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코로나 정국 속에서 국민의 지지를 받아 선출되는 의원들이 과연 어떤 분들일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입니다. 이번 주 금, 토요일인 10~11일은 사전투표일이며, 다음 주 수요일인 15일은 본 선거일입니다. 국민의 대리인이자 지역의 일꾼으로 어떤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할지 마음속으로 정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역대 최다로 많은 정당 가운데 어디에 투표를 해야 할지, 우리 지역에 어떤 후보가 나왔는지 잘 몰라 혼란을 겪고 있는 분들이라면 간단한 방법으로 '소거법'을 써보시길 권합니다. 뽑지 말아야 할 사람들부터 제하는 겁니다.


출처 - 한겨레


이번 총선 사전투표 마지막 날인 4월 11일은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일이죠. 3.1운동으로 촉발된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최초 정부 수립을 기념하는 날인 만큼, 적어도 친일파는 국회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야겠죠. 인터넷 곳곳에서 이번 총선을 한일전으로 규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친일파 없는 국회만들기 노노후보 : https://nonohubo.com


부산의 시민단체들이 4.15 총선을 앞두고 친일파 없는 국회 만들기 운동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총선 예비후보자 가운데 친일 발언 등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정치인에 대해 유권자들이 제대로 알고 투표에 참여하자는 뜻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친일 정치인 명단은 이 시민단체들이 만든 누리집인 노노후보닷컴( http://nonohubo.com )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얼굴들이 많이 보입니다. 자위대 행사에 꼬박꼬박 참여한 분부터 '내 딸이 위안부였어도 일본을 용서했을 것'이라는 일본 바라기까지 있습니다.



출처 – 4.16연대


본 선거일인 15일 바로 다음 날인 4월 16일은 헌정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를 낳은 지난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참사인 세월호 사고가 있었던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2014년에 있었으니 올해로 6주기가 됩니다. 수백 명의 국민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참사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으면서 뻔뻔하게 이번 총선에 얼굴을 들이민 정치인들 역시 낙선 대상 후보자로 꼽혔습니다.


세월호 참사 관련 21대 총선 낙선 대상 후보자 17인 : http://416act.net/notice/91305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는 세월호 가족이 시민, 단체와 함께 꾸린 4.16 참사에 대응한 통합적 상설단체입니다. 4.16연대는 지난 2일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21대 총선 낙선 대상 후보자 17인의 명단을 공개했습니다. 여기 소개된 이들의 면면도 화려합니다. 화려한 핑크빛이라 보기 민망할 정도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그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은폐했고, 진실을 밝히려는 조사와 수사를 방해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참사 당시 책임질 자리에 있었으면서도 그 의무를 방기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 수년간 희생자와 피해자를 핍박하고 모욕하기까지 했던 그야말로 인면수심의 대표 격인 자들이죠. 인명에 이렇게 무감각한 자들이 과연 살아 있는 국민을 위해 무엇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믿는 분이 아직도 계신가요?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유튜브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월 10일과 11일 이틀간에 걸쳐 사전투표가 시행되며 시간은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입니다. 이때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여권 같은 신분증이 있으면 가까운 사전투표소 어디서든 투표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투표소에 들어갈 때  앞 사람과 최소 1미터 이상의 거리를 유지하고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손을 소독하고 일회용 장갑을 끼고 기표해야 하는 등 과정이 다소 복잡해졌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나 자신과 이웃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방법의 일환입니다.


출처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고 있는 중차대한 시국에 치르는 이번 총선은 향후 우리 지역의 일꾼을 뽑는 일 일뿐만 아니라 국민의 목소리를 대의할 대리자를 뽑는 선거이기도 합니다. 그런 만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뽑는 것은 최소한의 선택 조건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와 더 나은 우리 삶을 위해 소중한 한 표 잘 행사하시길 바랍니다.

4월 13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입니다. 1919년 4월 13일, 3.1운동 정신을 계승해 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되찾고 자주독립을 이루고자 중국 상하이에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제정한 국가 기념일이죠.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정부를 선포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하는 대한민국이 '법치'와 '민주주의'의 힘으로 후안무치한 대통령과 그 부역자들을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 현재 시점에서 상기할 만한 날입니다.


출처 - 중부매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맞서는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었습니다. 연통제라는 비밀 행정 체계를 만들어 대한민국 본토에서 독립운동을 도모하는 한편 활발한 외교 활동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기도 했죠. 파리 강화 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일이 이런 맥락입니다. 1940년엔 광복군을 창설하여 실질적인 독립운동의 중심으로서 그 역할을 수행한 것과 아울러 독립운동가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자주성과 민족문화를 고취한 성과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백범 김구의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의 한 대목을 생각해볼까요?


나는 우리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영화를 여럿 만들고, 한류 붐으로 전 세계적인 대중문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우리.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묵인 속에 미르 재단과 미래창조과학부가 '문화융성'을 한답시고 자행한 일로 대한민국의 국격에 먹칠을 한 작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김구 선생님께 한없이 죄송한 마음입니다.


출처 - 뉴스1

 

김구 선생님은 '나의 소원'에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조기 대선 정국에 4월 폭격설 따위의 가짜뉴스가 판을 칠 정도로 한반도의 위기감이 더해가는 요즘, 남북한 정상회담이 열리고 햇볕정책으로 평화를 갈망하던 따뜻한 봄날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을 위한 사드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가 휘청거리더니 우리 의지와 상관도 없이 미국 대통령의 변덕 때문에 한반도에 전쟁 위기가 고조되는 이 시국에 말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현실만 놓고 볼 때 100여 년 전 우리나라 신세가 떠오른다고 하면 너무 가혹한 평가일까요? 백범 김구는 나라 안에 봄바람이 화창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한반도의 기반은 무력이 아닌 평화임을 인식하고, 이를 수행할 비전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뽑는 주권자로서의 권리를 무겁게 느껴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출처 - 경향신문


2년 뒤면 우리나라는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과연 그때 우리는 어떠한 나라에 살고 있을까요? 한 달 뒤 우리의 선택이 그 날을 좌우할지도 모릅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어제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어서 관련 행사 소식을 알려드렸습니다. 오늘은 기념일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특별한 사과 이야기를 소개할까 합니다. 

지난 4월 21일(토)은 '과학의 날'이었습니다. 또 지난 4월 22일(일)은 '정보통신의 날'이었죠. 과학의 날과 정보통신의 날 같은 법정 기념일은 정부가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따라 특정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합니다. 기념일에는 각종 의식과 기념행사를 엄숙하고 검소하게 시행하는데요, 의식과 행사의 절차·방법·규모, 기타 필요한 사항은 해당 행정기관의 장이 정하여 시행합니다.

1973년 3월 30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이 제정, 공포되기 이전에는 무려 53종의 기념일이 생겨 예산 낭비와 인력 동원과 같은 폐해가 컸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위 규정에 따라 2011년 4월 현재 43종의 법정 기념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입양의 날' '가정의 날' '발명의 날' '방재의 날' 등 17종의 기념일이 개별 법령에 의해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4월엔 유독 법정 기념일이 많은데요, 어떤 날이 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기념일

날짜

주관부처

행사내용

어업인의 날

4월 1일

농림수산식품부

어업인의 위상을 확립하고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행사를 한다.

향토예비군의 날

4월
첫째 금요일

국방부

모든 예비군이 참가하여 향토방위의 임무를 새롭게 다짐하는 행사를 한다.

식목일

4월 5일

농림수산식품부

국민식수에 의한 애림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한 행사를 한다.

보건의 날

4월 7일

보건복지부

국민보건향상을 위한 관련 분야의 각종 행사를 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기념일

4월 13일

국가보훈처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역사적 의의를 기리는 행사를 한다.

4·19혁명기념일

4월 19일

국가보훈처

4.19혁명을 기념하는 행사를 한다.

장애인의 날

4월 20일

보건복지부

국민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고, 장애인의 재활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행사를 한다.

과학의 날

4월 21일

교육과학기술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높이고 모든 국민생활의 과학화를 추진하는 데 관련된 행사를 한다.

정보통신의 날

4월 22일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정보통신사업의 발전을 다짐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행사를 한다.

자전거의 날

4월 22일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시행령)에 따름.

새마을의 날

4월 22일

행정안전부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에 따름.

법의 날

4월 25일

법무부

국민의 준법정신을 앙양시키고 법의 존엄성에 관련된 행사를 한다.

충무공탄신일

4월 28일

문화체육관광부

충무공의 높은 충의를 길이 빛내는 행사를 한다.

(출처: 위키피디아 한국어판)

과학의 날, 정보통신의 날

'과학의 날'은 과학 기술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국민 생활의 과학화를 추진한다는 목적으로 제정된 기념일입니다. 원래 과학의 날은 일제시대에 우리나라 최초의 과학잡지인 《과학조선》을 창간하고 과학기술보급회를 창립한 김용관 선생님이 "생활의 과학화! 과학의 생활화!"를 목표로 1934년 4월 19일에 '과학 데이'라는 행사를 개최하여 온 국민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리는 계몽운동을 전개한 데서 비롯했습니다.

제45회 과학의 날(달) 포스터

 최초의 과학의 날 행사를 4월 19일로 정한 이유는 인류의 사상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다준 진화론의 주창자 찰스 다윈의 5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강점기에 과학의 날을 핑계로 민족운동을 전개한다고 하여 이 행사의 지도자인 김용관 선생님을 감옥에 가두고 행사를 계속하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결국 이 기념일은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그 이후 1967년 4월 21일 과학기술처의 발족일을 기념하여 창립 1주년이 되는 1968년 4월 21일을 '과학의 날'로 지정했습니다. 과학의 날에는 과학기술의 중요성과 과학의 생활화로 국민생활의 향상을 위하여 과학기술진흥에 힘써온 과학기술계 유공자들을 표창 또는 수상하는 한편, 이날을 전후하여 ‘과학주간’ 을 정하고 여러 가지 행사를 전개하기도 합니다.

'정보통신의 날'은 조선 후기인 1884년(고종 21) 4월 22일, 국내 최초의 통신업무 주무기관인 '우정총국'이 개설된 날을 기념하는 한편 정보통신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을 다짐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할 목적으로 제정한 기념일입니다. 1956년 '체신의 날'로 지정해 행사를 계속해오다가 1994년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정보통신의 날'로 바꾸어 해마다 4월 22일 정보통신부가 주관해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그러다 2008년 2월에 정보통신부가 해체되면서 2008년부터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주관해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6개의 사과

4월은 과학의 달입니다. 과학의 날, 정보통신의 날을 보내면서 문득 세상을 바꾼 사과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과학, 정보통신, 사과가 무슨 관련이 있기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  혹시 여러분은 세상을 바꾼 사과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요? 사과 자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일이겠지만 하나의 과일에 불과한 사과가 어떤 사람과 어떤 관계로 연결되느냐에 따라 인류의 역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일이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상을 바꾼 세 개의 사과라는 이야기가 인구에 회자한 일이 있습니다. 아는 분도 많이 계실 텐데요, 다름 아닌 모리스 드니(Maurice Denis)가 이야기한 내용이었죠.

세계 역사상 유명한 사과 세 개가 있다. 첫째는 이브의 사과이고, 둘째는 뉴턴의 사과이며, 셋째가 세잔의 사과이다.


이제부터 역사상 유명한 3개의 사과에 생각비행이 선정한 3개의 사과를 더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킨 6개의 사과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 이브의 사과 - 인류의 시작

알브레히트 뒤러의 아담과 이브(출처: 위키피디아)

성경의 창세기를 보면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에덴의 동쪽에 동산을 만들고 흙을 빚어 최초의 인류인 아담을 창조한 다음 혼자 지내는 것을 가엽게 여겨 이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지요.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뱀이 나타나 이브를 유혹합니다. 뱀은 이브에게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한 선악과의 열매를 먹어보라고 꼬드깁니다.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선악을 분별하는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유혹했던 것이죠. 뱀의 유혹에 이브는 그만 넘어가고 맙니다. 그런데 혼자만 이 열매를 먹은 게 아니라 남편인 아담에게도 과일을 먹으라고 권합니다. 

성격은 이때부터 사람이 선악에 눈을 떠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기록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이브는 결국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창조주는 아담과 이브에게 인간으로서 겪어야 할 고통―이브는 아이를 낳는 고통을, 아담은 먹고살기 위해 땅을 일궈야 하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서양의 그림을 보면 아담과 이브가 먹은 선악과를 보통 사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사과라는 내용은 나오지 않지만 왜 많은 사람이 선악과를 사과로 표현했을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보면 수치심을 느낀 아담과 이브는 '무화과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그러니 선악과의 정체를 추정한다면 무화과의 열매로 보는 게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고대인에게 무화과 잎은 정욕과 성의 의미가 있었다고 하는군요. 그런데 왜 종교화가들은 모든 그림에 무화과가 아닌 사과를 그려놓았을까요?

여기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습니다.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선악과를 사과로 혼동했다는 설이 있기도 합니다만, 종교화가들이 동그란 형태의 붉은색 과일로 선악과를 표현한 것이 나중에 사과로 인식되었다는 추측이 더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합니다. 즉 상상의 과일을 특정한 과일로 그릴 수는 없었으므로 붉은 색깔로 유혹의 상징을 강조한 결과 '금단의 열매=사과'라는 인식이 생겨났다는 얘기죠. 어쨌든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사과?)를 먹음으로써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슬프고도 놀라운 이야기지요? ^^

2. 뉴턴의 사과 - 위대한 법칙의 발견

아이작 뉴턴(출처: 위키피디아)

인류의 탄생에 일조한 사과는 훗날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이작 뉴턴이란 과학자를 모르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만류인력의 법칙, 즉 인류에게 중력이라는 개념을 정립해준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입니다. 그와 사과에 대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1665년 유럽을 강타한 무서운 전염병인 흑사병이 영국에도 유행했습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다니던 뉴턴은 자신의 고향인 링컨셔의 울즈소프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뉴턴이 사과나무 아래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사과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뉴턴이 무심코 떨어진 사과가 과연 왜 떨어졌을까를 생각한 결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는 일화죠. 

사실 역사가들은 사과 때문에 뉴턴이 만류인력의 법칙을 고안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흑사병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간 뉴턴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과학과 철학에 관해 깊은 사색에 잠길 여유가 있었고, 그 때문에 수학, 광학, 천문학, 물리학의 중요한 발견을 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뉴턴 자신도 2년간의 휴학기를 두고 '발견에 있어서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정도였으니까요. 아마도 이 시기에 일어난 뉴턴의 위해한 발견은 호사가들이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해 이런 사과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요?

참고로 뉴턴은 과학자, 철학자, 연금술사, 신학자, 그리고 정치가로서 다양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런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거품이 낀 남해회사에 투자했다가 큰 손해를 보기도 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거품경제'라는 말을 낳은 사건 - 남해 거품 사건을 참고하세요.)

3. 세잔의 사과 - 마음에 말을 건네다

폴 세잔(출처: 위키피디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에서 은행가의 장남으로 태어난 세잔은 아버지의 뜻대로 법률을 공부했지만 그림을 향한 열정을 잠재울 순 없었습니다. 그는 고향의 낯익은 풍광을 화폭에 담아내며 사물의 본질의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아울러 세잔은 인상주의 화법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만의 그림을 탄생시키는 데 몰두했습니다. 폴 세잔은 원만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었던 세잔은 매우 신경질적이어서 자신의 작품을 찢어버리는 자학적이고 충동적인 행동도 잦았다고 합니다. 또한 당대 인상주의자와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고 사교계 사람들에게도 미움을 샀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경을 쓰지 않고 "나는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신과 영웅의 이야기, 왕과 귀족의 초상화를 그리는 당대의 화가들과 달리 조그마한 정물화에 몰두하는 세잔을 보고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세잔은 정물을 그저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느끼며 영원히 지속가능한 형태로 그리고자 공간, 형태, 색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그림이 나오기까지 창조하는 그림을 그리고자 힘을 쏟았습니다. 어떤 날은 사과가 썩어버려 밀랍으로 만든 모형 과일로 대체했을 정도라고 하니 그의 열정을 짐작할 수 있겠지요. 결국 세잔은 자신의 말처럼 사과 한 알로 파리를 정복했으며 후기인상파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폴 세잔, 사과가 있는 정물, 1890, 35.2 x 46.2cm


앞서 소개했지만 세잔과 동시대 화가였던 모리스 드니는 "평범한 화가의 사과는 먹고 싶지만 세잔의 사과는 껍질을 벗기고 싶지 않다. 잘 그리기만 한 사과는 군침을 돌게 하지만, 세잔의 사과는 마음에 말을 건넨다"고 평가하여 근대미술에서 표현성의 현대미술을 암시한 폴 세잔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떤 사과로 세상을 정복하시렵니까?

4. 튜링의 사과 - 천재 수학자의 죽음

앨런 튜링(출처: 위키피디아)

사과는 뉴턴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훗날 이 사과는 천재 수학자를 죽음으로 인도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앨런 튜링이라는 수학자이자 암호학자에 관해 알고 계시는지요? 

튜링은 영국사람으로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의 계산이론(Theory of computation)은 오늘날 컴퓨터의 이론적 바탕이 되기도 했습니다. 계산기 학회(ACM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라는 곳에선 이런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해 '튜링상(Turing Award)'을 제정해서 컴퓨터 과학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수여하기도 합니다.

앨런 튜링의 업적은 정말로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튜링 테스트'와 봄브(The Bombe)라는 암호 해독기가 유명합니다. 튜링 테스트는 앨런 튜링이 1950년에 제안한 개념으로 기계가 얼마나 인간과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별하는 테스트입니다. 튜링 테스트의 골자는 '컴퓨터에서 나온 반응을 인간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것은 컴퓨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이 컴퓨터와 대화를 했을 때 사람처럼 느낀다면 그것은 지능적인 존재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튜링 테스트는 A.I(인공지능)의 뼈대가 되기도 합니다. 최근 아이폰 4S의 기능 가운데 Siri라는 기능이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하고 있습니다. 마치 비서와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다들 신기하게 여깁니다. 아이폰 4S의 Siri를 튜링 테스트에 적용해보는 것도 재미있겠지요?

튜링이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만든 봄브는 2차 세계대전을 사람들의 생각보다 이르게 종식하는 데 기여한 암호 해독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9년에 앨런 튜링은 정부 암호학교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이론적으로 해독하게 됩니다. 에니그마는 오랫동안 난공불락이었지만, 앨런 튜링의 이론적 해독과 다른 암호 해독자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여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많은 분야에서 공을 세운 앨런 튜링은 대영제국 훈장까지 받는 등 각계에서 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동성애 혐의(당시 영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로 인식했음)로 체포되어 수모를 받습니다. 감옥과 화학적 거세라는 삶의 기로에서 앨런 튜링은 연구를 위해 화학적 거세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하다가 결국 1954년 6월 8일 삶을 마감합니다. 사망한 그의 곁에는 반쯤 먹은 사과가 놓여 있었습니다. 시안화칼륨을 주사한 사과를 먹고 자살했던 것이죠. 천재적인 수학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과일이 바로 사과였습니다. 뉴턴과 튜링의 삶을 겹쳐서 보면 왠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지 않나요?

5.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 -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

일본 생명농법의 창시자인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자연농법》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받은 뒤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사과 농사를 지은 한 농부가 있습니다. 그는 대자연의 생명력을 굳게 믿는 소박한 마음으로 불가능을 과감히 뒤집고 무농약 사과재배에 성공했습니다. 일명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를 재배한 이는 일본 아이모리현 이오키마치에서 6만 평의 사과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늙은 농부입니다.

그는 1978년부터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새벽부터 농장에 나와 온종일 사과나무에 붙은 벌레를 손으로 잡고, 분무기에 식초를 넣어 뿌리거나 식용기름으로 나무껍질을 닦았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9년간 걸친 시행착오 끝에 가지가 휠 정도로 사과가 열리는 결실을 거뒀습니다.

기적의 사과는 기무라 아키노리가 재배한 사과로 수프를 만들던 한 레스토랑 주방장이 우연히 발견해 화제가 되었는데요, 이 사과는 반으로 갈라 냉장고 위에 내버려둬도 2년이 지나도록 썩지 않을 뿐 아니라 갈변 현상도 없이 달콤한 향을 내뿜으며 시든 것처럼 조그맣게 오그라든 상태로 유지된다고 합니다.

오늘날 인류가 먹는 사과는 19세기에 농약이 발명된 이후로 이제는 농약 없이는 재배할 수 없게끔 개량된 품종이라고 하는데요, 유기농·무농약 사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념을 깨뜨린 기무라 아키노리의 사과는 대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경이로움, 땀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6. 스티브 잡스의 사과 - '혁신'의 상징이 되다

스티브 잡스(출처: 애플 홈페이지)

자신이 세운 회사의 로고와 이름을 사과로 택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바로 스티브 잡스입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퍼스널 컴퓨터(PC)를 만든 사람(엄격히 이야기하자면 동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들었고, 그는 판매를 맡았습니다)으로, 요즘은 PC를 만든 사람이라기보다는 알파벳 소문자 'i'에 생명을 불어넣은 사람으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팟, 맥북 등은 사람들을 열광하게 했고 '혁신'은 그를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세운 회사는 애플, 이름 그대로 '사과'입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와 친구들이 애플이라는 회사명을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공동으로 창립한 스티브 워즈니악은 얼마 전 인터뷰에서 애플이라는 이름이 어떻게 정해졌는지에 관해 밝힌 적이 있습니다. 워즈니악은 "1976년 창업 당시 잡스는 공동체를 이뤄 경작하고 있었던 한 과수원을 방문한 뒤 '애플'이라는 이름을 제시했다"고 합니다. 애플 로고를 직접 디자인한 롭 자노프 또한 "잡스는 유기농 사과 과수원에서 일을 했고 애플이란 이름을 좋아했다"고 얘기했습니다. 잡스가 사과를 좋아한 이유에 대해 롭 자노프는 "사과는 영양가가 풍부하고 포장하기 쉽고 쉽게 손상되지도 않기 때문에 완벽한 과일이라고 생각"했다며 "애플이 완벽한 회사가 되길 원했고 더 좋은 이름은 생각해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좌측부터 1976년, 1977년, 1998년, 2001년, 2007년 순으로 바뀐 애플의 로고


다들 아시다시피 애플의 첫 로고는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이름도 애플이 아닌 '애플컴퓨터'였죠. 애플의 첫 로고는 뉴턴의 사과를 상징한 그림이었습니다. 이 로고를 그린 이는 애플의 공동 창립 멤버였던 론 웨인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애플이라는 이름을 생각해냈고, 론 웨인은 아이작 뉴턴의 사과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이에 사과나무에서 책을 보는 아이작 뉴턴의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애플은 한 입 베어먹은 사과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는데요, 완전한 사과가 아니라 베어먹은 사과를 두고 여러 속설이 떠돕니다. 초기 애플의 광고를 제작했던 켈리 애드버타이징 측은 "한 입 깨문 모양은 지식의 습득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달리 앞서 소개한 앨런 튜링의 사과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속설도 있습니다. 평소 앨런 튜링을 존경했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존경심을 나타낸 것이라는 얘기지요.

스티브 잡스를 기념하는 애플 로고

혁신과 융합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는 세상에 또 하나의 사과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많은 이가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그가 이뤄낸 정보화 혁명은 애플 이전과 이후, 아이폰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구분할 만큼 혁신적이었다고 사람들은 평가합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스티브 잡스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닙니다만 스티브 잡스의 사과에 쓰디쓴 실패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열정이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항상 갈망하고, 항상 무모하라.

그가 남긴 이 유명한 말과 함께 역사는 스티브 잡스의 사과를 영원히 기억하겠지요. 여러분은 이 세상에 어떤 사과를 남기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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