 붕괴된다. 중국도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는 것을 내심 원하고 있다”라고 말했는데, 이 내용이 전 세계 외교관들끼리의 대화를 담은 위키리크스에 실려 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이죠.

정말로 한국 정부가 천영우 전 차관의 말을 그대로 믿고, 북한이 저절로 무너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요?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에 죽었으니, 3년이라면 2014년인데 그때 가서 북한이 붕괴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걸까요?
 
저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보이는 무대책, 무대응, 막가파식 태도를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개성공단 폐쇄만 해도 그렇습니다. 2013년 4월 9일, 청와대는 “개성공단이 폐쇄할 경우, 어떤 대책도 없고 그런 것을 마련해 오지도 않았다”고 발표했습니다. 개성공단 폐쇄의 책임을 모두 북한 탓이라고 돌리면서 말이죠.

천영우 차관이 미국 대사에게 한 북한의 붕괴 임박설, (출처: 쿠키뉴스)

말하자면 한국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언행들은 조만간 북한이 붕괴한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벌인 일이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얼마 안 가 곧 망할 집단(헌법상 북한도 한국의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 세력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테러 단체로 봅니다)과 무슨 대화나 협상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북한이 곧 붕괴한다는 주장은 이번에 처음 나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1994년, 김일성이 죽으면 북한이 바로 망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2~3년 동안 끊임없이 나돌았습니다. 그래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이 확인되자, 일부에서 예의상 북한에 조문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들이 나오자 보수 여당과 언론들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서 조문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하며 탄압하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없이는 못 사는 나라다. 김일성이 죽었으니 이제 북한은 곧 망한다. 그러니 망할 나라인 북한에 뭐 하러 조문을 보내느냐?” 하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서점가에서도 한동안 북한이 곧 망하고 남한에 흡수 통일된다는 예측과 전망을 담은 책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김일성 사후 19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북한은 붕괴하지 않고 건재합니다. 김정일이 죽은 지 이제 1년 하고도 5개월이 지났지만, 북한은 건재합니다. 대체 전문가란 사람들은 무엇을 근거로 북한이 정확히 언제 망한다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었던 것일까요? 혹시 그들의 말은 그저 일방적인 소망만을 담은 망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요?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 과연 좋은 일일까?

걸핏하면 전쟁 위협과 공갈, 핵실험을 일삼는 위험한 집단인 북한이 붕괴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북한이 붕괴한다면 우리에게 좋기만 한 일이 아닙니다. 북한이 무너진다면, 극소수 상류층을 제외한 2000만에 달하는 대부분의 북한 국민은 어떻게 될까요? 그나마 개미 눈물만큼이라도 식량 배급을 해주던 국가가 사라졌으니, 누구도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과연 가만히 앉아서 몽땅 굶어죽기를 기다릴까요? 아닐 겁니다. 국경선을 마주한 중국이나 남한으로 넘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식량을 구하려 들지 않을까요?
 
우리가 그들에게 지원을 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고 누군가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입으로만 한민족, 통일을 외칠 뿐 정작 진심으로 그들을 포용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1997년 5월 15일, 주간지 《한겨레 21》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응답한 아이들의 절반이 “통일되면 거지들이 몰려오니까 싫다!” 하고 답했답니다. 요즘은 “통일이 되면 우리가 북한을 먹여 살리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싫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사실 1997년의 상황과 다를 바 없습니다. 즉 우리보다 못 사는 북한 주민을 먹여 살리거나 통일을 하는 데 내 돈을 쓰기 싫다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는 겁니다.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탈북자는 약 3만 명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놓인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2011년 7월 15일, 《연합뉴스》의 보도에 의하면 탈북자 대부분이 남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이유는 남한 주민이 탈북자들을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들로 여겨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이보다 앞선 2006년 7월 17일, 《월간중앙》 8월호가 국내 거주 탈북자 2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는 더욱 놀라웠습니다. 응답한 탈북자 중 무려 70퍼센트가 미국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으며, 그중 54퍼센트는 차라리 북한으로 가고 싶다는 말까지 했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 살았던 북한 주민은 모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는 극단적인 생존 경쟁이 벌어지는 남한 사회에 제대로 적응을 못 할 뿐더러,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난에 시달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인권과 임금 차별을 받는다는 보도. (출처: mbn 뉴스)

이렇게 국내에 거주하는 3만 명의 탈북자도 제대로 먹여 살리지 못하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2000만 명의 굶주린 북한 난민이 식량을 구하기 위해 한꺼번에 넘어온다면, 과연 우리 사회가 이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과연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을 먹여 살리겠다고 순순히 돈을 풀까요? 저는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탈북자들이 못 넘어오게 막아야 한다는 여론이 대세를 이룰 것입니다. 그러면 북한 주민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지난 60년 넘게 무기고에 쌓아 둔 무기를 꺼내들고 식량과 돈을 내놓으라고 위협할 것입니다. 이런 시나리오가 예상되기에 북한 정권이 당장 붕괴한들, 우리가 얻을 이익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북한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못 하는 박근혜 대통령

사실, 북한과의 대화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정부가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이자 당장 북한이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살던 박정희 시대인 1972년 7월 4일, 남한 정부의 특사가 되어 북한으로 파견된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은 김일성을 직접 만나 회담한 뒤 남북 간의 평화로운 통일을 약속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남북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이후락 중정부장. (출처: 동아일보)

요즘 북한과의 대화 제의를 두고 “북한은 정신 나간 미치광이 집단인데, 뭐 하러 대화를 하느냐? 다 필요 없다!” 하며 일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김일성을 뿔 난 악마로, 북한을 무자비한 살인마 집단으로 여기던 상황인 1972년에도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심복인 이후락을 보내 김일성 주석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박정희가 김일성을 좋아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요? 아닙니다. 김일성은 1968년 1월 21일, 김신조가 포함된 특수 부대를 보내 박정희를 죽이도록 지시한 바 있습니다. 사적으로 보면 김일성은 박정희의 철천지원수입니다.

그런데도 박정희는 4년 후에 자신의 오른팔을 보내 김일성과 대화하게 했습니다. 김일성이 지금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은보다 더 이성적이고 믿을 만한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정희는 남북한의 대화라는 큰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사소한 사적인 감정은 접어두기로 한 것입니다. 수십 년이 지난 시점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취임한 박근혜는 “북한에 신뢰를 통한 대화에 나서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취임한 지 이제 3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여전히 북한과 대화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근혜의 지지층은 반공 정서를 기본으로 깐 보수 세력입니다. 이들은 북한을 “미치광이 살인마 집단”이라고 맹목적으로 증오하며, 그들과 어떠한 대화나 협상도 해선 안 되고 그들이 저절로 붕괴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굶주린 북한 주민을 위해 식량이나 돈을 지원하는 것도 반대할 겁니다. 만약 북한이 정말로 그들의 소망대로 붕괴한다면, 한국군 전 병력을 동원해서 휴전선을 막고, 북한 주민이 자기들 땅 안에 갇혀서 전부 굶어죽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주장할 겁니다. 북한 주민 먹이는 데 자기들 돈 쓰는 걸, 아까워하니까요.)

만약 이런 지지층을 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진심으로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습니다. 남북 간에 두 번 다시 전쟁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김정은 위원장, 우리 부디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평화를 위해 노력합시다.” 하고 공식 석상에서 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아마 당장에 박근혜를 두고 “어찌 감히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비굴하게 저 북한 빨갱이들한테 애걸을 할 수 있느냐?” 하고 항의하는 여론이 빗발칠 겁니다.

실제로 2013년 4월 11일 밤, 박근혜가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제안만 했는데도 보수층의 여론은 격분했습니다. 한국의 보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일보》는 다음 날인 12일, 신문 사설에 “북한과의 대화는 필요 없다!”는 뉘앙스가 담긴 글을 실었고,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 언론인인 조갑제도 자신의 홈페이지인 <조갑제닷컴>에 “북한과의 대화는 그들의 공갈에 굴복하는 것이다!” 하며 규탄했습니다. 이런 주변의 반발에 겁을 먹었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더 이상 북한과의 대화 제의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보수층의 반발 이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당분간 대북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취임 초기부터 추천한 인사 대부분이 부정부패와 공직자 비리에 연루되어 줄줄이 낙마하는 바람에 지지율이 40퍼센트 대까지 추락하는 상황을 경험한 바 있는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자신과 정권의 지지율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대북 강경책을 펴서 반공 보수 계층의 입맛에 맞추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합니다. 또 실제로 그 판단이 옳았죠. 연일 대북 강경론을 펼치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제 60퍼센트 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안정세에 접어들었습니다.

하지만 정권의 보신만을 위해 무책임한 대북 강경책을 고집하는 모습이 불안해 보이는 건 저뿐일까요? 반공 보수 계층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북한과 치킨 게임을 벌이는 식으로 대북 강경책에 몰두하다가 한반도 긴장 국면이 더욱 악화되어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파국으로 치닫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요?

개성공단 철수, 필연적이었다

결국 5월 12일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했던 노동자 전원이 귀국하고 공단 운영은 잠정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개성공단의 사실상 폐쇄를 두고 국민의 약 3분의 2 정도가 잘된 일이라고 여기는 분위기입니다. 북한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면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이 2013년 5월 6일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들을 보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이라면 개성공단은 존속할 가치가 없습니다. 대다수 국민이 개성공단의 운영을 원치 않고, 계속 공장들을 돌려봐야 “빨갱이들 돈 대주는데, 뭐 하러 공장을 하느냐?” 하고 차가운 눈으로 본다면 개성공단을 만든 근본 목적인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 간 갈등 완화와 신뢰 구축”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 셈인데, 공단을 운영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겠죠.

우리는 아직도 통일의 준비가 안 되었다고 주장하는 진중권 씨 (출처: 진중권 트위터)

또 박근혜 정부의 취임사에서 밝힌 “북한과의 신뢰 구축”이라는 목표가 북한이라는 집단 자체를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봐야 합니다. 진중권 씨가 트위터에서 밝힌 대로, 북한을 ‘비이성적인 미치광이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어떻게 북한을 신뢰하고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에 미친 사람을 믿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니 북한을 정말로 대화 상대로 생각한다면, 일단 그들을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북한을 정말로 비이성적이고 미치광이 집단이라고 여기고 싶다면, 그들과 아예 대화하려 하거나 신뢰하지 말아야 말의 맥락이 맞겠지요.

통일은 안 되도 좋으니, 우선 평화 공존부터 이루자 

악화될 대로 악화된 지금 상황에서 여전히 통일을 향한 꿈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현재 국면을 잘 넘기고, 다시 북한과 대화 및 협상에 나서 보자는 의견을 견지한 이들이죠. 얼마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은 “DMZ(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DMZ 평화공원은 북한과의 신뢰 관계가 구축되지 않는 한,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공염불에 불과합니다. 만에 하나 어찌어찌해서 DMZ 평화공원이 조성된다고 해도, 금강산 관광 사업이나 개성공단이 끝내 실패로 돌아간 과정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큽니다. 남북한의 강경 세력은 서로 간의 적대적인 대치 상황이 해소되기를 결코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남북한이 영원히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대치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자기들의 입지를 계속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남북한의 평화통일이라는 대의에는 저도 찬성합니다. 그러나 지금 통일을 이야기하기에는 남북한은 너무나 멀리 왔습니다.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에서 모두 강경파가 집권한 현 시국에서 통일은 은하계로 가는 것만큼이나 멀고 험난해졌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차라리 통일은 안 해도 좋으니, 남한과 북한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적대적인 대치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 공존으로만 나아가도 대단한 성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한동안 블로그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요, 오랫동안 준비한 인문교양 서적 《르네상스의 어둠》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달리 '르네상스'는 사람들이 1년 365일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 예술 활동만 하면서 살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르네상스가 한창인 15세기와 16세기,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은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잔인한 살육이 자행되던 피의 바다였습니다. 또한 이 시기에 구축한 터전을 바탕으로 서구인들은 가는 곳마다 폭력과 혼란을 수출했습니다.

《르네상스의 어둠》은 '예술, 약탈, 해적, 전쟁, 흑사병, 종교개혁, 과학, 마녀, 노예, 제노사이드, 제국주의'라는 11가지 열쇳말로 르네상스의 어두운 이면을 파헤쳐 이성과 빛으로 가득 찬 환상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줍니다. 이해하기 쉽도록 쓰고 도판 자료를 많이 담았습니다. 널리 소개해주세요! 


르네상스의 어둠

빛의 세계에 가려진 11가지 진실

▸분  야: 인문·역사
▸판  형: 신국판 변형(140*200)
▸발행일: 2012년 11월 10일  

▸지은이: 도현신
▸쪽수: 264쪽         ▸가격: 13,500원
▸ISBN: 978-89-94502-12-0  (03900)

 

끊임없는 전쟁으로 얼룩진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
사람들은 흔히 ‘르네상스’ 하면 미개했던 중세의 어둠에 가려진 그리스 로마 문명을 되살리는 문예부흥 정도로 알고 있다. 뛰어난 예술 천재들이 나와 르네상스의 중심지인 이탈리아에서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다는 게 일반적인 역사적 통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르네상스 시기에 고전 문명이 미친 영향은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분야로 국한되었다. 정치·경제·군사·사회 면에서 그리스 로마적인 부활의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시민이 중심이 된 민주정치는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사실상 르네상스 당시 유럽은 1년 365일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 없이 편안하게 예술 활동을 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르네상스가 한창인 15세기와 16세기,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전역은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잔인한 살육이 자행되던 피의 바다였기 때문이다. 《르네상스의 어둠》은  ‘예술, 약탈, 해적, 전쟁, 흑사병, 종교개혁, 과학, 마녀, 노예, 제노사이드, 제국주의’라는 11가지 주제를 통해 이성과 빛으로 가득 찬 르네상스의 환상을 통렬히 깨트리고 우리에게 진실된 유렵의 역사를 조명해준다.

해적단의 약탈과 노예무역이 남긴 인종차별의 역사
16세기 유럽인은 누구 할 것 없이 외부의 이슬람 세력을 두려워했다. 오늘날 터키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은 막강한 힘으로 유럽의 동부 내륙까지 파죽지세로 쳐들어와 유럽인을 공포에 떨게 했다.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단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물론 전 유럽의 해안 지대를 돌면서 인신매매와 노략질을 일삼았다. 바르바리 해적단의 약탈은 16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약 300년간 계속되었으며, 그 기간에 납치된 유럽인은 무려 125만 명에 달했다. 이처럼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르네상스 시절의 유럽인들은 오스만제국이나 바르바리 해적단이 쳐들어와 언제 그들에게 납치당해 노예로 팔릴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며 살았다.
그런 와중에 유럽인들은 후대의 역사에 길이 남을 범죄를 저질렀다. 16세기 들어 대서양 건너 그들이 새로 정복한 신대륙에서 일할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멀리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잡아 끌고 갔던 것이다. 신대륙에 정착한 흑인 노예들과 그들을 비인간적으로 착취하는 백인 노예주들의 문제는 오늘날까지 풀리지 않는 골칫거리인 인종차별의 불씨가 되었다.

르네상스를 찬란한 이성의 시대로 오해하는 까닭
불안과 공포로 가득한 르네상스 시기를 가리켜 “찬란한 이성의 시대”라고 찬양하며 후세 사람들에게 그릇된 인식을 가지게 한 장본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그들은 다름 아닌 18세기 계몽주의 시대 유럽의 지식인들이었다. 그들은 중세 시대를 폄하하고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를 복원하고자 노력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에 들어서면 서구 지식인 사이에는 기독교 신앙이 아닌, 이성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싹튼다. 그들은 기독교라는 배타적이고 비합리적인 신앙에 매달리기보다는 이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사회를 발전시켜 자신들의 세계가 고대 그리스나 로마처럼 위대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둘째, 계몽주의 시대 유럽을 주도한 영국과 프랑스 같은 주요 강대국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것이었다. 18세기 무렵 영국과 프랑스는 아메리카 대륙, 인도, 동남아시아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을 지배하는 식민지를 건설한다. 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거의 1000년간 유럽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갇혀 있던 그들이 유럽을 벗어나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을 넘나드는 제국을 다스리게 된 것이다.
서구 지식인의 바람과는 반대로 르네상스 시기 유럽인들이 가는 곳마다 폭력과 혼란이 수출되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사실이다. 인종 학살과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발단도 따지고 보면 르네상스 시대에 벌어진 과도한 해외 식민지 개척 경쟁에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미루어 본다면 르네상스 시기 유럽이야말로 비이성과 부조리함이 판을 치던 진정한 암흑의 대륙이 아니었을까?


지은이 도현신
1980년 수원에서 태어났고, 2005년 순천향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인 2004년부터 작가의 꿈을 꾸고, 전자책 형식의 소설 〈마지막 훈족〉발간을 시작으로 작가의 길을 걸었다.
2005년에는 광명시가 주최한 제4회 전국신인문학상에서 단편소설 〈나는 주원장이다〉로 장려상을 받았다.
그 뒤 여러 가지 길을 찾다가 인생의 목표를 역사 저술로 잡고, 2007년부터 1년간 준비한 끝에 2008년 2월 첫 번째 인문·역사 서적인 《원균과 이순신》을 발간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임진왜란, 잘못 알려진 상식 깨부수기》를 출간하여 임진왜란에 얽힌 여러 가지 숨겨진 사실을 조명했다. 2009년에는 민중의 삶과 전쟁의 상관관계를 그린《옛사람에게 전쟁을 묻다》와 한국사의 어두운 일면을 담당한 악인들을 다룬 《한국사 악인 열전》을 냈다.
2011년 2월에는 《전쟁이 요리한 음식의 역사》를 출간하여 2012년 2월 한국정책방송 인문학열전 코너에서 인터뷰를 할 정도로 뜨거운 조명을 받았다.
같은 해인 2011년 9월에는 조선시대 왕가의 교육법을 다룬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과 전쟁에서 태어난 과학기술과 발명품들을 다룬 《전쟁이 발명한 과학기술의 역사》를 출간했다.
2012년에도 그의 도전은 계속되어, 4월에는 이순신의 시각에서 임진왜란을 조명한 서적인 《이순신의 조일전쟁》, 7월에는 우리 조상의 음식문화를 다룬 《한국의 음식문화》, 10월에는 한국사와 세계사에 얽힌 숨겨진 이야기를 새로 파헤친 《어메이징 한국사》와 《어메이징 세계사》시리즈를 발간했다. 이번에 출간한 《르네상스의 어둠》은 그의 열두 번째 작품이다.

차례

책을 펴내며 _이성과 빛으로 가득 찬 르네상스의 환상에서 벗어나자

 1. 예술―금권숭배와 권모술수 속에서 피어난 찬란한 문화
 2. 약탈―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끝내버린 충격적인 사건
 3. 해적―유럽인을 공포에 떨게 한 이슬람 해적단
 4. 전쟁―살육과 포화 속에 싹틔운 르네상스
 5. 흑사병―인구 집중이 낳은 엄청난 재앙
 6. 종교개혁―재화를 바라보는 신앙관의 변화
 7. 과학―종교는 과학과 적대적이기만 한가?
 8. 마녀―마녀사냥의 거짓된 이미지와 중세의 현실
 9. 노예―인종차별의 싹은 르네상스 시대에 시작되었다
10. 제노사이드―신대륙에서 벌어진 대학살의 진실
11. 제국주의―바닷길을 통해 벌어진 식민지 쟁탈전

책을 닫으며 _르네상스의 이면을 돌아보자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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