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있었던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열리기 전부터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땅콩회항과 물컵 갑질을 비롯한 횡령, 배임 등 온 가족이 비리 덩어리였던 조씨 일가의 핵심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내이사 연임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로 갑론을박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국민연금이 연임 반대에 표를 행사하기로 하면서 개미 투자자들이 결집해 전운마저 감돌았습니다. 주주총회에서 조양호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을 저지하며 우리나라 자본주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대기업 집단의 오너가 주총 표 대결로 경영권이 박탈된 것은 이번이 최초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하지만 사실 이 대결도 아슬아슬했습니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66.6% 이상의 표를 받으면 연임이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조양호의 우호 지분을 포함하면 33.35%의 지분을 이미 확보한 상태였기 때문에 사회를 뒤집어놓은 갑질과 비리에도 불구하고 연임되는 것 아니냐는 비관적인 전망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외국인 주주, 의결권 자문사와 개인투자자들이 일제히 재선임에 반대해 찬성 64.1%, 반대 35.9%로 조양호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지위를 박탈했습니다. 재선임 저지선인 66.6%와 불과 2.6% 차이였죠. 이로써 조양호는 아버지인 조중훈에게서 CEO 자리를 물려받은 지 20년 만에 자리에서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조양호 재선임안이 부결된 가장 큰 이유는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의 침해 이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이 반대로 표를 던진 이유도 이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주총 안건이 올라오면 걸러지는 것 없이 그냥 다 통과되는 게 당연시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한진그룹의 경우 총수 일가의 기업가치 훼손 이력이 너무나도 극명했죠. 전문가들은 이번 대한항공 주총을 계기로 기업가치 훼손에 대한 이력이 있는 총수 일가의 선임 안건에 대해서는 기업들도 긴장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출처 - 네이버금융


이런 전문가들의 전망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주총에서 조양호가 대한항공 경영권을 박탈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한항공을 비롯해 한진그룹 계열사 주가가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계속 이어져온 오너 리스크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죠. 국정농단 때도 그랬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오너 일가가 사라져야 기업이 성장하고 주가도 오른다는 점이 여러 번 드러났습니다.


출처 - 한겨레


물론 조양호 일가와 대한항공 경영진들은 주주총회 결정에 불복하며 발악하고 있습니다. 조양호는 주주총회가 끝나자 미등기이사로 남아 계속 회사를 경영하겠다고 밝혔죠. 대한항공은 보도자료까지 뿌리며 주총 결과는 사내이사 재선임 부결이지 경영권 박탈은 아니라고 그 의미를 끌어내리기 바빴습니다. 그러면서 미등기 회장으로 경영을 계속하는 식으로 경영권을 유지하되 대표이사직만 상실되는 게 맞다는,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언변으로 큰 논란을 예고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급등하던 대한항공 주가가 주춤하더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죠. 정말로 오너 일가가 기업 발전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이 명백히 증명된 하루였죠.


출처 - 연합뉴스


이렇게 기업의 이익 활동을 방해하고 주주들의 결정을 무시할 거면 주주총회는 왜 하는 것이며, 대체 그럴 거면 주식회사를 왜 유지하는 걸까요? 대한항공은 현재 조양호를 포함 3명이 공동대표이사를 맡은 3인 공동대표체제인데, 사내이사직이 유지가 안 되면 대표이사도 맡을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공석이 된 사내이사직은 추후 임시주주총회를 통해 추가로 선임하는 절차를 밟아야 하죠.


출처 - 오마이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오늘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공정거래 4개 기관 조찬 강연에서 "대한항공 주주총회는 시장참여자와 사회의 인식을 바꾼 이정표"라며 "기업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료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재벌개혁은 공정거래법만으로 하는 게 아니다. 주총 등도 함께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며, 한국은 이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대한항공 조양호의 사내이사 및 경영권 박탈은 기쁜 일입니다만, 왠지 입맛이 쓴 건 5년에 걸쳐 온 일가가 사회의 공분을 일으키는 일을 연달아 저지르고 나서야 겨우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주주자본주의가 왜곡되어 있고 썩어 있음을 방증하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같은 날, 똑같이 국민연금이 재선임에 반대했지만 SK 최태원은 사내이사에 재선임된 것만 봐도 재벌 개혁은 이제 겨우 첫걸음을 뗀 정도에 불과합니다. 힘들지만 의지만 있다면 재벌도 바꿀 수 있다는 걸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성과가 아닌가 합니다. 이 기세로 비리와 갑질로 점철된 다른 대기업들의 경영도 쇄신하는 기회를 만들어야겠습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입니다.

물벼락 갑질로 전 국민의 비난을 받은 조현민 때문에 조씨 삼 남매의 갑질이 재조명되더니 그들의 어머니인 이명희와 아버지인 조양호의 갑질 행태도 폭로로 이어졌습니다. 개인의 문제를 넘어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이 사회적으로 회자하면서 이에 대한 폭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말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관세포탈 혐의를 조사 중인 관세청은 대한항공 본사 전산센터와 김포공항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총수 일가가 관세를 포탈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문제입니다만 최근 더 충격적인 폭로가 나왔습니다. 대한항공이 발암물질로 기내 청소를 시켜왔고, 이 때문에 암에 걸린 직원도 나왔다는 겁니다.


출처 - 노컷뉴스


대한항공 청소 하청업체에서 5년간 일했던 김태일 한국공항공사 비정규직 지부장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대한항공이 발암물질로 기내 청소를 해왔다는 사실을 폭로했습니다. 김 지부장이 언급한 발암물질은 템프(TEMP)와 CH2200인데요, 템프의 주성분이 쿼츠라는 1급 발암물질입니다. 유럽연합에서는 이미 사용을 금지한 약품이라고 하죠. CH2200에 인체가 장시간 반복 노출되면 장기와 생식능력에 손상을 주며 태아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승객들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발암물질이 묻은 테이블 위에서 식사하고 잠을 잤던 겁니다.


출처 - 한국일보


더 큰 문제는 이 약품에 가장 오랜 시간 노출되었을 승무원들과 청소 노동자들입니다. 특히 기내 청소 노동자들은 밀폐된 공간인 비행기 안에서 템프를 천에 묻혀 좌석을 닦고 CH2200을 분무기로 분사하면서 종일 일했다고 합니다. 장갑을 끼고 일하면 미끄러져 등받이 식탁 등을 잘 닦을 수 없다며 관리자들이 장갑을 끼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약품이 묻은 천을 맨손으로 만져가며 청소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10년 넘게 청소를 했지만 이 물질이 어떤 위험성을 가졌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출처 - 노컷뉴스


발암물질 사용이 중단된 건 지난해 7월이었습니다. 대한항공 여객기 안을 청소하는 노동자 5명이 기내 투입 5분 만에 구토하며 쓰러져 인근 대학병원에 실려서 갔고 진단 결과 화학물질에 의한 손상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청소 노동자 중 한 명인 김 지부장이 사내 게시판 한쪽 구석에 붙은 시정 명령서를 찾아낸 결과 발암물질 사용을 중단할 수 있었습니다. 시정 명령서의 내용이 CH2200의 위험성을 교육하고 이 물질의 용기마다 위험 문구를 붙여야 하는데 안 했기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이 명령서를 정직원에게 물어볼 때까지 아무도 그 약품이 뭔지 몰랐다는 사실입니다. 1년 이내에 암으로 퇴사한 청소 노동자가 5명인데, 결국 이 약품들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노동청에 비행기 유해물질을 조사해달라고 진정을 넣은 상태라고 합니다. 대한항공의 발암물질 기내 청소가 사실로 최종 확인되면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처럼 큰 산업재해 사건으로 비화할 조짐입니다.


출처 - SBS


새로이 드러난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갑질 중에는 라면상자 사건도 있습니다. 조양호 일가가 비행기에 오를 때 라면상자를 짐으로 실었는데 협력사 직원이 큰 박스라 그냥 수하물로 부쳤다고 하죠. 그런데 대한항공 상주 직원이 득달같이 달려와서 크게 혼을 냈다고 합니다. 라면이 부서지면 책임질 거냐는 황당한 이유였습니다. 대체 조양호 일가가 그간 얼마나 갑질을 해댔기에 직원이 라면 부서지는 것까지 신경을 써야 했을까요? 

출처 - 경향신문

 

결국 직원은 화물 컨테이너를 마련해 그 안에 스티로폼을 깔고 비닐 포장을 완비하여 라면 상자를 안전하게 모셨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건 그 컨테이너에 라면 한 상자 외에는 그 어떤 짐도 싣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기네스북에 오를 황당한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출처 - 미디어오늘


사람을 라면상자 정도만큼이라도 배려했다면 시정 명령까지 받은 상황에서 청소 노동자들로 하여금 발암물질로 기내 청소를 계속하게 했을 리는 없겠죠. 대한항공의 갑질과 조씨 일가의 갑질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갑질 행태는 삼성전자에 이어 한진그룹까지 대기업 오너들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정부 기관들은 한진그룹의 불법행위를 단죄함과 동시에 전 대기업으로 확대해 갑질 행태를 철저히 단속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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