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부머(OK, Boomer)"


이 한마디에 서구의 밀레니얼 세대들이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기성세대가 된 베이비붐 세대를 비꼬는 의미로 쓰인 이 말은 인터넷 신조어를 설명한 위키 페이지에 의하면 "베이비 부머 세대들이 바보 같은 얘기를 하는데, 그게 왜 틀렸는지 설명하는 건 수십년 간 쌓인 그들의 잘못된 정보와 무지를 하나하나 해체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알겠다'는 말로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활용되는 말이라고 합니다. 한국어로 옮기자면 "네, 꼰대소리 잘 들었고요.” 혹은 "알았으니 됐고요." 정도의 의미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케이, 부머"란 말은 서구 청년들이 기성세대의 훈계를 비꼴 때 하는 소리인 셈이죠.


출처 - BBC


젊은 세대가 사용하는 은어가 갑자기 서구에서 붐을 일으킨 건 그들만의 공간이나 유튜브에서가 아니라 지난 4일 뉴질랜드 의회에서 쓰였기 때문입니다. 25세의 녹색당 소속 클로에 스와브릭 의원은 뉴질랜드 의회에서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없애는 것이 목표인 '탄소제로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발언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기성세대가 기후변화의 위기가 닥치고 있음을 알면서도 방치하고 있다며 젊은 세대는 그런 기성세대의 환경 사치를 부릴 수 없다고 말했죠. 이어서 "2050년이면 나는 56세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52대 의회 의원 평균 나이는 49세다"라고 말하자 기성세대 의원들이 야유를 보내며 발언을 저지하려 들자 그 야유에 대해 "오케이, 부머"라고 가볍게 응수한 후 연설을 끝까지 마쳤다고 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들은 틱톡과 트위터 등 자신의 SNS에 이 장면을 공유하며 열광적으로 환호했습니다. 반면 기성세대들은 아무리 그래도 의회 연설 중에 상대 의원에게 은어로 꼰대 취급 하는 건 무례임과 동시에 오히려 갈등을 조장한다며 비판하는 등 세대와 지향에 따라 각양각색의 주장이 나왔습니다. 과거 유시민 의원이 정장이 아닌 흰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등원했다가 죽일 놈 취급을 받았던 우리나라 사정을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국회에서 젊은 의원 입에서 꼰대 소리가 나왔다면 품위 유지 위반 등등으로 혹독한 징계를 먹지 않았을까 싶군요. 이 때문에 뉴질랜드 녹색당 의원이 의회에서 사용한 "오케이, 부머"란 말이 신선하긴 합니다.


출처 - 허프포스트


서구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이전과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로 기성세대와 사회를 당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재계에서 밀레니얼 세대는 예전의 신세대들처럼 소비를 하지 않는다는 불평 섞인 평가를 받습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지 않고 집구석에서 넷플릭스를 즐기기 때문에 골프를 칠 생각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술도 잘 마시지 않고 포르노도 다른 세대보다 많이 보지 않아 기존 산업이 곤란하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재계의 평가가 정당할까요? 

출처 - 경향신문

 

천만의 말씀입니다. 최근 분석에 따르면 밀레니얼 세대가 경제를 죽이는 게 아니라 경제가 밀레니얼 세대를 옥죄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소비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밀레니얼들의 소비 성향은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전 세대가 그들 나이였을 때보다 수입과 자산이 적고 재산이 없다고 결론 지었죠. 베이비붐 세대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세계 곳곳이 전쟁의 폐허가 된 상황에서 태어났지만 인류 문명 사상 최고의 번영기에 젊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가장 풍요로운 노년기를 맞이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꿈을 이룰 수 있었던 베이비붐 세대와 달리 할 수 있는 게 좀처럼 없는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에 대한 기성세대의 몰이해는 어디서나 생기는 법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현상은 서구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젊은 세대도 똑같은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없고 중소기업에라도 당장 들어가 침식을 잊고 일하는 노오력을 하지 않아 그 모양이라는 소리를 우리나라 기성세대들도 심심찮게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 역시 밀레니얼 세대가 무슨 짓을 해도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기 시작한 첫 세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기성세대가 경제와 사회구조를 이따위로 끌고 왔으니 젊은 세대가 뭘 해보려고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인지 고 신해철이 헤매는 청춘들에게 보냈던 과거 예능방송 클립이 최근 들어 유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출처 - JTBC


"오케이, 부머"로 세계적인 유명 인사가 된 클로에 스와브릭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국내외에서 큰 호응을 얻자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고 합니다. "(오케이 부머를 활용한) 밈은 멋지다. 하지만 정치 행동은 시도해봤는가"라고요. 청년 세대가 자신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는 밈을 넘어 실질적인 정치 참여가 필요하다고 환기한 것입니다.


출처 - 한겨레


대한민국에서 총선이 반 년도 남지 않은 이때, 뉴질랜드 녹색당처럼 우리나라 녹색당도 "오케이, 부머"를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녹색당 젊은이들이 '평균 55.5세 아저씨 국회! 이제는 2030 청년 여성들이 접수한다'는 문구가 적힌 펼침막을 들고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소수정당, 돈 없는 후보자, 정치 신인에게 불리한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나라 20대 국회 여성 의원 비율은 17%(51명), 30대 청년 의원은 1%(3명)에 불과합니다.


출처 - 한겨레


녹색당은 이런 현실 정치의 벽을 낮추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 중입니다.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금전적 부담을 낮춰주기 위해 비례후보의 기탁금을 당에서 지원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 동안 당 모금을 통해 후보자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할 예정입니다. 또한 지난 4월부터 진행된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는 내년 총선이 끝나는 4월 15일까지 진행될 예정인데요, 중년 남성 일색인 우리나라 국회에 균열을 일으킬 여성과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정치 현장에서 꾸준히 활동할 여성, 청년 정치인을 키워내는 것을 장기 목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화려한 스펙, 학연과 지연 등 온갖 것들을 죄다 이용하고 거기에 거금을 들여야 겨우 선거판에 얼굴이라도 내밀 수 있었던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녹색당이 시도 중인 2020 여성출마 프로젝트는 신선한 시도입니다. 공관 갑질로 논란이 된 전직 장성을 1호 영입 인재라고 끌어들이는 상식 이하의 정당이 움직이는 정치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행보입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선거'라는 험로에서 자신의 뜻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도록 많은 기대와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6.13 지방선거가 끝났습니다. 이변은 없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은 압승했고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대패했습니다. 작은 당들은 희비가 엇갈렸죠. 이번 6.13 지방선거는 1995년 제1회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투표율인 60.2%로 23년 만에 60%를 돌파했습니다. 선관위는 투표율 상승 요인을 촛불시위에서부터 이어진 국민의 높은 정치 참여 의식과 결기에서 찾는 한편 투표 편의성을 개선한 사전투표 제도가 높은 투표율을 견인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 6.13 지방선거로 더불어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역 구도를 깨뜨리며 명실상부한 전국 정당이 되었습니다. 수도권과 호남은 물론 대구, 경북을 제외하면 보수 성향이 강해 민주당 후보가 단 한 번도 승리한 적 없는 부산, 울산 시장과 경남 지사에 당선자를 냈습니다. 이른바 안보 벨트라는 포천, 양구 등 휴전선 접경 지역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은 약진했습니다. 심지어 박정희의 고향인 구미에서도 처음으로 민주당 시장이 탄생했습니다. 판문점에서 성사된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에서 이뤄진 북미정상회담으로 조성된 평화의 기대감이 뿌리 깊은 지역 정서를 덮은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화를 자초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해 통절한 반성을 하고 개헌과 남북미 평화 무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도 될까 말까 했을 텐데, 홍준표 대표를 필두로 막말 공세를 하며 평화 무드를 폄훼하기까지 한 결과 자유한국당을 지지했을 법한 사람들까지 등을 돌리게 만들었습니다. 대구, 경북이 그나마 자유한국당의 심장을 뛰게 할 제세동기 역할을 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지금으로서는 패배 정도가 아니라 존폐의 기로에 섰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수감된 박근혜는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를 거부했고 이명박은 서울 동부구치소에서 거소 투표를 했다곤 하지만 이제는 이들에게 선거 판세에 영향을 줄 힘도 영향력도 남아 있질 않습니다.


출처 – SBS 유튜브


또 다른 보수 야당인 바른미래당도 초토화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때 대선 후보였던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으나 압도적인 차이로 2등도 아닌 3등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바른미래당 후보들은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단 한 곳도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유승민 대표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습니다. 안철수는 정계 은퇴의 갈림길에서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출처 – JTBC 유튜브


민주평화당은 호남에서 기초단체 5곳을 건졌으니 그나마 선전한 편이지만 원래 목표였던 8곳에는 미달한 셈입니다. 원인은 호남 민심이 더불어민주당으로 쏠렸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은 기초단체장을 내지는 못했지만 정의당 출신의 첫 서울시 의원이 나왔습니다. 서울, 경기 정당 득표에서는 10%대의 개가를 올렸죠.


출처 - 연합뉴스


이번 6.13 지방선거에서 관전 포인트로 말씀드렸던 녹색당은 의미 있는 선거 결과를 냈습니다. '페미니스트 시장'이란 슬로건을 내건 신지예 후보는 정의당 후보를 앞지르며 박원순, 김문수, 안철수에 이어 4위에 해당하는 득표를 했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페미니즘을 내세웠다는 이유로 수십 차례 벽보가 훼손되고 좌우를 가리지 않고 원색적인 비난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둔 셈입니다. 

 

녹색당 신지예 서울특별시장 후보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오늘 낙선했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이제 한국 페미니스트 정치의 시작점은 제로가 아니라 1.7%이기 때문"이라며 "2018년 지방선거는 페미니즘 정치의 용감한 첫걸음이다. 사랑이 혐오를 이길 것이다. 뜨거운 연대의 정신이 차별을 무너뜨릴 것이다. 다시 시작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MBC와의 인터뷰에서는 "우리 사회가 성 평등하게 더 평등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한 것 같아 기쁩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출처 - 페이스북

 

한국 YMCA와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청소년모의투표 운동본부가 주최한 '만 18세 참정권 실현을 위한 6.13 모의투표' 결과 신지예 후보는 접전 끝에 박원순 후보를 누르고 1위로 당선되는 결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모의투표는 선거권 하향조정 운동의 일환으로, 만 19세 미만 청소년 4만 5765명이 참가했습니다. 사전투표 기간이었던 6월 8~9일 양일간 11개 지역 전국 14개 지역소와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고 하죠. 진짜 투표를 할 나이를 앞둔 청소년 4만 5000여 명 사이에서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1위를 한 결과를 보면, 녹색당이 걸어온 길과 페미니즘이라는 시대 정신이 대세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한편 무소속으로 제주도지사가 된 원희룡 당선인과 민주당 문대림 후보의 뒤를 이어 득표율 3.53%로 3위를 한 녹색당 고은영 제주도지사 후보의 약진 또한 두드러진 성과였습니다. 고 후보는 "녹색당과 고은영은 선거를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앞으로도 이전과 같이 제주도에서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는 건강한 정치세력으로 남겠다"며 "제주녹색당과 고은영은 민주당이 장악한 도의회와 다시금 도정을 장악한 원희룡 도정을 감시하고 견제하겠다. 투명하고 소통하는 도의회와 도정을 만들기 위해 비록 원외 정당이지만 녹색당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나가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출처 – MBC 유튜브


올해도 유권자의 한 표가 후보의 당락을 바꾸는 진풍경이 펼쳐졌습니다. 드루킹 사건 등으로 유명세를 치른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는 자유한국당 김태호 후보와 경남지사 선거에서 반전을 거듭하는 접전을 펼쳤습니다. 출구조사 결과는 김경수 후보의 압승으로 예측됐는데 실제 개표에서는 자정이 될 때까지 김태호 후보가 앞섰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몇몇 방송사에서는 김태호 후보에게 당선이 확실하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자정을 넘기고 개표율이 절반을 넘어가는 시점부터 김경수 후보가 역전하면서 경남지사로 최종 당선되었죠.

출처 - 다음


한편 이보다 더한 접전을 벌인 후보도 있었습니다. 올해 평창동계올림픽을 성공리에 치른 평창 군수 선거였습니다. 개표율이 90%에 이르도록 자유한국당의 심재국 후보가 미세한 차로 앞서 나갔으나 개표가 완료되자 불과 24표 차로 더불어민주당의 한왕기 후보가 평창군수로 당선된 겁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최고의 접전이 벌어진 지역이었죠.


출처 - 네이버


지방선거는 끝났지만 선거법 위반 등에 대한 수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드루킹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자와 각종 스캔들에 시달렸던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자도 이제 자신들을 입증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습니다. 역대급 승리를 거둔 더불어민주당도 자만은 금물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이지 더불어민주당 자체의 호감도로 승리한 선거가 아니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만하다 민생을 살피지 못하면 다음 총선 때는 과거 열린우리당 꼴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구태의연한 수구와는 결별할 시간이며 평화를 위한 진보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개선으로 안보장사가 먹히지 않았고 통일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협치보다 타 정당의 발목 잡기로 속도를 낼 수 없었던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민심이 표출됐습니다.

 

더불어민주당에 몰표를 준 것은 정치개혁을 하라는 국민의 명령이요 민심의 발로입니다. 이제는 소수정당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선택이 사표가 되지 않고 의석수에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연령을 낮추고 비례대표성을 강화하는 선거구제 개편이 시급하다는 소수정당들의 공통된 호소에 관심을 기울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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