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어린이날이 10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이'라는 말을 만들어 이들의 인권을 존중해줄 것을 당부하고 아이들이 골고루 행복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든 날이죠. 방정환 선생은 "대륙이나 전기의 발견보다 어린이의 발견이 더 위대합니다"라는 말을 남긴 바 있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이한 지금, 우리는 위대한 발견인 어린이를 그만큼 소중히 대하고 있을까요?

 

출처 - 국민일보

 

안타깝게도 '어린이'라는 단어 자체가 혐오에 오염되어 가고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는 뜻에서 만든 어린이란 단어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어떤 분야에서 수준에 미달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낮춰 쓰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 - 공감신문

 

주식투자를 막 시작해서 잘 모르는 사람을 '주린이', 요리를 막 배우기 시작해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사람을 '요린이', 토익 공부를 막 시작한 사람을 '토린이'로 부르고 있습니다. '어린이'라는 말은 17세기부터 써온 말이지만, 100년 전 방정환 선생이 유년과 소년을 대접하고 본래 없었던 높임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격상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지금 좋았던 의미가 퇴색된 모습을 보면 방정환 선생 앞에서 부끄러울 일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예전부터 쓰던 '초딩', '급식충', '잼민이' 같은 단어는 아동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는 혐오 표현에 가깝습니다. 혐오 표현이 고착화하면 차별로 이어지고 사회적인 문제로 불거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교육방송인 EBS마저 문제의식 없이 재미로 쓰는 지경입니다. 지난해 7월 EBS 공식 트위터는 ‘잼민좌’라는 단어를 사용해 논란을 일으키고 사과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잼민이는 여러 곳에서 민폐를 끼치는 무개념 저연령층을 뜻하는 표현으로 어원부터 혐오와 비하가 들어간 질이 낮은 표현입니다.

 

출처 - 인스타그램 / SBS

 

과거 찬반으로 의견의 분분했던 '노키즈존' 역시 어린이를 배제한다는 측면에서는 문제의 여지가 있습니다. 2017년 인권위는 합리적 사유 없이 나이를 이유로 아동을 배제하지 말 것을 권고했습니다. 하지만 '권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업장의 편의에 따라 어린이를 배제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방정환 선생이 1923년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낭독한 선언 중 첫 번째는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였습니다. 100년이 지난 현재 다시 과거의 상황이 되풀이되는 모습을 본다면 방정환 선생은 어떤 기분이 들까요?

 

출처 - 프레시안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어린이 차별을 실질적으로 철폐하기 위해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국가인권위나 UN아동권리위원회 등 국내외를 가릴 것 없이 인권 기관들이 한국 사회의 아동 차별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이를 시정할 법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2006년 인권위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한 이후 17년이 지나도록 온갖 이유를 대며 미뤄온 것이 우리의 현 상황입니다.

 

출처 - MBC

 

얼마 전 우리나라 방송에서 세계적인 장난감 기업 레고의 경쟁 상대가 누구냐는 질문이 나온 바 있습니다. 뽀로로나 타요 등 다른 캐릭터나 장난감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레고 코리아의 경쟁 상대는 한국 교육 시스템이라는 답변이 나왔습니다. 한국 어린이들은 정말 우수하지만 그만큼 놀 시간이나 방법이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의 주당 평균 학습시간은 OECD 평균의 두 배에 달할 정도입니다. 레고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들에게 놀이는 평화를 선물합니다.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한 심리적 안정감은 학업만큼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출처 - SBS

 

이런 이유로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의 놀이를 위해 90년 전에 보드게임을 만들어 보급한 바 있습니다. 어린이날 100주년을 맞아 개최한 '오늘은 어린이날, 소파 방정환의 이야기 세상'에서는 그가 큰 애정을 가지고 제작한 보드게임판인 '세계발명말판'과 '금강껨'의 원본이 처음으로 전시되었습니다. 재밌는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 방정환 선생은 컬러 게임판을 만드는 데 잡지 7000권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옛날부터 우리에게 놀이문화가 없었던 게 아니라 이를 지키지 못할 정도로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라는 인식의 발로였습니다.

 

출처 - YTN

 

다행히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보건복지부는 올해 '아동기본법' 초안을 만들고 내년 중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동기본법은 어린이를 보호나 교육의 대상으로만 규정하지 않고 권리를 행사하는 주체로 인정하고 그 구체적인 권리를 선언하는 법입니다. 무엇보다 '놀 권리'가 교육만큼이나 중요한 권리로 보장받게 되며 의료서비스를 받을 권리, 발달권, 생존권, 참여권, 환경권 등 어린이가 누려야 하는 구체적인 권리들이 명시된다고 합니다. 국가가 어린이를 위해 건강한 성장환경을 조성해야 할 책임이 있고 보호자는 아이를 존중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기업은 아이에게 유해한 환경 조성을 방지해야 한다는 점도 명시될 예정입니다. 이는 수십 년간 제기되었던 UN아동권리협약의 권고 사항이기도 합니다. 방정환 선생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어린이 뜻을 가볍게 보지 마십시오. 어린이는 어른보다 한 시대 더 새로운 사람입니다.”

출처 - 부산광역시

 

늦었지만 이제라도 권고를 받아들여 어린이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선언하려고 한다는 점은 고무적입니다. 100주년 어린이날을 맞아 방정환 선생의 '어른에게 드리는 글'을 다시 한번 상기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키즈 카페는 다들 아실 겁니다. 그렇다면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라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카페, 음식점, 극장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최근 확산 중인 영업 방침이라고 하는데요, 문자 그대로 아이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들이 혼자서 가게에 들어갈 리 없으니 영유아를 동반한 어른들도 받지 않겠다는 얘긴데, 어떻게 보면 요즘 같은 불경기에 꽤 대담한 영업 방침입니다.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뜻이니까요.

 

당연히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와 인권 단체에서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업주만이 아니라 이 방침을 환영하는 손님이 뜻밖에도 상당히 많습니다. 의견이 갈리는 노 키즈 존, 과연 어떤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걸까요? 오늘은 이 문제를 들여다보겠습니다.

출처 - 헤럴드경제



반대 입장, 노 키즈 존은 명백한 차별이다



출처 - 한국일보



영유아 입장을 거절하는 ‘노 키즈 존(No Kids Zone)’이 확산되면서 엄마들의 고충이 커지고 있다. 고급 음식점과 백화점 VIP 라운지, 다중이용시설인 영화관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골목길 작은 카페와 찜질방까지 아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있다.


"유모차는 나가주세요" 문전박대 당하는 엄마들(한국일보)


위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최근 영유아 입장을 거절하는 노 키즈 존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동네 작은 카페나 찜질방 중에 '노 키즈 존'을 영업 방침으로 내세우는 곳이 생기고 있습니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좀 유명한 카페에 갔다가 문전박대당한 경험, 아이와 함께 관광지로 놀러 갔다 찜질방에 자러 들어갔는데 미취학 아동은 소란스럽다며 제지당한 경험 등등, 많은 육아 관련 커뮤니티에서 '노 키즈 존'을 성토하는 분위기가 대단합니다. 한국에서 아이 키우는 설움이 갈수록 커진다고요.


 


출처 - 경북매일신문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춘 키즈 카페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서울 시내 대형 아파트 단지에 집중되어 있고 그나마 그 수가 많지 않은 실정입니다. 영화관 중에 영유아를 동반한 부모를 위해 '아이랑 엄마랑 상영관'을 운영하는 곳도 있습니다만, 이 역시 한정된 시간에만 운영되고 장소가 굉장히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공통으로 이용 비용이 상당히 비쌉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만 해도 상당한 부담을 느끼게 되는데 가족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부족해지는 현실은 부모 입장에서 굉장한 부담입니다.


육아 휴직은커녕 아이를 가졌다고 해고당하기 일쑤인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데리고 엄마가 외출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일이 되고 있습니다. 말로는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고, 아이를 낳으면 애국자 취급을 하는 요즘 세상에 말입니다. 안 그래도 아이를 키우기 힘든 현실인데 이젠 아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이유로 특정 장소에서 차별까지 당해야 한다니 엄마들의 설움은 점점 깊어집니다.


인권 단체 역시 '노 키즈 존'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합니다. 상업 공간이라고 해도 누군가의 이동이나 사용 자체를 규제하는 방침은 국가인권위원회법의 차별금지 조항을 어긴 것이라고요. '노 키즈 존'을 허용하면 비슷한 불편을 끼칠 수 있는 중증 장애인의 이용을 규제하는 것도 가능해지므로 점차 사회적인 차별이 확산되어 사태가 나빠질 것이라는 예견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인권 단체는 '노 키즈 존'은 옷만 입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복장 규정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며, 아이를 마음대로 떼어놓고 올 수 있는 반려동물이나 물건처럼 생각한 차별적이고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찬성 입장, 오죽하면 노 키즈 존을 만들었겠나



출처 - 트위터


현실적으로 자신의 사업장에 '노 키즈 존'을 선언한 업주들을 무조건 비난하기도 힘듭니다. 카페 업주들이 자신들이 겪은 고충을 풀어놓는 커뮤니티나 카페 옆 대나무숲(@tearsofcafe_) 같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카페를 초토화하는 아이들과 이를 내버려두는 개념 없는 부모들에 대한 성토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장사해야 하는 사람들이 '노 키즈 존'과 같은 극단적인 영업 방침을 세웠겠느냐며 고충을 이야기합니다.


외부 음식물 금지인 카페에서 태연하게 뜨거운 물까지 받아 냄새를 풍기며 아이들에게 컵라면을 먹이는가 하면, 아이가 뛰놀다 다른 손님의 테이블을 쳐 음료가 쏟아져도 못 본 척 넘기기 일쑤고, 심한 경우 옆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먹는 손님이 있는데도 아랑곳없이 테이블 위에서 똥기저귀를 갈고 내버려두고 갑니다. 이를 지적하거나 혼을 내려고 하면 어디 내 아이 기를 죽이느냐고 적반하장인 부모도 많습니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를 볼 것도 없이 주말에 사람 많은 장소에 가면 아이들의 돌출행동과 무신경한 부모들 때문에 기분이 상했던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겁니다.


 

출처 - 티브이데일리


업주뿐 아니라 많은 손님이 '노 키즈 존'에 찬성하는 이유로 개념 없는 부모들의 자업자득이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아이를 가진 사람이 여가를 즐기고 싶은 것처럼 아이가 없는 사람도 손님으로서 카페에서 조용한 분위기를 즐길 권리가 있고, 소음에서 해방되어 영화에 집중할 권리가 있고, 매장의 분위기를 즐기며 음식을 먹고 싶다는 얘깁니다. 한편 업주들로서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회전율을 떨어뜨리고 클레임만 제기하는 엄마들의 모임보다 차라리 일반 손님을 받는 편이 더 경제성이 있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한마디로 더 이상의 민폐는 사양하고 싶다는 거겠죠. 게다가 '노 키즈 존'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영업 방침이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이달 초 미국 펜실버그주 피츠버그 지역에 위치한 레스토랑 멕데인(McDain’s)은 6세 미만 아동의 출입을 금지하면서 ‘노 키즈 존(no-kids-zone)’ 움직임의 상징처럼 떠올랐다. 식당과 항공사 뿐 아니라 최근에는 호텔 극장 심지어 슈퍼마켓도 어린 아이들의 출입을 꺼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이처럼 어린 고객을 마다하는 것은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에 대한 불만이 높기 때문이다.


“애들은 안돼!” 식당 호텔 극장 등 곳곳서 ‘어린이 출입금지’(헤럴드경제)


선진국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방침을 우선할 것 같지만 출산율이 낮아지고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가 늘어나는 사회에서는 오히려 아이들 때문에 발생하는 각종 문제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말레이시아 항공은 일등석에 유아를 동반한 고객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항공사 또한 유사한 정책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텍사스 주의 한 극장은 '베이비 데이'로 지정된 날 이외에는 영유아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미주리 주 슈퍼마켓에서는 어린이가 없는 쇼핑 시간을 정해 운영 중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플로리다 주에서는 집 밖에서 아이들이 노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논란이 일어났을 정도라고 합니다.


 

출처 - 한국일보


일본의 부모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인도에서는 "너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며 살고 있으니, 남들도 용서하거라"라고 가르친다고 합니다. 상반되는 입장이지만, 단순히 어느 한쪽만을 옳다고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노 키즈 존'도 단칼에 결론을 내기 어려운 사안입니다.

 

원칙적으로 '노 키즈 존'은 옳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도 문제의 소지가 다분합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입장에서 생각하자면 민폐로 방해받고 싶지 않은 다른 손님들의 기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업주들도 자선사업을 하는 건 아니기에 자신들의 곤란한 상황을 이해해달라고 주장하겠지요. 

 

결국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결정이 날 것 같습니다. '노 키즈 존'에 반발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위드 키즈 존'이 생길 테고 둘 중에 과연 어느 쪽이 더 장사가 잘 되느냐로 말이죠. 어쩌면 서로 다른 입장에서 수요가 분명히 존재하니 둘 다 살아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노 키즈 존' 논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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