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철 특검보가 마지막 브리핑에서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약 90일간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활약하는 동안 이규철 특검보의 브리핑 한마디에 수많은 국민이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쓸어내리기도 했습니다. 이규철 특검보는 수사는 끝났지만, 더 중요한 공소유지가 남았다고 힘주어 얘기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지난 2월 27일 특검수사 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박영수 특검팀의 대장정은 90일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1999년 특검이 처음 출범한 이후 최대 규모로 진행된 박영수 특검은 수사 기간 만료 직전인 2월 28일 17명을 무더기로 기소했습니다. 수사 기간 내 재판에 넘긴 이만 총 30명에 달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비선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체부 장관 등등을 구속기소하며 법대로만 해도 이렇게 잘할 수 있는 걸 그동안 왜 안 했느냐 하는 국민의 기쁨 섞인 핀잔도 많이 들었죠.


출처 - 뉴스1


특검이 불도그처럼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총수 구속이라는 성과를 얻어낸 박근혜―삼성 뇌물 수수 건은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습니다. 박영수 특검은 마지막에 박근혜에게 5가지 혐의를 추가로 적용하면서 검찰이 적용했던 8가지 혐의와 합해 총 13개의 혐의를 적용했습니다. 특검은 마지막 정례 브리핑에서 박근혜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피의자로 입건할 방침이라고 명백히 밝혔습니다. 공모혐의가 결정적이기 때문이죠. 게다가 하나은행 인사 개입 혐의가 추가되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그렇다고 해도 안심하긴 이릅니다. 30일을 연장해 발본색원해야 했을 박근혜 게이트를, 부역자인 황교안이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서 1차 무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기소한 30명의 혐의를 입증해 유죄를 끌어내야 하는데, 그 상대가 정부, 재벌, 법조계를 대표하는 대한민국의 초 엘리트 계층이라 어마어마한 변호인단을 동원할 게 뻔하기 때문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이런 시국에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야4당은 28일 특검 수사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특검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원래 연장됐어야 할 수사기간 30일을 더 확보했고 박영수 특검팀 유지에도 방점을 뒀습니다. 충실하고 통일성 있는 수사를 통해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함입니다. '특검 시즌 2'로 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출처 - 뉴스1


한편 법무부는 박영수 특검팀의 요청을 승인해 8명의 파견검사를 잔류하게 했습니다. 이로써 윤석열 수사팀장을 비롯한 8명의 파견검사가 특검팀에 남아 국정농단 사건 공소유지에 힘을 쏟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원이 줄어드는 만큼 삼성 뇌물 건 이외에도 잘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되는군요. 특검이 제대로 연장됐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출처 - 뉴스1


헌법재판소는 2월 28일 최종변론 후 첫 평의를 열었습니다. 헌법재판관들이 박근혜의 헌법, 법률 위반의 중대성과 탄핵심판 결정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 등에 대해 1시간 30분 동안 집중 토론한 것으로 알려졌죠.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2주간 평의 진행 후 선고가 났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이번 탄핵심판 선고기일로 3월 10일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출처 - 경향신문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1919년 삼일운동은 민주공화국을 표방한 역사적 계기였습니다. 대한민국 헌범은 삼일정신을 건국이념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번 탄핵심판은 국민의 뜻에 반하며 인정할 수도 없는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를 해주고, 역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왜곡된 국정 역사교과서를 추진하며, 1948년 건국절 논란을 야기한 세력을 단죄하는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자주, 민주, 평화를 위해 몸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뜻을 헌재가 잊지 말기 바랍니다. 헌재의 결정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걸려 있습니다. 법이 사회 상식의 마지막 보루임을 확인할 수 있는 판결이 나오길 바랍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국민들이 생활 속 문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문화가 있는 날'을 지정·운영 중입니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관, 공연장, 미술관, 박물관, 등 전국의 주요 문화시설을 무료나 할인된 가격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혹시 이런 사실 알고 계셨나요? 

 

출처- 문화가 있는 날 누리집

 

'문화가 있는 날'은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힌 국정운영 4대기조의 하나인 '문화융성'을 실현하는 방편으로 만들어진 제도 중 하나입니다. 그 취지는 좋았으나 홍보 부족으로 이런 제도가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또한 '문화가 있는 날'을 수요일로 정했는데 평일에 마음 편하게 문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주말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면 문화콘텐츠를 주업으로 하는 업체들의 수익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평일로 지정한 것일 텐데요, 제도의 취지와 현실이 동떨어져 있으니 과연 누구를 위한 정책인지 알쏭달쏭하기만 합니다.

 

어쨌든 어제가 새해 들어 첫 '문화가 있는 날'이어서 그런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서울 용산의 한 극장에서 파독광부 및 간호사, 이산가족들과 함께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사실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이날 관람에는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세훈 영화진흥위원장, 영화 스태프 및 가족, 20∼70대 등 세대별 일반 국민 180여 명이 함께 했다고 하는군요.

 

팍팍한 경제 사정 때문에 그나마 영화 관람이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문화일 텐데요, 역대 대통령들도 종종 영화를 관람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역대 대통령이 관람해 유명해진 영화들을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 –〈국제시장〉〈명량〉〈넛잡〉〈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을 관람한 박근혜 대통령은 여러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일전에 박 대통령은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국제시장〉에서 황정민, 김윤진이 분한 부부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애국가가 들리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장면을 마치 본받아야 할 전통이나 미담인 것처럼 얘기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화가 있는 날'을 맞이해 영화관을 찾은 박 대통령은 영화 제작 스태프들과 표준계약서를 맺은 점 등을 평가하면서, 문화산업은 창조경제의 핵심인 만큼 제작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윤제균 감독 등에게 감동적이었다며 앞으로 이런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제시장〉은 흥행했는데 영화의 배경이었던 '꽃분이네'가 문을 닫을 처지에 놓였습니다. 오늘 <한겨레> 사설을 보면 "매주 수만명의 관광객이 몰리면서, 가게 주인이 권리금을 3배 가까운 5천만원으로 올려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관광차 들러 사진을 찍는 사람은 많지만 매출이 늘지 않으니 '꽃분이네'는 재계약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문화산업의 융성이 생각만큼 쉽지 않은 문제라는 점이 여기서도 드러나는군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제시장> 외에 1000만 관객을 동원한 또 다른 영화인 <명량>을 보기도 했습니다.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의 충격으로 코너에 몰렸던 정국의 반전을 꾀하며 이순신의 리더십을 통해 국민의 애국심을 건드리려 하는 일종의 정치적 행보가 엿보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에 <뽀로로 슈퍼썰매 대모험> 시사회 기념 애니메이션 산학리더 간담회에 참석해 "뽀로로를 보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된다,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작년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대통령 모독 발언이 도를 넘었다"며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성 발언이 사회의 분열을 가져온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자 이틀 만에(18일) 대검찰청이 미래부, 안행부, 방통위, 경찰청, 포털업체 등과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사이버상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안'을 마련했지요.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검에 사이버 명예훼손 관련 전담팀이 설치되고 검사 5명과 수사관이 배치되었습니다. 검찰은 포털과 모바일 메신저 사업자들을 대책회의에 모아 놓고 메신저에 대한 상시 모니터링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허위사실 유포사범은 벌금형이 아닌 재판 회부를 원칙으로 하고 최초 유포자뿐 아니라 확산시킨 사람까지 엄하게 벌하겠다면서 말이죠.

이런 일련의 조처는 국내 모든 메신저에 대한 검열을 예고했고, 누리꾼들은 자신의 대화 내용이 언제 국가에 의해 털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메신저가 실시간 검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현실로 드러나자 많은 사용자가 텔레그램으로 사이버 망명을 떠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어이없는 발언과 검찰의 과잉 충성으로 빚어진 시대의 희극은 "문화콘텐츠 산업이 우리나라의 새로운 주력 산업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던 대통령 당선인 시절의 약속과 참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 – 〈도가니〉〈워낭소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허울뿐인 자원외교로 천문학적인 국고를 낭비한 혐의로 청문회 증인 채택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도가니>와 <워낭소리>를 관람했습니다.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관람하기도 했습니다. 영화는 아니지만 1990년 <야망의 세월>이란 드라마로 그의 기업인 시절 이야기가 그려진 적도 있었지요.


출처 – 다음 영화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2011년 우리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도가니>의 열기가 국회로 이어져 이른바 '도가니법'이란 성폭력범죄 처벌 특별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의 공소시효가 없어졌습니다.

 

오는 2월 2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다고 합니다. 오늘 《경향신문》 머리기사로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의 상당 부분을 외교 사안에 할애하면서 자화자찬으로 일관한 반면, 4대강 사업, 자원외교, 광우병 파동 등 재임 중 '내치 실패'에 대해선 대부분 야당과 당시 여당 내 친박계 의원들의 책임으로 돌려 파장이 예상된다"는 내용을 다뤘습니다.

 

2007년 대선을 사흘 앞둔 시점에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했다"는 발언을 한 연설 동영상이 나왔던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에 대해 나경원 전 대변인은 "BBK 설립했는데 주어가 빠졌다"는 궤변의 논평을 내놓아 대한민국 국민의 얼을 빼놓았습니다. 과연 이번에 나오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는 '주어'가 있을까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왕의 남자〉〈맨발의 기봉이〉〈밀양〉〈화려한 휴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가장 많은 영화를 본 대통령이었습니다. <왕의 남자> <길> <맨발의 기봉이> <밀양> <화려한 휴가> 등 공식적으로 본 영화만 해도 5편이라고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영화 <왕의 남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언론에 의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단어로 많이 쓰였습니다.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의원, 이제는 야인으로 돌아간 유시민 전 의원 등이 '왕의 남자'로 불리는데, 이후 대통령의 최측근이나 실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진 것 같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대선을 앞둔 시점에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된 동시에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김해 봉하마을 출신이지만 정치적으로는 광주의 아들이었습니다.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광주 시민이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을 정작 당사자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군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 〈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화려한 휴가〉


문화에 대한 감각이 남달라 통 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는 영화를 관람한 적이 없었습니다. IMF 외환위기를 극복해야 하는 시기라 짬을 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재임 전후로는 꽤 많은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정계 은퇴 후 영국을 다녀온 뒤에는 <서편제>를 봤고,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에는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 <화려한 휴가> 등을 관람했습니다. 일본의 사회파 감독인 사카모토 준지의 <케이티(KT)>는 독재자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한 야당 후보 김대중 납치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출처 – 다음 영화


한국의 영화정책은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변화를 보이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급진전했습니다. 정책의 방향은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김 전 대통령은 검열 철폐와 문화에 대한 지원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해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문화정책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20여 년간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발돋움한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치적으로 쥐고 흔들려다 역풍을 맞자 또 오해 타령을 하는 부산시장과 현 정부는 문화정책 면에서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문화정책을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서편제〉


인터넷도 없고 SNS도 없던 시절, 대통령이 본 영화라는 타이틀의 대표적인 예로 통한 영화가 바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관람한 <서편제>였습니다. 100편 이상의 영화를 찍은 국민 감독 임권택의 작품으로 국악과 한을 다룬 영화적 완성도 또한 훌륭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멀티플렉스 상영관도 없고 관객 집계도 수기로 이루어지던 시절이라 전국 관객 집계가 남아 있지 않지만, 1993년 단성사에서 개봉한 후 196일 동안 서울에서만 100만 관객을 동원하는 저력을 보여주었죠. 한국 영화 최초로 서울 관객 100만을 돌파한 영화였으니 우리나라 최고 흥행 영화라는 얘기가 과언은 아니었겠죠.

 

출처 – 다음 영화


살펴본 바처럼 대통령이 관람한 영화는 당대 최고의 흥행 영화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대통령이 봤기 때문에 흥행에 탄력을 받은 것인지 국민이 많이 찾은 영화를 대통령도 본 것인지 선후 관계는 영화마다 다르겠지요.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대통령의 행보에는 일정한 정치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영화와 어떤 대통령을 선호하시는지요? 이번 주말에는 여러분이 투표한 대통령이 선택한 영화를 보면서 추억에 잠겨 보시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비행입니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도종환 민주통합당 의원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도종환보다 시인 도종환으로 훨씬 유명한 그가 세간의 이슈로 떠오른 계기는 편향적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잣대 때문이었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국회의원 신분이 된 도종환 시인의 작품을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해당 교과서 출판사에 권고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이러한 삭제 권고의 근거로 “교과서 심사 원칙은 교육의 중립성 유지를 위해 현존 인물(현역 정치인 포함)에 관한 내용을 제외하는 것이었음”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이러한 주장은 어처구니가 없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박원순 서울시장의 수필 <아무나 가져가도 좋소>도 빠져야 하고, 안철수 교수가 대선에 뛰어드는 순간 <내 삶의 가치>라는 수필도 교과서에서 빼야 할 겁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실제로는 편향적인 교과서 심사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정치가의 기준을 정당에 관련된 인물이나 투표로 선출된 사람으로만 한정할 수 있을까요? 대표적인 뉴라이트 인사로 박근혜 대선캠프에 속한 박효종 교수는 고등학교 ‘윤리와 사상’의 공동저자입니다. 그는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고 떠들고 다닙니다. 정치적 이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김동길 교수의 <우리가 이 땅에 사는 이유>라는 글도 교과서 버젓이 실려 있습니다. 한국교육평가원의 기준이 공정하다면 이들의 글은 교과서에 왜 실릴 수 있을까요?


종점

종점에서 버스를 내려 걸어오다
― 이제야 갚으리 그날의 원수를
골목을 채운 아이들 육이오 노랠 듣는다.
구름은 북으로 기울고 새들은 낮게 나는데
우리 누이들 단발머리 풀풀 고무줄 할 때
양지쪽에 기계충독 오른 머릴 쪼이며
― 원수에 하나꺼지 쳐서 무찔러
쪼그려 앉아 따라 부르던 노래
지금도 도깨비 시장 리어카 끄는 서상사 아저씨
짧은 여름밤은 전쟁 얘기로 흥겨웁고
멋진 군인이 되고파 주먹을 쥐게 하더니
아직도 유월이면 이 증오의 노랫소리 들리고
장마전선은 내일도 걷히지 않으리라 한다.
그땐 어찌하여 말해주지 않았을까.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
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
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
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전쟁은 신나는 일도 스릴과 써스펜스도
아니라는 것쯤 왜 가르치지 못했던 것일까.
어둠은 쉬이 오고 곤청색 산들을 끌며
비구름은 지평선을 넘는데
벽 돌담 아래에 아이들은 모여든다.

도종환 시인의 <종점>이란 작품에서 “일방적인 증오가 애국심이 아니라는 것쯤/폭력의 언어와 내용없는 적개심만으로/글짓기 대회 그리기 대회의 상들을 타게 하고/그것은 통일의 방법도 뭣도 못된다는 것쯤/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구절이 가슴에 남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생각하는 힘을 키우기보다는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지금 사회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세대가 이런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고스란히 받은 이들입니다.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이러한 주입식 교육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던 도종환 시인은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쳐왔고 바른 교육을 정립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해왔습니다. 적어도 그는 <종점>이라는 시에서 지적한 일방적인 증오심을 키우는 교육, 적개심을 일으키는 교육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나는 민중이니 민족이니 역사니 하는 것을 먼 곳에서 찾지 않는다.
식민지 시절에 앗기우며 한 세월을 보낸 할아버지, 태평양전쟁 말기 남양군도에 징병으로 끌려가 돌아가신 큰아버지, 그 큰아버지와도 싸웠을 군대에 배속되어 분단의 전쟁을 치른 아버지, 소금장수, 이발쟁이, 날품팔이, 농사군 형제들, 언청이, 못난이 누이들,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와 내 이웃의 삶 속에는 생생한 역사와 삶의 아리고 한스러운 흔적들이 흉터처럼 박히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와 민중은 내 가까운 피붙이와 내 자신 속에서 늘 꿈틀거리고 있다. 이 모든 동시대인들의 삶에 몇 발작 비켜서서 자학하고 탄식하며 오만함 속에 또한 신비한 체험 속에만 빠져서 반성문 같은 시, 변명 같은 시만 쓰고 있을 수는 없었다.
시는 삶 속에, 이 땅 위에 튼튼히 뿌리를 박는 서정과 용기이어야 하리라 믿는다.
분단시대 약소민족의 아들로 태어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들 속에 서서 튼튼한 시를 쓰고 싶었다."
-《고두미 마을에서》 후기 중에서


시인 도종환은 첫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의 후기에서 말하는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 ‘우리가 분노해야 할 것’ ‘우리가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에 관한 시를 충실하게 써왔습니다. 전교조가 사회의 이슈로 떠올라 시끄러웠던 때에 전교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시를 썼고, 사회의 벽이 느껴질 때는 그 벽을 타고 넘을 수 있는 시를 썼습니다.
 
그렇게 사회의 부조리를 정면으로 대면했던 시인 도종환은 이제 국회의원 도종환이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정치와 관련 없는 시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더 힘든 정치인생을 겪어야 할지 모릅니다. 그의 시를 읽으며 자랐던 우리는 이제 시인 도종환이 아닌 정치인 도종환의 모습을 지켜볼 것입니다.

이번에 시인 도종환의 시를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했던 한국교육평가원의 판단은 정치인 도종환이 쓴 <담쟁이>의 일부분을 문재인이 대선에 참여하면서 인용했고, 정치인 도종환이 문재인 대선 캠프에 합류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담쟁이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이던 2004년에 문학사상사가 펴낸 《나를 매혹시킨 한 편의 시》라는 책에서 함석헌 선생의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시가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하는 화두가 되었고, 살아가면서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었다”면서 “인생의 지표가 된 이 시를 매일 아침 새롭게 가슴에 새긴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측근 비리가 연이어 터져 나오는 요즘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아니'하며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알뜰한 유혹 물리치게 되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로 끝나는 함석헌 선생의 시를 아직도 이명박 대통령이 인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지 의심스럽군요.
  
정치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를 많은 사람에게 밝힌다는 것은 그 시의 상징적 무게를 등에 업는 것과 같습니다. 새누리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과 김문수 경기지사는 윤동주의 <서시>를,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를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정치가는 정권을 창출하기 위해 거짓과 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고들 합니다만, 시의 상징성을 등에 업으려 하는 정치가에게 '시어'는 오만한 거짓을 드러내는 진실의 현미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윤동주의 <서시>중에서)”는 시인의 표현에 맞게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며, “숨죽여 흐느끼며/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타는 목마름으로/타는 목마름으로/민주주의여 만세(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중에서)”라는 외침을 과연 실천할 수 있는지 그들은 되물어야 할 겁니다.

2012년은 정치의 해입니다. 많은 사람의 눈과 귀가 정치가의 언행에 쏠려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정치가가 그립습니다. 정치 세력을 따라 호가호위하려는 언론이나 검찰 등 권력층의 행동은 이 더위에 국민을 더 짜증 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도종환
1954년 청주에서 출생하여 충북대 사대 국어교육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77년 청산고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교사의 길과 시인의 길을 함께 걸어오다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되고 투옥되었으며, 1998년 해직 10년 만에 덕산중학교로 복직하여 교사로 재직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청주지부장, 장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충북지회 문학위원회 위원장, 제4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위원을 지내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회 위원을 거쳐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제19대 국회의원이 되어 활동하고 있다.

제8회 신동엽 창작기금, 제7회 민족예술상, 2006년 올해의 예술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받았으며 2006년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시집으로 《고두미 마을에서》《접시꽃 당신》《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부드러운 직선》《슬픔의 뿌리》《해인으로 가는 길》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모과》《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마음의 쉼표》 등이 있다.

 

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입니다. 서울과 봉화마을에선 2주기를 전후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렸죠. 어제 강원도 춘천에서도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는 작은 행사가 열렸는데요, 노무현 대통령의 생전 활동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고,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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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추모행사는 작은 천막에서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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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사진과 인상적인 문구를 쓴 현수막이 천막을 사방으로 덮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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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에 있는 사진 이외에도 여러 일상을 담은 사진을 중간마다 배치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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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한 분이 이곳저곳을 돌아보시며 사진을 구경하고 계셨습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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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적인 사진을 몇 장 뽑았습니다. 5공 청문회에서 사자후를 토했던 젊은 시절 사진과, 해외에 파평된 자이툰 부대 장병을 두 팔로 껴안고 있는 사진입니다. 평소 소신과 달리 파병을 했다는 일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 모습을 보니 가슴이 찡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사진보다 우리의 기억에 각인된 사진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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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에게 '노간지'라는 별명을 붙여준 사진입니다. 대통령 퇴임 후 고향으로 돌아가 소박하게 사는 모습은 역대 한국 대통령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이른바 '간지'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제 그분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없다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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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대표 손학규 의원과 민주당 강원도당위원장인 최종원 의원도 추모의 뜻을 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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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분향소입니다만, 화려하지 않은 모습이 그분의 뜻에 더 어울리는 듯합니다. 저도 옆에 있는 국화 한 송이를 헌화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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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걸려 있는 걸개입니다. 사진을 합성해놓은 듯한데, 뒤돌아 앉은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만약 저기 계신 분이 노무현 대통령이라면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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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뜨려니 천막에 달린 노란 바람개비가 바람에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리의 꿈과 희망도 저 바람개비처럼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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