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그 시작은 노동절입니다. 지난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은 노동존중사회 실현이 이 정부의 목표 중 하나라는 것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근로자의 날인 5월 1일을 정식으로 '노동절'로 바꾸고 법정공휴일로 정하자며 5월 임시국회 처리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그간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이 비준되고 지난해 노동자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하는 등 변화의 흐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노동 현장에서 일상으로 벌어지는 안타까운 청년들의 죽음을 마주하노라면, 그 노동 환경과 관련된 변화의 흐름이 너무나도 더디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처 - KBS

 

평택항 신컨테이너 터미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300kg이 넘는 철판에 깔려 숨진 대학생 이선호 씨의 안타까운 사연을 다들 아실 겁니다. 선호 씨는 그날도 아버지와 함께 일하는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평택항에서 개방형 컨테이너 내용물 검수를 포함해 다양한 작업을 했습니다. 선호 씨는 코로나로 어려워진 가정 형편 때문에 곧잘 아버지를 따라나섰다고 하죠. 하루 9시간을 일하고 손에 쥐는 일당은 9만 8000원이었습니다. 

 

출처 - 한겨레

 

선호 씨가 일하던 노동 현장에는 문제점이 많았습니다. 원청인 동방은 현행법을 어기고 불법 파견 행위를 했습니다. 게다가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개방형 컨테이너를 다루는 일은 평소 선호 씨가 하던 업무가 아니었다고 하죠. 처음 투입되는 현장에서는 안전 교육을 통해 작업의 위험성이나 주의 사항 등을 숙지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런 교육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지게차 같은 중장비를 사용하는 현장은 작업 지휘자나 유도자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그것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선호 씨 사고는 장비 노후화가 원인이었습니다. 개방형 컨테이너의 날개가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진동으로 쓰러지는 바람에 참사가 일어난 겁니다. 숱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던 현장에서 선호 씨는 안전모도 없이 안전 교육도 받지 못한 채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투입되었습니다.

 

출처 - JTBC

 

그러므로 선호 씨의 죽음에는 국가의 책임도 있습니다. 평택항이 국가의 기간시설인 만큼 정부가 안전 관리 감독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평택항은 노동자의 신원 확인 같은 기초적인 절차도 밟지 않았습니다. 보안 교육이나 안전 교육은 물론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없죠. 그런데 정말로 끔찍한 일은 사고가 발생한 직후 현장의 대응이었습니다. 300kg이 넘는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구하러 간 사람은 같이 있던 외국인 노동자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는 당장 119에 신고하라며 무거운 컨테이너 날개를 들어 올리려다 허리를 다쳤습니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있던 한국인 현장 인원들은 119 신고보다 윗선에 보고부터 하고 있었습니다. 사고를 당해 생명의 빛이 사라져 가는 상황에서 컨테이너 날개에 깔린 선호 씨를 30여 분이나 방치한 겁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사고 현장을 마치 중계라도 하듯 원청에 보고부터 한 행태를 뒤늦게 알게 된 선호 씨 아버지는 그야말로 피가 거꾸로 솟았겠지요.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아들 선호 씨의 이름은 '삶의 희망'이었다고 합니다. 아들의 허망한 죽음이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되고 자식을 둔 대한민국의 부모가 이 일을 다 알아야 한다며, 선호 씨 아버지는 기자들에게 얼굴도 이름도 가리지 말라고 호소했습니다.

 

출처 - MBC

 

원청인 동방은 선호 씨가 사망한 지 무려 20일이 지난 지난 12일에야 공식적으로 사과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언론 앞에서 보이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정작 유가족에게는 기자회견을 알라지도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유족에게 직접 하지 않는 사과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출처 - 미디어스

 

선호 씨 같은 청년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도 문제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또 한 청년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를 뒤흔든 한강 의대생 실종 및 사망 사건입니다. 똑같은 청년의 죽음이지만 언론의 접근과 보도 방식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한강 의대생 사건은 사건 초기에 미스터리물을 다루듯 선정적 기사를 양산하더니 급기야 장례식장의 추모사까지 생중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숱한 기자들의 선정적인 추리 극장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에 반해 평택항 선호 씨의 사망 사건은 거의 묻히다시피 했다가 SNS와 커뮤니티 등에서 문제를 제기한 끝에 뒤늦게 언론 보도를 타기 시작했죠. 하지만 두 사건의 기사량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를 보입니다.

출처 - 경향신문

 

두 사건 다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가 안타깝게 사망한 사건이고, 자식을 먼저 보낸 아버지의 애끊는 마음이 다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언론의 보도 시점과 보도 방식이 다른 건지, 그 이면에 어떤 이유가 작동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부모와 사고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가 이런 이상한 보도 양상의 원인이라면, 참으로 치가 떨리는 일 아닐까요? 극단적으로 다른 언론의 대응 양상이 누군가의 죽음을 모욕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JTBC

 

올해 노동절을 맞아 전태일 열사의 일기장 원본이 50년 만에 처음 공개되었죠. 스물두살 청년 전태일의 일기장 맨 앞장에는 단 두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내일을 위해 산다. 절망은 없다.’

 

전태일 열사가 1970년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스스로 몸에 불을 질러 숨진 지 50년이 흘렀습니다. 전태일 열사가 그토록 바란 내일일 텐데 지금 노동자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주변에는 노동기본권조차 적용받지 못하는 5인 미만 사업장이 60%에 달합니다. 전태일 열사의 꿈이 이뤄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죽고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하는 걸까요?

우리나라 제일이라는 삼성그룹의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던 지난 6일, 다른 한쪽에선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로 숨진 노동자 38명의 합동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화재 현장의 합동 감식이 마무리되어 사고 이후 처음으로 한데 모인 유가족들은 국화꽃을 하나씩 집고 오열했습니다.


출처 - SBS


노동절을 앞둔 4월 29일 경기도 이천에서 발생한 (주)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공사장에서 발생한 화재는 우리나라의 노동 상황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참사였습니다. 화재 사망자 38명 중 대부분은 전기, 도장, 설비 등의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 노동자였습니다. 코리안 드림의 꿈을 안고 막노동에 나선 외국인들도 3명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황금연휴 시작 전날이라고 다들 들떠 있던 때, 정규직 대신 원청 대신 돈을 벌기 위해 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노동 현장 가장 말단의 사람들이 희생된 셈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노동 현장의 참사가 언제나 그렇듯 이번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역시 전형적인 인재였습니다.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친 이천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6차례나 화재 위험성을 경고하고 개선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해당 업체가 공단의 개선 요구를 지키지 않아 화재 가능성을 키웠을 공산이 큽니다. 그런데 화재 참사 다음 날, 언론은 일제히 '용접 불꽃'과 '샌드위치 패널'을 화재의 원인으로 지목했습니다. 용접 불꽃이 화재의 핵심 원인이라면, 그 책임은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해당 노동자나 작업반이 지게 될 가능성이 크죠. 정확한 화재 원인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언론이 일제히 보도한 추측성 기사는 기업의 책임을 노동자의 책임으로 둔갑시킬 가능성을 키웁니다.

 

출처 - 문화일보

 

현재까지 명확한 화재 원인이 최종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레탄폼 작업과 도색 작업 등을 동시에 진행해 유증기가 가득 찬 '폭발 하한치' 상태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결국 고용노동부의 개선 요구를 무시하고 공기 단축을 위해 병행해서는 안 되는 위험 작업을 동시에 한 끝에 발생한 참사일 가능성이 큰 셈입니다. 이 경우 환기 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시공사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이번 참사가 지난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의 복사판이라고 불리는 까닭도 이와 같습니다. 대피로가 미확보되어 대형 인명 피해로 번진 것까지 말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와 관련해, 과거에 일어났던 유사한 사고가 대형 참사의 형태로 되풀이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사고였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원인 규명과 유가족에 대한 지원을 언급하며 재발방지 대책을 주문했습니다. 화재 안전 대책을 강화해왔는데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밝히고 관리 감독의 책임까지 엄중하게 규명하라고 했습니다. 고용노동부가 6차례 개선 요구를 했다고는 하지만 고쳐지지 않았다는 건 공사 업체의 문제가 분명하지만, 법적인 미비나 감독 기관의 해이로 그 개선 요구가 즉시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 이유를 규명해 수정해야 앞으로 이런 참사가 더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출처 – 연합뉴스


정부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의 관련 주체 중 원청 시공사를 향해 칼을 빼들었습니다. 원청의 안전경영체계 결함 또는 안전보건조치 미이행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공식화한 것입니다. 이는 안전사고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나 하청 업체 꼬리 자르기 수준이 아니라 원청에 책임을 강하게 물어 안전사고를 근본적으로 처벌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그간 정책과 대책은 있었지만 정작 현장에서의 실효성은 떨어졌기 때문에 참사가 되풀이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김용균법이 제정되어 모든 작업장에 반드시 화재감시자와 안전관리자가 배치되어야 하지만, 이번 참사 현장에도 배치가 미흡했던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는 안전의 컨트롤타워인 정부가 발주처와 시공사를 압박하지 않고서는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는 방증입니다.

 

출처 - 뉴스1


민주노총은 지난 4월 30일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시공사인 건우, 그 아래 9개의 하청 업체, 또 얼마나 오갔는지도 확인하기 어려운 일용직 노동자라는 전형적인 다단계 구조 속에서 참사가 발행할 때마다 발주처와 시공사는 책임에서 빠져나가고 하청업체 말단 관리자만 책임지는 일이 너무 많았다면서, 제대로 책임을 묻지 않으면 이런 참사는 다시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는 김승연 한화 회장의 조카가 대표이사로 있는 곳입니다. 주요 거래처는 한화 계열사입니다. 공정위가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로 제재에 착수한 곳입니다. 재벌로부터 시작해 일용직으로 끝나는 '위험의 외주화'는 또 한 번 이렇게 참담한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출처 - 뉴스1


이번 참사는 원청의 안전 책임을 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 일명 김용균법 시행 100여 일 만에 처음으로 터진 대형사고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김용균이 있어야 제대로 된 변화가 가능할까요. 가슴이 미어지는 5월입니다.

지난 2017년 2월 통계청이 발표한 고용동향에 따르면 2017년 대학 졸업시즌에 우리나라 실업자가 135만 명으로 1998년 IMF 외환위기 이후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합니다. 이 정도로 실업자가 양산된 것은 근 20년 만이라고 합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산하 경제분석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같은 기간 전 세계 도시 중 서울의 물가상승률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계생활비지수(WCOL index)가 44계단이나 뛰어올라 조사 대상 133개 도시 중 6위에 올랐습니다. 아래 표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는 파리, 뉴욕보다도 높고 도쿄와 거의 같은 수준입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정규직 취업 경험이 있는 20대 청년은 고작 5.5퍼센트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돼 충격을 주었습니다. 지난 2월 15일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청년활동지원사업 운영모델 구축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18~29세 청년 중 취업 경험이 있는 이들은 78.5퍼센트였는데 이 중 정규직은 7퍼센트에 불과했습니다. 전체 청년 비율로 따지자면 잠깐이라도 정규직으로 취업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5.5퍼센트밖에 안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나머지 절대다수인 95퍼센트에 달하는 청년들은 아예 취업 자체를 해본 적이 없거나 비정규직 경험밖에 없다는 충격적인 결과인 셈입니다.


출처 - 파이낸셜뉴스


창업을 고려하고 있는 청년은 21.6퍼센트였습니다. 높은 수익이나 인생을 걸 만한 비전 같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취업이 안 돼서 였습니다. 뉴스에서 떠드는 평균연봉은 대체 어느 환상 속의 나라 얘기인지 모르겠고 청년들은 월 200도 바라지 않고 그저 180만 원만 벌면 소원이 없겠다고 고백하는 현실입니다. 이 수준으로는 결혼이나 자녀는 언감생심, 독립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가 발표한 청년 근로빈곤 사례 연구에 의하면 근로빈곤 위기계층 비율은 전체 청년의 47.4퍼센트에 달했습니다. 청년들이 질 낮은 일자리 덫에 갇혀 비정규직만 전전하게 되는 악순환에 빠져 워킹푸어로 전락했다는 얘깁니다. '노오오력'으로는 도무지 극복이 안 되는,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헬조선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통계자료들입니다.


출처 - 세계일보


그렇다면 취직한 이들은 행복할까요? 이들이라고 마냥 행복한 건 아닙니다. 직장인 고용 불안감 현황이 지난 2007년 51.3퍼센트에서 2016년 80.2퍼센트로 이명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무려 약 30퍼센트나 폭증했습니다. 이 때문에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르바이트를 따로 한다는 직장인이 20퍼센트 수준에 육박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비정규직의 부업률은 정규직의 2배 이상이어서 비정규직은 '멀티잡'을 갖지 않으면 기본적인 생계유지가 곤란하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아시다시피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 노동시간이 2위일 정도로 폭력적인 상황입니다. 일상생활을 포기하다시피하며 죽도록 일하는데 왜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이리 힘들까요? 아무리 이명박근혜 정권을 두둔하던 이들이라도 이런 현실 앞에선 취업을 준비하는 개인의 잘못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출처 - 아시아경제


박근혜 정권은 지난 4년간 무려 52조 원의 예산을 일자리 정책에 쏟아부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청년실업률 12.3퍼센트, 실업자 150만을 헤아리는 역대 정권 최악의 실패를 기록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철저히 무능했거나 도둑놈들만 모였거나 둘 중 하나겠죠. 아니, 둘 다일 가능성이 더 크겠군요.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과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단체들은 뼈와 살을 깎아 혁신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노동시간 단축이나 기타 선진적인 노동환경 조성을 요구하며 볼멘소리뿐입니다. 그러면서 정권에 뇌물 갖다 바치는 편이 기업 성장에 더 효과적이라는 안이함에 빠져 있었죠.

출처 -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기로에 서 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잃어버린 10년을 20년으로 만들 겁니까? 도덕성에 흠결이 있어도 좋으니 잘살게 해주기만 하면 된다고 했던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였는지는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을 보면 깨닫고도 남음이 있을 겁니다. 지난 10년 우리는 어떤 일을 겪었습니까? 4대강 파괴, 정경유착, 언론 및 방송 장악, 방산비리, 자원외교 비리, 국정원 정치 개입, 남북관계 경색, 개성공단 폐쇄, 노동법 개악, 양극화 심화, 진보정당 해체, 전교조 법외노조화, 역사국정교과서 추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비밀협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사드배치, 등으로 우리의 일상이 파괴되고 대한민국의 미래가 심히 불안한 상황입니다.

 

대한민국 경제가 살아나려면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가 우선인 정책과 공정한 근로환경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그런 정책과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바로 투표입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장미 대선에서 미래를 위한 투표를 꼭 하시길 바랍니다.

 

자본주의의 민낯을 드러낸 세월호 사고

노동절로 시작한 5월입니다. 노동절 휴무를 계기로 전국 각처의 분향소를 찾아 세월호 침몰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 유가족의 마음을 위로하려는 노동자가 많았습니다. 전국의 세월호침몰사고희생자합동분향소는 아침부터 추모객들로 붐볐습니다. 여느 때 같으면 근 일주일을 쉴 수 있는 황금연휴라며 연차와 월차를 동원하여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 때입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생각비행의 마음은 무척 참담합니다. 이번 사고는 자본주의의 추악한 민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참사였습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아르바이트생 희생자 2명의 장례비 지원을 거부했다는 보도만 봐도 그렇습니다. 알바생을 승무원 명단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만 봐도 자본의 탐욕이 어느 정도인지 드러납니다. 더구나 무능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부, 부패한 정치권, 진실을 감추는 언론, 고물 배로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청해진해운, 세월호 수색 현장에서 드러나는 해경-언딘 유착 증거 등은 대한민국이 그야말로 안전후진국임을 극명하게 드러냅니다. 이것이 과연 국가인가? 다시 한 번 되묻지 않을 수 없군요. 

안타까운 시국에 또 한 번 국민의 마음을 비통하게 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며칠 전 쌍용차 해고자 가운데 25번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노동자의 고용 불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상존하지만 사회적 안전망은 취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청해진해운이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경영에 반발하는 노동자를 고립시켜왔다는 증언마저 나오고 있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때입니다.
      

노동자-근로자 논란을 일으킨 국립국어원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트위터에서는 노동절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습니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하여 쓰라는 국립국어원의 트윗 때문이었습니다.

출처 - 트위터

문제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을 앞두고 국립국어원 공식 트위터는 근로자의 날(노동절)에 트위터를 운영하지 않으니 참고 바란다며 공지를 합니다. 그런데 한 트위터 사용자가 이 공지에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자의 날로 바꿔 달라는 멘션을 보냈고, 이에 국립국어원은 노동자는 근로자로 순화하여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답변을 남기게 됩니다.

출처 - 트위터

이에 많은 트위터 사용자가 즉각적으로 반발합니다. 노동자가 어째서 순화대상 용어냐며 비판이 쏟아진 것이죠.

누리꾼들은 거세게 항의했다. @ir*****는 트위터에서 "노동자를 근로자로 다듬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국립국어원 트윗. 아닙니다. 근로는 노동으로 근로자는 노동자로 다듬어 써야 합니다. 근로는 힘들여 부지런히 일하는 것을, 노동은 육체와 정신을 써 일하는 것을 말하죠. 근로는 사용자 입장입니다"라고 지적했다. @na******도 "시와 때와 내용을 좀 가려서 말씀하시고 잘못했다 싶으면 빨리 정정하시고 책임지셨으면 좋겠네요. 업무에 고충이 있을 땐 이거 관리자분도 노동자니 노동조합 가입해서 싸우시고요. 근로조합 아니고 노동조합입니다"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외래어 표기법에 보면 메이데이를 근로자의 날이나 노동절로 순화하여 쓸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노동절이 고쳐야 할 순화 대상어라고 하고, 홈페이지에서는 노동절이 적절한 외래어의 순화어라고 하니 사람들은 코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출처 –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결국 국립국어원은 이날 오후 노동자도 쓸 수 있는 말이며, 1993년에 노동자를 순화 대상어에서 제외한 바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자료도 수정하겠다고 다시 공지하며 일단락되었습니다. 비록 한순간의 해프닝이었지만 정부가 노동자를 대하는 민낯을 보게 되었는데요. 생각비행은 '근로자와 노동자 논란'이 그저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물론 시민에 이르기까지 노동자를 대하는 잘못된 관념이 뿌리 깊은 대한민국의 현실이 과연 어디서부터 유래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동절, 이승만과 박정희에 의해 근로자의 날이 되다

노동자를 근로자로 순화해야 한다며 국립국어원이 든 근거는 1992년에 나온 국어순화자료집입니다. 이때는 노동자를 순화대상 용어로 지정해놓고 근로자로 순화해 쓰도록 권고했습니다. 언어 순화 대상이 되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 경우입니다. 어려운 한자어이거나 일본식 표현 혹은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을 경우인데요, 국립국어원은 당시 노동자라는 용어에 부정적 의미가 내포돼 있기 때문에 근로자로 순화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93년 판 국어순화자료집에는 노동자라는 용어를 그대로 써도 무방하다고 하여 수정합니다. 애초에 노동과 노동자라는 단어에 편견을 덧씌워놓았던 셈입니다. 근로자는 부지런히 일한다는 뜻으로 모든 근로자가 국가와 기업을 위해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주입하고 있기 때문이죠.

'근로자'와 '노동자'는 얼핏 별 차이가 없어 보이는 단어들입니다. 정부나 기업 쪽에서는 '노동자'라는 말 대신 '근로자'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일반적으로 '근로자'는 말 그대로 '근면 성실하게 국가나 회사를 위해 시키는 대로 순종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노동자'는 '스스로 힘써 주체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노동이 더 가치 중립적인 단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부가 두려워하는 의미는 따로 있겠죠. 하지만 솔직히 지금 와서 노동이란 단어에 북한을 찬양하거나 사회주의 혁명을 하겠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다고 느끼는 국민이 대체 몇 사람이나 있을까요?

출처 - 한겨레

사실 노동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 것은 이승만과 박정희의 독재 정권을 거치면서 용어의 의미가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에서 8만 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이 8시간 노동을 보장받기 위해 단행한 총파업에서 유래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생각비행이 2012년 노동절에 쓴 기사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노동절에 우리 주변에서 어떤 행사가 열릴까요?)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인 1923년 5월 1일 조선노동총연맹이 2000명의 노동자를 모아놓고 노동시간 단축, 임금인상, 실업 방지를 주장하며 노동절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1958년부터 1993년까지 우리나라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라 3월 10일로 바뀝니다. 세계 노동자들의 상징적인 날과 관계없이 이승만 정권의 우익 노동단체인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의 재발족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정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정희는 1963년 이날을 근로자의 날로 이름마저 바꿔버립니다. 박정희 정권이 생각하는 불순한 노동이란 단어 대신 산업역군 근로자가 되라는 의미였습니다. 

노동자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4년에 이르러서야 근로자의 날은 제 날을 찾아 5월 1일로 개정됩니다. 하지만 노동자의 날이 아닌 근로자의 날로 이름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출처 - 연합뉴스

이번에 일어난 국립국어원 해프닝을 별것 아니라고 넘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편견을 엿보게 합니다. 국가와 기업을 위해 순종하는 근로는 긍정적이지만 자아실현과 주체적인 노동은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은 독재정권은 물론이요 문민정부가 들어선 이후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다를 바가 없네요. 강요된 순종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우리는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순화어로 지정되었다 해제된 지 20년,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노동절이 아닌 근로자의 날을 지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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